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처럼 써라 -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외 18인의 작법 분석
윌리엄 케인 지음, 김민수 옮김 / 이론과실천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장 |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써라


"혹시 당신의 글 속에도 투박한 문장의 요소가 들어 있는가? 문장이 음악처럼 들리는 일이 별로 없는가? 종종 문장이 한없이 무디고 무겁게만 느껴지는가?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기 바란다. 물론 그러한 결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점이 글쓰기를 중단해야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발자크는 서툰 문장 때문에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투박한 문체가 발자크의 성공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체를 가다듬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비틀고 더 많은 글을 쓰는 데만 신경을 썼다." "때로는 서툰 문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진다.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매일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쓴다면 글솜씨가 나아지지 않을 리 없다." "최선의 방법은 직접 많이 써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발자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써라."(20-2)


"발자크는 감정 묘사의 대가였다. 그의 글엔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는 등장인물의 시시콜콜한 느낌 하나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발자크의 문장은 여전히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할 때 발자크가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절반가량은 같은 단어다." "그렇다, 본질은 단순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와 감정의 반복은 발자크의 작가 경력을 빛낸 일등공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등장인물이 분노, 교만, 자만, 갈망, 사랑, 시기, 증오와 그 밖의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잠잠하던 이야기의 돛을 뒤집을 바람과 독자를 위한 수식어구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영감이 떠오른 순간을 놓치지 마라. 한두 개의 멋진 문장 전환으로 독자의 뇌리에 못을 박아라. 독자가 등장인물의 마음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수식어구라는 등불을 내걸어라."(22-7)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 외젠 드 라스티냐크의 꿈은 오로지 출세이다. 이 꿈은 소설 말미에 와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소설 내내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친척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디딤돌로 이용한다. 어떤 사람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으며, 마지막엔 항상 언제 봤냐는 듯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그는 늘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굶주려 있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진정한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으며, 윤리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등장인물의 변화에 대한 강좌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창조했음직한 인물이다." "변화를 모르는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순전히 시간낭비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특히 등장인물의 변화를 최소한 보여주는 데도 충분히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며 사실 이것이야말로 발자크가 현대의 작가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가르침이다."(34-7)


2장 | 찰스 디킨스처럼 써라


"디킨스의 모든 소설은 바로 등장인물이 이끌어간다. 물론 디킨스도 소설 연재를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줄거리를 만들어 놓을 만큼 이야기 자체에 신경을 썼고, 그의 줄거리가 강력한 흡입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그는 인물 풍자에 관한 한 최초이자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득하게 소설 한 페이지를 읽는 독자가 드물고 대사 없이 묘사만 긴 책들은 외면당하기 십상인 오늘날, 생생하고 사실적인 디킨스의 인물 묘사를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전(前)세계 체스 챔피언인 이매뉴얼 래스커의 말을 빌려 답하자면, 〈좋은 묘사가  떠올랐을 때 더 좋은 묘사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식상한 것에 안주하지 마라.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특히 유머를 잃지 말고 터무니없는 상상과 풍자를 활용하라. 자신이 만든 인물을 조롱하고 익살맞으며 아이러니한 별칭을 붙여라. 그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묘사하라. 그러면 독자도 당신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며 즐길 것이다."(41-2)


"아치볼드 쿨리지는 『연재소설가 찰스 디킨스』(1967)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편다. 연재소설 때문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던 디킨스가 아주 과감한 기법들을 개발하여 모든 소설가의 공통된 고민거리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 고민거리란 어떻게 하면 독자가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 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디킨스가 사용한 중요한 기법 중 하나가 바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다."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려는 작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가 모르게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예컨대 주인공의 진짜 친구는 누구이고 진짜 적은 누구인지 밝히지 마라. 또 핍이 미스 해비샴을 후원자라고 철썩같이 믿었듯이 등장인물이 엉뚱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면 이를 미끼로 독자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할 수 있으며, 의외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독자가 받는 충격과 놀라움은 두 배로 커진다. 부디 독자를 애타게 만들길."(48-51)


3장 | 허먼 멜빌처럼 써라


"멜빌은 많은 상징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상징을 자신의 작품에 결합하여 핵심 주제를 뒷받침했다. 고래는 분명히 자아의 상징으로, 카를 융이 말한 통합적 인격의 전형이다.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이 통합적 인격이 결여되어 있다. 에이해브라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광기다. 이런 인물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퀴퀘그가 이상적인 인간의 상징에 더 가깝다. 멜빌은 『모비딕』 34장에서 퀴퀘그를 〈고귀한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어떤 평론가는 퀴퀘그가 〈형제애나 종교적 관용, 본능의 아름다움〉처럼 멜빌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슈마엘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밝은 등장인물과 어두운 등장인물이 균형을 이뤄야 어두운 인물과 대비되어 밝은 인물이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하면 등장인물의 구체적 성격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추상적 개념(상징)을 만들어 내는 작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61-4)


"등장인물의 성격을 만들 때 멜빌이 사용한 장치는 네 가지다. 우선 '복합성'이다. 그는 에이해브를 여러 가지 성격이 충돌하는 인물로 그렸다. 에이해브는 악과 광기로 무장했으며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인 동시에 선과 이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지닌 인물로도 묘사된다. 두 번째 장치는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펠레그 선장이나 빌다드 선장처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두 인물은 에이해브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 바람에 에이해브의 성격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불확실해진다." "멜빌이 사용한 세 번째 장치는 '선택'이다. 이는 몇 가지 주요 특징에만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멜빌은 에이해브를 묘사할 때 그의 광기와 편집증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다. 멜빌이 사용한 마지막 장치는 '미스터리'다. 그는 에이해브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사실이 몇 개 더 있다고 슬쩍 흘려놓는다."(65-6)


4장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써라


"불안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인물들의 마음 사이를 이동한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A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한 다음 B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도스도예프스키는 『죄와 벌』의 5부 4장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여자 친구 소냐에게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하는 장면 설정으로 시작한다." "다음 단계인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하기는 혼란의 와중에 있거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그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살인자라고 고백해야 하는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처음으로 살인자라는 사실을 수치로 여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대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기다. 처음엔 이 불행한 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소냐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자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72-4)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인물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보통 키에 호감이 가는 용모를 지닌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지만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등장인물의 외모는 곧 그 인물의 내면이며 성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격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작가가 인물을 격정과 혼란에 빠트리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격정과 혼란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기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드미트리, 미쉬킨 공작 모두 마찬가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들의 기이하거나 놀랍도록 대담한 행동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장치를 작품에 적용하려면 작가의 시선이 평범함 너머에 있는 것을 향해 있어야 한다. 과연 얼마나 극단적인 지점까지 행동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 도전해보라."(83-5)


5장 | 크누트 함순처럼 써라


"전통적인 소설에 대한 함순의 비판은 전적으로 옳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직선적인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즉 시간의 한 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일련의 에피소드와 장면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불씨가 되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우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던 에피소드와 장면들은 마치 우르르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물론 현대 작가들도 종종 플래시백(회상) 기법을 사용하여 직선적인 진행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플래시백은 대부분 배경 설명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거나 감정의 그물에 걸려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형태로 직선적인 시간을 왜곡하기도 한다. 크누트 함순은 직선적이고 이성적인 방식보다는 꿈을 이용한 자기 성찰적 접근을 선호했다. 헤밍웨이나 카프카 같은 작가가 함순의 작품을 존경하고 연구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96-7)


"크누트 함순이 문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로가 있다면 에밀 졸라의 캐릭터 접근법을 거부한 것이다. 실제로 함순은 지배적 특징을 내세워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자연주의 작가들을 대놓고 비웃었다. 함순에게는 등장인물을 몇 가지 지배적 특징으로 한계 지우는 것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그런 인물은 도무지 진짜 같지 않았다. 함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바뀌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야말로 진짜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함순은 자신의 등장인물 중에 '지배적 특징'으로 설명한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함순의 소설에는 변덕이 죽 끓듯 수시로 마음이 바뀌거나 하나의 특징을 선보이는가 싶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뜬금없이 아무런 관련 없는 또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함순은 마치 불교에서 명상을 하듯 인간의 의식을 묘사한다."(98-9)


6장 | 이디스 워튼처럼 써라


"스탠리 큐브릭은 〈우리는 6개나 7개쯤 되는 중요한 순간(big moments)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디스 워튼도 항상 6개나 7개의 깨달음의 순간을 준비해놓고 소설의 얼개를 짰다. 이를 캐릭터 아크라고 부른다. 그러나 캐릭터 아크가 초반, 중반, 결말로 이루어지는 포괄적인 영어라면 깨달음의 순간은 캐릭터 아크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고, 더 쉽게 당신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 깨달음의 순간에 도달하면 앞만 보고 나아가던 등장인물의 직선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그림 하나를 떠올려보면 더 쉽게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뻗어나가던 직선이 곡선 형태를 이루면서 마디마디가 부러진 활을 떠올려보라. 부러진 마디마디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조이스는 깨달음의 순간을 '직관의 번득임(lightings of intuition)'이라 불렀다. 이처럼 통찰의 순간에, 즉 등장인물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정성을 들여 그 순간을 다듬어 작품 속에 집어넣어라."(126-9)


7장 | 서머싯 몸처럼 써라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으로 등장인물을 밀어 넣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광고'하여 독자의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첫 번째 기법, 등장인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결정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만큼 까다롭고 힘든 결정이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을 요구하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독자에게 약속할 때는 몸이 그랬듯 미래의 그 일이 이야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줄거리에 필수적이며 등장인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어야 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미리 알려준다면, 그리고 작가의 약속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진진하다면, 독자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길 것이다."(137-40)


"'뜻밖의 사건'은 스토리텔링의 핵심적 요소다. 글쓰기란 결국 당장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를 드러내고 나머지 사건은 마지막에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숨겨놓는 일종의 게임이다. 『면도날』에서 독자가 래리와 이사벨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을 때 몸은 래리가 진리와 깨달음, 지혜를 구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의 굴레』에서 밀드레드가 필립 앞에 다시 나타는 시점을 보라. 그가 노라와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아내를 빼앗으면서까지 끝내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자살로 내몬다." "개연성과 더불어 뜻밖의 사건이 갖추어야 할 또 다른 조건은 그 사건을 통해 독자가 알지 못했던 등장인물의 면모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릭랜드가 스트로브의 아내를 차버릴 때 독자는 적어도 그의 잔인성에 다시 한 번 치를 떨며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을 받는다."(141-3)


8장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처럼 써라


"버로스는 이야기를 정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는 혐오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주는 이름을 가진 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고, 낯설거나 생소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그는 마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쏟아놓듯이 친근한 주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버로스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여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항상 매력적인 여자를 연상시키고 남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강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악당은 그야말로 악랄한 악당을 연상시킨다." "버로스의 어떤 책을 펼치더라도 갈등이 꿈틀거린다. 갈등은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엔진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기 시작한다면 주인공을 다른 누군가와 충돌시켜 위험을 고조시키는 도박을 걸어보라. 그 즉시 이야기는 생명력을 되찾을 것이다." "SF에 사랑 이야기를 도입함으로써 버로스의 소설이 더 흥미진진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이야기가 로맨스로 가득하게 하라."(151, 154, 160, 163)


9장 | 프란츠 카프카처럼 써라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느 날 아침 그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는데도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심판』의 첫 문장에는 소설 전체의 줄거리와 갈등이 압축되어 있다." "『변신』의 첫 장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첫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소설의 맨 앞에서 제시되는 이야기의 전제는 놀라우리만큼 독창적이다. 〈간밤의 뒤숭숭한 꿈에서 잠을 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판』과 『변신』의 도입부에서 카프카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정수만을 뽑아내어 전체 갈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린 것이다. 다른 작가들은 이런 방식을 꺼린다. 그들은 비밀을 감춰두고 싶어 한다. 주요 갈등과 이야기의 전제를 드러내기 전까지 뜸을 들이고 싶어 한다. 문제는 분위기 조성이다. 분위기 조성만 그럴듯하게 된다면 도입부에 너무 많은 패를 보여준다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170-1)


"카프카의 주인공은 항상 줄거리의 덫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이 모든 것이 임시하는 것은 꿈이 가진 악몽 같은 특성이다. 복도에서 문을 여니 법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고 추격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카프카는 꿈이 가진 이러한 탄력적인 면들을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이 그토록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분명 위험하고 이상하며 낯선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이상한 세계로 더 깊이 가라앉다가 결국 그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독자는 대리 경험을 통해 낯선 꿈의 세계로 빠져들고 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 세계의 진실을 바라본다. 이렇듯 카프카의 줄거리는 강력한 비유와 함축을 동원하여 신화적으로 각색된 현대의 풍경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172-4)


