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처럼 써라 - 헤밍웨이, 포크너, 샐린저 외 18인의 작법 분석
윌리엄 케인 지음, 김민수 옮김 / 이론과실천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장 | 오노레 드 발자크처럼 써라


"혹시 당신의 글 속에도 투박한 문장의 요소가 들어 있는가? 문장이 음악처럼 들리는 일이 별로 없는가? 종종 문장이 한없이 무디고 무겁게만 느껴지는가?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기 바란다. 물론 그러한 결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점이 글쓰기를 중단해야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명심하라. 발자크는 서툰 문장 때문에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투박한 문체가 발자크의 성공을 가로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체를 가다듬는 데 시간을 들이는 대신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비틀고 더 많은 글을 쓰는 데만 신경을 썼다." "때로는 서툰 문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진다. 많이 쓸수록 잘 쓰게 되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매일 네 시간에서 여섯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쓴다면 글솜씨가 나아지지 않을 리 없다." "최선의 방법은 직접 많이 써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발자크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써라."(20-2)


"발자크는 감정 묘사의 대가였다. 그의 글엔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는 등장인물의 시시콜콜한 느낌 하나까지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발자크의 문장은 여전히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할 때 발자크가 사용하는 단어를 보면 절반가량은 같은 단어다." "그렇다, 본질은 단순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식어구와 감정의 반복은 발자크의 작가 경력을 빛낸 일등공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야기에 속도가 붙고 등장인물이 분노, 교만, 자만, 갈망, 사랑, 시기, 증오와 그 밖의 중요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잠잠하던 이야기의 돛을 뒤집을 바람과 독자를 위한 수식어구를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영감이 떠오른 순간을 놓치지 마라. 한두 개의 멋진 문장 전환으로 독자의 뇌리에 못을 박아라. 독자가 등장인물의 마음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수식어구라는 등불을 내걸어라."(22-7)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 외젠 드 라스티냐크의 꿈은 오로지 출세이다. 이 꿈은 소설 말미에 와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소설 내내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친척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출세를 위한 디딤돌로 이용한다. 어떤 사람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으며, 마지막엔 항상 언제 봤냐는 듯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그는 늘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굶주려 있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진정한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으며, 윤리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등장인물의 변화에 대한 강좌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가 창조했음직한 인물이다." "변화를 모르는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순전히 시간낭비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특히 등장인물의 변화를 최소한 보여주는 데도 충분히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며 사실 이것이야말로 발자크가 현대의 작가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가르침이다."(34-7)


2장 | 찰스 디킨스처럼 써라


"디킨스의 모든 소설은 바로 등장인물이 이끌어간다. 물론 디킨스도 소설 연재를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줄거리를 만들어 놓을 만큼 이야기 자체에 신경을 썼고, 그의 줄거리가 강력한 흡입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이전에 그는 인물 풍자에 관한 한 최초이자 최고의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진득하게 소설 한 페이지를 읽는 독자가 드물고 대사 없이 묘사만 긴 책들은 외면당하기 십상인 오늘날, 생생하고 사실적인 디킨스의 인물 묘사를 작품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전(前)세계 체스 챔피언인 이매뉴얼 래스커의 말을 빌려 답하자면, 〈좋은 묘사가  떠올랐을 때 더 좋은 묘사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식상한 것에 안주하지 마라.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특히 유머를 잃지 말고 터무니없는 상상과 풍자를 활용하라. 자신이 만든 인물을 조롱하고 익살맞으며 아이러니한 별칭을 붙여라. 그들을 엉뚱한 방식으로 묘사하라. 그러면 독자도 당신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며 즐길 것이다."(41-2)


"아치볼드 쿨리지는 『연재소설가 찰스 디킨스』(1967)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편다. 연재소설 때문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던 디킨스가 아주 과감한 기법들을 개발하여 모든 소설가의 공통된 고민거리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 고민거리란 어떻게 하면 독자가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 하도록 만들 것인가이다. 디킨스가 사용한 중요한 기법 중 하나가 바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다." "미스터리 기법을 활용하려는 작가는 이야기의 일부를 독자가 모르게 숨겨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야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예컨대 주인공의 진짜 친구는 누구이고 진짜 적은 누구인지 밝히지 마라. 또 핍이 미스 해비샴을 후원자라고 철썩같이 믿었듯이 등장인물이 엉뚱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으면 이를 미끼로 독자를 엉뚱한 곳으로 유인할 수 있으며, 의외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독자가 받는 충격과 놀라움은 두 배로 커진다. 부디 독자를 애타게 만들길."(48-51)


