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신혼여행
고스기 겐지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문학의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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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등장하는 11편의 단편들속에 내가 아는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뿐이었다. 일본소설 작가 중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전면에 내세운 '기묘한 신혼여행'은 여타의 단편들에 비해 그 내용이 조금 짧아 아쉽게 느껴지고 여기에 등장하는 다른 단편들은 그 짜임새와 전개 방식들이 너무 허술해서 실망스럽다. 물론 짧은 글에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겠지만 강렬한 느낌을 전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단편 '마지막 꽃다발'은 갑자기 이야기가 끊어진다. 사랑하는 여자 에리카가 미나미를 죽이고 뜨거운 물에 얼굴과 가슴까지 화상을 입은 이야기 뒤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꽃 가게의 주임, 고헤이와의 결혼식을 하는 날까지 그녀의 꽃 가게로 이상한 선물들이 도착한다. 넥타이, 벨트, 넥타이 핀 등 고헤이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싸구려 선물들이 매일 도착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나는 물론 이쯤에서 자주 찾아와서 꽃을 사는 야마네씨가 범인이라 생각했지만 결혼식 당일 벌어진 사건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조금 생뚱맞다고 해야 할까. 연결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단편 '붉은 강'에서 교도소에 막 출소한 무가이를 집으로 데려와 돌봐주는 가자미 변호사의 이야기는 겉으로야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만 점점 깊이있게 파고들어 보면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없애주는 사람을 변호함으로써 사회에서는 존경을 받지만 섬뜩한 인물로 생각된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범인의 변호를 맡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감정이 없거나 아무리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해도 오히려 이런 모습이 무섭게 다가온다. 명확하게 가자미 변호사가 사건에 관계 되었다고 말하진 않지만 경찰들이 짐작하는대로 나는 가자미가 아내를 죽이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나오는 단편들은 이렇듯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탄탄한 구성으로 나를 끌어당기지 못하고 있다. 단편 '겹쳐서 두 개'는 여자의 상반신에 남자의 하반신을 붙여놓은 시체를 보고 범인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 이야기에도 엉성한 점들이 많다. 카메라맨이 이 방을 한시간이나 감시하고 있었고 들어간 사람이 죽은 마리에의 남편인 이와미 밖에 없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 방을 나선 사람이 없다면 누구든 이와미를 의심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여자의 하반신과 남자의 상반신이 어디에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 문제조차 가쓰라기의 이론에 따라가다 보면 답은 금세 나오게 된다.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트릭이 눈에 보이는게 아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구성이 약하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하지가 않아 너무 산만하다. 결혼식에 관련된 단편들이 많은 것을 보면 가장 행복한 때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비슷한 소재들로 인해 조금 지겨워지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기묘한 신혼여행'조차 그가 늘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람냄새 나는 글이 아니라 그저 기묘한 신혼여행에 어울리는 글을 써 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 내가 추리소설이라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서로 다른 빛깔의 글들을 접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나를 끌어당기지 못하는 글들로 인해 실망만 하게 된다. 한 편의 짧은 단편이 후에 대단한 장편으로 살아날 수 있을텐데,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실려 있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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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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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절 이야기이기도 하고 권상우 역을 맡았던 현수는 '동순', 이정진 역의 우식은 '영민', 한가인 역의 은주가 '소림'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머저리 클럽을 대표하는 사람이 영민이긴 하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우식처럼 폭력적이진 않다. 떼지어 덤비는 아이들에게 코피 터지도록 맞지만 비겁하다며 일대 일 도전장을 내밀정도의 근성을 가지고 있는 멋진 녀석이다.

 

검정색 가방에 교복과 모자까지 쓴 이 시절엔 빵집에서 빵을 시켜놓고 마주 앉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자주 볼 수 있지만 빵집에는 미성년자들이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라도 보면 몇 시간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규칙 위반에 해당된다. 아마 남녀가 만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어 그렇겠지만 빵집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니, 여기에서 나는 세대차이를 느끼게 된다. 예전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라고 말할 때면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낯 간지러워서 세대차이에 대해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머저리 클럽'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그 시절이 부럽다.

 

'머저리 클럽'과 '샛별 클럽'과의 만남, 정기적으로 만나 독서토론을 하지만 역시나 초등학교를 졸업한이래 여자와는 말도 나눠보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은 참 순수하게 다가온다. 공부를 함께 하고 건전한 교제를 하는 아이들, "미지의 여인에게"란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동순의 모습까지, 밤 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며 시 한수 읊으며 개똥철학을 논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덩달아 나도 옛 기억을 추억하며 손글씨로 편지를 주고 받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요즘엔 핸드폰을 안가진 사람들이 없어 언제든 원할때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가끔 소식 한 줄 전해주는 친구의 편지를 받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데 옛 일을 추억하는 나를 보며 '나도 늙는구나'란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먹을 것을 잔뜩 먹고 돈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머저리 클럽'의 아이들, 한 여자를 두고 경쟁을 한 동순과 영민, 물론 동순이가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뒤에 몰래 만나 온 영민과 소림이가 괘씸하긴 하지만 뒤에 동순도 정말 좋아하는 승혜를 만나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가끔 동순의 언저리를 맴도는 소림이가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처음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동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싶다.

