뺑덕어미 자서전
백금남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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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리'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는다. 물론 녹음을 통해 그 소리를 일정한 공간에 잡아둘 수도 있다.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소리,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우러져서 한판 구성지게 놀아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진다. 팝송이나 가요 듣는 것을 즐겨하는지라 우리의 '소리'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 책을 통해 '소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서편제'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나도 이 영화를 떠올렸고 그 때 느꼈던 가슴뭉클함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임찬희라는 열아홉살 소녀를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 국악에 대하여 가족사를 통해 그 맥을 짚어본다. 물론 쉽게 다가오는 내용은 아니다. 임찬희는 친구들과 함께 조막손 할배의 무덤을 파헤쳐 가야금을 훔치려고 한다. 조부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조막손, 바위틈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을 가지고 복수를 한다. 하지만 그 복수조차 허망했던 것일까. 세상을 떠돌던 조막손은 죽음에 이르러 이 가야금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조막손 할배가 자신의 친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찬희는 이 가야금을 파내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가야금을 듣고도 죽음에 이를 수 있을까.

 

복수가 무엇이길래 조막손의 아버지는 아이의 손가락까지 잘라서 가야금 줄에 피를 먹여야 했을까. 엄지손가락 두개만으로 가야금을 탔을 조막손이 떠오른다. 가슴속에서는 피가 맺히고 복수를 향해 가야금을 타야하는 자신의 처지에 슬픔이 생기지 않았을까. 영화 '서편제'를 보면 소리를 얻기 위해 자식의 눈까지 멀게 만드는 아버지가 나온다. 그 소리란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구든 그 어떤 것에 맹목적으로 목숨까지 걸 수 있다. 그 목적이 '소리'라고 해서 달리 생각해야할 건 없지만 그 '한'을 담아 소리의 맥을 잇는 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이리 처절하게 느껴지는가. 그래서 판소리를 들으면 흥겨움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어떤 애절함을 느끼게 되나 보다. 우리의 것인 '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소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다.

 

"뺑덕어미 자서전". 왜 이렇게 제목을 붙인 것인지, 내용과 다른 제목으로 인해 잠시 어리둥절 했다. '심청전'에 등장하는 뺑덕 어미를 왜 내세운 것일까. 우리 국악의 역사, 5대에 걸친 소리 가문의 비운을 임찬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뺑덕어미 자서전으로 이름 붙여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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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3
황경신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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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대부분이 내가 지나온 열일곱 살을 추억하게 될 것 같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던가.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늘 마음속에는 일탈을 꿈꿔왔던 것 같다. 하지만 늘 마음 뿐, 친구들과도 오롯이 마음을 나누지 못한 시간이었다. 열일곱 살 니나의 클래식한 사랑, 솔직히 아주 현실적인 나는 시에나와 대니, 니나, 제이, 비오의 말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렴풋이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

 

시에나에게 일주일에 한번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니나. 강사와 학생이 아닌,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그냥 '시에나'라고 부르며 언니와 동생처럼 그렇게 음악을 주제로 가까이 다가가는 두 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전혀 낯선 음악의 세상은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시에나는 음악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한 것 같다.

 

시에나, 대니, 니나, 제이, 비오. 누구 하나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긴 한 걸까. 이름조차 낯설기에 이들이 있는 곳이 먼 외국인가 착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제이와 비오는 니나가 붙여준 새로운 이름이지만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든 가려버리고 숨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사과나무 사진을 찍는 제이, 그 곳에 있었던 대니. 친구라며 제이를 시에나에게 소개하는 대니를 보며 니나까지 이 네 사람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된다. 비록 제이를 시에나에게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 니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시간 니나는 비오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중이었다. 음악을 빼고서는 이 사람들을 얘기할 수가 없다. 바이올린을 가지고 훌쩍 떠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통해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달콤했던 열일곱 살의 시간? 첫키스의 아련한 느낌이 남아있는 열일곱 살? 무엇을 말하고 싶었든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몽환적이고 모호한 언어들을 통해 오히려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어 버린다.

 

