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누나나 - 한국젠더문학 작가시리즈 1
김비 지음 / 해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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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슨 노래 가사의 후렴구인가 했다. '나나나나나'로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나나누나나"였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읽기 전에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제목이 전해주는 슬픔 또한 알지 못했다. '트렌스젠더'라고 하면 보통 남성이 여성으로 성을 바꾸는 것으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성전환 수술을 통해 성을 바꾼 사람들을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었다. 연예인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요즘에야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너그러워지고 법적으로 인정이 된다고 해도 분명 아직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과연 내 가족의 일이 되었을 때 "미쳤냐"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미쳤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가족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이 문제가 정신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호기심, 분명 이 책의 작가가 트렌스젠더라는 것과 트렌스젠더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는 것에 나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네들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으로 소리치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다고 외쳐도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그네들의 외침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동정? 그들이 동정을 원할 것인가. 동정이 아니라 그냥 이해하고 싶었다. 상처 받을까 무서웠지만 내가 당당하게 하는 '사랑'이 그들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 많은 그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단편 [나나누나나]는 학창시절 좋아했던 여자애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자가 되고 싶었던 '그'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욕설이 가슴 아팠고, 단편 [눈썹달]은 죽어서나마 호적을 여자로 바꾸고 싶었던 '그'아니 '그녀'의 유서를 보며 나 또한 마음이 헛헛해졌다. 댐이 무너져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음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호적에 빨간줄을 그어가며 여자로 바꾸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외면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단편 [해수탕]은 좀 난해했다. 그녀에게 '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녀를 형이라고 불렀던 이 아이의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어떻게 모든 것을 알 수 있나. 응어리진 감정을 소리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꾹꾹 눌러둔 감정을 폭발시켜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 단편들은 너무 절제된 단어들로 인해 그 의미를 완전하게 전달받을 수 없어 아쉬웠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느 단편이든 아픔이 없는 글들은 없었다. 소수자로서의 삶에, 그네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악다구니들에 오히려 안심이 된다.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니가 죽나 내가 죽나 어디 두고보자고 외치는 그네들의 감정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줄테니까. 유구무언, 나는 그네들에게 할말이 없다. 그저 그네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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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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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때문일까, 화려한 색깔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지도 않은데 울긋불긋한 색깔이 손가락에 묻어날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영화 [색, 계]가 아니었다면 이 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사 두고도 읽지 않고 영화로 먼저 [색, 계]를 만났다. 일단 글로 먼저 만나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는 다행스러운 것이 단편 "색, 계"는 툭툭 끊어지는 설명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책을 먼저 읽었다면 이 단편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먼저 떠올리며 내용의 끊어짐을 이을 수 있었으니 일단 이 책이 처음부터 나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 전체가 영화 [색, 계]의 원작소설로 장편소설인줄 알았으나 70페이지를 넘지 않은 분량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장아이링의 또 다른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소설들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거의 그들 문화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정말 중국 문학답다"고 생각하며 내용만 보고도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비슷한 내용의 책들을 보면서 우리 문학들도 그렇게 보일까, 궁금했었더랬다. '색, 계' 또한 중국문학임을 금세 알아 볼 수 있으나 여성이 쓴 글 답게 그 내용이 여성의 시선으로 전개되어 조금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좀 더 부드럽다고 할까. 불륜이지만 사랑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더 아릿함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소재의 신선함이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랑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단편 [못잊어]에서 돈이 필요해서 딸을 첩으로 보내려는 아버지를 보면서 울컥하긴 했지만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양 딸 지아인에게 권유해도 스스로 떠나는 것으로 그 사랑을 끝내버리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이런 그녀들의 당당함이, 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같은 빛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해도 장아이링이 말하는 '사랑'만은 짙은 색채를 띠고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 첫눈에 반한 사랑, 그런 사랑이 어디 있냐며 결국엔 소설속에서 한쪽이 귀신이라고 밝혀지지 않느냐, 고 표현한 그녀의 글은 너무나 순수하게 다가와 나를 웃음짓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그 사랑도 버리고 돌아서서 떠나는 그녀들의 당당한 뒷모습은 그녀들의 매력에 빠진 나를 저자가 만든 책속의 세상에 가둬버렸다.