10장 | D. H. 로렌스처럼 써라


"로렌스는 줄거리보다 개인들 간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하나의 큰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 느낌을 준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로렌스는 인물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파고든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가운데 하나는 모든 장에서 깊은 정서적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렌스는 등장인물이나 몇 쌍의 연인들만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 인물들이 소설 한 권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별다른 줄거리 없이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방식을 가장 좋아했다. 장면과 장을 자신의 상상에 맞게 구성하고, 그렇게 써놓은 거친 초고를 바탕으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서 조바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이 방법은 당신에게도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작가들은 이야기의 절정이나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글을 시작한다. 이 방법을 '등장인물의 망령(Character Possession)'이라 부른다."(190-3)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는 사실적 행동 못지않게 '공간의 상징(ambient symbolism)'도 많이 등장한다. 공간의 상징은 이야기의 배경, 혹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상징을 가리킨다.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공간의 상징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냥터 관리인의 숲, 채털리 부인의 남편이 살고 있는 공업 도시, 채털리 부인이 살고 있는 대저택은 모두 '공간의 상징'이다." "로렌스에게서 상징을 배우기가 더 쉬운 이유는 상징을 분명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상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로렌스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추악하고 산업적인' 탄광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고 비난한다. 〈사람들한테서 자연의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간 게 누군데요? 사람들에게 이 산업사회의 공포를 가져다준 게 누구죠?〉 주저 말고 가끔은 독자의 옆구리를 쿡 찔러라. 그렇게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198-202)


11장 | 윌리엄 포크너처럼 써라


"포크너는 이미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 뛰어들어 소설을 시작하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많은 작가들은 한창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그것이 더 적절하고 극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크너는 주로 이야기의 한복판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뜸을 들이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깊이 있고 복잡하게 쌓아나감으로써 포크너는 입체적이고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한다. 독자는 마치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허구의 세계에서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탐구심을 발휘해야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본다. 뿐만 아니라 주변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포크너의 방식은 작품에 문학적 특성을 좀 더 강하게 부여한다. 물론 포크너의 방식에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도입부의 속도감을 떨어트릴 위험성이 있기도 하지만 지적인 독자들에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도입부의 묘미를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211-5)


"포크너는 소설의 시작도 독특하지만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는 방식도 눈에 띄게 예술적이다. 존 가드너는 이를 가리켜 '울림이 있는 결말(resonant close)'이라고 부른다. 이런 결말에서는 〈등장인물이나 이미지, 사건들만으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요약하거나 다시 떠올리게 하여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독자는 그동안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던 인물과 이미지, 사건이 서로 앞뒤가 들어맞아 마침내 중요한 것들이 모두 연결되는 느낌을 통해서 감동을 얻는다.〉" "포크너는 결말을 시로 처리하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 시가 나왔더라면 어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 등장하는 시는 소설의 마무리를 예술적으로 만들어준다." "결말은 새로운 언어를 과감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억눌러온 장식적인 구조나 미사여구에 도전할 수도 있고 소설 초반부에 등장했으면 어울리지 않았을 시를 사용할 수도 있다.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은 작가가 겉멋을 부려도 관대히 받아들인다."(215-7)


12장 |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써라


"그렇다, 헤밍웨이는 문장을 짧게 썼다. 그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문장을 짧게 쓰기 위해 헤밍웨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왜 문장을 짧게 쓰려고 했는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라. 가독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간결한 문장을 쓴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문장을 짧게 썼던 또 다른 이유는 극적 효과를 위해서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주인공은 썩어가는 다리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 좋아. 그는 이제 죽음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두려워한 것은 고통, 그 한 가지 뿐이었다.〉 이 짧은 문장들은 주인공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점증 효과를 발휘한다. 문장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극적 호소력을 강화하고 싶을 때 짧은 문장을 길게 이어놓으면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228-30)


"〈잠시 후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When 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 문장엔 종속절이 쓰였다. 여기서 종속접속사 'when'을 없애면 이런 문장이 남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병원을 떠났다.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다음에는 쉼표를 없애고 그 자리에 'and'를 집어넣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갔고 병원을 떠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제 첫 두 절의 순서를 바꿔주는 일만 남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갔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After I went out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정확히 이 문장으로 끝냈다."(238-9)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마라. 현실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토대로 인물을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을 흐르고 있던 당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아 솟구쳐 오를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반드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때로는 하나의 등장인물을 만들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친 복합적 캐릭터는 소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의 하나이다. 두 사람 이상의 인물을 떠올린 다음 그들의 특징과 행동을 한 명의 등장인물 속에 결합시켜라. 이 작업을 제대로만 하면 독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의 캐릭터로 태어났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독자는 당신의 글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얻은 인물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두 사람을 합쳐 놓은 복합적 캐릭터는 한 사람을 토대로 만든 캐릭터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246)


13장 | 마거릿 미첼처럼 써라


"미첼은 등장인물의 내면의 소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작가였다. 그녀의 글이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소설의 대부분이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바라보는 제한된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칼렛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독자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스칼렛은 사랑과 인간관계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가 사랑을 얻거나 잃을 때, 저택과 영지를 잃을 때 독자는 그녀 못지않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된 힘은 이러한 정서의 힘이다. 따라서 미첼이 사용한 내면의 독백은 이야기를 튼튼하게 구성하고 독자를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주인공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문학적 장치다." "등장인물의 생각에 할애하는 비중은 전체 이야기에서 1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 미첼도 전체 이야기에서 스칼렛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이 정도의 비중을 할애했다. 나머지 시간은 주요 등장인물과 기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채워야 한다."(253-5)


14장 | 조지 오웰처럼 써라

"

『1984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등장인물은 단연 윈스턴 스미스다. 소설 전체를 윈스턴의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1984년』을 집필하는 동안 폐결핵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도 오른쪽 발목 윗부분의 정맥류성 궤양으로 고통을 겪는다. 고문을 당할 때도 궤양이 언급될 정도다. 국가는 그를 세뇌시키는 데 성공한 뒤에야 궤양을 치료해주고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준다. 폐결핵에서 궤양으로 바뀌긴 했지만, 작가의 병이 주인공에게 전이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물을 만드는 기본적 방법 한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실제 인물의 특징을 바탕으로 인물을 만드는 방법이다. 단, 진행중인 줄거리에 적합한 방향으로 실제 인물의 특징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특히 국가가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아줄 때 궤양이라는 소설 속의 장치는 그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국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전체주의 정부에 포섭되어간다는 것을 절묘하게 암시하지 않는가?"(277)


"주제 혹은 지배적 아이디어는 작가의 도구이자 고성능 렌즈이다. 작가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고 윤을 내며 더 흡인력 있게 만든다. 주제를 뒷받침하거나 구현하는 사건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라. 주제에서 겉돌거나 주제를 구현하지 못하는 대화나 장면이 한 토막이라도 있다면 인정사정없이 잘라내라." "『1984년』은 작품 곳곳에 주제가 배어 있다. 오웰은 주제를 통해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288-9)


15장 | 이언 플레밍처럼 써라


"플레밍은 정확한 세부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세부묘사를 통해 감각적 쾌락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플레밍은 자메이카의 북쪽 해안가에 은둔자처럼 처박혀 글을 썼다. 플레밍의 명성을 알린 작품들도 그곳에서 탄생했다. 『카지노 로얄』(1953)을 필두로 모두 열두 편의 '본드 시리즈'가 차례로 발표되었다. 자메이카에서 글을 쓰는 동안 플레밍은 금도금을 한 로얄 디럭스 타자기를 사용하고 몰랜드 스페셜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댔는가 하면 늘 술에 절어 있었다. 인생의 쾌락을 좇는 그의 성향은 문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세부적으로 묘사를 아끼지 않은 문장과 이국적 배경 설정, 다채로운 인물의 창조는 플레밍 특유의 문체로 자리 잡았다. 그가 모든 작품에서 사용한 플레밍 문체는 세부묘사를 활용하여 감각을 자극하고 독자에게 호화로움과 쾌락의 세계를 전한다."(292-3)


16장 | J. D. 샐린저처럼 써라


"샐린저의 작품에서는 (줄거리보다) 등장인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조이스 메이너드는 샐린저가 캐릭터에 관한 메모를 깨알같이 적어놓은 수십 권의 공책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공책들이야말로 샐린저가 끊임없이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비결이다. 물론 독자가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세상에 발표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국한된다. 샐리저는 후기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글래스 가문을 묘사하기 위해 구성원들 한 사람당 책 한 권 분량의 메모를 적어두었다. 최종 발표된 작품에 이들이 전부 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샐린저는 작품에 실리지도 않을 이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분석했다." "헤밍웨이도 이런 작업 방식을 좋아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빙산 이론'을 논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신이 어떤 부분을 빼버렸을 때 이야기가 더 강화된다면, 어뻔 부분을 빼버렸을 때 독자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무엇이 됐건 빼버려라.〉"(321-3)


17장 |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써라


"많은 작가들은 초고를 쓸 때 머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걸러내지 않고 빨리 써야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냥 나오는 대로 받아써라.〉 스티븐 킹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도 모두 그런 식으로 초고를 썼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을 했다. 브래드버리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초고를 쓸 때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걸러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겹쳐 쓰기를 한다. 나중에 수정할 때 잘라내고 편집할 요량으로 문장이나 대화마다 다양한 대안을 적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려면 써야 할 글의 분량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 방법의 매력은 글 쓰는 이의 가슴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다시 말해 소설 속 장면 한가운데에 있을 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예행연습' 때 최고의 어휘와 표현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가 찾고 있는 그 어휘일 가능성이 많다."(337-8)


"단짝 캐릭터는 세계 문학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효과가 입증된 장치이다. 브래드버리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능숙하고도 의식적으로 이 장치를 사용한다. 첫 번째 이유는 두 인물을 비교하여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 소년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심도 깊은 인물 묘사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정반대다. 매우 미세한 두 인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짝 캐릭터를 사용하면 중심인물이 한 명일 때보다 두 소년의 심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브래드버리는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에서 단순히 짐과 윌의 차이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소년의 우정과 일반적인 우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친구란 서로 다른 차이를 끌어안는 것이고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캐릭터 묘사를 통해 소설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우정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효과까지 거둔다."(343-5)


18장 | 플래너리 오코너처럼 써라


"만약 오코너의 작품이 재미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오코너가 '자유간접화법'이라는 문학 장치를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간접화법은 한 가지만 빼고 간접화법과 똑같다. 그것은 간접화법과 달리 전달동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유간접화법은 전문용어로 '올바른 철자 표시(orthographic marker)'라고도 불린다." "『폭력이 그것을 끌고 갔다』의 2장 중반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난다. 〈소년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 만한 눈치는 있었다.'〉 홑따옴표로 된 부분이 바로 타워더의 관점에 물든 자유간접화법이다." "자유간접화법을 사용하고 싶다면 당신이 설명하려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어라. 특정 상황에서 '당신'에게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 말고 '등장인물'의 머리나 마음속에 떠오를 법한 단어나 구절을 찾아라." "이러한 등장인물의 목소리는 당신의 전형적이고 '따분한 목소리'에 의한 서술보다 훨씬 짜릿한 흥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363-6)


19장 | 필립 K. 딕처럼 써라


"18세기와 19세기의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과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동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디킨스는 『황폐한 집』에서 에스더의 혈통에 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에스더의 어머니인 데들록 부인이 다시는 딸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 작가인 자신도 전부 드러내지 못할 만큼 등장인물들의 동기가 복잡하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독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등장인물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 딕의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배경 지식이나 세부묘사를 최소한으로 생략하고 압축하라. 등장인물의 대사 몇 줄이나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독자에게 등장인물의 동기를 이해시킬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짧은 대사나 생각에서 등장인물의 동기를 집어낼 것이다. 등장인물의 동기가 개연성이 있다면 굳이 길게 묘사하지 않고 간단히 언급만 해줘도 충분하다."(378-80)


20장 | 톰 울프처럼 써라


"울프가 등장인물을 만드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방법과 같다. 즉 등장인물의 주요 특성을 과장하고, 자신이 만든 등장인물을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그들의 허물이나 기벽(奇癖)을 실제보다 과장하여 드러내는 방식이다." "당신의 등장인물을 아기처럼 살살 다루지 마라. 특히 주인공을 부드럽게 다뤄서는 안 된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많은 연민을 품게 되면 울프가 찰리에게 그랬던 것과 달리 당신의 주인공을 고통에 빠트리는 데 망설이게 된다. 주인공이 수치심과 모욕, 불안과 동요, 추락을 경험케 하라. 그렇게 하면 독자의 관심은 주인공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독자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는 문학이 음악이나 영화, 연극보다 훌륭한 매체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은 글쓰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394-6)


