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고대풍속사 - 고대사를 이해하는 즐거운 상상력
황근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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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을 좋아하는데도 학창시절에는 연도별로 외우는 것들이 왜그렇게 따분하기만 했던건지 우리나라의 역사이건만 정말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숨겨진 야사들을 이야기 해 주실라치면 눈이 번쩍 잠이 쏙 달아나니 역시 재밌는 이야기는 참으로 달콤했다. '엽기 고대풍속사'는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웃음이 묻어나는 책이다. '쪽수'니 '생얼'이니 소위 방송용 언어가 아니라서 가벼운 느낌도 있으나 내 머릿속에는 쏙쏙 들어오니 만족스럽다고 해야겠지?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왜이리 따분한가. 재밌으면 좋을텐데'란 생각 자주 했기에 말그대로 '엽기'란 말이 들어가지만 나름 역사속의 흐름을 크게 거스르진 않기에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신라의 선덕여왕에 대한 이야기들은 세간에 알려진 것도 있지만 그 배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깊이 알지 못했기에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선덕여왕, 나는 남자들을 제치고 여왕이 왕좌에 올랐다는게 뿌듯하기도 했는데 그녀가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에 얼마나 진저리를 쳤을지 집권 초기부터 부딪힌 뿌리 깊은 남성 우월주의에 대해 불만이 얼마나 깊었을 것인가 짐작이 간다. 왕족이라도 여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나 보다. 1년에 한번씩 치러지는 전쟁과 반역의 무리들, 아마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였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까. 선덕여왕의 '옥문곡 예언 이야기'의 숨은 속내를 알고 보니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일연'하면 '삼국유사'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주입식 교육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는 깊은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유독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냉철한데 아무래도 세월이 지나면서 역사가 조작되었다는 의심과 함께 단군신화에 담긴 비유와 상징을 읽어내려는 우리네 노력이 게으르다는 저자의 지적이 맞을 것이다.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찾아서라도 읽는 사람이라 좀 부끄럽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등한시하며 단군신화 속에 숨어있는 상징이며 비유를 알아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니 내 나라 역사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었음을 인정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최근에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통해 풍백, 우사, 운사의 단어가 귀에 쏙 박히고 광개토대왕 이야기에 집중하며 배용준을 그려보게 되니 더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도 '말도 안된다'라는 생각과 화려한 장면들을 보며 그저 "멋지다"라는 감탄사만 연발했는지라 역사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이젠 꺼려지게 된다. 우스개 소리로 상황을 연출하고 진지하게 역사적 배경들을 가르쳐주는 '엽기 고대풍속사'는 현대물에 알맞게 각색했음에도 그 역사적 무게는 지니고 있기에 결코 가볍게 대할 책은 아니다. 아울러 역사의식도 끌어내기에 살아 숨쉬는 '진짜' 고대사라는 책의 소개에 거짓은 없는 것 같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학교에서 지겨워하며 외웠던 역사가 조금은 관심이 가는 분야로 바뀔테니까. 내 나라 역사를 배우는데 이렇게 즐겁게 배우면 안되는 것일까. 꾸벅꾸벅 졸면서 들었던 국사시간에 배운 연도와 그때 일어난 사건들이 이젠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으니 '엽기'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이렇게 즐겁게 수업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잠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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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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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다는 것.

아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질때, 이젠 돌아갈 길마저 보이지 않을때 내 앞에 그어진 선을 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아니 넘을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과 함께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게 될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다른 길도 있었지 않을까. 정말 내 등뒤에 문이 다 닫혔던 것일까. 이젠 새로운 문을 열수 밖에 없을까. 새로운 문은 과연 나를 향해 활짝 열려질 것인가.