 

단편 [연애는 전쟁처럼]은 지문과 대사들이 적혀져 있어 지루해서 몰입이 되지 않았지만 영화화 되었던 단편 [색, 계] 못지 않게 다른 단편들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색, 계], [머나먼 여정], [해후의 기쁨]의 세 단편들은 장아이링이 30년에 걸쳐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단편들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늘 순응하며 살던 중국 여인들의 모습이 아니어서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삶이 장아이링의 삶인 것만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더 아련해지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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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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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걱정거리가 없다는 말인데 왜이리 이 말이 입에 안붙는지 모르겠다. 주문처럼 계속 외우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스와힐리어가 낯설게 다가오는만큼 아프리카도 멀게만 느껴져서 그런가 단어가 잘 외워지지 않는다. 

 

중빈이가 엄마와 함께 떠나는 여행, 솔직히 부러웠다. 아마 중빈이의 입장에 서서 마냥 부러웠던 것인데 내가 아이와 함께 훌쩍 떠날 수 있을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모험을 할 배짱이 없어 한편으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을 떠나자고? 아마도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가지 말아야 할 이유 수십가지는 말했을 것이다. 말라리아가 무서워서, 낯선 세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라며 온갖 핑계를 대며 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누가 끌고가기라도 하나, 그냥 훌쩍 떠나면 될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땐 여행을 통해 얻는 느낌을 말하고자 하겠지, 하며 가볍게 책장을 넘겼는데 점점 그녀와 중빈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건물들 앞에서 찍은 사진들이 아닌 그곳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너무 좋았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글을 썼을까,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벌써 여행 막바지에 이르러 벌써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섭섭하다. 

 

느리게만 살아가는 아프리카인들이 나도 답답해서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울타리 없이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그들이 있어 이 아름다운 아프리카가 남겨질 수 있었다는 글에는 깊이 반성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사는 도시에 원숭이가 돌아다녀도 포획하여 우리에 가둬둘 우리들이고 보면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산다는 것이 더 오히려 아프리카에서 사는 것 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중빈이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선율에 눈을 빛내며 듣는 아이들, 중빈이와 함께 축구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돈을 받기 위해 순진한 모습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렇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 "미래가 없다"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면 저자가 그곳에서 느꼈을 상실감에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닭을 가질 순 없지만 계란이라도 먹게 되기를 함께 소원했다. 왜 거짓말을 해서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느냐고, 나에게도 따질 권리 같은 건 없다. 단지 이들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움이 이 책에 담겨 있는 사람들처럼 빛날 수 있을까. 돈의 유무를 떠나서 다른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부색이 달라도, 낯선 곳에서 나를 맞이해주는 사람들의 웃음이, 손길 한번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녹인다. 울타리 없이 사자와 내가 함께 놓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곳이 남아 있다는 경외감에 책을 읽는 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이처럼 기린을 담은 사진을 옆사람에게 보여 주기도 하고 사자를 담은 사진에는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놀라면서 보았다. 아무리 마사이족이 여행자들을 위해 이 곳에 붙박혀 살고 있다고 해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아프리카만 보았다.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내가 지닌 문명의 껍질을 던져 던지고 미친듯이 춤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그곳이라면 나도 나를 잊고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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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수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1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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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쏴아~녹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어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이 소리를 들었다면 나도 기미타다처럼 바다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천년동안 이곳을 지켜온 녹나무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녹나무를 배경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왜 이렇게 슬픈지 벌써 인생을 다 산 듯 허무해진다.

 

[신으로부터의 한마디], [하드보일드 에그], [유괴 랩소디], [벽장 속의 치요] 등 지금까지 읽은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은 유쾌했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잠시동안 힘들었던 일상도 잊을 수 있을 수 있었는데 이번 [천년수]는 지금까지 읽었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 성격과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어두컴컴한 심연속을 걸어가는 느낌, 끈끈한 무언가가 달라 붙어 나를 놓아주지 않는 느낌에 오싹해진다. 단편 [맹아]에 등장한 기미타다와 그의 아내와 아들, 이 세 사람은 녹나무가 생을 다 할때까지 함께 하고 기미타다의 아들은 이 녹나무를 찾아가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꼭 녹나무의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죽어서 함께 놀아주길 바라는 듯한 녀석의 행동은 무서워서 나는 녹나무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다.

