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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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먼저 읽고 이 책을 보았다면 나의 감상이 달라졌을까. 나는 다른이들과 다르게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고래"보다 먼저 읽는 우를 범했는지도 모른다. 제목은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게 분명 생경스럽다. 그렇다고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등장하는 단편에서 그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부의 생을 뒤바뀌게 하는 사람으로 등장할 뿐이다. 뭔가 속았다는 기분, 그랬다. 그러나 정말 통쾌하게 복수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왠지 입을 벌리고 크게 웃고 싶어졌다.  

 

단편들이라고 하지만 <세일링>에서 등장한 사람들이 <농장의 일요일>에 다시 나올때는 전혀 단편으로 느껴지지 않고 계속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처럼 반갑기만 하다.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를 읽을때는 눌러두었던 나의 기억의 한켠이 떠올랐다. 내 인생의 한곳에서 그 시기를 벗어날때 작별했던 기억말이다.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보다 직장에서 나와 노숙자로 살아가는 숟가락을 염력을 이용해 구부리고자 하는데 인생을 거는 어리숙한 사람들을 보면 병원에서 실습을 하며 만난 추운 겨울 나는 것을 두려워 하던 행려병자들이 생각난다. "정말 숟가락을 구부리면 돈이 나와? 쌀이 나와?"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러나 공무원이었던 한 노숙자의 말처럼 삶이란 눈깜짝할새에 회사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계단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는 신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어느새 자기변명으로 변질되고 믿음으로 굳어지게 만든다. 고등학교 다닐때 아이들 앞에서 숟가락을 염력으로 구부릴 수 있었다면 그가 노숙자가 되지 않았을까. 인생에 있어서 뭔가 자신도 하나쯤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인생이 비틀리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었겠지. 소설속에서조차 강한자가 약한자를 핍박하고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하여 인간적인 모습도 버리고 살게 되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고 행복한 사람들 모습만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 타인의 삶을 보며 내가 살아온 시절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러했다"고 위안을 삼고 싶지 않겠나. 내 마음이 줄곧 그러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배경이 한국과 외국이 절적하게 버무려져 있어 내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나온다.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단편들속에 각각 부여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혹 <비행기>에 나오는 드라마 작가처럼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삶에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겠지. 나도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을 벗어나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어 공상에 빠질때가 있다. 그 공상속에서는 늘 자신감이 넘쳐 당당하고 무엇하나 못하는게 없는 멋진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상상하는것만으로 즐거워진다.

 

책을 읽으며 내가 보냈던 어린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30대를 보내며 그 전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며 앞으로 올 시간들을 두려워하며 점점 더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된다. 각 단편들을 보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보면서 누구나가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아픔과 고통을 겪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나이때에 다들 겪었음직한 일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로 성장시켰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이의 삶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내 삶은 얼마나 진실한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죽는순간까지도 얻을 수 없으리라. 그것이 인생이고 삶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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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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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어려움에 명의 눈치를 살피는 작은 나라 조선이 목숨까지 걸어야 했는지 몰랐다. 그저 학교 다니기전에 "가나다라"를 배웠고 모국어이기에 어려움 없이 글을 쓰고 책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훈민정음을 만들고 널리 반포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왜이리 어려운지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는 것이 힘들었는데 어느새 나는 명을 대함에 있어 조선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었다.

 

첫번째 장성수가 죽고 범인을 쫓아가는 강채윤은 그가 죽으면서 움켜쥐고 있었던 옥단추의 주인인 윤필을 의심했었으나 그마저 두번째 살인 대상이 되고 말았다.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첫날 숙직이던 겸사복 강채윤이 이 사건을 계속 파헤치게 된다. 강채윤은 반인 가리온의 검시와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에 뿌려진 증거들로 범인의 가까이에 다가가게 되는데 장성수가 죽은 자리에 있던 그림, 그것이 마방진이란 것을 알게 되고 장성수와 윤필이 마방진의 해답을 잘 풀어낼 수 있는 궁녀 소이와 관계가 있음을 알기에 이른다. 솔직히 살인사건이 일어날때마다 산학이니 마방진이니 집현전 학자들에게 물어서 범인을 쫓는 강채윤을 나의 짦은 식견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가 이순지나 성삼문에게 묻는 물음들조차 이해 불가다.