3장 | 허먼 멜빌처럼 써라


"멜빌은 많은 상징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상징을 자신의 작품에 결합하여 핵심 주제를 뒷받침했다. 고래는 분명히 자아의 상징으로, 카를 융이 말한 통합적 인격의 전형이다.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이 통합적 인격이 결여되어 있다. 에이해브라는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잃은 광기다. 이런 인물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퀴퀘그가 이상적인 인간의 상징에 더 가깝다. 멜빌은 『모비딕』 34장에서 퀴퀘그를 〈고귀한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어떤 평론가는 퀴퀘그가 〈형제애나 종교적 관용, 본능의 아름다움〉처럼 멜빌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슈마엘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밝은 등장인물과 어두운 등장인물이 균형을 이뤄야 어두운 인물과 대비되어 밝은 인물이 더욱 돋보인다. 이렇게 하면 등장인물의 구체적 성격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추상적 개념(상징)을 만들어 내는 작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61-4)


"등장인물의 성격을 만들 때 멜빌이 사용한 장치는 네 가지다. 우선 '복합성'이다. 그는 에이해브를 여러 가지 성격이 충돌하는 인물로 그렸다. 에이해브는 악과 광기로 무장했으며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인 동시에 선과 이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지닌 인물로도 묘사된다. 두 번째 장치는 '불확실성'이다. 우리는 펠레그 선장이나 빌다드 선장처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두 인물은 에이해브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그 바람에 에이해브의 성격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불확실해진다." "멜빌이 사용한 세 번째 장치는 '선택'이다. 이는 몇 가지 주요 특징에만 집중해서 조명하는 것을 뜻한다. 가령 멜빌은 에이해브를 묘사할 때 그의 광기와 편집증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다. 멜빌이 사용한 마지막 장치는 '미스터리'다. 그는 에이해브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사실이 몇 개 더 있다고 슬쩍 흘려놓는다."(65-6)


4장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써라


"불안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인물들의 마음 사이를 이동한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 장면을 설정하고 A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한 다음 B라는 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도스도예프스키는 『죄와 벌』의 5부 4장을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여자 친구 소냐에게 자신이 살인자임을 고백하는 장면 설정으로 시작한다." "다음 단계인 인물의 마음속으로 침투하기는 혼란의 와중에 있거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인물을 묘사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 그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살인자라고 고백해야 하는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처음으로 살인자라는 사실을 수치로 여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대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이동하기다. 처음엔 이 불행한 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소냐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자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다."(72-4)


"도스토예프스키는 등장인물을 묘사할 때 인물의 개성을 확실히 드러낸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보통 키에 호감이 가는 용모를 지닌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지만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첫 문장부터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등장인물의 외모는 곧 그 인물의 내면이며 성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격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생각 때문이다." "작가가 인물을 격정과 혼란에 빠트리는 순간 그 인물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격정과 혼란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기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드미트리, 미쉬킨 공작 모두 마찬가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등장인물들의 기이하거나 놀랍도록 대담한 행동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러한 장치를 작품에 적용하려면 작가의 시선이 평범함 너머에 있는 것을 향해 있어야 한다. 과연 얼마나 극단적인 지점까지 행동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 도전해보라."(83-5)


5장 | 크누트 함순처럼 써라


"전통적인 소설에 대한 함순의 비판은 전적으로 옳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직선적인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즉 시간의 한 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일련의 에피소드와 장면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불씨가 되는 사건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우연에 의해 연결되어 있던 에피소드와 장면들은 마치 우르르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물론 현대 작가들도 종종 플래시백(회상) 기법을 사용하여 직선적인 진행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플래시백은 대부분 배경 설명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거나 감정의 그물에 걸려 사건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우리가 인식하기 힘든 형태로 직선적인 시간을 왜곡하기도 한다. 크누트 함순은 직선적이고 이성적인 방식보다는 꿈을 이용한 자기 성찰적 접근을 선호했다. 헤밍웨이나 카프카 같은 작가가 함순의 작품을 존경하고 연구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96-7)