음악이 함께 하기에 클래식한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열일곱 살의 풋풋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열일곱 살을 이렇게 보내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학교와 집, 학원과 도서관을 오가며 그 때의 우리들은 현실의 한 모퉁이에서조차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오롯이 공감하며 읽을 수 없어 참 안타깝다. 난 아직도 그 시절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까. 지금도 때론 일탈을 꿈꾸지만 명확한 현실에서 내 자리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일 뿐. 먼 훗날, 이천육백 광년 뒤에 별이 되어 반짝일 사랑에 관심을 두게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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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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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암울한 이야기만 가득한 이 책의 제목이 "낙원'이다.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온다. 저자는 나에게 어떤 "낙원"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낙원"이 존재하기는 할까. '모방범'과 '낙원'을 읽고서야 크게 숨을 몰아쉰다. 긴 여정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가는게 쉽지 않았다. 오로지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의존하여, 그녀가 풀어놓은 퍼즐들을 나 스스로 맞출 능력도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그녀가 말해주기만을 바라며 책장만 넘기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낙원'은 '모방범'에서 연쇄살인범에 대항한 마에하타 시게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꼭 시게코가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솔직히 나는 아미가와를 잡기 위해 데스크를 담당한 다케가미가 '낙원'을 이끌어 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보았다. 그렇게 기대하기도 했었다. 일단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시게코가 주인공이 되면 전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흐름이 늘어지지만 경찰인 다케가미가 사건을 풀어간다면 좀 더 긴박하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아미카와('모방범'에서는 아미가와라고 했는데 '낙원'에서는 아미카와로 나온다.)가 잡힌 후 9년이 흐른 지금,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한 '낙원'이 나올 이유가 있었을까. '모방범'의 속편으로 보여지지도 않는 이 책 '낙원'은 모방범에서 아미카와를 잡는데 큰 활약을 한 시게코가 여기에 등장해야만 하는 이유로 9년 전 범인들이 아지트로 삼았던 '산장'을 히토시가 죽기 전에 그린 것으로 설정하여 그 때의 악몽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르포라이터 시게코에게 도시코라는 한 중년여인이 찾아와 아들 히토시가 죽기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며 사건이 시작된다. 최근 부모에 의해 살해되어 16년간 마루 밑에 묻혀 있었던 도이자키 아카네의 사건을 그림으로 남겨 놓은 히토시. 이 아이는 9년 전 사건의 아지트였던 산장의 그림도 그려놓았다. 13개의 손과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동 페리뇽 병이 이 '산장'의 정원에 묻혀 있는 그림, 이 그림이 시게코를 끌어당기게 된다. 히토시는 모든 사건 사고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일까.

 

저자는 '모방범'에서 범인을 죽여 독자들을 어이없게 하더니 이번에도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히토시를 죽여 사건에 가까이 다가서기까지 오로지 시게코가 관련 인물들과 만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지루하다. 시게코가 왜 히토시의 문제를 알아보는지,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16년전에 살해 당한 아카네 사건을 파헤쳐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럽게 만든다. 뒤로 갈수록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긴 하지만 이것이 왜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낙원'이란 책이 나왔는지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는 것 같다.

 

이 책은 '모방범' 그 9년 후의 이야기가 아닌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형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모방범'에서 아미카와, 히로미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나거나 그 때 관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라서 많이 실망한 모양이다.

 

히토시의 이야기만으로 전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비록 히토시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16년 전에 죽은 아카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카네의 가족들을 히토시가 만난 적이 있는지 알아내야 했겠지만 엉뚱한 이야기로 빠져버린 느낌이 든다. 점점 이야기가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아카네의 죽음을 아는 또 다른 인물을 히토시가 만난 적이 있다는 과정을 세우고 사건에 깊이 관계하게 되는 시게코. 그녀는 이 사건을 파헤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미 시효가 끝났는데 말이다.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사건임을 알게 되어 시게코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지만 참 허탈하지 않은가. 아미카와 같은 인물이 또 하나 있다며 사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려 하지만 그저 가족의 아픔만이 전해져 이 책을 읽는 것이 내내 불편했다.

 

시게코는 이 사건을 알아내어 아미카와의 손에서 벗어났을까?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아니 적어도 평생 함께 살아갈 용기가 생겼을까. 9년전 사건에서 패배했다는 자괴감에 이 사건에 대해 글 한줄 적지 못했던 시게코, 왜 글을 쓰지 못했는지 오롯이 이해할 수 없지만 시게코가 '낙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유는 이것일게다, 9년 전 사건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낙원'이 탄생하게 된 이유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그래서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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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매미 작은 곰자리 4
후쿠다 이와오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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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엔 잘못을 하면 고백을 하고 용서를 구하면 됐지만 지금의 난 어른이라 내가 한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져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충고를 하고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은 점점 좁아져 바늘 끝조차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빨간 매미"에 등장하는 '이치'를 보며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 잘못을 고백하는 아이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을 하고 살아 왔던가. 내가 한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며 그렇게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잘못을 빌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큰 죄라도 지은 사람 같다. 깨끗하고 가장 순수한 상태로 다시 시작할 수 없음에 가슴이 아파 잠시 옛 기억에 잠겨보게 된다.

