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가요?
우리 부부의 삶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남편이 까까머리, 제가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때부터
굳이 사회학자 토인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어요.
그렇게 한 세월을 살아왔는데
세마나에 간 남편이 집에 오기 하루 전날 문자를 보내왔어요.
'다음 주엔 당신이 일주일간 쉴 수 있게 준비해라"
이 '무신' 황당한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네요.
우리 남편의 사무실은 작은 도로 하나 건너에 있어요,
아무리 넓게 잡아도 500미터 반경안에 있어요.
그나마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요.
집에 있으면 남편은 방에서, 저는 거실에서 책을 읽습니다.
삼십 분즘 지나면 남편이 이렇게 소리칩니다.
"여보, 어딨어?"
"거실에."
그러다가 다시 한 삼십 분쯤지나면 다시 소리칩니다.
"여보, 지금은 어딨어?"
(톤을 조금 낮추고 어금니를 깨물며) "거실에."
이삼 십분 간격으로 제 위치를 확인합니다.
결국 제가 "그만 좀 찾아, 어디 나가면 얘기 할테니까."
으르렁 거리며 소리를 질러야 마무리가 됩니다.
아내를 무지 사랑하나보다구요?
그건 글쎄올시다이고, 제 친구들은 처음에 의처증이 아닌가 난리를 쳤어요.
그건 아니예요.
저를 찾는 건 집에 있을 때 뿐이지 어디 세미나나 강의를 가면 돌아올 때까지 전화 한통 없는 사람이죠.
그런 남편이 일주일씩이나 저 혼자 휴가를 가라니 제가 놀랄 만도 하지요.
근데 이건 무슨 조화인가요?
남편의 그 문자를 받는 순간, 메니큐어를 칠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바른생활사나이 옆에서 팔자에도 없는 바른생활아주머니로 살아온 반작용일까요?
(후기 : 남편이 돌아오고 정말 그 다음 주에 일주일 동안 혼자 휴가를 갔었어요.
잠오면 자다가, 책읽고, 음악 듣고, 글 쓰고...꿈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