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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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신화가 전하고 있는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지. 이 사람이 별별 재주를 다 가지고 있었는데, 크레타왕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를 인하여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자 왕비의 부탁으로 희안하게도 실제와 똑 같은 모양의 암소를 만들어 주었어.(간음간통방조내지조장죄에 해당되겠다)

왕비는 그 모형 암소 안에 들어가 엎드려 황소를 유혹하였던 것이라. 그리하여 여차저차하여 발정난 황소의 정을 받아 아이를 낳으니, 이 아새이가 바로 육신은 사람이나 소대가리를 달고 태어난 괴물 미노타우로스라(무신 공룡이름 같군....으음) 아~ 참말로 해괴요상괴상하고도 망측한 일이라. 그러나 신화를 곧이 곧대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화시대의 인간 종내기들은 대단히 형이상학적이어서 온갖 비유와 갖은 은유로 사실을 포장하고 있으니 적당히 알아서 해독해야 할지라.

이 소대가리 괴물을 부끄럽게 여긴 미노스왕이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하여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미궁을 만들게 하여 그 안에 소대가리를 가두어두게 했더랬지... 그리고 당시 약소국이었던 아테네로부터 매년 남녀 각 7명씩을 조공받아 이 소대가리의 일용할 양식으로 공급했던 것인데.....그런데 이 희생제물중에 장차 몽둥이로 이 소대가리를 쳐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와 일국의 왕이 될 영웅이 출현하게 되니 바로 테세우스가 그이다.

이 청년은 성장과정에서, 집구석 주춧돌 밑에 숨겨진 혈연의 신표인 부러진 칼을 찾아내어 부왕을 찾아가 장자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지 애비를 놀래켯던 고구려왕 유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옛날 신화나 전설들은 다 슷비슷비하기도 한 것일레라. 사랑에 눈알이 뒤집어진 낙랑공주가 강호동이(?)를 위해 자명고를 찢었듯이, 아버지를 배신한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의 도움(몸에 실을 매어둔 관계로 미궁을 무사히 빠져나오게 됨)으로 테세우스는 소대가리를 쳐죽이고 아리아드네를 데불고 아테네로 달아나버렸으나, 다이달로스는 '소대가리 사태'에 연루되어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히고 말았던 거이다.

자신이 설계한 미궁에 갇혀버린 다이달로스.하지만 그가 누구인가.....천하 명장(名匠) 다이달로스는 새깃털을 밀랍으로 서로 붙여 커다란 날개를 만들어 달고 탈출을 시도한다. 노련한 다이달로스는 고도를 적당히 유지하여 탈출에 성공하나,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것이 너무나 신나고 즐거워, 나는 김에 좀 더 높이, 가능하면 태양까지 한 번 날아올라 보자는 가당찮은 생각을 품고 날아오르다가 끝내는 태양열에 밀납이 녹으면서 깃털날개가 망가져 추락하게 되니, 아 헛된 생각일랑 애시당초 품지를 말일이다

브뤼겔이 그린 그림 '이카로스의 추락'은 최영미의 '유럽일기-시대의 우울'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인데,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수려한 외모의 미소년 이카로스가 커다란 은빛 깃털날개를 바닥에 깔고 바위위에 우아하게 죽어 널부러져 있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었는데, 우잉? 이카로스는 도대체가 어디에 있는 것이야? 최영미의 글을 읽고서야 그림 한쪽 구석에 거꾸로 쳐박혀 다리만 하나 달랑 거리는 것이 이카로스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니, 이카로스 자신에게 있어서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겠지만 밭가는 농부에게나, 낚시하는 어부에게나, 세상사 전체로 볼때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허허망망한 고런 생각도 들었습지.

인생이란 것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톨 좁쌀같은 것은 아닐른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쓸쓸한 생각도 들더란 말입지. 자기 혼자 길길이 미쳐 날뛴다고 한들 세상은 꿈적을 않느니 별 뾰족한 수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지.그런데, 그런데 말씀이야..추락하는 것들이나 비상하는 것들은 모두 날개를 가지고 있더라나. 가짜건 진짜건 간에 말이지. 하여 본인은 본인의 간질간질한 겨드랑이 밑을 조심스레 들여다 보았지.그런데...그곳에는....허걱!!....은빛 눈부신 보드라운 깃털대신에....짧고 꼬부라진 시커먼 터레기만 잡초처럼 무성하더란 이야기...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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