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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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혈연관계일텐데 권력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이 혈연관계도 끊어놓는 것일까. 천수를 다 누리고 죽은 왕도 있겠으나 '조선왕 독살사건'을 읽으면서 정적에 의해 독살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왕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최근 드라마 '자명고'에서 무휼이 아들 호동왕자에게 한 말을 보면 권력의 비정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아들은 정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는데서 왕좌란 것이 아버지 밟고 올라서거나 때론 형제나 아들을 밟고서만이 앉을 수 있는, 아니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 왕좌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권력의 참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왕위의 정통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왕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논, 밭 갈며 가족들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에 의해 이리저리 쓸려 살아가는 것이 힘 없는 백성들의 인생이지만 한평생 술과 기생을 끼고 살아간 왕족들을 보면 그저 삶이 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드라마 '장희빈'을 즐겨보는 이유가 권력암투의 재미때문인데 일개 궁녀가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재미요, 아들을 낳는 것에서부터 권력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는데서 시청자들은 즐거움과 흥미를 느끼게 된다. 역사소설에 재미를 붙이면서 궁중암투가 그저 단순하게 왕이 미색을 탐하여 일어난 일이 아닌 당파에 의하거나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속에서 휩쓸려 살아간 여인네들의 한숨소리가 나의 마음까지 슬프게 만든다. 비록 구중궁궐속에서 여인네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살다갔으나 그 죽음은 또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우리네 역사를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지만 고증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 한계가 있어 어디까지를 사실로 보아야 할까 하는 문제가 있다. 대체적으로 '조선왕 독살사건'의 내용도 드라마에서 자주 접해 왔던 내용이라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게 하는데 드라마와 다르게 책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독자들에게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등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가질 뿐 확실히 독살당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역사를 쓴 이들이 승자라는 이유도 있겠고 그 갑작스러운 죽음 뒤 왕좌에 오른 왕으로 인해 사실이 은폐되기도 한다는 것이 진실을 묻어 버리는 게 만든다.

 

최근 들어 드라마 '최강칠우'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소현세자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인종이 가장 비정한 아버지로 그려져 그 권력의 참모습에 섬뜩함마저 느끼게 되는데 이렇듯 왕좌가 피로 물들어 있다고까지 여기게 되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기 위해선 누구든 죽여야만 했던 비정한 세상속에서 왕과 사대부들의 권력다툼에 먹고 사는 것마저 힘들었던 일반 백성들의 삶이 겹쳐져 가진자의 행위가 더 무섭고 냉정하게 그려진다. 잠깐 앉아 있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왕좌에 앉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일까.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만 했다고 변명하며 권력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역사속에 이름이 남겨진 사람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아아, 모르겠다.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세상이 만들어지고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저 하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을텐데, 역사를 알아갈 수록 눈이 시려서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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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터>를 리뷰해주세요.
스웨터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선물
글렌 벡 지음, 김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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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엄마가 손수 짜 주신 스웨터가 생각난다. 그때 모자도 함께 뜨셔서 입혀주셨는데 참 따뜻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도 솜씨를 부려보고 싶어서 가끔 도와드리겠다고 나서서 꼭 털실을 더 늘려놓거나 빠뜨려서 낭패를 보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그때를 떠올려보니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세월이 지나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에디처럼 설레이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없어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나 할 것 없이 그때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으니까. 생일 날 먹는 케이크조차도 그때는 사치였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식을 할 때 우유 한잔 사 먹을 여유가 없는 에디를 보면서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열두 살 에디가 겪는 현실은 참으로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자전거를 받고 싶어 착한 일을 열심히 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엄마가 손수 짜주신 스웨터 한 벌, 에디가 자전거 욕심에 심통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심통을 부려 피곤한 엄마에게 운전을 하게 만들어 사고가 나게 한 것은 솔직히 조금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열두 살이면 아버지가 안계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어려운 집안 사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물론 엄마의 행동 또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아이를 힘들게 만든다. "집에 우유가 있으니 밖에 나와서 우유를 사 먹는 것은 낭비다"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아이에게도 그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조금은 어리광을 부려도 될 나이인데 말이다. 사주고 싶은 것을 사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매일 길을 오가면서 에디가 갖고 싶은 자전거를 보며 얼마나 사주고 싶었을 것인가. 그게 부모 마음인 것을.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기만 했다.

 

엄마가 사고로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는 에디의 행동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왜 저렇게 화를 내고 그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인지 너무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싶고 할아버지댁에서 벗어나고 싶기만 한 에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나중에야 이 모든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에디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아 마음까지 불편해질 정도였다. 엄마가 손수 짜주신 스웨터의 가치를 왜 모르는 것인지. 단 한번의 실수로 소중한 엄마를 잃어버린 에디, 그때 집에 간다는 엄마를 할아버지가 잡아 주었다면 상황은 분명 달라졌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작가는 한번에 날려버리고 에디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한다.