 

동년배이지만 샛별 클럽과 머저리 클럽 아이들은 서로 존중하여 높임말을 쓴다. 꼭 어른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속에서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웃음이 나지만 이런 모습이 어찌나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이 우정 변치 말고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고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군대를 가고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가지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까지 정해진 순서에 의해 살아가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을 생각하며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오지 않을까. 라디오를 들으며 좋아하는 여학생을 생각하는 이마에 여드름 투성이의 아이들이 어느 새 어른이 되어 어깨에 한 가득 짐을 올려둔 채 세상을 살아갈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씁쓸하지만 그런 것이 인생이니, 때론 이것을 행복이라 부르며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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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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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마리-콩스탕스 G. 여자친구 프랑수아즈는 마리-콩스탕스의 목소리가 멋있다며 가정 방문 독서를 해 준다고 광고를 내어 보는게 어떠냐고 한다. 마리-콩스탕스의 말대로 카세트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세상이고 보면 효용성이 없는 일로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 제안에 솔깃하여 광고를 내는 그녀, 요즘 같았으면 별 이상한 전화에 시달렸을텐데 다행히 그녀가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편지가 계속 오는 것을 보니 이 일을 직업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려나 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자주 어깨가 아프기에 누가 나 대신 책을 읽어주고 나는 편안한 자세로 듣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보통 책을 읽어주는 일이라고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시설이나 거동이 힘든 노인들, 아파서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도 휠체어를 탄 에릭이 그녀의 첫 번째 고객이 된다. 마리-콩스탕스의 문제라면 목소리만 멋지고 이 일에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노스승 롤랑 소라가 이르는대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책 모파상의 '손'을 에릭에게 읽어 주어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에 이르니 무작정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닌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의 고객들 중 그 누구도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필요한 사람들로 보이진 않는다. '미셸 도트랑',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어린 소녀 '클로렝드', '뒤메닐 장군' 부인은 그저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성'에 눈 뜨는 에릭이 원하는대로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리기도 하고 육체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미셸의 요구를 들어주는 마리-콩스탕스의 행동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스스로가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아닌 창녀나 하녀처럼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의 손길이 자신의 몸에 이르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셸 스스로 책을 읽게끔 유도하는 것을 보며 진정 그녀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남편에게 미셸에 대한 의논을 하지만 남편조차 그녀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아 둬"라고 할 뿐, 두 사람의 육체적인 관계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인다. 이것이 문화적인 차이란 것인가. 나는 이 부부의 관계 또한 이해가 가지 않으니 책 읽는게 곤혹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의 인생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닌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그들이 그녀를 꼭 '책을 읽어주는 여자'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도 내 문제를 이야기 했을 때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에 나의 집에 '책을 읽어주는 여자'로 방문을 하게 되면 책 보다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더 즐거워 할 것이다. 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책은 나에게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다가오게 된다. 생명을 가지고 나의 마음과 머릿속에 머물게 됨으로써 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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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타임
사토 다카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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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수채화 같은 '서머타임'.

'서머타임'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첫 사랑의 설레이는 감정을 느껴본다. 슌과 고이치, 가나가 화자가 되어 세월이 흐르며 그들이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같은 사건임에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실은 슌이 처음 고이치를 만나는 장면이 담긴 '서머타임'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고이치가 이야기 하는 '9월의 비'와 가나가 들려주는 '화이트 피아노'는 마음에 크게 머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슌은 고이치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이치와 누나 가나 사이에 끼인 듯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자기가 아닌 누나를 더 좋아하는 고이치에게 서운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미 서로가 첫 사랑이라고 부르는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 고이치와 가나. 이들의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은 서로의 가슴속에 박혀 슬픔이 되어 버린다.

 

