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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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쿠다 히데오는 어떤 심각한 문제라도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사람인가 보다. 도모미에 대한 설레는 감정을 망상으로 발전시키는 하루히코의 모습은 솔직히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표면화 되었을때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히코는 중년의 나이긴 하지만 입사하는 여직원중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울때 설레는 감정을 가짐으로써 가슴이 콩닥거리는 젊은시절의 열정을 다시금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귀엽다고까지 느껴진다. 도모미가 야마구치와 함께 있는 상상을 할땐 눈은 시계로 계속 향하게 되고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결국 도모미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묘사가 너무 탁월하다. 하루히코처럼 똑같은 감정에 조바심내는 야마구치의 모습 또한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온다.

 

치고받고 싸움까지 하는 이 두사람이 우습긴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서 좋다. 결혼한 유부남이긴 하지만 설레는 상대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하고 좋아한다고 고백하려고 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이런 어수룩한 모습을 마누라에게 다 들켜버리긴 하지만 그만큼 꾸밈없는 모습이기에 남편을 이해하는 노리코의 넓은 마음도 이뻐보인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마도 머리카락을 다 뽑아 버릴지도 모른다. 나 또한 멋진 사람에게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고 몰래 간직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용서를 못하는 옹졸한 사람인 것이다.

 

"마돈나" 이 책에는 자식의 모습도 보이고 나이가 들어 중년의 모습이 된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회사에서는 과장이나 국장의 자리에 있는 어느정도 성공한 위치에 있지만 가정에서는 나약하기 그지 없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늙어버린 아버지의 등을 보며 아버지의 외로움을 짐작하는 아들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중의 일이지만 마음이 슬퍼진다. 요시오는 회사원이 되어 가족을 위해 애쓰는 동안 자신의 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길 없고 아들은 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대학조차 포기한다고 한다. 부모된 입장으로 자신처럼 회사원이 되어 성공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월급쟁이가 된게 정말 좋았느냐고" 되묻는 아들의 모습은 상급자에게 굽실거리고 힘들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지만 이지마 부장의 만행에 불끈하여 싸움까지 하게 되니 아들의 꿈을 무작정 꺽을 수가 없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사노조차 이지마 부장에게 맞춰주는 것을 보면서 역시 사회는 인생은 그런것이라고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몸부림이지 않을까. 쓸쓸한 마음이 느껴진다.

 

직장을 다니다보면 전통이나 관례니 하여 어느정도 부정한 일에 타협도 하게 된다. 목소리를 높여 자신이 이런 관행을 타파하고 싶지만 역시나 더 높은 성공을 위하여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성공을 위해 굽히는 모습엔 실망도 하게 되지만 남편의 어깨에, 우리들의 아버지의 어깨에 놓여있는 짐의 무게가 그것을 내팽겨칠 수 없게 묵직하게 누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적한 파티오에서 책을 읽는 노인의 모습이 노부히사에겐 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다른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면 마음이 편하련만 하루라도 파티오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어김없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혼자서 어찌 지내고 계신지 아버지가 외로우실까 늘 마음이 쓰인다. 나 또한 홀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이라 그저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위안삼아 보지만 변명일뿐, 왜이리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일까.

 

"보스"에서는 여성이 상급자로 왔을때 조직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주지만 역시나 직장에서 갖게 되는 갈등을 잘 그려내 준것 같다. 이땅의 남성들과 그리고 그 곳에서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고뇌를 함께 본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지만 이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마돈나"로 인해 조금은 즐거워지기도 한다. 왠지 힘이 불끈 생겨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될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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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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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허삼관을 '자라 대가리'라고 부른다. 큰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아내 허옥란이 결혼전에 정을 통한 하소용의 아이이기 때문에 9년을 모르고 키워온 허삼관이 바보같다고 붙여준 말이다. 점점 커 갈수록 하소용을 닮는 일락이의 모습을 보니 부정도 못하겠다. 물론 요즘같이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면 정확히 알수 있겠지만 허삼관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모두 세워놓고 비교할 뿐이다. 일락이가 자신과는 닮지 않았으나 형제들은 서로 닮았다고 자식이라 우겨본다. 큰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지라 얼마나 마음이 헛헛할지 이 행동으로 짐작이 된다.