 

너무 감사합니다. 에디 못지 않게 이 가족의 불행에 가슴 아팠던 나도 이렇게 조용히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설레이는 날 크리스마스, 가족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스웨터"를 통해 올해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참 행복한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한껏 기대하게 된다. 물질적인 선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 가족간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 떠올리게 되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눈이 온다면 누군가의 선물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1. 서평도서의 좋은 점: 따뜻한 감동이 있다. 마음에 오래 머무는 책.

2.  서평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싶은 분/마음이 쓸쓸해서 감동적인 책이 읽고 싶은 분 

3. 마음에 드는 책 속 한 구절: "기억하렴. 저 폭풍을 뚫고 지나온 사람은 누구도 여행길에 나선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 온 그 누구도 건너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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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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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실험은 실재했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왜이리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이라서?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동안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고귀하게 길러졌지만 자신도 노예일 뿐이었던 옥타비안과 다르게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었다. 실제 자신의 신분이 공주이긴 했지만 "흑인도 고등교육을 통해 백인과 같은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보스턴의 저택에서 비싼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주의 신분에 맞는 대접을 받는 모습은, 그녀가 지적이고 교양이 높은 사람으로 보여질수록 나는 옥타비안이 겪는 내적 갈등과 고통에 그녀에게는 동정심마저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천연두 파티에서 희생된 그때부터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긴 했지만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어진다. 03-01이 주로 두 사람의 실험을 맡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 숫자로 불리어지는 이 상황이 오히려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보여지게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름이 아닌 숫자로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독자들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라 나중에는 이 숫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기억나지 않아 옥타비안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쓴 이 글에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앞에 설명된 문장을 찾아보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뱅글리안 석학협회'의 리처드 샤프가 이 실험에 동참하게 되었을 때 실험의 명제는 바뀐다. 이때부터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이 실험자들에게 속한 사유재산으로, 실험대상으로 처지가 바뀐다. 하인들이 하던 일을 자신들이 맡아서 하게 되고 신분에 맞는 옷이 주어지며 맡은 일을 해내지 못하면 채찍을 맞는 옥타비안은 육체적인 고통은 있을지언정 그때부터 그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다른 곳으로 팔려가기 전까지 옥타비안과 카시오페이아의 의지처가 되어 주었던 보노와 더불어 옥타비안은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에 부딪치며 자신이 배운 것들이 흑인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절망했을까. 자신의 처지를 더 잘 알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실험대상이 아닌 진짜 인감임을 느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땅을 파는 단순한 노동일지라도 그는 여기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동안 옥타비안이 배웠던 교육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면 아마도 트레퓨시스 박사와 함께 탈출했을 때일 것이다. 전략적으로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실험자의 손에서 멀리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이것이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배운 생존방식이요, 자신의 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흑인의 시선으로 노예제도를 바라본다는 것이 괜찮았다. 하지만 늘 승자에 의해 쓰여진 글들을 통해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흑인들이 겪었던 노예제도를 그 안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걸림돌이 된 것 같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고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늘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옥타비안을 보면서, 결국엔 실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독자들까지도 옥타비안과 같이 의지가 묶여버린 듯 감정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고 억압된 삶에 짓눌린 사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서 보고 느끼고 행한 것들을 넘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때만이 옥타비안은 물론 독자들도 이 문제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진 시선으로 본 것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글을 썼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지루하지 않게 독자들을 이끌어 갔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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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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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3줄을 읽은후에도 트릭을 눈치채지 못했으니 어디까지나 이 책을 연애소설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설을 읽고 모든 것을 알게 되어 다시 처음부터 스즈키와 마유가 겪은 일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퍼즐을 맞추듯 이어 붙여 보지만 마찬가지로 역시 연애소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꼼꼼하게 읽지 않은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일본 사람들의 이름은 성으로 불리어질 때도 있고, 이름를 보면서도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헷갈려 도대체가 몰입이 되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누구나 side-A면과 side-B면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그러했겠지만 과연 이것을 트릭이라고 해야하는가 의문이 든다. side-A면에서는 풋풋한 스즈키와 마유의 사랑, 아직은 대학생인 스즈키가 미팅에서 만난 마유와 사랑을 나눈다. side-B면에서는 도쿄로 발령받은 스즈키와 원거리 사랑을 하는 마유의 사랑이 결국엔 어떻게 될지 그 수순대로 밟아나가면서 역시 side-A면과 side-B면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만다. 이 때 트릭을 눈치채고 있었냐고? 전혀, 아무것도 몰랐다. 마유가 낀 루비반지, 금요일마다 스즈키와 만나던 마유가 아파서 한 주를 그와 만나지 못한 사연까지, 이는 모두 해설을 읽고 나서야 끼워 맞출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 나도 조금은 이상한 점을 느끼긴 했었다. side-A면에서 스즈키와 미팅에서 처음 만남 이후 이어지는 계속된 만남에서 마유는 스즈키에게 자신이 바라는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렇게 바꾸길 요구한다. 차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표현하는 마유를 보면서 이미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음을 어렴풋이 예측 가능할 수 있어 스즈키와 마유의 사랑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어진 side-B면에서는 많은 시간이 흘러 이 두 사람의 사랑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고 서로가 멀어지게 되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머릿속이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많이 혼란스럽진 않았다.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독자들에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들려준 것이 아니라 따로 두 사건을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혼란속에 빠뜨렸기 때문에 해설을 읽고 나면 두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결 시킬 수 있었으니까.

