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

나 구름을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

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커’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 본다 -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

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

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

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

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

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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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의 시 <만년필>의 전문이다. 본인은 송찬호를 모른다. 본인도 한때는 시를 즐겨 읽었고 시집도 백여권 책꽂이에 꽂아두고는 있다. 다 옛날 이야기다. 문득 오늘자(2006.2.14.) 중앙일보 22면을 보다가 이 시를 발견했다. 도서출판 ‘작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문인들이 꼽은 지난해 가장 좋은 로 선정되었단다. 안타깝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서는, 시커먼 잉크가 점점 뻑뻑해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악어라니! 가당찮은 소리다.   


만년필하면 뭐니뭐니 해도 파커와 몽블랑!

IMF구제금융신청인가 뭐인가 할 때, 아무개 장관이 서명에 사용한 만년필이 몽블랑이었는데, 국가적 경제위기에 경제수장에게 고급 외제 만년필이 가당키나 하냐며 시끄럽기도 했었다. 그때 그 아무개장관은 선물받은 것이라고 답변했던거 같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자기돈 주고 그 비싼 만년필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의 그림자>에서 주인공이 갖고 싶어했던 만년필도 빅토르위고가 사용했다는 몽블랑 뭐시기 였다. 

 

그리고 또하나 파커 만년필,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2가 아니고 제곱인데....)과 함께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던 파커 만년필, 미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첨탑 중에 제일 높은 첨탑 꼭대기가 만년필 촉으로 덮여있는 파커만년필 광고도 잊을 수 없다. 사실 그 광고는 내마음을 만년필보다 바르셀로나로 떠나 보내고 있었다. 아! 스페인에 한 번 가봤으면, 알함브라가 있는 그라나다. 톨레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세비야.... 그건 그런데....만년필 하나 사고싶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잉크넣은 만년필로 노트에 뭐라도 끄적여 보고 싶다.  

 

광두정이 무엇인가 했다.  대가리를 둥글넓적하게 만든 못이란다. 일명 대갈못이라고도 한단다. 우리나라 말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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