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대륙 - 20세기 유럽 현대사 커리큘럼 현대사 1
마크 마조워 지음, 김준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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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톨릭의 완고한 지배가 풀려난 땅에서, 신의 영역에 진입한 과학기술을 찬미하고, 이성을 단련하여 사회의 계몽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권장하고, 각자의 능력에 걸맞는 사유재산을 축적하는, 자유의 모든 정의(定義)를 누리는 '개인'이 바로 19세기 자유주의가 바라본 유럽의 자화상이었다.

모든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위를 '보이지 않는 손'이 아름답게 조화시켜 줄 것이라는 이 유토피아적 환상은 20세기 목전까지 유럽 대륙을 견인하였지만, 신의 손길마저 지워버린, 온전히 인간적인 세계의 최종 기착지는 전진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거기서 흘러내린 죽음의 강이었다.

환희에서 절망으로 몰락한 개인들은 국가의 구원을 열망했다. 대중의 열광을 먹고 돌진하는 국가는 파시즘과 볼셰비즘으로 내달렸고, 대중의 냉소를 피하고자 주저하는 국가는 자유주의의 뒷자락을 붙잡거나 사회민주주의라는 타협을 시도했다. 그 와중에 양 진영의 품 속에서 자라난 것은 민족주의였다.

평화가 감도는 현재의 눈으로 되돌아보면 돌진하는 국가의 얼굴은 호전성과 강압성으로 얼룩져 있다. 민족주의는 피의 상징이며, 분쟁의 씨앗에 불과하다. 그러나 불확실성 속에서 삶을 지켜야 했던 당대인들에게 무너지는 하늘을 붙잡고 군림하는 국가야말로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었다.

유럽 대륙은 이처럼 프랑스 혁명 이래로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가치를 구현한 낙원이 아니라, 어둠 속의 절망을 간신히 이겨내고 일어선 상처 가득한 역사적 대지이다. 이 잊혀진 실패는 60년이 넘도록 이념도 물질도 압축적으로 겪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저 관망해도 좋은 타인의 역사가 아니다.


파시즘이 자유주의와 확실히 구별되는 지점은 권위주의 국가를 드러내 놓고 옹호한다는 점이다.
...
파시즘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공격하면서 혁명적인 사회적 기획을 제안했다. 그것은 삶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하는 부르주아적 방식을, 완전한 경험이라는 `전체주의적` 정치관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했다. 36-7)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는 소수였다. 동유럽의 역사는 민주주의가 인민 동원의 결과가 아니라 베르사유 체제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막판에 안겨 준 선물임을 말해 준다. 투쟁하지 않고서 획득한 것을 상실하게 될 때 사람들이 이를 순순히 따랐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럽의 정치적 전통에서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지 않다는 사실은 반자유주의 체제들이 왜 그렇게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50-1)

"정치의 신성화"는 기념 건축물이나 대규모 집회 장소, 선전을 위한 전시와 출판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
이런 과정을 단순히 사람들이 강력한 정권의 검열과 조작에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도부와 국민이 공유하고 또한 함께 주장했던 가치와 관련된 것이다. 각 국가마다 일국 사회주의 건설, 독일 민족 공동체, 또는 이탈리아 제국의 건설 등과 같은 유토피아적 기획들에는 새롭고 통일된 국가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었고 실제로 인기가 많았다. 63-4)

파시스트 복지국가는 대중 정치 시대에 인민들의 충성을 확보하려면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을 민주주의자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121)

전 유럽 대륙에 걸쳐 1920년대에 나타났던 모더니즘적 예술 사조들–국제주의나 기계화 같은–은 유기체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민족주의적 사조에 자리를 내주었다. 합리주의는 본능에 대한 강조로, 개인주의는 공동체적 삶으로, 머리는 몸으로 대체되었다.
...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기계•미래주의•과거의 파괴를 숭배하면서 시작되었으나, 1930년대에 가서는 고전주의•역사•토지를 끌어안게 되었다. 140)