 

이 책은 연애소설일까, 미스터리 소설일까. 그냥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마지막 책장까지 덮은 지금 스즈키와 마유의 풋풋해 보이는 사랑이 얼룩진 사랑으로 보여진다. 마유의 사랑이 필요에 의해, 자신을 위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랑, 이것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난히 육체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가 자주 나와서 읽는 것이 불편했는데 마유와 스즈키의 이중적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었나 보다. "연애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라는 말에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넘겨가면서도 대체 미스터리는 언제 등장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지루했고 스즈키가 마유, 이시마루와 양다리를 걸친 사랑을 할 때, 가이도가 이시마루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스즈키에게 있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미스터리인가 보다 하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했었는데 모든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허무해질 뿐이다.  

1. 서평도서의 좋은 점: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뜻을 알게 되어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 서평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현실적인 사랑에 마음이 아픈 사람(사랑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랑이 힘들어질 때)

3. 마음에 드는 책속 한 구절: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한 의식. 우리의 연애는 그런 거였다고 헤어질 때 제게 말했어요. 처음 연애를 할 때는 누구나 그 사랑이 절대적이라 믿는다고. 절대라는 말을 쓴다고. 그렇지만 인간에게는-이 세상에는 절대란 건 없다고. 언젠가 알게 될 때가 올 거라고. 그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라고 해도 좋다고. 그것을 깨닫게 해 주는 연애를 그는 이니시에이션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죠. 문법적으론 틀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좀 더 멋을 넣어서 이니시에이션 러브라고 불러요."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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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반전에 반전, 또 반전을 보여주며 독자들을 혼란속에 빠뜨리는 마이클 코넬리, 이미 나는 그의 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통해 그 충격의 강도가 어느정도 되는지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시인'을 읽으면서 그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첫 번째 반전에 이르렀을 때 내가 생각했던 기존에 확립되어 있던 범인에 대한 프로필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려 다시 나름대로 정리를 해야 했다. 그 다음 반전 때는? 이제는 느긋하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냥 나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패닉 상태로 몰아갔다. 그저 작가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방법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눈으로 문장을 읽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잭 매커보이는 쌍둥이 형 션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아주 끔찍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긴 하지만 자살이라니, 도저히 이런 행동을 할 형이 아니기에 잭은 형의 죽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직업적인 감각으로 형의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하며 또 다른 경찰관들의 자살사건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고 좀 더 깊숙히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되지만 잭은 기자라는 직업이 늘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형의 죽음을 기사로 팔겠다는 것이냐?"의 물음에 온전히 당당하게 맞설 수 없다. 아무리 형을 가슴에 묻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주장해도 자신조차도 변명으로 생각될 뿐이니까.

 

저자 마이클 코넬리는 도입부분부터 새로운 인물을 노출시킨다. 물론 나는 범인과 관계된, 범인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물이 아닐까 예상했었는데 아니었다. 저자가 왜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보여주는 것일까, 하며 의아했는데 역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포석이었다. 저자는 범인에 대해서 10분의 1도 보여주지 않았건만 나는 이미 그때부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헤치는데 급급하여 중요한 단서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파일링을 통해 연쇄살인범을 그려내고 왜 이런 살인을 저질렀는지 밝혀내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해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잔인한 살인에 대해서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선과 악의 구도를 밝혀 살인자를 '악'의 축으로 단정짓고 몰아가기엔 살인자가 겪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그 뿌리가 너무 추악하다. 그래서 나는 살인자가 신이라도 된 듯 이 뿌리를 죽음으로써 단죄했을 때 이 죽음에 동정심마저 가질 수 없었다. 이 살인을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지만 잭의 말대로 그럼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션의 죽음에는 어떤 논리를 붙일 수 있을 것인가.

 

잭이 형 션의 죽음을 파헤치게 된 이유 중에는 누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누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나눠 맡은 형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누나가 죽은 호수였다. 션이 왜 그곳에서 죽었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동생 잭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알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동생만은 자신의 죽음이 타살임을 알아주길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형의 사건도 연관이 되어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나는 잭이 기사화 하지 않을 줄 알았다. 정의나 양심을 위해 이것이 당연히 '선'이라고 생각하여 기사화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이것에 집착하는 나의 생각을 버려야 될 모양이다. 

 

이제 모두 끝이 났다. 가슴을 내리누르던 공포심이 사라져야 하건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고 소름이 돋는다. 살인사건 현장에 에드가 앨런 포의 시를 남겨 놓은 살인자를 보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듯 그 상황을 통제하려 한 범인에게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 저자가 선택한 결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왜 이렇게 결말을 맺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범인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직접 답을 듣지 못해 아쉬워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이 쉽지 않아 아직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은지 책 여기저기를 둘러 보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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