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 2 - 군주의 자리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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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이 곳에 용들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무섭기도 하겠지만 언어소통이 된다면 더불어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사유재산의 개념이 있는 '용들의 천국'인 중국에서도 용들간에 빈부격차나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지성과 감성을 지닌 테메레르가 중국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모습은 나도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용싱 왕자에 의해 자신이 태어난 곳 중국으로 향하게 되는 테메레르, 물론 로렌스를 떼어놓고 가고 싶은 용싱 왕자의 마음을 테메레르가 헤아려줄리는 만무하니 아예 로렌스를 중국까지 같이 데려가게 된다. 이 둘의 관계는 꼭 부모 자식사이 같다. 아니 부모 자식 사이보다 더 끈끈한 뭔가가 이어져 있는 듯 하다. 1편에 이어 다시 만난 테메레르와 로렌스가 나는 너무 반갑고 기분이 유쾌해진다.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제발 무사히 중국에 들어가야 할텐데.

 

2권은 중국으로 가는 여정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전쟁에서 멀어진듯 하여 약간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그리 평탄한 항해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로렌스를 죽이려는 시도까지 하고 바다에서 사는 큰뱀을 만나기까지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 바다뱀을 무차별 살상해야 했던 테메레르의 고뇌는 내 마음까지 가라앉는것만 같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의 국익에 우선하는 해먼드의 태도는 과연 테메레르가 영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더욱 불안감만 조성하게 된다.

 

중국에 도착하여 테메레르는 어머니를 만나고 가슴에 사랑을 불어넣는 메이의 존재까지 많은 부분이 용싱 왕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로렌스와 테메레르를 떼어 놓으려는 그들의 음모는 산적들이 로렌스와 승무원들이 있는 곳을 쳐들어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이 일어나고 그렇게나 기다리는 테메레르는 밤을 보내고도 돌아오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테메레르의 마음이 변해버린 것일까 초조한 마음의 로렌스, 어린 승무원들이 긴 여정의 항해길에 하나둘 죽어가고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지기만 한다. 테메레르를 놓고 벌어지는 왕좌를 차지 하려는 거대한 음모의 싹은 과연 용싱 왕자에게서 올라오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참상이라는 생각을 하면 거대한 몸집의 테메레르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용들에겐 찰나의 목숨을 가진 인간들의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가소로울 것인가. 치고 받고 싸우는 행위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대가를 지불하고 직접 거래하여 살 수 있는 곳 중국, 과거 시험을 치르고 인간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 않아도 되는 곳,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테메레르에겐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은 곳일 것이다. 더구나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로렌스가 중국에 남아야겠다고 결정했을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영국에서의 삶을 테메레르를 위해 버리는 로렌스의 모습이 처연하기까지 했으니.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테메레르도 로렌스 못지 않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돈독한 정보다 더 깊은 이 둘의 관계는 그래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자신의 승무원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 호전적으로 대처하는 테메레르의 모습은 잔인하긴 하지만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로 멋지기까지 하니 내가 너무 깊이 빠져버린 것일까. 아마 반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난 테메레르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꿔 본다. 로렌스를 제외하고 절대 자신의 등에 태우지 않기에 감히 가져볼 수 없는 희망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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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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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괴. 100억엔이면 대체 얼마야? 범인처럼 나도 라면 단위로 생각하니 어느정도 되는지 감이 오지도 않는다. 다만 저 많은 돈을 가지게 될 유괴단들이 부러울뿐. 이렇게 어수룩한 유괴단들이라면 하루만에 은신처가 발각이 났을텐데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그들이 유괴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새로운 은신처 미스 구의 집에서 이카리와의 한판 승부를 노려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제시할 금액이 작다고 100억엔을 받으라니? 이 간 크신 여사님을 어찌 해야 하나. 골머리가 아픈가 보다. 그들의 두목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사요시와 헤이타는 물론 유괴범의 두목 겐지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생명을 쥐고 협박을 한다고 해도 너무나 인간(?)적인 유괴단들이라 그리 손에 땀을 쥐게 되지 않는다. 가슴이 조마조마 하지도 않는다. 경찰들과 두뇌게임을 하게 되는 할머니의 계획대로 일이 척척 진행이 되기에 그저 손 놓고 보고 있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전혀 긴장감은 없기에 오히려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유괴사건인데 이러면 안되지 싶어 정신을 차리고 보려고 해도 오히려 이 사건이 국가를 상대로 내 권한을 찾기 위한 전쟁이 되어 버려 망연자실해질 뿐이다.

