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미련이 남아서일까?
돌아서서 가던 겨울 바람이 얼굴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4월 3일.
세상의 바람을 다 이곳에 풀어놓은 것일까?
다리를 땅에 붙이고 살려면 다이어트를 하려던 것을 좀 재고애 보아야 할 판이다.
오늘은 결혼 삼십주년 되는 날이다.
참 많은 날들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오늘부터 아침 금식을 시작했다.
나는 예수쟁이다.
그리고 지금은 고난주간이다.
사십 일 아침 금식을 작정하고 보니 하필 시작하는 날이 결혼기념일이다.
그나마 오늘은 우리 부부 둘 다 너무 바빠서 삼십 년을 같이 산 영감(? 남편이 보면 좀 심난해 하겠다) 얼굴도 제대로 못보았다.
저녁 강의를 듣고 열시 넘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니 남편은 벌써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빨리 씻고 자자는 소리가 날라온다.
그런데 나는 밤 시간에 강의를 듣고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세 시간 강의 듣고, 삼십 분 운전해서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지만 정신은 말짱해져 있다.
올 겨울은 정말 너무 길다.
그래도 봄꽃은 꽃망울을 맺고,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봄을 기다리다 지쳐 나는 집안에 봄을 들여놓았다.
이것이다.

오래 전부터 사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신병이 좀 가벼워졌을 무렵의 고흐가 동생 테오의 득남을 축하하며 그려준 그림이다.
강렬한 선과 색채에 휘둘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가지에 힘이 느껴진다.
언젠가 이 그림의 양산을 산 적이 있다.
긴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봄을 들여놓기로 작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내 삶의 스타일이다.
얼마 전 남편이 사석에서 우리 부부는 함께 교회에 다니는 것 외에 같은 점이 별로 없다고 말을 했다.
그런 부부가 중간에 찢어지지 않고 삼십 년을 살아왔으니 분명 '의지의 한국인'이 아닌가.
나는 문제가 생기는 정면돌파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니 살면서 그렇게 진화(?)되어왔다.
얼마 전 친정에 초상이 나서 갔더니 육촌 오빠가 어릴 적의 나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 데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나는 부끄럼이 많고, 남을 배려하고,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싸움닭 같은 아줌마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며칠동안 좀 슬펐고, 우울했다.
아름답고 향기롭게 한 생애를 살고 싶었거늘!
아들이 돈을 보내왔다.
결혼기념일날 맛있는 거 사먹으라는 거였다.
나는 괜히 심통이 나서 남편에게 한푼도 안주고 외식은 귀찮다며 돈을 몽땅 내가 챙겼다.
거기에 질 남편이 아니어서 사월 중순쯤에 청산도에 가자는 것이었다. 아들이 보내온 돈으로.
나는 좀 건조하게 말했다. '그때 가봐서!'
순전히 겨울이 너무 긴 탓이다.
그러나 거실에 봄을 들여놨으니 내 마음도 따뜻해질 것이다.
"아, 내 청춘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