21장 | 스티븐 킹처럼 써라


"간단히 말하면 서스펜스란 독자가 미래에 벌어질 어떤 사건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불안감을 갖게 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단순히 독자가 간절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게끔 만다는 것을 서스펜스라 부르기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스티븐 킹의 서스펜스는 약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데서 형성된다. 말하자면 킹의 서스펜스는 눈에 잘 띄는 송곳 같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제인 오스틴의 기대감과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에 빠져든 독자는 손톱을 물어뜯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심한 근심에 휩싸인다." "서스펜스는 천박하거나 조악한 기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때 서스펜스는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최고의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기가 될 것이다."(410-1)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를 만들 때 항상 세 단계로 구성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킹은 독자가 궁금해 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언급이나 단서를 흘린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일'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나는 이 두 번째 단계를 '재통보(callback)'라고 부른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킹은 이야기의 전개상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에서 서스펜스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샤이닝』에서 대니 가족이 오버룩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요리사인 핼로란은 대니에게 217호실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는 소설의 초반부인데, 대니는 그로부터 몇 장이 지난 후에 집 안을 둘러보다가 217호실 앞을 지나칠 때가 되어서야 요리사의 경고를 다시 떠올린다. 이후 몇 차례 더 217호실에 대한 언급이 나온 후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문 뒤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의 실체가 드러난다. 킹은 이렇듯 재통보를 통해 독자가 안심하지 못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414,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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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과 구경꾼 - 항해로서의 삶, 난파로서의 이론 NOUVELLE VAGUE 1
한스 블루멘베르크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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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경계 침범으로서의 항해 


"두 가지 전제가 무엇보다 먼저 항해와 난파라는 은유법의 의미 부담을 규정한다. 첫 번째는 바다란 인간의 계획이 실행되는 공간을 제한하기 위해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경계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다를 예측 불가능하고 법칙성을 벗어나 있으며 방향을 정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마계화하는 것이다. 기독교 도상학에서까지도 바다는 악이 출몰하는 곳으로, 거기에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 되가져가는 거친 물질을 대변한다는 식의 그노시스적 가필加筆이 종종 가해지기도 했다. 「요한묵시록」에 기록된 예언에 따르면, 구세주가 세상을 다스릴 때 바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1장 2절)]. 표류란 순수한 형태로는 힘들의 변덕의 표현으로, 그것들은 오뒷세우스에서처럼 사람이 귀향을 거부당하고 무정하게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난파하도록 만드는데, 그렇게 되면 누구라도 코스모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영지주의처럼 정반대로 평가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45)


2장 난파자에게 남겨진 것 


"생존자가 바라보는 난파는 최초의 철학적 경험의 상징이다. 스토아 학파의 시조인 키티온 사람 제논은 페니키아에서 자주색 염료를 배에 싣고 돌아오던 중 페이라이에우스항 근처에서 난파당하고 말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철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는 이 경험을 이렇게 요약한다. 〈내가 난파한 것은 지금 돌이켜보니 나에겐 좋은 항해였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비트루비우스는 난파당해 로도스섬 해변으로 밀려 올라간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티포스[기원전 435~356년, 북아프리카 키레네 출신의 향락가. 인생의 목적은 쾌락이며 그것이 지고선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식견과 극기와 절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는 모래사장에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것을 보고 근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고 보고한다. 이 보고는 그것을 돈과 쾌락에 너무 이골이 나서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로부터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이 철학자에게 일종의 개종의 계기가 된 것처럼 기록한다."(54-5)


"설령 난파되더라도 해안으로 헤엄쳐 나올 때 휴대할 수 있는 것으로 여행에 필요한 것을 제한하는 식으로 삶을 꾸려 나가라는 고전적 조언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 안티스테네스[기원전 445~365년경, 덕에 충실한 금욕주의적 삶을 강조했으며, 후대 학자들에 의해 견유학파의 창시자로 간주된다]가 했다고 한다. 몽테뉴는 「고독에 관해」라는 에세이에서 이 말로부터 도덕적 자족을 위해 새로운 요점을 끌어낸다. 〈분명 분별력 있는 사람은 자기를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난파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된 것은 원할 땐 언제든 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재산Besitz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발견과 자기-전유 과정을 통해 달성 가능한 침착함Selbstbesitz이다." "하지만 이 회의론자에게도 궁극적인 것은 항상 여전히 앞에 있다. 그가 발견한 실체의 견고함에 대한 시험은 단지 삶이 끝날 때만 끝날 뿐이다. 그러므로 〈충돌에 주의하라! 항구에 다다라 난파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다.〉"(58-60)


"비록 사적 존재는 내면의 위험으로부터의 난파를 모면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 존재를 함께 잡아 찢을 수 있는 국가와 세계의 몰락[침몰]이라는 큰 침몰이 남아 있다. 몽테뉴의 호기심은 국가의 몰락[침몰]이라는 드라마를, 그것의 징후와 형태를 자기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사태를 방지할 수 없는 이상 구경꾼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에 만족한다. 〈우리는 우리가 듣는 일에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극히 드물게 그러한 비참한 사건을 보고 인생의 고통을 환기시키며 쾌감을 느낀다.〉" "몽테뉴가 즐길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난파의 구경꾼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자기보존에 성공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의 즐거움─완전히 간악한 것으로 묘사된다─을 옹호한다. 그처럼 거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분에 구경꾼은 안전하게 단단한 해변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쓸모없는 특성, 즉 구경꾼으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살아남는다."(61-4)


"니체가 항해의 은유법에 가져온 ('실존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방향전환은 〈······ 당신은 승선했다〉는 말로 파스칼이 발견했던 것이다. 몽테뉴가 항구에 머무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바 있는 회의론자의 절제는 파스칼 관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승선했다는 은유법은 삶이란 이미 거친 바다 위에 있으며, 거기에는 행운 아니면 난파 외의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점에서 니체가 〈유일한 논리적 그리스도인〉으로 평가하는 파스칼은 내기 돈, 즉 무한한 이익을 절대적인 차원으로까지 올리려고 하지 않는 미온적 자기보존이라는 생각을 배제한다. 오직 그렇기 때문에만 이 〈그리스도교의 가장 교훈적인 희생자〉는 니체를 예견할 수 있었는데, 니체는 파스칼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한다. 〈우리는 육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뒤의 육지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니 우리 배여, 앞을 바라보라! ······ '육지'는 이제 없다!〉"(66-7)


"이 은유의 다음 단계는 우리는 항상 이미 승선해 거친 바다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필연적인 듯 난파당한다는 것이다. 구조된 난파자에는 부동의 대지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꿋꿋이 서 있을 수 있으며, 새로운 인식을 위한 단단한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을 밝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그것은 과학의 근본적 경험이다. 환상적 변신이나 기적을 믿었던 다른 시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로부터 떠오르고 있는 인간에게 확고한 대지가 신뢰 가능함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니체는 지복의 경지라고 부르는 것을 〈육지에 닿아, 낡고 확고한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것에 경탄하는〉 난파자의 행복에 비교한다. 단단한 대지는 구경꾼이 아니라 난파에서 구조된 사람의 장소이다. 대지의 단단함은 그러한 일은 완전히 비개연적이라는 느낌으로부터, 즉 그와 같은 것에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부터 전적으로 경험된다."(68, 71)


3장 구경꾼의 미학과 윤리 


"대지의 경계를 넘어 바다로 나가는 은유적 사건 및 실제적 사건은 은유적 난파의 위험과 실제적 난파의 위험처럼 서로 겹친다. 인간을 거친 바다로 내모는 것은 동시에 자기의 자연스러운 욕구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내모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종족은 공연히 항상 헛되이 애쓰고, 공허한 걱정 속에 세월을 낭비하는 것이다. 인간은 소유의 목적과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현실의 쾌락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삶을 조금씩, 조금씩 깊은 바다로 데려간 것과 같은 자극이 또한 전쟁이 거세게 끓어오르도록 충동한다. 항해라는 잘난 체하는 행위를 하기로 결심한 인간은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벌을 받는데, 그러한 힘에 우리를 넘겨주고, 그러한 힘을 신의 이미지로 번역하는데, 그러한 힘이 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러한 힘을 어르려고 기를 쓰고 애쓰지만 소용없음을 통해 자연의 힘과 맹약을 맺을 수 없음을 즉각 깨닫는다."(85)


"그것과 정반대를 이루는 것이 다음과 같은 계몽주의의 근본 사상 중 하나일 것이다. 즉 난파라는 것은 바람이 완전히 잦아들어 세계의 모든 교역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비유에서 철학에 의해 냉대 받는 정념passiones에 대한 옹호가 표현되고 있다. 요컨대 순수이성이란 잔잔한 파도를, 완전한 사리분별을 갖춘 인간의 부동의 태도를 의미할 것이다. 퐁트넬은 루키아노스[120~195년경]를 모작한 『죽은 자들과의 대화』 중의 한 대화에서 에페수스 신전의 방화범 헤로스트라토스의 입을 빌려 오직 파괴만이 인간에게 영구적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준다는 역설로 파괴를 옹호한다.  〈(···)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항해자들은 항해가 불가능한 잔잔한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한다고 하지 않소? 또 그러기에 폭풍이 일어도 좋으니 바람이 일기를 바란다고들 하오. 사람에게 정념은 모든 것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바람과 같은 것이오.〉"(85-7)


"하지만 구경꾼 또한 더 이상 현실의 가장자리에 선 현자라는 예외적 실존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추동하는 동시에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는 저 정념 중 하나의 주창자가 된다. 구경꾼은 본인이 모험 자체에 휘말리지는 않지만 파멸과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매력에 어찌할 수 없이 빠져든다. 그의 침착함은 지켜보는 자의 그것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호기심의 그것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구경거리를 보러 달려가는 것은 호기심에 쫓겨서지만 호기심이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볼테르는 이 호기심 강한 무리 중 난파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공개처형이 있을 때 사람들이 창가에 모여드는 것은 악의에서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는 저런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어 즐겁다고 생각할 때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둘 중 하나다. 〈자기 처지에 비추어 보아서 아니면 ······ 오로지 호기심에서이다.〉"(94-5)


"갈리아니 신부는 난파와 구경꾼 비유를 다시 한 번 비튼다. 비록 호기심이 볼테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정념이더라도 그것은 어떤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입장에 있다는 가정을 그만큼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구경꾼이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의 드라마에 매혹당하는 것은 그저 그가 단단한 대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란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그것으로부터 물러난 후 자기 자신에게나 신경 쓰도록 강요하는 감수성이다. 따라서 갈리아니에 의하면 극장이 인간의 상황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관객에게 안전한 좌석이 지정된 후에야 비로소 눈앞에서 인간이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연극의 막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안전과 행운이 호기심의 조건이며, 호기심은 안전과 행운의 징후이다. 위험은 무대 위에서 연기되며, 안전은 처마 지붕 밑의 안전이다. 해안에서 극장 안으로 옮겨감에 따라 루크레티우스의 구경꾼도 도덕적 차원을 빼앗기고 '심미화'된다."(99-101)


"1792년에 헤르더는 『인간성의 증진을 위한 서한집』의 17번째 서한에서 독일이 이웃 국가들의 혁명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 총괄하면서 난파와 구경꾼 이미지에 의존한다. 〈우리는 프랑스혁명을 마치 낯선 공해에서 일어난 난파처럼 안전한 해변의 높은 곳에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악령böser Genius이 무도하게 우리를 바다 속으로 내던지는 것과 같은 짓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갈리아니가 만들어낸 난파의 은유법과 극장의 은유법 사이의 관계가 헤르더의 이 텍스트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 중인 파국은 동시에 〈위대한 세계사라는 신의 책〉 속에 적혀 있는 교훈극, 국민적 성격 덕분에 이미 특전을 부여받은 구경꾼 앞에서 상연되는 신의 섭리극이다." "보다 깊은 수준에서 난파는 '섭리'에 의해 연출되는 교훈극이다. 구경꾼의 안전은 그를 바다 속으로 내던질 수 있는 악령의 형상에 의해 위협 당한다. ─이 드라마 전체는 '섭리'와 '악령'의 그러한 이원론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109-11)


4장 생존술 


"1807년의 예나 전장의 시찰자 괴테는, 전황을 호전시킬 수만 있다면 개인적 불행쯤은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열정적 대화 상대에게 한마디의 호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 전장의 관찰자는, 역사라는 것은 항상 타인들의 역사이며 또한 그렇게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로부터 자기의 역사를 보호하기 위해 고대 시인의 이미지에 호소한다. 루크레티우스는 공포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찬양했다. 인간에게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자연현상이며, 인간세계의 사건은 오직 자연의 일부로서 이차적으로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괴테에게 반성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도피처 자체의 거리만 존재한다. 〈······ 난파 순간에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반년 후 괴테는 벌써 자기를 난파의 구경꾼으로 비유할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은 오직 자기와 자기의 세계가 겨우 몰락을 모면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121-3, 126)


