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매지 > 단호박 떡케잌

 

재료(대나무 찜기 22cm기준) : 멥쌀가루(7컵), 단호박(1/4개), 고구마(1/2개), 설탕(4)

 

 

1. 속을 파낸 단호박과 고구마를 쿠첸에 찌고,(전자렌지에 익혀도 무방)

(단호박 1/4개와 고구마1/2개만 필요하지만, 남은건 먹으려고 모두 쪘음..ㅋㅋ

단, 나중에 장식할 단호박과 고구마는 남겨두기.)




 
 
 
2. 쪄진 단호박과 고구마를 체에내리고,



 
 
 
3. 한 번 체에내려서 준비한 쌀가루에 2와 설탕을 넣어서 고루 섞이도록 손바닥으로 비벼주고,
(마하의 속도로 비비고 있는 현란한 손동작.^^v)



 
 
 
 
4. 3을 고운 체에 다시 한 번 내려주고,



 
 
 
5. 손으로 가볍게 뭉쳐봐서 3~4번정도 톡톡~쳤을 때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o.k
** 단호박에 수분이 많기 때문에 따로 물을 넣지 않아도 저 상태가 되지만,
만약 물기가 없었던 단호박이었다면 상황에 따라 물을 약간 첨가.



 
 
 
6. 찜기 옆면에 2*3cm로 썬 단호박, 고구마를 번갈아 세워주고,
만들어놓은 5를 찜기에 채워서 김오른 찜통에서 25분 쪄주고, 5분 뜸 들이고
(** 쌀가루를 찜기에 넣을 때 손으로 꽉꽉 눌러주면 잘 익지도 않고, 식감이 좋지않으니까
손으로 살살 뿌려가며 포실포실한 느낌을 유지.  그리고 반드시 김오른 찜통에서 찌기.
대나무 찜기 아래는 A4지나 노루지, 면보를 재단해서 깔아주기.)



 
 
 
7. 이제는 장식하기~^^
(그러므로 여기부터는 자기 마음대로~~자기가 장식하고 싶은대로~~^^)
익히지 않은 단호박을 필러로 얇게 저미고,



 
 
 
8. 물(50g), 설탕(50g)을 넣고 끓이다가 단호박을 넣고 센불에서 가열.
끓기시작하면 물엿(20g)을 넣고 약한불에서 단호박이 투명한 색이 날 때까지 서서히 조려주고,
완성된 단호박 케이크 위에 장식하면~~~



 
 
 
 
완성~^0^



 
시식평가 : 이번에도 맛이 궁금했기에, 
완성된 쌀가루를 조금 덜어서  종이컵에 따로 쪄서 시식해봤다.
 
우와아아~~~폭신폭신!!! 보들보들~~~!!! >.<
지난번 녹차케이크는 청량한 맛이 일품이었다면,
이번 단호박 케이크는 부드러운 맛이 단연코 돋보였다.
마치 카스테라같은 폭신폭신한 질감. 게다가 쫄깃쫄깃~~^^
 



 
그냥 쌀가루만 찌면 먹을 때 심심할 것 같아서 옆면엔 단호박과 고구마를 넣고,
위엔 캬라멜 느낌이 나는 단호박 조림을 올려봤는데, 모양은 그런대로 만족.
드시는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출처 카페 > 쿠첸의 건강한 밥맛 행복한 .. / 쿠체니
원본 http://cafe.naver.com/cuchen/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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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부뤼겔의 그림의 사계 자세히 보기!

The Hunters in the Snow (January).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Hunters in the Snow (January).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겨울 *

The Gloomy Day (February).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Gloomy Day (February).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봄 *



Haymaking(July). 1565. Oil on panel.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Haymaking (July). Detail. 1565. Oil on panel. Narodni Gallery, Prague, Czechia.

* 여름 1 *



The Corn Harvest (August). 1565. Oil on panel.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The Corn Harvest (August). Detail. 1565. Oil on panel.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 여름 2 *



The Return of the Herd (November).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The Return of the Herd (November). Detail. 1565. Oil on panel.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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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잘 알려진 텍스트를 새삼 자료정리 차원에서 옮겨놓는다. 출처는 창비웹진이지만(보다 구체적인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비평>(2001년 겨울호)에도 같은 제목(하지만 다른 번역)의 글이 게재된 바 있고(영어 원문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지젝의 단행본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지젝의 문외한이 아니라면, 제목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군말이겠다).  

