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 이야기

한 남자를 만나서 이십여 년 넘게 살아오다 보니, 아니 연애기간을 합치면 그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군요. 그 긴 세월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었어요. 그러나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부부지만 자기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나 감정이 있지 않겠어요. 물론 그것이 나중에 알려지더라도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이어야 하겠지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의 남편은 많이 힘든 편이지요. 제가 특별히 뛰어난 눈치를 갖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남편이 치밀하다거나 세련한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서이지요.
정직하게 살려고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라 거짓말은 잘 하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하게 되는 거짓말은 정말 훤히 다 보입니다. 그럴 때면 갈등을 하게 되지요.
그러냐, 하며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할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저는 삶이 모자이크라고 생각을 합니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살아가면서 작은 조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요.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밝고 어둡고 간에, 기쁘고 슬프고 간에 다 제 인생에 필요한 조각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작은 한 조각, 계란찜 이야깁니다.
구 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생활도 이십 년이 훨씬 넘으니 함께 알아온 세월이 만만치가 않지요. 그래서 남편에 대해 제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계란찜을 자주 식탁에 올렸어요. 사실 제일 손쉽고 간단한 반찬이잖아요. 계란 두어 개로 계란찜을 해서 아이들에게 밥을 비벼주곤 했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라서 객지로 나간 이후로는 거의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 별 생각 없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반찬거리가 변변치 않아서 그나마 재료도 있고 손쉬운 계란찜을 해서 식탁에 올렸어요. 그런데 남편이 그걸 맛있게 먹었어요.
“그렇게 맛있어?”

그 다음부턴 슬픈 사연이에요.
남편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부터는 도시에 나와서 자취를 했어요. 고향에서 양계장을 하는 친구와 둘이서 방을 얻어 생활을 했는데, 토요일이면 친구 어머니가 계란을 삶아 오셨는데 남편이 있을 때는 그 보자기를 풀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모두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울 때라 자기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니 보자기를 풀 수가 어려웠겠지요.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해도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좀 짠했어요.
저희 시댁이 그렇게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는데, 아버님은 농사를 지으시니까 아끼고 저축해서 논과 밭을 좀 더 사시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시대의 남자들은 그렇잖아요. 쌀이랑, 김치랑, 간장, 된장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남편은 같은 연배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음식에 대한 생각이 각별해요. 뭐랄까, 음식에 대한 외경심이라고 할까요? 식은 밥 한 숟가락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지요. 웬만해서 버리는 음식이 없는 것은 물론 과식도 하지 않아요.
음식을 대하는 남편의 그런 자세를 보면 모자람이 없이 넘치고 풍성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계란찜이 가끔 식탁에 올라왔다는 거지요. 저는 기억에도 없지만 제가 남편에게 이랬다는 겁니다.
“왜 자꾸 얘들 반찬을 먹어?, 자긴 다른 것 좀 먹어.”
뭐, 제가 남편이 먹는 것이 아까워서 그랬을까요? 아무런 고명도 얹지 않은 거라 맛이 좀 밍밍하니까 그게 무슨 어른의 반찬이 되랴, 싶었겠지요.

그렇게 세월이 지나 아이들은 다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공부하러 객지로 떠났지요. 요즘은 오직 남편만을 위해서 가끔 계란찜을 식탁에 올립니다.
저는 남편과는 좀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어릴 적부터 먹는 것이나 입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래선지 본질적인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쓸 때가 많습니다.
품위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계란찜은 뚝배기가 아닌, 옛날 방식으로 합니다.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방법으로 밥솥에 넣어 찌거나 냄비에서 중탕을 하거나 합니다.
어느 날, 시누이 댁에 갔더니 중탕하기에 꼭 맞는 대접이 있어서 두 개나 얻어왔지요.

이야기가 여기까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순도순 나이 먹어가는 부부 같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먹을 때와는 달리 남편을 위해서 하는 계란찜에는 파나 고추를 썰어 넣어 고명을 올립니다.
파를 싫어하는 저는 자꾸만 밑부분을 파먹습니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만하면 마누라가 파를 먹기 싫어서 그러는구나, 감을 잡아야 할 텐데 그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소릴 지릅니다.
“차근차근 못 먹어? 왜 자꾸 땅굴을 파는 거야?”
사실은 소리 지를 일도 아니에요. 남편은 파를 좋아하거든요. 반찬에서 남편은 파부터 골라먹고, 저는 파를 골라내놓습니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는데, 파를 좋아하는 남편은 계란찜의 윗부분을 저는 아랫부분을 먹으면 될 일 아닌가요?
부창부수라. 저도 한 마디 합니다.
“앞으로 계란찜 먹을 거야? 말거야?”