"헤겔의 경우에 구경꾼 입장은 반성Reflexion에 의해 결정된다. 반성은 구경꾼에게 단순한 위로 이상의 것을 주며, 구경꾼을 〈역사의 다음 광경〉과 화해시킨다. 그리고 최고조로 높아진 반성은 〈겉으로는 불의로 가득 찬 것으로 보이는 현실을 변용시켜 합리적인 것과 화해시킨다.〉 구경꾼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함에 깊은 동정을 기울이며〉 개인을 역사 속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몰락을 자연의 소행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일로 바라본다는 것은 이성의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가." "우리가 〈역사란 민족의 행복, 국가의 예지 그리고 개인의 미덕을 희생물로 해온 제물이 바쳐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거기서 생기는 사건을 모두 단지 수단으로만 간주하려 한다면, 그러한 관점이야말로 역사철학의 모든 금언金言의 마지막에서 이성 입장에 선 구경꾼이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안심이다. 그것은 입장이라기보다는 〈특수한 비유에서 보편적 비유로의 격상을 가능하게 하는 반성의 길〉이다."(124-5)


"『시와 진실』 15장의 끝부분에서 괴테는 난파의 은유법뿐만 아니라 최초의 경험으로부터의 삶의 거리라는 은유도 모두 넘어선다. 그는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마치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쓴다. 괴테는 그것을 위해 바다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항적이라는 은유를 떠올린다. 그가 이 은유를 갖고 가리키려고 했던 것은 끝나가고 있던 계몽주의시대가 헛되이 품고 있던 역사적 긍지, 즉 계몽주의의 성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한 번 발견된 길은 계속 이어지리라는 긍지였다." "괴테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역사와 자연의 관계였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아무 항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와 자연이 다르게 되는 조건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명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조망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불가역성이라는 신뢰성 속으로 옮겨질 수도 없다. 진보와 몰락 모두 똑같이 잔잔한 수면만 뒤에 남길 뿐이다."(131-2)


5장 구경꾼, 구경꾼 위치를 잃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보면 두 위치Position, 즉 난파자 위치와 관찰자 위치에서 인간주체의 동일성이 완전히 해명된다. 그것을 위해 그는 본인의 체계를 틀로 이용하는데, 그것은 이성은 표상Vorstellung의 표상이라는, 따라서 삶의 직접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기관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골자로 한다. 인간이 본인이 겪는 고통의 구경꾼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성 덕분이다. 인간은 항상 현실과의 갈등에 휘말리지만 그것을 순수하게 관찰하는 입장에 도달한다면 〈삶 전체를 모든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추상적 삶에서 〈인간은 단순한 방관자이자 관찰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항해의 은유법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조망하는 능력을 갖춘 점에서 이성적 존재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관계는 〈마치 해도海圖, 나침반 등에 의해 항로를 알고 대양의 그때그때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선장과 다만 파도와 하늘만 보는 무지한 선원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135-6)


"주체의 이중적 삶─헤겔의 발명품에 가까운 사고방식─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숭고함의 감정에서이다. 이 감정은 맹위를 떨치는 자연현상에 직면해 내가 위험해진다는 의식과 나를 고양시킨다는 의식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자연의 무시무시함으로부터의 그러한 초월론적 거리두기에는 암초 해안으로부터의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식으로부터의 거리두기도 포함되는데, 이 자기의식에게 이 모든 것은 자기의 표상이 된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계의 광대함을 의식하게 되면〉 〈그러한 거짓된 불가능성에 맞서〉 웬일인지 초월론적 반항심 같은 것이 솟아난다. 이처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는 '오직' 우리 표상 속에서만, 그것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반항심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은유법에서 만약 주체가 구경꾼 입장에서 물러나 의지─이것은 주체가 자연의 위험을 마주보게 되는 대신 주체를 위험에 노출시킨다─에 의한 세계의 갈등에 휘말려들게 되면 난파당할 수 있다."(136-8)


"어쨌든 삶으로부터 물러난 관점의 '지혜'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가능한 이상 구경꾼이 보는 것은 자기의 과거이다. 하지만 그가 보는 것은 또한 〈암초와 소용돌이로 가득 찬 바다〉인 삶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것으로서 미래 속에서 자기 앞에 놓여 있다. 그는 신중하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비록 〈어떻게 해서든 헤쳐 나가려고 온갖 노력과 수단을〉 쏟아부어 성공한다 해도 오히려 난파가 불가피한 지점에 보다 가까이 가버릴 뿐임을 알지만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충동과 명상으로의 이행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하기 위해 폭풍 한가운데 있는 선원을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만든다. 그가 탄 배는 살아남기 위한Überleben 그리고 삶을 초월하기 위한Über-leben 배가 되어버려 항로나 목적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쇼펜하우어의 작은 배에 탄 선원은 지금 본인이 세계의 구경꾼이 되었거나 되려는 중이어서 더 이상 해변의 구경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140-3)


"역사가가 거리를 둔 구경꾼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견고한 관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가는 시대를 전체로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없다. 이제 시대의 특징은 〈영구히 수정을 이어가는 정신〉이다. 사람들은 변화의 종결에 이르렀다고 믿고 또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1789년 이후 인류를 사로잡아왔다고 할 수 있는 폭풍이 우리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간사를 계속 움직이며 종종 악천후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 이상 정념의 바람이 아니다. 파괴하고 동요시키고 난파를 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몰고 가는 것은 동일한 폭풍이다. ─〈지구상의 이미 알려진 모든 과거와 대립〉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 속에 같이 휩쓸려 들어가는 역사가는 그것의 추진력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의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분명히 그것의 거대한 낙관적 의지에 말이다. 인식의 과제는 그에게 〈어리석은 즐거움이나 두려움으로부터 가능하면 최대한 자유로울 것〉을 요구한다."(149-50)


6장 난파로부터 배 만들기


"로렌첸은 인간적 사유의 방법론적 시작에 대한 물음은 한편으로는 칸트가 전치시킨 이후 공리公理주의적 방법론의 우위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철학 쪽으로 정향된 해석학에 의해 합리성의 영역의 시야로부터 사라지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로부터 유래하는 철학의 새로운 직접성은 인식은 삶의 뒤로 돌아갈[진상을 규명할] 수 없다는 명제로부터 의도치 않게 또 다른 명제를, 즉 '삶'이라는 표현 또한 사유에 부과되는 언어적 틀로 드러나는 일군의 우연적 전제를 가리킬 뿐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냈다. 논리실증주의는 이 물음을 과학적 언어를 정초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설정으로 협소화시켰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가장 명료하게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통사론적 규칙을 가진 언어란 배이고 우리는 그것을 타고 있다는 이미지가 그것이다. 어떤 항구로도 입항할 수 없다는 조건하에 말이다. 배의 수리나 개조 모두 거친 바다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161)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전에 결정적으로 주어져 있어 우리는 자연언어라는 배를 자발적으로 사용할 수도 또 그것을 버릴 수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것이 아래 물음을 미리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그렇게 해서 요구되는 시작을 방법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도 그와 동일한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가 물음 말이다. 로렌첸은 자연언어를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로 표상하면서 그러한 이미지를 계속 사용하지만, 그 상황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관한 모든 기원적 물음을 넘어선 곳에 놓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도달 가능한 육지가 하나도 없다면 배는 이미 거친 바다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에 의해.〉" "바다는 분명히 이미 사용된 것과는 다른 목재를 품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혹시 이전의 난파들에서?"(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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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관료제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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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 관료제의 특수한 기능 방식


① 관청은 규칙(법률이나 행정 규정)에 의해 일반적으로 질서정연한 '권한'을 갖는다.

② 관직 위계제와 심급제의 원칙이 존재한다. 즉, 상급 관청이 하급 관청을 감독하는 형태로 관청 간의 상하위 관계가 명확하다.

③ 근대적인 직무 수행은 원본 또는 초안으로 보관되는 서류(문서)에 의거해서 이루어진다.

④ 직무 활동은 보통 철저한 전문 교육을 전제로 한다.

⑤ 직무가 완전히 발전하면, 직무 활동은 관료의 모든 노동력을 요구한다.

⑥ 관료의 직무 수행은 어느 정도 명확하고 또 어느 정도 완전하며 습득할 수 있는 일반적인 규정에 따라 행해진다.


2. 관료의 지위


① 관직은 '직업'이다. 관직에 취임하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특별한 '직무 충실 의무'를 떠맡는다.

② 상급기관에 의해 '임명'된('선출'이 아니라) 근대의 관료는 피지배자에 비해 특별히 높은 "신분상"의 사회적 평가를 추구하며, 대개 그러한 평가를 누린다.

③ 적어도 공적인 조직체나 이와 가장 가까운 조직체에서는 '지위의 종신성'이 있다.

④ 관료는 보통 정기적으로 고정된 봉급 형태의 화폐 보수를 받으며, 연금을 통해 노후를 보장받는다.

⑤ 관료는 관청의 위계질서에 따라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의 "승진"을 목표로 한다.


3. 관료제화의 전제와 수반 현상


① 관료들에게 지급되는 화폐 보수를 고려하면, '화폐 경제'의 발달이 전제된다. 특히 관료제가 변함없이 존속하는 데 필요하다.

② 정치 영역에서는 거대 국가와 대중 정당이 관료제화의 고전적 기반을 형성한다.

③ 행정 업무 범위의 외연적인 양적 확대보다는 집중적인 질적 확대와 내적 발전(치안, 사법, 교육 등 아주 다양한 생활 수요에 대한 조직적이고 공동 경제적인 배려의 요구)이 관료제화의 원인이다.

④ 관료제 조직이 확산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형태보다 순전히 '기술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이다(비인간화된 계산가능성).

⑤ 관료제 구조는 지배자[국가, 자본주의 대기업, 군대, 대학 등]의 수중에 '물적 경영 수단이 집중'되는 것과 함께 나타난다.

⑥ 관료제 조직은 '경제적 및 사회적 차이'의 중요성이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평준화된 것'에 기초해서 행정 기능을 담당한다.


4. 관료제 기구의 지속적인 성격


관료제는 일단 완전히 실현되면 파괴하기가 가장 힘든 사회 조직이 된다. 관료제화는 [ 합의된 ] “공동체 행위”를 합리적으로 조정된 “이익사회 행위”로 바꾸는 특수한 수단이다. 따라서 지배 관계를 “이익사회 관계로 바꾸는” 수단으로서의 관료제화란 관료제 기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에게는 일급의 권력 수단이었으며, 또 지금도 그렇다. 왜냐하면, 다른 기회가 동일한 경우 계획적으로 조정되고 관리된 “이익사회 행위”는 이에 저항하는 “대중 행위”나 “공동체 행위”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관료제화가 일단 완전히 관철된 곳에서는, 사실상 부숴버릴 수 없는 형태의 지배 관계가 만들어진다. 개개의 관료는 그가 편입되어 있는 기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이 기구 속에 편입된 모든 직원의 이해 관계 공동체에 확고하게 묶이게 되는데, 이때 그 모든 직원의 공통된 이해 관계란 그 기구가 계속해서 기능을 발휘하고 또 이익사회 관계에 맞춰 행사되는 지배가 존속하는 것을 말한다. 36)


5. 관료제화의 경제적 및 사회적 결과


사회 전체가 — 실제로든 어쩌면 단지 형식상으로만이든 간에 — 그 말의 근대적인 의미에서 민주화된다는 것은 관료제화 현상 일반을 위해서 특히 유리한 기반은 되지만 결코 유일하게 가능한 기반은 아니다. 관료제화 현상은 사실 그것이 개개의 경우에 차지하려는 영역에서 이 관료제화 현상에 방해되는 권력들을 평준화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매우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마주쳤으며, 앞으로도 반복해서 논의하게 될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민주주의” 자체는 불가피하게 관료제화를 — 원하지는 않지만 — 촉진시킴에도 불구하고 또 촉진시키기 때문에 관료제 “지배”의 적이 되며, 아울러 “민주주의” 자체가 경우에 따라서는 관료제 조직의 매우 뚜렷한 돌파구도 만들어 내고 방해물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개개의 역사적 경우를 고찰할 때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밀 기구인) 관료제화가 바로 그 개개의 역사적 경우에 어떤 특별한 방향으로 진행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39)


