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잃어버린 여덟 가지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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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만년의 시간을 생애 한번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치로란 개에게 물려 광견병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여긴 아이의 인생을 정리하는 모습은 처연하다.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여 거부해 보기도 하지만 내가 생명으로 자라기 전 상태도 만년의 상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의연해진다. '소녀가 잃어버린 여덟가지 이야기'속에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성장기 소녀들의 이야기들을 보는가 생각되다가도 유독 슬픔, 이별,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표지의 상큼한 모습과 다르게 어른의 세계에 너무 빨리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닌가 하여 마음이 슬퍼진다. 

자라면서 내가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잃고 싶지 않기에 내가 가진 행복이 날아갈까 꽉 쥐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늘 죽음에 대한 그림자를 가지고 사는게 아닐까. 자신이 죽을 것을 알게 되어 체념했던 병아리의 눈은 같은 반 미키오의 눈과 똑같기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도 놀라지 않는 아키의 모습은 몸은 아이지만 내면의 세계는 어른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아마 내 눈속에도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 녹아있을텐데 이 아이에게 내 눈빛은 어떻게 보여질까. 그리움이 되어 날 주시하게 될까. 

또래 아이들과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놀던 시절이 그립다.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늘 이리저리 재고 따져야 하는 세상은 늘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다. 다투다가도 다음날이면 미소를 머금고 대하는 아빠, 엄마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마사미. 옆집 메구미네 집에 갓난아이가 들어오면서 히로코가 그 집에 친동생이 아니면 어떠냐 순수하게 생각하지만 옆집 아저씨가 바람이 나서 데려온 아이란 것을 알았을때에도 피가 섞이지 않았기에 투닥 거려도 그저 가짜로 싸운다는 생각에 별 걱정하지 않던 어린시절과 다르게 이제는 조금 자라버린 마사미는 히로코의 장래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결코 별나라의 이야기들이 아닌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일들이기에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이런 일들은 더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단편들이 유쾌함과 발랄함을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닌 어른의 세상을 정확하게 뚫어보는 아이의 눈을 통한 이 세상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가 이야기 했던 말조차 잊혀질 정도로 유치하게만 생각되고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자라게 되나 보다. 어린시절의 내 모습과 이별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시절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알아가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은 듯 하다. 아마도 소녀가 잃어버린 여덟가지 이야기는 나 또한 자라면서 무수히 많은 이별을 했던 그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의 부모님들이 지켜주고 싶었던 그 시절을 아마 하나씩 나도 모르게 저 먼 시간들 속에 떨어뜨리고 왔을 것이다. 이젠 아이를 보면서 내 어린시절을 추억할뿐이지만 시간이 흘러 퇴색되고 말 시간들이지만 그 잃어버리는 시간이 늦춰지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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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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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를 학창시절 머리속에 주입시키며 외워와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음에도 어떤 글씨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아 곤혹스럽다. 그저 추사체 하면 김정희만을 떠올릴뿐이니 감히 내가 이 책과 마주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당대에 크게 이름을 떨쳤건만 그의 자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서얼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안겨준 상우의 자리는 그에게 아픔이었고 초생을 가까이 두지 말아야 했음에도 욕심에 곁에 둔 것이 그녀의 삶에도 멍에를 짊어지게 해 버렸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작은 아버지라 부르며 살아온 월성위궁의 생활을 누구보다 가슴시리게 겪었음에도 상우에게 "대감마님"이라 불리게 되다니 마음자리에 머무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상우는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듯 아픔이고 슬픔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우를 위해 난을 치고 글씨를 적어 팔아 가산에 도움이 되고 싶으나 혼침을 거듭하는 속에서 그저 가슴에 쌓인 말들을 풀어내기조차 쉽지가 않다. 과거를 회상하듯이 혼침을 거듭하는 중에 뱉어내는 그의 삶은 김정희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이름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나 그의 글씨는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와 무늬와 결과 혼이 담겨있으니 오히려 이것이 자식의 앞길에 장해물이 된 듯 하여 마음만 불편할 뿐이니 그 옛날 백파를 찾아가 공을 논하고 이광사의 글씨에 대해 강경하게 논하곤 하던 그의 기백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세월은 그렇게 모난 돌도 둥글게 만드는가 보다.  

