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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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낡은 감방에서 나는 기다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다렸던가?
마지막 전단이 인쇄되기를,
마지막 수류탄이 던져지기를•••••• p.66


우리가 더 이상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모비딕>, p.585
Where lies the final harbor, whence we unmoor no more?


시퍼런 전장에 내던져진 이들 모두가 고통스런 현실을 끝장내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꿈꾸고, 누군가는 오래된 세계의 파멸을 꿈꾼다. 뒤바뀐 세상은 마지막 수류탄의 폭음이 불꽃놀이의 환호로 교체된 지상이거나, 마지막 항구로 들어서는 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침몰의 바다이다.

우리는 모두 시대의 자식이다. 같은 모습과 같은 생활방식에 도취되어 살아간다. 우리의 세계는 깊은 침묵이 내려앉은 들판이다. 세계와 불화하는 자들은 안개 속에서 자아를 두드려 깨운다. 그들은 황혼녘이 되면 산과 바다로 나가 제 손으로 시대를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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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 - 솔로몬의 성전에서 프리메이슨까지, 성전기사단의 모든 것
마이클 해그 지음, 이광일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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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성전 기사단' 음모론 해독제



기독교는 평화주의를 기초로 세워졌다.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교황들은 폭력의 완전 폐기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하는 대신 11세기의 상당 기간을 폭력을 통제하고 배출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느님의 휴전이라는 규정을 마련해 봉건 제후들 간의 분쟁을 최소화하려고 한 일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1차 십자군 전쟁을 시작할 생각을 한 것도 어떤 면에서는 공격 성향을 외부로 돌려 무슬림의 위협을 차단하려는 발상이었다. 123)

윌리엄의 진정한 불만은 서방의 지원 탓에 성전기사단이 우트르메르의 그 어떤 권력에도 매이지 않는 독립적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특헤 티레의 대주교로서 예루살렘 총대주교 물망에 오른 그가 대표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가 먹히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
기사단이 구원해야 할 동방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기사단은 몰락을 향해 치달았다. 150-1)

(우트르메르의) 라틴계 지배자들은 늘 현금 부족으로 곤란을 겪었다. 세수의 대부분은 용병과 기사, 성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갔다. 악순환이었다. 다시 말해 토지와 인력이 부족하니까 성채가 필요했는데, 성채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토지의 생산력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단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원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었고 헌신적이었다. 이러한 점이 기사단이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요인이다. 177)

성전기사단은 유럽 최초의 금융업자 집단으로 발전했다.
...
성전기사단은 출범 당시부터 국제적인 조직이었다. 그들은 성지 수호를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유럽에서 각종 지원이 왔다. 다시 말해 성전기사단은 유럽에 토지를 두고 있었고 거기서 십일조를 거두고 신앙심이 깊은 이들에게 헌금을 받았다. 성전기사단은 시장과 장터를 개설하는가 하면 부동산을 수익용으로 운용하고, 양모와 목재에서 올리브유와 노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품을 거래했다. 시간이 가면서 성전기사단은 지중해 일대를 누비는 막강한 상선단을 조직했다. 188)

아사신파에 잘 대처한 유일한 조직은 성전기사단이었다. 성전기사단은 영속적인 법인체 성격이었기에 단원 한 두명이 암살당한다고 해서 위축될 조직이 아니었다. 208)

이단은 프랑스 국왕이 성전기사단을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혐의였다. 따라서 성전기사단은 이단이어야 했다. 302)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성전기사단의 이상한 관행을 그저 입단 의식일 뿐이라고 봤다.
...
이 기이한 전통은 신입 단원들에게 무슬림들에게 포로가 되어 가혹한 폭력을 당하거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침을 뱉으라는 협박을 당할 경우 같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정신적 준비를 시키자는 취지였다. 315)

프로테스탄트 가운데 프리메이슨 석공들은 특히 구약 <역대기 하> 중에서도 솔로몬이 히람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한 부분과 신이 성전 규모와 관련해 제시한 상세한 치수들에 주목했다. 석공들은 각종 치수에 심오한 신학적 진리가 담겨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3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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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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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밑그림




우리가 이곳 싸움터에 있어야 하는 한, 전선의 나날은 그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치 돌멩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가라앉게 된다.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전선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우리는 나중에 탈진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공포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곰곰 생각하다가는 공포에 질려 죽고 만다.>
114)


