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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ㅣ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1943년 일본군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키스카 섬에서 철수할 때 4마리의 개들, 키타, 마사오와 마사루, 익스플로전을 버려두고 떠난다.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 중에 인간들은 안전을 위해 이 섬에서 전원 철수하고 개들은 남겨졌다.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제목만 봤을 땐 이 4마리의 개들이 이 섬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지냈는지 그 처절한 생존에 대해 쓰여진 줄 알았는데 인간의 삶과 역사속에서 이 4마리의 자손들이 살아간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따옴표 안에 있는 글들은 인간들에 대한 글, 따옴표가 없는 것은 개의 시각으로 쓴 글이다. 개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자손을 낳았는지 잊지 않게 세심하게 챙기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근데 저자는 인간의 일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무심한건지. 갑자기 나타난 노인, 그는 시베리아에서 개들을 훈련시키며 무엇을 하는가. 낯선자들은 왜 노인을 죽이려 하는가. 유일하게 내 눈길이 머물게 되는 이 노인은 일본 야쿠자의 딸을 인질로 잡고 러시아와 체첸을 상대로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가 이끄는대로 개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내가 속한 인간들의 세상에 많은 관심을 쏟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벨카. 중반쯤 읽어야 이 벨카의 존재를 만날 수 있다. 1960년 8월 19일 개 두마리가 하늘에 있었다. 스푸트니크 5호에 탑승하여 우주 비행을 하게 된 수캐 벨카와 암캐 스트렐카. 1957년 11월 3일 개의 역사에 길이 새겨질 이 날 스푸트니크 2호의 밀폐된 공간에 탑승한 암캐 라이카와 다르게 생환을 목적으로 발사된 스푸트니크 5호는 이 개 두 마리를 무사히 지구로 돌려보냈다. 지상에 있는 개들이 인공위성 안에 있는 라이카와 벨카, 스트렐카의 시선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봤다는 것은 책속에서나 하는 이야기겠지만 왠지 다른 피가 섞이고 각 세계로 흩어졌지만 어떤 유대감을 가지고 운명적으로 어떤 끈으로 이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딸이 의뢰인에게 인질로 잡히고 야쿠자는 러시아로 끊임없이 암살자를 보낸다. 급기야는 자신이 '지도에 실리지 않은 마을'로 무장을 한 채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딸을 구하러 오는 줄 알았더니 그 딸에게 총을 겨눌 줄이야. 이 여자애의 경호를 맡은 47호는 주인의 아버지를 물어 죽인다. 딸 또한 벨카를 죽인 아버지를 노려보며 "벨카를 죽였잖아" 하고 일본어로 말할 뿐 딱히 아버지로써 정을 느끼지 않는다. 전처의 자식, 그 전처를 자신의 손으로 해치운 비정한 남편. 노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을 인질로 삼은 노인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게 아닌 어느 새 벨카를 죽인 아버지가 적으로 대하는 딸.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의 이름을 "스트렐카"라고 불러달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그녀는 새로 태어난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인간들에 의해 개들은 훈련을 받으며 전쟁터에서 제 몫을 해낸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군견들. 개들의 족보를 따라가다 보면 어지럽긴 하지만 인간들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려지는 개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로지 혈통,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이 가엾게 느껴진다.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끝까지 명령을 지키고 죽어가는 개들.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그렇게 죽어갔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짖을 수 있을까. 군견들의 눈으로 본 인간세상은 추악하기만 하다. 살아남기 위해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개들. 그 잔혹한 역사속에서 키타, 마사오와 마사루, 익스플로전의 후손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