어린시절부터 홀로 월성위궁을 지키며 외로움을 자신과의 내기로 풀어냈던 김정희. '이 글씨를 임모하지 못하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자', "몇일만에 이 글을 다 외우지 못하면.." 이렇듯 그에겐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늘 자기안의 존재와 내기를 했다. 천여개가 넘는 붓이 닳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 추사 김정희. 원악도에서조차 글씨를 쓰며 세월을 이겨내고 나약한 마음을 이겨낸다. 글을 쓰는 것은 고문의 두려움도 이겨내고 나를 당당하게 세우지 않았던가. 무릇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할진데 그저 이렇듯 김정희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자신의 곁에서 늘 도움을 주는 이들, 원악도에까지 와서 그의 글씨를 받아가려는 사람들. 세상과 타협하며 살지 않았기에 쓸쓸하지 않은 인생을 보냈는가 보다. 비록 자신이 낳지 않았지만 아들 상무가 있고 초생의 혈육 상우가 있으니 그의 죽은 자리가 그리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편한 길로 가려는 자들에게 크게 꾸짖고 자신의 글씨로 큰 재산을 축적하길 바라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 생애가 후세에도 알려지지 않았는가. 정치적으로 희생을 겪고 비록 그를 제거하려는 정적들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유지를 받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신필로 알려진 그의 글씨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죽는날까지도 글을 쓰고자 했던 그의 글씨들에는 혼이 담겨져 있으니 이 글씨들이 살아있는듯 꿈틀거려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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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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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이 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사람들의 인생은 늘 빼앗기는 삶이었던가. 내가 가진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 없는 이 사회에서 그냥 주어졌던 '자유'는 누군가들에겐 놓치지 않기 위해 움켜쥐려고 했던 아주 소중한 목숨같은 것이었다니. 소작농들의 혼인에 초야권을 가진 성주가 어린 신부를 겁탈하고 아들 아르나우까지 죽이려고 했을때 베르나뜨는 오직 한가지 자유인의 나라 '바르셀로나'로 떠나야겠다는 확고한 생각뿐이었다. 1년하고 하루만 지나면 자유인이 되는 곳. 아마 그곳은 많은 이들에게 꿈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장소만 달라졌을뿐 바르셀로나 역시 하층민들은 여전히 귀족과 성직자에게 핍박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내 아버지에게 했던, 내 조부에게 했던, 내 조부의 조부에게 했던 짓을...또 내 아들에게 당하게 해야 한다니 여기는 결코 꿈의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이의 남편 그라우가 귀족의 신분을 얻기 위해 결혼한 이사벨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분이 낮은 자들에 대한 적개심에 아르나우는 그 가족들의 신발에 입을 맞추며 용서를 구할수 밖에 없었으니 그가 훗날 부자가 되었을때 그라우 가족들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신발을 거둬 불에 태우라 말함으로써 지난날의 자신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했다고 볼 수 있다. 아르나우의 이같은 행동의 이유를 깨달았을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떤식으로든 나는 그의 아픔을 모두 이해할 수 없기에 그가 돈을 가지고 개인적인 복수를 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귀족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준 이사벨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한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이 더 아프다. 세상을 향해 뿌려대는 그의 증오심이 이해가 된다.  

아들의 자유를 위해 그저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구하고자 한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복수, 그것으로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안식? 어쩌면 아버지에 이어 동생 조안까지 잃었으니 더 큰 것을 잃지 않았는가. 환전소 일을 함께 하는 기옘은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며 그에게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음을 강조하지만 노예무역은 절대 안된다고 부르짖는 아르나우의 모습에서 아직은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까 두려웠으니까.  

어머니가 없는 아르나우에게 아버지가 말해준 성모 마리아는 산따 마리아 성당에 늘 있었다. 자신보다 더 크고 무거운 돌을 나르면서도 힘을 내서 한발 한발 뻗어나갈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산따 마리아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귀족과 성직자들의 것이 아닌 모든 까딸루냐 사람들의 성전, 우리를 위해 세운 성전은 바르셀로나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아내 마리아를 죽게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힘을 지닌 알레디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터로 떠났을때도 그의 아내 마리아와 산따 마리아 성당은 늘 그곳에 있었건만 페스트는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이다.  

