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애런 베이츠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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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의 곁을 떠나 양부모님들과 함께 한 세월이 행복해서 다행이다. 비록 낯선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무서워서 오직 자신이 입었던 파란 재킷을 찾아 헤매이는 모습이 눈 앞에 보여서 애처롭지만 어린시절을 기억했을때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 다행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부모님을 찾아 오는 그는 어린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두 꿈인줄 알았으나 그 모든것이 실제했었다는 것에 감격스럽다. 나는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기억들이 모두 끊어진다. 아주 어릴적의 모습은 없고 불쑥 커버린 내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솔직히 거의 떠오르지 않아 그가 부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렇게 기억이 가물거릴 수 있는지. 한국에서 몇년 지내지 않았지만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함께 함에 그것이 나중에 생각했을때 그에겐 작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당당히 입양되었다는 것을 밝히다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온 형은 부모님을 찾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부모님의 자취를 찾으면서 그의 주위엔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투사 소영의 도움으로 광주 고아원에서 보살펴준 분들을 만나고 9개월간의 위탁가정에서 생활한 그에게 이들도 또 다른 가족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은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은 없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이름 "도진철"로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며 부모님을 찾았지만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고 그저 찾으려고 시도를 했다는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기에 마음을 다 잡아본다. 그를 통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아주 아주 큰 행복임을 깨달아간다. 내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원망하며 살아온 시간도 있는데 그런것이 얼마나 죄송스럽던지.

 

루시박이라는 분을 통해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의 느낌은 솔직히 무덤덤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느낌과 똑같았겠지만 그를 한국으로 오게 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겠지. 이수해야할 학점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런 행동을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한국이란 곳은 그에겐 가깝고도 먼나라일뿐이었으니. 미국에서 생활한 세월이 더 많은 그이기에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아버지가 둘인 것이 어떠냐"고 그리고 사형수인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다. 가족이라면 살인을 했더라도 보듬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세간의 인심은 그렇지 않다. 군에 있을때 아내가 죽고 남아있는 아이가 걱정되어 탈영을 결심했던 아버지, 그 뒤로 아들을 찾기 위한 세월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온 세월들이라 할지라도 그건 변명일 뿐이다.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났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심정은 지난날 성실히 살아오지 못한 세월에 대한 회한에 가슴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가지만 아들의 마음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I love you" 아버지의 입을 통해 이 말을 들었을때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국말로 하지 않고 몇번을 연습하고 겨우 꺼낸 이 말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사람의 거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마 한국과 미국의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만남에 손과 손을 마주 잡은 그 체온속에 아무말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죽고 그 시신을 아들이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버지의 호적아래 놓이고 진정한 성낙수의 아들 성진철이 되었을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버지에게 또 다른 아들 세명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을때 입양된 그 세 아들의 아버지란 것을 들었을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 아들의 자리를 그렇게라도 채우고 싶었을까. 죄책감이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에 대한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아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을 지금은 그저 진철이를 이렇게 눈 앞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먼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날아오는 아들도 있다. 가까이에 있지만 전화 한통 잘 하지 않는 무심한 자식인 내가 있다. 분명 가슴으로 뭔가가 느껴지고 따뜻해지는데 나와 부모님 사이의 거리도 미국까지의 거리 못지 않은가 보다. 쉽게 다가서는 것이 어렵다. 아이적의 부모님에게 의지하던 그런 마음이 없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나도 가족이 있고 나와 부모님과의 거리만큼 훗날 내 아이와 거리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는 것도 어색하나마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몇번 외쳐보았지만 밖으로 나오진 않는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작아서 그런것은 아닌데 "아시겠지"란 마음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은 그런 것이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 손만 꼭 잡고 있어도 전해지는 것. 그것이 피와 살을 나눈 사람들의 마음인 것이다. 정말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사랑한다"라는 말을 너무 늦게 해 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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