 

 

 

 

하지만, '번역의 사막'을 보여주는 국역본을 완독한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므로, 하지만 지젝의 텍스트는 한번쯤 음미해볼 만한 의미있는 텍스트이므로, 이제라도(혹은 한번 더)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그것이 사적인 자료 스크랩이 갖는 잉여적 의의이다. 참고로 붙여넣은 이미지들은 강조와 함께 웹진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미국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편집증적 환상은 작고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즉 소비를 위한 파라다이스에서 한가로이 개인적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처럼 꾸며진 허구의 세계는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 둘레의 모든 사람들이 이 거대한 쇼에 동원된 뛰어난 배우와 엑스트라들일지도 모르다고.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예가 피터 위어(Peter Weir)의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일 것이다.

짐 캐리(Jim Carrey)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24시간 방영되는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작은 마을의 사무원 역을 맡았다. 짐 캐리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이 쇼를 위해 설치된 거대한 무대장치인 셈인데 곳곳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카메라들이 작동되고 있다.

Time Out of Joint

<트루먼 쇼>보다 먼저 나온 작품으로는 필립 딕(Phillip K. Dick)의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Time out of Joint)>(1959)를 들어볼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5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한 소도시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점차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꾸며진 무대장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나 <트루먼 쇼>가 암시하고 있는 경험은 이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 천국,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이 그것의 초현실(hyper-reality) 속에서 어떤 의미로는 비현실적이고 실체 없는 것이며 물질적인 관성을 박탈당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할리우드가 물질성과 질량을 박탈당한 실재 삶을 무대에서 모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실재의 사회적 삶' 그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무대화된 허구로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재"의 삶 속에서 마치 무대의 배우나 엑스트라처럼 행동하는 이웃들을 포함해서. 반복하자면 정신성이 박탈된 실용주의적 자본주의의 우주에서 궁극적인 진실은 "실재 삶" 자체의 물질성이 박탈된다는 것, 실재 삶 자체가 일종의 스펙터클한 쇼로 전환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는 모텔 방을 예로 들어 미국적 일상의 비현실성을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의 모텔은 비현실적이다! (...) 그 방들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디자인되어져 있다. (...) 명상을 위해 동굴로 들어간 은자처럼 우리가 점점 더 광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우리를 경멸한다." 피터 슬로테르지크(Peter Sloterdijk *슬로터다이크)의 "영역sphere"이란 개념이 이곳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거대한 금속의 구체(球體)가 도시 전체를 감싸면서 그것을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sphere란 단어는 영역, 범위 등의 뜻과 함께 구체球體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수년 전에 <자도즈(Zardoz)>나 <로건즈 런(Logan's Run)> 같은 일련의 공상과학 영화들은 격리된 무균지역에서 살면서 이제 물질적으로 부패해버린 실재 세계의 경험을 갈망하는 집단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이미 이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의 곤경을 예견한 바 있기도 하다.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히트작 <매트릭스Matrix>(1999)는 이런 논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에서는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주위의 모든 물질 세계가 가상적인 것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메가 컴퓨터(mega-computer)의 일이다. 영웅의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Keanu Charls Reeves)는 "진짜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보는 것은 세계전쟁 이후 불에 탄 잔해들만이 남아 있는 시카고의 황량한 풍경이다. 저항군 지도자 모페스는 아이러니컬한 인사로 키아누 리브스를 맞이한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구도는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뉴욕의 시민들은 그 날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우리는 무너지는 타워의 광경과 그 장면들을 보면서도 대규모 제작사의 재난영화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광경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폭탄테러가 얼마나 예기치 않은 충격적 사건이었는지, 어떻게 그런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가 기억해봐야 할 또다른 참사는 20세기초에 일어났던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이다.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 역시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19세기 산업문명의 힘의 상징이 된 이후로 그 배의 침몰을 위한 공간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폭탄 테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디어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뉴욕 탈출(Escape from New York)>에서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들은 이런 테러 위협에 대한 우리의 아낌없는 리비도적 투자를 유도하지 않았던가. 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러나 발생해버린 사건은 그러므로 사실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그들이 상상해오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다. 물론 굉장히 경악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상상적인 것들의 조합이 우리의 지각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에 주지해야만 하는 때는 바로 지금, 이 생생한 참사의 '실재'를 다루는 순간이다. WTC 타워의 붕괴에 어떤 상징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의 재정적 심장"이라는 낡아빠진 비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 두 개의 쌍둥이 빌딩은 물질적인 실재 생산의 영역에서 분리되어 온갖 재정적 지침들이 '사고'되는 '가상적' 자본주의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그 건물에 대한 폭탄 테러가 던진 굉장한 충격은 디지털화된 제1세계와 "실재의 사막" 자체인 제3세계를 가르고 있는 경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악의적인 대리인들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격리된 가상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에 다름아니다.


