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서 니체로 -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 19세기 사상의 혁명적 결렬
카를 뢰비트 지음, 강학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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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9세기 독일 정신사 연구


서론 괴테와 헤겔


"헤겔도 괴테도 (셸링처럼) 칸트의 이 최후의 이념─자연 개념과 자유 개념을 매개하는 판단력─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논증적인 오성을 타고 넘어서 자기 존재와 세계 존재의 중간에 서는 것으로써 '이성의 모험'을 감행했다. 다만 괴테는 직관된 '자연'의 편에서 헤겔은 '역사적 정신'의 편에서 통일을 파악하는 점에 두 사람이 가진 매개의 차이가 있다. 헤겔이 '이성의 간지(奸智)'를, 괴테가 자연의 간지를 승인하는 것은 이것에 대응한다. 간지는 어느 경우에도 인간의 행위 일체를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전체를 위한 봉사에 이바지한다." "괴테가 밑바탕으로 삼았던 원근법상의 착각은 헤겔이 이해하고 있던 '이념'이 '자연의 방식'이 아니라 정신의 방식을 표명해야 하는 점에 있다. 그것을 헤겔은 자연의 이성으로 풀이하지 않고(헤겔에게 자연은 무력한 것이었지만, 괴테에게 자연은 전능한 것이었다.)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여,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헤겔은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로 보았다."(29-30, 36)


"헤겔과 마찬가지로 괴테도 종교개혁을 '정신적 고루의 질곡'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도 모두 차츰 언어와 신앙의 기독교에서 나와 의향과 행위의 기독교로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라는 괴테의 명제는 사실상 벌써 헤겔에서 포이어바흐에, 나아가서는 근본적인 결정으로 통하는 길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따라서 새로이 이교와 기독교의 어느 것을 채택하는가를 결정하려고 한 니체와 키아케고어의 두 개의 상반된 실험은 헤겔과 괴테에 의해서 대표된 융통성이 있는 기독교에 대한 과감한 반동이다." "괴테와 헤겔은 공통적으로 '초월하는 것'을 거부했다. 괴테의 자연은 중용 가운데서 살았고, 헤겔의 정신은 매개 가운데서 움직였으나, 이 중용과 매개는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에 있어서 다시금 외면성과 내면성의 양 극단으로 서로 대결하게 되어 결국 니체는 새로운 시발로서 근대성의 무(無) 속에서 고대를 되찾으려고 이 실험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신 착란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43-4, 54)


▷ 헤겔의 정신사 철학에서 생긴 시대정신적 사상(事象)의 기원


1장 헤겔의 세계사 및 정신사의 완성이라는 종말사적 의의


"유럽 정신사의 최후의 단계에서 드디어 나타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고 또한 자기가 의욕하는 것을 알고 있는 〈순수한 자기 의지〉이다. 그것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곤두서게' 되고, 세계의 사상(事象)은 철학의 사유와 일치하게 된다. 〈자유의 의식에서의 진보〉를 원리로 하는 역사의 철학은 이 사건으로 마감된다. 원시 기독교의(그 정신과 그 자유의) 소위 세속화는 헤겔로 보자면 그 본래의 의의에서의 비난될 이반(離反)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적극적 실현에 의한 그 본원의 참된 해석을 뜻한다." "그리스-로마의 세계는 기독교-게르만적 세계 속에서 '지양'되고, 따라서 헤겔의 존재론적 기초 개념은 이중으로, 즉 그리스적 로고스 및 기독교적 로고스로서 규정된다. 그에 반하여 새로이 고대 세계와 기독교와의 결합을 분리라도 해서, 그리스 정신이든지 기독교든지 '어느 한쪽을' 추상적인 본원으로 보고 그것에 다시 복귀하려 하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역사 감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61)


"헤겔의 종말사적 구조의 궁극의 근거는 그가 기독교를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에서 본다면 여러 시대의 종말과 '때의 참die Fülle der Zeiten'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지상 시간의 종말의 기독교적 기대를 세계의 사상(事象)에 옮기고, 그리스도 신앙의 절대자를 역사의 이성으로 풀이하기 때문에 세계와 정신의 역사에서 최후의 대사건을 단초의 완성으로 이해하는 경우라면 이치에 맞는다. 실상 '개념'의 역사는 헤겔이 〈여기까지의 그리고 거기서부터〉의 역사 전체를 회상시키면서 여러 시대의 실현으로 이해할 때에 헤겔과 함께 마감되었다. 원리도 없고 따라서 시기도 없는 경험적 사상(事象)이 처음도 끝도 없이 경과하는 것은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헤겔의 후계자뿐만 아니라, 그의 논적(論敵)도 상기한 역사적 의식에 의해 양육되었다. 유럽 역사에 대한 부르크하르크의 의식의 최후의 의향은 〈낡은 유럽〉은 종말에 가깝다는 인식이었다."(61-2)


"그렇지만 새로운 분리로의 진전 가능성은 헤겔 자신의 역사적 의식 속에 이미 배태되어 예견되고 있었다. 사실 시대의 실질적인 것에 관한 철학적 인식은 물론 그가 속한 시대정신에서 발생하고 따라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관상적(觀想的) 지식으로서, 그 시대정신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유별난 관상적 지식과 함께 한층 더 발전을 촉진시킬 하나의 차이, 즉 〈지식과 현재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마련된 것이다. 이제 이런 차이에서 철학과 더불어 현실에서 새로운 분리로 진전할 가능성과 필연성이 생겨난다." "스스로 완성하는 이 철학은 차후에 현실적인 새로운 형성으로 몰아넣는 정신의 출생지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헤겔이 말하는 지식의 역사의 종결은 출생지가 되어 그것에서 19세기의 사상 및 정치상의 사상(事象)이 발생했다." "즉 헤겔의 매개 대신에 결단으로의 의지가 나타나서, 헤겔이 합일한 것을, 즉 고대와 기독교, 신과 세계, 내면과 외면, 본질과 실존을 다시금 분리시켰다."(70-3)


"헤겔 철학의 영역에서 신앙과 이성, 뿐만 아니라 국가와 기독교와의 화해는 1840년경에 끝나고 있다. 헤겔 철학과 그 시대와의 분열은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국가 철학과의 분열이며, 키아케고어에 있어서는 종교철학과의 분열이어서, 요컨대 국가, 기독교 및 철학의 합일과의 분열이다. 이 분열을 포이어바흐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브루노 바우어도 키아케고어에 못잖게 결정적으로 실행했다. 다만 제각기 그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을 감각적 인간에, 마르크스는 인간 세계에 있는 모순으로 환원하고, 바우어는 기독교의 발생을 로마 세계의 몰락에서 설명하고, 키아케고어는 기독교적 국가도 기독교의 교회나 신학도, 즉 기독교의 세계사적 실재 전체를 방기하고 그 본질을 절망 끝에 결단한 신앙으로의 비약이라는 역설에 환원한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더 이상 자각적 존재의 의식이라는 자유의 빛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그림자 속에 나타난 것이었다."(79)


2장 노장 헤겔 학파, 소장 헤겔 학파, 신헤겔 학파


"(노장 헤겔 학파가 주도한) 헤겔 철학의 보존은 철학 일반이 철학사가 되는 역사화의 도상에서 행해진다. 헤겔의 정신사의 형이상학에서 발단한 역사주의는 문화와 지식을 아직도 믿고 있던 교양인의 '최후의 종교'가 되었다." "헤겔의 경우 정신은 역사의 주체 및 실체로서 절대자이며, 그의 존재론의 근본 개념이었다. 그러기에 자연철학도 국가, 예술, 종교 및 역사 등의 철학과 함께 하나의 정신의 학문이다. 기독교라는 절대적 종교와 일치하는 정신인 까닭에 이러한 절대정신은 스스로를 알고 있음으로써 존재한다. 또한 그 정신은 이미 존재했던 정신의 여러 형태들의 회상을 자기의 갈 길로 삼는 한에서 역사적 정신이다." "그러나 1850년대 이래로 유행하게 된 '정신사'의 개념, 곧 하임에서 딜타이에 이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승인되었던 다소간의 확신은 인간의 정신 그 자체가 '사회-역사적 현실'의 유한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런 정신은 정치적, 자연적 세계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무력하다는 확신이었다."(93-4)


"소장 헤겔 학파는 청년의 당파를 대표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들이 현실의 청년이어서가 아니라 아류 의식을 극복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존하는 것의 근거가 박약함을 인식하여 '보편적인 것'과 과거에서 이반(離反)하여, 미래를 예견하고 '일정한', '개별적인' 것을 강조하여 현존하는 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들의 저서들은 선언과 강령이나 주장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실속 있는 전체가 아니고 그들의 학문적인 논증은 그들이 손질하는 동안에 대중 아니면 단독자(개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효과를 노린 설명이 된다. 그들의 저서들을 검토하는 사람이면 그들의 자극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김 빠진 듯한 뒷말을 남긴다는 점을 경험하게 된다. 그 까닭은 그들이 빈약한 수단으로 과도한 요구를 내걸고 헤겔의 개념적인 변증법을 수사적인 문체로 길게 뽑아 늘이기 때문이다." "생성과 운동의 이론가들인 그들은 헤겔의 변증법적 부정성(否定性)의 원리와 세계를 움직이는 모순에 고착(固着)되어 있다."(96-7)


"헤겔 학파의 분열은 보수적으로나 혁명적으로나 해결될 수 있는 헤겔의 변증법적 '지양Aufhebungen'의 원칙적인 애매성에 의해 가능했다. 헤겔의 방법을 '추상적'으로 일면화하기만 하면, 〈그 견해의 보수성은 상대적이고, 혁명적 성질은 절대적이다〉라고 엥겔스의 명제 즉 그것은 세계사의 과정이 진보의 움직임이며 따라서 현존하는 것의 지속적인 부정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모든 헤겔 좌파 사람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명제에 도달할 수가 있다. 엥겔스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라고 하는 헤겔의 명제에 깃든 혁명적 성격을 증명한다. 즉 헤겔이 말하는 현실적인 것은 우연히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또는 '필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명제는 외견상 반동적이지만 실상 혁명적인 것이라 말한다." "우파는 현실적인 것만이 이성적인 것이라는 점을, 좌파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헤겔에서는 보수적 견해와 혁명적 견해가 적어도 형식상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101)


"헤겔을 단지 부분적으로 개조하려 했던 여타 소장 헤겔 학파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철학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 통찰을 역사에서 얻었다." "〈새로운 여신은 아직은 직접적으로 운명의 순연한 광명이든 순연한 칠흑이든 간에 애매모호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문장은 마무리지어진 세계의 회색의 황혼에서 철학한다고 하는 헤겔의 비유를 회상케 한다. 그 의미는 철학이 붕괴된 직후, 이 현재의 어두움이 칠흑 같은 어둠 직전의 황혼인지 아니면 새 날의 동틈 직전의 미명인지, 아직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에서는 현실 세계의 노쇠가 철학의 최후의 회춘(回春)과 함께 병행하나, 미래를 선취(先取)하는 마르크스에게서는 마무리지어진 철학이 현실 세계의 회춘과 함께 옛 철학에 역행한다. 철학이 현존하는 '비철학'의 실천에 몰두할 때, 즉 철학이 마르크스주의로 직접적인 실천적 이론이 되었을 때, 현실의 세계에 이성이 '실천praxis'됨으로 인하여 철학 그 자체는 지양된다."(129-30)


"키아케고어를 단지 '예외'로 보지 않고, 시대의 역사적 동향의 내부에서 생긴 현저한 현상의 하나로 본다면, 그의 '단독성'은 적어도 단독적인 일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 정세에 대해 흔히 유행했던 하나의 '반동Reaktion'이었음이 명백해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사상(事象)에 대한 비판자였다." "'단독자'에 관한 두 개의 각서에서의 서문(1847)은 〈오늘의 시대는 만사가 정치 일색이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것, 즉 사회적 개혁은 시대에 있어서 필요한 것, 즉 무조건으로 확정하고 있는 것의 반대물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현대의 불행은, 현대가 더 이상 영원에 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 한낱 '시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키아케고어에게 헤겔 철학은 역사적 세계의 보편자 안에서의 단독적 실존의 평준화, '세계 과정' 안에서의 인간의 '산재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키아케고어는 헤겔의 체계적 세계사적 해석에 반대하여 자신을 결단하는 실존의 단독성, 즉 개별화된 단독자를 부각시켰다."(148-50)


"세계의 평준화를 향한 발전과 하나님 앞에 '자기Selbst'로서 존재하는 기독교적 요구와의 양자가, 그에게는 재수 좋은 우연처럼 일치하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는 1848년의 '파국'을 신호로 삼아 종교개혁의 때와는 반대로 이번의 정치적 운동은 종교적 운동으로 급변함을 예언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키아케고어의 소견으로는 전체 유럽은 세계를 매체로 해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영원 앞에서만 해결될 문제 가운데로 끓어오르는 혈기에 휘말려 허둥지둥 끌려 들어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단적인 경련이 계속될지는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세대가 고뇌와 출혈 때문에 온통 기진맥진했을 때, 다시금 영원이 고려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진리를 위해서는 자기가 맞아죽어도 된다는 그런 증인에 의한 기독교의 부흥을 희구하는 이러한 예상을 가진 키아케고어는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을 선전하는 마르크스와 시대를 같이하는 대국자(對局者)이다."(152-4)


"헤겔 철학 부흥의 원리는 베네데토 크로체에 의해 처음으로, 또한 가장 선명하게 헤겔 철학의 '죽은' 부분과 '살아 있는' 부분의 구별에 의해 확정되었다. 죽은 것으로 여겨진 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철학이지만, 논리학이나 종교철학도 여기에 해당한다. 살아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객관적 정신의 학문이며, 그 한도에서 그것의 절대적-체계적 주장이 역사적 주장 속에 해소되고 있다." "역사적 의식을 철학과 정신의 문제로 삼아 탁월한 방식으로 이해한 것은 빌헬름 딜타이였다." "딜타이는 헤겔의 현실 개념의 사변적 '파악'을 현실의 가장 일반적인 여러 구조의 분석적 '이해Verstehen'에 환원한다. 딜타이에 의하면 헤겔의 형이상학의 영속적 부분으로서는 '역사적 지향die historischen Intentione'이 존립할 따름이다. 이 경우에 바로 그 체계의 궁극적 부분이 될 형이상학적, 신학적 기초는 제외된다. 헤겔의 영속적인 의의는 그가 낱낱의 생의 현상의 본질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것을 가르친 점에 있다."(162-5)


3장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의 결단에 의한 헤겔 매개의 해소


"헤겔 학도로서 마르크스가 이해한 공산주의는 실체가 없는 생존 관계의 참된 해소이고, 공동체로서 생존하는 인간의 현실적 존재와 본질적 이성과의 사회적 일치이다. 헤겔은 양쪽을 단지 사상적으로 융화시켜 실제로는 사적-개별적 생존과 공적-공동적 생존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제약된 모순을 그의 서술 내용으로 취급했다." "결국 현존하는 존재 관계의 급진적인 혁명만이 '세계 국가'에까지 확대된 폴리스, 계급 없는 사회의 '참된 민주 정치'를 대동해서 헤겔의 국가 철학을 근대적 사회의 요소 가운데 실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철학적 공산주의와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키아케고어는 사적 인간을 철두철미하게 '단독자Einzelne'로까지 구체화시켜 대중의 상황이라 할 외면성에다 '자기 존재Selbstsein'라 할 내면성을 대치시켰다. 그에게 이 개별화된 실존의 다시없는 실례는 아테네의 폴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및 이교도로 이루어진 전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이다."(192-3)


"현실에 대한 헤겔의 무력의 원인을 키아케고어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원리의 잘못된 귀결에서 보지 않고 헤겔이 전반적으로 본질과 실존을 일치시키려는 점에서 본다. 바로 그 까닭에 그는 '현실적' 존재의 표현에는 이르지 않고 항상 이상적 '개념 존재'에만 이를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essentia, 즉 어떤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보편적 본질에 관계하고, existentia, 즉 어떤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낱낱의 실재, 나 혹은 너 나름의 실존, 그것이 있는가 없는가의 일이 결정적인 일이 되는 그러한 실존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낱낱의 인간은 정신을 가지고 그 본질로 삼는 보편적 인간 존재의 특수한 한정성을 의미한다. 이 인간 존재의 보편성, 즉 '보편 인간성'을 키아케고어는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단독자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에 반해 헤겔 정신의 보편자이든가 마르크스의 인류의 보편자이든 간에 키아케고어에게는 실존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194-5)


"키아케고어는 관심을 '정열Leidenschaft' 즉 '파토스Pathos'라 칭하여 그것을 사변적 이성에 대처케 한다. 정열의 본질은 그것이 헤겔의 체계의 폐쇄적 '종결'과는 달리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할' 결단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 비약, 즉 변증법적 반성이라는 〈방법의 역행에 대한 단호한 반항〉은 의미심장한 하나의 결정이다. 비약의 용의가 되어 있는 이 결정의 단호한 정열은 직접적인(무매개의) 단초를 설정한다. 이에 반하여 헤겔 논리학의 단초는 실제로 '직접적인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의 반성의 산물, 즉 현실에 실존하는 현존재의 추상(무시) 가운데서 순수한 존재 일반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러한 실존 규정을 가지고 키아케고어는 자기를 아는 이성적 현실의 영역을 '하나의 실존자가 그것에 대해 단지 알고만 있지 않는 유일한 현실', 즉 '그가 바야흐로 존재한다고 하는' 현실에 환원시킨다. 스스로 실존하는 자에게 실존 그 자체는 최고의 관심사인 것이다."(196-7)


