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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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책장을 넘긴 나 "엇, 표지를 보면 여행에 관한 책 같은데 자기계발서였어?"하고 깜짝놀랬다. 부랴부랴 책 정보를 검색해 보고 다카하시 아유무의 '첫머리에'를 찾아 읽었다.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듯이 여행에 대한 감흥을 적은 글인가 보다.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세계여행정보/기행이라고 분류가 되어 있지만 자기계발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쉼 없이 흘러간 일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니까. 시골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시' 한수 절로 나오는 분위기에 취하듯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그의 여행에 오롯이 몰입은 되지 않지만 그 때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글로 쓴 이유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느낌의 글들을 통해 여행정보를 얻거나 한비야가 사람들 발길 닿지 않는 오지를 찾아 다니며 쓴 여행기 같은 글의 맛을 볼 순 없어도 잠시동안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원한 것은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간 사람들의 여행기여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쓴 '시'에 젖어들어 저자의 감성을 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웠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우리 이웃 사람들의 모습인 것도 같고, 눈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 나도 그 곳에 가고 싶어진다.

 

이 책은 왼쪽엔 한국어, 오른쪽엔 영어로 되어 있다.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들과 다르게 저자의 손길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의 책이다. 저자와 저자의 아내 사야카가 함께 한 길 위엔 이제 두 사람의 발자취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자취가 남아 있겠지. 일상속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던 부부가 힘든 여행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넓은 세상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같은 곳을 여행한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순 없을 것이다. 똑같은 감흥 또한 없을 것이다. 나에게 "넌 어떨 것 같냐?"고 묻는다면 똑같은 풍경을 봐도 "아, 좋다 좋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떠랴. 이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들어 있는데, 꼭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할 물음을 제시할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 위로 삼아 보자고.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저자 다카하시 야유무에게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유명한 관광명소를 다니며 사진에 담아오는 추억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담아 왔으니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만을 따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걸어나간 그들이 부럽다. 부부가 걸어본 길을 나는 걸을 수 없을지라도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길 "세상 최고의 개방감이란 별이 총총한 하늘 밑 초원에서 똥 누기"라는데 나는 살아가면서 이 개방감을 누릴 수 있을까. 누가 하라고 등 떠밀어도 못할 것 같은데,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일까. 내가 해보지 못했으니 검증은 못하지만 그 느낌이 어떨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유로움이 발목을 잡아 계속 걸어가게 만들었겠지.

 

내가 있는 이 곳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가면 내가 지키고자 했던 많은 것들이 그저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도 그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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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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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책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이후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사람 마음을 참 따뜻하게 만드는 작가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포르토벨로의 마녀"부터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나의 세계엔 벽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마 "연금술사"를 읽고 난후 책이 나올때마다 큰 기대를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뭐냐. "11분"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솔직히 읽는내내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다면 "옛날 옛적에...."로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리아를 생각하여 "옛날 옛적에...."로 시작한건 좋은데 이렇게 시작만하면 우화나 동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브라질에서 시골 처녀처럼 순박하게 자란 마리아가 리우데자네이루 여행 중 겪게 되는 일들을 무엇이든 "모험"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몸을 팔아 하루에 천프랑을 얻고 이젠 직업을 '창녀'로 일년간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이곳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행동을 하기까지, 소위 밑바닥까지 내려간 창녀 마리아를 통해 '내면의 빛'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를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지금 멈추고 브라질로 돌아간다면 직물 공장의 주인과 만나 결혼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게 싫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리아, 코파카바나에서 '특별손님'을 맞아 사디즘에 심취하여 자신의 내면의 빛을 본 랄프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사디즘에 몰입하려는 그녀를 보며 그래도 백마탄 왕자님인 랄프와 사랑을 이루고픈 소망을 가진 마리아의 행동에 역겨움까지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남자가 이렇게 완벽하게 여자 입장에 서서 쓴 글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여자의 심리, 내면을 잘 모르고 쓴 글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러이러할 것이다"고 정의 내려진 책들을 참고 삼아 쓴 글일 것이다. 노골적인 성애 묘사, 마리아가 쓰는 일기를 통해 보여주는 내면, 어느것 하나 공감하고 동조하게 되는 것이 없었으니까. 책 제목인 "11분"조차 나는 이 제목을 통해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지 않을까 깊이 생각해 봤다는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마리아가 남자와 관계하는 시간인 "11분" 이것으로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결말로만 본다면 마리아가 그렇게나 바라던 해피엔드다. 먹고 살기 힘들어 선택한 것이 아닌 오로지 새로운 삶을 위해 제네바에서 창녀로 일한 마리아, 그 덕에 랄프를 만날 수 있었으니 세상 일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연필을 빌려달라"는 소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 영원히 그 기회를 잃은 마리아는 무슨 일을 하든 잃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고자 '모험'이라는 이유 아래 몸을 팔고 손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책을 읽고 노력을 한다.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서평을 쓰면서도 마리아의 행동에 왜이리 짜증이 나는건지.

