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 고로와 유령 고로
가와후치 게이이치 지음, 한성례 옮김 / 바이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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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사 고로가 유령고로의 부탁으로 사쿠라를 만나러 가는 모습은 영화 '사랑과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사쿠라가 어머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는 유령고로. 문제는 사쿠라를 어떻게 납득시키냐는 건데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동전을 이용해서 확인을 받지만 여기서는 유령 고로의 힘이 미약한지 그저 사쿠라만 알고 있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함으로써 인정을 받는다. 절대 웃지 않겠다고 다짐한 의사 고로지만 일하면서 계속 웃음이 나는걸 막을수가 없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을게다. 오줌을 쌌단다 유령고로가 생각하다 보니 나도 웃음이 난다. 자신의 일생을 걸고 꼭 부탁을 들어달라는 유령고로, "네 일생은 끝났어"라며 매몰차게 이야기하지만 유령 고로의 부탁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니 엘리트의 길만이 중요하고 환자는 안중에도 없던 의사 고로의 모습이 변한것 같아 다행스럽다.

 

6년전 데이토대학병원 분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로와 의사 이 둘의 13일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의사 고로에겐 피닉스 나무 아래에서 유령고로, 의사고로가 공동으로 만든 노래를 함께 부른 그 시간이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였을 것이다. 사쿠라가 박수를 치고 유령 고로가 있음을 믿어주었으니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나 보다. 아들 고로를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은 유령 고로의 진심이 통했으니 나까지 행복해진다. 여전히 사쿠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아들 고로를 과보호하며 머무르는 유령 고로의 모습은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내 귓가에도 유령 고로가 연주하는 음악이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들리지 않아 정말 아쉽다.

 

유령 고로가 병원에 입원했던 그 기간만큼 함께 한 13일동안 의사 고로는 완전히 변했다. 성공가도를 달리겠다는 생각 뿐 왜 의사가 되었는지 열정을 가졌던 그때의 마음은 사라지고 냉철한 모습만 남아있던 의사 고로는 분원이 사라지지 않게 성명도 받으러 다니고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었다. 여자 친구 요코와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며 웃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따뜻해져 다행이다. 사실 내가 환자여도 예전의 의사 고로는 정말 싫다. 어려운 의학 지식들을 나열한채 자기 할말만 한채 환자를 돌덩이로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니니까.   

 

백혈병에 걸린 고로를 간호하다가 힘들때면 피닉스 나무에 와서 숨을 돌리곤 했던 사쿠라. 병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자수 피닉스 나무처럼 엘리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 고로가 이 나무 아래 왔을때 유령고로는 영적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온 것에 얼마나 기뻐했을까. 이젠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환자를 생각하지 않는 냉정한 의사 고로를 변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피닉스 나무가 이 병원에 계속 남아있어 유령 고로를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성명서를 받는 의사 고로 정말 멋지다. 환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의사가 진정한 의사니까. 채혈을 할때마다 환자의 눈치를 보는 데쓰야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는가. 레지던트 3인방 데쓰야, 노리코, 미나가와는 일 솜씨는 느리지만 고로가 잠에서 깨지 않을때 고로의 환자의 채혈을 서로 분담하는 모습은 참 인간적이라 역시 고로가 사람 복은 많은 것 같다.

 

어린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의사 고로. 이젠 세상이 제대로 보일테니 홀로 벽을 보며 살지 않아도 되겠지? 요코와 함께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를 가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환자들과 제일 가깝게 지내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유령 고로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건가. 나도 그가 궁금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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