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dts] - [초특가판]
빔 벤더스 감독, 라이 쿠더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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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사철나무 그늘아래 쉴때는>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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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 나를 보낸다>, <거짓말> 등 주로 야리꾸리한 문제의 변태소설들을 많이 써온 장정일 선생도 이십대 초반 전후에는 이런 시도 조금씩 쓰곤 했었는데, 말인즉슨 이미 희미해진 옛 추억의 자락들을 더듬어 찾는 늙은이의 한숨같은, 허파 깊숙한 곳으로부터 내뿜는 허망한 담배연기 같은, 그런 쓸쓸하고 허전한 시도 꽤 쓰곤 했었더라는 말이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밖에 될 수 없을 때" 이 구절이 제일로 마음에 든다. 말인즉슨 정곡을 찔렀는지 아니면 정곡 그 비슷한 어디쯤을 건드렸는지 마음이 짠하고 잘하면 눈물도 날 듯 말 듯 하다.

어제 본 "브에나비스타 쇼설클럽"은 왠지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이다. 쿠바 음악에 대해서 본인은 당연 문외한으로 잘 모르지만 그런대로 좋은 느낌이었고, 가사는 아주 재미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뚜라 집에 불이 났다나 어쨋다나, 화재의 심각한 상황인데도 어감이 웃겨서 조금 웃었다. 흔히 말하듯이, 촛불은 꺼지기 직전에 한결 더 밝은 빛을 내는 법이다. 빛나고 유쾌했던 지난날들을 재현해 보려는 늙은이들의 노력은 쓸쓸하고 애달프다. 육신은 이미 늙어버렸느니 마음만으로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위의 시가 생각났다. 그 옛날 본인도 학교옆 신천 방둑위에 앉아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뜬금없이 형가의 절명시도 떠오른다.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바람은 쓸쓸한데 역수의 물은 차갑구나/ 장사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비장한 각오로 떠난 장사도 결국 돌아오지 못했듯이 한번 지나간 우리 젊음도 결단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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