"크누트 함순이 문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공로가 있다면 에밀 졸라의 캐릭터 접근법을 거부한 것이다. 실제로 함순은 지배적 특징을 내세워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자연주의 작가들을 대놓고 비웃었다. 함순에게는 등장인물을 몇 가지 지배적 특징으로 한계 지우는 것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그런 인물은 도무지 진짜 같지 않았다. 함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바뀌고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야말로 진짜 인간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함순은 자신의 등장인물 중에 '지배적 특징'으로 설명한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대신 함순의 소설에는 변덕이 죽 끓듯 수시로 마음이 바뀌거나 하나의 특징을 선보이는가 싶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뜬금없이 아무런 관련 없는 또 다른 특징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함순은 마치 불교에서 명상을 하듯 인간의 의식을 묘사한다."(98-9)


6장 | 이디스 워튼처럼 써라


"스탠리 큐브릭은 〈우리는 6개나 7개쯤 되는 중요한 순간(big moments)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디스 워튼도 항상 6개나 7개의 깨달음의 순간을 준비해놓고 소설의 얼개를 짰다. 이를 캐릭터 아크라고 부른다. 그러나 캐릭터 아크가 초반, 중반, 결말로 이루어지는 포괄적인 영어라면 깨달음의 순간은 캐릭터 아크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고, 더 쉽게 당신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 깨달음의 순간에 도달하면 앞만 보고 나아가던 등장인물의 직선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그림 하나를 떠올려보면 더 쉽게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뻗어나가던 직선이 곡선 형태를 이루면서 마디마디가 부러진 활을 떠올려보라. 부러진 마디마디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조이스는 깨달음의 순간을 '직관의 번득임(lightings of intuition)'이라 불렀다. 이처럼 통찰의 순간에, 즉 등장인물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정성을 들여 그 순간을 다듬어 작품 속에 집어넣어라."(126-9)


7장 | 서머싯 몸처럼 써라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으로 등장인물을 밀어 넣는 것이다. 여기에 미래에 벌어질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광고'하여 독자의 기대를 부풀리는 것은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첫 번째 기법, 등장인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하면서 등장인물에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결정은 등장인물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만큼 까다롭고 힘든 결정이어야 한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을 요구하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독자에게 약속할 때는 몸이 그랬듯 미래의 그 일이 이야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고 줄거리에 필수적이며 등장인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어야 한다."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미리 알려준다면, 그리고 작가의 약속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진진하다면, 독자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길 것이다."(137-40)


"'뜻밖의 사건'은 스토리텔링의 핵심적 요소다. 글쓰기란 결국 당장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를 드러내고 나머지 사건은 마지막에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숨겨놓는 일종의 게임이다. 『면도날』에서 독자가 래리와 이사벨의 행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을 때 몸은 래리가 진리와 깨달음, 지혜를 구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의 굴레』에서 밀드레드가 필립 앞에 다시 나타는 시점을 보라. 그가 노라와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달과 6펜스』에서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아내를 빼앗으면서까지 끝내 자신이 원하는 여자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녀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자살로 내몬다." "개연성과 더불어 뜻밖의 사건이 갖추어야 할 또 다른 조건은 그 사건을 통해 독자가 알지 못했던 등장인물의 면모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릭랜드가 스트로브의 아내를 차버릴 때 독자는 적어도 그의 잔인성에 다시 한 번 치를 떨며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을 받는다."(141-3)


8장 |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처럼 써라


"버로스는 이야기를 정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는 혐오감을 주거나 거부감을 주는 이름을 가진 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고, 낯설거나 생소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그는 마치 친구가 또 다른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쏟아놓듯이 친근한 주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버로스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여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항상 매력적인 여자를 연상시키고 남자 주인공들의 이름은 강한 남자를 연상시킨다. 악당은 그야말로 악랄한 악당을 연상시킨다." "버로스의 어떤 책을 펼치더라도 갈등이 꿈틀거린다. 갈등은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엔진이다. 이야기가 늘어지기 시작한다면 주인공을 다른 누군가와 충돌시켜 위험을 고조시키는 도박을 걸어보라. 그 즉시 이야기는 생명력을 되찾을 것이다." "SF에 사랑 이야기를 도입함으로써 버로스의 소설이 더 흥미진진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신의 이야기가 로맨스로 가득하게 하라."(151, 154, 160, 163)


