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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평점 :
"어디에 있든 반드시 나를 찾아내겠다"고 그 사람이 말했다. 요코에게 사랑은 환상이 아니었다. 딸 소우코가 눈 앞에 있는 한 그 사람을 향한 자신의 사랑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고 싶다"고 소우코가 말한 순간, 요코에게 그 사람은 더이상 현실이 아닌 환상이 되어 버렸다. 소우코에게 들려주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요코가 지어낸 듯 매번 이야기의 내용이 바뀌고 점점 형체가 흐릿해져 갔다. 다만 그 사람에 대한 냄새만은 늘 강렬하게 남아 있어 소우코에게 들려줄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 모두가 소우코에게는 실체가 되어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기억은 요코에게만 있었으니까.
한 장소에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요코의 사랑은 문학적인 표현을 들면 아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찾아낼 수 있는 사랑이라니, 이것은 인연을 넘어 운명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리 환상적이거나 절제된 슬픔을 담고 있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저 현실일 뿐이다. 요코의 사랑은 그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일 뿐이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모모이 선생님과의 결혼, 그리고 폭풍 같이 몰려온 온몸이 녹아내릴 듯한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그 결과로 태어난 소우코, 여기에서 무엇이 운명이고, 환상이란 것일까. 실체가 있는 현실일 뿐이다. 요코가 그 사람을 기다린 지 16년이다. 그동안 그녀는 그 사람의 소식을 알기 위해 정기적으로 음악 잡지에 실린 소식을 들여다 보지 않았던가. 그 사람이 남긴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말로 이어져 오고 있는 사랑이지만 그들에게 환상은 없다.
도쿄를 떠나 있으라는 모모이 선생님의 말에 오랫동안 살아온 곳을 떠나 16년을 나그네처럼 떠돌며 살아간 요코와 소우코, 두 사람의 삶이 무너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 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것이 늘 불안했던 소우코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요코에게 더 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그 사람과의 사랑의 결과로 소우코가 태어났으나 소우코는 소우코일뿐 그 사람일 수 없으니까. 요코에게도 현실을 피할 수 없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보다 죽음만을 떠올린다.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16년 동안의 세월을 모두 지워 버리고 다시 예전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 사람과 요코의 만남으로 끝을 맺는다 해도 이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에게 다시 돌아갈 가족이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말하고 나니 요코와 그 사람의 사랑, 정말 현실적이지 않나. 운명적인 말 같은 거, 그것도 현실 위에 존재하는 거니까.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운명적인 사랑의 메시지는 요코와 소우코의 아빠(요코가 표현하는 '그 사람'이 아닌 '소우코의 아빠'라고 표현하니 이들의 사랑이 현실 같이 느껴져 슬프다)가 만나는 장면을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요코와 그 사람이 만나게 되는 날, 이들의 만남이 현실 위에서 그려지길 바란다. 이것이 그녀의 꿈이 아닐까, 상자속에 넣어진 과거의 기억속의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