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채소밭
빌 로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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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속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초록색이 그리워지나 보다. 마당 한구석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텃밭을 일구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을 기르듯 지극정성이시라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하니 너무 속이 좁은것일까. 나도 고추, 딸기, 깻잎, 상추 등이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기분이 좋아지니 내 땅 가지고 논, 밭 일구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다. 웰빙이라 해서 유기농이 인기몰이를 하는데 아주 아주 옛날부터 존재해온 먹거리들의 탄생비화를 듣는 기분? 아마 조금은 어렵지만 감자에게도 문화가 있고 종교도 있었으니 희노애락을 같이 하여 지금 내가 손쉽게 손을 뻗어 먹을 수 있었다면 믿어지는가? 인간들의 문화, 역사보다 더 오래된 녀석들이 아닐까. 

보릿고개를 지날당시 감자가 없었으면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해서든 천재지변으로 인해서든 먹을 것이 없을때 이 감자로 주요 식량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살려냈다. 수많은 여인들이 마술을 부렸다는 이유로 처형당할때 사람들 눈에 악마가 활개치는 모습이 보였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땅속에 시체처럼 파묻으면 갑자기 생기를 띠고 개체 수를 늘려가는 관능적인 곡선과 선정적인 모양을 한 벌거벗은 감자가 보였다니 감자에 대한 박해가 인간 못지 않았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쪄서도 먹고 볶아서도 먹고 샐러드도 해 먹는 감자의 다양한 변신 앞에 이렇게 힘든 여정이 있었으니 작은 음식하나라도 감사하면서 먹어야겠다.  

채소들이 언제 각 나라들에 보급이 되었는지 정보가 가득한 책이다. 현재는 원예나 농업분야에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는데 자신의 정원을 가지고 정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옛 시대에는 대단한 광영이었나 보다. 클로드 모네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겼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흙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라 그들에게 정원의 가치가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가들에게 정원사가 될 수 있는 기질이 많았다고 한다. 모네가 자신의 집을 꾸며놓은 사진을 보면 입이 쩍하니 벌어져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정원과 채소밭도 함께 가꾸었다고 하니 허드렛일로 생각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병원이 생기기전에는 어떻게 병을 치료했을까. 화상을 입었을때 된장을 바른다든지 어릴적 손등에 사마귀가 난 것을 본 이웃분이 "가재를 문지르면 낫는다"는 말을 해서 기겁을 한 적이 있는데 민간에는 병원에 의지 하지 않고 대대로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비방책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야채들이 이 기능들을 대신할 수 있다니 대체 이녀석들의 변신은 어디까지인가 사뭇 궁금해진다. 시기심 때문에 생긴 위의 열을 내리는데 탁월한 효가가 있고 짜증이 날때 짜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는 상추, 화가나서 폭식을 하기 보다 상추를 자주 찾는 습관을 들여야겠지? 아뿔사 저녁에 고기를 먹으며 상추를 안먹었는데 앞으로는 꼭 챙겨먹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상추를 먹으면 졸음이 온다고 해서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가면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꼭 상추가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졸음이 올까?" 궁금해지네. 밤새도록 놀았던 기억뿐이니. 

유럽인들은 야채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아프리카나 중동 지방에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약초나 채소 구분없이 채소밭에서 길러 둘 다 치료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니 예나 지금이나 웰빙의 목적은 똑같았나 보다.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수도사들이 1년에 6차례씩 피를 뽑고 채소밭에서 수확한 영양가가 풍부한 야채를 먹으면서 담화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해서 스트레스 지수가 막 치솟을때는 그저 가까이 있는 야채부터 챙겨 먹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오래도록 살고 싶으면 말이다. 좋은 세상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되지 않겠는가. 채소의 다양한 모습과 기능을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식단을 짤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겠는데 게을러서 행동력이 떨어지니 부지런하게 만드는 채소는 어디 없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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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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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가 함께 산다는 것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잦을날이 없긴 하지만 그만큼 행복이 배가 되니 나도 이들속에 소속되어 시끌시끌한 일상속에 녹아보고 싶다. 다른 식구라면 어린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기억이 다인데 그것도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무지하게 구박을 받고 자랐었다.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지금에야 옛날일이라 기억도 희미하지만 아파트라는 사각공간에 갇혀 층간소음밖에 들리지 않는 이곳보다 사실 그때가 더 그립다. 

