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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그녀의 이름은 마리-콩스탕스 G. 여자친구 프랑수아즈는 마리-콩스탕스의 목소리가 멋있다며 가정 방문 독서를 해 준다고 광고를 내어 보는게 어떠냐고 한다. 마리-콩스탕스의 말대로 카세트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세상이고 보면 효용성이 없는 일로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 제안에 솔깃하여 광고를 내는 그녀, 요즘 같았으면 별 이상한 전화에 시달렸을텐데 다행히 그녀가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편지가 계속 오는 것을 보니 이 일을 직업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려나 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자주 어깨가 아프기에 누가 나 대신 책을 읽어주고 나는 편안한 자세로 듣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보통 책을 읽어주는 일이라고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시설이나 거동이 힘든 노인들, 아파서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도 휠체어를 탄 에릭이 그녀의 첫 번째 고객이 된다. 마리-콩스탕스의 문제라면 목소리만 멋지고 이 일에 아무런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노스승 롤랑 소라가 이르는대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책 모파상의 '손'을 에릭에게 읽어 주어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에 이르니 무작정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닌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의 고객들 중 그 누구도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필요한 사람들로 보이진 않는다. '미셸 도트랑', 엄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어린 소녀 '클로렝드', '뒤메닐 장군' 부인은 그저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성'에 눈 뜨는 에릭이 원하는대로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리기도 하고 육체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미셸의 요구를 들어주는 마리-콩스탕스의 행동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스스로가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아닌 창녀나 하녀처럼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의 손길이 자신의 몸에 이르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셸 스스로 책을 읽게끔 유도하는 것을 보며 진정 그녀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남편에게 미셸에 대한 의논을 하지만 남편조차 그녀가 알아서 하길 바란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알아 둬"라고 할 뿐, 두 사람의 육체적인 관계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인다. 이것이 문화적인 차이란 것인가. 나는 이 부부의 관계 또한 이해가 가지 않으니 책 읽는게 곤혹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의 인생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닌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그들이 그녀를 꼭 '책을 읽어주는 여자'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도 내 문제를 이야기 했을 때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에 나의 집에 '책을 읽어주는 여자'로 방문을 하게 되면 책 보다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더 즐거워 할 것이다. 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 때부터 책은 나에게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다가오게 된다. 생명을 가지고 나의 마음과 머릿속에 머물게 됨으로써 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