9장 | 프란츠 카프카처럼 써라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어느 날 아침 그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는데도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심판』의 첫 문장에는 소설 전체의 줄거리와 갈등이 압축되어 있다." "『변신』의 첫 장을 펼쳐본 사람이라면 첫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소설의 맨 앞에서 제시되는 이야기의 전제는 놀라우리만큼 독창적이다. 〈간밤의 뒤숭숭한 꿈에서 잠을 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위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판』과 『변신』의 도입부에서 카프카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정수만을 뽑아내어 전체 갈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린 것이다. 다른 작가들은 이런 방식을 꺼린다. 그들은 비밀을 감춰두고 싶어 한다. 주요 갈등과 이야기의 전제를 드러내기 전까지 뜸을 들이고 싶어 한다. 문제는 분위기 조성이다. 분위기 조성만 그럴듯하게 된다면 도입부에 너무 많은 패를 보여준다는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170-1)


"카프카의 주인공은 항상 줄거리의 덫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이 모든 것이 임시하는 것은 꿈이 가진 악몽 같은 특성이다. 복도에서 문을 여니 법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고 추격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카프카는 꿈이 가진 이러한 탄력적인 면들을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표현주의적 기법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카프카의 작품이 그토록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분명 위험하고 이상하며 낯선 곳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은 이상한 세계로 더 깊이 가라앉다가 결국 그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독자는 대리 경험을 통해 낯선 꿈의 세계로 빠져들고 주인공의 눈을 통해 그 세계의 진실을 바라본다. 이렇듯 카프카의 줄거리는 강력한 비유와 함축을 동원하여 신화적으로 각색된 현대의 풍경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172-4)


10장 | D. H. 로렌스처럼 써라


"로렌스는 줄거리보다 개인들 간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하나의 큰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 느낌을 준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로렌스는 인물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파고든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가운데 하나는 모든 장에서 깊은 정서적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로렌스는 등장인물이나 몇 쌍의 연인들만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 인물들이 소설 한 권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별다른 줄거리 없이 작업을 지속해나가는 방식을 가장 좋아했다. 장면과 장을 자신의 상상에 맞게 구성하고, 그렇게 써놓은 거친 초고를 바탕으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서 조바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이 방법은 당신에게도 효과적일 것이다. 많은 작가들은 이야기의 절정이나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글을 시작한다. 이 방법을 '등장인물의 망령(Character Possession)'이라 부른다."(190-3)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는 사실적 행동 못지않게 '공간의 상징(ambient symbolism)'도 많이 등장한다. 공간의 상징은 이야기의 배경, 혹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나는 상징을 가리킨다.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공간의 상징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 사냥터 관리인의 숲, 채털리 부인의 남편이 살고 있는 공업 도시, 채털리 부인이 살고 있는 대저택은 모두 '공간의 상징'이다." "로렌스에게서 상징을 배우기가 더 쉬운 이유는 상징을 분명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상징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로렌스는 독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주입한다. 채털리 부인은 남편의 '추악하고 산업적인' 탄광 때문에 세상이 망가졌다고 비난한다. 〈사람들한테서 자연의 삶과 인간다움을 빼앗아간 게 누군데요? 사람들에게 이 산업사회의 공포를 가져다준 게 누구죠?〉 주저 말고 가끔은 독자의 옆구리를 쿡 찔러라. 그렇게 해서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198-202)


11장 | 윌리엄 포크너처럼 써라


"포크너는 이미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 뛰어들어 소설을 시작하는 방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많은 작가들은 한창 이야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그것이 더 적절하고 극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포크너는 주로 이야기의 한복판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소설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뜸을 들이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깊이 있고 복잡하게 쌓아나감으로써 포크너는 입체적이고 그럴듯한 세계를 창조한다. 독자는 마치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허구의 세계에서 복잡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탐구심을 발휘해야 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본다. 뿐만 아니라 주변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포크너의 방식은 작품에 문학적 특성을 좀 더 강하게 부여한다. 물론 포크너의 방식에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도입부의 속도감을 떨어트릴 위험성이 있기도 하지만 지적인 독자들에게 복잡하고 불확실한 도입부의 묘미를 감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211-5)


