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흑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실험은 실재했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왜이리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이라서?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책을 읽는동안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고귀하게 길러졌지만 자신도 노예일 뿐이었던 옥타비안과 다르게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갔다는 것이었다. 실제 자신의 신분이 공주이긴 했지만 "흑인도 고등교육을 통해 백인과 같은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보스턴의 저택에서 비싼 드레스를 입은 화려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주의 신분에 맞는 대접을 받는 모습은, 그녀가 지적이고 교양이 높은 사람으로 보여질수록 나는 옥타비안이 겪는 내적 갈등과 고통에 그녀에게는 동정심마저 가질 수가 없었다. 물론 천연두 파티에서 희생된 그때부터 그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긴 했지만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어진다. 03-01이 주로 두 사람의 실험을 맡고 있는데 다른 이들이 숫자로 불리어지는 이 상황이 오히려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보여지게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름이 아닌 숫자로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독자들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라 나중에는 이 숫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기억나지 않아 옥타비안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쓴 이 글에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앞에 설명된 문장을 찾아보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뱅글리안 석학협회'의 리처드 샤프가 이 실험에 동참하게 되었을 때 실험의 명제는 바뀐다. 이때부터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이 실험자들에게 속한 사유재산으로, 실험대상으로 처지가 바뀐다. 하인들이 하던 일을 자신들이 맡아서 하게 되고 신분에 맞는 옷이 주어지며 맡은 일을 해내지 못하면 채찍을 맞는 옥타비안은 육체적인 고통은 있을지언정 그때부터 그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다른 곳으로 팔려가기 전까지 옥타비안과 카시오페이아의 의지처가 되어 주었던 보노와 더불어 옥타비안은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에 부딪치며 자신이 배운 것들이 흑인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절망했을까. 자신의 처지를 더 잘 알게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답변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실험대상이 아닌 진짜 인감임을 느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땅을 파는 단순한 노동일지라도 그는 여기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동안 옥타비안이 배웠던 교육들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면 아마도 트레퓨시스 박사와 함께 탈출했을 때일 것이다. 전략적으로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실험자의 손에서 멀리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이것이 옥타비안이 세상에서 배운 생존방식이요, 자신의 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흑인의 시선으로 노예제도를 바라본다는 것이 괜찮았다. 하지만 늘 승자에 의해 쓰여진 글들을 통해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흑인들이 겪었던 노예제도를 그 안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걸림돌이 된 것 같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고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늘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옥타비안을 보면서, 결국엔 실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독자들까지도 옥타비안과 같이 의지가 묶여버린 듯 감정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고 억압된 삶에 짓눌린 사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서 보고 느끼고 행한 것들을 넘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때만이 옥타비안은 물론 독자들도 이 문제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진 시선으로 본 것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글을 썼다면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지루하지 않게 독자들을 이끌어 갔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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