 

마누라는 아이 낳는 고통에 허삼관에게 욕설을 퍼 붓지만 허삼관은 자식 생기는게 얼마나 좋으면 이름을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로 짓겠는가. 피를 팔아 삼십오원을 받아 꽈배기 서씨라 이름불리는 미인이었던 아내 허옥란과 결혼하여 순탄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문화대혁명때 힘든 시련이 있었지만 허삼관의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잘 버텨나갔건만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시간 가족을 괴롭히게 된다. 옥수수죽만 먹은지 50여일이 지나고 보니 가족들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허삼관은 피를 팔아 일락이만 제외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국수를 먹으러 가는데 이 행동이 어른으로써 얼마나 유치해 보이던지. 그러나 나에게 닥친 일이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찌 장담할까. 고구마 하나를 먹고도 허기진 배를 안은채 가족들을 찾아다니는 일락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거리에서 국수를 사주면 아버지로 부르겠다고 말하는 일락이의 모습은 그대로 슬픔이 되어 허삼관의 마음을 울린다. 힘이 빠진 일락이를 업고 국수를 사 먹이러 걸어가는 허삼관은 이로써 일락이를 오롯이 자신의 아들로 마음까지 인정한다. 역시 길러준 정이던가.

 

분명히 자신을 닮은 일락이를 하소용은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대장장이 방씨의 아들의 머리를 돌로 쳐서 상처입힌 일락이의 친아버지 하소용을 대신하여 자신의 피를 팔아 치료비를 대신 내는 허삼관, 아이에게 상처될 말을 툭툭 내뱉지만 역시 일락이가 자신의 아들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시골에 가서 일하던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다 죽어갈때에도 멀리 상하이까지 가며 연이어 피를 팔다가 죽을뻔 하지 않았는가. 일락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다른 지역마다 찾아가서 피를 뽑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소용이 트럭에 치여 사경을 헤맬때 지붕위에 올라가서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를 아들이 한시간을 외쳐야 영혼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며 하소용의 처가 일락이를 달라고 했을때 허삼관은 하소용의 영혼을 부르러 가라고 일락이를 보낸다. 속으로 얼마나 가슴아팠을까. 한편으론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로 인정받은것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끝내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죽은 하소용을 보면 허삼관을 아버지로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일락이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하소용이 죽은것이 다행스럽기까지 하니 내가 너무 감정적인 것일까. 그래도 일락이가 간염으로 죽어갈깨 하소용의 처와 딸들이 도움을 주지 않는가. 역시 가족이란 그런것이다.

 

가족을 위해 돈이 필요할때면 서슴없이 피를 팔아 돈을 구해 온 허삼관,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고 싶어 피를 뽑으러 가지만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아이들도 장성하고 이제야 자신을 위해 피를 뽑고자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받아주지 않아 가슴속에 쌓였던 감정들이 터져나와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에겐 아내와 아들들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생명을 팔아 가족들을 살린 허삼관이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여생을 누려도 괜찮으리라. 아내와 함께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마시는 그를 보고 있으니 옛일이, 그 힘들었던 삶이 이젠 까마득히 먼일처럼 느껴진다. 어느 부모든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목숨도 내놓겠지만 피를 팔아 삶을 고단하게 이어가는 허삼관의 이야기는 가슴을 울린다. 그래도 피를 팔고 받는 돈이 삼십오원이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몸이라도 팔아 살아갈 수 있게 삼십오원이라는 돈이 크게 소용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노년은 더 큰 불행없이 허삼관과 허옥란이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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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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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등 학교를 마치는 것만이 졸업의 의미는 아닌가 보다. 스물 여섯살때 자살한 이토, 그의 딸 아야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피에도 자살유전자가 있다는것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칼로 손목을 긋고 자살을 시도했던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자살했다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을 들려달라고 찾아온 아야를 와타나베는 좋은 기억들을 들려주어 지켜주고 싶다. 추억이 없기에 아직 그사람일뿐 아버지는 아닌 아야에게 친구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건만 자신이 간직한 이토의 기억은 단 2주만으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자살했는지 이유도 모른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전 이토는 담배를 세 개 피우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작스러운 친구 이토의 죽음, 아야도 와타나베도 이토의 관계를 마무리 짓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 그가 죽은 날 죽은 자리에 아야와 함께 함으로써 이 두사람은 이토의 관계에선 졸업식을 하게 된다. 그리워 할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인데 이토는 자신의 삶에서 졸업을 하지 못하고 삶을 일찍 끊어내 버렸지만 와타나베는 천천히 가더라도 꼭 완주하고 싶다. 비록 중년의 나이로 회사에서의 입지가 좁아 힘들긴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의 기억을 갖고 싶은 아야로 인해 이토를 기억함으로써 와타나베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으리라.

