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의 진실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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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빛나는 이름이야 숱하게 들었지만, 류의 소설을 읽는 건 처음이다. 뭐 내가 류의 소설을 읽고 싶어서 읽은 건 아니고, 와인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기웃거려 본 것 뿐이다. 8개의 단편이 와인 이름을 그 제목으로 하고 있다. 오퍼스 원, 샤또 마고, 라 타슈, 로스 바스코스, 체레토 바롤로, 샤토 디켐, 몽라셰, 트록켄베렌아우스레제.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한 둘 있지만 아마도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독일 등 각국의 최고급 와인들이 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물론 마셔 본 것도 마셔 본 적도 전무후무 상무하무하다.

그 노인이 나인지, 그녀가 나인지, 내가 그 노인인지, 내가 그녀인지,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단편 <로스 바스코스>, 안개낀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자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잘 모르는 한 여자의 이야기 <트록켄베레아우스레제> 두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성적인 이야기로 끈적하고 쓸쓸하다.


<오퍼스 원>은 10살이후로 줄곧 새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샤또 마고>에는 미니스커트에 미치는 변태 우편배달부가 등장하고, 잠자는 친구 옆에서 개같은 포즈로 그 짓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라 따슈>, <샤또 디켐>에는 가죽 채찍과 피멍든 궁뎅이 그리고 SM클럽이 납신다. (뭘 모르던 옛날엔 SM이 무슨 세드무비의 약자인줄로 잠시 착각하기도 했었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 알기로 우리나라엔 이거 없다. 아니 어쩜 가까운 어디쯤에 혹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생긴다면 성범죄가 좀 줄어들까 어떨까 생각해 본다) <몽라셰>는 어두운 눈을 가진 매춘녀와의 인터뷰.....핥아주고 애무해 줄 때 남자는 어떤 모습으로 기뻐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매춘을 한다는 여자의 이야기 <바롤로> 뭐 이런 식이다. 기라성같은 상기의 와인과 책 내용에 무슨 끊지 못할 절절한 상관관계가 있는 지 모르겠다. <오퍼스 원>, <라 따슈>, <샤또 디켐>을 <참이슬>, <천년약속>, <마주앙>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무에 문제될 게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너무 무례하고 무식한 소린인가?


각설하고, 인간관계의 단절이나 상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섹스를 들먹여야 하는 지 의문이다. 책 읽는 사람이야 간간이 그런 이야기가 나와주면 뭐 고맙기도 하고 독서에 흥미가 배가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만 말이다. 무라카미씨로 말하자면 아마도 이런 쪽으로 관심이 지대막대한 것 같은데, 성적인 것에 집착하여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돌아나오고 싶어도 그러기가 몹시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보건데 장정일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캄캄한 구멍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잠잠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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