1930년대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몰락과 대조되는 성공적 대안이자, 현대사회의 경제적 난관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보여 준 본보기였다. 공산주의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차르제국을 몇 년 만에 주요 산업국가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실제로 작동하는 체제였던 것이다. 167)

1943년 무렵, `유럽인`이라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추축국에 동조했던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레지스탕스는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국내의 사회경제 정책과 애국심이라는 동기를 가졌을 뿐, 그들의 지평은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전쟁은 연방주의를 자극한 만큼이나 동시에 민족주의 정서를 강화했다. 결국, 애국주의가 `유럽주의`보다 훨씬 중요한 저항의 동기였던 것이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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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과정 2 한길그레이트북스 34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 한길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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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권은 봉건제와 절대주의의 성립에 대하여 서술한다.

- 봉건제
중세의 세력구도는 중앙권력(왕)과 지역의 독립적인 영주들(공작, 백작, 남작 또는 왕이 파견한 관리들과 그의 후손들)이 봉토를 둘러싸고 벌이는 긴장 관계의 연속이었다. 낙후된 운송 수단과 경제 조직의 미비는 중앙권력의 권한 행사를 막고, 원거리 지역의 통치자들에게 보상으로 지급된 토지의 생산물을 조세로 회수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이는 왕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지역 통치자들의 영지 세습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왕권의 원천은 오직 무력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자신의 소유는 물론 봉신들에게 나눠줄 토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전쟁을 계속 일으켰다. 전쟁에 따른 소小영주의 겸병은 소농 계층을 분화시켜 막 생겨나고 있던 상업 도시에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단초로 작용하였으며, 제3의 신분인 자유민을 점차 형성시켰다. 상업의 발달은 유동적이고 통일된 교환 수단인 화폐 수요를 늘리고, 육로를 이용한 운송수단의 확대와 내륙도시의 발전을 가져왔다. 중앙과 지역 할 것 없이 상류층은 점차 시민계급의 부에 의존하게 된다.

- 절대주의
점진적인 상업화는 소수의 대영주에게 집중되는 권력의 규모와 밀도를 보장해주는 원천이었다. 도시를 장악한 대영주들은 안정적으로 세금을 수취하고, 장원의 잉여생산물을 도시에 판매하는 순환 과정을 통해 화폐 경제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면서 부를 축적한다. 축적된 재산은 상비군의 편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조세권과 군사력의 독점이라는 권력의 핵심 기제를 의미하며, 통치 기구의 정비와 법률 제정으로 행정의 일원화를 촉진한다.

그렇지만 절대주의는 근대 국민국가 수준으로 폭력을 독점하는 통치 기구와 이데올로기 주입 수단을 완비한 체제가 아니었으며 중앙권력과 귀족, 제3신분간의 권력 분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오히려 이 시기는 권력이 엇비슷하게 분화된 집단들의 이해가 상충되어 결정적인 타협이나 한쪽의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왕이 위태로운 균형의 조정자 기능을 수행한 시기였다. 즉, 절대주의는 사회의 여러 집단들간의 긴장 관계에 구속된 존재였으며, 보편적 영역으로서의 '국가'가 수립되는 과도기의 정치 체제였다.


기사와 관료들에게 땅을 제공해야만 할 필요성, 새로운 정복전쟁이 없는 한 줄어들게 마련인 왕의 소유지, 평화시기에 중앙권력의 약화 경향 등 모든 요소들은 `봉건화`란 커다란 과정 자체의 부분과정들이다. 72)

11세기 초에는 원래 두 계급의 자유인, 즉 기사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성직자들만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농노, 소작농이 존재했다. `기도하는 자들, 싸우는 자들, 일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2세기가 지난 후, 정확히 말하자면 1세기 반이 지난 1200년경—개간이나 식민지 확장전쟁처럼 이 운동도 1050년부터 가속화되었기 때문에—일련의 수공업자 거주지인 도시공동체 코뮌은 고유의 권리와 법, 특권과 자율성을 획득한다. 제3의 자유인 신분이 등장한다. 99)