"포크너는 소설의 시작도 독특하지만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는 방식도 눈에 띄게 예술적이다. 존 가드너는 이를 가리켜 '울림이 있는 결말(resonant close)'이라고 부른다. 이런 결말에서는 〈등장인물이나 이미지, 사건들만으로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요약하거나 다시 떠올리게 하여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독자는 그동안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던 인물과 이미지, 사건이 서로 앞뒤가 들어맞아 마침내 중요한 것들이 모두 연결되는 느낌을 통해서 감동을 얻는다.〉" "포크너는 결말을 시로 처리하기도 한다. 소설 초반에 시가 나왔더라면 어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 등장하는 시는 소설의 마무리를 예술적으로 만들어준다." "결말은 새로운 언어를 과감히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동안 억눌러온 장식적인 구조나 미사여구에 도전할 수도 있고 소설 초반부에 등장했으면 어울리지 않았을 시를 사용할 수도 있다.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에서만큼은 작가가 겉멋을 부려도 관대히 받아들인다."(215-7)


12장 |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써라


"그렇다, 헤밍웨이는 문장을 짧게 썼다. 그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문장을 짧게 쓰기 위해 헤밍웨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왜 문장을 짧게 쓰려고 했는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고 길고 복잡한 문장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라. 가독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헤밍웨이가 간결한 문장을 쓴 이유는 표현의 정확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문장을 짧게 썼던 또 다른 이유는 극적 효과를 위해서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주인공은 썩어가는 다리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래 좋아. 그는 이제 죽음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두려워한 것은 고통, 그 한 가지 뿐이었다.〉 이 짧은 문장들은 주인공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점증 효과를 발휘한다. 문장의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극적 호소력을 강화하고 싶을 때 짧은 문장을 길게 이어놓으면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을 수 있다."(228-30)


"〈잠시 후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병원을 떠났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When 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 문장엔 종속절이 쓰였다. 여기서 종속접속사 'when'을 없애면 이런 문장이 남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가 병원을 떠났다.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I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다음에는 쉼표를 없애고 그 자리에 'and'를 집어넣는다. 〈나는 잠시 후 밖으로 나갔고 병원을 떠났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I went out after a while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이제 첫 두 절의 순서를 바꿔주는 일만 남았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갔고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왔다.(After I went out and left the hospital and walked back to the hotel in the rain.)〉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정확히 이 문장으로 끝냈다."(238-9)


"오로지 상상으로만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마라. 현실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을 토대로 인물을 만들어라. 그렇게 하면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을 흐르고 있던 당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살아 솟구쳐 오를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반드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때로는 하나의 등장인물을 만들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을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두 인물을 하나로 합친 복합적 캐릭터는 소설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의 하나이다. 두 사람 이상의 인물을 떠올린 다음 그들의 특징과 행동을 한 명의 등장인물 속에 결합시켜라. 이 작업을 제대로만 하면 독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의 캐릭터로 태어났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독자는 당신의 글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얻은 인물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두 사람을 합쳐 놓은 복합적 캐릭터는 한 사람을 토대로 만든 캐릭터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246)


13장 | 마거릿 미첼처럼 써라


"미첼은 등장인물의 내면의 소리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작가였다. 그녀의 글이 독자를 사로잡은 이유는 소설의 대부분이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가 바라보는 제한된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칼렛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독자는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스칼렛은 사랑과 인간관계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가 사랑을 얻거나 잃을 때, 저택과 영지를 잃을 때 독자는 그녀 못지않게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된 힘은 이러한 정서의 힘이다. 따라서 미첼이 사용한 내면의 독백은 이야기를 튼튼하게 구성하고 독자를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주인공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문학적 장치다." "등장인물의 생각에 할애하는 비중은 전체 이야기에서 1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 미첼도 전체 이야기에서 스칼렛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이 정도의 비중을 할애했다. 나머지 시간은 주요 등장인물과 기타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채워야 한다."(253-5)


14장 | 조지 오웰처럼 써라

"

『1984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등장인물은 단연 윈스턴 스미스다. 소설 전체를 윈스턴의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웰은 『1984년』을 집필하는 동안 폐결핵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다. 윈스턴 스미스도 오른쪽 발목 윗부분의 정맥류성 궤양으로 고통을 겪는다. 고문을 당할 때도 궤양이 언급될 정도다. 국가는 그를 세뇌시키는 데 성공한 뒤에야 궤양을 치료해주고 상처 부위에 붕대를 감아준다. 폐결핵에서 궤양으로 바뀌긴 했지만, 작가의 병이 주인공에게 전이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물을 만드는 기본적 방법 한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실제 인물의 특징을 바탕으로 인물을 만드는 방법이다. 단, 진행중인 줄거리에 적합한 방향으로 실제 인물의 특징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특히 국가가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아줄 때 궤양이라는 소설 속의 장치는 그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국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전체주의 정부에 포섭되어간다는 것을 절묘하게 암시하지 않는가?"(277)