 

도박과 여자에게 미쳐서 가족을 챙기지 않는 남편을 목졸라 죽인 야요이, 뭐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한 배신과 명치에 날아든 남편의 주먹질로 울분을 느꼈을테니까. 그런데 그 뒤로 생기는 일들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사람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본 느낌? 그랬다. 아마 내가 본 것이 사다케의 눈속 늪에서 살고 있는 그 괴물과 닮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끝으로 달려갈수록 나의 가슴은 두근두근 긴장감에 심장이 오그라들것 같았다. 야요이의 남편인 겐지의 시체처리를 맡은 마사코의 모습이 끔찍하기는커녕 나는 그녀가 사타케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를 아무일 없이 멀리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가즈오와 브라질로 함께 떠나길 더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 한번, 그래 그 단 한번 겐지의 시체를 토막내어 처리하면 끝일줄 알았을 것이다. 시체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구역질날만큼 끔찍했지만 나름대로 야요이를 동정해서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런데 자신이 남편을 죽이고도 오히려 시체를 토막낸 마사코와 요시에에게 화를 내고 끔찍해하는 마음은 뭐란 말인가. 돈을 지불했다는 떳떳함인가.

 

문제는 '돈'이었던 것 같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요시에에겐 누워있는 시어머니와 딸 둘, 큰딸은 손자를 맡기고 가질 않나 집에 와서 손자를 데려가면서 숨겨둔 돈을 갖고 가질 않나 이사도 해야하는데 돈은 없고 요시에에게는 시체를 처리하고 받는 돈이 없으면 안될 상황이었기에 이해가 간다. 명품에 눈멀어 있는 구니코조차도 돈을 빌리러왔다가 함께 합류하게 되는데 왜, 마사코는 이 일에 직접 나서게 되었던 것일까. 남편과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이지만 각자 따로 행동하는 그집에서 마사코는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이런 상황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20년간 일한 직장에서 자신보다 일에 능숙하지 못하고 뒤에 들어온 남자직원조차 자신보다 더 높은 직급을 가지는 것을 보고 남성에 대해, 사람에 대해 뼛속까지 그 믿음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역시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부딪쳐야만 이 일을 끝낼 수 있을까. 시체를 보면 구역질이 나고 무섭지만 물건으로 생각한다 그저 일일뿐이라고 생각하고 처리하는 마사코. 그러나 겐지의 시체를 해체하고 모두들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더이상 감추지 않는 욕망이 몸 전체에 발산되는가. 복수, 그 복수에 대한 복수. 끝이 없어 보인다. 멈추고 싶긴한데 상황은 점점 더 늪속으로 나를 끌어당기게 된다. 난 왜그렇게 구니코가 미운것인지. 시체를 버리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경찰에 발각되고 그로인해 겐지와 싸움을 벌렸던 사다케가 용의자로 떠오르게 되다니. 이것이 그들의 목을 죄는 일임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다른이에게 혐의가 돌아가는 것을 오히려 야요이는 기뻐하지 않았는가. 경찰보다 더 치밀하게 다가오는 제 3의 인물, 사다케가 정말 무섭다. 겨우 쌓아온 자신의 인생이 무너졌으니 진범을 잡겠다는 그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으니.

 

침착해야하는데 살인을 하고 시체를 처리한 그들에게 혐오감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나도 어느새 그들과 공범이 되어 있었던가. 남편이 죽고 점점 화려하게 변해가는 야요이가 싫고 다른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협박만 하는 구니코가 싫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마사코에게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니 이 사건이 100% 완벽할 수도 있었건만 표면화 되는데 화가날 정도였다. 내 눈속에도 괴물이 살고 있는가. 세상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젠 벗어났다고 생각했을때 더 깊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으니 역시 죄를 짓고 행복할 수는 없었나 보다. 구니코에게 돈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주몬지의 존재도 이들에겐 결코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공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니 이들을 그 누가 벌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멈출 수 없는 현실을 어딘가에 세차게 부딪혀 멈춰버리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그 어떤 존재를 보았으므로 멈출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문을 열고 아무일 없었던듯이 살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단지 꿈일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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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필요한 주문
지수현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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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 눈에 약해빠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울면 안된다"는 주문을 많이 외워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두려워 '연주'처럼 도망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어느순간 내가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던 늘 나를 부를때면 "~년"을 붙이지 않고선 부르지 않는 그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나의 모습에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조차 끔찍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연주가 내게 경주가 내게 "친구야~"라며 다정스레 나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왜이리 힘든것인지 한숨만 푹푹 나오게 된다.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을 수 있지. 그런데 이건 너무하잖아.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감정싸움에 자존심 싸움만 해야하는 거냐구. 그 중간에 왜 내가 끼어야 하냐고 소리치고 싶다 정말 바보같은 곰팅이 연주야, 경주야"

