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책을 덮고 나니 주위는 뿌옇게 밝아오고 있고 내 머릿속에는 범인의 이름보다 줄리에트의 안타까운 죽음때문에 멍하고 가슴은 온통 슬픔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면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주인공은 홀로 맞서서 끔찍한 것과 대면한다.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어두침침한 곳을 혼자 삐그덕삐그덕 울리는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을 밟으며 올라가는지 긴장감으로 옥죄어진 내 심장은 두근두근거리고 애꿎은 주인공만 원망하면서 영화를 감상했었다. '왜저리 무모한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포틀랜드 인간백정의 마지막 희생물인 줄리에트가 기적적으로 브롤린에게 구조되었을때 어떤식으로든 그녀에게 또 다른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불안해하며 봤다. 살인자가 브롤린의 총에 의해 죽었을때 나 또한 연쇄살인은 끝이 난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내막을 알아버린 지금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착각이었는지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으며 아직도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은채 날이 점차 밝아져 오기만 기다린다.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를 보며 CSI를 보는 듯 책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검시관, 법의학이란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CSI란 영화를 보았다고 조금은 익숙해하며 책을 보다니 내 옆에 사람이 있었음에도 소름이 쫙 돋으며 책을 읽었으니 저자의 의도대로 나는 충분히 공포심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구해준 브롤린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사랑으로 변한 것일까.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있어 그저 아무말 없이 옆에 있어도 안심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가는 줄리에트, 두사람의 사랑이 행복한 결실을 맺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끔찍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사건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 사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사건속에 있는 듯 정신적으로 계속 반복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브롤린과 줄리에트의 관계는 연쇄살인이 벌어져 만나게 되었지만 안정감 있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는 없는 관계였나 보다.  

살인자 릴랜드가 죽고 1년뒤 똑같은 살인수법의 연쇄살인이 일어나게 되고 그때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이마에 산으로 지운 듯한 흉터와 손을 절단해 가는 범인을 쫓는 브롤린, 살인자에게서 벗어나고픈 줄리에트의 강렬한 욕망이 점점 범인에게로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수사팀이 함정을 파고 살인자를 기다리지만 교묘히 빠져나가는 범인. 그가 현장에서 피운 담배꽁초에는 죽었다고 믿었던 릴랜드의 DNA가 묻었있는데 이로써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여기 등장하는 브롤린이 프로파일러로 종횡무진 현장을 탐색해 가며 살인자의 심리를 그대로 재현해 가며 접근하는 방식엔 소름이 돋지만 그의 고뇌 또한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시체를 보는 것도 고역이겠는데 사건장소에 머물며 살인자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정말 제정신으로 못할 행동이겠지. 그에겐 비디오 게임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제였고 줄리에트는 영혼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조시'란 아이가 사라지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에 책의 말미쯤 되어야 저자가 '조시'란 존재를 왜 등장시켰나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저 살인자에게 희생된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아이인 것인가'란 생각에 미치게 될 때 역시 나의 허를 찌르는 아이의 등장. 엇~하고 놀라는 사이에 모든 사건의 조각들이 퍼즐놀이처럼 맞춰져 가는 것이다. 사실 조슈아 브롤린을 동료들이 부를때 '조시'라고 불러 그가 사라진 아이가 아닐까 나름 추측했었는데 여지없이 내 추리는 신빙성을 잃고 만다. 

'악의 영혼', 눈안에 불꽃을 내뿜을듯이 쏘아보는 그 눈길속에 정말 악이 잠자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범인을 검거하고 한숨을 돌렸다고 느낄 찰나 살인자는 온 나라를 돌면서 연쇄살인범들을 길러놓았다고 이야기 함으로써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밝힌다. 이제야 범인이 잡혀서 나도 한시름 놓을 그때 이미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사건들이 이 '악의 영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음을 깨닫고 꼭 나에게 일어난 일인양 부르르 몸을 떨게 된다. 역시 인간을 지배하는 '악의 영혼'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기에 세상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건가. 선이 악을 이긴다고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는 악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나 보다. 밝아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직 남아있는 책속의 악의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며 가슴이 조금 안정되어 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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