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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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이스마엘과 같은 소년병을 만난다면 아무렇지 않게 말해줄 수 있을까. 총을 들고 사람들을 죽였던 소년병, 분명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 앞에 이들이 있다면 티없이 맑은 아이들로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담할 순 없지만 이젠 나도 알고 있다. 그건 그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반군을 피해 달아나며 또래 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마을로 들어가면 소년병으로 오해하여 죽일듯이 위협하는 중에도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멀고 먼 길을 달려갔건만 이스마엘에게 남은 것은 총을 들고 직접 자신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현실이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형과 부모님과 동생이 있는 곳에서 반군들의 습격을 봐야했을때의 심정이란 그 애끓는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올 정도로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게다. 가족들을 만나지 못해서 자신의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는 자각도 뒤로한채 만나지 못했다는 마음만 앞서는 것이다.

 

타인의 눈으로 본 시에라리온의 지옥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가족들이 반군들에 의해 무참히 죽고 그 자신도 정부군에 소속되어 소년병으로 싸운 이스마엘의 입으로 듣는 잔혹한 시에라리온의 내전소식은 이스마엘이 이제야 삼촌, 숙모와 함께 진정으로 평온하고 행복감을 느낄 그때 가까이에서 터진 내전으로 내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이스마엘이 또 소년병이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냥 세월에 따라 쑥쑥 커 나가기만 하면 되는 어린시절과 다르게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했던 이스마엘의 어린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소년병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나라를 탈출해야 했던 이스마엘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장기자랑에 참여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마트루종으로 향했던 이스마엘, 식구들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떠난 그 길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형과 함께 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마저도 도망다니던 중에 헤어지게 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막막해진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던 이스마엘에게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때 그렇게나 좋아하던 이스마엘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족들을 만났더라면 좋았을걸. 마음이 아프다. 열 세살의 어린나이에 너무나 엄청난 일을 겪는 이스마엘, 왜 그는 혼자 살아남았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이스마엘, 마을에서 친구들과 풀 숲에 숨어 "빵, 빵" 소리를 내며 나무로 만든 총을 가지고 총싸움을 했던 시절은 아득해지고 이젠 직접 사람을 죽이는 소년병이 되었으니 식구들을 죽인 반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한 행동이지만 분명 지우고 싶은 과거일 것이다. 악마가 되어가는 소년병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기에 30만명에 이르는 이 소년병들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해 베닌홈에 와서도 싸우고 죽이는 일을 반복했던 아이들이 점점 마음을 여는 과정을 통해 아직은 이 세상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아픔을 견디고 용감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이스마엘의 마음을 느꼈다. 래퍼를 꿈꾸던 소년이 총을 든 병사가 되었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스마엘에게 누구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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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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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뢰건 80%, 불륜사건 20%를 맡고 있는 모가미의 탐정사무소, 상상속에서야 범인들을 멋지게 처리하고 시체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그런 탐정을 생각하지만 역시 살인이 일어난 곳에서 시체를 본 그가 한 행동은 음식물을 다 토해내는 것이었다. 이구아나나 개,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밀림속을 탐험하는 모습이 그에게 잘 어울리긴 하지만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데로 하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탐정모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죽고 그 뒤로 다시마를 먹지 못하는 모가미, 학창시절 갇힌 기억때문에 열쇠있는 닫힌 공간에서 견디지 못하는 모가미의 앞에 나타난 비서 기타기리 아야. 분명 이력서를 보낼때 함께 보낸 사진에는 몸매가 이쁜 젊은 여자였는데 막상 근무하러 온 사람은 할머니였다. 이 두사람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상상하는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죽은 이구아나를 묻어주지 않고 단열재 사이에 두는 모습은 조금은 인간미가 없어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가족을 볼 수 있는 자리라고 이야기하는 모가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야는 그 말을 듣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모가미의 마음이 따뜻한게 보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할머니를 채용해서 쓰는 착한 사람이니까.

