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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키스하지 마세요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글로연 그림책 2
툴리오 호다 지음, 김희진 옮김 / 글로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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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에 한 번씩 열린다잖아. 왕자님의 키스를 받으면 공주님이 된다잖아. 그런데 딱 한 마리의 개구리는 이 축제에 무심하다. 설레이며 이 축제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어떤 왕자님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왜?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보다 공주님이 되어 사람이 되면 오랫동안 살 수 있잖아. 멋진(모두 멋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왕자니까)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왜 이 기회를 마다할까. 자아가 너무 강한가 보다. 어딜가나 꼭 이런 녀석이 있다니까.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 보면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보다 인간이 되는 것이, 거기다 왕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주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으나 이런 것에 무심한 딱 한 마리의 개구리는 개구리답게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긴다.

 

"성 안에 갇혀 살지 않고 이곳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달빛 아래에서 노래하고 벌레도 먹을 수 있는데 왜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하지?" 이렇게 말하니까 대꾸할 말이 없어진다. 이 딱 한 마리의 개구리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성에 사는 공주님을 꿈꾸는 내가 한심한 모양이다. 인간이라고 이런 조건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벌레가 뭐가 맛있다고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하지? 물론 달빛 아래에서 노래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포기하기엔 아깝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 외에 뭐? 뭐가 좋다는 거지?

 

키스의 축제가 시작되고 여기저기서 왕자님의 키스를 받은 개구리가 공주님이 된다. 뿅, 뿅, 뿅 아마 이런 소리들이 나지 않았을까. 고요한 연못에 혼자 남게 된 딱 한 마리의 개구리 너 좀 외로워 보인다. 외롭지? 외롭지? 외롭지? 그래, 마음이라도 편하다고 위안을 삼을만 해. 그런데 말이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일어나서 또 한 번 더 놀라는 중인데 말이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달빛 아래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이 왕자님을 어쩌면 좋지. 딱 한 마리의 개구리와 맺어질 운명의 짝인 것일까. 그런데 이 왕자님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고, 달빛 아래에서 노래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딱 한 마리의 개구리 네가 입을 막아 버려 벌레도 먹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이 왕자님이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이 연못에서 살고 싶었던 거라면 너 어떻게 할 거니. 모두, 이젠 정말 모두 다 이 연못의 모든 개구리들이 그들의 왕자님을 찾은 것이 맞는 것일까.

 

후훗, 설마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길까.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연못에 살고 싶은 왕자님은 개구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로. 딱 한 마리의 개구리와 왕자에서 개구리가 된 이들의 표정까지 행복했다면 좋았겠지만 개구리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짓고 있어 감정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딱 한 마리 남은 이 개구리에게도 행복이 찾아와서 기쁘다. 누구에게나 운명의 상대는 있는 거니까. 하여튼 이 두 마리의 개구리 때문에 나까지 행복해져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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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자가 된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첩자가 된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3
김남중 지음, 김주경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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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아, 잘 가거라!" "만기야, 잘 가거라!" 노영희는 부하가 쓰러질 때마다 골짜기에 울려 퍼지게 이름을 불러 주었다. 이것으로 삼별초 군사들이 여몽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그 날의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노영희가 불러준 이름은 나에게도 슬픔이 되었다. 울컥,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에 눈물이 맺힌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흘리는 나의 눈물이 그들에게 가 닿지 않을지라도 노영희가 절규하며 부하들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는 지금 일어난 일인양 생생하게 들려온다.  

 

"선우야, 송진아, 무연아, 무동아 너희들 살아는 있는 거지?" 송진의 생사만 알 뿐 다른 아이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테무게의 노예가 되었을 선우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몽골까지 가는 동안 살아있기는 했을까. 역사는 노영희가 죽은 부하들의 이름을 불러주듯 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이 날의 사건이 있었던 연도와 단 몇 줄의 이야기로 이 때의 싸움을 표현했을 뿐 한 사람, 한 사람 그곳에 있었던 이들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지만 역사는 큰 줄기만 기억할 뿐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을 모두 기억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드라마였다면, 꾸며진 이야기였다면 테무게를 따라 간 송진이 무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고 선우를 지켜주는 용맹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끝맺을 수 있었을텐데, 몽골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송진이가 테무게를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의 곁에 남아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이 책속에서 그릴 수 있는 가장 현실감 있는 결말일 것이다. 송진이가 함께 하는 길에 선유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몽골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에도 나는 이렇게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행복만을 바라고 있다. 백성들을 위해 싸운 선유의 아버지 배중손, 그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의 생사를 알 수 없게 해 놓은 것은 살아남은 백성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일 것이고, 몽골군에게 끌려가는 선유에게도 희망을 전해주기 위함일 것이다.