그리고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시에는 우리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모든 것이 전후에는 다시 깨어난 다음 비로소 생과 사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 일선에서 보낸 나날들, 주들, 해들이 또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죽은 전우들은 다시 살아나 우리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우리들의 머리는 맑아질 거고, 우리는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전선에서 보낸 세월을 뒤로 하고 죽은 전우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서, 누구를 향해서 진군한다는 말인가?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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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폭풍 속에서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4
에른스트 윙거 지음, 노선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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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독일 최대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이 작품에는 1차 세계대전의 지리한 참호전 속에 스러져 간 죽음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다. 어처구니없는 죽음, 손쓸 새도 없는 죽음, 끈질긴 비명을 동반한 죽음이 책갈피마다 건조하게 말라붙어 있다. 흔히 생사는 모든 욕구의 원천이므로, 죽음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무엇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수긍할 수 없는 패배를 더 큰 치욕으로 받아들였으며, 무기력한 잿빛의 일상을 거부하면서 히틀러의 길을 예비했다. 전쟁은 죽음을 초월한 생이었고, 운명을 장악한 환각의 장이었다. 독일인들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나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며,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전쟁이 판돈을 모두 잃은 그들을 이미 완전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런 짧은 정찰들은, 목숨을 거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전쟁에서는 용맹심을 기르고 참호 생활의 단조로움을 깰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병사에게, 지루한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111)

대피호 바깥에는 겨우 소년 티를 벗었을까 말까 한 아까의 영국 병사가 관자놀이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총탄은 그의 두개골을 비스듬히 뚫고 지나갔다. 그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나는 억지로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이젠 더 이상 `너 아니면 나`의 상황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나는 그를 자주 생각했고, 해가 가면 갈수록 더 자주 그를 떠올렸다. 국가가 살인의 책임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준다고는 하나, 우리의 회한까지 가져가지는 못한다. 우리는 슬픔을 감내해야만 한다. 슬픔과 후회는 꿈속 깊이까지 들어와 박혔다. 299)

대전투는 내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그때부터 이 전쟁에서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 미래를 건 운명의 시간에 한꺼번에 모여들었던 군대들과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으로 촉발된 폭력은, 나를 난생 처음으로 초개인적인 영역 깊은 곳으로 인도했다. 그것은 그동안 겪은 모든 경험과 달랐다. 그것은 일종의 비밀의식이었다. 그 비밀의식은 내게 두려움으로 불타는 방들을 열어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그 안으로 이끌었다. 316)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총탄이 내 생명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
이상하게도, 이 순간은 내가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인생을 통틀어 몇 안 되는 순간 가운데 하나다. 그때 나는 번갯불이 번쩍하듯이 내 인생의 가장 깊은 의미와 형식을 파악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모든게 끝나야 한다는 데에 놀랐고, 그것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놀라움은 어쩐지 마음이 평안하고 거의 즐겁기까지 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내가 돌덩이가 되어 격류의 수면 저 아래로 깊이 가라앉는 것처럼 포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은 전쟁도 증오도 없는 곳이었다.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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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인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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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고 서술하겠다는 사람들은,
우선 정신을 몰아내려고 애를 쓴단 말이야.
그렇게 하면 부분적인 것들은 손에 쥐게 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신적인 연관성은 결여되게 마련이지!
화학에서는 이를 자연의 조작(操作)이라 말하지만,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일 뿐, 그 근본 이치는 모르고 있어. p.121


메피스토펠레스,
그는 알 만큼 아는 자, 볼장 다 본 자, 듣지 않은 말이 없는 자,
그는 악기가 스스로 음률을 맞추도록, 건반의 잠을 깨우는 자,
그는 저녁 노을의 입을 열고 어둠을 삼켜 자신을 불태우는 자,
그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가장 질긴 흙에 이겨 한몸에 품은 자,
오, 그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진리의 산등성이 너머에 서 있는 자!

파우스트가 태초의 존재를 '말씀'이 아니라 '행위'로 규정할 때, 그는 자신이 찾는 언어를 결코 찾지 못할 것임을, 그저 긴긴 방황의 몸짓을 통해 간신히 살아낼 수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했을 것이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자, 자신이 아는 것을 확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자, 신은 말하지 않고,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자, 파우스트는 그에게 영혼을 내주었지만 입술은 내주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빼앗긴 자는 더 이상 자신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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