대다수의 도시 자유인들이 노동에서 소외되었던 고대의 노예사회와는 정반대로 서구사회에서는 자유인의 노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종속성은 결국 비노동계층인 상류층을 분업의 순환과정에 끌어들인다. 111)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독점 메커니즘의 게임에 의해 종속적 처지에 떨어지면 질수록 종속된 사람들 전체의 사회적 힘은—그들 개개인의 사회적 힘은 아니라 하더라도—소수의 또는 단 한 사람의 독점자와 반비례하여 더 커진다.
...
달리 표현하면 독점적 지위가 포괄적이면 포괄적일수록 그리고 그것의 분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 독점적 소유는 독점자의 기능분화적인 기구의 중앙관리인이 되어 다른 관리인들보다 아마 좀더 강력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갈 개연성이 그만큼 더 확실하고 커진다. 175-6)

사회의 각 부분들 간의 대립이 의식적 투쟁의 형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중세 말기에 대부분의 봉건 기사영주들을 사회적으로 추락시킨 것은 시민계급의 의식적 공격이라기보다 그 당시 확산중에 있던 금전화와 상업화의 메커니즘이었다. 251)

한 군주가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영토의 지배권을 장악한다. 토지소유권은 상업화되고 금전화된다. 이 변화는 한편으로 왕이 전국의 세금을 징수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독점하게 되고 따라서 그가 가장 많은 수입을 통제하게 되는 사실에서 표현된다. 땅을 소유하고 분배해주는 왕으로부터 돈을 통제하고 돈으로 급여를 주는 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물물경제사회에서 군주를 속박하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해주었던 것이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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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과정 1 한길그레이트북스 9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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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로 타인들과 함께 살아갈 것을 강요받은 사람들은 타인들의 행동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동규율이 점차적으로 엄격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
지금 사회의 개혁과 함께, 인간관계의 새로운 토대 위에서 천천히 변화가 시작된다. 즉 자기통제의 압박이 증가하는 것이다. 214-5)


서구의 중세와 근대의 경계선에 놓인 '문명화'의 한 가지 측면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제 개인은 사회적 태도를 스스로 규율해야 하는 책임을 떠맡게 되었으며, 타인과 대면하는 자신을 재규정–본성을 억누르고 예절의 가면을 쓴–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사교 공간뿐만 아니라 사적 공간에서의 자기 통제는 당연시되던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적극적인 절제의 의미로 사용된다. 인간 고유의 성취물과 마찬가지로 인간 자신도 '미개'와 결별한 '문명화'를 요구받게 된 것이다. '문명화'는 호의의 교제만이 아니라 공격성의 표출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사회의 안정성에 기여한다.

이것은 단순히 습속의 개선만이 아니라 중앙 집권 국가와 과학 기술의 발전이 조성한 개인들의 이념적 일체감이라는 사회 체제의 변화를 동반한다. 즉, 개인의 발견은 개성을 존중하는 체제의 출현이 아니라 분업화된 상업의 발달을 뒷받침하는, 그렇지만 집단 규율을 스스로 내면화한 순응하는 개인을 요구한 시대의 반영이었다.


프랑스의 궁정적 개혁지식인들은 오랫동안 궁정의 전통 속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좀더 나아지기를, 변화를, 개혁을 원했다. 루소와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들이 내세운 이상과 모델은 지배적 이상, 모델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을 개량한 것이었다. `잘못된 문명`이란 표현 속에 이미 독일운동과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
독일의 시민계급 지식인이 주창하는 `교양인`과 `인격`의 이념과는 달리, 그들은 `문명인`에 전적으로 다른 인간형을 대립시키지 않고, 궁정적 모델을 받아들여 그것을 변형시키려고 한다. 155-6)

프랑스에서 시민계층은 이 당시 벌써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 지식인층이 정신과 이념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모든 인간적 문제들과 더불어 사회적•경제적•행정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도 궁정귀족 지식인층의 사상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독일의 사고체계는 프랑스와 달리 순수한 연구였으며, 그들의 사회적인 활동장소는 대학이었다. 159)

