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 범우 비평판 세계 문학 61-1
크누트 함순 지음, 김남석 옮김 / 범우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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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등 의식의 흐름을 서술한 현대소설가들의 선구가 된 작품. 굶주림이 갉아먹는 한 인간의 스산한 내면 풍경이 잘 드러나있다.

국민작가였던 저자가 노년기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협력하여 조국(노르웨이)의 항복과 복종을 주장한 사실은 일제시대를 엇갈린 고뇌속에 살았던 우리의 지식인들과도 겹친다.

그는 뛰어난 작가였지만 정치와 사회에 무지한 사람이었고, 노벨상을 수상한 거장의 배반의 기록은 그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의 정반대의 자리에 남아 소중한 역사의 교훈이 되고 있다.

"나는 나치즘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때때로 나치정신으로 글을 썼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나치정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잡초무성한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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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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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이것저것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문학에 반영되는 국가별 정서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불안'이라는 개념이 지역마다 독특한 형태로 피어오르는 장면들은 묘하게 매혹적이다.

러시아의 인물들은 압도적으로 덮쳐오는 외부의 '불안'에 휩싸이면 곧 무릎을 꺾고 만다. 존재를 무화시키는 광활함 앞에서 왜소한 개체는 그저 우왕좌왕, 엉뚱한 행동을 반복한다. 고민하고 사유할 겨를도 없이 휩쓸려가는 내면의 혼란은 희화된 몸짓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개인들은 한없이 안으로 침잠한다. 그들은 '불안'이 사회에 뿌리를 대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그 얼굴을 직시하지 않는다. 개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은 수시로 미움의 구름이 되어 주변에 내린다. 성찰하면서 공존한다. 눈 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음습함이 감돈다.

미국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불안'은 완전한 건조상태다. 일본이 습기를 머금어서 축축하다면 미국은 황야의 삭풍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바싹 메말라있다. 사시사철 끝나지 않는 건기 같다. 건드리면 바로 부서질 것만 같은 이 뼈만 남은 공룡은 그러나 여전히 살육기계로 작동한다.

프랑스는 '불안'마저 탐미한다. 죽음충동과 공포, 대립과 우울 등 '불안'에 내재되어 있는 온갖 부정적인 인간 감성을 경이의 눈으로 대하며 완전히 거기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메스로 뒤집어보고 갈라보고 해체하면서 세포의 흐르는 점액질을 맛본다. '불안'을 형상화한다.

중국의 '불안'은 대단히 고전적이다. 거대한 힘에 휩쓸려가는 개인의 절규라는 점에서 러시아와 닮았지만 중국의 개인들은 분산되어 있지 않다. 전통적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으로 묶여 있으며 죽음마저 그 안에서 집단적으로 맞이한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오랫동안 고요한 호수로만 떠다니다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바다로 나선 신세다. 급격하게 몰아친 폭풍우에 휘말려 짧고 굵직하게 바다를 표류하다 간신히 어느 해안가에 도착해서, 이제 살았나 싶었지만 어째 여기가 섬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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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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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드물게 지상에서 태어나지만, 인간을 악마로 길러내는 것은 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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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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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 가난하다 해도 어쩌면 그렇게도 가난한지, 세상에!"

라며 이웃을 걱정하던 자신의 처지가,

"바렌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더 이상 가난할래야 가난할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합니다."

결국 이 모양이었으니...

간질과 유형생활, 극적인 사형 중단, 노름빚에서 기인한 궁핍 등 끝모르는 고난에 짓눌려 살았던 작가의 원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주인공의 바보스러운 행동과 분열된 자기 합리화, 성실성과는 동떨어진 채 도피로 일관하는 가난에 대처하는 자세, 유려한 문장에 대한 선망과 질투, 인물의 모순된 의식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는 집요함 등 작품 곳곳에서 저자 자신의 그림자가 수시로 출몰한다.

자신을 해석하고자 했으나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구부정한 의식이 기나긴 문장을 베고 애처롭게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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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5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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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ula vagula, blandula,
Hospes comesque corporis,
Quae nunc abibis in loca
Pallidula, rigida, nudula,
Nec, ut soles, dabis iocos ••••••
- P. Aelius Hadrianus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맞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젠 못 하리니.


(근대과학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는 힘을 주었다.(데카르트, 방법서설)

그 덕분에 우리는 고백록이나 명상록, 회상록이나 수상록이 잊혀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들은 깨어나고 잠드는 일상의 장막을 찢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반성하는 생활의 양식이요, 서사였으니 지는 태양의 서러움과 뜨는 달의 애처로움을 담을 줄 아는 '인문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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