결론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대부분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악당 두목 역으로 나왔던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Ernst Stavro Blofeld)의 실재적 현현이 아니라 지구적 파괴 행위에 연루된 폭탄 테러의 배후 세력 용의자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우리가 생산과정을 아주 강도 높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제임스 본드가 집약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악당의 소굴(마약을 증류하거나 포장하고 뉴욕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탄을 제조하기도 하는)을 찾아내는 경우뿐이라는 사실이다.

 

본드를 생포한 후에 악당의 두목은 흔히 본드에게 그 자신의 불법 공장을 구경시켜준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할리우드가 공장에서의 생산과정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미학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부분은 아닐까? 여기서 본드가 해내야 할 임무는 물론 그 생산라인을 폭파시켜서 우리가 다시 "노동계급이 증발"된 세계 속, 우리의 표면적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WTC 타워의 폭발은 사실 위협적인 외부세계를 겨냥한 폭력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왔던 것은 아니었던가?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안전한 '영역'은 '외부'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위협 아래에 놓여진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의 테러리스트들은 무자비한 자기 희생자인 동시에 겁쟁이이며, 교활하게 머리가 좋은 동시에 원시적인 야만인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런 '외부의' 순수한 악에 대면할 때 우리는 언제나 헤겔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이 순전한 '외부'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순수하게 증류된 본질을 찾아야만 한다는.

 

지난 5세기 동안 지속된 '문명화'된 서구의 (상대적) 평화와 번영은 '야만적'인 '외부세계'에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를 수출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미국 대륙의 정복과 콩고에서의 살육을 기억해보자.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폭탄 테러 사건이 실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마음 깊이 명심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야말로 사라예보로부터 그로쯔니(Groznyi, 체첸공화국의 수도), 르완다와 콩고에서부터 씨에라리온(Sierra Leone, 서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주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이 상황에 뉴욕에서 일어나는 총질들과 갱단의 강간사건들을 좀 덧붙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10년 전 사라예보의 모습을 재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 속의 "실재"가 허구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 때는 바로 우리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WTC 타워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텔레비전의 쇼들이 '실재'를 보여줄 때조차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프로그램 안에서 연기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흔히 주장하곤 하는 "이 글 안의 인물들은 허구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실재의 어떤 인물들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입니다"라는 명제는 실재라는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문구이다. 그들이 실재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허구적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재로의 귀환"은 다른 방향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조지 윌(George Will) 같은 우파 보수주의자 논객 역시 즉시 미국의 "역사로부터의 휴가"가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텍스트성에 초점을 맞춘 문화이론들과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의 고립된 성벽을 뒤흔든 '실재'의 충격으로 인해서. 이 진짜 세계에서의 적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반격을 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반격해야 할까? 우리가 어떤 반격을 개시하건 그 반격의 목표는 결코 우리에게 온전한 만족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목표일 리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미국의 아둔한 행위는 자기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위나 다름없다. 세계 최강대국이 불모의 땅위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가난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무기력한 연기 행위의 극단적 예가 아니라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명의 충돌"이란 개념에는 분명 부분적 진실이 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주시해보자. 이 놀라움 뒤에는 정작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를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제1세계 시민들의 비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심지어 탈레반의 외무장관이 미국 어린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는 빌 클린턴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 문장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던 셈이 아닌가?