"1848년 혁명 직전에 마르크스와 키아케고어는 어떤 결정의 의지를 표명했다.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혁명을 위해 마르크스는 무신자의 대중을 발판으로 삼는 한편, 키아케고어는 시민-기독교적 세계에 대한 그의 싸움에서 만사를 개개인에게 걸고 있다. 이것에 대응하여 마르크스로 말하면 시민사회는 '개별화된 단독자'의 사회여서 거기서는 인간이 자기의 '동류적 본질'에서 소외되어 있고, 키아케고어로 말하면 기독교 세계는 대량으로 전파된 기독교이고, 거기서는 단 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순종자'가 아니다. 그러나 헤겔이 이러한 존재하는 모순을, 즉 시민사회와 국가, 국가와 기독교를 본질에 있어서 매개한 연후이기 때문에 마르크스 및 키아케고어의 결단은 바로 그러한 것들의 매개 가운데 있는 차이와 모순을 지적하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마르크스가 문제 삼는 '자기 소외'는 인간 쪽에서 보면 자본주의고, 키아케고어가 문제로 삼는 '자기 소외'는 기독교 쪽에서 보면 기독교 세계이다."(198)


▷ 역사적 시대에 철학의 영원성 희구로의 급변


4장 현대 및 영원의 철학자인 니체


"괴테가 온갖 잔재주꾼보다 탁월하였던 것은 그가 단지 자유를 의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소유했던 점이다. 그는 이 도달된 자유에서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마저도 촉진하며 전체로서의 생활, 그리고 그 외관상의 진실 및 그 진실의 외관을 위한 대변자 노릇까지도 감당해낼 수 있었다. 괴테는 비현실을 의도하며 살던 시대의 한가운데서 확신에 찬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그 속에서 자기에게 연고가 있는 것을 모두 긍정했다." "그는 관용의 인간이기도 하다. 약함에서가 아니라 강함에서의 관용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범속의 인간이면 몰락할지도 모를 것을 그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에게는 덕이든 악덕이든, 나약함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될 것이 없다." "이것은 니체의 '실재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입장'을 나타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실상 『권력에의 의지』의 최후의 경구는 자연에 관한 괴테의 단편과 동일한 정신에서 발상된 것처럼 느껴진다."(231-2)


# 다만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와 괴테의 자연은 매우 상이하다. 이 차이는 기독교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니체가 19세기의 독일인을 위한 참된 교육자는 헤겔의 문하생들이라고 했던 말은, 소장 헤겔 학파를 경유하여 헤겔에서 니체로 통하는 길은 신의 죽음이라는 이념에 관련하여 말할 때 가장 명료하게 언급되고 있다. 즉 헤겔은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즉 '무신성(무신앙)의 진리'에서 기원함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기독교적 철학을 완성하였으나, 니체는 몰락하는 기독교를 기초로 하여 그리스 철학의 기원을 반복하는 것으로 '수천 년의 허위'를 극복하려고 했다. 헤겔에게 있어서는 '신의 성육(聖肉)'은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의 결정적으로 완수된 화해를 뜻하고, 니체와 바우어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참된 본성이 파손되었음을 의미한다. 헤겔은 신을 '영Geist'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철학적 존재로까지 높였고, 니체는 신을 영이라고 말한 자야말로 육체를 갖춘 신의 재생에 의하지 않는 한 보상될 수 없는 그러한 불신앙에로 누구보다 큰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딛었다고 주장한다."(243)


"허무주의 그 자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인 몰락과 생활 혐오의 징조일 수도 있고, 생활에의 새로운 의지와 강화로서의 최초의 징조일 수도 있다. 즉 약자의 허무주의와 강자의 허무주의인 것이다. 근대성의 근원인 허무주의의 이 양의성(兩義性)은 니체 자신도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양쪽을 알고 있다. 나는 양쪽 모두인 것이다.' 니체의 철학적 실존의 이런 이중의 의미는 시대에 대한 그의 관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그는 '오늘 및 지난날'의 사람이기도 하고, '내일과 모레 및 다른 훗날'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지난날과 훗날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현재를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의 철학은 '(기독교적) 후생(後生)의 역사의 단편'이며 동시에 그리스 전생(前生)에서 남겨진 흔적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니체는 최근의 시대의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옛 시대의 철학자이기도 하고 그런 한에 있어서 '나이 든' 시대라고 하는 것의 철학자이다."(246-7)


"니체의 본래의 사상은 처음에는 신의 죽음이, 중간에는 신의 죽음에서 생긴 허무주의가, 마지막에서는 영원 회귀를 지향한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 자리잡는 하나의 사상 체계이다.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 짜라투스트라의 최초의 연설 가운데 있는 정신의 삼중 변화이다. 기독교적 신앙의 '너는 할지어다Du sollst'는 '나는 의욕한다Ich will'라는 자유화된 정신으로 변한다. 무를 지향하는 '그 자유의 사막'에 있어서 '나는 의욕한다'에서 파괴와 창조 속에서 천진스러운 유희의 실재인 영원히 회귀하는 실재로의 최후이자 가장 곤란한 변화가, 즉 '나는 의욕한다'에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말하자면 존재 전체에 있어서 '나는 존재한다'로의 변화가 발생한다. 무를 지향한 자유가, 동일자des Gleichen의 영원회귀라는 필연성, 자유롭게 의욕된 그 필연성으로 들어가는 그 최후의 변화와 함께 니체에게 있어서 '영원한 운명'이라 할 그의 시간적 운명이 실현된다. 그의 자아는 그에게 천운이 된다."(250-1)


"니체의 철학에 있어서 영원회귀가 의미하는 것과 같은 영원의 문제는 니체가 '인간'과 함께 '시간'을 극복한 도상(途上)에서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 길은 기독교 역사에서의 탈출구이며 니체는 그것을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라고 일컬었으나, 이 허무주의는 또한 신의 죽음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신과 무의 정복자'이다. 영원회귀의 '예언'과 허무주의의 '예언'과의 이 본질적 관계에 근거하여 니체의 교설 전체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즉 그것은 허무주의의 자기 극복이어서, 거기서는 '극복자와 극복당하는 것'은 하나인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의 것이라는 것은 마치 짜라투스트라의 '이중의 의지', 또한 세계를 보는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눈'과 디오니소스적 '이중의 세계' 그 자체가 하나의 의지, 하나의 눈, 하나의 세계인 것과 동일하다. 허무주의와 회귀와의 이 일치는 니체의 영원을 의욕하는 의지가 니체의 무를 의욕하는 의지의 전향(轉向)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251-2)


"그런데 인간은 신이 그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한다'를 이 이상 말하지 않게 된 이래 의지로 있는 것이다. 실재는 스스로 '다시금 영구히 행위와 죄'가 된다. 그것은 실재가 '현실적으로 있다Da-sein'는 우연에 대하여 자체적으로 책임을 갖지 않음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실재는 언제나 이미 우연으로 있던 것이며 그것이 스스로를 의욕하기 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의지로서 그 책임을 떠맡으려 의욕하지만 아무튼 떠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지는 적의가 되고, 자기에게 귀속된 실재의 부담을 향해서 '뒤에서 뒤로 돌'을 굴리어 마침내는 망상이 일체를 소멸한다. 그러므로 일체는 소멸할 값어치가 있다고 설교한다." "실상, 시간 및 존재의 영원회귀적인 순환을 의욕함에 있어서 의지 그 자체도 또한 끝없이 무한한 것 속으로 향하는 직선 운동에서 미래와 더불어 과거로 향해 의욕하는 원환이 된다. 항상 이미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항상 의욕하는 이 이중의 의지가 니체가 의미하는 '운명애amor fati'이다."(253)


5장 시대의 정신 및 영원의 문제


"헤겔적인 구조의 요강은 대개 역사의 진행을 시간적 진보에 의해 측정한다는 점, 즉 마지막 걸음으로부터 그것에 선행된 걸음을 필연적으로 그 최후의 걸음에까지 인도된 것인 양 역진적(逆進的)으로 구성하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적 결과에 입각한 자리매김은 세계사에 있어서는 성과가 많은 것만이 인정된다고 하는 사실과, 세계적 사건의 연속은 성공의 이성에 의해 평가되어질 것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성공은 헤겔의 세계사적 견해의 최고 심급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상생활의 부단한 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역시 사람은 어떤 일의 성공은 그 일이 실패로 끝나는 것보다 고차원적인 정당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헤겔의 사색의 통속적인 핵심은 성공에 차 있는 자만이 정당화된 것이라는 일반에게 보급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파괴되거나 실패로 끝나버린 것 때문에 역사적 기억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은 헤겔의 처방에 의하면 '탈권당한 실존'으로 간주된다."(282-3)


"어떤 속담은 '성공은 명인(대가)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반면 니체는 '성공은 언제나 최대의 거짓말쟁이였다'고 말한다. 성공이란 실상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척도이긴 하나, 그것은 일체를 증명하고 또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일체를 증명한다는 것은 세계사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성공하는 것만이 통용되기 때문이고,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함은 비록 최대의 대량 성공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성공된 것의 참된 '역사적 위대함'이나 내면적 가치를 조금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천한 것, 어리석은 것, 비겁한 것, 미친 것 등이 벌써 종종 최대의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세계사의 참된 '파토스'는 울림이 요란하고 위세 당당한 '일대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들 위에 가져오는 소리 없는 고뇌에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세계사에서 감탄할 것이라도 가진다면, 그것은 인류가 온갖 손실과 파괴와 상해 속에서 항상 새롭게 갱신하는 힘이며 인내이며 끈질김인 것이다."(283-4)


"전체로서의 큰 세계사에 현혹되어 빠져 버리는 편견은 사람이 인간적 현실의 실상과 자신의 환경을 무시하고, 세계사가 마치 그것만으로 하나의 세계인 양 생각하고,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간과 관계 없이 그 세계사를 다루는 데 있다. 그와 같은 철학적 추상이라는 죄를 괴테는 스스로 범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적 '원리'의 구현으로서의 '민족 정신' 같은 것을 구성하지 않았다." "괴테가 인간의 머리 위를 건너 지나가는 세계사 자체의 위력을 관찰하는 경우, 그것은 괴테에게는 '이성'으로 보이지 않고 자연계의 한 사건처럼 보인다." "괴테는 자연 속에서, 세계사의 진행 중에는 입증할 수 없는 그러한 변화의 법칙을 인식했다. 헤겔이 원래 기독교신학 출신이었기에 역사를 '정신적'으로 파악하고 자연을 단지 이념의 '타재태Anderssein'로 본 것에 반해, 괴테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이성과 이념을 관찰하고 자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과 역사의 이해를 위한 하나의 통로마저 발견했다."(286-8, 291)


2부 시민적, 기독교적 세계의 역사 연구


1장 시민사회의 문제


"루소가 이해한 일반 의지란 단순히 개개의 시민의 공통된 의지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일반적인 의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와의 모순을 실제로 지양하는 일을 루소는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국가 안에서 합일한다고 하는 것은, 의연히 개개의 인간의 임의적 동의를 기초로 하는 단순한 하나의 사회 계약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헤겔은 국가를 단순한 수단으로 삼는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문제 삼고 있다." "시민사회로 보자면 국가는 그저 '귀찮은 것' 또는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이다. 말하자면 그 자체의 실질적인 의의는 없고, 각 개인의 이해 거래를 초월한 '형식적' 통일성이나 일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그 개개의 목적을 위해서도 국가의 일반적 전체와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의 본질은 시민사회의 제도의 심층 구조에까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의 원리를 부정함 없이 그것을 '지양augheben'시켰다."(310-2)


"키아케고어의 '단독자Einzelne'라는 근본 개념은, 사회 민주주의적인 '인류'와 더불어 자유주의적인 교양을 받은 기독교 세계에 대한 일종의 교정제이다." "과거에는 승인된 권위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지만, 만인이 상호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가 되면서부터 세속적 수단으로 더욱 진정한 의미로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키아케고어가 정치상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절대의 권위가 지배한다는 단지 그 한 가지일 뿐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는 세계의 참된 통치는 벌써 세속적인 내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하여 자진하여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승리를 점유하는 순교자의 손으로 행해진다. 기독교 순교자의 원형으로서 귀감이 되는 것은 민중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참으로 '단독적'인 이 '신인Gottmensch'이다. 다만 그리스도 앞에서만 인간 평등의 문제도 해결된다. 그러나 차이성의 대소를 본질로 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319-21)


"당면한 세계의 비판자로서 니체는 18세기의 루소와 같은 생각을 19세기에 대해 가지고 있었다. 니체를 거꾸로 한 것이 루소이다. 유럽 문명에 대한 것처럼 날카로운 비판에 있어서 루소가 되고, 그 비판의 규준이 루소의 인간 이념과 정반대인 점에서 루소의 역이 된다. 이런 관계를 의식한 니체는 루소의 인간상에는 '근대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하는 힘', 칸트나 피히테나 실러에 있어서도 독일 정신을 결정적으로 부각한 그 혁명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승인하였으나 동시에 니체는 루소를 '근대의 입구에 놓여진 기형아'라든지 '이상가와 천민'을 한몸에 갖춘 사람이라고 부른다. (니체의 말에 의하면) 루소의 평등 관념은 불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하고 노예 도덕에게 주권을 주는 것이었으며 또한 루소의 민주적 인도주의적 이념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인 인간의 참된 본성을 속이고 왜곡한 것이 된다. 시민적 민주정치에는 실체가 없다. 그것은 '국가 붕괴의 역사적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332)


2장 노동 문제


"헤겔은 노동의 정신적 성격을 우선 자연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규정한다. 노동은 본능이 아니라 일종의 '이성적인 것' 혹은' 정신의 존재 방식'이다. 동물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욕구를 자연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특징은 자기의 빵을 몸소 간접적으로 만들어 내어 자연을 수단 삼아 이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욕구와 그 만족 사이에 있는 이 '매개'는 도구나 기계의 수단에 노동을 더한 것을 가리킨다. 노동은 인간과 그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항'이다." "독립적인 도구인 기계 덕분에 비로소 완전한 노동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고 자연은 기계에 의해 인간에게 속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 기만은 속이는 자 자신에게 복수한다. 그래서 인간이 자연을 압제하면 할수록 인간 자신은 비천해진다." "노동이 기계적이 되면 될수록 그 가치는 적어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법으로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340-1)


"『법철학』은 노동을 '욕구 체계'의 첫 번째 계기로 다루고 있다. 복잡하게 구별된 추상적인 욕구와 동등하게 분화된 그 충족의 수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민사회의 노동이다. 거기서는 최초부터 노동의 본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즉 인간은 스스로를 생산하는 데에서만 '존재한다'고 하는 것, 그의 전 존재는 온전히 매개하며 또 매개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세계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 생산적 노동 관계에서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 '교양Bildung'이, 즉 다양한 지식, 특정한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활기, 복잡하면서도 일반적인 관계 파악이 발전한다." "노동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나태한 미개인과는 달라서 동시에 교양 있는 자이며 그의 욕구는 생산적으로 형성하는 사람이다. 노동이 인간을 형성(교양)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형식적이거나 교양적 행위로서 그 자체가 이미 정신적인 성질의 것이며 또한 추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밖에는 없다."(344)


"헤겔이 노동을 파악할 때 가졌던 입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현상론이다. 즉 의식과 자아 의식의 변증법이다. 이중 부정을 그의 운동 원리로 삼는 이 '사고의 산물'을 사용하여 헤겔은 현실적으로 인간적인 표현과 외화(양도), 대상화와 소외를 재치 있게 뛰어넘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현상론의 운동은 절대지를 가지고 끝난다. '외화(外化)의 역사 전체와 외화가 되찾은 전체는 때문에 추상적, 즉 절대적 사유의 생산의 역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소외는 뭐라 해도 외화와 더불어 그것의 지양이 본래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것은 '즉자(卽自)'와 '대자(對自)', 의식과 자아 의식, 객체와 주체의 구별로 이해되고 그 점에서 현실적, 감각적 대립이 소멸한다." "헤겔에게 자아 의식은 인간의 참된 본질이라 생각되어 소외된 대상적 본질을 되찾음은 자아로의 복귀로 나타나지만, 이 복귀는 대상적 세계의 '적의 있는 소외'가 '무관심한 소원'에까지 끌어내려진 후에는 비용을 크게 쓰지 않아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353-5)


"헤겔의 현상론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대략 〈인간의 자기 생산〉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대상화를, 외화로서 획득을 그의 외화의 지양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것, 요컨대 그것이 노동의 보편적 본질을 이해하여, 인간적 세계를 노동의 성과로 보고 있는 점이다. 〈헤겔은 근대적 국민 경제의 견지에 서 있다.〉 그는 외화의 긍정적 측면만을 알고, 그의 부정적 측면을 관념론적으로 지양시킴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서 파악한다. 그리하여 노동은 헤겔에서는 인간의 〈자립화〉로서 나타나지만 소외의 범위 내에서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되찾음은 우리들의 대상적인 세계의 소외된 제규정의 〈파기〉에 의하지 않고는 수행될 수 없다. '지양'을 파기로 고치는 이 부수적인 수정에 의해서 마르크스는 헤겔과는 방법에 구별되고, 더욱이 그가 어떻든 헤겔의 범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각화된 모습으로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붙들고 있는 점에서는 원리적으로도 구별된다."(356-7)