 

애니멀 홈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아무래도 동물들에 관계된 일을 하다 보니 주인 없는 동물들을 그곳에 데려다 주면서였다. 부부가 함께 하는 애니멀 홈,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쇼코가 들어와 있었으니 가츠유키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쇼코와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마음은 없다. 쇼코 못지 않게 가츠유키도 좋아하니까. 시베리안 허스키를 애니멀 홈에 데려다 준 후 이 꼬맹이가 사라져서 찾으러 가게 된 모가미와 아야가 발견한 것은 쇼코의 아버지의 시체였다. 역시 꼬맹이가 쇼코의 아버지를 물어 죽였을까. 꼬맹이를 잡으려고 겐 씨의 거처로 갔을때 그의 엉덩이도 살짝 깨물은 놈이라 사람을 물어 죽였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꼬맹이가 아닐 것이라는 마음과 쇼코에 대한 마음으로 이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된 모가미, 이젠 제대로 된 탐정수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젠 아야도 함께 동행하여 수사를 함께 한다니, 체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모가미가 등에 업고 탐문수사를 해야 하긴 하지만 어느새 아야가 없는 모가미 탐정사무소는 생각할 수가 없다. 주부들과 수다를 떨면서 알아내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소용없긴 하지만 늘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하여 그를 챙기니 모가미도 싫진 않을 것이다. 비록 쭉쭉빵빵 이쁜 아가씨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야 덕분에 두번은 목숨을 건지지 않았던가. 비록 아야 덕에 죽을 고비 또한 넘기긴 했지만 이렇게 동고동락하며 함께 했던 시간으로 인해 닫혔던 마음이 열려 J의 가게에서 다시마를 다시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은 계란과 함께.

 

가츠유키는 쇼코의 아버지 목에 난 이빨자국으로 범인이 시베리안 허스키인 꼬맹이가 아니라 피트불이라고 단정짓는다. 녀석들의 이빨자국을 얻기 위해 겐 씨와 함께 나카즈카 저택으로 향하는 모가미. 노숙자인 겐 씨에게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지만 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개들이 겐 씨의 냄새를 너무 좋아하니까. 나는 사실 범인으로 쇼코의 오빠를 의심했었다. 애니멀 홈이 있는 땅을 팔아 회원제 쿠어하우스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범인을 잘못 짚고 말다니, 살인사건의 배후가 된 인물들이 끔찍하다. 무엇보다 모가미의 마음이 상처받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고도 여전히 동물찾기, 불륜사건을 다루게 되는 모가미의 곁에는 이젠 아야가 없다. 독거노인 지원 네트워크의 직원인 사와키가 아야의 마지막 편지를 모가미에게 전해주었을때 왜 눈물이 났지? 몸이 아파 휴가 신청한 것인데. 그동안 아야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졌었나 보다. 할머니가 무슨일을 하겠나. 모가미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떨어뜨려놓고 갈까 늘 먼저 차에 올라타는 아야의 모습에 웃음이 나고 잡혀있는 상황에서도 그를 안심시키는 모습에서 나도 위안이 되었었나 보다.

 