 

8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간간이, 계속 연속적으로 등장하여 녹나무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스쳐 지나가기에 그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녹나무 가지에 줄을 걸어놓고 죽으려고 한 마사야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과거 그 때의 자신을 돌이켜 보는 모습에 나는 녹나무에겐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인간에게는 짧은 인생의 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괴기스럽고 음산한 느낌의 글들 중에 단편 [할매의 돌계단]은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녹나무 속에 설레이는 마음을 담아 연애편지를 담아 고토리나무라 불리어지는 이 녹나무의 모습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실종에 관계하기도 하고 그 직경이 어마어마해서 전체적인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없어 그 분위기는 더 음산하게 다가온다. 돌계단을 다 오르면 그 끝에 무엇과 마주하게 될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어 나의 상상속에서 더 끔찍한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처연한 인간의 삶을 굽어보며 녹나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간의 배열이 과거에서 현재로 뒤죽박죽 뒤섞여 단편들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워 조금 아쉽지만 이 글로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해답을 알려면 인생을 더 살아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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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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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있다.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인데 나는 살면서 이렇게 숨이 멎을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은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대중매체를 통해 "정말 예쁘다"고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경국지색'이라니 대체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의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였던 것일까. 여기에 나오는 네 사람중 제대로 아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는 것 같다. '초선'에 대해서는 '삼국지'를 통해 잠깐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것도 동탁과 여포의 이야기에 잠깐 등장하는 것일 뿐, 초선이 태어나서 자라기까지의 성장배경과 그 때의 시대상황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었기에 숨막히는 미모로 역사를 바꾸었던 네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미인계'라......생각해 보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움을 무기로 자신을 현혹시켰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녀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살아가고 싶은 그녀들은 뭇사내들의 손에서 자신의 사랑은 커녕 목숨조차 지킬 수가 없었다. 한 나라를 망하게 할 운명이 되길 그 누구도 원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적의 손에 몸을 맡기고 마음마저 그곳에 두게 된 그녀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당현종의 아들인 수왕에게 반한 옥환(양귀비)는 수왕비가 된다. 그 후에 황후 무혜비가 죽고 당현종은 며느리인 옥환을 곁에 두게 되는데 현종이 임금이라 어느 여자이든 취할 수 있었겠지만 며느리를 곁에 두었으니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데 그 때 양귀비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이 무너질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뒤에는 임금의 뒤에서 권력을 남용하고 한 여인으로서 현종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딴에는 양귀비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초선과 왕소군, 서시는 양귀비와 다르게 나라를 위해 희생당하여 그 죽음조차 억울한데 당현종의 눈을 흐린다하며 죽게 된 양귀비의 죽음 또한 억울하다 하겠지만 그 죽음이 세 사람의 죽음과는 역시 다르게 다가온다. 

 

한나라의 평화를 위해 장공주로 책봉되어 추운 오랑캐의 땅으로 시집을 간 왕소군, 저라촌에서 월나라를 위해 오나라에 가게 되는 서시, 경국지색의 서시를 따를 순 없었지만 저라촌에서 같이 자란 아름다운 '동시'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아름답다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물론 못난 것 보다야 예쁜게 낫지만 물고기조차도 헤엄치는 것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면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승자의 편에서 쓰는게 역사라 이 책의 내용중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알 수 없어 그녀들의 인생을 직접 듣고 싶어진다. 아마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만나보는 그녀들의 삶을 재미와 즐거움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녀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궁중암투, 권력 등의 재미난 소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 말이다. '경국지색', '미인계'란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아픈 말들이었을까 생각하니 책을 읽으며 재밌다고 생각한 나를 반성하게 된다. 시대의 요부, 악녀가 아닌 한 남자의 사랑을 원했던 순수한 여인이었던 그녀들의 삶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면 그 의도가 괜찮았다. 책에 몰입하여 눈을 뗄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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