3장 교양 문제


"헤겔에게 학생의 교육 목표로 삼아야 할 세계는 개인적 세계가 아니라 공동체, 즉 국가이다. 그중에서 인간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인간의 개인적인 특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객관적인 제영역 가운데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인간이 얼마나 유용한가에 있다. 그러기에 교양은 개인이 그의 특성을 방기하도록 교육하고 '사물의 요소'에 들어맞도록 형성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물의 요소'란 공동의 세계에서 가정의 특수한 개인 관계와는 다르다. 학교라는 중간 영역이 (개인을) 가정에서 끌어내어(공동의 세계로 집어넣어서) 작용한다. 교양된 인간이 '일반적인 자기 존재'를 획득하는 장소인 세계를 헤겔은 그곳에 들어가면 개개인은 그것에 자기를 적응시키는 한도에서만 통용되는 것과 같은, 즉 '일반성의 체계'로 삼았다. 그래서 학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개개인이 자기를 일반적(사회적) 생활에 소속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문주의적 교양이라 부를 때에 규범으로 삼는 인간 교육의 목표였다."(372)


"1846년에 J. 부르크하르트는 바로 이 급진적 운동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한 G. 킨켈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썼다. 〈옛날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불장군이어서 세상에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 반대로 누구든지 자기는 교양이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세계관'을 모아 엮어서 타인에게 설교를 늘어놓는다. 공부는 더 이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더 이상 침묵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철저히 보급된 교양은 매일매일 인습적 사상의, 즉 착각의 건물을 세워서 그 가운데서 사회의 전 계층이 인공적인 감격으로 움직이고 있다." "40년 후에 그는 옛날 자신이 얻은 확신, 즉 대도회식 교양은 '나사못으로 틀어 올린 범용'을 육성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그 후 점차로 보급되고 점점 낮고 천해진 교양의 일반적 상태가 보증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이 '강제 평준화'에 대항하여 중세가 해소된 이래로 생겨난 교양인과 무교양인의 거리감 같은 것은 비교적 적은 폐해라고 변호했다."(381-2)


"니체는 교양 문제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외관상 상반되지만 꼭같이 파괴적인 작용을 일삼고, 그 결과로 최후에 이루어지는 두 개의 흐름이 본래는 전혀 다른 기초 위에 세워진 독일 교육 기관을 현재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교양의 확대로의 충동이며, 다른 하나의 그 교양의 감소와 약화로의 충동이다. 제1의 충동에 의하면 교양은 점점 넓은 범위로 퍼지게 마련이고, 제2의 경향에 따르면 교양은 그 최고의 자주적 주장을 방기하고 다른 생활 형태, 즉 국가의 생활 형태에 봉사하고 종속할 것을 요구한다. 확대와 감소라는 두 개의 숙명적인 경향을 생각한다면 비관이나 절망의 기분에 사로잡힐 것만 같다. 더욱이 정말로 독일적인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 즉 교양의 확대의 대조로서 수축과 집중의 충동, 교양의 감소의 대조로서 강화와 자족의 충동을 도와서 승리로 인도하는 일이 가능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면 별문제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교양에 대한 그의 비판은 철두철미 현존하는 인간성에의 비판이 된다."(386)


4장 인간성의 문제


"무한자를 원리로 삼은 철학적 신학과는 반대로 포이어바흐는 미래의 철학 때문에 유한성의 '참된 정립'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참된 철학의 근본은 신이나 절대자가 아니라, 유한하며 죽어갈 인간이다. 〈권리, 의지, 자유, 인격에 관한 명상은 인간 없이, 인간 밖에서 혹은 인간을 초월하여 행해질 때믄 모두가 통일도 필연성도 실체도 실재성도 없는 명상이다. 인간은 자유의 존재, 인격의 존재, 권리의 존재다. 인간만이 피히테의 자아의 근저, 라이프니츠의 단자의 근저, 절대자의 근저다.〉" "그러나 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과 해방되고 독립된 인간주의의 내용을 참으로 형성하는 것, 이것들을 포이어바흐는 구체적 인간이라는 그의 추상적 원리를 가지고 감상적 미사여구 이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엥겔스의 말마따나 〈그는 형식상 실제적이고 인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인간은 의연히 『종교철학』 가운데서 행동하는 추상적 인간이다.〉"(391-2)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을 구체적으로 본래부터 시민(유산계급)이라고 한 헤겔의 정의는 근대의 시민-자본주의적 세계의 현존하는 존재 관계에 있는 사실상의 '비인간성'을 나타내는 적절한 이론적 표현이며, 인간의 자기 소외의 표시이다." "인간을 시민사회의 단지 결정적인 국가에서 결정적으로 해방시켜 자기의 공동체 그 자체와 다름없는 공산주의적 인간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는 무산 계급에게 말을 건넨다. 왜냐하면 무산 계급은 현행하는 것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대립함으로써 하나의 전면저 과제를 가지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헤겔 법철학의 비판』 서문에서 이미 〈사회가 파괴되어 특별한 하나의 신분이 된 것이 무산계급이다〉라는 명제가 포함되어 있다. 무산계급만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기에 송두리째 인간 그대로의 성질을 모두 되찾는 능력을 가질 수가 있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의 이런 예외에서 오히려 새롭고도 일반적인 인간적 인간의 이념을 부각시키고 있다."(395-6)


"키아케고어의 '단독자' 개념은 그의 인간적이면서도 기독교적인 근본 개념이다. 보편적 '체계'는 그것이 정신의 체계(헤겔)이든 인간의 체계(마르크스)이든간에 세계사적인 방심 속에서 〈인간으로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인간 일반이 아니라 너와 나와 그 사람, 우리들이 제 나름으로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잊어버렸다." "〈헤겔의 변증법에 의하면 그것(연합의 원리)은 개인을 강화시킴으로써 약화시킨다. 즉 그것은 합병에 의해 수적으로는 강화하는 것이 되지만 윤리적으로는 약체화이다.〉" "자기가 이룬 자아는 추상적으로 개별화된 자아가 아니라, 그 생활 전체에서 구체적으로 보편 인간적인 것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대번에 아주 평범한 인간, 즉 부부 생활이나 직업이나 노동에 있어서 '보편자'를 실현하는 인간으로 본다. 참으로 실존하는 인간은 '똑같지 않은 전혀 개성적인 인간임과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이다. 그는 단신으로 '홀로 배우는 자'이면서 '하나님을 배우는 자Theodidakt'이다."(400-2)


"기독교와 인간주의의 내적 관련은 니체의 경우 신이 죽었을 때에 초인이 나타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죽음은 자기 자신을 의욕하는 인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어떤 신으로부터도 이미 말해지지 않는 인간에게 신으로부터의 탈출과 동시에 인간의 초극까지도 요구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신으로 있는 것과 동물로 있는 것의 중간에 놓여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전통적인 위치를 잃는다. 그는 무(無)의 심연 위에 팽팽하게 걸쳐진 줄 위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 위에 놓여진다. 그의 존재는 『짜라투스트라』의 서언 가운데 나오는 줄광대의 존재같이 본질적으로 위험 속에 있고 위험이 그의 '천직'이며 위험 속에서만 문제가 된 인간 '규정'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간주의는 버리려고 하면 버릴 수 있는 '편견'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인도주의적 '인간성'과 그 반동의 대조물인 영웅 기질의 편협도 인간의 참된 본성, 즉 그 비참과 위대, 취약함과 견고함을 한결같이 잘못 보기도 한다."(405-6)


5장 기독교성의 문제


"헤겔은 신앙과 지식의 '실증적' 대립을 보다 높이, 동시에 보다 본원적인 통일에로 지향하려고 시도했다." "헤겔은 종교적 신앙과 철학적 지식을 구별하여 분리하는 것으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이 비판하는 것은 종교가 반성 철학 내부에서도 여전히 가지는 '실증적 형식'뿐이다. 이 비판의 목표는 '실증'─기독교적 종교의 철학적 개조에 의한 실증적 형식의 원칙적 지양이다." "철학의 '내용, 요구, 관심'은 신학과 완전히 '공통'이다. 〈종교의 대상도 철학의 대상도, 영원한 진리의 객관성 그 자체의 모습, 하나님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 하나님의 설명인 것이다. 철학은 종교를 설명하는 일로써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은 스스로를 설명함으로써 종교를 설명한다. 철학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 대상에서 종사하는 것이고 이 대상, 즉 진리에 침투하는 사색의 정신이다. 이 종사에 있어서, 그리고 이 종사로 인한 주관적 자아 의식의 정화와 진리, 받아누림과 생동이다.〉"(412-4)


"종교의 '신학적 본질'을 그의 참된 인간학적 본질로 지양함은 포이어바흐에게는 헤겔이 단순한 '감정'이라고 냉소했던 바로 그 평범한 형식에로 후퇴하는 데서 생겨난다. 다름아닌 그 형식을 포이어바흐는 직접-감각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형식으로 재건하려고 했다. 그에게 종교의 초월성은 감정의 내재적 초월성에 기초하고 있다. 즉 감정은 당신 가운데서 당신을 넘어서 있다."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의 가장 일반적인 원칙은 종교의 근원적인 본질이 인간적 본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 원래의 본질적 욕구의 '대상화'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고유의 내용은 없다. 그러므로 바르게 이해한다면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인식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그러한 자기 인식이다. 〈종교는 인간 최초의 직접적 자아 의식이며〉 인간이 자기 자신에 이르는 도상에 있는 우회로이다. 〈신적 본질의 규정 일체가 인간적 본질의 규정이다.〉"(419-20)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획득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미 상실한 인간의 자아 의식이다〉라고 계속 말함으로써 포이어바흐를 넘어선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그러나 세속적 및 사회적 관계에서의 자기 자신이다. 그러기에 종교는 마르크스에게는 인간적 본질의 단적인 '대상화'가 아니라 '자기 소외'의 의미에서의 물화Verdinglichung이다. 종교는 도착된 세계이며 이 도착은 공동체로서의 인간적 본질이 아직 참된 현실성을 가지지 않는 동안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내세적 종교에 대한 싸움은 그런 까닭에 간접적으로는 스스로의 보충과 신성화를 위해서 무릇 종교를 필요로 하는 현세의 세계에 대한 싸움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무신론자는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믿는 것이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이제는 신들이 아니라 우상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상품' 세계가 바로 그러한 우상이다."(440-1)


"키아케고어와 포이어바흐 양자는 각자의 자기화(터득)이라는 입장에서 가톨릭적 실증성에 대한 루터의 비판으로 되돌아섰다.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적 신앙의 해소를 루터로부터 찾듯이 키아케고어도 소위 '수련'과 '반복'을 루터로부터 전개한다." "루터의 '나를 위함'과 '우리들을 위함'에서 포이어바흐는 신앙의 본질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추론하지만, 키아케고어는 그것을 '자기화'와 '주체성Subjektivität'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그러나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의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에 있는 강조점은 역시 주체적 내면성의 쪽에서 보는 자기화에 있다." "지각되는 정신은 지각하는 정신과 동일한 정신이기에 신은 본질적으로 〈사유〉 가운데서만 있다고 하는 헤겔의 명제는 기독교적 진리의 인간학적 본질이라 하는 포이어바흐의 원칙을 거쳐서 키아케고어에 와서는 신은 각자의 신께 대한 관계의 주체성 안에서 그리고 그 주체성을 위해서만 거기에 존재한다고 하는 실존적 명제로 변하여 간다."(449-50)


"'독일 철학'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니체의 통찰 이면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철학적 무신론'에 대한 니체의 안목이다. 그것은 철학의 과학적 무신론을 용납하였으나 끝을 맺지 못하고 중단했기 때문에 절반은 아직 신학이고 절반은 철학이다. 거기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쇠퇴'가 온다." "니체는 자신의 '몰도덕주의'까지도 기독교-프로테스탄트적 전통의 연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또한 기독교적 도덕의 나무에 맺은 최후의 과일이었다. 〈그 기독교적 도덕 자체가 도덕 부정을 성실한 것으로서 강요한다.〉 기독교 도덕의 철학적 자기 파괴는 역시 그것의 가장 고유한 힘의 한 조각이다." "니체가 어느만큼 기독교에서 졸업하고 있지 못했던가는, 그의 '반기독교'뿐만 아니라 그것 이상으로 그것과 대응하는 '영원회귀' 설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설은 명백히 종교의 대응물이고 키아케고어의 기독교적 역설이 절망으로부터의 도피로임에 못잖게 '무'에서 나와 '유'에 들어가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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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백승영 지음 / 책세상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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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니체 철학 입문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학적 연구는 체계적·역사적 방식으로 니체를 읽는다. 체계적 방식은 니체의 글을 그 창작 시기를 염두에 두어, 특정 사유와 다른 사유들 간의 시기상·내용상의 연관 관계를 살핀다. 예를 들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씌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즐거운 학문》에서 그것을 위한 수많은 예비 절차가 행해지며, 그 결정체는 신의 죽음이 고지되는 유명한 125번 잠언이다. 여기서 신의 죽음을 말하는 '미친 사람'은 차라투스트라라는 형상의 전(前)단계 역할을 한다.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1881년에 이미 니체의 머릿속에 떠오른 영원회귀 사유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 사유는 니체 후기 사유의 대표 개념인 힘에의 의지와 서로 완성해주는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힘에의 의지 개념에 의해 위버멘쉬 개념도 이론적·실제적 보증을 받는다. 그리고 위버멘쉬 개념은 허무주의 극복과 가치의 전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모든 사유의 결합체만이 니체 철학을 '긍정의 철학'으로 만든다."(82)


"역사적 연구 방식은 니체와 사유를 교환한 동시대인들, 그 시대의 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사유가들, 그가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칭찬해 마지않은 사유가들, 니체 스스로는 숨기고 있지만 그가 영향을 받은 사유가들, 그리고 니체가 영향을 미친 사유가들과 니체 자신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한다." "체계적·역사적 연구는 전승된 것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비판가의 모습과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이론가의 모습을 니체에게서 부각시킨다. 비판가Kritiker와 이론가Theoretiker로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말하는 철학자로 제시된다. 이 철학은 생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과 정당화 프로그램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생성하는 것으로 규명하고, 생성적 성격을 지닌 모든 것의 필연성과 유의미성을 도출해내어, 그것에 대한 조건 없는 긍정을 철학적으로 보증하고 싶어 한다." "디오니소스적 긍정은 니체 철학의 정수이며, 허무주의 극복 후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긍정 양식 중에서 최고의 양식이다."(84-6)


제2부 니체 철학의 과제와 방법론


"니체에게 해석이란 해석자의 인식 의지가 세계와 상호 작용 하면서 자신의 의미 세계를 구성해내고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즉 인간의 모든 인지적 활동은 해석이다. 철학적 활동 역시 의미 세계를 창조하는 해석 활동이다. 니체는 이런 해석 활동이 철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해석이고 해석일 수밖에 없는 것인 한, 철학은 수학 이론처럼 객관적으로 타당한 개념들의 체계를 구성해낼 수 없다. 또 참과 거짓을 객관적으로 확정해내는 작업도 할 수 없다. 니체는 의미 세계를 조직하고 창조하는 이런 해석 활동 일반을 예술Kunst이라고 부른다. 이 예술 개념은 예술가의 활동이나 이 활동에 의한 예술 작품의 산출이라는 협의적 제한을 넘어서서 학적-논리적 영역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서, 예술을 인지적 활동으로 이해하는 고차적 예술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도 그것이 해석인 한에서 이런 인지적 예술 활동의 일환이며, 철학자는 〈예술가-철학자Künstler-Philosoph〉인 것이다."(106)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건설하는 첫 단계는 전통적인 철학적 자명성 및 철학적 세계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때 니체가 사용하는 방법론은 심리-계보적 방법론이다. 계보적 방법론은 탐구 대상의 발생Entstehung 조건이나 유래 및 출처Herkunft를 밝혀내면서 탐구 대상을 해명한다. 이때 어떤 최종적인 결론에 대한 추측이나 목적론적 가정은 배제한다. 따라서 탐구 대상의 유래와 출처는 형이상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기원Ursprung일 수는 없다. 니체는 그 출처를 개인적이고도 집합적인 존재인 인간의 심리에서 찾아낸다. 그러므로 심리-계보적 방법론은 일종의 심리 분석의 형태로 진행되게 된다. 이 방법론에 의해 니체는 서양 사유의 자명성을 형성했던 토대가 형이상학적-도덕적-목적론적 해석의 결합체라는 것을 밝혀낸다. 니체는 서양 철학의 제 영역들이 한마디로 도덕 가치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고 생각한다."(120-1)


"니체가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형이상학의 기본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분법적 세계 해명이다. 이분법적 형이상학의 세계 해명은, 세계를 존재(혹은 존재의 세계)와 생성(혹은 생성의 세계)으로 이분하여 그것들의 본질적-가치적 배타 관계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전자에 존재적·인식적·가치적인 우위를 부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생성은 한갓 가상으로 평가절하된다." "이 이분법에서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인식과 탐구, 학문과 삶의 토대 역할을 해왔으며, 이 존재에 대한 믿음이 바로 생성 및 생성 세계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버린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니체에게 실제 세계를 가상으로 폄하하는 가상 아닌 세계, 즉 그 자체의 세계 또는 존재의 세계란 한갓 허구일 뿐이다. 니체의 생성의 철학은 '그-자체' 일반을 믿지 않으며, 그래서 '존재'와 마찬가지로 '현상'이라는 개념의 시민권을 거부하는 '생성에 대한 진정한 철학'이고 싶어 한다. 존재는 이제 다른 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124-5)