 

보통 사람을 통해 그 '내면의 빛'을 보는 것과 '창녀'의 '내면의 빛'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뭔가 더 큰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심오한 철학적인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걷지 말고 춤추듯 살아라"는 명제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길 원했다면 이 책은 많은 것이 부족하다. 한 처녀의 성 입문과정을 통해 무엇을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는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작가만의 세상에 갇혀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파울로 코엘료와 만났다면 그의 다음책을 과연 읽었을까. 아직은 기대할 것이 많은 작가이기에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작가와 또 만날 생각이지만 "11분"은 결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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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Social Shift Series 1
존 엘킹턴.파멜라 하티건 지음, 강성구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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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책 제목을 보고 의문을 품지 않을 이가 있을까. 사람들에게 "넌 참 이성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칭찬일텐데 이 책에서는 소수의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손에 모든 진보가 달려있다고 하다니. 이 무슨 궤변인가 싶겠지만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키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 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저자는 내가 알고 있던 이성적, 비이성적 단어의 뜻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게 한뒤 나를 이끌어, 역시 나는 "세상에 나를 적응시키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에 썩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거기다 책에 실려있는 글들이 전문적으로 기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가나 정치가들도 100%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지라 일반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많이 힘들었음을 밝혀둔다.

 

비이성적 사람들의 대표적 그룹은 바로 사회환경적 기업가라고 한다. 이들은 기업의 활동범위 안에서 문제해결점을 찾아 사회문제에 가장 근접해 간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기업을 세우고 어떤 결과를 얻는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고 영리적인 이윤과 자선사업 활동을 통해 이 사회를 움직여가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길 원한다. 사회를 혁신해나가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은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하고 왜 그들이 필요한지 역설한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공들,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은 점점 다변화 되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성적, 비이성적 개념때문에 읽는 동안 문장사이에 갇힌 듯 갑갑한 느낌을 받았지만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론을 배우는 듯 신선했다. 그러나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개념조차 인식하는 것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이성적인 사람들 가까이에 다가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이런 이론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난 역시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그룹에 낄 수 없겠구나 하는 자괴감을 가기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힘에 이끌려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차피 세상은 몇몇 사람들의 힘에 의해 돌아가고 우리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사이에 끼여 그저 이끄는대로 갈 수 밖에 없을테니까.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이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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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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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슴 두근 거리는 긴장감을 느끼고 손에 땀을 쥐게 한 법정 스릴러 책을 만나본게 언제였던가. 불의에 무릎꿇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변호사 마이클 할러,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들던 그가 두 건의 살인사건을 위해 가족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으니 이전에 정의롭지 못했든, 이후에 또 불의와 타협하더라도 그 일들은 잠시 덮어두도록 하자.

 

나도 처음에 마이클처럼 레지나 캄포를 강간하고 죽이려한 범인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루이스 룰레를 무고한 시민으로 보았다. 여자의 직업이 창녀라는 이유를 차치하고 한번도 범죄에 연루된적이 없는 루이스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후 깨어났을 때 현장에 온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루이스의 증언은 그가 결백하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부끄럽지만 작가도 독자들이 이렇듯 자신의 의도대로 속아주기를 바랬을테니 나의 무지함을 누구든 탓할 순 없을 것이다.