 

몽골군을 위해 첩자가 되어야 했던 송진, 배중손의 딸 선유, 이들은 그 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을 뿐 무엇때문에 자신들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첩자가 된 아이'는 적이 죽어가는 것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테무게가 송진과 친구가 되어 송진의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으로 많은 의미를 전달하려 했겠지만 역시 테무게는 적일 뿐이다. 그 날 그 곳에 함께 있었지만 테무게, 송진, 선유는 다른 상황에 놓여져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결말이지만 이중간첩이 되어 버린 열세 살 송진이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치열하게 살아갔지만 역사 속에서 사라진 소중한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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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툰 - 개정판
정헌재 지음 / 대교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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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사랑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겨울부터 가을, 여름, 봄으로 가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나 보다. 사랑은 짧고 가슴앓이는 길다. '포엠툰'은 사랑후의 이별, 그리고 그녀와의 추억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한다. 서로에게 모진 말로 가슴 아프게 한 일, 화살들이 서로에게 박혀 있어 끌어안을 수 없는 상황은 꼭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사랑을 하는 동안은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컸으나 이별한 후엔 좋은 기억만 나는 것은 누구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외롭지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가슴아파 하는 이들이 있겠지. 이 밤, 잠 못드는 이들이 있겠지.

 

세상은 영원한 사랑에 대해 노래하나 처음의 열정과 계속 끝까지 가지고 가는 사랑은 없다. 단지 그 사랑이 더 깊어질 뿐. 이별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않겠느냐의 물음에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너무 바보 같은 짓이다. 또 가슴아파할까 두려워도 사랑을 향한 설레임과 떨림을 외면하지 말자.

 

사랑을 하면 모두 시인이 된다? '포엠툰'에 담겨져 있는 글들은 모두 '시' 같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나는 것이 이별 후의 아픔일 것인데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라니, 새로 다가온 사랑에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서는 '나'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사랑을 하게 되면 할 것이라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 앞에,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앞에 또 상처받고, 상처주고 가슴 아파하게 되겠지만 조금은 물러설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열정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같은 열정은 다시 없을지라도 조금씩 나의 사랑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사랑 후의 이별에는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다는데, 후회없는 사랑이 되기 위해 그녀의 곁에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나'는 분명 예전의 '나'와 다를 것이다. 다시는 사랑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일이 없기를. 늘 봄날과 같기를 바란다.

 

창 밖에 조용히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가슴 속에 천천히 스며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연인들의 마음과 같이 때론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곧 다가올 새로운 사랑은 나까지도 설레이게 한다. 겨울, 가을, 여름, 봄을 함께 보내면서 옛 추억에 잠긴다. 나에게도 따스한 봄날의 설레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손만 잡아도 설레이고 행복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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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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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의 스캔들로 모든 것을 잃은 해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 마지트와의 만남은 그녀를 필요로 했던 해리에게 운명이었고 죽을 때까지도 그녀와 이어진 인연의 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리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끔찍한 사건들이 자신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기를 바라며 마지트와의 관계 또한 끊어내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었었다. 지금은 마지트의 곁에서 일주일 중 두 번의 만남을 위해 살아가는 처지가 된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 또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마지트에게 의존하게 된다.

 

마지트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머리에 뿔 두개가 달려 있고 창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존재만이 악마는 아니다. 마지트는 천사라기 보다 악마에 가깝고, 아니 그녀는 악마가 분명하다. 해리와 운명적으로 이어진 인연으로 인해 그의 삶에 관여하게 되면서 그녀는 염라대왕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마지트와 해리의 관계는, 모호한 현실의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이어져 나가게 된다.