"이분법적 형이상학이 범하는 최대의 오류를 니체는 '도구와 규준의 혼동' 혹은 '과도한 순진함'에서 찾는다. 이 오류는 니체가 인간 이성의 소박한 오류로 제시하는 것으로서, 이성이 자신과 자신의 인식 범주들의 도구적 성격을 망각해서 그것들을 실재에 대한 규준으로 믿어버리는 독단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니체는 이러한 이성의 독단성에 의해 서양 형이상학의 전 역사가 규정되고 있다고 이해하며, 이것을 형이상학 비판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표상하고-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고-해석하는 주체'다. 이런 인간의 인식은 관점적 해석이고, 관점적 해석은 삶에 유용한 오류일 뿐이다." "니체는 이 점을 다음처럼 말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말하기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반대편에 서서 말한다. '사유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허구여야만 한다.' 사유는 실재를 잡을 수 없다.〉"(131-3)


"일반적으로 이론적 허무주의는 진리의 인식 가능성에 대한 부정을, 윤리적 허무주의는 행위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니체는 프랑스 문화 비판으로부터 허무주의 개념을 전수받아, '최고 가치의 탈가치'에 의해 초래되는 의미 상실의 경험 상황, 의미에 대한 물음이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허무주의 상황으로 규정한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주제'로 허무주의를 도입한 것은 1882년 가을부터다. 이때 씌어진 유고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는 허무주의 주제를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집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다. 이것은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 특히 정적 암살 행위들이 신문 지상이나 사실주의 문학에 등장하면서 허무주의 개념이 테러리즘과 동의어로 인식되어, 그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의미의 축소화 과정을 밟았던 시대적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주저로 기획했던 《힘에의 의지》에 '모든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시도'라는 부제를 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95-6)


"니체의 '유럽 허무주의에 대한 철학'에서 허무주의 주제는 '기존 가치의 탈가치', '유럽 허무주의의 역사', '새로운 가치의 설정'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가치의 탈가치'는 인식 이론, 형이상학, 미학을 비롯한 학문 일반 및 도덕, 정치, 경제 영역에서의 진리 상실과 신적 권위의 상실의 결과로서 등장한다. '유럽 허무주의의 역사'에서는 유럽의 역사가 플라톤적-그리스도교적 가치의 몰락 과정, 신 개념의 의미 상실 과정, 그리스도교 도덕의 무력화 과정으로 그려진다. 즉 유럽 역사가 허무주의 과정으로 재조명된다. 이 허무주의 과정은 힘에의 의지라는 새로운 세계 해명 원칙과 위버멘쉬의 등장, 그리고 위버멘쉬에 의한 '새로운 가치 설정'으로 극복되어 새로운 유럽의 미래가 예견된다. 이렇듯 허무주의 주제의 세 부분은 서로 불가분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서의 허무주의 주제는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와 위버멘쉬 개념군 안에서 움직인다."(197)


"완전한 허무주의는 허무주의의 극단적 형태이자, 동시에 허무주의를 그 반대의 방향으로 역전시키는 허무주의 형식이다. 그래서 인간을 부정의 상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에의 의지를 긍정에의 의지로, 그것도 디오니소스적 긍정에의 의지로 전환시키는 허무주의 형식이다. 허무주의가 단지 과거의 것에 작별을 고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감행하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을 위해 니체는 인간에게 근본적 부정과 근본적 긍정 사이에서, 절대적 퇴락의 가능성과 허무주의 극복 가능성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고 니체는 허무무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을 오로지 인간 의식의 전환 여부에서 찾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가치의 설정자이며 창조자로, 해석 주체로 긍정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관점적 인식 상황이 단순한 허무적 위험으로서의 데카당스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적극적 기회의 역할을 하는지가 결정된다."(210-3)


"인간의 변화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치의 설정자이자 창조자로, 해석 주체로 긍정해야만 가능하다. 이런 긍정은 자신의 해석이 자신의 힘과 삶을 위한 전략에 의해 수행되는 관점적 평가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이는 곧 자신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오류이고 일면적일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긍정이다. 더불어 해석의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미 있고 필연적이며 정당한 해석이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동시에 이 의미 필연성이 실재 자체와 일치되거나 실재 자체의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렇게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해석 주체로 인정하면 궁극적으로 존재 그 자체는 인간에게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긍정하게 된다. 이는 곧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의미하며 자신의 이성 사용에 결코 절대적 요구를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자신을 해석 주체로 긍정하는 이 주체는 니체에게서 위버멘쉬Übermensch라는 명칭으로 불린다."(214-5)


"인간은 자신의 경험 상황의 무의미함과 그 경험 상황의 주체로서의 자신의 삶의 무의미함과 무가치함을 경험한다. 영원회귀 사유는 이런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이 영원히 반복되고 결코 종결되지 않으며, 이것으로부터 도망칠 가능성이 전혀 없으리라는 경험을 가능케 한다." "영원회귀 사유의 결정적인 기능은 이 사유가 자신의 이론적 적절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사유의 〈비이론적〉인 면, 즉 이 사유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는 사유는 인간을 기습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사유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단하게 한다. 이 기능을 가리켜 니체는 〈약한 자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고, 강한 자도 결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와 강자를 구별하는 목적이 약자의 제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약자일 가능성을 가진 인간을 강자로 만드는 데에 있다는 것, 바로 여기에서 영원회귀 사유의 목표인 허무적 상황의 극복 가능성이 주어진다."(221-3)


제3부 새로운 세계 해석의 건설: 생기존재론


"생성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생성의 세계=힘에의 의지=생기Geschehen라는 기본 공식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세계의 기본 사태를 곧 힘에의 의지이며 생기 자체로 이해한다. 따라서 니체의 입장을 마그라이터가 제안한 〈생기존재론〉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다." "이렇듯 니체의 생성에 대한 설명은 (전통적 의미로는) 반형이상학적이지만, 여전히 제일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니체의 이런 프로그램은 근대의 경험철학에서 행해진 반형이상학적 환원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니체에게는 카르납과 달리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학적으로 다루어질 수 없는 〈가상 문제〉는 아니며, 형이상학적 문장들은 단순한 〈삶의 느낌에 대한 표현〉일 수 없다."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의도에 따라 니체는 생성을 오로지 생성적 성격에 의해서만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더 나아가 긍정할 수 있는, 즉 〈생성의 무죄를 입증〉하는 방법을 모색한다."(293, 296)


"생성 철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유 단초는 바로 '생성은 살아 있는 존재Sein'라는 것이다." "존재는 살아 있는 것이고 생성의 과정에 있다. 이는 니체가 이해하는 전통 형이상학의 도식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 아니고,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를 새로운 공식, 즉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고, 되어가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로 대체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와 대립되는 것은 이제 '생성'이 아니라 '생성하지 않음'이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생성'은 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존재'다. 니체 철학은 이렇듯 '전도된 플라톤주의'다. 전도된 플라톤주의가 제시하는 존재와 생성의 일치에서, 존재하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의 과정에 있을 수 있는지는 바로 생기 개념에 의해 설명된다. 이 개념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원리는 이제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힘에의 의지인 한에서 되어간다'라는 윈리로 구체화된다."(310-2)


"힘에의 의지를 니체는 추동하는 온갖 힘의 원천으로 이해한다. 〈추진하는 힘은 힘에의 의지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외의 심리적이거나 역동적이거나 심리적인 힘은 없다〉라는 니체의 단언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의지의 힘의 실제 영역은 무기적인 세계에서부터 인간의 지각과 지성 영역을 거쳐 물리적 세계에 이르기까지 전 존재 영역을 포괄한다. 이렇게 해서 힘에의 의지는 '존재의 가장 내적인 본성'으로 니체에 의해 상정된다. 이것에 의해 니체의 초기부터의 기본 구상인 '살아 있는 존재'의 내용이 구체화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이 변화와 생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힘이며, 그것도 지배를 원하고, 더 많이 원하며, 더 강해지기를 원하는 의지의 힘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의지의 힘은 바로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전통 형이상학의 정식을 뒤집은 '존재하는 것은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정식은 이제야 구체적인 내용을 얻게 된다."(331)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존재의 가장 내적인 본성〉이라고 부른다. 《선악의 저편》에서 힘에의 의지를 세계의 〈본질essence〉로 명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본질' 혹은 '본성'이라는 철학 용어는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니체에게서는 기피되는 용어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그가 여전히 전통 형이상학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이 용어를 힘에의 의지에 대해 사용한다. 힘에의 의지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 성격을 갖는 힘에의 의지는 그 자체로 자존하는 것도 아니고, 실체적 존재도 아니며, 형이상학적 유類도 아니다. 오히려 힘에의 의지는 관계를 맺으면서만 존립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작용하고 활동하는 의지 작용이다. 즉, 관계적 존재다." "더불어 이런 힘에의 의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생기라는 이름을 부여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내재하는 〈내적 생기innerliches Geschehen〉이기도 하다."(333-4)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자연 전체의 현재적인 기체〉, 모든 개별적인 사물에 〈근원적인 창조력〉이다. 즉 세계의 가장 내적인 본질인 의지는 곧 내적인 힘이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서의 의지를 그는 〈사물 자체〉로 인정한다. 〈모든 표상은, 모든 대상은 그 어떤 종류이든 간에 현상이다. 사물 그 자체만이 유일하게 의지인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힘Kraft 개념에 포함시키던 기존의 표상 방식에서 벗어나 힘을 본성상 의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형이상학은 곧 힘의 형이상학이 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작은 문〉이면서도 동시에 그 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열어 보이는, 〈모든 사물의 좀더 내적인 본성〉이라고 여긴다. 의지는 사물 그 자체인 동시에 현상(더 정확히는 표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 놓여 있는 형이상학적 유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주어진 '가장 직접적이고도 가장 명료한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346)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형이상학적 일원론을 지향한다." "이런 실재를 니체는 한갓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실재성의 〈창백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칸트의 물 자체와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칸트에 이르기까지 이성적 인간의 내적인 규정 근거였으며, 쇼펜하우어에게는 모든 존재자의 일차적이면서도 근원적인 것이었던 의지는, 니체에게는 모든 역동적인 관계들의 일차적인 원천이 된다. 의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의지의 〈힘의 급작스러운 분출이나 폭발〉만이 있을 뿐이다. 니체에게 의지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고 잃어버리는 의지들이며, 이미 다른 의지들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다. 의지의 이런 '내용'과 '목적'을 없애버리게 되면 의지의 성격 역시 없애버리게 되며, 내용과 목적이 사라진 의지는 그야말로 〈한갓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게 된다."(346-8)


"힘에의 의지는 힘 소비의 극대 경제의 원칙을 따른다. 의지는 항상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의지들 간의 긴장 관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한다. 니체는 이런 힘 소비의 극대 경제 원칙이 '매 순간' 적용된다고, 즉 '예외 없이' 그리고 '중단 없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즉 '당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성상 더 많은 힘을 원하는 힘에의 의지는 '모든 순간' 자신의 힘의 극대화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작용 방식의 '지속'은, '매 순간'의 당위는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설명의 필요성 때문에 니체는 힘 소비의 극대 경제 원칙과 영원회귀 사유를 결합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것의 영원회귀'는 곧 '같은 것의 같은 것으로의 영원회귀'를 의미하게 된다. 즉 '힘에의 의지'가 '힘에의 의지라는 자신의 본성으로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의지의 힘은 항상 자신의 본성으로 되돌아오고, 매 순간 자신의 본성을 실현한다."(362-3)


"힘에의 의지의 이런 성격은 매 순간 힘의 최고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생성의 전 과정에서 하나의 힘의 극대점이나 힘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생성의 전 과정이 매 순간 힘의 극대화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힘의 균형 상태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힘의 균형 상태라는 것은 힘들 간의 싸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일종의 정지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매 순간 힘의 극대화를 꾀하고 실현시키는 힘에의 의지의 본성에 어긋난다." "영원회귀에서의 영원성은 무시간성이나, 시간적 과정의 멈추지 않음, 혹은 헤겔적 의미의 '끔찍한 무한성', 피안에 대한 믿음에 각인된 종교적 영원성과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절대적인 생기 필연성이 확보되는 개개의 순간의 영원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각 순간들이 그것들의 영원회귀를 원할 정도로 필연적이고 가치가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순간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순간들이 힘에의 의지의 생기 사건이기 때문이다."(364, 376)


제4부 해석적 지식과 해석적 진리: 관점주의 인식론


"니체는 관점성Die Perspektivität을 생/삶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곧 더 많은 힘을 더기 위한, 즉 자기 극복을 통한 자기 상승을 목적으로 하는 의지 작용의 조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필연적 관점주의'는 해석의 보편성에 대한 다른 식의 해명이기도 하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의 작용을 해석 행위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존재자 내부의 유기적 과정은 힘을 얻어 성장을 원하는 의지에 의해 수행된다. 이런 수행 방식이 곧 해석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관점을 설정하는 힘의 보편성은 곧 해석의 보편성을 의미하게 된다." "인간은 힘에의 의지가 활동하는 장이다. 신체-주체의 힘에의 의지는 신체-주체를 단순한 인식 주체가 아닌 해석 주체로 만든다. 해석 주체의 인식 과정은 곧 생기 현상으로서의 해석 작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석 주체의 해석 과정에서의 특정한 관점을 규정하는 규제적 원리가 힘에의 의지고, 이 점은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관점을 설정하는 힘'으로 명명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428-30)


# 니체 철학에서는 언제나 힘에의 의지의 수행=생기=해석 행위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신체 개념은 인간에 대한 이원적 해석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기도 하다. 신체는 이원화할 수 없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지시하는 명칭이며, '큰 이성die groβe Vernunft', '나Ich', '자기 자신das Selbst'은 신체의 또 다른 명칭들이다. 니체가 신체 개념을 매개로 하여 극복하고 싶어 하는 인간에 대한 이원적 해석이란, 인간을 정신/이성/영혼과 이에 대립되는 육체라는 두 가지 단위로 설명하는 해석을 말한다." "니체에 의하면 순수한 이성의 동일성으로 결정되는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인 '나'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없다." "니체는 육체 중심이든, 이성 중심이든 간에 인간을 두 단위로 분리하여 설명하는 모든 해석을 형이상학적 인간관으로 규정하며, 인간에 대한 오해라고 단정 짓는다. 인간은 이런 구분에 의해 이원화될 수 없는 총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영혼/정신 부분과 육체 그리고 의지들이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신체인 것이다."(435-7)


"신체는 창조 주체다. 여기서 창조는 '가치 평가 작용' 혹은 '의미 창조 작용'을 말한다. 신체는 자신의 자기 극복적인 삶을 위해, 위버멘쉬적 삶의 유지를 위해 평가 작용을 한다. 따라서 어떤 것의 가치와 의미는 그 자체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평가 작용에 의해 비로소 부여된다. 이 가치 평가와 의미 부여는 전적으로 신체의 목적을 위한 것이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은 전적으로 신체 의존적이다. 우리가 선과 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은 그 자체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체의 자기 극복적인 삶의 유지를 척도로 선과 악의 내용이 결정된다. 신체는 이런 평가 작용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성해간다. 평가 작용은 신체의 삶의 실천인 것이다. 그러나 한번 평가된 의미와 가치는 결코 고정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평가 작용에 의해 유지되지만, 이 평가 작용에 의해 상승되고 변화된 삶은 또 다른 평가 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442)


"해석은 관점적 평가다. 니체에게서 관점성은 모든 삶의 근본 조건이며, 인간 인식의 근본 조건이기도 하다. 인식은 관점성에 의존하며, 인식은 단적으로 관점적이다. 관점적 인식은 가치를 평가하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해석은 주체의 능동적인 가치 평가 행위이며, 가치 각인적 성격을 갖는다. 이 점은 해석의 특징을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해석으로서의 인식은 주체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 행위인 것이다. 대상 인식에서 규준이 되는 물음은 이제 〈이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무엇인가?〉이며, 인식 행위의 결과는 따라서 주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질적인 의미-해석이다. 의미-해석은 이미 주어져 있는 의미에 대한 획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체가 자신에 대해서만 '의미가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의미 창조 작용의 결과다. 하지만 이 행위는 언제나 특정한 목적하에서 이루어진다. 그 목적은 삶의 유지다. 그것도 항상 성장하는 형태의 삶의 유지다."(458-9)


"니체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인식 활동에서 인간은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주관적 관점을 배제한 외재적 관점을 가질 수 없다. 또한 해석된 세계는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이고, 주체가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그런 세계다. 이 세계야말로 바로 주체에게 '상관있는' 세계다. 그러나 이 세계의 상정이 곧 대상으로서의 세계의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해석된 세계의 범위는 단지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의 범위일 뿐, 대상으로서의 세계 자체의 범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내 해석의 한계는 나에 의해 경험된 세계의 한계일 뿐이다. 이렇듯 니체는 세계에 대한 관점적 관계 맺음의 불가피함을, 그리고 해석 세계가 인간 경험의 한계이며, 경험의 한계가 바로 인간 자체의 한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니체는 한편으로는 본질 형이상학을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 경험 인식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인 한계 설정을 하는 약화된 인식론적 실재론을 표명하고 있다."(473-5)


