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요즈음도 국어책에 이런 동요가 실려 있는지 모르겠다. 이른 저녁밥을 먹고 산책을 하다 보니 구름의 바다 위에 보름달이 떠 있다. 문득 시간의 켜 아득한 곳에 쟁여져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이 동요를 배울 때는 부산에서 살았다. 당시 쌀가게를 크게 하신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한 친척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는 나를 데리고 마실을 다녔다. 굳이 나를 데리고 다닌 이유는 다 큰 처녀가 밤마실 가는 것을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밤마다 나를 꼬드겨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내게 했다. 언니가 놀러가는 곳에 가보면 언니 또래의 친구들이 있었고 비슷한 나이일 듯한 총각 몇이 수줍은 듯 앉아있었다. 나는 별로 재미가 없어서 집에 가자고 보채면 언니는 알사탕이나 종이봉지에 든 주스가루를 물에 타서 주며 나를 달랬다.

시간이 지나면 서먹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느 사이 서로 짝을 맞춰 앉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거나 간단한 게임들을 해서 진편이 내는 호떡이나 군고구마, 메밀묵을 먹곤 했다. 가끔은 어느 날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 극장 구경을 가자고 약속을 잡기도 했다. 그렇게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보면 아버지가 허락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 마련이었다.

잠 오는 눈을 비비며 언니의 손을 잡고 걸어오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에서 휘영청 보름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까닭 없이 보름달이 슬퍼보였다. 왜 그랬을까. 학교에서 이 동요를 배우면서도 슬픈 기분은 여전했다.

귀가 시간을 어긴 언니는 대문 앞에서 내게 등을 내밀었다. 업혀서 자는 척을 하라는 것이었다. 순순히 업히다가 한 번씩 심통을 부리면 언니는 집안 식구들 몰래 계란프라이를 해 주겠다거나 시장가는 길에 데리고 가서 머리핀을 하나 사주겠다며 나를 구슬렸다. 아버지께는 내가 잠들어버려서 늦게 왔다고 했다.

요즘 들어 그 시절이 그립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좁은 방에 고만고만한 처녀총각들이 앉아서 손 한 번 잡으려면 열 번도 더 만나야 하는 그 시절이 눈물 나도록 그립다.

아무리 친척 집이라고 해도 너무 가난하여서 입 하나 덜기 위해 우리 집에 온 언니도 말 못할 슬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활달하게 그 시절을 잘 건넜다. 편편한 사람을 만나 한평생 무리 없이 살아 이제 손주가 대학생인 할머니가 되었고, 극장가는 것을 아버지께 일러바친다고 가끔 심술을 부리던 어린 계집아이도 머리에 서리가 희끗한 세월 위에 서 있다.

우리의 인생이, 달이 한 번 그득해졌다가 스러져 가는 것이라면 내 삶은 이제 이울 일만 남았다. 그렇더라도 지난날들과 다를 바 없이 앞으로 디디고 갈 나날들 위에서도 여전히 만나게 될 고통이나 슬픔, 서러움 앞에 섰을 때 지금처럼 꺼내볼 한 장의 장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따뜻한 손길이 되어 메마르고 고단한 마음을 쓰다듬고 갔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세상을 한 바퀴 돌아서 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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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인생 여행 세트 - 전2권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외 옮김, 베아트리체 리 외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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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아내가, 주부가, 아줌마가 행복한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더 살기가 나은 사회라고 믿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모든 건강한 에너지는 사실 여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하고 싶었다.

여성대학에 <맛있는 책>  강좌를 열었는데 프랑스 자수, 궁중요리에 밀려 인원수급이 안돼 폐강위기에 몰렸다.
말도 안되는 현상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학문이고 그 근간에 '책' 이라는 매체가 있다.
주위에서 나의 이런 뜻에 공감하고 몇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첫 시간에 나는 아내나 엄마나 사회적인 직함을 모두 떼고 12강을 진행할 동안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자고 운을 뗐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눈치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고, 마음껏 웃자고 했다.

20분짜리 <행복의 기술>강의로 시작했다.

생각을 바꿔라, 나를 사랑하라, 염려하지 마라, 지금 행복하라, 행복을 연습하라.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저자 프랑수아 클로르 씨가 주장한 23가지의 행복에 대한 배움도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소한 것, 작은 것, 지나치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다.