드라마에서도 '딸부잣집'이니 '목욕탕집 남자들'같이 대가족이 모여서 살면서 알콩달콩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참 부럽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삼남매도 작다"고 "왜 다섯은 낳지 않으셨냐"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장성해서 다들 자기 일에 빠져 살다보니까 한번 모이기도 힘들기에 오히려 세월이 가면서 적적하기만 하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좀 시끌벅적하겠지만. 사실 명절때 많이 모이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내가 다른 집 사람이 되고 보니 명절이 싫어지니 참 내 맘속에 악마가 살고 있는 것인가. 

어떤 향수보다 책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지만 살아오면서 헌책방에 가본 적이 없다.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서점갈 일도 거의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헌책방 안이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이란 상상은 충분히 가능해서 '도쿄밴드왜건'의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데 조금은 낯설긴 하지만 경쾌하게 걸어들어 가 본다. 사실 이미 돌아가신 훗타 사치가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잔잔하게 가족들을 소개하는 모습에 안심이 된다. 가족들에 소속되어 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심정을 느낄 수 있어 안타깝긴 하지만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입가에 웃음이 절로 흐른다.  

대대로 헌책방을 경영하는 훗타 집안. 모든 세상일을 꿰뚫고 있을 법한 칸이치가 집안의 제일 어른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모두 이 곳에 와서 의뢰할 정도로 탐정 기질을 가진 킨이치의 손자 콘, 솔직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몇번을 앞쪽으로 돌려 가족관계를 적어 놓은 설명을 봤는지 모른다. 겨우 이름과 가계도가 머릿속에 들어왔을때는 도쿄밴드왜건의 이야기는 종반부로 치닫고 있었다. 책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대를 이어서 헌책방을 하긴 힘들겠지. 헌책 애호가인 IT기업의 사장인 후지시마가 도쿄밴드왜건에 있는 헌책을 다 사고 싶다는 말에 책 한권 사갈때마다 리포트를 써 내라니 참 누가 들으면 콧방귀 뀔 일인데 그래도 무던하게 드나들면서 리포트 검사를 받으니 맘들이 넓다고 해야하나 정이 많은 건가. 물론 이것이 살아가면서 인맥이 된다.  

그나저나 모든 일은 이유가 있다. 얽긴 실타래가 풀려가듯이 하나씩 풀려나가는데 나만 모른다. 나중에 정리해서 설명해 줘야 알게 되니 눈치가 너무 없나 보다. 죽은 훗타 사치와 대화가 통하는 콘. 중간에 소통이 끊기긴 하지만 옆에 아직도 계시다는 느낌은 참 포근하겠지? 밖에서 낳아 온 가나토의 아들 아오, 이복남매긴 해도 아이코, 콘, 아오 이들에겐 끈끈한 정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것? 가족냄새가 난다. 이 낯익은 냄새는 서로 알아보지 못해도 피가 섞여 있으면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일게다. 장성한 아들 아오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한편의 영화처럼 배우로 다가가는 이케자와를 배려하는 칸이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기에  나의 가슴도 따뜻해져온다. 이런 가족과 함께라면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질텐데 모두가 잠든 이 시간 사람들의 말소리가 그립다. '러브' 그래 모든 것에는 이 '러브'가 있어야 한다는 가나토의 말이 귓가에 머문다. 엉뚱하기만 한 가나토지만 가슴속에 가족애가 있기에 누구보다 당당하게 '러브'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 각박한 세상사에 쉬고 싶은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나도 잠깐의 휴식을 맛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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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7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진사랑님, 반갑습니다. 잘 읽고 추천합니다.
저도 썼던 리뷰라 더욱 반갑네요.^^

학진사랑 2007-08-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미흡한 제글을 읽고 추천까지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참 재밌게 읽은 책이랍니다...ㅋ
즐건 하루 되세요..
 