"주제 혹은 지배적 아이디어는 작가의 도구이자 고성능 렌즈이다. 작가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고 윤을 내며 더 흡인력 있게 만든다. 주제를 뒷받침하거나 구현하는 사건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라. 주제에서 겉돌거나 주제를 구현하지 못하는 대화나 장면이 한 토막이라도 있다면 인정사정없이 잘라내라." "『1984년』은 작품 곳곳에 주제가 배어 있다. 오웰은 주제를 통해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당신도 오웰처럼 주제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나 메시지가 처음부터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제나 메시지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주제는 구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칠 때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원동력 또한 주제에서 나온다. 비록 많은 단어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주제가 반복되어 점점 쌓여나갈 때 생기는 효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288-9)


15장 | 이언 플레밍처럼 써라


"플레밍은 정확한 세부묘사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세부묘사를 통해 감각적 쾌락만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과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한마디로 그는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플레밍은 자메이카의 북쪽 해안가에 은둔자처럼 처박혀 글을 썼다. 플레밍의 명성을 알린 작품들도 그곳에서 탄생했다. 『카지노 로얄』(1953)을 필두로 모두 열두 편의 '본드 시리즈'가 차례로 발표되었다. 자메이카에서 글을 쓰는 동안 플레밍은 금도금을 한 로얄 디럭스 타자기를 사용하고 몰랜드 스페셜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워댔는가 하면 늘 술에 절어 있었다. 인생의 쾌락을 좇는 그의 성향은 문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세부적으로 묘사를 아끼지 않은 문장과 이국적 배경 설정, 다채로운 인물의 창조는 플레밍 특유의 문체로 자리 잡았다. 그가 모든 작품에서 사용한 플레밍 문체는 세부묘사를 활용하여 감각을 자극하고 독자에게 호화로움과 쾌락의 세계를 전한다."(292-3)


16장 | J. D. 샐린저처럼 써라


"샐린저의 작품에서는 (줄거리보다) 등장인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조이스 메이너드는 샐린저가 캐릭터에 관한 메모를 깨알같이 적어놓은 수십 권의 공책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공책들이야말로 샐린저가 끊임없이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비결이다. 물론 독자가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세상에 발표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국한된다. 샐리저는 후기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글래스 가문을 묘사하기 위해 구성원들 한 사람당 책 한 권 분량의 메모를 적어두었다. 최종 발표된 작품에 이들이 전부 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샐린저는 작품에 실리지도 않을 이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분석했다." "헤밍웨이도 이런 작업 방식을 좋아한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빙산 이론'을 논하는 자리에서였다. 〈당신이 어떤 부분을 빼버렸을 때 이야기가 더 강화된다면, 어뻔 부분을 빼버렸을 때 독자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무엇이 됐건 빼버려라.〉"(321-3)


17장 |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써라


"많은 작가들은 초고를 쓸 때 머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걸러내지 않고 빨리 써야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냥 나오는 대로 받아써라.〉 스티븐 킹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도 모두 그런 식으로 초고를 썼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을 했다. 브래드버리도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초고를 쓸 때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걸러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쓰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겹쳐 쓰기를 한다. 나중에 수정할 때 잘라내고 편집할 요량으로 문장이나 대화마다 다양한 대안을 적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려면 써야 할 글의 분량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 방법의 매력은 글 쓰는 이의 가슴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다시 말해 소설 속 장면 한가운데에 있을 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예행연습' 때 최고의 어휘와 표현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작가가 찾고 있는 그 어휘일 가능성이 많다."(337-8)


"단짝 캐릭터는 세계 문학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효과가 입증된 장치이다. 브래드버리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능숙하고도 의식적으로 이 장치를 사용한다. 첫 번째 이유는 두 인물을 비교하여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 소년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심도 깊은 인물 묘사가 가능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정반대다. 매우 미세한 두 인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짝 캐릭터를 사용하면 중심인물이 한 명일 때보다 두 소년의 심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브래드버리는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에서 단순히 짐과 윌의 차이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두 소년의 우정과 일반적인 우정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간다. 친구란 서로 다른 차이를 끌어안는 것이고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캐릭터 묘사를 통해 소설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우정과 충성심을 강조하는 효과까지 거둔다."(343-5)


