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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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책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였다. 이후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사람 마음을 참 따뜻하게 만드는 작가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포르토벨로의 마녀"부터는 작가의 작품세계와 나의 세계엔 벽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마 "연금술사"를 읽고 난후 책이 나올때마다 큰 기대를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뭐냐. "11분"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솔직히 읽는내내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다면 "옛날 옛적에...."로 한 편의 동화처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리아를 생각하여 "옛날 옛적에...."로 시작한건 좋은데 이렇게 시작만하면 우화나 동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브라질에서 시골 처녀처럼 순박하게 자란 마리아가 리우데자네이루 여행 중 겪게 되는 일들을 무엇이든 "모험"이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몸을 팔아 하루에 천프랑을 얻고 이젠 직업을 '창녀'로 일년간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이곳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행동을 하기까지, 소위 밑바닥까지 내려간 창녀 마리아를 통해 '내면의 빛'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를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지금 멈추고 브라질로 돌아간다면 직물 공장의 주인과 만나 결혼을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게 싫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리아, 코파카바나에서 '특별손님'을 맞아 사디즘에 심취하여 자신의 내면의 빛을 본 랄프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사디즘에 몰입하려는 그녀를 보며 그래도 백마탄 왕자님인 랄프와 사랑을 이루고픈 소망을 가진 마리아의 행동에 역겨움까지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남자가 이렇게 완벽하게 여자 입장에 서서 쓴 글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여자의 심리, 내면을 잘 모르고 쓴 글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러이러할 것이다"고 정의 내려진 책들을 참고 삼아 쓴 글일 것이다. 노골적인 성애 묘사, 마리아가 쓰는 일기를 통해 보여주는 내면, 어느것 하나 공감하고 동조하게 되는 것이 없었으니까. 책 제목인 "11분"조차 나는 이 제목을 통해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지 않을까 깊이 생각해 봤다는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마리아가 남자와 관계하는 시간인 "11분" 이것으로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결말로만 본다면 마리아가 그렇게나 바라던 해피엔드다. 먹고 살기 힘들어 선택한 것이 아닌 오로지 새로운 삶을 위해 제네바에서 창녀로 일한 마리아, 그 덕에 랄프를 만날 수 있었으니 세상 일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연필을 빌려달라"는 소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 영원히 그 기회를 잃은 마리아는 무슨 일을 하든 잃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잡고자 '모험'이라는 이유 아래 몸을 팔고 손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책을 읽고 노력을 한다.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서평을 쓰면서도 마리아의 행동에 왜이리 짜증이 나는건지.

 

보통 사람을 통해 그 '내면의 빛'을 보는 것과 '창녀'의 '내면의 빛'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뭔가 더 큰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심오한 철학적인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걷지 말고 춤추듯 살아라"는 명제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길 원했다면 이 책은 많은 것이 부족하다. 한 처녀의 성 입문과정을 통해 무엇을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는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작가만의 세상에 갇혀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파울로 코엘료와 만났다면 그의 다음책을 과연 읽었을까. 아직은 기대할 것이 많은 작가이기에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작가와 또 만날 생각이지만 "11분"은 결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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