 

"빨간 매미"에 등장하는 '이치'를 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을 때 함께 용서를 빌러 가자고 말해주는 엄마와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문방구 아줌마가 있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치는 이 때의 기억으로 어른이 되어 "이제 안 그럴 거지" 상냥하게 웃어주신 문방구 아줌마를 떠올리며 늘 열심히 살아갈테니까.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고 고백을 하면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른 사람이 훔친, 그 전에 없어진 것까지 변상을 요구할 것이다. 이 사건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닌 행실이 나쁜 아이로 생각해 버리고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며 상처를 줄 것이다. 그러면 이 상처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해가 될 것인가. 주눅들어 어깨도 펴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예전 맛있는게 있으면 나눠 먹던 정이 많았던 시절과 다르게 잘못을 밝히는 것조차 겁이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빨간 매미"는 국어 공책을 사러 문방구에 간 '이치'가 빨간 지우개를 보고 순간 아줌마 몰래 주머니에 넣고 오면서 겪는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이치의 용기있는 행동과 그것이 잘못임을 알고 고백을 하는 아들과 함께 문방구에 가서 용서를 비는 엄마, 자신의 잘못을 아는 아이에게 이제 그러지 마라는 말 뿐 다른 말을 하지 않는 문방구 아줌마. 이런 어른이 된다는게 쉽지는 않다.

 

훔쳤다는 죄책감에 여동생에게 화를 내고 매미의 날개를 뜯는 등 점점 나쁜 아이가 되어 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이치. 드디어 용기를 내어 고백하게 된다. 이치에게 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꿈에서 빨간 매미까지 나타나게 된다. 아이가 느꼈을 불안감과 죄책감을 섬세하게 풀어 낸 "빨간 매미"는 아이의 입장이 되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나도 지나 온 어린시절,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들의 마음 못지 않게 큰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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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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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일본군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키스카 섬에서 철수할 때 4마리의 개들, 키타, 마사오와 마사루, 익스플로전을 버려두고 떠난다.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 중에 인간들은 안전을 위해 이 섬에서 전원 철수하고 개들은 남겨졌다.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제목만 봤을 땐 이 4마리의 개들이 이 섬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지냈는지 그 처절한 생존에 대해 쓰여진 줄 알았는데 인간의 삶과 역사속에서 이 4마리의 자손들이 살아간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따옴표 안에 있는 글들은 인간들에 대한 글, 따옴표가 없는 것은 개의 시각으로 쓴 글이다. 개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손을 낳았는지 잊지 않게 세심하게 챙기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근데 저자는 인간의 일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무심한건지. 갑자기 나타난 노인, 그는 시베리아에서 개들을 훈련시키며 무엇을 하는가. 낯선자들은 왜 노인을 죽이려 하는가. 유일하게 내 눈길이 머물게 되는 이 노인은 일본 야쿠자의 딸을 인질로 잡고 러시아와 체첸을 상대로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가 이끄는대로 개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내가 속한 인간들의 세상에 많은 관심을 쏟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벨카. 중반쯤 읽어야 이 벨카의 존재를 만날 수 있다. 1960년 8월 19일 개 두마리가 하늘에 있었다. 스푸트니크 5호에 탑승하여 우주 비행을 하게 된 수캐 벨카와 암캐 스트렐카. 1957년 11월 3일 개의 역사에 길이 새겨질 이 날 스푸트니크 2호의 밀폐된 공간에 탑승한 암캐 라이카와 다르게 생환을 목적으로 발사된 스푸트니크 5호는 이 개 두 마리를 무사히 지구로 돌려보냈다. 지상에 있는 개들이 인공위성 안에 있는 라이카와 벨카, 스트렐카의 시선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봤다는 것은 책속에서나 하는 이야기겠지만 왠지 다른 피가 섞이고 각 세계로 흩어졌지만 어떤 유대감을 가지고 운명적으로 어떤 끈으로 이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딸이 의뢰인에게 인질로 잡히고 야쿠자는 러시아로 끊임없이 암살자를 보낸다. 급기야는 자신이 '지도에 실리지 않은 마을'로 무장을 한 채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딸을 구하러 오는 줄 알았더니 그 딸에게 총을 겨눌 줄이야. 이 여자애의 경호를 맡은 47호는 주인의 아버지를 물어 죽인다. 딸 또한 벨카를 죽인 아버지를 노려보며 "벨카를 죽였잖아" 하고 일본어로 말할 뿐 딱히 아버지로써 정을 느끼지 않는다. 전처의 자식, 그 전처를 자신의 손으로 해치운 비정한 남편. 노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을 인질로 삼은 노인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게 아닌 어느 새 벨카를 죽인 아버지가 적으로 대하는 딸.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의 이름을 "스트렐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그녀는 새로 태어난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인간들에 의해 개들은 훈련을 받으며 전쟁터에서 제 몫을 해낸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군견들. 개들의 족보를 따라가다 보면 어지럽긴 하지만 인간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려지는 개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로지 혈통,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이 가엾게 느껴진다.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끝까지 명령을 지키고 죽어가는 개들.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그렇게 죽어갔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짖을 수 있을까. 군견들의 눈으로 본 인간세상은 추악하기만 하다. 살아남기 위해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개들. 그 잔혹한 역사속에서 키타, 마사오와 마사루, 익스플로전의 후손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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