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을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나무. 나무들에게도 생명이 있는 것을 알지만 난 언제나 그냥 물건으로 취급해 왔었다. 베란다에서 1년여 넘게 함께 살아가는 난, 물을 주면서 "너도 혼자 쓸쓸하겠구나"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요근래 벌레가 많이 생겨 옆에 생긴 작은 난은 놔두고 '뽑아버려야겠다' 생각중이다. 그런데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너무 커 버려 베란다가 좁아 큰 화단에 심어줬으면 싶은데 그저 내 손으로 죽이게 될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은 잎이라도 만질라치면 너무 아파할 것 같아 손도 대지 못하겠다. 모든 나무들의 생명이 느껴져 소근소근대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아 조심하게 된다.

 

스스로 싹을 틔워 자라난 작은나무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할아버지 나무. 사람도 어느날 쑥 커버려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 때부터 차근차근 세월에 지남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듯이 나무들도 그러하다. 아직 여덟살밖에 되지 않은 작은나무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구경하고 싶고 첫 열매를 튼튼하게 지켜내고픈 마음을 가진 아직 어린나무다. 발밑에 하찮게 자란 냉이꽃을 잡초 취급하다 면박을 당하기도 하고 아직은 바람이나 비에 튼튼히 자신을 지켜낼 힘도 모자라지만 옆에서 자신의 가지를 잘라 손자를 지켜주는 든든한 할아버지가 있기에 겨울잠을 자는 어린나무는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다.

 

자신을 심은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이 집을 지켜내고 있는 할아버지 밤나무. 하늘나라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인데 그 곳에서도 아마 나무들을 심고 있을거라 믿는다. 너무나 고운 마음씨를 지녔기에 그곳도 나무들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열세살의 어린 부부가 당장 먹을 끼니도 챙기지 않은채 밤을 심어서 오랜세월이 지난 후에 싹을 틔운다. 묘목을 심은것이 아니라 그냥 밤을 심어서 싹을 틔운 나무들, 이젠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아무도 받으러 오지 않는다. 언제 키워 열매를 맺을까 심기도 전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리라.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다른 나무들이 모두 요란스럽게 꽃과 잎을 피우며 봄맞이를 할때 꾹 참고 자기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진 대추나무보다 더 못한 것이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마당에 심은 밤나무는 내가 죽어서도 이 집을 지키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결혼해서 또 그 손자들을 낳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집의 수호신처럼 굳건하게 버틴다. 자신을 심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도 이것이었다. 내가 죽고 없어도 아이들을 잘 지켜달라는, 이젠 그 소임을 다하고 할아버지 나무는 작은나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날 수 있으리라. 나무들은 자신의 뒤를 이어 그 자리를 대신할 나무를 위해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겨울잠을 자고 봄이 오면 작은나무는 할아버지 나무와 더이상 말을 나눌 수 없겠지만 비바람을 이겨내며 함께 한 세월이 있기에 잘 버텨내리라 생각된다. 이젠 자신도 그리워할 대상이 생기지 않았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젠 버텨낼 수 있다. 첫 열매를 가져간 그 사람을 기다리며 다음에 맺을 열매를 위해 뿌리를 더 튼튼히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바다와 그 바다에 사는 고래와 어부의 이야기를 바람과 구름을 통해서 듣는 나무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의 소리는 바람에게 대답하는 소리려나. 이젠 동네에서 무심히 보던 나무들도 어떤 몸짓을 하는지 세심하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가을이 오는 것을 쓸쓸히 느끼는 내 맘도 바람을 통해 저 멀리 실어가 주려나. 그리움도 가져가 주려나. 겨울이 오면 겨울잠을 자는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들이 내게도 겨울을 이겨낼 힘을 줄 것 같다. 아무것도 없지만 벌써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기에 추운 겨울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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