6. 관료제의 권력 위상


완전히 발전한 관료제의 권력 위상은 언제나 매우 크며, 정상적인 사정에서는 훨씬 더 크다. 관료제가 받들어 모시는 “지배자”가 “법률 발의안”, “국민 투표” 및 관리 파면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국민”이든, “불신임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나 사실상 불신임할 수 있는 구속력으로 무장한 의회이든(한층 더 귀족제적인 기초에서 선출되었든 아니면 한층 더 “민주적인” 기초에서 선출되었든 간에), 법에 따라 또는 사실상 자기들 내부에서 보충하는 귀족제적 합의체이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든, 세습적인 “절대” 군주나 “입헌” 군주이든 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지배자가 행정 운영을 담당한 훈련된 관료에 대해 처해 있는 상태는 “전문가”에 대한 “아마추어”의 처지이다. 다른 사정이 똑같은 경우, 경제적으로 독립한 관료들 즉 유산자 계층에 속한 관료들만이 관직 상실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산자 계층으로부터의 충원은 예로부터 또 오늘날에도 지배자의 권력을 증대시킨다. 40, 42)


모든 관료제는 직업상 잘 아는 자들의 지식이나 의도를 비밀로 한다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우위를 더욱 높이려고 한다. 관료제 행정은 그 경향상 언제나 공개를 배척하는 행정이다. 관료제는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한 자신들의 지식이나 행동을 비판받지 않으려고 숨긴다. 관료 기구의 순수한 권력 이해 관계 자체는 순전히 객관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비밀 유지라는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 “직무상의 비밀”이라는 개념은 그들의 특수한 발명품인데, 특수한 성질을 지닌 영역 밖에서는 결코 객관적인 이유로 제시될 수 없는 바로 이 태도만큼 그들이 열광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없다. 관료 기구가 의회와 대립하는 경우, 그들은 확실한 권력 본능에서 의회의 시도 — 즉 고유한 수단(예를 들면, 소위 국정 조사권)을 통해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전문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시도 — 에 대해 저항한다.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무기력한 의회는 관료들에게 당연히 더 환영받는다. 41)


7. 합리적인 관료제 지배 구조의 발전 과정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의 관료제화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객관적인” 법 질서와 이 법 질서에 의해 보장된 주관적 권리가 개념상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최종적인 가능성도 주어진다. 관청 상호간의 관계나 관청과 “신민”의 관계에 관한 “공법”과 피지배자인 개개인 상호 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사법私法”의 구분도 사정은 똑같다. 이 구분은 지배권의 추상적인 담당자이자 “법 규범”의 창조자인 “국가”와 개개인의 모든 개인적인 “권한”의 개념적 구분을 전제로 한다. 그러한 관념이 처음으로 실현된 것은 도시 공동체의 기반 위에서였다. 도시 공동체가 관직 보유자들을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임명했으며, 이렇게 해서 그때그때의 지배권 — 최고의 지배권도 포함한 — 을 “행사하는” 개개의 권력 보유자가 “고유의 권리”로서 지배권을 소유한 자와 더 이상 동일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법과 사법의 구분을 원칙적으로 처음 관철한 것은 관료제에서 직무 수행의 완전한 비인격화와 법의 합리적인 체계화였다. 47)


8. 교양과 교육의 “합리화”


과거에는 귀족 가문 증명이 동등한 신분이나 종교 재단 간부 자격의 전제 조건이었으며, 또한 — 귀족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세력이 강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 국가 관직 자격의 전제 조건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교육 증서가 그것을 대신한다. 종합 대학, 공과 대학, 상과 대학의 졸업장 발부,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에서의 교육 증서 발급 요구는 관청이나 사무실에서의 특권층 형성을 조장한다. 교육 증서의 소유는 명망가와의 통혼 요구를 뒷받침해 주며, “명예 규범”을 준수하는 계층에의 가입 요구, 일의 성과에 따른 보수가 아니라 “신분에 알맞은” 지불의 요구, 확실한 승진과 노후 보장의 요구, 그러나 무엇보다도 졸업장을 가진 후보자들에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독점하게 하려는 요구 등을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일정한 교육 과정과 전문 시험의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듣고 있다. 이 독점을 위한 보편적인 수단이 오늘날에는 "시험"이다. 49)


또 다른 한편에서 관료제는 언제나 잘 정비된 징계 절차를 만들어 관료에 대한 “상사”의 완전한 자의적인 조치를 배제함으로써 일종의 “관직 보유권”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며, 관료에게는 지위, 규정에 따른 승진, 노후 대책을 보장해 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관료제는 지배의 최소화를 요구하는 피지배자들의 “민주주의” 심리의 지지를 받는다. 피지배자들은 관료들에 대한 지배자의 자의적인 조치의 약화를 지배자 권력 자체의 약화로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한에서 관료제는 상인의 사무실에서나 공무에서나 특수한 “신분제” 발전의 추진자이다. 민주주의는 임명된 관료를 선거에 의한 단기 관리로 대체하고, 또 정비된 징계 절차를 국민 투표에 의한 관리 파면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은 서열상 상위에 있는 “지배자”의 자의적인 조치를 피지배자나 — 이 피지배자를 지배하는 — 정당 우두머리들의 마찬가지로 자의적인 조치로 대체하려는 노력이다.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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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서사시 -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까지> 근대 문학 속의 세계체제 읽기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서론 


"다윈주의야말로 형태적 불완전성을 진화적 경로의 증거로 본다. 다시 말해 다윈에게서 역사는 완전히 독립적인 두 경로, 즉 무작위적인 변이(random variation)와 필연적인 선택(necessary selection)의 뒤엉킴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수사적 혁신'과 '사회적 선택'의 뒤엉킴인데, 전자는 우연의 결과로 나타나는 반면 후자는 필연성의 산물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게 될 문학사는 둘로 나누어진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통상적인 문학사보다는 훨씬 덜 위압적이지만 아마 훨씬 더 흥미로울 것이다. 불확실하고 불연속적이며 기이함과 의문 부호로 가득 찰 것이다. 공평을 기하자면 켄타우로스적 비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반쯤은 '어떻게(how)'를 다룰 줄 아는 형식주의적 비평가이고 또 반쯤은 '왜(why)'를 다룰 줄 아는 사회학적 비평가 말이다. 주의하라(Nota bene). 꼭 반반이다. 합리적인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히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다. 그것을 성취하고자 나는 어떤 약이든지 들이켜왔던 셈이다."(24-5)


1부 <파우스트>와 19세기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최초의 비극적 핵심으로 고안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이 시가 서사시로 확장되는 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확장은 괴테가 처음에 구상했던 바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파우스트』 2부는 우연의 결과이다." "작품에 대한 온갖 구상과 질서 잡힌 시대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의 작가는 기술자(engineer)가 아니라 '브리콜라주 제작자'이다. 서사시를 구상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합리적으로 준비하기보다 우연히 강력한 서사시적 잠재력을 가진 인물을 손에 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십 년 동안 망설인 끝에 결국 그는 서사시를 내놓게 되었다. 지배적인 역사학적 모델과 관련해 볼 때 여기서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는 정확히 역전된다. 도구들, 즉 구체적인 기교적(technique) 가능성들이 전부이며 기획, 이데올로기, 시학(poetics)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약점이 아니다. 변화는 계획되는 것이 아니다."(42-4)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유는 그에게 유혹당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첫 번째 희생물인) 마르가레타처럼, 마르가레타 이전에─그리고 실제로 마르가레타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왜냐하면 메피스토펠레스를 부추겨 파우스트를 유혹하게 한 것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무엇보다 먼저 마음속으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간의 동의가 아니라 '적대성'을 강조하려 한 듯하다." "따라서 과연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편인지 아니면 최악의 적수인지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작품의 구성상의 이중성으로서, 이것은 파우스트가 자기 행동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사악한 동반자에게 전가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덕분에 근대적 서사시에, 실로 서구 문화 전체에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 전략이 탄생하게 된다. 즉 부정과 거부의 전략이 그것으로 폭력을 자기 외부로 투사해버리는 것이다. 괴테의 탁월하지만 무시무시한 발견, 즉 결백의 수사학이다."(50-2)


"『파우스트』 2부의 중심인물인 (트로이 전쟁의) 헬레나는 한 명의 살아 있는 여인이 아니라 파우스트가 손쉽게 취할수 있는 하나의 사물이다. 이를 배경으로 파우스트의 도착(倒錯)은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된다. 이것은 더 이상 정복 행위가 아니라 '야만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행위'가 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아주 효율적인 전도(顚倒)로서, 당연히 이것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의 상상을 담고 있는 모든 명작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로빈슨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다른 부족의 식인주의로부터 구하고, 로드 짐은 도라민 마을을 알리의 잔혹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파스파르투와 필리어스포그는 아우다를 죽은 사람의 아내를 함께 순장시키는 '야만적인 관습'으로부터 구해준다.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를 제외한) 이 모든 작품들이 서구인과 원주민 여인의 결혼을 놓고 숙고한다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혼하면 정복은 '동의'가 되고, 그리하여 완벽하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54-5)


"서사시는 단순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바흐친이 보기에 서사시에서 과거는 〈어떠한 상대성도 결여하고 있는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괴테의 태도는 그렇지 않다. 『파우스트』는 고대를 '조명'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근대 세계의 정신적 안녕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을 무력화한다." "과거로부터 새로운 것의 창조······. 브라콜라주에서처럼 오래된 재료들은 새롭게 가공된다. 그 결과 뭔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동시에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박람회와 고고학의 중간, 풍자적 환원과 학술적 진지함의 중간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역사적 위치로부터 해방된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과 양식들이 『파우스트』에서 공존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에른스트 블로흐가 '비동시대성'이라고 부르는 역설적 사태, 즉 많은 개인들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문화적 또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 사태의 탁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73-7)


"블로흐는 비동시대성이 세계 체제 안에서의 특수한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비교적 등질적인 중심 국가들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것은 반주변부 국가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이루는데, 이 국가들에서는 중심부에서와 반대로 '복합 발전'이 디배적이다. 그리고 근대적 서사시 형식의 명작들 대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국가들에서이다. 여전히 분열되어 있던 괴테 시대(그리고 바그너가 초기에 활동하던 시대)의 독일, 멜빌의 아메리카(피쿼드 호, 즉 피에 굶주린 사냥, 산업 생산), 조이스의 아일랜드(식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령자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몇몇 지역들." "이제부터 소설에게 요구되는 민족 정체성의 구성은 이리하여 서사시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 큰 지리적 야망, 즉 전 지구적 야망─『파우스트』가 이것에 대한 부동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으로 대체된다. 세계 체제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89-90)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원 자체는 우연적인 것으로, 결백의 수사학은 아무런 의식적 기획 없이 크건 작건 되는 대로 그의 모습을 조작함으로써 비로소 형성된다. 비동시대성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첫 번째 순간에 괴테는 그저 서사시 형식과 씨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형식의 관습이 요구하는 대로 그는 파우스트가 과거의 거대한 세계 속으로 전진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수사학적인)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는데, 괴테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관계를 갖고 놀이를 하며 그리하여 서로 다른 시기들이 만나고 뒤섞이는 기이한 장면들을 창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가 이어지는데, 여기서 이 '브리콜라주' 작품은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역사적 경험, 즉 서양이 새로운 세계 지배를 다룰 수 있다(위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이 그 자체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해낸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전히 형식의 동력에서 나온 결과였다."(96)


"『파우스트』가 막 시작되는 부분에서 짤막한 설전이 오가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는 날카로운 설전은 근대 세계에서의 백과사전적 야심의 어려움을 요약하고 있다. 〈인류 전체에게 주어진 것을/내 내면의 자아로 음미해보고〉 싶은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는 냉소적으로 개인과 인류 사이에는 이제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고 대답한다." "플로베르에게서는 총체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피상성을 택하는 것이 답이다─경박한 믿음과 어리석음 말이다. 백과사전적인 것은 천치 같은 것과 서로 어울리는 것이다." "(19세기 중반의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인 통계적 방법을 적용한) 가상의 존재(Un être fictif)는 오직 상투어로만 말한다. 평균적 인간. 그를 중심으로 각 개인들이 왔다갔다한다." "문화의 영역에서 이것은 통상적이지 않은 생각과 독창적인 개인들이 점점 희귀해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반면 〈체계는 계속 평형 상태를 왔다갔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16-9)