 

안전한 피난처 미국이라는 인식은 물론 환상이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이 폭탄 테러 이후 이제 뉴욕 거리를 더 이상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없다고 이야기할 때,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정작 각종 공격과 강도 행위로 이미 충분히 유명했던 이 도시에서 이 사건이 묘한 연대의 감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젊은 흑인이 늙은 유태인 신사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광경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인 것이다.


폭탄 테러 이후의 며칠 동안 우리는 마치 외상적인(traumatic) 사건과 그것의 상징적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특이한 시간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상처가 깊게 밴 순간과 그 아픔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 짧은 순간과도 같은. 이 사건이 어떻게 상징화될 것인지, 그것의 상징적 효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그 효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취해질 행동은 무엇인지는 모두 미정의 상태이다. 지금 이곳, 이 극단적인 긴장의 순간에조차도 이 상처와 그 상처의 상징적 결과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불길한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폭탄 테러 다음날 나는 레닌에 대한 나의 다소 긴 글을 출판할 계획이었던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아무래도 폭탄 테러 이후에 레닌에 관한 글을 출판하는 것은 시기가 좋지 않다면서 그 책의 출판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해왔다. 혹시 이게 앞으로 이어질 불길한 이데올로기적 작용의 시작점은 아닐까?


우리는 아직 이 사건이 경제, 이데올로기, 정치, 전쟁 등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한데, 지금까지 스스로를 이런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폭력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미국이 이제 직접적으로 이런 폭력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결국 그들의 "영역"을 더 공고히 하기로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영역 밖으로 걸어나올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이런 일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위협적인 '외부' 세계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로, 다른 말로 하자면 분열증적 연기를 계속하기로 결심하든지 아니면 마침내 그들을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허구적 스크린으로부터 걸어나와서 '실재' 세계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런 일은 '이곳'에서는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부터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 매우 늦어버린 전환을 시도하든지.

 

미국이 즐긴 "역사로부터의 휴가"는 허구다. 미국의 평화는 미국 이외의 곳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사와 맞바꾼 것이다. 이제 폭탄 테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을 배워보자. 이런 사건이 '이곳'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이 그 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뿐이라는 교훈을.(번역: 서정은)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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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비주류 영화를 보기 위한 검색

<비주류 영화를 보기 위한 검색창>

씨네코아 : www.corecine.co.kr  (여기는 6월에 문닫음. 안되는데)

 
극장명 : 시네코아   
위치 :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33-1   약도보기
교통/주차 : 지하철 종로3가 15번출구 종각역 4번출구 ...    빠른길찾기
콜센터 : 1588-2093   관련정보 : 할인카드정보

씨네큐브 : www.cinecube.net

 
극장명 : 씨네큐브 광화문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226번지 흥국생명 지하   약도보기
교통/주차 : 5호선 광화문역 6번출구 /    빠른길찾기
콜센터 : 02-2002-7770   관련정보 : 할인카드정보

동숭아트센터(하이퍼텍 나다) : www.dsartcenter.co.kr

시설명 : 동숭아트센터
소개 : 대학로 문화공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공연장 더보기
이용시간 : 09:00 ~ 24:00 (공연시간에 따라 변동)
이용안내 : 공연정보  예매안내  좌석배치도  공간안내  프로그램  교통안내
주소 :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5번지   지도보기
문의처 : 02-766-3390

필름포럼(서울아트시네마) : www.filmforum.co.kr  (구 허리우드 극장)

극장명 : 서울아트시네마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 낙원상가 4층   약도보기
교통/주차 : 1,3,5 호선 종로 3가역 (도보 5분) ...    빠른길찾기
콜센터 : 02-741-9782   관련정보 : 할인카드정보

 

그리고 씨지비 강변과 상암. 요렇게만 돌아다니며 검색해보면 원하는 영화는 다 나올듯.
내일도 투표하고 오후에 비주류 영화 한편 보러 가야겠다. 어디로 갈까. 씨네코아?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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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서울 안에 이런 미술관이 숨어 있었다니

서울올림픽미술관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소마(SOMA)로 이름을 바꾼 이 미술관

“서울 안에 이런 미술관이 숨어 있었다니….”

