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기억 속으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어두운 기억 속으로 ㅣ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캐서린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발코니 문과 그 너머의 정원을 내다보았다. 숨을 죽이며 리의 흔적을 찾는 그녀의 곁에서 나도 숨조차 크게 쉴 수가 없다. 과거 리와 함께 한 캐서린과 현재의 캐서린을 지켜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문단속을 하고 리의 흔적이 있지는 않은지 집 안을 확인하는 캐서린을 보며 과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그 곁으로 다가가는 것은 두려울 정도로 나를 긴장시킨다. 리가 처음 캐서린을 만난 날,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캐서린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녀에게 접근했는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그녀에게 다가왔는지, 리의 시선으로 캐서린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리의 숨결 만으로도 긴장이 될 정도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진다. 이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2001년 6월 21일 목요일 나오미 베넷이 살해당한다. 살인범은 그녀의 신원을 알 수 없게 시체를 잔인하게 처리한다. 연쇄살인사건을 이야기의 축으로 끌고 나갈 수도 있었으나 '어두운 기억속으로'의 저자 엘리자베스 헤인스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세워 폭력을 일삼는 리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캐서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들을 흔들어 놓았다. 사랑이라 이름 붙였지만 잔인한 폭력 뿐이었던 리와 캐서린의 관계는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만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끔찍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리의 캐서린을 향한 사랑이 폭력으로 변했을까. 아니 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기나 했었는지 의문이 드니 언제부터 캐서린에게 폭력을 휘둘렀는가 묻는 것이 맞을 것이다. 육체관계 도중 리가 캐서린의 머리채를 잡았을 때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캐서린이 그와의 관계를 끝냈었더라면, 아니 리와의 이별 후 다시 그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 헤어졌던 것이 리의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사라진다해도 그 누구도 찾지 않게 철저하게 고립시켰던 리가 아니었던가. 처음부터 리는 캐서린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캐서린을 소유하기 위해 대체 언제부터 계획한 것인지 알게 되는 것조차 무섭다. 첫 만남부터였겠지. 캐서린과 리가 처음 만난 날, 그녀가 입고 있던 새빨간 드레스에 시선을 뒀던 리, 캐서린은 그때 그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하고 수천 번을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이 생각들을 캐서린은 얼마나 절규하며 떠올렸을까.
현재도 미래도 과거의 '리'로 인해 캐서린의 삶은 무너져 간다. 스튜어트가 없었다면 리와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으로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지만 캐서린은 리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창문이 잠겼는지, 문은 잠겨 있는지 몇 번이나 점검을 하고 집 안의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캐서린의 행동이 강박증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다. 리가 다녀갔다는 것을,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이제 캐서린은 리와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캐서린이 스튜어트의 뒤에 숨어 리와의 만남을 회피하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스튜어트에 의해 해결이 되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온 흔한 책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카서린은 리가 죽지 않는 한, 리가 죽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공포심과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주문처럼 허공에 뱉어낸 단어 "나오미". "캐서린, 너는 절대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문과 같았던 이 말을 평생 떨쳐내기 위해 싸워야하겠지만 이제 캐서린은 강하다. 친구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 스튜어트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하지 못할 것은 없다. 필요하다면 리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강해졌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한 그녀는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