18장 | 플래너리 오코너처럼 써라


"만약 오코너의 작품이 재미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오코너가 '자유간접화법'이라는 문학 장치를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간접화법은 한 가지만 빼고 간접화법과 똑같다. 그것은 간접화법과 달리 전달동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유간접화법은 전문용어로 '올바른 철자 표시(orthographic marker)'라고도 불린다." "『폭력이 그것을 끌고 갔다』의 2장 중반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난다. 〈소년은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을 '알 만한 눈치는 있었다.'〉 홑따옴표로 된 부분이 바로 타워더의 관점에 물든 자유간접화법이다." "자유간접화법을 사용하고 싶다면 당신이 설명하려는 등장인물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어라. 특정 상황에서 '당신'에게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 말고 '등장인물'의 머리나 마음속에 떠오를 법한 단어나 구절을 찾아라." "이러한 등장인물의 목소리는 당신의 전형적이고 '따분한 목소리'에 의한 서술보다 훨씬 짜릿한 흥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363-6)


19장 | 필립 K. 딕처럼 써라


"18세기와 19세기의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과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동기를 드러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디킨스는 『황폐한 집』에서 에스더의 혈통에 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에스더의 어머니인 데들록 부인이 다시는 딸과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 작가인 자신도 전부 드러내지 못할 만큼 등장인물들의 동기가 복잡하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독자들의 양해를 구했다." "등장인물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 딕의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배경 지식이나 세부묘사를 최소한으로 생략하고 압축하라. 등장인물의 대사 몇 줄이나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독자에게 등장인물의 동기를 이해시킬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짧은 대사나 생각에서 등장인물의 동기를 집어낼 것이다. 등장인물의 동기가 개연성이 있다면 굳이 길게 묘사하지 않고 간단히 언급만 해줘도 충분하다."(378-80)


20장 | 톰 울프처럼 써라


"울프가 등장인물을 만드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의 방법과 같다. 즉 등장인물의 주요 특성을 과장하고, 자신이 만든 등장인물을 냉소적으로 조롱하며, 그들의 허물이나 기벽(奇癖)을 실제보다 과장하여 드러내는 방식이다." "당신의 등장인물을 아기처럼 살살 다루지 마라. 특히 주인공을 부드럽게 다뤄서는 안 된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많은 연민을 품게 되면 울프가 찰리에게 그랬던 것과 달리 당신의 주인공을 고통에 빠트리는 데 망설이게 된다. 주인공이 수치심과 모욕, 불안과 동요, 추락을 경험케 하라. 그렇게 하면 독자의 관심은 주인공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독자 자신이 처한 상황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는 문학이 음악이나 영화, 연극보다 훌륭한 매체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은 글쓰기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이다."(394-6)


21장 | 스티븐 킹처럼 써라


"간단히 말하면 서스펜스란 독자가 미래에 벌어질 어떤 사건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불안감을 갖게 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단순히 독자가 간절한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게끔 만다는 것을 서스펜스라 부르기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그렇겠지만, 스티븐 킹의 서스펜스는 약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데서 형성된다. 말하자면 킹의 서스펜스는 눈에 잘 띄는 송곳 같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단순한 호기심도 아니고 제인 오스틴의 기대감과도 다르다. 킹의 서스펜스에 빠져든 독자는 손톱을 물어뜯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심한 근심에 휩싸인다." "서스펜스는 천박하거나 조악한 기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했을 때 서스펜스는 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최고의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기가 될 것이다."(410-1)


"스티븐 킹은 서스펜스를 만들 때 항상 세 단계로 구성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킹은 독자가 궁금해 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언급이나 단서를 흘린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일'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나는 이 두 번째 단계를 '재통보(callback)'라고 부른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 킹은 이야기의 전개상 공포가 최고조에 달하는 지점에서 서스펜스를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샤이닝』에서 대니 가족이 오버룩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요리사인 핼로란은 대니에게 217호실에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때는 소설의 초반부인데, 대니는 그로부터 몇 장이 지난 후에 집 안을 둘러보다가 217호실 앞을 지나칠 때가 되어서야 요리사의 경고를 다시 떠올린다. 이후 몇 차례 더 217호실에 대한 언급이 나온 후 결론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 문 뒤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의 실체가 드러난다. 킹은 이렇듯 재통보를 통해 독자가 안심하지 못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증폭시킨다."(414,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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