 

이렇듯 독자가 이해하기 힘든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일에 어느새 지쳐버린다. 계속 살인이 일어나고 살인의 배후는 찾아질길 없는 증거를 찾는 건지 집현전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우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 어 버렸을때 도저히 난해하여 책을 놓고 싶어질때 불현듯 적의 얼굴이 드러나니 그 사람은 대제학 최만리였다. 이제 좀 흥미가 생긴다. 끝까지 가도 범인의 얼굴을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렇게 나서주다니 팔에 문신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갈때 성삼문이나 이순지는 그 다음 희생자가 누가 될지 누가 적인지 모두 알고 있는 듯 했으나 우직한 강채윤이 이 일에 관련되어 희생될까보아 함구한다. 그러나 강채윤은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데....

 

세종의 훈민정음을 창제하려는 뜻은 알겟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말과 혼을 가지고 살게 하고 싶은 열망, 이것이 목숨도 버리고 임금을 따르게 하는 구심점이 되겠지. 그러나 "고군통서"의 존재는 기이하다. 이 책에 명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을 버리고 주체적인 마음을 드러냈다고 해도 이것을 신하들이 돌려가며 숨기고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훈민정음속에 숨겨진 놀라운 사실들과 동떨어진 일이 아닌지. 훈민정음을 만들고 반포하기까지 반대파들이 모르게 숨겼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고군통서"를 둘러싸고 임금까지 없애려 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책이 명나라에 들어가면 훈민정음 창제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겠는데 솔직히 이 두가지 사건의 연결점을 찾지 못해 혼란스럽다.

 

임금을 대신해 죽은 무휼, 20년전에도 임금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죽지 않았던가. 백성들을 사랑하는 군왕의 마음이 이 땅의 백성들이 쓸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시대에 참으로 대단했다는 것을 알지만 세종이 세자빈의 몸종이던 벙어리 소이와 세자빈과 궁인들을 모아놓고 훈민정음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말 못하던 소이가 말이 트일때는 사실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훈민정음이 말못하는 벙어리도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인냥 보여주는 것 같아 내 나라 내가 쓰는 언어가 대단하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다. 임금이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었는가. 채윤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고군통서"는 그렇게 가치가 있었는가 잘 모를 일이다.   

 

범인을 일찍부터 드러내어 이상하다 했었지만 이것이 반전일줄이야. 하지만 윤필의 옥단추를 왜 장성수가 지니고 있었는지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그저 큰 문제들에 대해 범인만 가려낼 뿐이라 좀 부족한 듯 보인다.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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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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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니 여기에 보이는 네사람 정말 정이 안가게 생겼다. 그나저나 15년전의 사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울뿐이다. 그만큼 기억의 무게가 삶을 짓눌렀겠지만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해 가물거리는 내게는 상식밖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뺑소니차를 목격한들 차 색깔이나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

 

15년 전 다쓰미, 기타, 다치바나가 고교 졸업반 일때 생각해 낸 것이라곤 교장실에 있는 시험지를 훔쳐내는 것이었다. 점수를 잘 받아서 성적을 올리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정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잠입에 성공하여 시험지와 답안지까지 가지고 나오는 이들. 그러나 뭐냐 애초에 가지고 나올 생각 따윈 없었던거야? 앉아서 시험문제를 노트에 적고 있다니 한숨이 나온다. 이런 모습에 정감을 느껴야 하는 건지 많은 예문을 다 적을수가 없어 여분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가지고 나오면서 이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루팡 작전"이라 명명한 이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마지막날 시험지를 가지러 가기 위해 들어간 교장실의 금고안에서 영어 교사 마이코의 시체를 본 그들, 그러나 다음날 시체가 발견 된 곳은 건물 밖 수풀속에서였다. 자살이라 단정내리는 경찰들을 보고 직접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세 사람은 사실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소마'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건을 직접 알아보게 된다. 우정? 이것이 우정이라면 자살한 '소마'의 자살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지?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친구에 대한 원망을 적어놓고 자살했는데 소마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 갑갑한 마음이 된다.

 