 

분명 루이스 룰레를 변호하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것은 살해된 마사 렌테리아의 사건과도 관련이 있어 마이클은 마사 렌테리아를 죽인 살인범으로 죄가 없는 자신의 의뢰인 지저스 메넨데즈를 교도소에 수감시켰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수가 없게 되었다. 결백한 의뢰인을 교도소로 보냈다는 자책감, 늘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 현실로 닥치고야 말았다. 이제 마이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사 렌테리아를 죽인 진범을 잡아 지저스 메넨데즈를 교도소에서 나오게 하는 것과 루이스 룰레를 무죄 판결을 받도록 하는 일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은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죄가 있어 잡혔지만 정당한 방법에 의해 범인을 체포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놓아줘야 하는 현실과 분명 살인을 한 범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변호사의 배심원을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과 증거를 깨부수는 또 다른 증거 앞에서 범인은 시민들이 활보하는 거리로 유유히 빠져나가니 내가 아무리 주인공인 마이클 할러에게 마음이 기울어진다고 해도 돈이라면 무조건 범인의 편을 들어 형량을 낮추고 검사와 거래하는 그를 보는 것은 역시나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마이클 할러가 루이스 룰레 사건에서 승소하기를 바라는 심리는 뭐란 말인가. 마이클 할러가 배심원을 겨냥해 레지나 캄포가 창녀로 몸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인상을 준 심리전에 나도 넘어간 것일까. 창녀란 직업은 나의 눈도 가려 버렸다.

 

피해자가 레지나 캄포이건만 오로지 이 사건의 촛점은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루이스 룰레에게 맞춰져있어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내내 떨쳐지지 않는데 이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법정안에서의 드라마틱한 지적인 두뇌싸움에 레지나는 또 한번 희생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죄를 지었다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 돈만 있으면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현실이 짜증날 정도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정의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고 사회가 바뀌진 않겠지만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유를 보장받는 세상에서 어찌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는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정당한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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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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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지 못해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몰랐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들이 모여 이렇듯 잔잔한 일상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니. 평범하지도 않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행복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인 차이때문인지 그들이 엄마 '보니 그레이프'를 떠나 보내는 방식에는 거북함을 느꼈다. 지적 장애아 어니의 순수한 모습에 웃음짓고 뭉클한 감동 또한 받았는데 엄마를 떠나 보내는 의식을 보는 것이 내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그 이유를 이해 못할바는 아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엄마는 엄마니까. 타인에게 비춰질 엄마의 모습을 생각한 길버트의 행동에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것을 엄마가 원했을까,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식탐을 줄이지 못해 날로 뚱뚱해지는 엄마의 모습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 정도다. 굶어 죽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길버트, 하지만 그의 마음엔 엄마에 대한 사랑 또한 자리잡고 있어 마음을 전하지 못한채 갑작스럽게 엄마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니가 열 여덟살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매일 말하던 엄마는 그 소원을 이룬다. 나는 읽는내내 어니가 죽기라도 할까봐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어니의 열 여덟살 생일을 기다렸던지 보니가 죽었을 때 잠깐 숨을 멈출정도로 놀랐었다. 어니의 생일날에는 목을 매고 자살한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형 래리의 아픈 마음도 녹고, 이 집을 탈출하기만을 꿈꾸던 길버트도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왜 불행은 늘 행복한 시간에만 오는지, 이제야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데, 엄마가 계단을 올라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마음이 아프다.

 

마을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엄마 보니가 왜 그렇게 음식을 먹어댔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리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봤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도 완전한 이유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슨 이유로, 가족들에게 짐이 된채 이렇게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먹었던 것일까. 이런 그녀도 집 밖을 나갔던 적이 있었으니 어니가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와 어니의 생일을 위해 머리를 하기 위해 미장원에 갔을 때였다. 먹기만 하는 엄마인줄 알았는데 아들이 잡혀갔다는 말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어니를 데려오다니, 모자란 아들이지만 어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일하고 있는 엘렌까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어니에게 가는 엄마, 정말 위풍당당하지 않은가. 아들을 위해 나서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까지 뭉클했다. 그런 그녀가 어니보다 더 오래 살아줬어야 했는데 그 뒤로 어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조금 아쉽다. 보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길버트 그레이프', 영화에서는 책에서 보여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전해줬을지도 모르겠다.

 

지적 장애가 어니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닌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어니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그레이프 가족들의 이야기로 내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자살한 아빠가 이런 어니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안됐다는 생각도 해보고, 뚱보 엄마가 어니가 나이들어 가는 것을 보지 못해서 안타깝다. 열 여덟살까지 살아 있는 어니를 보는 것이 소원이던 그녀가 이젠 존재이유를 잃어버린 탓에 그렇게 떠났던 것일까. 이젠 에이미도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 그레이프 가족들이 이제는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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