페스트가 휩쓸고 간 도시에서 돈을 많이 쥐었지만 여전히 자신처럼 삶이 고단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아르나우에겐 시련이 끊이질 않는다. 가진자들의 끝없는 욕심은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여 마지막 구렁텅이로까지 몰고 가는 듯 했지만 어떤식으로든 선이 이기는 것을 아르나우가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을 눈으로 지켜볼수 있어 다행한 일이다. 아버지 베르나뜨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해 주지 않았지만 프란세스까는 아들 아르나우를 알아볼 수 있었고 창녀가 되어 비록 나설수는 없었으나 도움을 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었던 그에게 가족은 남겨줄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귀족이란 무엇이고 신분이란 무엇인가. 이런것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 하게 할 뿐이다. 많은 시련을 겪고 마르와 그의 아들 어린 베르나뜨와 함께 하는 세월은 앞서 살아왔던 그 어떤 삶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리라. 용서하며 지금 내 손에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마르와 아르나우에게 이젠 안식만 있기를. 산따 마리아 성당의 낙성식을 바라보면서 회한에 젖을 이들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시민들의 성당, 이 성당을 위해 무수히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쳤고 자신이 이 성당에 첫돌을 올려놓던 그 감격을 어린 아들이 알아주길 바랄뿐이다. 산따 마리아 성당, 바다의 성당은 그렇게 오늘도 그자리에 서 있겠지.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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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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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추방당하고 이방의 땅으로 쫓겨난 시누헤. 갈대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내려오는 아이를 발견한 키파가 이 아이의 이름을 시누헤라 붙이니 이름에 운명이 새겨져 이름 그대로 모험, 도망자, 금의환향 등의 뜻을 지닌 아이로 자라난 것일까. 한번 나일강의 물을 마신 사람은 다른 물을 마셔도 그 갈증은 해소되지 않은채 나일강을 그리워하게 된다지. 그 어떤 벌보다 시누헤에게는 이방의 땅으로 쫓겨나 두번 다시 테베로 돌아올 수 없고 나일강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혹한 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톤 신을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아케나톤. 아몬을 숭배하여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왕권조차 위태로운 이 시대에 그가 매달린 것은 유일신 아톤 신이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얻어내고자 노력한 파라오. 오랜시간 자신들이 섬기던 아몬 신을 배척할때 사람들은 그를 배척하고자 하였으니 아마 그때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시누헤가 유일한 친구이자 동반자였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득권자와 개혁가 사이의 갈등은 결국 피를 부를 수 밖에 없기에 애초에 평화를 상징으로 내세운다 하여도 그 끝은 역시 피를 봐야만 결말이 나는 것이니 어쩌면 왕권의 약화로 인해 백성들은 더 곤궁하게 살고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게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케나톤을 주인공으로 시누헤가 이야기를 엮어가는 줄 알았으나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케나톤이 아닌 시누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외롭게 살다간 시누헤가 쓴 글이니 주인공이 맞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파라오의 주치의였던 그의 입을 통해 내밀한 파라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기대가 있었으니 어쩌랴. 파라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뒤로 한채 네페르네페르네페르에게 재산을 다 가져다 바치고 부모님의 무덤까지 그녀 손에 들어가니 더 이상 이집트에서 살아갈 수 없는 그는 노예 카프타와 함께 이방의 나라들로 가게 되어 나 또한 그와 함께 길고 지루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돈만 노리는 여인의 행동이 나는 다 보이는데 시누헤의 눈에는 그녀의 아름다움만 보이니 눈은 뜨고 있으나 소경과 다를바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일로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마워 해야할까. 마탄니, 바빌론, 히타이트, 크레타에 기거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무엇보다 호렘헵의 부탁으로 각 나라의 군대의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모험 아닌 모험들을 하고 생명의 위협조차 느끼지만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미네아로 인해 여행길이 고되지 않다. 

여행담, 그를 따라 여러곳을 여행하지만 조금 지루하다. 이집트에 대해 "람세스"란 책을 읽어 조금 익숙하다고 해도 많은 것이 생소하기에 시누헤를 따라가자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아케나톤이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다면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 어디에도 이름이 오를 수 없었던 아케나톤이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되었다. 비록 그로 인해 왕권이 나뉘고 더 약화되었을지라도 남녀평등을 주장한 파격적인 왕이니 노예나 하인 등 백성들에게 그는 우러러 봐야할 존재임에도 그리 환영받지 못했으니 시리아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여자들이 강간당할때 이집트 안의 아톤 신만을 생각하고 숭배했기에 오히려 백성을 지켜주지 못한 파라오는 역사속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것이 아닐까. 

그런 파라오를 보는 시누헤의 심기가 편하지 않았는데 왜 파라오 곁에 계속 머물렀던 것일까. 메후네페르가 말해준 시누헤의 출생의 비밀, 그에게도 파라오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다. 어느나라를 가든 권력, 왕권 이런것들은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뿐이다. 이들의 싸움속에 죽어나가는 것은 역시 백성들 뿐일지니. 네페르네페르네페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기절한 그녀를 사자의 집에 내려놓고 그녀의 파멸을 보고 싶어하는 시누헤. 잔인한 복수로 생각했겠지만 이것이 그녀를 더 부유하게 만들줄이야. 그의 마음속에 늘 품고있었던 그녀에 대한 애증은 다시 이집트로 와 파라오의 두개골 전문의가 된 시누헤가 한 행동중 이것은 분명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렇지만 파라오 아케나톤에게 손수 독을 넣어 바쳐야했던 것에 비할까. 시류에 적절히 편승하여 나아가는 시누헤의 모습은 아케나톤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고 볼 수 없는 행동이다.  

