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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일기
여름 한낮의 풍경은 현기증이 납니다.
어제 밤늦게 잔대다 새벽기도 갔다 와서 아침 먹고 잠시 눈 붙였다가
비몽사몽간 노인요양병원에 가서 재롱을 떨고 왔는대도
여름 낮은 아직 정점에서 맹위를 떨칩니다.
노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도 노인이 되면
다른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 고쳐먹기로 했어요.
지난주에 할아버지 할머니 세례 받으시는 것을 제가 사진을 찍었거든요.
사진이 박힌 세례증서를 갖다드리느라 안갈래야 안갈 수가 없었어요.
이래저래 하나님께서 저의 코를 꿰시는 것이겠지요.
여름 한낮,
가만히 있어서 땀이 뻘뻘 나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사진 책을 보고 사진 공부를 합니다.
그냥 보고 넘어가도 되는데 아무래도 짧은 메모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옆에서 보던 남편은 또 한소리 하는군요.
“OOO(제 이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말허리를 냉큼 잘라 제가 대답합니다.
“그랬으면 너무 잘나가느라 당신이랑 결혼 안했겠지?”
늘 본전도 못찾으면서 건드리기는 왜 건드려!
열이 난 김에 더운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옵니다.
저는 다소 커피광입니다. 마신 역사도 오래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더운 날에도 뜨거운 커피만을 고집합니다.
냉커피, 캔커피는 안마십니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 머그잔이군요.
암튼 알라딘에서 이런 저에게 상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제 저녁이 되면 또 한 끼 밥을 먹고 잠을 자겠지요.
우리 집의 ‘늙어가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열시면 잠자리에 듭니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기 싫은, 그와 함께 사는 아줌마는 열두 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오늘은 참 무더운 하루였습니다.
이런 날씨가 한 달은 계속되겠지요.
- 오늘의 일기 끝. 초등학교 시절, 외갓집에 가거나 다른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일기도 미리 써둔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일기를 좀 일찍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