 

친구에서 연인이 된 이 두사람의 사랑은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금은 가을이건만 따뜻한 봄이 온 듯 꽃향기가 코끝에 머무는 듯 하다. 연주가 더이상 아파하지 말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한 상황이 올때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듣고 시럽을 잔뜩 넣은 냉커피를 마시면 괜찮았는데 헤어진지 13개월만에 만난 경주 앞에서는 이 처방도 왜 들어먹지 않는건지 더 강력한 주문이 필요한가 보다. 경주의 핸드폰 번호를 아직 저장하고 다니고 마음에서 밀어내지 못했지만 '정말 잘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엔 역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아파하는데 왜 헤어진 것일까. 두사람이 헤어진 이유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지 그 이유가 화목한 가정에서 그늘 없이 자란 밝은 아이가 좋고 연주의 아버지가 아프시니 그것이 훗날 손자도 그 유전인자로 인해 아플까 앞서 걱정하는 경주 어머니의 반대 의견을 연주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아마 연주는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밉고 싫지만 가족이라 거부할 수 없기에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고 그저 경주를 놓아버리기로 한 것일까. 경주로서는 쉽게 물러서고 모든 것을 끝내려는 연주에게 배신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버지가 가진 당뇨인자를 받게 될까 걱정인 연주는 훗날 자신이 아프면 병간호 해야할 경주가 힘들어지기에 놓아버렸다고 할지 모르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간 병원에서 다시 재회하게된 경주, 그러고 보면 밉긴 하지만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 아버지한테 고마워해야 하는게 아닐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고 지친 어깨를 그에게 다시 기댈 수 있었으니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이지만 한가지 좋은 일은 하고 떠나서 다행이다. 이 둘의 사랑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번의 시련으로 그 사랑이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헤어진 13개월동안 새로운 사랑을 하지 않고 여전히 그리워했기에 다시 이루어질 수 있었으니 어쩌면 잠깐의 헤어짐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두사람외에 등장하는 병원장 아들 송도경과 그의 애인 청순녀, 그리고 연주와 헤어지고 섬으로 떠난 경주가 근무한 해 맑은 요양병원에서 환자로 있던 청순녀. 송도경과 청순녀의 등장은 우연성이 짙은 얽힌 인연의 고리로 보이지만 오히려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생각이 들어 아쉽다. 청순녀가 열일곱번 죽었던 사연에 대해 해 주는 이야기들이 경주의 마음을 울리지만 뜬금없이 경주를 찾아온 청순녀의 애인이 송도경이라니 이 두사람이 애인사이라는건 불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로 어색하기만 하다. 연주가 경주의 애인이 청순녀라고 오해하고 경주가 현재 연주의 곁에 왠 연하남인 도경이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이 두사람의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긴 하지만 말이다.

 

연주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와 경주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서로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에 중복되어 그런지 그 감동이 반감되기도 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듣는게 아닌 내가 모르는 사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시련을 겪어낸 아픔을 가진 두사람이 앞으로는 헤어지는 일 없이 이쁜 사랑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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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라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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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보이는 여인의 모습에 왜이리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일까. 괴기단편들이 쓰여져있는 이 책은 '붉은 죽음의 가면' 이후 두번째로 만나는 기담문학 고딕총서중 하나이다. 겁이 엄청 많은 내가 괴기단편선이라니 놀랄일이다. 속으로 삼켜야 하는 공포심에 직면하여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오로지 책장을 빨리 넘기는 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인정하려고 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 유령에 대한 존재는 확실히 없다고 단정짓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확실히 보았다"고 이야기해도 믿지 않고 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인정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100% 부정하지도 못한다. 혼자있을때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느낌은 얼마나 무서울까. 선잠을 자다 깼을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장이 홀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을땐 소름이 끼쳤겠지. 창문도 다 닫힌 그 곳에서 책장이 넘어간다니 자신조차 믿기 힘든 이 현상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방안에 놔둔 물이 다음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이한 이 현상으로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 무언가에게 '오를라'라고 이름붙여 부르고 그것이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믿는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쳤다"고 부정하고 싶은가? 아마 내 안에 있는 공포심이 그것을 부정하라고 말하고 있겠지만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내가 만든 허상이 내 목을 옥죄어 오는 것이겠지.