오늘 밤 12시가 되면 공소 시효가 마무리 되어 이 사건으로 범인을 체포할 수가 없게 된다. 삼억 엔을 탈취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우쓰미를 증거가 없어 놓쳐 버린 미조로기로서는 그 일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또 사건을 종결 짓게 되는 것은 괴로울뿐이다. 시간의 한정, 이것은 독자에게도 긴박감을 선사한다. 그저 마이코가 죽은 사건의 범인으로 기타가 지목되어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그의 진술로 하나씩 윤곽이 잡혀가고 사람들을 연행해 오게 되니 이것으로 보면 경찰의 존재가 의심스럽다. 생각지도 않게 범인이 스스로 잡혀 오길 바라는 듯 하다. 이 사건은 사망시간 12월 9일 오후 9시경으로 모든 자백을 한 범인의 말로 공소 시효가 완성되어 버려 허탈하게 마무리 되는 듯 하여 끝까지 함께 달려온 나도 힘이 다 빠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었으니 역시 미조로기는 대단했다. 아니 야나세가 대단한 것인가. 이들이야 다들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으나 공소 시효 완성 하루 남은 사건을 멋지게 마무리 했으니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마이코가 살해된 이 사건으로 다쓰미, 기타, 다치바나의 인생은 바뀌어 버렸다. 기타는 오히려 대학을 가고 금고앞에 떨어진 3학년 F반 배지를 주움으로써 그 사건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니 행복해진 것일까. 모두의 마음속을 묵직하게 눌리고 있던 돌덩이들을 이 사건으로 심연속으로 던져버리고 심적으로 가벼워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마의 여동생이 그러하니 기타를 다시 만날 수 있어 행복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희생자는 누구라고 해야할까. 다치바나? 15년간을 암흑속에 살아버리고 노숙자로 지내고 있는 다치바나라고 해야할까. 모르겠다. 그나저나 마이코가 죽었다는 것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으니 내가 너무 냉정한 것인지 죽을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드니 어찌해야 하나 당혹스럽다.  

 

교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문란해 보였던 마이코라서 그런 것일까. 유부남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남자에게 증오를 품고 너무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 이 사건이 수면에 오른 것이 소마의 자살이라면 이것 자체로도 자살 이유를 모르니 사건이 풀어가는 과정이 아무리 명쾌하다고 해도 답답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결과가 좋으니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는 것인지.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따라가기도 버거워 그저 머릿속은 멍한 상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누구를 위해 이 사건은 수면위로 올라왔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공소 시효가 끝나가는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면 이것으로 만족해야겠지.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제든 죄값을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나마 울적한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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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우타코 씨
다나베 세이코 지음, 권남희.이학선 옮김 / 여성신문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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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의 우타코씨가 사랑에 빠졌냐고? 아니 첫사랑의 우라베를 그리워하긴 하지만 그저 손수건 동무가 필요할 뿐이다. 손수건 위에 앉아 우아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게지. 자식들이 '유산'이야기를 들먹일때마다 "똥오줌 싸면서 5년이고 10년이고 살다가 갈 것이다"라고 외치는 그녀, 참 당당하게 보여서 좋다.

 

작년에 홀로 계신 시아버님이 "선을 보고 결혼을 할것이다"는 폭탄선언을 한 뒤로 신랑 큰누님은 결사반대를 하고 나선적이 있다. 자식얼굴 볼 생각말라는 협박과 함께. 솔직히 나도 노인의 사랑, 새로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내 부모님 일이어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여자가 아닌 우리 형제들의 어머니만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찍 새 반려자를 가지게 되는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아버님의 연세가 71세일때라 식구들이 반대를 했으니 우타코씨의 재산이 타인에게 돌아갈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식들의 마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세간의 인심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착하지 못한 내 마음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변명하는 것 또한 안다. 만약 이것이 나의 일이 되어 버리면?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77세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우타코씨, 참 젊게 산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꾸미는 것 못지 않게 마음이 젊다. 영어를 배우고 서예를 가르칠 정도로 열정적이고 이젠 인생의 황혼길에서 자신의 목에 걸린 '패'인 고생하며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야 하는 '패'는 이제 내려놓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나이라고 생각되기에 희수잔치를 파티로 화려하게 치르는 그녀가 참 멋지다. 이것도 돈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자식들에게 그만큼 당당하게 살아왔기에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꼴딱'하고 나도 모르게 죽고 싶은 노인들의 생각, 젊은 나도 죽을때는 자리보전하고 누워 식구들 힘들게 하기 보다 그저 죽는지 모르게 죽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특이한 사업으로 발전하여 절에서 '빙그레탕'을 만들어 남녀가 함께 탕에 들어가고 신체를 접촉하여 활기를 불어넣지를 않나 '비익회'에서 적극 노인들을 맺어주는 노력을 하니 이렇듯 사회적 분위기는 활기를 띠고 있다. '사랑'에 대한 열망은 죽을때까지 마르지 않는가 보다. 우타코씨는 이런 것에 초연하다고 해야할까.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변태가 전화해서 "무슨 색깔 팬티를 입었냐?"고 물었을때 무슨일인가 당황하지만 호통을 쳐서 끊어버리게 만드는 우타코씨의 모습은 역시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여인으로 보인다.