파라오의 곁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았던 시누헤의 인생은 이집트를 떠나게 되었지만 얼마나 할 말들이 많았을 것인가. 늘 가고 싶은 이집트를 가슴에 품고 써 내려간 글은 아케나톤을 추억하기 보단 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외로움을 덜어보려는 노력이었겠지. 세상에 알려지면 안되는 이 이야기들이 자신이 지켜야할 유일한 것이니 꼭 그의 무덤에 숨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이집트인이므로 그정도의 인정은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 그와 함께 한 이 여행길로 나의 마음에도 찬바람이 부는 것 같다. 매혹적인 여행길이 아니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리 썩 유쾌하지 않다. 나 또한 아주 평범하게 역사속에 자취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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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쇼콜라 봉봉 1
캐린 보스낙 지음, 강경이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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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라일라 그녀의 사랑법은 첫눈에 반하는 멋지고 잘생긴 남자들인가 보다. 탄력있는 복근, 쭉빠진 다리 그리고 무엇보다 잘생겨야 한다. 꽈배기 벨트위에 뱃살이 삐져나오는 팀장 로저, 자신을 해고한 사람인 영 아니올시다인 이 남자와 자다니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그것도 20명째 해당하는데 일생동안 갖는 평균 섹스 파트너는 10.5명이라는 통계를 보고 평균보다 훨씬 많은 그녀의 남자들로 인해 마음이 지옥같다. 솔직히 왜 그렇게 평균에 집착하는지 이해 못하겠지만 그녀가 만나온 남자들이 거의 가볍게 만난 존재라 육체적인 사랑으로 시작해서 끝을 맺었기에 그런 마음이 그녀를 괴롭히는가 보다.  

고해성사를 하는데 신부님이 동창생일 확율은 얼마나 될까. 거기다 그 20명 안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확율인셈인데 모든 일을 다 이야기 하니 속은 후련하다만 그녀의 고해성사를 듣는 다니엘 신부는 속이 탄다. 다니엘은 진정 도움을 주고 싶기에 그녀에게 스무 명 남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관계를 가지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십대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결론은 20명을 넘으면 안되겠기에 이 중에 한명과 다시 사귀기를 희망하는 딜라일라. 아~제발 그렇다고 그들의 주소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는건 아니지. 옆집에 사는 콜린의 도움으로 비록 돈을 주고 그들의 정보를 얻지만 추억의 남자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누가 믿나. 

하여튼 내가 할일이라고는 그녀의 한심한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일뿐. 근데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암웨이 다단계에 끌어들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이도 있다. 솔직히 충격이겠지만 딜라일라도 속물 덩어리이기에 그들을 탓할 자격이 있을라나. 솔직한 그녀의 남자들과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느끼지도 못했지만 이 관계들에 대해서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게 문제다. 할아버지조차 마음이 가는데로 아직 '콰아아앙' 심장이 내려앉는 여인은 아니지만 이런 사랑을 하려고 마음 먹는데 헤어진 남자들에 집착하는 그녀. 우주에 있는 닥터 페퍼, 요리학교를 열어 크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왜 그때 잘해보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암 후회가 되겠지.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매트를 만나고자 양귀비씨가 들어간 베이글을 먹고 릴리폰드에 들어가는 딜라일라를 어찌 해야하나. 억지로 꾸며내는 듯한 이야기에 점점 흥미를 잃어버리려고 한다.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보는듯 유쾌하고 로맨스가 가득한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이해가 안가는 여자다. 솔직히 그녀가 만나고 다니는 스무명의 남자들 이름도 외우지 못하겠다. 심지어 개똥을 휴지에 싸서 창밖으로 던졌는데 경찰차 유리에 붙어버리다니 정말 고소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이 상처준 사람들과 만나서 풀어가는 시간을 가진것도 같고 자신을 상처준 매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도 풀어지지만 그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하지도 않을때도 있는 것을 보면 그녀 또한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기에 이젠 누군가에게 뿌리를 내리고 싶고 마음이 가는 콜린이 떠나버릴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은 이제야 자신의 마음이 어디있는지 깨달은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역시 행복은 가까이에 있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찾아다녔지만 마음이 머물곳은 역시 콜린이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행운아다. 첫사랑인 네이트가 나타나 감정의 갈등이 생기지만 분명 잘 해나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추억을 찾아 다닐때 깨달은것이 있지 않은가.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성실하게 마음을 다했는가가 중요하다. 이젠 그녀도 뿌리내리는 사랑, '콰아아앙' 가슴 울리는 사랑을 하겠지? 그녀의 사랑의 떨림이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길 바란다.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된 그녀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20명의 남자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느라 그녀도 나도 지쳐버렸다. 이젠 딜라일라의 멋진 사랑만 보고 싶다. 제발 이런 여행을 또 하지 않길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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