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나들이 ... ‘정직한 밥’을 소망함
이삿짐을 풀고 정리를 하느라 며칠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전쟁터 수준인 집안을 버려두고 사진을 찍으러 오일장엘 갔습니다.
새집은 거실 가득 볕이 들어서 좋습니다.
그전 집은 앞뒤로 둘러싸인 집들 때문에 볕이 잘 들지 않았거든요.
봄도 제일 늦게 찾아오는 ‘키다리 아저씨네’ 집이었습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기온도 낮고 바람도 몹시 불었습니다.
장터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닭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일행을 놓쳤습니다.
사람들의 삶도 그렇지만 동물들의 생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때로 미아(길잃은 아줌마) 발생을 막아줍니다.
폰으로 ‘엄마 잃어버렸어요’ 전화를 했더니 저보다 십오년이나 젊은 친구가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계세요’ 하더니 와서 저를 찾아갔습니다.
시장기를 달래느라 장터국수집에 앉았더니 텔레비전에서는 천안함 희생장병들의 영결식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생명은 짧은 불꽃처럼 꺼지고, 살아있는 자들은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장터 아저씨는 밥을, 장터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자장면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한 그릇의 밥은 이렇게 정직합니다. 그러나 모든 밥이 정직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질은 포크레인으로 온 산하를 파헤친다고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지요.
사람이라고,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연에 횡포를 부리지 않고, 한 그릇의 정직한 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사고가 없을 수야 없겠지마는 기술이나 경쟁력, 국가 위상...같은 것들보다 ‘인간’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 사고는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말은 몸이 듣고, 몸의 말은 마음이 듣’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장터나들이를 하면서 ‘정직한 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여전히 전쟁터 수준인 살림살이들은 ‘빨리 나를 제자리로 갖다 두라’고 소리를 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