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올해의 사자성어
離合集散
전국 120명 교수를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권력을 쫓아 모이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12월19일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총 유효 투표수(2,456만1,916표)의 48.9%인 1,201만4,227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기적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로부터 6년 뒤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예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중국 진나라 말기 한왕 유방과 천하를 두고 한판 벌인 건곤일척의 싸움에서 패한 초패왕 항우가 오강 근처까지 도망쳐 왔을 때 주위에서 일단 강동으로 돌아가 뒷일을 도모할 것을 권하자 항우가 말했다. “강동 자제 8천을 데리고 떠나왔는데 이제 다 죽고 나 혼자 무슨 면목으로 그들의 부형을 대한단 말인가” 하고는 스스로 자결했다고 한다. 면목(面目)의 유래다. 역발산기개세로 시작하는 유명한 절명시가 전해지거니와 그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근 천년 뒤에 오강가를 지나던 당나라 시인 두목이 지난 일을 안타깝게 여겨 시를 지었다. 그 시에서 권토중래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봉하마을에서 서울 검찰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한“국민여러분께 면목없다”는 말과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시같은 유서, 권토중래를 도모하는 대신 자결로 마무리한 삶 등을 볼 때 인간 노무현과 인간 항우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얼토당토 않은 비약인가.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우리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창조했다. 네델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전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히딩크 감독이 즐겨마셨다고 해서 와인 샤또 딸보도 덩달아 인기였다(요즘 대형할인매장에서도 10만원 가량 한다). 월드컵 패막 하루 전인 6월29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경비정 1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 공격해 장병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다. 처음에는 서해교전으로 부르다가 후에 제2연평해전이라 명명했다. 북한측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6월13일에는 경기 양주군에서 여중생인 신효순. 심미선양이 주한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이 발발했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 와 더불어 반미감정에 기름을 퍼붓는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차남, 3남이 비리문제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국외적으로는 테러 공포가 무슨 전염병처럼 퍼져 확산된 한해였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테러가 발생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도 체첸반군에 의한 인질극이 있었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이라크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그때는 아직 전운이 감도는 그정도)   

 

국내외적으로 일어난 여러 사건들과 정황을 살펴볼 때 철새 정치인들의 가벼운 처신을 질타하는 ‘이합집산’이라는 사자성어로 2002년 한해를 정리하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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