 

몇대를 거쳐 지켜낸 재산, 그리고 82세의 자신의 건강을 놓고 볼때 그녀의 자식들은 약하기만 하고 집안의 재산을 어찌 지켜낼지 걱정스럽기만 한 이때 유괴단을 하늘이 보낸 존재였다고 생각하고 유괴단들을 진두지휘하여 자신의 100억엔의 몸값을 받아내 이들에게 준다는 설정은 과연 충분한 동기가 되는가? 국가적으로 이렇게 대대적으로 헬기까지 동원하고 방송을 이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것은 개인의 욕심일뿐이라 앞장서서 경찰과 한판 승부를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괴단들이 갱생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으나 사건이 너무 커져 버렸다. 애초에 100억엔을 들먹였을때부터 결코 작은 사건은 아니었으니.

 

할머니가 설명하는 계획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유괴범들보다 더 이해를 못하겠으니 나중에 설명을 해 줘도 이해불가,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래가지고는 밥도 못 챙겨먹겠다. 100억엔을 받아서 이들이 대체 어떻게 쓸 것인가도 관심사였는데 힘이 쭉 빠지게만 만든다. 유괴단 일당들은 유괴를 하는데까지는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 많은 돈을 쓰기엔 무리다. 오히려 어떻게 써야할지조차 할머니에게 물어야할 정도이니 참으로 난감할 뿐이다. 유괴를 했기에 그 죄 값을 받아야 함에도 은근슬쩍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할머니를 유괴한후 모든 계획은 겐지가 아닌 할머니의 머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범죄가 되지 않은 것일까. 이젠 이들의 대모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대로 덮어버리는데 이카리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동조하다니 이야기가 사실 김 빠지듯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에 허무하기까지 하다. 유괴부터 할머니의 계획이라 생각하는 것에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 정도이니 애초에 생각한 그럴싸한 계획같은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국가가 나에게 해 준것이 무엇이었냐?"로 귀결되는데 유괴사건을 통해 자신의 몸값이 그정도 밖에 안되냐고 호통을 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위기에 닥쳤을때 가족들에게 난 어떤 존재로 부각되는지 돈이냐 목숨이냐를 놓고 시험하는 모습과 이것이 재산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까지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벌리게 되는 이 승부에 승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생명이 관련되었기에 할머니의 안전만을 생각한 경찰들은 그저 바보가 되지 않았는가. 대체 이 책의 결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난 아직도 모르겠다. 생명이냐 돈이냐의 문제가 더 부풀려져 그 속에 가지고 있어야할 진실이 사라져버리니 그저 가볍게 읽어야할지 어찌 생각해야할지 머리가 복잡해지고 조금 아쉽게 생각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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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애런 베이츠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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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의 곁을 떠나 양부모님들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해서 다행이다. 비록 낯선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무서워서 오직 자신이 입었던 파란 재킷을 찾아 헤매이는 모습이 눈 앞에 보여서 애처롭지만 어린시절을 기억했을때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 다행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부모님을 찾아 오는 그는 어린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두 꿈인줄 알았으나 그 모든것이 실제했었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나는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기억들이 모두 끊어진다. 아주 어릴적의 모습은 없고 불쑥 커버린 내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솔직히 거의 떠오르지 않아 그가 부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렇게 기억이 가물거릴 수 있는지. 한국에서 몇년 지내지 않았지만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함께 함에 그것이 나중에 생각했을때 그에겐 작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당당히 입양되었다는 것을 밝히다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온 형은 부모님을 찾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의 자취를 찾으면서 그의 주위엔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투사 소영의 도움으로 광주 고아원에서 보살펴준 분들을 만나고 9개월간의 위탁가정에서 생활한 그에게 이들도 또 다른 가족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은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은 없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이름 "도진철"로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며 부모님을 찾았지만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고 그저 찾으려고 시도를 했다는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기에 마음을 다 잡아본다. 그를 통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아주 아주 큰 행복임을 깨달아간다. 내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원망하며 살아온 시간도 있는데 그런것이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루시박이라는 분을 통해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의 느낌은 솔직히 무덤덤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느낌과 똑같았겠지만 그를 한국으로 오게 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겠지. 이수해야할 학점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런 행동을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한국이란 곳은 그에겐 가깝고도 먼나라일뿐이었으니. 미국에서 생활한 세월이 더 많은 그이기에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아버지가 둘인 것이 어떠냐"고 그리고 사형수인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다. 가족이라면 살인을 했더라도 보듬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세간의 인심은 그렇지 않다. 군에 있을때 아내가 죽고 남아있는 아이가 걱정되어 탈영을 결심했던 아버지, 그 뒤로 아들을 찾기 위한 세월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온 세월들이라 할지라도 그건 변명일 뿐이다.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났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심정은 지난날 성실히 살아오지 못한 세월에 대한 회한에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가지만 아들의 마음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I love you" 아버지의 입을 통해 이 말을 들었을때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국말로 하지 않고 몇번을 연습하고 겨우 꺼낸 이 말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사람의 거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마 한국과 미국의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만남에 손과 손을 마주 잡은 그 체온속에 아무말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그 시신을 아들이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버지의 호적아래 놓이고 진정한 성낙수의 아들 성진철이 되었을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버지에게 또 다른 아들 세명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을때 입양된 그 세 아들의 아버지란 것을 들었을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 아들의 자리를 그렇게라도 채우고 싶었을까. 죄책감이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에 대한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아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을 지금은 그저 진철이를 이렇게 눈 앞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먼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날아오는 아들도 있다. 가까이에 있지만 전화 한통 잘 하지 않는 무심한 자식인 내가 있다. 분명 가슴으로 뭔가가 느껴지고 따뜻해지는데 나와 부모님 사이의 거리도 미국까지의 거리 못지 않은가 보다. 쉽게 다가서는 것이 어렵다. 아이적의 부모님에게 의지하던 그런 마음이 없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나도 가족이 있고 나와 부모님과의 거리만큼 훗날 내 아이와 거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는 것도 어색하나마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몇번 외쳐보았지만 밖으로 나오진 않는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작아서 그런것은 아닌데 "아시겠지"란 마음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은 그런 것이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 손만 꼭 잡고 있어도 전해지는 것. 그것이 피와 살을 나눈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정말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사랑한다"라는 말을 너무 늦게 해 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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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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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그저 바람결에 흔들리는 비닐시트를 상상했는데 그것이 나의 모습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원스러운 바람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줄 알았던 내 마음속에서 팡~하고 무언가가 터져나가는것 같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이쁜 물건으로 날 꾸미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세상 반대편에서 총성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어도 리모콘으로 작동하며 텔레비전으로 시청하는 나, 이것이 큰 행복이었다니. 알고 있었음에도 외면해왔던 세상들. 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왔기에 가슴속에서 부끄러움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리카의 행동에 짓눌렸던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그녀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자격이 있다면 말이다.