에라스무스의 견해는 그 시대의 몇몇 소수의 저자들과 함께 예법서 전통 가운데서도 예외에 속한다. 왜냐하면 일부 매우 오래된 규정과 규칙들의 설명 속에 개인적인 열정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시대의 징표`이며, 사회적 변동의 표현인 동시에 비록 맞지 않는 개념이긴 하지만 우리가 보통 `개인화`라고 부르는 것의 징후이다. 203)

이제 이 자연스러움에 인간관찰이 덧붙여지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타인에 대한 고려가 첨가된다. 218)

이 시대(중세)의 문헌들을 펼쳐보기만 하면 언제나 비슷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즉 우리와는 다른 감정구조를 가진 삶, 안정도 없고 미래를 위한 장기적 예측도 불가능한 존재들이 눈에 띈다. 이 사회에서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못했던 사람, 열정의 유희에서 사나이답게 행동하지 못한 사람은 수도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속적인 삶에서 그는 패배자였다. 이와는 반대로 후대의 사회에서는, 특히 궁정에서는 자신의 열정을 억제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여 `문명화`될 수 없었던 사람이 패배자였다.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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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이산의 책 26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 이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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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북한 응원단 처녀들의 애타는 심정은 천황가家를 향한 일본 국민들의 만들어진 충성심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이 상징 조작은 실질적으로 그 형태가 복종에 기반한 봉건 군주를 표방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지향하는가에 상관없이 근대 국가가 정교하게 구축한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벌어진다. 기술이 정서를 압도하여 국민 전체를 동일한 체험의 시공간에 집어넣을 수 있는 지금, 이것은 그들에게만 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들만 겪고 있는 일도 아니다.

메이지와 쇼와 천황은 신이자 인간이었고, 전통을 간직한 쿄토의 상징이자 문명을 개척한 도쿄의 심장이었으며, 정치를 초월한 신적 존재이자 국가 수반이었다. 그들은 메이지 근대론자들의 작업 속에서 만세일계의 역사와 팔굉일우의 미래를 한 몸에 지닌 존재로 거듭났다. 제국의 흥성기와 쇠망기 전체에 걸쳐 있는 그들의 일생은 국가의 영속을 대표하면서 '전쟁을 통한 평화'라는 형용모순을 어색함 없이 신념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의 수장으로서 '화려한 군주'의 삶을 누렸지만, 실상 제국주의 광신도들이 부리는 인형이었다.

특정 이념의 내면화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일방적으로 주입된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 가르침을 통해 고양된 인식의 전환을 자각하는 계몽된(?) 인간의 자발적 체득이 중심 행위로 작용한다. 감시와 체벌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는 개인은 점차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내면의 감시와 체벌에 구속된 상태로 전락한다. 판옵티콘이 더이상 감방이 아니라 안식처가 되는 셈이다. 구조와 개인의 대립은 본성과 양육의 문제처럼 오래된 의문이지만, 근대 국가의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구조의 개입을 제한하는 구조의 수립뿐이다.


초기 도쿠가와 정치체제하의 정치엘리트인 사무라이는 일반 민중, 이른바 우민(愚民)의 수동적인 순종에 만족했지만, 새로운 메이지 시대의 위정자들은 국가적 목표의 실현에 일반인의 적극적이고 정신적인 참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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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근대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유주의적인 구미 국민국가의 지도자들 못지 않게, 근대국가의 모든 문화기구가 대중을 계몽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43-4)

순행은 무엇보다도 공간 통합의 의례였다. 영토를 가로질러 국경까지 다다름으로써, 순행은 군주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영토가 공간적 일치를 이루었음을 뜻했다.
...
나아가 순행은 메이지 정부가 국토와 국민, 그리고 나라의 국경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천황의 능력을 현실화하고 이를 믿게 하는 최초의 기회를 제공했다. 85-6)

공식 석상에서 행위의 중심인 메이지 천황은 유럽 군주의 것을 본뜬 마차를 타고 늘 서양식 군복을 입었다. 유럽에서 유행하는 최신 복장을 한 문무관들이 천황의 행렬을 뒤따랐다.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육해군과 무기들이 국가의 군사력을 나타냈다.
...
헌법과 황실전범의 발포를 신성하게 만들고, 이 두 법에 초역사적인 기초를 부여한 뒤, 천황은 승복 같은 옷을 벗고 새 정전(正殿)에서 헌법을 하사하는 공개적 행사를 위해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147-9)