"해석은 비록 필연적으로 오류인 가상Schein이긴 하지만, 니체가 인정하는 유일 실재, 즉 힘에의 의지에 의해 '의욕되고 산출된' 가상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인식이다. 가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재의 기능이며, 가상은 실재에 의해 의욕되고 만들어진 가상이다." "'현상'이자 '의욕되고 산출된 가상'인 해석은 이렇게 해서 기존의 참-거짓의 구분을, 기존의 '참-가상'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있다. 해석은 비록 가상적 현상이지만, 이것은 우리의 해석 세계이며, 힘에의 의지라는 실재의 산출물이다. 이런 해석과 대립되는 것은 참된 인식이나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해석과 대립적인 것은 우리의 해석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 것, 즉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니체는 이것을 기존의 분류 도식을 벗어나서 '다른 종류의 현상 세계'라고 부른다. 이 세계는 비록 지금은 우리의 해석 세계로 들어오지 않지만, 우리에 의해 형식화되고 해석될 가능성이 배제되지는 않은 세계다."(475-7)


"타자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라는 것은 우리의 규약적이고도 가치평가적인 해석적 이해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자에 대해 공정하지 않은ungerecht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을 니체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정치 않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 이런 '부조화'야말로 우리를 타자에 대한 공정한 이해gerechtes Verstehen로 이끄는 동인이 된다. 공정치 못함에 대한 인식과 통찰은 우리에게 더욱 섬세한 해석적 이해를 원하는 의지를 갖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해석은 다름 아니라, 각 개별자들의 개별성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거나 일반화하지 않은 해석을 말한다." "섬세한 해석을 원하는 의지는 타자에 의해 사실적인 이해나 동의나 합의를 하라는 강제와 타협하지 않는다. 이런 의지를 갖는 해석자를 니체는 공정함이라는 특성을 갖는, 공정한 주체로 상정한다."(531)


제5부 비도덕주의 윤리학


"니체가 보기에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이 추구해온 진리는 바로 도덕적 진리들이며, 그것도 편견으로서의 도덕적 진리들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현실적·자연적 삶을 부정하는, 즉 삶의 본능을 부정하는 반자연적 성격을 띤다. 이런 특징은 형이상학의 성립과 전개에서, 그리고 인간의 진리 추구 노력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서양의 도덕과 형이상학과의 숙명적 결합은 이미 지적된 '존재와 생성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형성이나 '도덕적 존재론으로서의 철학'에서뿐 아니라 '선악의 이분법'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니체는 생각한다. … 이렇게 해서 선과 악,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는 존재적으로나 가치적으로 분리되고, 본질적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이 도덕은 도덕성을 종교적 초월이나 철학적 초월을 통해 존재 세계/저편의 세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니체는 이런 형이상학적 특성을 갖고 있는 도덕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이분법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며, 인간의 삶을 부정하는 결과를 갖기 때문이다."(550-1)


"니체는 도덕적 가치 판단에서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를 판단의 척도로 상정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기애에서 발생하며, 그런 한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기적인 행위들이다. 따라서 이기적인 행위와 비이기적인 행위 사이에는 단계와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후에 니체는 이기심 '자체'가 아니라 이기심의 '주체'가 이기심이나 이기적 행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밝힌다. 이기심은 예컨대 위버멘쉬적 삶을 목적으로 하는 주체의 자기 사랑일 수 있다. 이런 이기심을 갖는 주체는 '고결한 인간'이자 '강자'이며, 그의 이기심은 '건강하며 건전한' 이기심이다. 이렇게 해서 니체는 선과 악의 차이를 '선 그 자체'와 '악 그 자체'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차이로 환원해버리는 비도덕주의의 입장을 선취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기심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이기적인가 하는 것이다. 이기적 '행위'가 아니라 이기적 '행위자'가 문제인 것이다."(556-7)


"〈자연이 퇴화된 자들을 동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이 반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인류에게 있어서 생리적이고 도덕적인 악의 증대는 그와는 반대로, 병들었고 반자연적인 도덕의 결과인 것이다〉라는 니체의 단언처럼, 반자연성으로부터 도덕의 구제는 니체에게 시급한 과제다. 니체의 프로그램은 도덕이 갖고 있는 반자연적 성격을 없애고, 도덕의 자연적 유용성을 다시 밝혀내고 부여하여, 도덕을 자연화하고자 한다." "니체의 관심은 특정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전적으로 행위 주체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그 자체로는 선한 행위도 악한 행위도 없다는 것을 밝혀내어 선과 악에 대한 고정 관념을 없애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토대로 니체는 도덕의 기원이 도덕 외적=비도덕적=자연적 유용성이며, 도덕 가치도 오로지 이것에 의해서만 평가되어야 한다는 정언적 명제를 세우고 싶어 한다. 〈자연명법으로 정언명법을 대체한다〉라는 짤막한 표명은 니체의 이런 관심을 대변해주고 있다."(584-6)


"반자연적 도덕은 무리 본능과 평균 본능과 데카당스 본능의 소유자들의 힘에의 의지가 만들어낸 도덕이다. 그래서 생명력의 퇴화를 가져오고 삶을 부정하는 데카당스 도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좀더 차원 높은' 새로운 도덕은 다른 종류의 해석 주체를 상정해야만 한다. 즉 스스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가치 평가자, 자기 극복과 자기 지배를 할 수 있는 자, 이런 삶을 영위하고자 의식적-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자, 즉 강자다. 이런 강자를 니체는 노예와 대립시켜 '귀족적 인간' 혹은 '주인Herr'이라고 부른다." "주인 도덕에서 '좋음gut과 나쁨schlecht'의 대립은 '고귀함vornehm과 경멸적임verächt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반면 노예 도덕에서 '선gut과 악böse'의 대립은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음ungefährlich과 위험함gefähr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도덕 유형은 고도로 혼합된 문화 체계 안에서뿐 아니라 한 개인의 영혼 속에서도 공존하고 침투하며 중재되고 있다."(590-1)


"노예 의식을 갖는 개인들 사이에서 타자에 대한 승인은 여론이나 평판 혹은 대중들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반면 주인 의식을 갖는 사람들 간의 서로에 대한 승인은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타자에 대한 긍정에서 성립된다. 자기 자신을 긍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선과 악의 판단 주체라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 긍정은 자신의 가치 판단과 그것의 행사가 필연적으로 개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한 긍정이다. 이런 반성적 자기 제한은 주인 의식을 갖고 있는 강자의 힘이다. 강자의 반성적 자기 제한은 타자의 가치 판단의 개별성과 차이를 인정하게 한다. 타자에게 자신의 가치 판단에 동의하거나 합의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의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거기서 도출된 타자의 판단을 인정하고 승인한다. 타자 역시 자신처럼 가치 판단의 주체이며, 자신의 창조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주체임을 인정한다."(594-5)


제6부 예술생리학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은 내용상으로는 신화적 세계관, 욕망과 본능, 인간의 불가항력적인 비극적 운명과 고통, 인간 존재의 경악스럽고 부조리하고 잔인한 삶, 죄와 속죄, 자신의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식상으로는 비극적 운명의 개인을 구원하는 역할로서 합창과 음악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성=덕=행복이라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 공식이 신화적 환상과 비극적 운명을 의식성으로, 죄와 속죄의 상관성을 기계적 인과론으로, 동정과 일체감과 음악(합창)의 장을 논리적·이성적 토론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비극의 주인공은 이제 변증론자이며, 그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 비대화로 인해 파멸한다." "니체는 이런 종말의 책임을 소크라테스주의와, 〈소크라테스적 합리주의의 시인〉이자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를 표방하는 에우리피데스에게 지운다. 니체의 이런 입장은 《비극의 탄생》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630-1)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제시하는 두 예술 충동 중에 아폴론적 예술 충동은 형상과 형태를 만들고 제공하는 충동이자 척도를 설정하고 틀을 규정하고 인식하는 충동이다. 이 충동은 '개별화의 원리'를 사용하여 구분 가능하고 산정 가능하며 인식 가능한 조형 세계를 만들어낸다." "반면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은 인간 안에서 무매개적으로 솟구치는 예술 충동으로서, 울타리나 제한이나 형태를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여 모든 것과 그리고 세계의 근원적 모습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지향한다." "그런데 니체는 이 두 예술 충동이 대립적이지만 서로를 요청하는 관계에 있으며, 변증법적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한다. 즉 예술 활동은 이 두 충동이 같이 작용하는 것이다. 단지 예컨대 음악에서는 디오니소스적 힘이, 조형 예술에서는 아폴론적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할 뿐이다. 이 두 예술 힘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합일의 상태를 니체는 그리스 비극에서 찾는다."(632-4)


"예술가-형이상학은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역시 오로지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고 한다. 니체에게서 (그리스인들의) 삶은 다양한 활동의 장이자, 고통과 온갖 종류의 부조리와 잔인함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거대한 불협화음의 장이다. 삶의 이런 불협화음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해소할 그 어떤 현세적 해결책도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예술이라는 매개물을 요청하게 된다. 예술을 통해 인간 역시 '형이상학적 위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위로는 도덕에 기초한 초월 세계의 상정이나 정의로운 미래 제국의 건설에 대한 약속과는 다르다. 이 형이상학적 위로는 합리적-도덕적 사고를 넘어서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예술을 〈반도덕적 예술가 신〉이라고 부른다. 형이상학적 위로는 또한 자의적 낙관주의일 수도 없다. '가상의 가상'을 통한 '가상에 의한' 근원 일자와의 합치에 대한 약속인 것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비극이라는 예술 양식에 의해 이행된다."(642-3)


"니체는 1881년 이후 예술가-형이상학 대신에 새로운 철학적 과제를 설정한다. 이제 그에게 인간의 삶과 세계는 형이상학적 위로라는 정당화를 통해서만 긍정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삶과 세계는 서로 대립되는 측면들을 필연적으로 갖고 있으며, 그 여러 측면들에는 없어도 좋은 것이나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 가능성을, 즉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구성해보고자 한다. 이런 철학에 필요한 도구로서 니체는 다시 예술을 주목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예술은 해석으로서의 예술이다. 해석으로서의 예술은 힘에의 의지의 창조력의 소산이다. 그런 한에서 관점적 평가 행위이며 가상이다. 하지만 이 가상은 형이상학적 위로 수단, 아름다운 환상으로서의 가상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힘에의 의지의 예술 활동은 삶의 어두운 디오니소스적 심연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게 한다. 이런 긍정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지혜라고 부른다."(647)


"예술생리학 프로그램은 니체의 관점적 세계 경험을 토대로 하며, 예술을 힘에의 의지에 의한 해석으로 규정한다. 힘에의 의지는 인간 안에서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창조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의 이런 창조 활동을 예술 활동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힘에의 의지의 활동은 그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예외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세계의 본질이다.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이고, 다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것들의 활동은 모두 예술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거대한 예술 활동의 장이며,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힘에의 의지의 작용에 대한 다른 명칭이 '해석 작용'인 한에서, 세계는 거대한 해석 작용의 장이며, 거대한 해석 작품이다. '스스로 분만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세계'라는 니체의 유명한 단언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이렇듯 초기의 형이상학의 토대였던 근원 일자는 이제 힘에의 의지에 창조의 주체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649-50)


"인간의 미적 체험에 대한 니체의 분석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입장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선사한 것이며, 세계가 아름답다는 판단은 인간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니체의 표현대로 〈아름답다는 판단은 인간의 종적 허영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미학의 제1진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다. 인간 외에는.〉" "하지만 니체가 전적으로 주관주의적 입장만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입증된 것'은 일종의 집합적인 생존 조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미 판단이나 미적 가치는 주체 의존적이기는 하지만, 각 개인의 주관성의 영역으로 전적으로 환원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니체는 미적 체험의 집합적 생존 조건 측면을 강조하면서 이런 환원에 대해 경고한다. 이것은 현대의 미학 이론이 말하는 객관적 상대주의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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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비토리오 회슬레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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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독일 철학의 역사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독일 정신'이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철학사에서 의미와 연관을 추구하는 사람, 철학사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최소한 유럽 철학사를 하나의 통일로서 고찰해야만 한다." "요컨대 독일 철학의 고유한 역사를 박제화하는 것은 사유의 세계 공화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시 연관들을 보지 못하게끔 하거니와, 그렇게 만들어진 독일 철학의 역사는 분명히 오직 세계 수학의 비자립적 부분으로서만 존재하는 독일 수학의 역사와 비슷하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독일 철학자들에게만, 또는 최소한 그들 모두에게만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확실히 18세기의 독일 철학 거의 전부는 계몽(Auflärung)의 결정적 이념을 수용하거나 최소한 그것을 의식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계몽은 철저히 유럽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독일 철학'이란 다름 아닌 정신적으로 수준 높은 동일성을 창출하고자 하는 독일 국민과 독일 국민국가와의 욕구에 힘입은 인위적인 구성물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떠오른다."912-5)


"그렇지만 구술 문화에서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들과 정신적으로 결실 있는 모든 직접적 상호 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런 점은 다수의 그러한 상호 작용에 대해 또한 문자성(文字性)의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더욱이 국민이 일차적 동일성 요소로 떠오름에 따라 의도적으로 강화된 언어 장벽이 국민국가의 시기에 철학적인 국민 문화를 산출했다는 것은 처음부터 개연적이다. 따라서 독일의 계몽철학이 분명히 유럽의 계몽철학과 공동의 특징을 지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독일어 사용을 넘어서 그것을 이웃 나라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특수한 형태화를 획득했다는 작업가설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함축한다. 이런 점은 독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종교적 신앙 고백, 즉 독일 정신을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게 주조해낸 루터교 출신인 만큼 더욱더 개연적이다." "우리는 〈독일 정신에는 결정적으로 정신 개념(Geistbegriff)에 대한 추사유(Nachdenken)가 속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17-9)


2 영혼에서 신의 탄생: 중세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독일어로 철학함의 시작.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중세 사유의 완성과 돌파


"(독일의) 고유한 철학적 사상을 민중어로 처음으로 분명히 표현한 것은 도미니크회 수도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였다. 내 생각에는 이 이유 및 또 다른 두 가지 이유에서 그를 최초의 독일 철학자로 간주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그의 이념들 가운데 많은 것은 첫째, 이미 동시대인들이 감지했을 만큼 그리스도교 주류와 당혹스러울 정도로 눈에 띄게 다른, 훗날 독일 전통의 종교철학적 사상을 선취하고 있다." "둘째, 비록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독일 관념론의 발전에 본질적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청년 헤겔은 에크하르트를 자신의 종교철학 강의에서 인용했으며, 에크하르트는 이미 1864년 요제프 바흐의 책에서 〈독일적 사변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았다." "에크하르트가 민중어의 이용을 명시적으로 정당화한, 아마도 후기 저술인 〈신적 위로의 책〉은 이론적으로 더 의미심장하다. 요컨대 오로지 민중어로만 우리는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36-8)


"독일의 철학적 어휘 창조를 넘어 에크하르트 철학에서 내용적으로 혁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에크하르트 철학은 이성주의적 근본 기획을 직접적인 신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이 신앙을 정당화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견해는 중세 초기에 전적으로 널리 퍼졌다. 물론 에크하르트의 도미니크회 형제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본래적인 신앙 조항은 이성을 벗어난다고 가르쳤다. 그의 견해는 곧바로 가톨릭교회의 공인 교리가 되어 교회의 권력 요구를 뒷받침했으며, 그에 의해 교회는 자기의 교의에 대한 이성적 근거짓기를 더 이상 지시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 반대해 에크하르트는 빛이 비추어진 사람들은 조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직 믿을 뿐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거라고 강조한다." "직접적인 신 관계에 대한 관심을 에크하르트는 그리스도교적인 유럽 도처에서, 아니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신비주의자들과 공유한다."(38-9)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역시 이성으로부터 논증하며,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없는 삼위일체(Trinität)와 성육신(Inkarnation, 육화)이라는 특수하게 그리스도교적인 교의들이 문제되는 곳에서도 이성적 신학을 추진한다." "매혹적인 것은 쿠자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상에 대한 비판을 그리스도교적 정신에서 수행한다는 점이다. 근대 과학은 참으로 그리스도교의 '세속화'가 아니라 고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맞서 특수하게 그리스도교적인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에 빚지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윤리적 혁명도 이와 유사한데, 그것은 근세에 강화된다. 물론 새로운 과학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만약 다른 천체들에도 이성적 존재자가 존재한다면, 근대의 독자는 성육신을 위한 논증이 그에 기초한 인간 본성의 특수한 지위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50-2)


"(《신앙에서의 평화에 대하여》 같은) 쿠자누스의 저술에서 새로운 것은 그것이 훨씬 더 많은 수의 종교 옹호자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묘사되는 대화는 〈지성의 하늘에서〉, 더 나아가 로고스와 베드로 그리고 바울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다. 이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이미 전제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전의 종교 간 대화들과는 눈에 띄게 다르다. 그러나 로고스는 모두에 의해 전제된 이성이다. 이성과 그 전제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니콜라우스는 수많은 민족 신앙을 넘어서 있는 하나의 철학적 종교를 근거짓고자 한다. 종교의 통일성은 의식(儀式)의 다수성과 양립할 수 있다. 성사(聖事)들은 분명히 평가 절하된다. 정당성은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에만 달려 있는데, 그 신앙은 물론 행위에서 그 표현을 발견해야만 한다. 여기서 니콜라우스는 종교 개혁의 결정적 문제를 선취한다." "18세기 후반에 성립한 헤겔의 관념론은 쿠자누스의 그것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형이상학과 자연철학을 전개한다."(56)


