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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과정 2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4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 한길사 / 1999년 4월
평점 :
2권은 봉건제와 절대주의의 성립에 대하여 서술한다.
- 봉건제
중세의 세력구도는 중앙권력(왕)과 지역의 독립적인 영주들(공작, 백작, 남작 또는 왕이 파견한 관리들과 그의 후손들)이 봉토를 둘러싸고 벌이는 긴장 관계의 연속이었다. 낙후된 운송 수단과 경제 조직의 미비는 중앙권력의 권한 행사를 막고, 원거리 지역의 통치자들에게 보상으로 지급된 토지의 생산물을 조세로 회수하지 못하게 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이는 왕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지역 통치자들의 영지 세습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왕권의 원천은 오직 무력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자신의 소유는 물론 봉신들에게 나눠줄 토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전쟁을 계속 일으켰다. 전쟁에 따른 소小영주의 겸병은 소농 계층을 분화시켜 막 생겨나고 있던 상업 도시에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단초로 작용하였으며, 제3의 신분인 자유민을 점차 형성시켰다. 상업의 발달은 유동적이고 통일된 교환 수단인 화폐 수요를 늘리고, 육로를 이용한 운송수단의 확대와 내륙도시의 발전을 가져왔다. 중앙과 지역 할 것 없이 상류층은 점차 시민계급의 부에 의존하게 된다.
- 절대주의
점진적인 상업화는 소수의 대영주에게 집중되는 권력의 규모와 밀도를 보장해주는 원천이었다. 도시를 장악한 대영주들은 안정적으로 세금을 수취하고, 장원의 잉여생산물을 도시에 판매하는 순환 과정을 통해 화폐 경제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면서 부를 축적한다. 축적된 재산은 상비군의 편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조세권과 군사력의 독점이라는 권력의 핵심 기제를 의미하며, 통치 기구의 정비와 법률 제정으로 행정의 일원화를 촉진한다.
그렇지만 절대주의는 근대 국민국가 수준으로 폭력을 독점하는 통치 기구와 이데올로기 주입 수단을 완비한 체제가 아니었으며 중앙권력과 귀족, 제3신분간의 권력 분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오히려 이 시기는 권력이 엇비슷하게 분화된 집단들의 이해가 상충되어 결정적인 타협이나 한쪽의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왕이 위태로운 균형의 조정자 기능을 수행한 시기였다. 즉, 절대주의는 사회의 여러 집단들간의 긴장 관계에 구속된 존재였으며, 보편적 영역으로서의 '국가'가 수립되는 과도기의 정치 체제였다.
기사와 관료들에게 땅을 제공해야만 할 필요성, 새로운 정복전쟁이 없는 한 줄어들게 마련인 왕의 소유지, 평화시기에 중앙권력의 약화 경향 등 모든 요소들은 `봉건화`란 커다란 과정 자체의 부분과정들이다. 72)
11세기 초에는 원래 두 계급의 자유인, 즉 기사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성직자들만이 있었고 그 밑으로는 농노, 소작농이 존재했다. `기도하는 자들, 싸우는 자들, 일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2세기가 지난 후, 정확히 말하자면 1세기 반이 지난 1200년경—개간이나 식민지 확장전쟁처럼 이 운동도 1050년부터 가속화되었기 때문에—일련의 수공업자 거주지인 도시공동체 코뮌은 고유의 권리와 법, 특권과 자율성을 획득한다. 제3의 자유인 신분이 등장한다. 99)
대다수의 도시 자유인들이 노동에서 소외되었던 고대의 노예사회와는 정반대로 서구사회에서는 자유인의 노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종속성은 결국 비노동계층인 상류층을 분업의 순환과정에 끌어들인다. 111)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독점 메커니즘의 게임에 의해 종속적 처지에 떨어지면 질수록 종속된 사람들 전체의 사회적 힘은—그들 개개인의 사회적 힘은 아니라 하더라도—소수의 또는 단 한 사람의 독점자와 반비례하여 더 커진다. ... 달리 표현하면 독점적 지위가 포괄적이면 포괄적일수록 그리고 그것의 분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 독점적 소유는 독점자의 기능분화적인 기구의 중앙관리인이 되어 다른 관리인들보다 아마 좀더 강력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갈 개연성이 그만큼 더 확실하고 커진다. 175-6)
사회의 각 부분들 간의 대립이 의식적 투쟁의 형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중세 말기에 대부분의 봉건 기사영주들을 사회적으로 추락시킨 것은 시민계급의 의식적 공격이라기보다 그 당시 확산중에 있던 금전화와 상업화의 메커니즘이었다. 251)
한 군주가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영토의 지배권을 장악한다. 토지소유권은 상업화되고 금전화된다. 이 변화는 한편으로 왕이 전국의 세금을 징수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독점하게 되고 따라서 그가 가장 많은 수입을 통제하게 되는 사실에서 표현된다. 땅을 소유하고 분배해주는 왕으로부터 돈을 통제하고 돈으로 급여를 주는 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물물경제사회에서 군주를 속박하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해주었던 것이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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