 

에드가 현장에서 총에 죽을뻔한 소녀를 몸을 던져 구한뒤 그녀의 인생은 암흑천지다. 이혼하기전이었다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그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이라도 할 것을 헤어진 아내라는 자리는 타인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함께 잘때 피부에 타인의 몸이 와 닿는것조차 꺼리던 그가 소녀의 몸을 안고 그 체온을 느끼며 죽어갔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어린시절 가정부와의 신체적인 접촉도 금지당했던 그였기에 UNHCR에서 일하는 모습은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여진다. 포근한 침대보다 현장에서 난민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에게 리카는 잠깐 머물기를 원하는 존재였을까. 어김없이 휴일을 맞으면 돌아오는 그를 기다리는 그녀는 이미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아내의 자리에서 바라볼 뿐이라 이것이 두 사람 사이에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에게 안락한 가정의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그가 죽고 그녀가 향한 곳은 아프간, 어쩌면 그의 일을 대신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분명 잘 해낼것이라 생각된다. 현장에 투입되기를 그렇게 거부했는데 '죽음'이란것이 일상사가 되어 있는 곳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온 세상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가 바닥에 고정되어 더이상 날리지 않는 날이 꼭 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난 늘 같은 삶의 반복으로 지루하다고 느끼는 인생을 어딘가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산다. 집안일을 하고 남편을 기다리며 음식을 하고 늘 고만고만한 시간을 보내는 난 에리코의 모습과 비슷하나 그녀는 나와 같은 사람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 버려진 개들의 안락사를 막고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물론 에리코도 처음엔 이런 일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비비와 걸을 키우면서 진심으로 새식구를 만나기를 바라고 이 개들로 인해 시댁과의 소원했던 거리도 좁혀지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아이가 없는 상황에 개를 키우는 모습은 시아버님의 마음을 더 차가워지게 했으나 점점 마음을 열고 다가와 그녀에게 큰 힘을 주는 존재가 된다. 개의 사료를 사기 위해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밤에 술집을 나가는 에리코의 모습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시간적으로 개 산책을 시키는 오전, 오후 시간을 피해 선택한 일이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라지만 내가 바른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건만 술집에서 일하는 모습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꼭 술집이어야 했냐는 생각, 한발 나아갔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모르지 않지만 아직은 난 에리코에게 맘적으로도 다가서지 못하나 보다.