3 종교 개혁에 의한 철학적 상황의 변화: 파라켈수스의 새로운 자연철학과 야코프 뵈메의 신에게서의 아님


"이미 16세기에 한편으로는 종교 개혁에 의해 고무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교의로부터 벗어나 루터교로부터 핍박받는 성령주의적·정신주의적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성서가 아니라 정신(Geist, 영)이 결정적 원리로 여겨졌다." "이런 사유 방향에서 특히 매혹적인 것은 파라켈수스의 종교적 표상이다. 파라켈수스는 아무런 거처도 지니지 않는 성령 안에 있는 교회를 믿으며, 어떠한 강제적 개종도 〈악마로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거부하고, 세례받지 않은 아이들도 포함해 모든 아이의 구원을 가르쳤다." "정치적 이념에서 파라켈수스는 신분들의 폭넓은 평등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적 개입을 그리스도교적 이상으로서 옹호한다. 귀족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토지에 대한 권리는 언제나 다만 황제로부터 빌려온 것일 뿐이다. 모두는 노동할 의무를 지닌다. 노동 없는 소유권은 도둑질이다. 그는 사형을 거부한다. 그리고 오로지 방어 전쟁만을 도덕적으로 허락할 수 있다."(64-8)


"근세의 신기원적인 최초의 독일 철학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는 야코프 뵈메에게 돌아가야 한다." "16세기 후반의 프랑스 철학은 회의주의적 에세이스트 미셸 드 몽테뉴에 의해 그리고 17세기 전반에는 형이상학과 과학에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 데카르트에 의해 광채를 발한다. 영국에서는 정치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근대 경험과학의 방법적 기초를 발전시킨다. 베이컨과 동시대인이자 정신적으로 가장 활기찼던 슐레지엔 출신의 뵈메는 반면 구두장이였다. 그는 결코 공부를 한 적이 없고 따라서 라틴어를 쓸 수 없었지만, 신비적 비전을 체험하고서는 자기의 전통적인 루터교적 성서 신앙을 신과 자연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전개에 관한 철학적 설명을 통해 좀더 깊이 근거짓고자 했다." "이 소박한 사상가는 철학적 전통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엄청나게 표현력 강하고 창조적인 언어로 자연에 대한 자신의 열광 및 종교적 두려움과 희망을 난삽한 동시에 웅대한 현실 이미지로 표현했다."(68-9)


"고통과 악은 어디로부터 세계로 오는가? 우리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발견하는 것과 같은 고전적 대답은 결여론이다. 즉 나쁜 것 또는 악은 존재에서의 결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모든 것의 창조주라면 그것들도 신 안에서 그 근거를 지녀야만 한다. 뵈메는 신 자신 안에 부정적 원리를 갖다 대는 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며, (마지막 저작에서 추상적 방식으로 '예(Jah)'와 '아님(Nein)'으로 언급하는) 긍정적 원리와 부정적 원리의 공동 작용으로부터 외적 세계에서의 신의 현현, 즉 오로지 신적 본질의 전개일 뿐이고 다른 두 원리를 결합하는 자신의 세 번째 원리를 이루는 신의 현현을 파악하고자 한다. 결정적인 것은 대립이 없으면 아무것도 계시되지 않는다는 그의 사상이다." "빛 속에서 '있음(ein Ichts)'인 신은 지옥에서 '없음(ein Nichts)'이며, 따라서 현재하지 않는다." "'예'와 '아님'의 재합일은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지며, 뵈메는 그 자신의 통찰을 그리스도의 정신에 돌린다."(71-3)


4 신에게는 오로지 최선의 것만이 충분히 좋다: 라이프니츠의 스콜라철학과 새로운 과학의 종합


"17세기에 철학을 이성주의적으로 전환시킨 결정적 요인에는 한편으론 똑같은 정도로 권위적인 진리 요구를 지닌 서로 배타적인 다수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존재하므로 바로 그 점이 단순히 권위에 기초하지 않는 심급에 대한 추구를 요구한다는 경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조건적으로 끝내야 하는 종교적 시민전쟁이 불러일으킨 물리적·도덕적 악이 속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왜 독일에서 종교의 이성적 근거짓기를 향한 노력이 특히 중요했는지를, 아니 왜 그것이 종교적 활기를 지니고 추구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한편으로 제국은 거의 모든 유럽 국가와 달리 종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따라서 그 국가들은 철학을 덜 필요로 했다. 다른 한편으로 제국은 주권을 획득한 이웃 나라들의 특징을 이룬 저 정치적 통일을 최종적으로 달성하지 못했으며, 이 점은 1648년 이후로 명확했다. 그러나 괴물과 유사한 형성물은 특별한 손질을 필요로 하며, 라이프니츠의 극단적 이성주의는 그러한 치료제였다."(76)


"영국의 경험주의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러한 이성주의는 신의 본성에 관한 다양한 가정에 뿌리박고 있으며─비록 헤르더 이후에는 신과 자연과학이 아니라 정신과학 법칙의 연관이 관심의 중심에 놓여 있을지라도─독일 문화에 특수한 지위를 부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추측하건대 전-과학적인 종교적 신앙의 억제, 그것도 좀더 복잡한 신 개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억제는 독일 정신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가장 중요한 기여였다." "과학이 빈틈을 드러내는 곳에서 종교가 자기 자리를 지닌다는 단순한 이념은 라이프니츠에게서 오로지 자연 법칙에 대한 형이상학적-신학적 근거짓기만이 자연 법칙 자체로부터 그것의 조야한 사실성을 박탈할 수 있다는 좀더 복잡한 이념에 의해 대체된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서 신의 창조력을 모방한다. 신은 과학의 각각의 모든 새로운 승리가 위태롭게 하는 미봉책이 아니다. 오히려 신은 과학의 기초이며, 과학을 촉진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이다."(84-5)


"크리스티안 볼프는 1721년 할레에서 중국인들의 실천철학에 관한 축사 때 그들의 도덕, 즉 바로 신학적으로 정초되지 않은 도덕에 대한 자신의 경탄을 표명했다. 이러한 격찬은 17~18세기에 널리 퍼진 중국 애호에 상응했다. 동시에 축사는 도덕이 종교 없이도 존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표현했다. 그의 신학적 동료인 요한 요아힘 랑게는 격분했다. 랑게와 그 밖의 다른 신학자들이 추진한 고발에는 볼프가 라이프니츠와 마찬가지로 결정론자라는 것도 역할을 했다."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진 신학적-철학적 논쟁은 독일에서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기여했으며, 또한 랑게가 프랑케 재단과 더불어 종교 개혁 이래 독일의 가장 독창적인 종교적 운동이었던 경건주의의 대표자였기 때문에도 중요하다." "분명 윤리학을 신학 없이 근거지을 수 있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볼프의 견해를 공유하지만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결정론에 대한 반항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칸트도 경건주의적으로 교육을 받았다."(100-1)


5 독일의 윤리 혁명: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의무를 지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으며, 오로지 그것만이 그에게 존엄을 부여한다고 개념화한다." "자연 내에서의 신의 현전은 회의적으로 유보하면서 신에 대한 관계를 내적인 것, 즉 윤리 법칙에서 근거짓고자 하는 이념─칸트의 정언명법은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과 기능적 등가물이다─은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경건주의의 철학적 표현이다. 독일 정신사에서 칸트의 특수한 지위를 이루는 것은 그가 계몽과 그것에 본래적으로 적대적 의도를 지닌 경건주의 사이의 균형, 즉 그것의 완전한 표현이 바로 그 자신의 인격적이고 지적인 통합성인 그러한 균형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독일의 종교성을 라이프니츠처럼 모든 학문적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소원에 대해서도 열어 놓았으며, 역으로 계몽주의적 노력에 대해서도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에게서는 오래전에 사라진 윤리적인, 아니 바로 종교적인 추진력을 부여했다."(109-10)


"칸트의 천재적 착상은 그가 인과율에 대해 교조적 형이상학도 흄의 회의적 경험주의도 충족시킬 수 없는 타당성을 확증해주는 동시에 인간적 자유의 가능성도 보존한다는 점에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과성과 그와 비슷한 다른 범주들이, 아니 더 나아가 바로 공간과 시간이 우리로부터 유래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현실에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우리가 범주들 없이는 세계를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범주들은 선험적으로 타당하다. 세계의 통일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자기의식의 통일에 근거한다. 우리는 현상계에서 모든 변화의 원인을 추구해야 하지만 예지적 현실, 즉 우리의 도식화한 범주들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본래적 현실에 자유로부터의 인과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제하지 말아야만 한다(자유의 형이상학). 우리는 역설적으로 바로 우리가 현상들에 인과성을 규정함으로써 자유롭다. 왜냐하면 인과성은 우리의 자발적인 정립이기 때문이다."(111-2)


"한 가지 점에서 칸트는 데카르트와 근본적으로 관계를 끊는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에게 우리의 의식 흐름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하게 주어져 있다. 그에 반해 칸트에게는 우리 의식의 시간성 자체가 다만 그 자체에서 우리인 것의 주관적 변형일 뿐이다. 시간성은 현상적 자아에 속하지 분명히 무시간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예지적 자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공허한 점에 의하거나 우리의 실천 이성을 통하는 것 외에는 예지적 자아에 이르는 접근 통로를 지니지 않았다. 이 두 가지에서 독일 관념론은 시작될 것이다." "달리 말해 선험적 종합 인식의 실존과 그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하나의, 아니 아마도 바로 그 결정적 문제이며 그에 대한 몰두가 독일 철학을 영국 철학과 구별해주는 본질 징표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견지될 수 있다. 물론 칸트는 자신이 선험적으로 종합적인 것으로 간주한 그 판단들 모두의 공통된 징표를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113-5)


"칸트의 경험주의적 인식론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규정하는 실천 이성이 실질적 윤리학이 아니라 오직 형식적 윤리학만을 근거지을 수 있다는 것에로 이어진다." "도덕 준칙[정언명법]이 허락될 수 있는 조건으로서 그것의 보편화 가능성은 칸트가 특정한 행위를 단지 정언적으로만이 아니라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결과를 가진다. 거짓말은 그것이 죄 없는 사람을 구하는 유일한 가능성일 때에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숙주의는 실질적 선의 위계질서의 결여로부터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일단 예외를 허용하면 모든 것에 대해 쉽게 생겨나는 정당화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따라 나온다. 이는 선구자[아우구스티누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플라톤의 윤리학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순된다.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은 독일 문화를 각인했다. 너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 속에도 존재하는 인간성을 결코 한갓된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목적으로서 사용하라는 요구는 순수한 형식주의를 넘어선다."(128-9)


"더 나아가 칸트는 모든 저항권을 거부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일단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에 대한 예외를 정당화할 수 없는 그의 원칙적 무능력의 결과다. 왜냐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가 무정부를 피하고자 한다면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일단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칸트의 학설은 그의 루터교적 표현인데 그것은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과 연관해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칸트의 학설은 양날의 검이다. 혁명을 거부하는 만큼 그는 또한 그 혁명이 성공적일 때에는 반혁명도 배척한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의 분석은 혁명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공감에 의해 고무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혁명 정부를 존중해야만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참인 것은 존 로크의 그것과 같이 적극적인 동시에 적절한 저항론이 앵글로아메리카 세계와 달리 독일에 대해서는 그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135)


6 종교적 과제로서 정신과학: 레싱, 하만, 헤르더, 실러, 초기 낭만주의와 빌헬름 폰 훔볼트


"역사철학의 역사에서 본래적인 발전 단면은 18세기에, 잠바티스타 비코도 여전히 따르고 있던 고대의 순환 모델이 진보 이념에 의해 교체될 때 이루어진다. 비코와 헤르더가 비슷한 관심을 공유하고 양자가 특히 인간 문화의 전前-이성적 단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헤르더의 역사철학은 볼테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보를 긍정한다." "그러나 볼테르와 달리 그리고 비코와는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헤르더는 개별적인 시기들이 그 자체로서 파악해야 하는 각각의 상이한 논리를 지닌다는 점을 고수한다." "헤르더에게 상대주의를 귀속시키거나 심지어 국가사회주의자들처럼 그를 반보편주의적 내셔널리즘의 선구자로 찬미하는 것은 잘못이다. 헤르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특정한 발전 단계에서 가능하고 많은 경우 이후의 것들과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덕과 악덕은 종종 서로 뒤얽혀 있다."(150-1)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에게 종교란 형이상학으로나 도덕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취미〉다. 따라서 종교는 낡은 교의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게도 다시 다가갈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신학은, 비록 그것이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 아마도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단절을 나타낸다 할지라도 계몽과 경건주의에 그 뿌리를 지닌다. 이제 전통의 권위 대신 주관적 진지함과 근대적 합리성 표준이 학문적 신학의 근저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슐라이어마허는 이후의 신학적 저술에서도 그가 모든 교조적 동기들로부터 분리하는 근대적 해석학에 계속해서 충실히 머문다. 우리는 나중의 교의들을 성서에 넣어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세기가 일차적으로 헬레니즘 철학을 연구했던 데 반해 이제는 고전 그리스 철학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그 전환은 결국 독일 관념론이 플라톤주의를 가장 독창적으로 다시 체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58-9)


"빌헬름 폰 훔볼트의 언어 유형론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본래적으로 철학적인 것, 즉 언어학에 고유한 가치를 보장하고 가령 방언들에 대한 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언어와 사유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다. 확실히 훔볼트는 사유에 대한 언어의 영향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어떠한 언어 외적인 입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훔볼트의 테제를 나중의 언어상대주의자들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것은 그가 언어 자체를 정신의─무의식적인─작품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는 각각의 모든 언어의 근저에 보편적 언어 능력이 놓여 있으며, 이것이─비록 상이한 언어에서 서로 상응하는 단어의 개념 내용이 언어의 전체론적 본성을 근거로 할 때 결코 동일하지 않다 할지라도─원리적으로 상호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각각의 모든 언어는 유한하게 많은 요소로부터 그것들의 계속적인 형성을 통해 무한하게 많은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 특히 문학과 철학이 그 언어를 확대한다."(162)


7 체계에 대한 동경: 독일 관념론


"독일 국민의 형성에서 중심적 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루터다. 루터 이래로 축복과 진지함에 대한 관심이 독일인의 본질 징표라는 것이다. 피히테는 정당하게도 독일에서는 자율성 추구가 종교적 뿌리를 지니는 까닭에 종교와 철학의 대립이 덜 부각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본다. 초감성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결코 포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이 이성에 의해 새롭게 정향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피히테가 '세계 지배'를 약속하는 것은 이러한 철학적 정신에 대해서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방식으로 실재적인 독일 국민과 융합한다. 왜냐하면 피히테는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프랑스인에게 저항할 용의를 갖추게끔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히테를 21세기의 지식을 가지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피히테가 자신의 잠재적 해방 전사들에게 그들의 행위로부터 구원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약속한다면 그는 라이프니츠와 칸트가 그 앞에서 멈칫했던 한계를 넘어서 있다."(174-5)


"셸링은 1802년의 《철학 일반에 대한 자연철학의 관계에 대하여》에서 자연의 윤리적 기능화를 물리친다. 셸링에 따르면 자연을 자기 목적으로서 고찰하는 것은 신을 단지 요청으로 간주할 뿐인 칸트와 피히테의 인간중심주의보다 더 종교적이다." "자연 속에 바로 자연과학이 단지 경험적으로만 열거하는 저 근본 형식들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절실한 관심은 포기될 수 없다. 이 물음은 대답하기 어렵지만 정당하며, 아니 관념론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으로부터는 만약 자연이 단적인 사실이 아니라 이성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피할 수 없다. 셸링의 목표는 현실의 근본 구조를 실재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의 양극적 대립의 전개로서 해석하는 것인데, 이 대립은 가장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자연과 정신의 대립에서 표현되며, 그 이후 각각의 분과 내부에서 더욱더 분화된다. 그리하여 오로지 그렇게 해서만 원리들을 파악할 수 있다. 〈체계 내의 이 위치는 그것들에 대해 존재하는 유일한 설명이다.〉"(181-2)


"1800년의 《초월론적 관념론의 체계》는 정신의 근본 구조를 〈자기의식의 전진하는 역사로서〉 질서 연관 내로 가져오고자 하는데, 거기서 셸링은 〈자연과 이지적인 것과의 평행론〉에 주목한다. 피히테에 대한 특별히 중요한 내용적 보완은 셸링이 이론철학과 실천철학 이후에 또한 예술의 철학도 다룬다는 점이다." "셸링에 따르면, 예술가는 〈그를 다른 모든 인간들로부터 분리하고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이 완전하게는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의미가 무한한 사물들을 언표하거나 서술하도록 강요하는〉 하나의 힘 아래 서 있다. 모순들로부터 출발해 예술가는 무한한 조화를 얻기 위해 애쓴다. 예술과 학문은 동일한 과제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물론 후자에 대해서는 끝없는 것으로 머문다. 그에 반해 예술은 학문이 비로소 도달해야 할 그곳에 이미 존재한다. 오로지 예술만이 철학이 서술할 수 없는 것, 요컨대 생산에서의 무의식적인 것을 증거하며, 자연과 역사의 근저에 놓여 있는 통일을 열어 보인다."(182-3)