 

호감이 가는 노인과 여행을 가고 싶지만 기력이 없어 쓰러지던지 며느리에게 일이 생겨 손자들을 떠 안고 나타나는 모습은 주위에서 그녀의 사랑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안타깝다고 해야할까. 나도 우타코씨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과 잘되기를 바랬었다. 그녀라면 사회의 통념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기에. 77세 노인의 이야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 마음은 오히려 중년 못지 않게 열정적이니 이런 모습이 아직 난 낯설게 다가온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더 와 닿지 않을까 생각되니 역시 돈 많은 사람들에 대한 질시와 부러움은 내 맘속에도 녹아있나 보다.  

 

무례하게 말을 하는 세 아들의 모습은 마음 밑바닥에는 재산을 노리긴 하지만 진정으로 어머니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툭툭 던지듯 어리광을 피우지만 그 모습에 오히려 내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이다. 솔직하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더 인간답게 다가오니까 말이다. 우타코씨가 100세 장수하여 더 오래사셨으면 좋겠다. 가족들과 투닥거리면서 그렇게 열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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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사 고로와 유령 고로
가와후치 게이이치 지음, 한성례 옮김 / 바이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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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사 고로가 유령고로의 부탁으로 사쿠라를 만나러 가는 모습은 영화 '사랑과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사쿠라가 어머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는 유령고로. 문제는 사쿠라를 어떻게 납득시키냐는 건데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동전을 이용해서 확인을 받지만 여기서는 유령 고로의 힘이 미약한지 그저 사쿠라만 알고 있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함으로써 인정을 받는다. 절대 웃지 않겠다고 다짐한 의사 고로지만 일하면서 계속 웃음이 나는걸 막을수가 없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을게다. 오줌을 쌌단다 유령고로가 생각하다 보니 나도 웃음이 난다. 자신의 일생을 걸고 꼭 부탁을 들어달라는 유령고로, "네 일생은 끝났어"라며 매몰차게 이야기하지만 유령 고로의 부탁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니 엘리트의 길만이 중요하고 환자는 안중에도 없던 의사 고로의 모습이 변한것 같아 다행스럽다.

 

6년전 데이토대학병원 분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로와 의사 이 둘의 13일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의사 고로에겐 피닉스 나무 아래에서 유령고로, 의사고로가 공동으로 만든 노래를 함께 부른 그 시간이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였을 것이다. 사쿠라가 박수를 치고 유령 고로가 있음을 믿어주었으니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나 보다. 아들 고로를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은 유령 고로의 진심이 통했으니 나까지 행복해진다. 여전히 사쿠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아들 고로를 과보호하며 머무르는 유령 고로의 모습은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내 귓가에도 유령 고로가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들리지 않아 정말 아쉽다.

 

유령 고로가 병원에 입원했던 그 기간만큼 함께 한 13일동안 의사 고로는 완전히 변했다. 성공가도를 달리겠다는 생각 뿐 왜 의사가 되었는지 열정을 가졌던 그때의 마음은 사라지고 냉철한 모습만 남아있던 의사 고로는 분원이 사라지지 않게 성명도 받으러 다니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었다. 여자 친구 요코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며 웃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따뜻해져 다행이다. 사실 내가 환자여도 예전의 의사 고로는 정말 싫다. 어려운 의학 지식들을 나열한채 자기 할말만 한채 환자를 돌덩이로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니니까.   

 

백혈병에 걸린 고로를 간호하다가 힘들때면 피닉스 나무에 와서 숨을 돌리곤 했던 사쿠라.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 피닉스 나무처럼 엘리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 고로가 이 나무 아래 왔을때 유령고로는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온 것에 얼마나 기뻐했을까. 이젠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환자를 생각하지 않는 냉정한 의사 고로를 변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피닉스 나무가 이 병원에 계속 남아있어 유령 고로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성명서를 받는 의사 고로 정말 멋지다. 환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의사가 진정한 의사니까. 채혈을 할때마다 환자의 눈치를 보는 데쓰야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는가. 레지던트 3인방 데쓰야, 노리코, 미나가와는 일 솜씨는 느리지만 고로가 잠에서 깨지 않을때 고로의 환자의 채혈을 서로 분담하는 모습은 참 인간적이라 역시 고로가 사람 복은 많은 것 같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의사 고로. 이젠 세상이 제대로 보일테니 홀로 벽을 보며 살지 않아도 되겠지? 요코와 함께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가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환자들과 제일 가깝게 지내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유령 고로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건가. 나도 그가 궁금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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