남편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중간에 자리를 바꿔 앉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숱하게 이사를 다녔어요.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를 네 군데, 중학교를 세 군데나 거쳐서 졸업을 했어요.
그렇다 보니까 마음 놓고 친구한 명 사귈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아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축구부 부주장이라고 했어요.
“축구는 네가 제일 잘한다며?”, 물었더니 아들의 대답이 전학을 온 얘는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주장은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아이들 세계에도 텃새가 있나보다, 치부해 버리기에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날 밤, 밤새도록 베갯머리를 적시며 소리 죽여 울었어요.
그런 아픔들이 있어서 고등학교는 아예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냈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일찍 빈둥지가 되었어요.
머리에 서리가 앉기 시작하는 나이임에도 우리 부부는 가끔 별거 아닌 일로 이렇게 티격태격 합니다. 때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로 토라져서 하루 온종일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알겠지요. 가끔씩 서로에게 놓은 어깃장들이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을요.
저는 앞으로도 계란찜을 식탁에 올릴 거고, 여전히 티격태격 하겠지요. 아마 그렇게 나이 먹으며 늙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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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오늘은 좀 분주했습니다.
지난 11월, 12월 바빠서 개인적인 만남의 자리를 되도록 줄였더니
새해가 되자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보자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점심 때 손님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연탄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안도현 시인의 시가 떠올랐지요.
시인은 이래서 존경받을 만합니다.
단 세 줄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다니요.
시를 떠올리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새해을 열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몇 년 전 신문이나 방송에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IT 산업, 항공, 조선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마당이니 인문학이 무슨 대수냐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강의를 축소시키거나 폐강을 한다고 난리였습니다.
그 때 저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은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인격과 자존심으로 사는 것이지요.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 시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근간을 흔들어 놓은 것이지요.
그렇게 메스컴에서 떠들어 댈 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다려야지요.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 노숙자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기보다 인문학 강좌를 수료하게 했더니 다시 노숙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의식을 일깨워준 것이지요.
수돗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벽 뒤에 그리고 땅 속에 묻혀있는 수도관을 통해서 나옵니다.
인문학이 바로 땅 속에, 벽 속에 묻혀있는 수도관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사람학'입니다.

그전에 한글을 모르시는 할머니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자주 잊어버리고 빨리 따라오지 못해서 저에게 늘 미안해 하셨지요.
그 때 드린 말씀입니다.
콩나물을 키우느라 물을 주면 물은 아래로 다 빠진다. 그래도 콩나물을 자란다.
마찬가지로 저의 작은 글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인 교회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로 살아가고 있는 지
한 번씩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발휘할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주변언저리에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나 감상이나 느낌으로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학생들이 시험을 잘 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시험을 잘 치지.'라는 사실을 안다고
시험을 잘 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범위를 찾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인문학이 우리의 배를 부르게 하지는 못해도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원으로서의 힘을 제공하듯이
'나 자신'이 예수님 피값으로 산 '예수님짜리'라면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서 '나 자신'이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람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나 자신'의 값어치를 하고 살아가는 삶이겠지요.

***저는 예수쟁이입니다.  그래서 글에도 자주 쟁이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러려니 해주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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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게 되면 교회 건물을 눈여겨 봅니다. 

물론 제가 믿는 개신교회당은 아니지만 

저녁 무렵, 이국의 교회는 또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제 하루 일과를 접고 어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라는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의 품은 바로 절대자의 품이고 

제가 믿는 예수님의 품입니다. 

 앙가라 강 가의 영원의 불꽃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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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누라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한약을 먹게 되었어요.
청년 시절에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 남편은 속담처럼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되어서인지'한약 마니아'에요.
건강에 별 이상이 없어도 일 년에 몇 차례는 한약을 먹어야 해요.
그런 모습을 평생 보아온 저는 한약이라면 고개를 젓습니다.
근데 나이는 못속이는가봐요.
여름을 시작하면서 영 맥을 못추었더니
남편이 한약을 먹으면 괜찮다는군요.
한참을 버티다가 약을 지었겠지요.
남편은 그런 저에게 은근슬쩍 묻어서 자기도 먹어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부가 나란히 한약을 먹게 되었지요.
왼쪽이 남편 컵, 오른 쪽이 제 컵이에요.
그냥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에요.
근데 남편이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 있죠?
"왜 내 컵이 검정색이야?"
그 뒤에 따라 나올 남편 말은 뻔한 소리에요.
그래서 제가 선수를 쳐서 냉큼 소리쳤지요.
"속이 시커먼 놈이란 말이지?"
제게 말할 기회를 놓친  남편이 중얼거리는 말,

'오래 살았더니 마누라가 아니라 귀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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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를 기다리는 시민들 

바이칼 호수로 가는 버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이르쿠츠크 시민들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 다르죠? 

이렇게 추운 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지만 사람 사는 것은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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