이행: <니벨룽겐의 반지>


"바그너적 우주는 대여섯 개의 서로 다른 종족들이 진정 거대한 심연에 의해 갈라진 4원소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거대한 세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지』에서 중요한 장소들은 약 10군데 정도를 헤아리며 비참한 운명의 힘에 휩싸이는 (소수의) 주요 등장인물들에게만 매력이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는 아주 좁은 세계이기도 하다. 플롯은 커다란 소용돌이 같다. 그 안에 들어간 모든 것은 점점 더 조여들고, 깊게 들어가고, 가차없이 빙빙 도는 원들 속에 점점 더 휩쓸려들어가 결국 하나의 핵심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진정 여기서는 괴테 식의 일탈을 위한 여지는 전혀 없으며, 실로 운명의 손길은 멀리 보이는 만큼 더 확고하다." "네다섯 번 만의 전환 끝에 태초의 시간에서 최후의 시대까지 나가는 이야기. 이것보더 더 『파우스트』와 다른 구조를 상상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압축이라는 이념만큼 바그너의 시학에 핵심적인 것도 없는 듯하다."(167-9)


"역사가 분리해놓은 것들, 즉 지식, 윤리, 종교, 예술을, 내러티브, 드라마, 서정시를, 문학, 음악, 회화를 하나로 재통합하려는 욕망은 근대의 서사시 전체의 기획이자 문제이다. 여기에 바그너 본인이 추가한 것이라고는 니체가 그를 비난한 대로 '후안무치함' 뿐이다. 그는 불굴의 결의를 갖고 자기 작품이 전 지구적 과제를 갖고 있다고 곧이곧대로 믿는다. 괴테는 신화를 갖고 논다. 조이스는 어리석은 제자들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도록 부추긴다. 엘리엇은 과연 타로(Tarot) 카드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바그너는 아니다. 바그너는 모든 것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진지하다." "바그너의 야심은 행동과 현실의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원리'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마침내 그가 발견해낸 비밀스러운 궁극 원인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압축할 것을 촉구하는 그의 입장은 새로운 중요성을 획득한다. 이것은 더 이상 (오직)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마술, 심지어 종교적 원리가 된다."(173-4)


"『반지』의 사회학에 도달하려면 권력의 극단적인 집중과 이것의 총체적인 집행 불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고려해야만 할 것 같다. 여기 세계가 있다, 여기 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반지는 결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플롯을 기준으로 본다면 바그너의 이 서사시적 대계는 붕괴 이야기, 즉 우주적 실패의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이 서사시적 대계의 결론은 없어서는 안 되는 동시에 자의적인 행위가 된다. 여기서는 더 이상 철학도, 종교도, 우주적 범위에 걸친 메시지도 찾을 수 없다. 브륀힐데는 더 이상 무대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에게 말하지 않으며 말(馬)에게 말한다. 물론 이 서사시적 대계는 끝나야 하지만─바그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피날레'에서 이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말라고. 네 마디의 진부한 말만 하고 마지막 말은 음악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177-8, 184-5)


"상대적으로 통일된 상태로 태어났지만 서서히 드라마적 구실(pretext)과 자율적인 음악적 우주로 나뉘는 구조. 이것은 형식적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모든 차원에서 일관되고 동시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조각씩, 서로 다른 비율로, 심지어 다른 방향으로 일어난다. 다시 말해 분화(differentiation)로서, 즉 드라마적 플롯이 전체(ensemble)의 견고성을 보장하기 위해 '단순하게 남아 있는' 작품의 역사로 진화한다. 따라서 음악의 결은 '복잡성을 향해 진화하며', 획기적인 실험들에 나선다. 야누스 같은 구조이다. 절반은 '케케묵은' 것이며 절반은 '선구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비동시대성이 거의 『반지』를 두 개, 즉 '신화적' 내용과 '미래'의 음악으로 쪼갤 정도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불레즈의 말을 빌리자면 〈낭만주의와 구조─통상 함께 묶어서 사용되지는 않는 두 단어〉(괴벨스의 '강철처럼 냉혹한 낭만주의' 같은 표현)로 또는 반동과 혁명으로 표현할 수 있다."(186-7)


2부 <율리시즈>와 20세기


"절정기를 구가하는 유럽의 자본주의는 진정 서사시적 차원의 도시들을 창조해냈다. 이러한 세계의 축도(縮圖)들 속으로 지구의 다양한 부분들에서 극히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이것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자극들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처럼 전례 없는 풍요는 '대도시적 유형'을 '신경에 대한 자극'에 종속시킴으로써 개인의 안녕과 심지어 정신 건강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과연 의식의 흐름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긴장된 상황에 맞서기 위한 한 방법(아마 가장 성공적인)이었다. 이것은 위기의 징후, 즉 폭격당하고, 분열되고, 어려움에 처한 '에고(ego)'의 징후로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은 서서히 수많은 자극들에 대항해서 그것들을 포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즉 대도시에 형식을 부여하고 거주자들에게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이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기교가 된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196-7)


"더블린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율리시즈』의 주인공은 광고와 의식의 흐름 사이에서 새로운 기법(art)을 배우고 있다. 보는 기법 그리고 이와 함께 보지 않은 기법도. 블룸은 모든 것을 알아채지만 어느 것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힐끗 보고, 또 힐끗 보고 할 뿐이다. 대도시적인 방식이다. 즉 거대한 도시에 집중된 거대한 세계에 압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짐멜은 뇌라고 대답한다. 지성의 삶이라고. 하지만 조이스는 그 반대라는 것을 암시한다. '점증하는 의식'이 아니라 '점증하는 무심함'이라고. 그것은 실제로 점점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블룸은 아마 세계 문학에서 가장 무심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원래의 기능까지 바꾼다. 그리하여 결여와 부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도구가 된다. 이것은 배전반처럼 복잡한 정신의 회로들을 동시에 가동시키며, 블룸이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자극적인 것을 골라낼 수 있게 해준다."(215-6)


"모든 것이 익숙하며, 지상에 속해 있으며 한낮의 빛에 잠겨 있다. 블룸의 마음속에서는, 심지어는 정신이 혼란스러울 때도─아니 '정확히' 정신이 산만해서, 따라서 그만큼 수용적이기 때문에─이미 세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 즉 '엄청나게 많은 사물들'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수동성은 단순히 공백이 아니라 오히려─불레즈가 구스타프 말러, 즉 어느 작곡가보다 조이스를 닮은 그의 교향곡은 길게 이어지는 산책과 같다고 말하곤 하던 말러를 두고 이야기하듯이─'풍요로워지는 수동성'이다." "순진한 수동성, 즉 서구적 대도시의 풍요로움을 주어진 것으로 바라보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수동성, 근대의 서사시는 마침내 그것의 주인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즉각 눈으로 볼 수 있는, 괴테의 시대부터 찾아온 총체성을 발견했다. '소비'의 세계─진정 '거대한' 세계, 그리하여 『파우스트』의 세기 다음에 『율리시즈』의 세기가 시작된다."(221-4)


"의미는 다름 아니라 배제의 결과이다. 실제로 의식의 흐름에서는 배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장이 주(主)문장이며, 모든 것이 전경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전경에 있는 곳에서는 어떤 것도, 어떤 '그래'도 결코 가까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포괄적인 지각이지만 초점을 갖지는 않는다. 오직 사물들 위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조다, 그러면 의미의 부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간단하다─이것은 블룸이 살아가는 것을 도와준다. '대도시'에서 사는 것을 도와준다. 분명 더 많은 명민함을─그리고 동시에 더 많은 우매함을 요구하는 대도시에서 말이다. 어빙 고프먼은 이를 '초점을 갖지 않는 상호 작용', 즉 '예의바른 무심함'이라고 부른다. 중립성, 불투명성, 그리고 감정적 평범함은 수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제거하지 않고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 수 있게 해준다. 만약 6월의 그 날에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다면 블룸의 머리는 터지고 말았을 것이다─그 결과 독자들의 머리도."(243-4)


"『율리시즈』의 시작 부분이 의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처음에는 스티븐에게, 그런 다음에는 블룸에게 적용되는 이 장치는 폭과 깊이를 더해가며, 6장까지는 누가 봐도 명백한 우위를 유지한다. 아마 7장까지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7장부터는 더 이상 의식의 흐름만 독주할 수 없다. 점점 강조점이 옮겨가면서 이것은 다양한 종류의 다성적 장치들에 의해 한편으로 밀려난다." "만약 조이스가 비평적 전설의 '위대한 계획자'였다면 아마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첫 번째 『율리시즈』로부터 별다른 실수나 오류 없이 즉각 두 번째 『율리시즈』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기교의 전환은 계획될 수 없다. 즉 형태의 혁신은 우발적인 실험의 산물로서, 이러한 실험은 올바른 길을 찾을 때까지 오랫동안 암중모색의 방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정확한 길이 아니라 다른 것들보다 더 나은 길일 뿐이다."(284-7)


"자유롭게. 하지만 급작스럽지는 않게.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에서 도약이란 있을 수 없으며, 새로운 기교들은 결코 사전에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단조(短調)로, 약간은 되는 대로, 흔히 주변부에서 시작된다. 『파우스트』의 다성성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마르가레타의 비극으로부터 이탈하는 순간(『발푸르기스의 밤』)부터 시작된다. 또는 괴테 시의 알레고리처럼, 이것은 궁중의 여흥을 위한 것일 뿐 괴테는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는 한 세기가 지난 뒤에 반복되었다. 먼저 의식의 흐름은 그저 어떤 내러티브적 상황에 대한 정서적 부속물이었다. 어떤 (우연적) 결과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굳어져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기교가 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이러한 기교 안에 존재하는 아직 채 소화되지 않은 언어가 굳어져─결과의 결과─모더니즘적인 다성성을 낳는다."(292-3)


"『율리시즈』를 제외하면 전체주의적 유혹─이것은 근대의 서사시가 시작된 맨 처음부터 존재했다(늙은 파우스트, 에이허브 선장의 독재, 배신자 쥘리앵, 전능한 힘을 가진 반지)─은 실제로 모더니즘의 세계 텍스트들에서 결코 부재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복잡성의 갑작스러운 증가는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고 때로는 잔혹한 축소를 가져왔다." "정말 그렇다. 전체주의적인 유혹은 계속 증가해온 복잡성에 대한 반발로서 모더니즘적 세계 텍스트에 거의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배적인 존재는 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유혹일 뿐이다." "그리하여 결국 스스로 타협책을 만들어낸다. 『황무지』의 사례가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 모더니즘이 다성적인 복잡성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통제되고 질서를 부여받는다.'" "이것은 이질적이지만 강제적으로 통합된 현실의 알레고리이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상적인─아마 가장 충실한─형태의 '총체성'인 셈이다."(350-3)


에필로그: <백 년의 고독>


"모더니즘의 발을 다시 땅 위에 딛게 하라. 그런 다음에는 모더니즘과 대중 문화 사이의 '거대한 분열'을 치유하라. 『백 년의 고독』이 나온 60년대라면 사람들은 이것을 '이야기의 복원'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것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문학적 진화의 산물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3세기 이전에 이단 심문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럽 소설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리얼리즘 이전 단계의 서사 형식들(신화, 전설, 기사도 로망스)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일종의 연대기(cronica) 같은 잡종 형식들도 남았는데, 이러한 형식에서는 꾸며낸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경계선이 아주 불분명해진다." "예외적인 것, 기이한 것, 경이로운 것, 한마디로 말해 모험이 여전히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이다. 이것은 그 의심 많은 수도사들이 의도했던 세계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느님이 세상에 임하시는 방식은 무한하며, 진화의 방식은 한층 더 그러하다."(36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 소설이 미래로부터 과거를 거쳐 다시 미래로 한 바퀴 원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원의 움직임은 외부의 지리적 현실 때문에 촉발된다. 이 소설이 이중적인 예변법으로 시작하는 것은 집시들이 거래와 먼 곳에서 온 군대 때문이다. 이처럼 마콘도의 역사는 끊임없이 다른 역사들, 즉 유럽, 아시아, '콜롬비아',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과정에 의해 교차되고 굴절된다." "요사의 소설에 나오는 한 인물은 모든 문이 열렸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을 닫기 시작하는데, 왜 닫을까? 『백 년의 고독』은 세계 체제의 압력이 당신의 나라에서 좀 더 완벽하고, 따라서 좀 더 확고하게 통합을 강요할 때라고 대답한다. 발전 가능성은 여러 가지지만 길은 정해져 있다. 흑마술(Black magic)의 시대. 더 이상 온갖 기이한 결합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저질러진 온갖 범죄의 엄청난 규모가 '믿기지 않는' 시대."(372-5)


# 예변법. 반대론을 짐작하고 미리 반박해두는 방법


"마콘도는 정말 이상한 곳이다. 광인들의 도시로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과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언어만큼은 누구나 똑같다. 화자의 비인칭적인 목소리가 텍스트 공간의 거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직접 화법은 한 페이지에 두세 문장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짧아서 별다른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다. 바로 여기서 실제로 모더니즘의 대척점에 서게 된다. 『율리시즈』, 즉 비(非)이야기이자 셀 수도 없이 많은 문체로 이야기하는 『율리시즈』를 생각해보라. 온갖 문제를 갖고 있지만 아무튼 다성성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이제 『백 년의 고독』을 생각해보자. 여기서는 비(非)문체로 끝도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소설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결국 독백주의가 진정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다성성에서 독백주의로. 19세기에, 즉 괴테에서 플로베르로 이행할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20세기에, 조이스에서 마르케스로 이동하면서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3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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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박태웅의 AI 강의 2025 - 인공지능의 출현부터 일상으로의 침투까지 우리와 미래를 함께할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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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물결: 인공지능, 우리의 일과 삶에 급격히 파고들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는 세계적인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1964년에 한 말입니다. 미디어는 어떻게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요? 매클루언은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예를 듭니다. 매스미디어라고 하면 매스Mass, 즉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매체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대중이 먼저 존재하고, 그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가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매스가 있으니 그 매스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가 생긴 것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매클루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대중을, ‘동시에 같은 뉴스를 보고, 같은 화제를 얘기하고, 같은 패션을 입고, 같은 유행을 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런 대중은 매스미디어가 탄생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가 없었다면 우리가 동시에 같은 뉴스를 볼 수도, 동시에 같은 패션을 즐길 수도, 동시에 같은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매스미디어가 매스의 탄생을 불렀다는 것이지요. 12)


# AI의 진화

1. 운영체제로서의 인공지능(AI as OS) : 장래에 세상의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들이 어떤 형태로는 AI와 연동되어 작동할 것이다.