새 단장을 마치고 7일 파울 클레전의 개막과 함께 다시 문을 연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미술관(구 서울올림픽미술관·사진)을 찾은 사람들의 첫 반응입니다.

서울올림픽미술관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소마(SOMA)'로 이름을 바꾼 이 미술관은 43만여 평의 드넓은 녹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있는 전시실을 드나들다 보면 창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잔디밭 등이 한 폭의 작품처럼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원래 이 미술관은 건축가 조성용 씨가 설계해 2004년 9월 서울올림픽미술관으로 개관됐다. 개관 뒤 미술계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올해 들어 이름을 바꾸고 제2의 개관을 선언했습니다.

다음은 소마미술관의 외부모습입니다.

다음은 소마미술관의 내부모습입니다. 소마미술관(SOMA, 올림픽공원 내 위치, 구 서울올림픽미술관)은 오는 4월 7일부터 7월 2일까지 "파울 클레(Paul Klee) : 눈으로 마음으로"를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파울클레전에 관한 동아일보 고미석 기자의 기사전문입니다.


소마미술관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파울 클레展

생각에 잠겨있는 자화상1919 / 석판화 / 23.6×16cm







































《한 남자가 있다. 귀는 아예 없고 두 눈은 질끈 감고 있다. 시대의 우울이 무겁게 내려앉은 외부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읽힌다. 파울 클레(1879∼1940)의 석판화 ‘생각에 잠겨 있는 자화상'(1919년)이다. 삼베에 파스텔로 그린 ‘눈'(1938년)이란 작품엔 귀와 코도 없이, 눈 하나만 달랑 있다.

클레는 ‘한 눈으로는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느낀다'고 했으니 안 보이는 눈은 가슴속에 있을 것이다.》

둘 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SOMA)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파울 클레-눈으로 마음으로' 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인 클레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국내 첫 전시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파울 클레 미술관 소장품 중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드로잉 및 회화 등 60점을 전시 중이다. 섬세한 드로잉과 때론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괴기스러운 작품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눈 / 1938 / 삼베에 파스텔 / 45×64.5cm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줄타기 곡예사'와 같은 테마로 만든 석판화 ‘줄타기 곡예사'(1923년)에서는 전쟁 후의 암울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엿볼 수 있다.

종이 위에 가는 선을 촘촘히 그려낸 ‘오르페우스를 위한 동산'(1926년)에선 섬세하다 못해 작가의 강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1914년 튀니지 여행 이후 색채에 눈을 뜨는데 튀니지 스케치(1914년)와 피라미드(1930년, 1932년)에서는 단순화한 면 분할과 독특한 색감이 살아 있다.

채색화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1916년)는 서정적인 제목만큼이나 색채와 구성에서 시적인 운율이 느껴진다. ‘천사의 탄생‘(1934년), '죽음의 천사‘(1940년) 같은 천사가 자주 등장하는 후기작들은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클레는 현대 미술의 거장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며 창의적인 미술가로 첫손에 꼽힌다.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선과 색채의 마술을 통해 추상미술의 세계를 추구한 것. 그래서 클레의 작품은 한눈에 파악되기보다, 가슴과 함께 머리로 생각하며 봐야 한다.

줄타기 곡예사 / 1923 / 석판화 / 44×27.9cm

조숙한 천사 / 1939 / 판지 위 종이에 연필 / 29.5×21cm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있는 청년 / 1908 / 판지 위 종이에 연필 / 22.1×16.9cm

죽음의 천사 / 1940 / 캔버스에 유채 / 51×66.4cm

색채 띠에 연결된 추상적 색채의 원들 / 1914 / 판지 위 종이에 수채 / 11.7×17.2cm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1916 / 판지 위 종이에 펜과 수채 / 7×24cm

연기하고 있는 아이들 / 1913 / 판지 위 종이에 펜, 붓과 연필 / 6.6×16.5cm

별들과 함께 / 1923 / 판지 위 종이에 연필과 수채 / 32.4×48.3cm

스위스 베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기본 색조를 바탕으로 여러 색조를 변형시킨 그의 작품에서 대위법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20년대에는 근대의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인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수를 지냈고 1930년대 스위스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평생 91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피부가 굳어지는 병으로 작업에 지장을 받았으며 독일 나치로부터 퇴폐적 미술가, 정신병자의 작품으로 모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숨지던 해인 1940년에만 366점의 작품을 남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선을 그린다'가 그의 모토였다.

