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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타임
사토 다카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서머타임'.
'서머타임'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첫 사랑의 설레이는 감정을 느껴본다. 슌과 고이치, 가나가 화자가 되어 세월이 흐르며 그들이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같은 사건임에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실은 슌이 처음 고이치를 만나는 장면이 담긴 '서머타임' 단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고이치가 이야기 하는 '9월의 비'와 가나가 들려주는 '화이트 피아노'는 마음에 크게 머물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슌은 고이치를 참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이치와 누나 가나 사이에 끼인 듯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자기가 아닌 누나를 더 좋아하는 고이치에게 서운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미 서로가 첫 사랑이라고 부르는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 고이치와 가나. 이들의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은 서로의 가슴속에 박혀 슬픔이 되어 버린다.
한 계절을 다 보내지 않은 고이치와 가나의 만남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첫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사고로 왼쪽 팔을 잃은 고이치,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지 못하는 것 만큼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에 공포심을 느낀다. 가냘픈 손으로 고이치가 자전거를 타는 것을 도와주는 가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험한꼴을 보여주기 싫은 고이치는 "그만 하겠다"는 말로 가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이것이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다. 헤어진 후 2년이 지나도 고이치를 잊지 못하는 가나,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가나가 유일하게 옷이 더러워지고 다쳐도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상대가 고이치였다. 가나가 햇살 아래 고이치와 함께 피아노를 쳤던 그 장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고이치와 가나의 이야기 보다 나는 슌과 고이치의 만남이 더 좋다. 슌에게는 고이치에게 다가가기 위한 목적이 생긴다. 피아노 배우기. 오히려 고이치를 좋아하는 가나보다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운다. 이래서 단편들에 대한 느낌이 뒤로 갈 수록 아련한 느낌은 점점 퇴색되는 모양이다. 첫 사랑의 설레는 느낌은 고이치의 마음에도, 가나의 마음에도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서머타임'이 들려올 때면 생각나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서머타임', 나는 이 곡을 들으면 피아노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는 슌의 모습, 고이치에게 피아노를 들려주고 싶지만 차마 자신있게 들려주지 못하는 부끄러움, 이제는 자전거를 잘 타게 된 고이치, 그가 몰고 가는 자전거의 뒤에 앉아 있는 가나, 이런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철쭉들을 꺾어 집에까지 가는 길을 꽃길로 만들던 가나, 그 길을 망가뜨린 슌이 꽃잎들을 잘게잘게 찢어 욕조에 뿌리던 모습, 이 장면이 유일하게 이 '서머타임'의 책에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가나의 심리상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슌의 생각과 다르게 나는 슌과 고이치의 사이에 가나가 들어서 훼방놓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이 수채화 같은 '서머타임'을 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삶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니까. 다만 이런 느낌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살아가는데 힘이 나기는 할거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나의 심술이 자꾸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