 

여기 단편이야기들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동떨어진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될수도 있다. 흘러가듯이 살아온 인생에 학창시절 예전에 야구부였던 친구들과 10년마다 만나 야구를 하자는 약속은 직장을 가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현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릴지 모르지만 오로지 이 하루를 위해 10년을 달려온것처럼 또 그 뒤 10년을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야구를 위해 과연 직장도 버릴 수 있을까. 남는 인원이 없어 한명이라도 빠지면 무산될 위기에 있는 야구시합은 이시쓰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다. 물론 직장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을 위해 빠지긴 어렵다. 고객 클레임이 들어오면 가서 사죄해야하는 그의 일이 내일 있을 시합날에도 처리해야할 일이 한 건 생김으로써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젊은 시절 좌익수였던 겐이치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이 야구시합에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시쓰가 시합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 인생이란 알 수 없듯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타성에 적당히 젖어 살던 늘 변명하며 살던 그에게도 다시 야구공을 잡을 기회가 주어지니 상쾌한 바람이 가슴속에 들어오는 듯 유쾌해진다. 이 작은 것이 큰 행복을 불러올수도 있다니 놀라울뿐이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살면 되지. 최고가 되고 싶었으나 그저 최고를 옆에서 돕는 사람이 되어 그가 빛날 수 있게 돕는 직업을 선택하게 될수도 있고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이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이라곤 이것이다. 똑바로만 가는 인생, 이것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닐 것이다. 험한 고개도 넘고 내리막길도 걷는 것이 인생임을 알기에 어린시절 막연히 동경하던 어른이 되어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때론 삶이 고단해질때 이 책을 펼쳐본다면 희망이 생기고 손안에 힘이 생겨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세상 이런 마음이라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테니까. 자, 내 안에 남들이 모르는 숨겨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젠 단단하게 묶어뒀던 나를 풀어 바람에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하자.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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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패밀리 -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생생하고 놀라운 가족의 비밀!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정은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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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비밀이라곤 하지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과학적으로 접근한다고 보면 될까. 호흡을 하는 것도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교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내 몸 안에서 어떤 작용에 의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지 설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놀라웠나 싶은게 아니라 이런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내가 과연 숨은 제대로 쉬고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오렌지 주스에도 오렌지가 100%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알지만 과연 사람이 먹을수 있는 것을 넣어야 말이지. 펄프워시, 아세톤(매니큐어 제거액의 활성 화학물질), 에틸 아세테이트나 포름알데히드 또는 이와 유사한 화학물질을 첨가하기도 한다니 정말 어찌 먹으란 말인가 알고는 못먹겠다. 이러고 보면 지구상에 먹을 수 있는게 있긴 하나? 이건 음식에 장난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기가 먹는 이유식에조차 그러니..도저히 언급은 못하겠다. 아마 식사전이라면 먹기가 힘들어질테니.

 

얼굴에 산다는 모낭충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매체를 통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실제 그녀석들을 비춰주면 숨쉬고 살아가는게 고통스러울터 안보는것이 나을 것 같다. 얼굴 이리저리 움직이는 벌레라니 끔찍하다. 내가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은 세균들을 공기속에 뿌려놓고 있을까. 이들의 이동경로와 어디서부터 발생했는지 알게 되는건 지식이 더 깊어져서 좋을지도 모르지만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솔직히 두려워진다.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읽고 나서 금세 잊어버리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따라가다 보면 꼭 인체속의 신비들을 목격하는 것 같다. 3차원적인 상황을 내 눈으로 실제 볼 수 있다면 더 이해가 빠르겠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생생하고 놀라운 가족의 비밀이라고 하기엔 크게 흥미를 끄는 내용들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실생활에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아니다 보니 집중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리라.

 

재밌게 꾸미려고 애쓴거 같은데 독자의 지식이 이렇게 낮으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모기 한마리. 작은 세균에 대해서도 놓치고 지나가는 법이 없다. 암모기가 어떻게 아빠를 공격하고 아기의 배에 안착을 하여 피를 먹는지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메스'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인지 잘 와닿지 않아 생경스러워 이런 내용인가 하면서 적당히 읽어나가게 된다. 가족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세세하게 적은 사람이 있을까. 움직임 하나 하나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과학적인 것에 근거하여 전해주다니 놀라울뿐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이 이유가 있는 듯 생각되어진다. 아마 이유가 있겠지. 많이 놀랐나 보다 "놀랍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보니.

 

과학사에 비춰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일반상식들을 다루고 있을줄 알았으나 전혀 예상밖이었다. 음식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언급을 할때는 "사실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줘도 무리가 없어 책이 나온거겠지? 도대체가 먹을게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게 된다. 도처에 깔린 위험요소들에 휩싸여 나는 살아남을수 있을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욕실수건을 잘 관리 하는 것 내지는 집안을 청결히 하는 것일텐데 이 집안조차 세균이 얼마나 많은지 그저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다행인 것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것들이 내 눈앞에 다 보인다면 어찌 살까 가족의 숨겨진 과학과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구나 알아가게 된다. 우리집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겠지.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보면 된다. 얼굴에 있는 모낭충은 제발 이 기억속에서 지워야겠다. 이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근질근질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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