전시는 7월 2일까지(월요일 휴관). 어린이들을 위한 클레 그림 체험 코너도 마련돼 있다. 어른 1만 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협찬 ㈜KT. www.somamuseum.org 02-410-1060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다음은 소마미술관에서 보내준 보도자료입니다.

파울 클레(Paul Klee)는 음악가, 화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이면서도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보여준 화가입니다. 그는 고도로 숙련된 선과 세련된 색채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이루어냈습니다.

"파울 클레 : 눈으로 마음으로"는 화가 자신이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듯이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세계를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상징과 형태, 그리고 섬세한 드로잉으로 재현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특히 이 전시는 단독으로 클레 작품을 공개하는 국내 최초의 전시로서 무한한 작가의 상상력을 미술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전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소마미술관 소개

서울올림픽미술관이 소마미술관(SOMA)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43만여 평의 올림픽공원 안에 위치한 천혜의 문화 환경적 인프라를 활용, 앞으로 소마미술관은 장르의 구분 없이 국내외 미술현장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드로잉 센터 건립을 통해 최고의 강사진으로 구성된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새로운 개념의 청년작가 육성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전시 외에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전시와 연계된 문화이벤트로 대중성과 공익성을 지켜나가며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 하겠습니다.

파울클레미술관(Zentrum Paul Klee) 소개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설계로 2005년 6월 스위스 베른(Bern)에 개관한 파울클레미술관은 아름다운 건축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파울 클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전 세계 많은 관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www.paulkleezentrum.ch)

파울 클레 소개

환상적이고, 재치 있으며,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파울 클레(1879-1940)는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스위스 베른 근처에 있는 뮌헨부흐제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화가였으며, 1920년대에는 독일의 조형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하였고, 철학, 식물학, 생물학, 인류학 등 학문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풍부한 이미지의 원천은 자연이었다. 그는 바다나 산, 들을 찾았고 조개껍질, 식물, 꽃, 나무 등을 관찰했다. 또 캔버스뿐 아니라 삼베, 천, 거즈, 나무판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며, 유화, 템페라, 수채, 과슈, 동판,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했다.

클레의 작품은 완전히 추상적이지도, 완전히 형상적이지도 않다. 그의 작품은 고도로 숙련된 드로잉 기법을 보여주는 한편, 색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소품들로,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원한 지성으로 파악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원초적인 상징과 형태를 창조해냈다. 그의 미술은 시, 음악, 그리고 꿈에 가까우며, 한눈에 들어오는 미술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다. 마치 하나하나가 작은 보석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무려 9,100여 점에 달하는 클레의 작품들은 몇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우리만큼 다양하고 다면적인 미술세계를 이룬다.

관람 안내

1. 관람시간        
 - 평일, 주말/공휴일 : 10:00 ~ 18:00
 * 매주 월요일은 미술관 정기 휴관일 : 야외 조각공원은 개방

2. 관람료        
 - 성인(19세~64세) 10,000원  /  단체 8,000원
 - 청소년(13세~18세) 8,000원 /  단체 6,000원
 - 어린이(12세~4세) 6,000원  /  단체 4,000원
 - 무료(장애우, 소년소녀가장, 4세미만, 65세 이상)
※ 단체(20명 이상), 군인(하사이하)은 청소년 요금적용

3. 기자간담회
 - 2006년 4월 5일(수) 오후 5시

4. 강연회
2006년 4월 8일(토) 오후 2시 : 알렉산더 클레(파울 클레의 손자) - 파울 클레의 작품세계
2006년 4월 22일(토) 오후 2시 : 강영주(서울대 강사) - 파울 클레 : 근원으로의 회귀

5. 홈페이지
www.artmuseum.or.kr  (소마미술관)www.artconsulting.com (주식회사 로렌스 제프리스)

6. 기타 문의
02) 410 - 1060~66  artmuseum@sosf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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