"헤겔의 《정신현상학》 서문은 장엄하면서도 모호한 언어로 헤겔의 프로그램, 특히 〈참된 것은 전체다〉라는 그의 전체론과 셸링의 동일성 이론으로부터 이반의 시작을 묘사한다.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결과라는 것이다. 헤겔은 감성적 확신의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절대지에까지 이르는 의식 형식의 만화경을 펼치는데, 거기서 성숙한 체계의 범주들로 하자면 주관 정신으로부터 객관 정신을 거쳐 절대 정신으로, 그러므로 철학적 심리학으로부터 사회론을 거쳐 종교철학에로 움직여간다. 세계상의 본질을, 가령 그리스적 윤리와 칸트적 도덕철학의 본질을 몇 번의 필치로 파악해내는 그의 능력은 압도적이다." "저작의 목표는 두 관점의, 즉 주관과 객관의 그러나 또한 나와 우리의 일치다. 왜냐하면 《정신현상학》은 상호 주관성이라는 주제에 《엔치클로페디》보다 많은 공간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지배와 예속' 장은 마르크스로부터 사르트르에 이르는 이후의 발전을 너무도 지속적으로 각인했다."(191-2)


"〈체계 없는 철학함은 학문적인 것일 수 없다.〉 헤겔은 학문의 내적 건축술에 대한 선험적 설명을 갖고자 한다. 그는 종합적-선험적 판단이 아니라 개념의 선험적 체계에 관심을 지닌다. 근본적으로 《엔치클로페디》는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눈앞에 떠올랐던 이데아의 우주를 조탁해낸 것이다." "개념은 우리가 현실에 덮어씌우는 어떤 것이 아니다. 비록 개념이 경험으로부터의 추상에 의해 획득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실재 자체가 개념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지성과 이성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적 사상'이라는 표현이 포함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말한다.〉 객관적(또는 절대적) 관념론은 개념경험주의가 견지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근본적 개념은 스스로를 선험적인 구성 과정에 빚지고 있다는 통찰과, 우리의 개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 개념 때문에 현실의 맥박에 다가선다는 실재론적 확신과의 결합이다. 그것은 단연코 세계가 신적 사상들의 표현이라는 종교적 신앙과 일치한다."(194-5)


8 그리스도교 교의학에 대한 반란: 쇼펜하우어의 인도 세계 발견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대안적 세계관을 좀더 커다란 권위를 가지고서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그 세계관이 불교의 핵심과 일치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 이래로 서구 지식인들은 아시아의 세계관을 지혜의 탁월한 원천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파니샤드 및 불교와 더불어 쇼펜하우어는 플라톤과 칸트에게서 자신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원천을 보았다. 그의 철학은 분명히 칸트에 대해 반작용하며, 그는 사물-자체에 빛을 비추고자 하는 독일 관념론자들의 소망을 공유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여전히 강력하게 칸트의 주관주의에 붙잡혀 있으며 또한 그것을 필요로 하기도 하는데, 그에 따르면 주관주의야말로 현상적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지배하는 결정론을 최종 심급에서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현실의 최종 근거는 인식 불가능한 사물-자체가 아니라 내관으로부터 확신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성이나 개념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다."(218-22)


"객관적 관념론적인 근본 사상을 기묘한 방식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쇼펜하우어는 물론 현실을 그가 '이념들'이라고 부르는 의지의 객관화의 연속적 단계로서─즉 비유기체적인 것으로부터 유기체를 거쳐 인간적 개별성에까지 이르는 단계로서─해석한다." "예술 향유와 도덕적 행위 그리고 윤리학의 정점인 금욕은 그에 따르면 거기서 의지의 부정이 이루어지는 세 가지 형식이다. 정신이 세계의 원리로서 절대 이념에로 귀환하는 헤겔의 체계와 달리 쇼펜하우어의 체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이상학적 원리에 대한 반란으로 끝나는데, 그 반란은 '의지'라는 표현이 때에  따라서 동음이의어적으로 도덕적 세계 질서와 관계됨으로써 단지 임시방편적으로만 은폐된다. 게다가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은 순수하게 기술적이다. 그것은 어떤 힘이 이기주의를 초월하는가 하는 물음을 추적하며, 그것을 동정심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왜 이타주의적 태도가 도덕적인가 하는 것은 근거지어지지 않는다."(223-4)


9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반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종교적 이념의 근저에 신적인 계시가 놓여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 정신의 꿈〉, 〈인류의 어린이 같은 본질〉이다. 종교를 원시적 발전 단계로 추방하는 것은 같은 시기 프랑스의 콩트에게서 발견되며 모든 세속화 이론의 근저에 놓여 있는데, 물론 그러한 이론에 대해서는 종교가 경이로운 저항력을 보였다. 포이어바흐의 이론에서 특수한 것은 헤겔의 의식철학과 그의 사변적 명제 이론에 그 배경이 있다는 점인데, 그에 따르면 주체·주어는 결코 술어들로부터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포이어바흐에게 종교는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좀더 정확하게는 다른 본질로서 자기의 본질에 대한 태도다. 종교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정신의 특성을 대상화하며, 그 특성을 외적인 힘에서 특히 가치로 충만한 것으로서 경험한다. 〈무한자의 의식은 의식의 무한성에 관한 의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교사는 인간 정신의 진화에 대한 중심적인 지표일 것이다."(234-5)


"부정으로서가 아니라 발견으로서 이해되는 그의 비판의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포이어바흐를 그리스도교의 적대자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우리는 이 칭호를 니체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포이어바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사랑이다. 이 명제는 그리스도교의 최고의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사랑을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결합해 그것을 자기 자신을 통해 근거짓는 것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삶의 척도다. 그러나 그 역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 그리스도 자신인 그리스도교도다.〉 물론 포이어바흐는 위선이 곧이어 그에 뒤따르는 반자연성을 위한 완곡어법으로서 초자연성을 논박한다. 그는 삶 자체에서 종교적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후자는 비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 비그리스도교적인 것은 다만 그가 윤리학을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라는 명제로 환원하고자 하는 소박성뿐이다."(238)


"역사의 공산주의적 최종 상태에 대한 예측은 경쟁 없는 경제가 정체한다는 경험과 모순된다. 그 예측은 빈곤의 극복을 세계사적으로 처음 전망케 해준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력이 해방된 것에 대한 매혹에 토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왜 사적 소유의 철폐와 함께 가야 하는지는 결코 근거지어지지 않는다. 자유를 오로지 공동체 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이 공동체가 강제되지 않을 뿐이다." "과학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요구는 그 이론이 자본주의의 붕괴에 관한 자기의 예언에 관해 침묵하기 위해 단지 (환경 파괴와 같은) 현실적 과정조차 거의 설명할 수 없었던 만큼 더욱더 우스꽝스럽다. 마르크스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규범적 권력분립론을 다듬어내길 거부한 것은 그 사회에서도 모든 지배가 남겨질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권력 남용을 위한 처방전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특유한 변증법이 지배한다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254-5)


10 보편주의 도덕에 대한 반란: 프리드리히 니체


"좋은 철학은 본질적으로 표현의 풍부함 그 이상이다. 그러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역시 표현적인 과제를 가진다. 그리고 니체 반열에 올라선 철학적 표현 무용가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인간 영혼과 문화의 심원함에 대한 민감화 및 정신의 위협과 니체가 자기 자신에게서 풍부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도덕적 최고 성취의 의문스러움에 대한 지식은 긍정적인 의식사적 변화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하는 무자비함, 스스로 강해지고자 했던 그의 강함은 주로 자기 자신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강함에 대한 그의 찬가는 오히려 그와 반대였던 사람들을 고무시켰다. 그가 성취한 것은 이념적 세계 속에 쓰여 있는 사실들, 즉 미학적 민감성과 심리학적 명민함 그리고 문헌학적-역사학적 지식이 논리적 지성과 일관된 형이상학에 대한 감수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그것은 유용하기보다는 해롭다는 사실, 위대한 덕과 몇 가지 약점의 결합은 종종 모든 악덕이 뒤섞인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258-60)


"니체, 즉 객관적 도덕에 대한 믿음을 지니지 않는 이 모럴리스트의 역설은 그가 지속적으로 그 장르와 처음에는 그 자신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저 도덕적 민감성을 해친다는 데 존립한다." "얼마나 많은 허영심(〈인간적 '사물 자체'〉)이, 얼마나 많은 탁월함에 대한 소원과 열등함에 대한 두려움이 이른바 덕들의 근저에 놓여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숨어 있는 비천함이 모든 일상 대화의 근저에 놓여 있는지 그 어느 누구도 이 도덕적 엄숙주의자만큼 깊이 감지하지 못했기에 가장 엄격한 고해 문답보다 그를 읽을 것이 더 요구된다. 왜냐하면 평등주의자, 다시 말하면 보편주의에 대한 니체의 투쟁이 숙명적인 만큼이나 그의 근대의 형식주의가 가치들과 덕들에서 전통의 풍부함을 종종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기 니체마저도 보통의 무신론자와 실증주의자보다 더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달리 종교가 교육하는 도덕적 차별성에 대한 그의 진지함이다."(265-6)


"형이상학에 대한 모든 공격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형이상학적인 시대와 더불어 또한 지속적인, 즉 스스로 살아남는 제도들을 창조하는 추동력도 사라졌다는 것을 단연코 인정한다. 자신의 시대는 그 본질이 불안정함, 아니 야만인 것의 비교와 가속화의 시대로서 표현된다. 삶은 오로지 자신의 동기와 관련한 그러나 또한 인정된 모범들의 그것과 관련한 자기기만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종교는 결코 단지 위선만이 아니라 긴장되고 성공적인 자기기만에 의거한다. 니체가 그 이상주의적 삶의 형식에 대해 많은 재치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자유로운 정신은 이 세계를 흥분 없이 고찰하며 그에 의해 마음의 안정에 도달한다─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식에 대한 칭찬은 의지가 지성의 후견자라는 테제와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의 유산이다. 쇼펜하우어로부터 니체는 물론 현실이 그 본질에 따라 정신에 적대적이라면 자유로운 정신이 현실을 인식한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상속한다."(267)


"근대 문화의 표면 밑에서 제어된 악의와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들의 마그마가 끓어오르는 것을 어느 누구도 니체처럼 그렇게 뚜렷하게 듣지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단순한 관찰자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는 늦어도 《즐거운 학문》에서는 스스로 불을 내뿜기 시작하며, 그러함으로써 스스로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숙명을 가속화한다. 언젠가 니체는 인간적 자기기만과 그리스도교의 퇴락에 대한 단순한 기술에 지겨워졌음에 틀림없다. 그는 새로운 가치표들을 세워놓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위한 논증은 그 자신의 인식 이론에 따르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문학적인 작품을 저술해야만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는 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가능한 모든 인물─이들 가운데 몇몇은 비유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새로운 윤리학을 고지하는 자를 서술한다. 문제되는 것은 이것이 니체의 너무도 키치적인 책이라는 것이다."(277-8)


11 도전으로서 정밀과학과 분석철학의 부상: 프레게, 빈학파와 베를린 학파, 비트겐슈타인


"오늘날에는 이미 오래전에 극복한 분석철학의 최초의 형태는 논리실증주의 또는 논리경험주의였다. (첫 번째 것은 현상주의에 대한 공감을 지녔고, 두 번째 것은 좀더 실재론적으로 맞추어져 있었다.)" "논리실증주의의 목표는 물리학에서 그 모범을 지니는 통일과학이다. 형이상학의 진술은 가령 거짓인 것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거기서 다루는 것은 의미 없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구문론에 반해서 형성된 사이비 명제이다. 하나의 단어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 단어를 지닌 명제를 검증하기 위한 방법이 알려져 있어야만 하며, 아니 결국 그와 같은 종류의 명제는 프로토콜 명제로 환원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형이상하적 신 개념의 타당성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까닭에 '신'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의 판단들은 분석적이지도 경험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은 음악이나 서정시와 마찬가지로 삶의 감정의 표현이다─형이상학자는 〈음악적 능력이 없는 음악가〉라는 것이다."(291, 300)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이론에서 결정적인 것은 어떠한 명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은 사상들을 다만 분명하게 밝힐 뿐이다." "참된 명제들의 총체는 (심리학을 포함해) 자연과학의 총체다. 윤리학의 명제들은 존재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명제들의 무의미한 본성을 인정한다. 세계를 올바로 보기 위해 우리는 그것들을 사다리처럼 타고 올라간 다음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고찰, 즉 형식 논리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만 거기서 더 이상 결코 칸트의 경험의 유추를 전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가치 중립적인 고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록 신이 더 이상 세계 속에 현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계의 실존이라는 단적인 사실 속에는 무언가 신비적인 것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에 관해 이론화하는 것은 전망 없는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만 한다.〉"(306)


"결정적인 것은 플라톤적이고 데카르트적인 의미 이론과의 단절을 나타내는 언어놀이 개념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사건, 즉 삶의 형식의 부분이다. 요컨대 요소적인 대상들에 대한 자율적 관련 대신 '길들임'이 행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언어 획득은 일정한 활동과 얽혀 있으며, 역사적으로 생성된 모든 언어는 서로 다른 추상성을 지니는 수준을 포함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결정적인 것은 언어 획득에 대해 정신적 연관에 대한 마음의 지배, 즉 그 경우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생각함'이 선행한다는 이념의 거부이다." "그의 언어놀이 개념의 상대주의적 귀결은 곧바로 사회과학으로부터 학문 이론에 이르는 많은 분과에서 끌어내졌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제안하는 새로운 철학 개념이다. 철학의 성과는 〈지성이 언어의 한계에 달려가 부딪쳐서 감염된 종기들〉이며, 자기의 목표는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를 보여주는〉 거라는 것이다."(309-10)


12 신칸트주의와 딜타이에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근거짓기 시도 및 후설에서 의식의 해명


"신칸트주의 이전에 이미 빌헬름 딜타이가 '역사 이성 비판', 다시 말하면 정신과학의 정초를, 그것도 실험실 안의 연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적으로 획득한 이해심리학에서 시도했다. 이와 관련한 그의 최초의 주저 《정신과학 입문》(1883)은 (그에게서는 또한 사회과학도 포함하는) 정신과학을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으로부터 경계 긋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는 독일 관념론과 실증주의적 자연주의에 대항한 이중전선 전투를 이끌어나가며, 따라서 오늘날 대학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신문 문예란도 장식하는 저 특수하게 정신과학적인 의식, 즉 엄밀한 철학적 논증에 대한 혐오와 수학적 무능력 및 정밀한 자연과학에 대한 적은 이해를 보이는 엄청난 역사학적 박식함의 형성에 기여했다. 이 저작은 고전 이후 철학의 아주 많은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미완성 작품으로 남았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건축술의 발생적 원리가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319)


# 신칸트주의, 특히 바덴학파(빈델반트와 리케르트가 속한)의 주요 주제는 칸트가 비워둔 주제, 즉 자연과학과의 경계를 설정한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적 근거짓기이다.