빅 머니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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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집안의 경제권을 쥐고 내집 마련의 꿈을 꾸는 아줌마들은 처녀적과 다르게 경제나 금융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던데 어째 나는 이렇게 솥뚜껑 운전밖에 할 줄 모르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 정치, 경제 수업을 듣는듯 마냥 어렵게만 느껴진다. 마켓이라는 주식시장 크게는 경제활동에 대한 이름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을 표현했다고 한다면 과장인것일까. 돈이 사람을 죽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니 인생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주식에 대해 문외한이라 이러니 저러니 할 말은 없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오라는 직장이 없어 빠찡코를 드나드는 시라토 노리미치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형적인 백수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에게 고즈카 노인의 등장은 자신의 전 인생을 걸어볼만한 존재다. 책장을 넘기며 내 머릿속에는 계속 '쩐의 전쟁'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어느정도 유사함을 생각하지만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금세 정신은 산란해지고 도대체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융자부 변액보험으로 인해 빚더미에 안게된 120만명의 적과 대항해 치밀한 두뇌전을 펼치는 고즈카 노인과 시라토의 행동은 왠지 명분이 없어 보인다. 옛날 여자친구인 하타노 데루코가 이 융자부 변액보험으로 정든 집에서 쫓겨나 마쓰바 은행과 싸울 이유가 있지 않냐고 하지만 어쨌든 이익이 되지 않은 곳이면 움직이지 않았을테니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다. 단지 먹고 먹히는 증권시장에서 그나마 조금은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사귀는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마켓과 사랑에 빠진 시라토. 치밀한 두뇌게임으로 얻은 돈이라고 해도 버스타고 다니며 푼돈을 아껴야 하는 인생은 생각해 볼 수도 없이 큰 돈을 만지게 된다. 비록 인생의 쓴맛을 보고 난 후지만 그정도 대가라면 충분히 배팅할 수 있겠지. 이 곳은 왠지 철저히 남성적인 세계란 생각이 든다. '빅 머니'의 내용이 선 굵은 남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연약한 사람은 자연히 도태되기 마련이라 강한 느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은 없고 '돈'만 보이는 세상. 돈이 없으면 먹는것도 해결 되지 않은 세상이라 '돈..돈'하게 되지만 속물적인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는 멀리하고 싶어지니 사람냄새 나는 곳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겠지. 뭐 솔직히 내가 평생 모아도 만지지 못할 돈을 가진 시라토가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선사해준 '빅 머니' 그러나 그 어두운 일면을 보았기에 더 답답해지는 것 같다. 돈에 속고 우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불쌍해서 작은 행복이 무엇인가, 돈이 무엇인가 잠깐 깊게 생각 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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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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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옛일을 기억할때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보다 그저 그 때 있었던 큰 사건을 바탕으로 '그때 그런일이 있었지'라며 회상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바타넨에게는 '토끼와 함께 한 그 해'가 가장 인상에 남았나 보다. 아마도 기자로 살아오던 자신의 인생을 내던져버린 큰 사건이니 기억에 남는 해일 것이다.  

왜 '토끼'였을까.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치며 가던 중에 차에 치이게 되는 토끼. 항상 가까이에 두고 기르면서 토끼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 그냥 토끼로 불러야겠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점점 푸른 산들이 사라지고 있어 산속에 토끼를 만나는 것이 개나 고양이를 만나는 것 보다 더 어려울텐데 차에 부딪쳐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다친 토끼가 안쓰러워 차에서 내린 바타넨은 그 길로 더이상 자신이 소속된 세계를 버린다. 딱히 토끼여야만 했던 것은 아닌것 같다. 단지 계기가 필요했겠지.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절망한 남편, 소화불량을 앓고 있고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늘 일탈을 꿈꾸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탈을 항상 꿈꾸기만 할 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 과감하게 삶의 한쪽을 잘라버린 바타넨은 그때부터 토끼와 함께 하게 된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책임감이 너무나 없는 집안의 가장이지만 토끼에게만큼은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졌으니 자신이 정녕 바라는 인생대로 펼쳐진걸까? 여러사람을 만나고 모험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죽을때가 되어 인생을 돌아볼때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보트 판 돈으로 여행을 하는 모습은 그리 부럽지 않으니 아직은 내가 사는 공간이 더 안정감있게 느껴지는가 보다. 아니 많이 쌓아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겠지.   