베네딕트 앤더슨은 공통의 국민공동체에 자신이 속한다고 상상할 수 있는 중요한 전제조건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식이라고 주장했다.
...
이 점에 관해서 앤더슨은 인쇄자본주의의 발전과 소설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이러한 동시성이 구성되었던 과정을 특히 강조한다.
...
메이지 말기에 전국적 교통, 통신망이 급속하게 발전하지 않았다면, 국가의례가 행해지는 동안 동시성의 의식이 생겨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252-3)

규율적인 정부가 강요하는 새로운 습관 및 신앙과, 민중생활의 오래되고 때로는 무질서하기까지 한 습관과 사고방식 사이의 이 긴장 속에서 다양한 국가장치—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와 병영—는 자신에 감시당하고 있다는 의식을 스스로 내면화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 의식은 일본 안에 감시의 사회가 창출되어 가는 과정에서 천황의 응시에 상응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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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창비신서 143
노마 필드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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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1989년 히로히토 천황의 죽음을 전후하여 기성 질서에 맞선 세 명의 시민이 등장한다. 이등국민으로 취급하고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본토에 맞서 일장기를 불태운 오키나와의 슈퍼마켓 주인, 자위대 복무 중 사망한 남편의 혼령을 신사에 합사하여 원치 않는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국가에게 소송을 건 아내, 그리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나가사키 시장이 그들이다. 일상은 침묵의 평화를 사랑하지만, 균열도 침묵하는 세계에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다수는 다수의 의견을 갖고, 다수의 의견은 저절로 융합되지 않는 이질성을 띤다. 다양성은 존재 자체로 긍정적인 조화를 이루는 힘이 아니라, 공적 이해에 부합하는 공통감각(sensus communis)을 추출하고 그것을 합의의 장(場)에 올릴 수 있는 조정자를 필요로 한다. 공통감각을 지닌 다수가 참여한 공간이 그러한 균형을 필연적으로 요구하지 않거나 조정능력을 상실한 상태-가령, 사이버 세계-에서는, 이것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행위를 자유롭게 할 권리로 오인되곤 한다.

이 자유의 공간은 다수의 상식과 일상에 위배되는 행위를 불온한 것으로 치부한다. 조정을 시도하는 행위마저 편협한 의도로 간주하여,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위험 요소로 낙인 찍는다. 그것이 물질적 이득과는 멀고 정신적 각성에 가까운 것이라면 배척당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습속은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내면화 기제이며, 마치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 지켜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기서 인간 선언을 한 천황이 죽어도 후대가 그 아우라를 이어받는다는 환상이 지속된다.


19세기의 정치가 이또오 히로부미가 탄식한 것은, 사회를 하룻밤 사이에 서양식으로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심리적 연료와 규율이 필요한데 그것을 공급해줄 만한 고유의 신앙체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 채택된 해결책이, 쿄오또의 궁정에서 그늘 속에 살고 있는 젊은 메이지 천황을 수도 토오꾜오로 끌어내어 서양식 군복 차림의 군주로서 전국에 현시(顯示)한다는 것이었다. 40)

슈퍼마켓 주인인 찌바나 쇼오이찌가 일장기의 강요에 저항한 것은 오직 현재에 대한 무관심이 과거를 망각하는 일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81)

원폭기념관에서 내가 놀란 것은, 인간의 수난을 말해주는 사진이나 설명보다는 폭격을 받으면 온갖 건물들이 녹고 휘어지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쪽에 비중이 더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253)

(천황의) 장례식이나 즉위식은 근대국가의 서로 모순되는 요소 즉, 합리성에 대한 요청과 신화적인 것에 대한 위험한 유혹이 분출하여 태평스러운 일상성의 표면에 균열을 일으킬 듯한 아슬아슬한 순간의 표본 같은 것이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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