아야를 언제 내쫓나 고민하던 그에게 이젠 남은건 꼬맹이뿐이지만, 여전히 아야와 함께 삶은 계란을 나눠먹는 모가미의 모습에서 그녀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첨단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 때우며 동물들을 찾는 탐정 사무소이지만 이젠 문을 열어 둬도 꼬맹이 덕에 도둑이 들지도 않겠고 무엇보다 열쇠가 달린 문을 꼬맹이가 잘 여니까 걱정이 없다. J의 가게에 가면 아야가 부르던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해지지만 말이다. 혹 동물이 없어졌다면 이 탐정사무소에 의뢰해 보면 어떨까. 아~나도 아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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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희망을 - 엄마와 딸이 행복한 세상
오한숙희 지음 / 가야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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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남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친정어머니가 남아선호 사상이 있어서 차별하여 키우신 건 아니지만 분명 나와 여동생 뒤에 남동생을 가지신건 그래도 아들에게 뭔가 바라는게 있으셔서일 것이다. 난 오히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여자여서 서러움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남동생 옷이라도 넘어서 지나가려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었으니까. 남동생이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올때는 외할머니의 영접을 꼭 받고서야 들어오곤 했으니 그 위세(?)가 과히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된다. 이런것들을 보고 자라고 나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졌느냐 하면 아직 뭐라 확실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았으므로, 사실 남편이나 나는 딸을 원하지만 시댁에서 '아들'이야기를 할때 초연할 자신이 없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성학을 강의하는 오한숙희, 이 책의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세상이 심어놓은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얌전해야 한다, 큰 목소리를 내지마라, 여자는 결혼만 잘하면 된다" 등등 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거대한 힘에 눌린 듯 살아온 인생이 보이는 것이다. 딸을 낳으면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잠을 잘 잘수 있게 요람을 흔들어주듯 생각을 흔들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이렇게 키우고 싶다 생각했던 것을 저자는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조카의 진로를 결정해 주고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 딸이 의사 모자가 아닌 간호사 모자를 만들어 가지고 갈 때 왜 의사 모자를 원하지 않는지 물어보고 누가 뭐라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 왕비보다는 여왕이 돼라고 딸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엄마이기에 부럽기도 하다. 내가 가져 보지 못한 호사라고 생각되니까.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내가 공주도 못되는 내가 왕비가 아닌 여왕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깨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딸이 힘들고 힘이 빠졌을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어머니일텐데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결혼과 출산후 아이를 양육하느라 집안에서만 갇혀 있는 여자들, 직장에서 외면받고 살아온 우리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자라는 글을 봤을때의 충격이란 지금이야 호주제 폐지, 출산휴가 등으로 인해 여자의 위신이 많이 높아져서 차별받던 대우가 개선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곳곳에서 결혼한 여자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못한게 사실이다. 아이들조차 "엄마 돈 벌어오라"고 등을 떠민다고 하지 않는가. 더 큰 집, 더 큰 차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원하는 자식들로인해 직장으로 돈을 벌러 나오는 엄마도 있는게 현실이니까. 그때 당당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여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것이 지금의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족보에 이름을 올려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난 저자의 아버지, 오한숙희의 이름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의 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조금은 어색해 보이지만 나는 내 어머니의 성까지 같이 가지고 갈 용기가 없다. 아니 귀찮아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고쳐야 할게 많으니. 나는 하지 못하지만 타인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는 보낼 수 있다. 분명 세월이 좀더 흐르면 여자들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세상이 될테니까. 아이가 자라고 내가 사회에 발을 다시 내밀게 되었을때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 아이가 자랄때 나도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높여야 할테니까.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이 행복한 그날까지 세상살이가 그리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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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지음, 조병준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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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인 지금의 나이에도 판타지나 동화책을 참 좋아한다. 이런 장르의 책을 읽는다고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냐만은 잠깐의 행복감을 누려보고 싶기에 아직은 마법이 현실이 되는 동화속의 나라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 어린시절 요정들과 함께 지냈던 기억들이 자라면서 사라졌지만 자기안의 지혜가 더 깊어져 늘 함께 했던 요정들을 보게 된 앤의 놀라움이란 얼마나 컸을까. 바쁘다고 세상은 원래 경쟁을 통해 이겨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마음속에 결의를 다지는 동안 요정의 모습은 희미해져서 이젠 어디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나의 요정은? 앤이 요정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나 또한 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존재하고 있지만 볼 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몸이 아플때면 태양에너지를 가져와 내 몸속의 나쁜균에게 태양에너지를 발라주는 요정들을 나는 전혀 느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슬프다. 지금 내 눈에 그들이 보인다면 이렇게 외롭지 않아도 될텐데. 인형놀이 하는 것 같겠지만 작은 식기들을 준비해주고 함께 음식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요정들을 만난다는 것은 솔직히 불편하긴 하지만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이기에 만남이 유쾌하리라 생각된다.

