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때문일까, 화려한 색깔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지도 않은데 울긋불긋한 색깔이 손가락에 묻어날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영화 [색, 계]가 아니었다면 이 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사 두고도 읽지 않고 영화로 먼저 [색, 계]를 만났다. 일단 글로 먼저 만나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는 다행스러운 것이 단편 "색, 계"는 툭툭 끊어지는 설명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책을 먼저 읽었다면 이 단편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먼저 떠올리며 내용의 끊어짐을 이을 수 있었으니 일단 이 책이 처음부터 나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 전체가 영화 [색, 계]의 원작소설로 장편소설인줄 알았으나 70페이지를 넘지 않은 분량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장아이링의 또 다른 단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소설들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거의 그들 문화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정말 중국 문학답다"고 생각하며 내용만 보고도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비슷한 내용의 책들을 보면서 우리 문학들도 그렇게 보일까, 궁금했었더랬다. '색, 계' 또한 중국문학임을 금세 알아 볼 수 있으나 여성이 쓴 글 답게 그 내용이 여성의 시선으로 전개되어 조금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좀 더 부드럽다고 할까. 불륜이지만 사랑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더 아릿함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소재의 신선함이 떨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랑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단편 [못잊어]에서 돈이 필요해서 딸을 첩으로 보내려는 아버지를 보면서 울컥하긴 했지만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양 딸 지아인에게 권유해도 스스로 떠나는 것으로 그 사랑을 끝내버리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이런 그녀들의 당당함이, 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같은 빛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해도 장아이링이 말하는 '사랑'만은 짙은 색채를 띠고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 첫눈에 반한 사랑, 그런 사랑이 어디 있냐며 결국엔 소설속에서 한쪽이 귀신이라고 밝혀지지 않느냐, 고 표현한 그녀의 글은 너무나 순수하게 다가와 나를 웃음짓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그 사랑도 버리고 돌아서서 떠나는 그녀들의 당당한 뒷모습은 그녀들의 매력에 빠진 나를 저자가 만든 책속의 세상에 가둬버렸다.

 

단편 [연애는 전쟁처럼]은 지문과 대사들이 적혀져 있어 지루해서 몰입이 되지 않았지만 영화화 되었던 단편 [색, 계] 못지 않게 다른 단편들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색, 계], [머나먼 여정], [해후의 기쁨]의 세 단편들은 장아이링이 30년에 걸쳐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단편들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늘 순응하며 살던 중국 여인들의 모습이 아니어서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삶이 장아이링의 삶인 것만 같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더 아련해지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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