초원에 불이 났다. 호랑이, 사자, 코끼리, 기린, 얼룩말 같은 큰 동물들은 일제히 불을 피해 도망을 갔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진화에 나섰다. 이름이 벌새이니 크기가 짐작이 간다. 새 중에서 가장 작아 벌새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고 와서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큰 짐승들은 그 모습을 보고 벌새를 비웃었다. 그런다고 불을 끌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는 대답을 한다. 그건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병리현상은 '빵'으로만 치유되지 않는다. 빵만으로는 근본적인 허기를 달랠 수 없다.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도 들리는, 사회면을 장식하는 우울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벌새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 주위에 몇 명의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로 인해 또다른 몇 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희망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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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2-2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지`는 가장 큰 손가락이고,
엄지는 `엄마`하고 같은 말밑이 아닐까 싶곤 해요.
예부터 어머니라는 사람이, 가시내라는 사람이,
이 지구별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숨결인지
잘 헤아리고 읽었으리라 느껴요.
오늘날에는 이를 읽거나 헤아리는 사람이
매우 드물지만..

gimssim 2014-12-23 21:35   좋아요 0 | URL
함께 살기님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습니다.
`아름다운 숨결`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요.
벌새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걸까요?
 

 

 

 

 

 어렸을 적엔 안개를 무서워했었다.
내 두려움의 근원은 아마 동생이 태어나서 시골 친가에 잠시 떨어져 살았던 것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주위의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부산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아니라 적막한 고요가 먼저 느껴졌다.
그래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안개는 내게 두려움이었다....
학창시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었다.
'무진에 명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이 대목에서 안개에 대한 무장해제를 했다.
사진을 기웃거리고 있는 지금은 안개는 좋은 사진감이다.
삼천 장쯤 찍으면 삼십 장쯤 추려서 전시회를 한 번 해볼까 싶지만 언제 안개 삼천 장을 찍나 싶어 무모한 도전일 듯...
안개는 아련하다.
베일에 싸인듯 드러나지 않지만 해가 뜨면 사물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가 아무리 가면을 쓰고 포장을 해도 자신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요즘은 그런 안개가 좋다.


가끔씩 숨을 수 있어서...

 

 

1박 2일로 떠난 여행...우포늪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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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남은 가을 볕을 아쉬워하며 잠시 시간을 내어 걸었다.

스러지는 빛은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디선가 한 자락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스친다.

다시 한 계절을 열어두니 소리없이 한 웅큼씩 빠져나간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니, 그것은 가뭇없이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슬며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들이 아닐까.

시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다음 사람에게 또다른 풍경을 그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 사람의 세상...내가 그리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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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0-07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풍경이 멋지네요.
같은 풍경을 보고 멋지게 담아내는 건 안목이겠죠?^^
아래 댓글을 오늘에서야 봤어요. 감사해요~
아직도 미출간이네요~ ㅠ
전에 다른 책도 알라딘에 전화하고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어요.

2014-10-07 0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07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3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3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관함에 넣어두고 몇 달을 기다렸더니 드디어 반값도서로 판매한다는 문자가 와서 얼른 샀다.

요령도 없이 너무 분주하게 살아서 독서는 잠을 줄여야만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건강이 나빠지고부터는 잠자는 시간도 고수하고 있으니 읽지 못하고 쌓여가는 책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 책들은 오래 전부터 갖고 싶었던 터라 정말 행복하다.

글과 사진이 적절하게 배합된 책이다.

우선 사진들을 넘겨보다 보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는 언제 이런 여운이 남는 사진들을 찍어보나 싶다.

밥 때가 한참이나 지났는데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렇다고 건너뛰는 것은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먹긴 먹었다.

평소때보다 두 숟가락쯤 덜고,

(사실을 약을 먹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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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04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이 안좋으신가요? 책 출간에, 시화전에, 독서모임 지도에, 많이 무리하셨던게 문제가 되었는지요. 좋은 소식들 축하드리려고 들어왔는데, 축하드림과 함께 건강 어서 회복하시라는 말씀도 함께 드려야겠습니다.

gimssim 2014-10-06 21:20   좋아요 0 | URL
걱정해 주시셔 고맙습니다.
어째, 불경기(? 갱년기)의 강을 힘들게 건너고 있네요.
마음이 많이 슬퍼서 몸을 좀 혹사시키면 나을 듯 하여 여러가지 일을 벌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서로 돌아앉았던 품새를 풀었으니 곧 회복 될 듯 합니다.
맑은 가을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