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렴 후지와라 세이카, 요시다 오키야스, 아카마츠 히로미치 등의 학자와 교유가 깊었던 조선사람 강항은 도쿠가와 가문과 모리 가문의 부를 비교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야스의 땅에서 수확되는 미곡은 이백오십만 석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 곱에 달한다. 테루모토의 금은도 이에 못지않다......이에야스는 칸토에서 쿄토에 이르기까지 미곡으로 길을 만들수 있고, 테루모토는 산요와 산인에서 쿄토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량을 은전으로 가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248쪽
강항은 1567년에 생하여 1618년에 졸했다. 자는 태초(太初), 호는 수은(睡隱), 사숙재(私淑齋)를 쓴다. 영광 출생이다.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7년 정유재란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고향인 영광이 함락되자 가족과 함께 해로를 통해 탈출하려다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1598년 교토(京都)의 후시미성(伏見城)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후지와라 세이카, 아카마쓰 히로미치 등 학자와 교류하며 성리학을 가르쳤고, 특히 후지와라는 그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화훈본(和訓本) 간행에 참여, 그 발문을 썼고, 소학, 근사록 등 16종의 글을 수록한 <강항휘초(姜沆彙抄)>가 일본의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1600년 위에 나오는 두명의 일본학자의 도움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붉은돼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