 

예나 지금이나 괴기소설, 공포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나 보다. 공포영화를 보고 괴기소설을 보며 소름끼치는 것들을 간접경험 하고자 하는 욕망은 왜 생기는 것일까. 어린시절부터 할머니 곁에 모여 무서운 이야기들을 듣곤 했지 않나. 아마도 내 안에 감춰놓은 사악한 본성을 다른이를 통해 맛보고 싶은 것일까. 이 책에는 기괴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여 약한 정신력으로 공포심에 있지도 않은 것들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스스로가 파멸해 가는 것이다. 아마 있지도 않은 존재에 대해 인간들이 두려움을 가지는 한 이런 장르의 소설은 끊임없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공포'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도 모두 나 스스로가 만드는 허상임을 알지만 끊임없이 나를 잡아채는 이 느낌은 유쾌하지 않기에 어서 벗어나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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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생각하라
정운찬 지음 / 따뜻한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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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서 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왔기도 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부끄럽고 아직은 인생을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먼 꿈같은 일로 생각될 뿐인데 '가슴으로 생각하라'를 쓴 정운찬님의 글을 대하고 보니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지금은 어느정도의 위치에 오른 사람의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어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자신에게는 인생의 한부분이겠지만 난 그때의 역사적인 상황도 함께 볼 수가 있어 더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슴으로 생각하라'

그저 막 내뱉는 말이 아닌 인생을 어느정도 살아본 사람이 하는 이야기라 가슴을 울린다. 솔직히 너무 부러워서 시샘도 나지만 찬찬히 읽고 있노라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정도의 위치에 우뚝서기 위해선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일 그의 곁에서 가족은 물론 학교에선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용기를 북돋아 주고 희망을 주었기에 한편으론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하겠다.

 

솔직히 이 책은 정치적인 문제나 한국의 앞날에 대한 저자의 희망이 함께 실려있어 내가 읽기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자라온 어린시절 이야기나 유학생활 이야기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라면 질색하는지라 완전하게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을 통해 듣는 이야기들은 나의 인생에 분명 밑거름이 될 수 있기에 얻을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되리라 생각되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인생이 무엇인가. 늘 생각하는 논제이건만 내 눈에 우뚝 서 있는 성공한 사람들도 그리 평탄하게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닌가 보다. 가난하고 풍족하지 못한 삶에 유학까지 간 저자이고 보면 공부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여 힘들어도 잘 버텨냈겠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힘들어도 힘든줄 모르고 견뎌왔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나의 삶은 어떠한가?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기에 무지 속상한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으니 참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다 아는 저자의 인생과 대조적으로 보잘것 없는 내 삶에 고개를 들기가 힘들다. 누구를 원망할까 다 내가 만든 결과물인것을.

 

나도 좀 더 나이가 들었을때 내 인생에 책임을 지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후회만 가득한 삶이 아닌 성실한 인생을 살아가며 아직은 소진할 열정이 남아있는 삶을 바라고 싶다. 늦지 않았음을 알기에 이젠 가슴으로 생각하며 한발짝씩 걸음을 내딛여보고자 한다. 청소년들에겐 이런 책들이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책 보다는 힘들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 겨울을 어찌 날까 걱정인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건 아무래도 나에게는 좀 난해한 이야기로 다가와서일테고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더 현실성있고 공감할 수 있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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