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이야기
카메라를 새로 샀다.
지금 쓰는 Canon IXUS40은 벌써 산지가 육칠 년은 되었다.
우리 아들 말대로 내 수준에 꼭 맞고, 지난겨울 바이칼 사진을 찍은 터라 애착이 가긴 한다.
그 카메라 외에 아이들 자랄 때의 모습들을 찍은 필름 카메라도 있고, 작은 삼성 디지털 카메라도 있긴 하다. 포라로이드 카메라도 한 대 있다.
그러나 문화센터의 사진반 들어가서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미리 장만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카메라를 만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 사진 찍기를 좋아한 아버지나 오빠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주기도 했다.
빌려서 하루를 썼는데 카메라 앞쪽이 약간 긁혔다.
사진관에서는 당연히 변상을 요구했고, 그러다가 아예 그 카메라를 샀다.
처음 갖게 된 카메라의 유래이다.
물론 그 때는 중학생이었던 오빠 때문에 내 차지가 되기가 어려웠고, 소풍날이나 되어야 간신히 카메라를 만져볼 수 있었다.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재산목록이었다.
그 때는 텔레비전도 여닫이문을 만들어 달아서 잠가놓곤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십 년쯤 전의 일이니까.
소풍날이면 나는 카메라만 들고 소풍을 가곤 했다.
가까운 친구들의 오래 전 앨범 사진은 거의 다 내가 찍어준 사진들이다.
필름 카메라의 추억은 아련하다.
사진을 찍고 확인해 볼 길이 없이 필름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또 현상, 인화하는 과정에서 기다림을 배운다.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처럼 그때그때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워버릴 수도 없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대로 지울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수정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살아버린 삶은, 반성하여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자각을 가질 수는 있어도 ‘어제’를 다시 살수는 없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신 아버지는 이미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고, 사진을 만지면서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오빠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며칠 전, 학생들을 데리고 경주로 문학기행을 와서는 고향 선산에서 잠깐 본 오빠는 많이 늙어있었다.
나보다 세 살 위인데...나도 그만큼 나이 든 모습이겠지.
세 분의 작은 아버지들 가족들과 우리 집 바른생활사나이가 열심히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오빠와 나는 열심히 카메라에 가을을 담았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을...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이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매운탕은 안먹어도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그러면 되는 것을...
“오빠, 아직도 영화감독에 미련 있나?”
내가 물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것도 괜찮다.” 다시 길을 돌아서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나도 예전엔 아버지께 불만이었지만 나 역시도 아버지랑 똑같다. 막내가 고대가고 싶다고 했을 때, 고대에 가려면 법대를 가야지 하고 펄쩍 뛰었다. 역사학과 가면 밥 빌어먹기 좋을만하다고. 아버지가 오빠 영화감독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러셨잖아, 밥 빌어먹는다고.”
서울에 사는 터라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것이 고작인지라 우리 남매는 햇빛이 쏟아지는 가을 속을 거닐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또다시 일 년 뒤에 다시 이곳에 와서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