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많은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옛일을 기억할때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해내기 보다 그저 그 때 있었던 큰 사건을 바탕으로 '그때 그런일이 있었지'라며 회상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바타넨에게는 '토끼와 함께 한 그 해'가 가장 인상에 남았나 보다. 아마도 기자로 살아오던 자신의 인생을 내던져버린 큰 사건이니 기억에 남는 해일 것이다.  

왜 '토끼'였을까.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치며 가던 중에 차에 치이게 되는 토끼. 항상 가까이에 두고 기르면서 토끼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 그냥 토끼로 불러야겠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점점 푸른 산들이 사라지고 있어 산속에 토끼를 만나는 것이 개나 고양이를 만나는 것 보다 더 어려울텐데 차에 부딪쳐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다친 토끼가 안쓰러워 차에서 내린 바타넨은 그 길로 더이상 자신이 소속된 세계를 버린다. 딱히 토끼여야만 했던 것은 아닌것 같다. 단지 계기가 필요했겠지.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절망한 남편, 소화불량을 앓고 있고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늘 일탈을 꿈꾸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탈을 항상 꿈꾸기만 할 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 과감하게 삶의 한쪽을 잘라버린 바타넨은 그때부터 토끼와 함께 하게 된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책임감이 너무나 없는 집안의 가장이지만 토끼에게만큼은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졌으니 자신이 정녕 바라는 인생대로 펼쳐진걸까? 여러사람을 만나고 모험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죽을때가 되어 인생을 돌아볼때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보트 판 돈으로 여행을 하는 모습은 그리 부럽지 않으니 아직은 내가 사는 공간이 더 안정감있게 느껴지는가 보다. 아니 많이 쌓아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겠지.   

보면 귀여워 만지고 싶은 토끼. 손아귀에 쉽게 잡히지 않은 동물이라 신부님조차 토끼를 보고 갖고 싶어 총을 사용하게 되고 혹 떠돌아 다니는 바타넨이 토끼를 이상한 곳에 사용하지는 않는지 빼앗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입장에서는 그도 이 토끼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식량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까마귀의 존재는 달리 보면 토끼처럼 그저 귀여워 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생각되어도 될텐데 자신의 재산인 식량을 강탈해 가기에 무력한 자신으로 인해 잔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덫을 놓은 것이지만 뚫어놓은 통조림에 목이 끼어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니 토끼를 귀애하는 그의 모습과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쉽게 길들여지는 토끼가 자신을 적대시하는 까마귀보다 낫겠지.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집요함으로 인해 산장 가까이에 은거하는 곰을 찾아 국경을 넘게 되는 바타넨은 어쩌면 토끼를 만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즉흥적인 것 같다. 산장을 고치는 일거리를 맡아서 먹고 살아가니 문명을 완전히 등진것도 아닌 삶, 토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기에 누군가 토끼를 원해서 가져가길 원하면 "그냥 가지라"고 하기 보다 토끼를 따라나서는 그는 정말 토끼가 없으면 못살 사람이 아니라 일탈을 할 수 있게 해 준 토끼가 사라지면 변명할 수 있는 인생의 목적이 또 한번 사라지기에 강렬하게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토끼의 먹이를 숲에서 찾아주고 자신이 돌봐 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족같은 개념으로 생각되지 않으니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공범, 자신이 행하는 일에 토끼도 웃으며 긍정한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의 일면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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