2. 맥락 인터페이스(Contextual Interface) : 계층적으로 정리하거나, 정확한 키워드를 넣지 않아도, 내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답변한다(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의 기능 대체).

3. 파트너로서의 인공지능(AI as a Partner) :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면서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

4. 멀티모달(Multimodal) : 텍스트, 이미지, 음성, 동영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정보를 함께 처리하거나 활용한다.

5. 더 저렴하게, 더 빠르게, 더 작게(Cheaper, Faster, Smaller) : 매개변수의 크기가 작아지면 한 대의 PC나 스마트폰에 AI를 올릴 수 있다(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개인 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다).

6.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 : AI를 써서 모방학습, 강화학습(보상을 통해 올바른 행동을 학습한다), 전이학습(기존 로봇의 학습 내용을 전달받는다)으로 스스로 배워나간다. '몸을 가진 AI'는 언어 이외의 외부세계와 스스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2강 모두를 놀라게 만든 거대언어모델, LLM의 등장: 챗GPT로 알아보는 인공지능의 정체


CPU는 순차적 계산Serial Computing에 특화돼 있습니다. ‘만약 ~라면 무엇을 해라(if~ then~)’와 같은 일을 말합니다. 순서대로 이어서 계산을 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이런 순차 계산을 합니다. 그런데 GPU는 동시에 병렬로 수많은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더하기, 빼기와 같은 실수 계산을 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의 해상도를 흔히 픽셀(화소)의 개수로 표현합니다. 가령 동영상을 표현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수백만 픽셀의 이미지를 초당 60~120장씩 그려내야 합니다. 엄청난 수의 화소를 눈 깜짝할 사이에 계산해내야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화면의 이미지들은 동시에 그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경의 풀이나 하늘은 주인공과 별개로 그릴 수 있지요. 그래서 병렬 대용량 계산에 특화된 GPU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GPU는 이렇게 애초에는 그래픽 계산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뜻밖에 인공지능 시대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병렬계산 능력 덕분이지요. 37)


인공지능 알고리듬 중에 몬테카를로 알고리듬Monte Carlo algorithm이란 게 있습니다. 가령 〈한 변의 길이가 2미터인 정사각형에 내접한 원의 넓이를 구하시오.〉라는 문제가 있다고 해보지요. 우리는 이 원의 넓이를 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반지름의 제곱×원주율(π)’로 구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인공지능은 이렇게 구하지 않습니다. 몬테카를로 알고리듬은 정사각형 속에 무작위로 발생시킨 점을 쏩니다. 수십만 개, 수백만 개를 쏜 다음, 전체 점의 숫자에서 원에 들어간 숫자의 비율을 구합니다. 우리는 정사각형 넓이가 2m×2m=4㎡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원에 들어간 점이 차지하는 비율을 곱하면 그게 원의 넓이가 됩니다. 대단히 단순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하는 게 반지름의 제곱×원주율(π)로 구한 것보다 빠릅니다. 이 녀석은 1초에 312조 번 실수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하는 일 중에 많은 부분이 이렇게 단순하게 더하기, 빼기를 하는 일입니다. 38) 


기계가 사람처럼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초반에 시도했던 건 ‘전문가 시스템’이었습니다. 가령 고양이 사진을 가려내라는 과제가 있다고 해봅시다. 전문가 시스템은 컴퓨터가 고양이 사진을 가려낼 수 있도록 고양이의 모든 특징을 일일이 사람이 입력합니다. 코는 어떻게 생겼고, 꼬리는 어떻게 생겼고, 털은 어떻게 생겼고, 색깔은 어떻고, 이런 방식으로 말이지요. 초기에는 점수가 점점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법 컴퓨터가 고양이 사진을 골라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데이터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들어가니 점수가 도리어 떨어졌습니다. 예외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죠. 결국 이런 방식으로는 인공지능을 구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밝히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10년씩 두 번의 ‘인공지능의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그 긴 겨울을 버틴 인공지능의 선구자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이 딥러닝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면서 지금의 인공지능 부흥기가 도래합니다. 38-9)


새로운 접근법은 사진의 차이점들을 구분하는 것까지 모두 인공지능에 맡깁니다. 그러니까 고양이 사진을 15만 장 주고 ‘이 15만 장의 사진들 간 차이점을 네가 다 잡아내라’ 하는 셈이지요. 잡아낸 특징들이 1,000만 개일 수도 있고, 1억 개일 수도 있겠지요. 이 특징들 중에 어떤 것은 ‘고양이’라는 잠재된 패턴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고, 어떤 특징들은 그다지 관계가 없거나, 아무 관계가 없을 겁니다. 이 1,000만 개, 1억 개의 특징들 하나하나에 대해 얼마나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가에 따라 가중치를 주는 거예요. 이렇게 매긴 가중치를 ‘매개변수’라고 부릅니다. 그러곤 ‘어떤 특징들에 몇 점을 줬을 때 고양이를 가장 잘 가려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돌려보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장 적절한 매개변수 값을 찾을 때까지 계속 바꿔가면서 돌려보는 겁니다. 사람은 평생 해도 마칠 수 없는 계산이지만, 컴퓨터는 합니다. 1초에 312조 번 실수 계산을 하는 녀석이니까요. 이런 GPU를 수십 대, 수백 대, 심지어 1만 대를 붙입니다. 39)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프로그래밍 언어와 구분해서 ‘자연어Natural Language’라고 하는데요, 자연어로 그냥 입력하면 되는 게 ‘챗’GPT입니다. GPT의 ‘G’는 generative, 즉 ‘생성하는, 만드는’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만드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지요. 생성형 인공지능은 그림을 학습하면 그림을 그리고, 동영상을 학습하면 동영상을 만들고, 글을 학습하면 글을 씁니다. 챗GPT는 글을 만드는 생성형 인공지능입니다. GPT의 ‘P’는 pre-trained, ‘사전 학습한’이란 뜻입니다. 챗GPT는 무려 3,000억 개의 토큰과 5조 개의 문서를 학습했습니다. 이런 인공지능을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이라고 부릅니다. ‘사전 학습’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 거대한 모델을 사전 학습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히 학습을 추가로 시키지 않은 전문 분야에 관해 질문해도 마치 원래부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는 뜻입니다. 43-4)


챗GPT의 ‘T’는 Transformer(트랜스포머)입니다. 트랜스포머는 주어진 문장을 보고 다음 단어가 뭐가 올지를 확률적으로 예측합니다. 5조 개의 문서로 학습한 다음, 그것을 근거로 주어진 문장의 다음에 어떤 단어가 배치될지 예측하지요.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구글의 ‘어텐션Attention’이라는 모델을 사용합니다. 어텐션 모델은 주어진 문장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아채지요. 앞의 문장에서 핵심 키워드가 뭔지 알 수 있으면 그다음에 올 단어를 무작위로 예측할 때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연산 시간과 비용도 훨씬 줄겠지요. 챗GPT는 단기 기억을 가지고, 앞의 문장들을 계속 기억하면서 추론하는데, 무려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갖고 있습니다. 챗GPT는 ‘인간의 피드백을 통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RLHF’도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전의 인공지능들과 달리 비윤리적인 발언이나, 해서는 안 될 말이 출현하는 빈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44)


이 방식의 인공지능이 피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인데요, 아주 멀쩡히 거짓말을 하는 걸 뜻합니다. 앞에서 챗GPT는 트랜스포머 모델을 쓴다고 했지요. 챗GPT는 5조 개의 문서로 학습해 잠재적 패턴을 찾아낸 다음, 그 패턴을 이용해 주어진 단어를 보고 그다음에 올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찾습니다. 말하자면 챗GPT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답하는 것을 배운 게 아닙니다. 트랜스포머 모델을 써서 ‘가장 그럴듯한 말’을 내놓도록 학습을 했지요. 모차르트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물으면 쾨헬 넘버(모차르트의 곡에다 연대기 순으로 번호를 붙인 것)까지 붙여서 다섯 곡을 내놓기도 합니다. 모차르트의 첼로 협주곡은 실제로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챗GPT는 쾨헬 넘버까지 붙여서 답을 합니다. 그래야 그럴듯하기 때문입니다. 얀 르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지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하는데, 거대언어모델로는 절대로 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48-9)


3강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질 수 있을까?: 생성형 AI의 놀라운 능력과 최근의 기술 흐름


우리는 왜 챗GPT에 열광하게 되었을까요? 왜 공개하자마자 전 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을 하고, 서점은 온통 GPT 책으로 도배가 되었을까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Emergent ability’입니다. 거대 인공지능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규모의 법칙’입니다. 컴퓨팅 파워를 늘릴수록, 학습 데이터 양이 많을수록, 매개변수가 클수록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의 성능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셋이 함께 커질 때 성능 향상이 더 잘된다고 합니다. 거대언어모델은 별도의 추가 학습Fine-tuning을 하지 않아도, 특정 분야에 대해 질문하면 대답을 잘합니다. 아무런 예제 없이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제로 샷 러닝Zero shot Learning, 몇 가지 예제와 함께 질문할 때 답하는 것을 퓨 샷 러닝Few shot Learning이라고 하고, 이 둘을 합해 질문 속에서 배운다는 뜻으로 인 콘텍스트 러닝In Context Learning: ICL이라고 부릅니다. 70-1)


또 하나의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 중 하나가 ‘생각의 연결고리Chain of Thoughts: COT’입니다. 단계적으로 추론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질문이 주어졌을 때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중간 추론 단계들을 생각의 연결고리라고 부릅니다. 생각의 연결고리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갖습니다. 첫째, 연쇄적 사고는 원칙적으로 모델이 다단계 문제를 중간 단계로 나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더 많은 추론 단계가 필요한 문제에 추가 계산을 할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고 연쇄는 모델이 특정 답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추론 경로가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셋째, 연쇄 추론은 수학 단어 문제, 상식적 추론, 기호 조작과 같은 작업에 사용할 수 있으며, 인간이 언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작업에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잠재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의 연쇄 추론은 질문에 단계적 추론의 예를 포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기성 언어모델에서) 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72-4)


MIT의 인지과학자 안나 이바노바Anna A. Ivanova와 카일 마호월드Kyle Mahowald 등은 말하기와 생각하기가 다르다는 점에서 거대언어모델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언어’와 ‘사고’는 분리돼 있어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과 사고 행위는 서로 다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이렇습니다. 수십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언어의 종류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특정 뉴런 네트워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뉴런 네트워크는 수학, 음악, 코딩과 같은 사고 활동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뇌 손상으로 인해 언어를 이해하거나 산출하는 능력이 상실된 실어증 환자 중 상당수는 여전히 산술 및 기타 비언어적 정신 작업에는 능숙합니다. 이 두 가지 증거를 종합하면 언어만으로는 사고의 매개체가 아니며, 언어가 오히려 메신저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거대언어모델은 언어에 대한 좋은 모델이지만, 인간 사고에 대해서는 불완전한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83-4)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는 “신경망은 전혀 다른 지능”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두려운 것은, 인공지능이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중간 단계인 자체 하위 목표를 스스로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간 목표란, 주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중간 단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목표를 주었다고 해도 인공지능이 스스로 중간 목표를 정할 수 있다면, 이 일은 아주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가령 ‘방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줘’라는 명령을 줬다고 해봅시다. 인공지능은 창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대신, 방에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을 없애면 그게 가능할 거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힌턴은 40년 동안 인공 신경망을 생물학적 신경망을 모방한 부실한 시도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힌턴은 이제 세상에는 동물의 뇌와 신경망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지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다른 형태의 지능, 새롭고 더 나은 형태의 지능입니다.” 84-5)