 

이 책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모두 죽음에 관계가 있다. 죽음은 인생에 있어 졸업과 같은 것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떠나보내든, 폐암에 걸린 아버지를 떠나보내든 원수같은 사이였어도 아무리 섭섭한 일이 있었어도 모두 털어내고 묵은 감정을 다 벗어버리고 보내드린다. 화해, 죽음에 이르면 무엇을 못할까, 살인을 했다 해도 가족이라면 용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에서는 잔잔하게 흘러가던 내 마음을 울려버렸다. 이젠 학교 졸업식도 자율에 맡겨 더이상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 지네"를 부르지 않는데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사리에 어긋난 짓이지. 너무 되바라졌어"라며 못마땅해 하셨고 학생들을 늘 엄히 다루어 병상에 있어도 찾아오는 제자 하나 없었으니 아들된 입장에서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들은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네" 음악을 틀어드린다. 그리고 뒤에서 "선생님"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나고 제자에게 외면받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건만 그에게도 찾아오는 제자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나도 자식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기에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면 거기에 동조하면서 봤건만 이 책으로 인해 부모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깨달았다고나 할까.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 군 어머니란다'라고 남긴 케이치의 새엄마 하루의 글을 보면 부모이기에 먼저 자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힘든 세상일에 지쳤을때 역시 내가 쉴 곳은 부모님이 계신 가족이라는 울타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서로가 감정을 할퀴어대지만 세월이 지나 화해하는 모습이 매순간 내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졸업'에 해당하지 않겠는가. 20대, 30대, 40대 어느것하나 처음 겪는 인생의 고비에서 부모님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오고 가슴속에 숨겨두었던 감정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오게 되니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족이니까 이유를 대며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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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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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무엇을 남기는가?" 아무것도 남긴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죽음에도 '허망함'을 남기고 죽는다니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리움을 남기고 간다면 더 없이 좋은 죽음이려나. 그리움이 오히려 상처가 되니 그저 나 자신이 더 오래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삶에 대한 원통함만 가지고 떠나면 되려나. 태어날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어린시절 첫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저 어느 순간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고 원해서 태어난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이르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살게 되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고자 노력하고 죽을때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건지 죽음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지 모를 삶을 살아가기에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60년을 죽은 사람의 염을 한 '염쟁이 유씨' 인생을 보는 눈이 좀 남다를까. 하루 하루가 소중할 것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해 줄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고픈 심정이 되지 않을까. 시체에 염을 하면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혹 꿈에 나타나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염을 하면서 보게되는 그들의 몸을 보고 인생에 대해 조금 알아갈뿐 더 깊은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대대로 염을 한 집안이라 자신은 절대 염하는 직업을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3년만 따라다니라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보니 이 일이 천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싫어했던 염 하는 직업, 아들은 시키고 싶지 않아 어렸을때부터 시체놀이를 하고 놀던 아들녀석이 이 일을 하고 싶다 자청했을때 3년간 다른 일 해 보고 오라고 쫓아내 버렸다. 이것이 부모 마음이겠지. 그러나 염쟁이 유씨는 왜 아버지가 그토록 염하는 일을 시키고자 했던가. 원고청탁을 넣은 주순신 기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눈을 떠 보니 아직 이승이다. 유부남을 좋아하여 마음 둘 곳도 없는 그녀가 죽어버리겠다 마음 먹고 약을 먹었으나 죽지 못하고 살았을때 염쟁이 유씨를 인터뷰 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마도 삶을 다시 보게 되지 않겠는가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염쟁이 유씨는 그간 사연있는 시체들의 염을 하면서 겪게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하나하나 들려주면서 자신의 인생도 풀어낸다. 이제는 마지막 염을 하고 이 일을 손에서 놓아야겠다 생각했기에 그동안 쌓였던 인연의 고리들을 하나씩 끊어내는지도 모르겠다. 사연없는 삶이 어디있겠냐만은 죽고나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그러나 이야기들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도 들어 깊이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많은 세월을 전부 다 풀어놓지는 못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해 주다 보니 하나씩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드나 보다. 이야기를 들으며 주순신 기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빗대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점점 삶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죽으면 안된다"라는 말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리니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은 그녀에겐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왜 염쟁이 유씨는 마지막 염을 하고 이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게 먼길을 달려왔을지도 모르는데 왜 아들이 9년이나 지나 돌아왔는지 그 사연에 대한 언급이 없어 조금 허망하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그렇겠지. 3년만 다른일을 해 보고 오라던 자신의 말을 듣고 떠난 아들이 3년이 지나고도 오지 않을때 "그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다고 해도 염쟁이만 못하겠어? 잘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보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시체 염하는 일을 했다면 좋았을것을 자신의 욕심으로 너무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역시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건만 '인생'이 무엇인지 어떤것인지 쉽게 알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염쟁이 유씨를 통해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더듬어 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생각 해 본다. 죽으면서 남길 것이 무엇인지 그래도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염쟁이 유씨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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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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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나무. 나무들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을 알지만 난 언제나 그냥 물건으로 취급해 왔었다. 베란다에서 1년여 넘게 함께 살아가는 난, 물을 주면서 "너도 혼자 쓸쓸하겠구나"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요근래 벌레가 많이 생겨 옆에 생긴 작은 난은 놔두고 '뽑아버려야겠다' 생각중이다. 그런데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너무 커 버려 베란다가 좁아 큰 화단에 심어줬으면 싶은데 그저 내 손으로 죽이게 될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은 잎이라도 만질라치면 너무 아파할 것 같아 손도 대지 못하겠다. 모든 나무들의 생명이 느껴져 소근소근대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아 조심하게 된다.