보면 귀여워 만지고 싶은 토끼. 손아귀에 쉽게 잡히지 않은 동물이라 신부님조차 토끼를 보고 갖고 싶어 총을 사용하게 되고 혹 떠돌아 다니는 바타넨이 토끼를 이상한 곳에 사용하지는 않는지 빼앗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입장에서는 그도 이 토끼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식량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까마귀의 존재는 달리 보면 토끼처럼 그저 귀여워 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생각되어도 될텐데 자신의 재산인 식량을 강탈해 가기에 무력한 자신으로 인해 잔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덫을 놓은 것이지만 뚫어놓은 통조림에 목이 끼어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니 토끼를 귀애하는 그의 모습과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쉽게 길들여지는 토끼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까마귀보다 낫겠지.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집요함으로 인해 산장 가까이에 은거하는 곰을 찾아 국경을 넘게 되는 바타넨은 어쩌면 토끼를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즉흥적인 것 같다. 산장을 고치는 일거리를 맡아서 먹고 살아가니 문명을 완전히 등진것도 아닌 삶, 토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기에 누군가 토끼를 원해서 가져가길 원하면 "그냥 가지라"고 하기 보다 토끼를 따라나서는 그는 정말 토끼가 없으면 못살 사람이 아니라 일탈을 할 수 있게 해 준 토끼가 사라지면 변명할 수 있는 인생의 목적이 또 한번 사라지기에 강렬하게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토끼의 먹이를 숲에서 찾아주고 자신이 돌봐 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족같은 개념으로 생각되지 않으니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공범, 자신이 행하는 일에 토끼도 웃으며 긍정한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의 일면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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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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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주위는 뿌옇게 밝아오고 있고 내 머릿속에는 범인의 이름보다 줄리에트의 안타까운 죽음때문에 멍하고 가슴은 온통 슬픔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면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주인공은 홀로 맞서서 끔찍한 것과 대면한다.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어두침침한 곳을 혼자 삐그덕삐그덕 울리는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을 밟으며 올라가는지 긴장감으로 옥죄어진 내 심장은 두근두근거리고 애꿎은 주인공만 원망하면서 영화를 감상했었다. '왜저리 무모한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포틀랜드 인간백정의 마지막 희생물인 줄리에트가 기적적으로 브롤린에게 구조되었을때 어떤식으로든 그녀에게 또 다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불안해하며 봤다. 살인자가 브롤린의 총에 의해 죽었을때 나 또한 연쇄살인은 끝이 난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내막을 알아버린 지금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착각이었는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으며 아직도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은채 날이 점차 밝아져 오기만 기다린다.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를 보며 CSI를 보는 듯 책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검시관, 법의학이란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CSI란 영화를 보았다고 조금은 익숙해하며 책을 보다니 내 옆에 사람이 있었음에도 소름이 쫙 돋으며 책을 읽었으니 저자의 의도대로 나는 충분히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구해준 브롤린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사랑으로 변한 것일까.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있어 그저 아무말 없이 옆에 있어도 안심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가는 줄리에트, 두사람의 사랑이 행복한 결실을 맺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사건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 사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사건속에 있는 듯 정신적으로 계속 반복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브롤린과 줄리에트의 관계는 연쇄살인이 벌어져 만나게 되었지만 안정감 있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는 없는 관계였나 보다.  

살인자 릴랜드가 죽고 1년뒤 똑같은 살인수법의 연쇄살인이 일어나게 되고 그때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이마에 산으로 지운 듯한 흉터와 손을 절단해 가는 범인을 쫓는 브롤린, 살인자에게서 벗어나고픈 줄리에트의 강렬한 욕망이 점점 범인에게로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수사팀이 함정을 파고 살인자를 기다리지만 교묘히 빠져나가는 범인. 그가 현장에서 피운 담배꽁초에는 죽었다고 믿었던 릴랜드의 DNA가 묻었있는데 이로써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여기 등장하는 브롤린이 프로파일러로 종횡무진 현장을 탐색해 가며 살인자의 심리를 그대로 재현해 가며 접근하는 방식엔 소름이 돋지만 그의 고뇌 또한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시체를 보는 것도 고역이겠는데 사건장소에 머물며 살인자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정말 제정신으로 못할 행동이겠지. 그에겐 비디오 게임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제였고 줄리에트는 영혼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조시'란 아이가 사라지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에 책의 말미쯤 되어야 저자가 '조시'란 존재를 왜 등장시켰나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저 살인자에게 희생된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아이인 것인가'란 생각에 미치게 될 때 역시 나의 허를 찌르는 아이의 등장. 엇~하고 놀라는 사이에 모든 사건의 조각들이 퍼즐놀이처럼 맞춰져 가는 것이다. 사실 조슈아 브롤린을 동료들이 부를때 '조시'라고 불러 그가 사라진 아이가 아닐까 나름 추측했었는데 여지없이 내 추리는 신빙성을 잃고 만다. 

'악의 영혼', 눈안에 불꽃을 내뿜을듯이 쏘아보는 그 눈길속에 정말 악이 잠자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범인을 검거하고 한숨을 돌렸다고 느낄 찰나 살인자는 온 나라를 돌면서 연쇄살인범들을 길러놓았다고 이야기 함으로써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제야 범인이 잡혀서 나도 한시름 놓을 그때 이미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사건들이 이 '악의 영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음을 깨닫고 꼭 나에게 일어난 일인양 부르르 몸을 떨게 된다. 역시 인간을 지배하는 '악의 영혼'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세상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건가. 선이 악을 이긴다고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는 악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나 보다. 밝아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직 남아있는 책속의 악의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며 가슴이 조금 안정되어 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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