 

내 안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한 요정들,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들 곁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상상했던 장소로 날아가기도 하니 아마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모습들을 연출함으로써 보여주는 실력이 탁월한 연극배우 같기도 하다. 어디나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요정들의 존재는 정말 부럽다.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성격도 지닌 책인 것 같다. 돈만 버는 기계가 되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요정도 그 존재이유를 잃어버려 집 없는 요정이 된다고 하니 악한 감정을 품지 않고 늘 따뜻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가야 하고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자기계발서로 본다고 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일곱 요정들, 나쁜 성격을 가진 요정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요정중 하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달려가 목을 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하니 분명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을 요정들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죽을때까지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앤과 앤의 어머니는 요정들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기에 두 사람의 만남뿐 아니라 어머니의 요정들과 앤의 요정들이 포옹하며 반가워 하는 모습에선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충분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이런 삶, 이런 마음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거겠지. 평생에 한번이라도 나의 일곱 요정들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사악한 내 안의 감정들로 인해 이루지 못할 꿈일지 모르겠지만 다른이들은 이 일곱 요정뿐 아니라 타인의 요정들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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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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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난 무엇을 정리하고 싶어질까. 내가 태어난 곳에 가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이미 그곳은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을테니까. 빠르게 변화하는 도심속에서 내 몸하나 쉴 곳을 찾기가 힘들어지는 요즘 제스의 할아버지가 그린 '리버보이'의 배경인 브레머스까지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은 내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어떤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가는 곳은 드넓은 바다겠지. 그 곳에서 또 어디로 흘러갈까. 제스와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온 이 별장앞에서 흐르는 강물은 할아버지가 15살이었을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다. 손녀인 제스가 어느덧 자신이 이 곳을 떠났던 15살이 되었건만 하나도 변한것이 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역시 변한것은 세월에 무너져 가는 우리들이겠지.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의 제목은 "리버보이", 그러나 그 곳에 소년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 미완성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할아버지에겐 어느새 죽음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와 있는 상태였다. '죽음', 왜 이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기 전에 할아버지는 이 곳으로 와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것일까. 내내 내 머릿속에 남겨진 이 생각은 제스가 검정 반바지를 입은 한 소년을 강에서 만남으로써 조금씩 알게 되는것 같다. 사람은 죽을때가 가까워져서야 소중한 것이 생각나니까.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소년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저 제스에게만 보이는 환상과 같은 것? 어느새 제스는 이 아이를 "리버보이"라 부르고 있었다. 미스터리한 존재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다가가 어디서 왔는지 이 소년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사이에서 갈등하건만 그림을 완성하지 못할정도로 기력이 쇠하여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할아버지로 인해 마음이 울적하여 눈물이 난다. "왜 울고 있니?"라며 다정스레 말을 건네는 리버보이. 강의 시작점에서 브레머스까지 70킬로 뻗어있는 이 강의 끝인 바다로 가고 싶어하는 리버보이의 열망은 역시 할아버지의 어릴적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불이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셔 이 꿈을 이룰 수 없었지만 잊지 않고 그림속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꿈인 것이다.

 

할아버지와 함께 한 이별여행에서 제스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는 것은 너무나 슬픈일인데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조금씩 꺼내볼 수 있는 나만의 "리버보이"인 소년을 만난 것은 분명 환상적인 일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해내기 위해 강의 물줄기가 끝나는 곳까지 헤엄쳐 가느라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스가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할아버지가 먼 길을 떠날때 함께 하지 못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사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파란 물결의 강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시름도 이 곳에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물이 무서워 물에 뛰어들진 못하겠지만 강물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기에 할아버지와 제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내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것 같다. 영혼까지 울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나처럼 따뜻함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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