한 계절을 다 보내지 않은 고이치와 가나의 만남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첫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사고로 왼쪽 팔을 잃은 고이치,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지 못하는 것 만큼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에 공포심을 느낀다. 가냘픈 손으로 고이치가 자전거를 타는 것을 도와주는 가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험한꼴을 보여주기 싫은 고이치는 "그만 하겠다"는 말로 가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이것이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다. 헤어진 후 2년이 지나도 고이치를 잊지 못하는 가나,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가나가 유일하게 옷이 더러워지고 다쳐도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상대가 고이치였다. 가나가 햇살 아래 고이치와 함께 피아노를 쳤던 그 장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이치와 가나의 이야기 보다 나는 슌과 고이치의 만남이 더 좋다. 슌에게는 고이치에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이 생긴다. 피아노 배우기. 오히려 고이치를 좋아하는 가나보다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운다. 이래서 단편들에 대한 느낌이 뒤로 갈 수록 아련한 느낌은 점점 퇴색되는 모양이다. 첫 사랑의 설레는 느낌은 고이치의 마음에도, 가나의 마음에도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서머타임'이 들려올 때면 생각나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서머타임', 나는 이 곡을 들으면 피아노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는 슌의 모습, 고이치에게 피아노를 들려주고 싶지만 차마 자신있게 들려주지 못하는 부끄러움, 이제는 자전거를 잘 타게 된 고이치, 그가 몰고 가는 자전거의 뒤에 앉아 있는 가나, 이런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철쭉들을 꺾어 집에까지 가는 길을 꽃길로 만들던 가나, 그 길을 망가뜨린 슌이 꽃잎들을 잘게잘게 찢어 욕조에 뿌리던 모습, 이 장면이 유일하게 이 '서머타임'의 책에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가나의 심리상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슌의 생각과 다르게 나는 슌과 고이치의 사이에 가나가 들어서 훼방놓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이 수채화 같은 '서머타임'을 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삶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니까. 다만 이런 느낌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살아가는데 힘이 나기는 할거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나의 심술이 자꾸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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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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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스센스'를 보지 않았다면 더 섬뜩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시커먼 그림자 같은 존재 '바다흐'와 혼령을 보는 오드, 처음엔 할로를 향해 "지금 네 주머니에 그 애의 피가 들어 있지?"란 말로 그를 움찔하게 만드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페니 칼리스토의 목에 생긴 깊은 상처 이야기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오드의 손을 잡고 있던 페니가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혼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었다면 오드가 보는 사람들이 유령인지, 살아 숨쉬는 나와 같은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아마도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피코문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오드의 곁을 맴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드가 포터 서장의 집에 간 날 엘비스는 물 위를 왔다갔다 하며 삿대질을 하고 그 뒤엔 리제티 옆에 앉아 가슴을 훔쳐보며 울기도 한다. 상상해 보라. 오드의 눈에만 보이는 엘비스의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는가. 다른 혼령인 톰 제드가 잘린 왼쪽 팔을 들고 등을 긁고 코를 후비거나 잘린 손을 흔드는 모습은 끔찍해야 마땅하나 이렇듯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영혼들을 만나게 되면 그 익살극에 잠깐 동안은 즐거울 것이다. 역시 죽은 사람이니 슬퍼해야 할텐데 말이다.

 

평범한 죽음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바다흐, 자신이 근무하는 식당에 바다흐들과 함께 나타난 로버트슨을 보며 오드는 아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한다. 로버트슨을 미행하고 그의 집에 잠입하기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오드가 아무일 없이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뒤에 오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로버트슨, 오드가 자신의 집을 뒤진걸 알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알아냈을까. 오드가 사랑하는 스토미가 괜한 걱정을 한다며 로버트슨에 대해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마음이 불안해진다. 거기다 엘비스가 오드의 차에서 내릴 때 아무말 없이 바라보며 오드의 손을 두 번 잡아줬지 않은가. 불길한 징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로버트슨의 집에는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자료가 넘쳐났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파일엔 8월 15일이라는 날짜가 있고 아무 것도 적혀져 있지 않았다. 이것을 보며 오드는 이 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자신이 직접 꾼 볼링장 직원들의 죽음, 비올라가 자신이 죽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 사건이 점점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비올라의 죽음이 예견되어 있었건만 오드는 그녀가 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스토미의 일은 오드가 운명을 거스른 대가에 대한 벌이었을까. 후반에 이르러 이것이 반전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그 앞에 복선이 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다만 로버트슨이 오드의 집 욕조에서 죽어 있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로버트슨을 막아야만 한다고 생각한 오드에게 이미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죄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슨이 범인이 아니었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그 시체를 다른 곳에 옮기는 오드의 모습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로버트슨이 저지를 행동을 미리 알고 죽였다? 오드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오드를 따라다녔던 로버트슨은 이미 그 때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로버트슨과 함께 한 공범을 찾아야 이 마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솔직히 오드는 너무도 쉽게 공범을 찾아낸다. 사고를 막기 위해 찾아간 장소에서 또 다른 공범들도 알게 되어 사고 자체를 막을 순 없지만 그 피해를 줄이는 오드를 보며 역시 운명이란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끝은 같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드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살인예언자',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까지 전개가 느리지만 늘 죽음과 함께 하는 그의 인생을 통해 삶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경찰의 큰 도움없이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는 오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조금 긴박감이 떨어진다. 예정된 살인을 막기 위해 그 제한된 시간속에 움직이는 오드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그가 이 사고를 통해 잃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정도의 피해로 끝나게 된 것을 안도해야 하리라. 하지만 왜 그에게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문제를 생각하면 안쓰러워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예정된 살인을 막으려 했지만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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