 

스스로 싹을 틔워 자라난 작은나무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할아버지 나무. 사람도 어느날 쑥 커버려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 때부터 차근차근 세월에 지남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듯이 나무들도 그러하다. 아직 여덟살밖에 되지 않은 작은나무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구경하고 싶고 첫 열매를 튼튼하게 지켜내고픈 마음을 가진 아직 어린나무다. 발밑에 하찮게 자란 냉이꽃을 잡초 취급하다 면박을 당하기도 하고 아직은 바람이나 비에 튼튼히 자신을 지켜낼 힘도 모자라지만 옆에서 자신의 가지를 잘라 손자를 지켜주는 든든한 할아버지가 있기에 겨울잠을 자는 어린나무는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다.

 

자신을 심은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이 집을 지켜내고 있는 할아버지 밤나무. 하늘나라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인데 그 곳에서도 아마 나무들을 심고 있을거라 믿는다. 너무나 고운 마음씨를 지녔기에 그곳도 나무들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열세살의 어린 부부가 당장 먹을 끼니도 챙기지 않은채 밤을 심어서 오랜세월이 지난 후에 싹을 틔운다. 묘목을 심은것이 아니라 그냥 밤을 심어서 싹을 틔운 나무들, 이젠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아무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언제 키워 열매를 맺을까 심기도 전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리라.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다른 나무들이 모두 요란스럽게 꽃과 잎을 피우며 봄맞이를 할때 꾹 참고 자기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진 대추나무보다 더 못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마당에 심은 밤나무는 내가 죽어서도 이 집을 지키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결혼해서 또 그 손자들을 낳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집의 수호신처럼 굳건하게 버틴다. 자신을 심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도 이것이었다. 내가 죽고 없어도 아이들을 잘 지켜달라는, 이젠 그 소임을 다하고 할아버지 나무는 작은나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날 수 있으리라. 나무들은 자신의 뒤를 이어 그 자리를 대신할 나무를 위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고 봄이 오면 작은나무는 할아버지 나무와 더이상 말을 나눌 수 없겠지만 비바람을 이겨내며 함께 한 세월이 있기에 잘 버텨내리라 생각된다. 이젠 자신도 그리워할 대상이 생기지 않았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젠 버텨낼 수 있다. 첫 열매를 가져간 그 사람을 기다리며 다음에 맺을 열매를 위해 뿌리를 더 튼튼히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바다와 그 바다에 사는 고래와 어부의 이야기를 바람과 구름을 통해서 듣는 나무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소리는 바람에게 대답하는 소리려나. 이젠 동네에서 무심히 보던 나무들도 어떤 몸짓을 하는지 세심하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가을이 오는 것을 쓸쓸히 느끼는 내 맘도 바람을 통해 저 멀리 실어가 주려나. 그리움도 가져가 주려나. 겨울이 오면 겨울잠을 자는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들이 내게도 겨울을 이겨낼 힘을 줄 것 같다. 아무것도 없지만 벌써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기에 추운 겨울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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