거대언어모델의 경우 어마어마한 양의 정제한 데이터를 가지고 일정 기간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학습이 시작된 이후의 최신 정보들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신 뉴스에 대한 답변을 잘하지 못합니다. 숫자 계산에도 약하고요. 그런데 챗GPT가 계산기를 쓰고, 검색엔진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즉, 도구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픈AI가 내놓은 플러그인Plug-ins이 바로 챗GPT가 도구를 쓸 수 있도록 해준 것이죠. 챗GPT가 이런 서비스들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덕분입니다. API는 말하자면 프로그램 간의 인터페이스입니다. 프로그램끼리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규약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발급한 API를 사용하여 요청을 하면 정해진 포맷대로 데이터를 주거나, 정해진 행동을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API를 쓰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도 컴퓨터 간에 자동으로 정해진 데이터를 받거나 정해진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86-7)


이런 일을 아주 제대로 해보자 하고 만든 게 랭체인LangChain입니다. 랭체인은 ‘Language’와 ‘Chain’의 조합입니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쉽게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Framework입니다. 프레임워크는 ‘뼈대’, ‘골조’라는 뜻입니다. 조립식 주택은 골조를 세우고 나면 나머지 벽체와 지붕 등은 모듈을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되지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란 이처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 공통적으로 필요한 기능들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을 말합니다. 랭체인은 API와 함께 라이브러리도 사용합니다. 라이브러리는 도서관이라는 뜻인데, 프로그래밍에서는 자주 쓰이는 코드를 모아놓은 것을 말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듯이, 필요한 코드를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어둔 곳입니다. IT 업계에서는 오픈소스가 거대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덕분에 IT 업계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집단지성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곳이 됐습니다. 88)


4강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 AI의 확산, 그리고 필연적으로 도래할 충격들


오픈AI는 본래 비영리재단으로 출발했습니다. ‘AGI가 어느 영리회사의 소유여서는 안 된다. 위험 여부를 알 수 있게 개발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오픈’AI로 지었습니다. 지금의 오픈AI는 그 비영리재단이 세운 자회사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49퍼센트, 기타 투자자가 49퍼센트, 오픈AI 재단이 2퍼센트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사회를 이 재단이 결정하는 구조로 돼 있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오픈AI는 설립 초기부터 컴퓨팅 자원의 20퍼센트를 슈퍼 얼라인먼트, 다시 말해 윤리적 개발에 할당하기로 했습니다. 애초의 취지가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슈퍼 얼라인먼트 팀은 사실상 해체에 가까웠고, 자원도 제품 개발에 우선 배분해온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오픈AI는 GPT-4부터는 스펙도, 모델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모델의 크기, 투입한 하드웨어의 규모,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 세트, 훈련 방법 어느 것도 밝히지 않습니다. 단지 API만 공개했습니다. 116-7)


MIT 물리학과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 교수가 2023년 4월 25일 〈타임〉에 “인공지능으로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올려다보지 마’ 사고방식”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킨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사악해지거나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해지고 목표가 우리와 맞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서아프리카 검은코뿔소를 멸종시킨 것은 코뿔소를 혐오해서가 아니라 인류가 코뿔소보다 더 똑똑하고 서식지와 뿔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목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개방형 목표를 가진 초지능은 자신을 보존하고 그 목표를 더 잘 달성하기 위해 자원을 축적하려고 할 것입니다. 금속 부식을 줄이기 위해 대기 중 산소를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코뿔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은 일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하찮은 부작용으로 멸종하는 것입니다. 118-9)


필연적으로 오게 될 여러 가지 일들 중 첫 번째는 바로 ‘오리지널의 실종’입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대를 거쳐 가면서 아주 쉽게 붕괴한다는 것을 확인한 논문도 있습니다. 옥스포드대학교의 컴퓨터 과학자 일리아 슈마일로프Ilia Shumailov 등이 쓴 〈재귀적 생성 데이터로 훈련한 인공지능 모델의 붕괴AI models collapse when trained on recursively generated data〉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생성한 학습 데이터로 훈련한 인공지능은 마치 종의 근친교배와도 같이 붕괴해버립니다. 생성모델은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로 훈련을 거듭할수록 점차 원본 데이터의 분포를 잃어가게 되는데 특히 분포의 꼬리 부분, 즉 빈도가 낮은 부분을 쉽게 잃게 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드문 특징들(예를 들어 아주 키가 큰 사람, 아주 키가 작은 사람)을 잊기 시작하다가, 나중이 되면 인공지능이 만든 것들이 본래 데이터와는 비슷하지도 않게 됩니다. 대를 거듭할수록 오차가 점점 더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121)


이미지넷(image-net.org)은 세계 최대의 오픈소스 이미지 데이터베이스입니다. 1,000만 개가 넘는 이미지가 있는데, 하나하나 일일이 사람이 분류해서 레이블을 붙인 자료입니다. 그런데 2019년까지 이 데이터베이스의 사람 분류 항목에 다음과 같은 이름표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재소자, 낙오자, 실패자, 위선자, 루저(loser), 우울증 환자, 허영주머니, 정신분열증 환자, 이류 인간……〉 그러니까 이 데이터는 사람의 얼굴만 보면 그가 이류 인간인지 아닌지, 허영주머니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인공지능에게 가르쳐온 것입니다. 이미지넷은 결국 2019년 2,832개의 사람 범주 중에서 1,593개(약 56퍼센트)를 안전하지 않다고 간주하여 관련된 이미지 60만 40건과 함께 삭제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시경제학자’, ‘조교수’, ‘부교수’와 같은 이름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이 미시경제학자인지 아닌지, 혹은 조교수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부교수까지는 올라갈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일까요? 126)


5강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어떻게 구축할까?: 세계 각국의 윤리 원칙과 법제화 노력


유럽연합에는 녹서Green Paper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일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가?’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들을 모아서 묶은 보고서입니다. 이런 과정을 몇 년간 거치고 나서야 정부는 공론화를 통해 모인 답을 묶어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이게 바로 백서White Paper입니다.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한 AI 관련 원칙은 80여 개에 이릅니다. 그중 주요한 36개의 보고서에서 제시한 다양한 원칙을 47개로 분류해보았습니다. 그러자 가장 공통이 되는 여덟 개의 핵심 주제가 드러났습니다. 〈프라이버시 / 책임성 / 안전과 보안 / 투명성과 설명가능성 / 공정성과 차별 금지 / 인간의 기술 통제 / 직업적 책임 / 인간 가치 증진〉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의 윤리와 관련하여 이 여덟 가지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안전한 인공지능을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뗄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132-4)


2017년에 제정된 '아실로마 AI 원칙Asilomar AI Principles'은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이 분명히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컴퓨터 과학뿐 아니라 법, 윤리, 경제 등 범학제적 협력이 필요하고, 개발자 간에도 경쟁보다는 부실한 개발을 피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정리합니다. 윤리 및 가치에서는 안전성과 투명성 그리고 인간의 가치와 권리 존중,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번영, 개인정보 보호 및 자유 보장 그리고 인간의 통제력 유지와 치명적인 AI 무기 개발 회피를 요구합니다. 장기 이슈로는 초지능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상한을 미리 두지 말 것, 인류의 실존적 위험, 즉 인류의 멸종을 부를 수도 있을 위험에 대한 계획과 완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인공지능 시스템이 스스로 자기 개선 또는 자기 복제를 하게 될 경우 엄격한 안전 및 통제 조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초지능은 몇몇 국가나 조직이 아닌 모든 인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 개발돼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35)


유럽연합이 2019년 4월에 발표한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에는 인간의 기본권에 입각한 윤리 원칙 넷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인간 자율성에 대한 존중, 피해 방지, 공정성, 설명가능성입니다. 이 법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을, 허용할 수 없는 위험, 높은 위험, 제한된 위험, 최소 또는 낮은 위험의 네 가지 수준으로 분류합니다. 허용할 수 없는 위험 애플리케이션은 기본적으로 금지되며 배포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 잠재의식 기법 또는 행동을 왜곡하기 위한 조작 또는 기만 기법을 사용하는 AI 시스템 • 개인 또는 특정 그룹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AI 시스템 • 민감한 속성 또는 특성에 기반한 생체 인식 분류 시스템 • 사회적 점수 매기기 또는 신뢰도 평가에 사용되는 AI 시스템 • 범죄 또는 행정 위반을 예측하는 위험 평가에 사용되는 AI 시스템 • 비표적 스크래핑을 통해 얼굴 인식 데이터베이스를 생성하거나 확장하는 AI 시스템 • 법 집행, 국경 관리, 직장 및 교육 분야에서 감정을 추론하는 AI 시스템. 141-2)


6강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지 않기 위한 제언들


우리나라 정부 자료들은 아직도 hwp가 아니면 pdf 포맷입니다. 이것들은 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즉 기계가 읽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정부 문서들의 포맷을 바꿀 예정이지만 그 기한은 2025년 이후로 미뤄져 있습니다. 한두 장이면 새로 넣어서 컴퓨터에 입력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내놓는 공문서는 수십만, 수백만 장을 쉽게 넘어갑니다. 자동으로 하지 않으면 입력할 도리가 없으니 컴퓨터에게는 사실상 없는 문서와 같습니다. 거대언어모델 인공지능은 문서로 학습해야 하는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학습을 방해하고 있는 꼴입니다. 반면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은 공공데이터의 조건을 명확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FAIR’ 해야만 공공데이터라는 것입니다. F: findable, 검색 가능해야 하고, A: accessible,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I: interoperable, 호환성이 있어야 하고, 즉 표준을 지켜야 하고, R: reusable, 재사용할 수 있어야 ‘공공데이터’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6-7)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당신이 몰라서 그런다, 행정부에서 여러 가지로 열심히 법안들을 준비 중’이라고 반론을 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빠트린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빠트렸을까요? ‘공론화!’입니다. 인공지능은 어느 한 분야의 일이 아닙니다. 인공지능같이 중요한 일을 한 줌도 안 되는 IT 분야 슈퍼 엘리트들에게만 맡겨둘 순 없습니다. 인지심리학, 윤리학, 사회학, 법학, 철학 등 다양한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두루 살펴야 합니다. 시민사회, 학계, 기업,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처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론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행정 공무원 몇이서 밀실에서 리포트를 만들어서 대처하겠다는 건, IT 분야의 슈퍼 엘리트들이 알아서 잘하도록 맡겨놓자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입니다. ‘공론화’를 통해 집단지성을 모으고,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두루 반영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178)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후발 추격국이었습니다. 미친 듯한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양산기술’을 가진 제조 강국이 됐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눈 떠보니 선진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선진국이 되긴 했으나, 그사이에 빠트린 것, 건너뛴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원천기술’과 ‘기초과학’입니다. 대한민국은 양산기술의 강국이긴 하나, 원천기술이 턱없이 빈약합니다. 후발 추격국으로서는 충분했지만, 선진국으로선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선진국들은 강력한 경쟁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더 이상 원천기술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자력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할 시간이 된 것입니다. 원천기술은 탄탄한 기초과학에서 나오는데, 기초과학은 아주 긴 호흡으로만 자라납니다. 정부가 과학과 기술 정책의 호흡을 바꾸지 않고, 후발 추격국의 태도와 전략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다시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188)


맺음말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무엇보다 학제 간 연구와 국제적 연대가 요구됩니다. 인류의 공동 대처라니? 너무 무망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는 비록 미흡하지만 몇 차례 공동 대처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1975년의 아실로마 회의가 그것입니다. 유전과학자들이 실제로 모든 실험을 멈춘 덕분에 생명공학은 인류 공동의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으로 맞붙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인류는 전략핵무기 통제를 위한 협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솔트 1SALT: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전략무기 제한협상)은 1969년부터, 솔트 2는 1972년부터, 그리고 스타트 1START I: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전략무기 감축조약)이 1982년부터 협의가 시작됐고, 1991년부터는 실제로 전략핵무기의 감축이 실현됐습니다. 인공지능에도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나라 간의, 기업 간의 군비경쟁이 아니라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면 인류는 또 한 번 새로운 공동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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