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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온통 암울한 이야기만 가득한 이 책의 제목이 "낙원'이다.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온다. 저자는 나에게 어떤 "낙원"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낙원"이 존재하기는 할까. '모방범'과 '낙원'을 읽고서야 크게 숨을 몰아쉰다. 긴 여정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가는게 쉽지 않았다. 오로지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의존하여, 그녀가 풀어놓은 퍼즐들을 나 스스로 맞출 능력도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그녀가 말해주기만을 바라며 책장만 넘기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었다.
'낙원'은 '모방범'에서 연쇄살인범에 대항한 마에하타 시게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꼭 시게코가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솔직히 나는 아미가와를 잡기 위해 데스크를 담당한 다케가미가 '낙원'을 이끌어 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 해 보았다. 그렇게 기대하기도 했었다. 일단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시게코가 주인공이 되면 전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흐름이 늘어지지만 경찰인 다케가미가 사건을 풀어간다면 좀 더 긴박하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아미카와('모방범'에서는 아미가와라고 했는데 '낙원'에서는 아미카와로 나온다.)가 잡힌 후 9년이 흐른 지금,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한 '낙원'이 나올 이유가 있었을까. '모방범'의 속편으로 보여지지도 않는 이 책 '낙원'은 모방범에서 아미카와를 잡는데 큰 활약을 한 시게코가 여기에 등장해야만 하는 이유로 9년 전 범인들이 아지트로 삼았던 '산장'을 히토시가 죽기 전에 그린 것으로 설정하여 그 때의 악몽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르포라이터 시게코에게 도시코라는 한 중년여인이 찾아와 아들 히토시가 죽기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며 사건이 시작된다. 최근 부모에 의해 살해되어 16년간 마루 밑에 묻혀 있었던 도이자키 아카네의 사건을 그림으로 남겨 놓은 히토시. 이 아이는 9년 전 사건의 아지트였던 산장의 그림도 그려놓았다. 13개의 손과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동 페리뇽 병이 이 '산장'의 정원에 묻혀 있는 그림, 이 그림이 시게코를 끌어당기게 된다. 히토시는 모든 사건 사고들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것일까.
저자는 '모방범'에서 범인을 죽여 독자들을 어이없게 하더니 이번에도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히토시를 죽여 사건에 가까이 다가서기까지 오로지 시게코가 관련 인물들과 만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지루하다. 시게코가 왜 히토시의 문제를 알아보는지,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16년전에 살해 당한 아카네 사건을 파헤쳐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럽게 만든다. 뒤로 갈수록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긴 하지만 이것이 왜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낙원'이란 책이 나왔는지 그 의미를 퇴색시켜 버리는 것 같다.
이 책은 '모방범' 그 9년 후의 이야기가 아닌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형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모방범'에서 아미카와, 히로미가 저지른 살인 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나거나 그 때 관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런 내용이 아니라서 많이 실망한 모양이다.
히토시의 이야기만으로 전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비록 히토시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16년 전에 죽은 아카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카네의 가족들을 히토시가 만난 적이 있는지 알아내야 했겠지만 엉뚱한 이야기로 빠져버린 느낌이 든다. 점점 이야기가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아카네의 죽음을 아는 또 다른 인물을 히토시가 만난 적이 있다는 과정을 세우고 사건에 깊이 관계하게 되는 시게코. 그녀는 이 사건을 파헤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미 시효가 끝났는데 말이다.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사건임을 알게 되어 시게코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지만 참 허탈하지 않은가. 아미카와 같은 인물이 또 하나 있다며 사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려 하지만 그저 가족의 아픔만이 전해져 이 책을 읽는 것이 내내 불편했다.
시게코는 이 사건을 알아내어 아미카와의 손에서 벗어났을까?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아니 적어도 평생 함께 살아갈 용기가 생겼을까. 9년전 사건에서 패배했다는 자괴감에 이 사건에 대해 글 한줄 적지 못했던 시게코, 왜 글을 쓰지 못했는지 오롯이 이해할 수 없지만 시게코가 '낙원'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유는 이것일게다, 9년 전 사건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낙원'이 탄생하게 된 이유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그래서 많이 아쉬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