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추사체'를 학창시절 머리속에 주입시키며 외워와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음에도 어떤 글씨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아 곤혹스럽다. 그저 추사체 하면 김정희만을 떠올릴뿐이니 감히 내가 이 책과 마주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당대에 크게 이름을 떨쳤건만 그의 자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서얼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안겨준 상우의 자리는 그에게 아픔이었고 초생을 가까이 두지 말아야 했음에도 욕심에 곁에 둔 것이 그녀의 삶에도 멍에를 짊어지게 해 버렸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작은 아버지라 부르며 살아온 월성위궁의 생활을 누구보다 가슴시리게 겪었음에도 상우에게 "대감마님"이라 불리게 되다니 마음자리에 머무는 자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상우는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듯 아픔이고 슬픔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우를 위해 난을 치고 글씨를 적어 팔아 가산에 도움이 되고 싶으나 혼침을 거듭하는 속에서 그저 가슴에 쌓인 말들을 풀어내기조차 쉽지가 않다. 과거를 회상하듯이 혼침을 거듭하는 중에 뱉어내는 그의 삶은 김정희의 이름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이름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나 그의 글씨는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와 무늬와 결과 혼이 담겨있으니 오히려 이것이 자식의 앞길에 장해물이 된 듯 하여 마음만 불편할 뿐이니 그 옛날 백파를 찾아가 공을 논하고 이광사의 글씨에 대해 강경하게 논하곤 하던 그의 기백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세월은 그렇게 모난 돌도 둥글게 만드는가 보다.  

어린시절부터 홀로 월성위궁을 지키며 외로움을 자신과의 내기로 풀어냈던 김정희. '이 글씨를 임모하지 못하면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리자', "몇일만에 이 글을 다 외우지 못하면.." 이렇듯 그에겐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늘 자기안의 존재와 내기를 했다. 천여개가 넘는 붓이 닳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친 추사 김정희. 원악도에서조차 글씨를 쓰며 세월을 이겨내고 나약한 마음을 이겨낸다. 글을 쓰는 것은 고문의 두려움도 이겨내고 나를 당당하게 세우지 않았던가. 무릇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할진데 그저 이렇듯 김정희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자신의 곁에서 늘 도움을 주는 이들, 원악도에까지 와서 그의 글씨를 받아가려는 사람들. 세상과 타협하며 살지 않았기에 쓸쓸하지 않은 인생을 보냈는가 보다. 비록 자신이 낳지 않았지만 아들 상무가 있고 초생의 혈육 상우가 있으니 그의 죽은 자리가 그리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편한 길로 가려는 자들에게 크게 꾸짖고 자신의 글씨로 큰 재산을 축적하길 바라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 생애가 후세에도 알려지지 않았는가. 정치적으로 희생을 겪고 비록 그를 제거하려는 정적들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었으나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유지를 받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신필로 알려진 그의 글씨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죽는날까지도 글을 쓰고자 했던 그의 글씨들에는 혼이 담겨져 있으니 이 글씨들이 살아있는듯 꿈틀거려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