 

진정 해리는 마지트의 손에서 벗어나길 원하는가. 자책감과 죄책감을 짊어지게 되지만 세상에서 나쁜 놈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은 받아야 할 벌을 받았고 그 결말 또한 해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통쾌함마저 안겨주는데 굳이 그녀를 탓해야 할까. 그렇지만 마지트에 의해 세상 일이 어그러지고 이리 엮였다가 저리 엮였다가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로 인해 나의 삶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처음부터 해리를 점찍어두고 그의 삶을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았는가 의심이 가지만 지금의 결말을 놓고 보자면 마지트의 손을 잡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해리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그녀의 손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고 자신을 만나는 시간 이외에는 자유롭게 생활해도 된다고 했지만 해리의 나머지 삶도 마지트에 의해 조종당하게 된다.

 

해리로서는 꽤 억울하긴 하겠지만 마지트가 없었다면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딸에게 부모다운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자, 이쯤 되면 해리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해도 되겠지? 해리와 마지트의 마지막이 어떠했을까 알지 못한 채 결말을 맞이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마지트가 제시하는대로 살아갔을 해리는 생의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고 나서도 마지트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했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며 딸 메건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메건도 프랑스에 와서 함께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삶을 살아간 것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모름지기 삶은 예기치 못했던 난관을 만나며 어려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해리에겐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달랐을 뿐 분명 그도 마지트가 제시한 길이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 노력했을 것이다. 치열하게 부정하고, 때론 포기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이쯤되면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해리처럼 그의 곁에 수호신 마지트가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으냐고. 어려운 질문이라 오래 생각을 해 봐야겠다. 단번에 부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마지트의 존재가 매력적으로 보이나 보다.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한 삶을 살아가지만 자유을 빼앗기는 대신 안정된 삶을 원하느냐는 질문은 죽을 때가 되어서도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쯤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잠시동안만 허락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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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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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과의 첫 만남은 저자 김별아의 '미실'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색공지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사랑'은 그저 흘러가는대로 놔 두어야 할, 가슴 속에조차 가두지 못할 감정일 뿐이었고 할머니 옥진에게서 전수받은 것들을 왕실을 위해 바쳐야만 했던 여인이었다. 사다함을 만날 때만해도 그녀에겐 사랑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었고 사다함의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오로지 그의 것이 되고 싶은 평범한 한 여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속한 세상속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었고 자신이 해야만 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색'을 통해 권력을 움켜쥐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버리니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미실의 모습은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진 여인으로 등장한다. 한 시대를 휘어잡았으나 결코 왕은 될 수 없었던, 왕을 꿈꿔보지 못했던 그녀는 여기에서도 '색'을 통해 한 남자의 아내로, 왕의 아내로 왕후만을 꿈꾸게 된다. 선덕여왕이 왕이 되기 전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했을 때 미실이 받았을 충격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옥진에게서 '색공지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듣고 자란 미실이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그 충격은 꽤 컸을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미실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일 뿐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아직은 껄끄럽게 다가오는 '색'이란 것의 끈적끈적한 느낌이, 비밀스러운 것들을 묘사한 표현들이 불편해서 미실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한 탓이다. 미실하면 오로지 왕실에 '색'을 바치고 이를 이용해 권력을 움켜쥐고자 했던 모습만이 그녀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세종의 가슴 안에서 할머니 옥진이 가르쳐준 것들만들 떠올린 미실이 비록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몰랐다 하여도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궁에서 내쳐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미실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랑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가슴 안에서 죽어 버렸던 감정들이 사다함에 의해 '사랑'으로 피어나고, 다시 여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 때 그대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는 독자인 내가 바라는 결말일 뿐 미실은 결코 원하지 않는 결말이었을 테지만 미실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면서도 그녀의 마지막이 쓸쓸해질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일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속했던 이 세상속에서 만족한 삶을 살았는지 묻고 싶다. 잔인한 질문일 것이다. 그녀에게 삶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했던 감정이 사다함에 이르렀을 그때의 시간은 지금까지도 아픔으로 남는다.

 

미실이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갔다면 그녀는 역사속에서 조용히 묻혀 버렸을 것이다. 세종이라는 이름도, 사다함이라는 이름도, 미실도 역사의 한 페이지만을 장식한 채 세상에서 잊혀져 갔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 나갔던 그녀에게, 권력은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자신이 바라던 세상을 그려볼 수 있게 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면 그녀도 다른이들과 다르지 않게 슬프고 쓸쓸한 시간을 맞이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그렇게 잊혀져 가는 것이다. 미실도 세상속에서 잊혀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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