"후설은 칸트와 함께 그리고 헤겔에 반대해 모든 범주적인 것은 감성적 직관 안에 기초해 있다고 가르치는 데 반해, 헤겔과 함께 그리고 칸트에 반대해 범주가 대상을 변조한다는 이론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비-범주적 작용에 대한 어떠한 호소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리적으로 자각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후설을 칸트 및 헤겔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그에게는 범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낯설다는 점이다. 범주는 그 원천을 직관에서 지닌다. 그 점은 최종적 타당성 기준으로서 명증성에 대한 호소와 마찬가지로 불만족스럽다. 범주적 직관이나 가치 직관의 경우처럼 서로 모순되는 명증성을 끌어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결실 풍부한 대화가 성립할 수 있는지 거의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명증성을 착각하는 현상은 증명에서의 오류 문제보다 더 커다란 문제인데, 왜냐하면 저 착각된 명증성을 현실적인 명증성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어떠한 절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330)


"후설의 마지막 성찰은 초월론적 유아론을 모나드론적 상호 주관성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후설은 의식적으로 라이프니츠로 돌아갔지만, 모나드 각각이 결코 그들 자신의 세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별적 모나드의 지평은 가령 그것이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이나 '생활 세계'에서 작용하는 까닭에 교호적으로 서로에게 열리지 않는 일은 단지 우연적으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후설은 더 나아가 주관성과 상호 주관성의 관계를 두고 씨름한다.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비록 세계 내부적으로 개별적인 주관성이 상호 주관적으로 공유된 생활 세계의 부분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고립이 없다면 근본적인 철학이 가능하지 않을 초월론적 에포케(Epoché, 판단중지)일 것이다. 초월론적 자아는 오직 그에 대해서만 너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 내부적 자아와 다른 자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미 초월론적 자아는 자기 내에서 초월론적 상호 주관성을 구성해야 한다."(333-6)


13 독일의 재앙에 철학의 공동 책임은 존재하는가? 하이데거, 겔렌, 슈미트: 결의성과 강력한 제도 그리고 정치의 본질로서 적의 제거


"《존재와 시간》은 어떠한 구체적인 윤리적 내용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런 것 자체는 비난이 아니다. 한 철학자가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저작의 음흉한 점은 그것이 양심이나 죄같은 개념을 고쳐 정의함으로써 전통적인 도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든 결의성이 유일한 관건이라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제시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셸러와 함께 칸트를 형식주의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윤리형이상학》은 확실히 하이데거의 반-윤리학만큼이나 형식주의적이지 않다. 비록 《존재와 시간》이 단지 존재론의 역사의 파괴에 착수할 뿐이라 할지라도, 이는 그에 못지않게 윤리학의 파괴를 제공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언어가 프랑스 모럴리스트들에게서 훈련받은 니체의 모범적인 산문보다 훨씬 덜 명확한 까닭에 그리고 또한 '존재' 같은 전통의 표어를 사용하고 근대에 반하는 자신의 격정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까닭에 그는 니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355)


"1949년 처음으로 행한 강연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하이데거는 정당하게도 기술이 무언가 중립적인 것이라는 테제를 비판한다.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서는 세계 관계의 방식이 현현한다." "하이데거는 모든 것이 그것에게는 부품이고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 근대 기술을 〈몰아-세움〉이라고 명명한다. 근대 자연과학은 그 은밀한 목적으로서 근대 기술에서 이미 착수되었다. 그리고─우리가 기껏해야 그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만날 수 있는─이러한 기술의 위험은 어느 경우에도 단지 〈어쩌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기계와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본질의 변화에 존립한다. 그의 퇴락의 역사철학과 연관해 하이데거는 또한 국가사회주의적인 권력 의지에 대해서도 한 자리를 인정했다." "이것은 하나의 업적이지만, 하이데거는 그로 하여금 〈존재론적 본질 진술〉을 넘어서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구별을 확정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범주를 갖지 못했다."(365-6)


"이 장에서 다루는 세 사람의 국가사회주의 지식인 가운데 카를 슈미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도덕적으로 가장 거부감을 주는 인물이다. 이러한 판단을 가지고서 나는 단지 그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논문 〈지도자는 법을 떠받친다〉에서 1934년의 이른바 룀-반란과 관련해 살인을 정당화한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이후 후회에 대한 그의 무감각,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감상(그는 뉘른베르크에서 잠재적 피고였지만 당시 로버트 캠프너는 기소를 포기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 아니 그의 독창적인 정치 이념이 그 윤리적 핵심과 극단적으로 모순되는 자신의 가톨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자랑을 격분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법학자가 지난 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사상가 중 한 명이었다는 판단을 회피하지 못한다." "슈미트는 다수가 신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바이마르 시대 일군의 법학자와 법철학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374-5)


"슈미트는 특히 주권 개념에 매혹당해 있다. 예외 상태에 관해 결단하는 자는 주권을 가질 것이다." "거의 신학적인 존엄이, 그에 귀속되는 근거지어지지 않고 근거지을 수 없는 결단이 법의 최종적 근거다. 이는 명백히 하이데거의 결의성을 지시한다." "슈미트 논고의 문제는 그가 적에 대한 설명에 특유한 도덕적 숭고함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설명은 평준화하는 중립화의 자유주의적 시대로부터 벗어난다. 특히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것을 전통같이 공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향한 경계 설정에 의해 정의하는 것이다. 슈미트는 권력 투쟁을 실질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목적으로 간주하는 정치가를 정당화하였다." "국가의 절대적 주권과 예외 상태, 독재와 전쟁에 대한 그의 매혹은 단지 독일이 전체주의로 비틀거리며 치달아가는 것에 날개를 달아준 것만이 아니다. 9·11 이후 슈미트의 이념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영감을 불어넣으며〉 작용해왔다."(378-80)


14 서유럽의 규범성에 대한 연방공화국의 적응: 가다머와 두 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한스 요나스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정신과학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재구성은 《진리와 방법》에 고전적 지위를 보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딜타이 이래로 촉구된 역사학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과제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의 본래 관심은 해석학이 딜타이와 함께 완전히 뒤얽힌 역사학주의의 난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역사학주의의 역사적 발생을 모사함으로써 가다머는 이 역사학주의 자체를 상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발생과 타당성은 이 운동의 경우에도 항상 구별되어야 한다. 가다머의 지속적인 성취는 단지 해석해야 할 것에 관해 배우고자 할 뿐인 역사학주의적 관점에 대해, 이해란 오직 우리가 해석해야 할 것으로부터 배울 때에만, 즉 우리가 그 속에 원리적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해석해야 할 것에서 아마도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 사태 물음을 제기하는 것에서 출발할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테제를 가지고 도전했다는 것이다."(384-5)


"이러한 관점 변화의 긍정적 결과 중 하나는 가다머에 따르면 가령 철학사학이 단순히 고전들에 관해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논증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바람을 지니고 그것들을 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가다머가 동시에 독일 정신과학에 19세기 이래로 세계적 타당성을 마련해준 역사학적 이해의 의도주의적 표준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사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살피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며 철학적으로 종종 그 결실이 풍부하다─그러나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저자의 의도(mens auctoris)를 넘어서는지에 관해 해명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다머의 책 제목에서 '와(und)'는 '대신에(statt)'를 의미한다. 진리는 방법 없이 생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몇십 년간의 정신과학에 대한 해체주의적 파괴 전체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때 다르게 이해한다〉는 가다머에 의해 고무되어왔다."(385-6)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1936)에서 영화나 사진 같은 새로운 대중 매체에 대해 많은 희망을 걸고 파시즘에서의 정치의 미학화에 대해 미학의 정치화로써 대답하고자 했던 벤야민과 달리 아도르노는 새로운 발전에 대해 희의적이며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를 거부한다. 그의 《부정 변증법》(1966)은 그것이 제기하는 물음에 조금도 부응하지 못한다. 이 저작이 헤겔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비-동일적인 것이라는 구호의 이름으로 현실의 개념적 범주화와 더 나아가 현실과의 화해에 대한 어떤 가능성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편적 은폐 연관(하이데거의 존재 망각에 대한 기능적 등가물)에 대한 지시는 자신의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아도르노 자신도 불가피하게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의 책을 가치 있는 동시에 더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 자신의 사유 경력 초기에 이러한 철학적 표현 무용에 사로잡힌 사람은 언제고 다시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하는 걸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392-3)


"이웃 간의 갈등이나 가정 내 갈등을 당사자 자신에게 맡기는 것은 확실히 올바르다. 그러나 도덕적 갈등을 오로지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는 망상적이다. 가령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나 예를 들면 분배 문제의 성과 원리 같은 실질적 원리 없이 어떻게 합의를 달성할 수 있는지 통찰할 수 없는 것이다." "담론 윤리학에는 칸트의 정언명법에 근접하는 어떠한 등가물도 없다. 따라서 담론 윤리학은 자기의 본래적 관심사에 반해 자신의 도덕적 결정을 실제적 기준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다수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관한 가정에서 얻어냈고, 바로 합의가 최종적인 진리 기준인 까닭에 그러한 것을 더 이상 기회주의로 전혀 느끼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을 장려한다." "의식사적으로 담론 윤리학은 기껏해야 객관적 가치 질서의 사상을 자신의 자유 열정에 대한 모욕으로서 이해하는 동시에 국가사회주의의 경험 이후 윤리적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는 시대에 적합할 뿐이다."(395-6)


15 왜 계속해서 독일 철학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가?


"이제 독일 정신의 본질적 특징─이성주의적 종교철학에서부터 출발하여 독일 관념론을 거쳐 보편적 상대주의에 이르는─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독일적인 근본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그 잔여물에서는 심지어 철학적 체계학에 대한 독일적 감각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을 그토록 뚜렷하게 가령 미국과 구별해주었던 철학적 형식의 종교성은 사라져버렸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저주받은 12년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이 과거의 정신적 보물을 자기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파악은 다만 해석학적 유보를 하면서만, 가령 고전적 사상가들의 기념일에 즈음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연방공화국의 극장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독일 극작가들의 천박화는 자신의 과거에 직면한 이러한 당혹스러움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러한 곤경에 맞설 능력이 없지만, 최소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그것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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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 개론 - 칸트에서 하버마스까지
앤드류 보위 지음, 김지호 옮김 / 도서출판100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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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독일 철학자들은 근대 사회의 자연 과학 중심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철학 자체를 잘 자리 잡은 과학 이론들과 같은 수준으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과학의 한 종류로 만들려는 시도에서부터,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대에 말했듯이 〈과학적 지식과 관련하여 좋거나 바람직한 것은 없다〉는 주장,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을 좇는 인류는 함정에 빠진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이 영역이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같은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이렇게 상충하는 생각이 나타난 것일까? 이런 물음에 결정적인 답 같은 것을 제시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새로운 질서[과학적 세계상]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와 새로운 질서가 꼭 필요한 문화적 자원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느낌 사이에서 우리가 관찰한 긴장은 분명 이러한 상반된 견해의 공존과 관련된다. 이러한 대립은 '낭만주의'와 '실증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20-1)


"독일 전통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론적 차원에서도, 실제 역사적 사건의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의 결과에 대해 극단적인 예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기 결정이라는 계몽주의적 발상과 주로 인종에 따라 미리 결정된 자아라는 나치적 발상 사이의 차이는 어떤 이론이 옳은지에 관한 견해차로만 끝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이후 과학이 점점 더 산업화되고 부를 창출하는 큰 원천이 되었고, 이에 따라 과학에 투입되는 자원이 증가함에 따라 철학은 점점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증주의'의 발전은 철학이 새로운 명확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했다. 이 역할은 과학으로는 오히려 가려질 수 있는 것, 따라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라든지 다른 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낭만적' 관심과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의 성공은 과학의 이름으로 철학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또는 과학과 관련하여 잠재적으로 비판적인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철학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22-3)


1 칸트의 혁명


"칸트는 신뢰성에 관한 이전의 가정들[선재적이고 신적인 토대]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론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칸트는 우리의 생각을 우주 이해의 원리로 삼았다. 인간의 마음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칸트가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특정한 정신 규칙들은 인간이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지, 세계를 관찰함으로써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칸트가 사유 활동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유 활동은 사유의 빛이 없을 때 암흑이었던 우주를 비추는 '빛'이 된다. 영어권 세계에서는 칸트를 일반적으로 지식 이론가나 윤리 이론가로 읽어 왔지만, 칸트가 궁극적으로 이루어 내고자 한 것은 우리가 알고 행하는 것에 더 이상 신학적 근거를 상정할 수 없을 때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 지도를 그리는 것이었다."(33-5)


"경험은 시간 안에서 일어나고, 경험을 판단하려면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필연적 관계로 연결시켜야 한다. 지각은 틀림없이 각기 다르고, 인식 주체는 지각을 '직관'으로 수용하므로 능동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각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이어야 한다." "지성understanding은 경험자료만 판단할 수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접근 대상의 한계가 지성의 특징이다. 하지만 사유에는 세계 안의 구체적인 사물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판단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지성이 그러한 판단에 국한되는 것으로 기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여기에는 사유가 지성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경험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의 추가적인 능력을 칸트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이 경험 자료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반면, 이성은 지성의 규칙들 사이의 통일성을 창조한다."(44-5, 53-4)


# 칸트에서 '직관'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지각 경험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피히테와 같이 칸트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상가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초월적 주체'에 관한 주장들이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느냐다. 지식이 이러한 주체의 통일성에 기초하여 나온다면, 주체는 어떻게 자신에 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언제나 공간과 시간과 범주라는 조건하에서 지식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조건들은 바로 주체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분열된다. 한편으로 주체는 세계 안에 있는 경험의 대상, 즉 자기 몸이다. 다른 한편으로 주체의 몸이 따르는 법칙은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그 자체로 가능한 법칙이다. 왜냐하면 주체는 세계 안에 있지 않고 그 이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판단의 자발적 원천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나 프로이트 같은 몇몇 사상가는 자기 인식의 문제가 주체의 이성적 측면의 비이성적 기반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반은 철학적 설명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예술이나 정신분석 같은 다른 수단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47-8)


"칸트의 도덕성의 기초에는 경험적 내용이 없고, 완전히 추상적인 명령이 있다. 〈나는 나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정언 명령의 선험적 지위는 우리가 경험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나 그러한 앎으로부터 타인에 관하여 도출한 정보를 도덕성의 기초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시작된다. 정언 명령은 이런 불가능성 대신, 우리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자율적 지위를 타인에게도 부여한다는 데 기초한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칸트도 인정한다. 그러나 자율적이기를 추구한다는 관념은 이성적 존재로서 서로 공유하는 목표를 가질 가능성을 제공한다. 어떻게 우리가 타인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에 칸트는 답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의 뒤를 잇는 피히테와 헤겔이 매우 중요한데, 그들이 탈신학적 도덕에 요구되는 상호 인정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61-3)


"칸트의 도덕 철학 논증은 현상적인 자연 세계와 예지적인 인간 자유의 세계 간 분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칸트는 우리 지식의 수용적 원천과 자발적 원천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위태롭게 한다. 칸트가 직면한 문제는 칸트 이후 많은 철학에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자유의 영역과 완전히 결정론적인 자연을 분리해 버리면, 어떻게 우리가 법칙에 매인 자연에 대한 객관적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입법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길이 없다. 게다가 자발성이 자연과 전적으로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면, 지식과 행동의 기초가 되는 자발성이 어떻게 자연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예를 들어, 1790년대에 셸링은 정신과 자연 사이의 그럴싸하지 않은 분리를 피하려면, 자연 자체를 본래부터 주관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어떻게 자기 결정적인 주관성을 낳을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66-7)


"《판단력 비판》은 자연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식의 측면이 아니라 쾌감의 측면에서 고찰한다. 자연의 몇몇 양상들에 대한 우리의 쾌감은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지만 지식이나 도덕을 판단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수반한다. 이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 특수와 일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제3비판서의 핵심 측면은 바로 반성적 판단이다. 반성적 판단에서 우리는 칸트식 의미로 지식의 지위를 갖지 않는, 사물들의 체계적 정합성에 대한 가정을 통해 개별에서 일반으로 이동한다. 반성적 판단이 인지 법칙을 확립하는 과제에서 해방되면 더 이상 지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분을 전체에 결합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처음에 다양한 현상에 대한 인지적 종합에 덧붙여 있다고 생각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동일한 쾌감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술 작품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칸트는 자연의 체계적 구성에 대한 관념을 심미적 향유 능력과 연결한다."(67-8)


2 언어의 발견: 하만과 헤르더


"우리는 낭만주의 철학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사이의 대립을 만날 수 있다. 전자는 창조와 파괴의 힘이고, 후자는 형식과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문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특징지으려면 아폴론적인 것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와 파괴의 힘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언어에 의존해야 하며, 언어는 형식적인 규칙과 구조에 의존하여 의미를 만든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시도에는 본유적 모순이 내재한다. 즉,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언어 안에 고정시키면 그 본질적인 성격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불러일으키려면 '직관'에 호소해야 한다. 이는 비개념적 사유 방식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는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개념적 용어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음악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직관(칸트의 직관 개념과는 다르다)과 개념적 사고의 긴장에 관한 문제는 근대 독일 철학사에서 시종일관 매우 중요하다."(82)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은유를 언어와 연결시키면 하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합리론적 사고는 세계에 내재된 이성적 질서라는 '아폴론적' 관념에 의존하며, 참된 언어란 이러한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만은 우리가 애초에 이성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도달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이를 언어 습득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우리가 종종 예술과 연관시키는 실존의 새로운 측면을 드러내는 능력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사물의 질서를 언어에 고정시키려는 시도는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을 언어가 끊임없이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의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관점은 언어에 철저하게 역사적인 차원을 도입한다." "하만의 인식론적인 주장은 우리가 세계와 일차적으로 접촉하는 일이 관념이 아니라 '느낌'/'감각'의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대한 핵심 내용이다."(84-5)


"하만이 칸트에게 던진 주된 질문은 범주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말들은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직관일 뿐만 아니라 순수하면서도 경험적인 개념이다. 경험적인 까닭은 시각이나 청각이 말에 영향받기 때문이며, 순수하다는 것은 말의 의미가 그러한 감각에 속한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언어는 감각적으로 나타나면서도 논리적 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칸트가 지식의 원천을 수용성과 자발성으로 나눈 것을 '해체'한다." "하만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 세계에서 반복되는 소음과 표시를 받아들임으로써만 수용적 사고의 수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소음과 표시가 의미를 담게 하는 것은 사고의 자발성이다. 따라서 두 원천은 분리될 수 없는데, 둘이 기능상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의존하는 것과 정신에 의존하는 것 사이의 철학적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하만의 시도는 독일 관념론과 초기 낭만주의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하만의 (비의적인esoteric) 글쓰기 방식도 논증의 일부다."(89-90)


"헤르더는 《최근 독일 문학에 관한 단편들》(1766-1768)에서 〈우리가 생각 없이는 사고할 수 없고 말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게 사실이라면, 언어는 인간의 지식 전체에 한계와 윤곽을 부여한다〉라는 말로, 신기원을 이룬 그의 첫 가설을 명확히 한다. 칸트는 인간 지식의 한계가 지식 생성에 필수적인 정신의 형식들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주요 사상을 공식화하기도 전에 헤르더는 이러한 한계가 언어의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미 제시했다. 물론 이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현대 철학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헤르더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과 거의 다름 없다.〉 그는 언어의 문화적 발전을 강조하며, 이를 한 문화의 문학과 연결한다. 그는 〈문학은 언어 속에서 성장했고, 언어는 문학 속에서 성장했다〉라는 말로, 언어를 단순히 기존 관념들의 표상으로 간주하는 계몽주의 관점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93)


3 독일 관념론: 피히테에서 초기 셸링까지


"피히테는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의 공통 원천이 주체의 자발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핵심 사상은 칸트의 주장을 발생적 측면에서 탐구한 결과다." "생명 없는 객관적인 물질은 유기체가 되지 않고 '마음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왜 그렇게 남아 있지 않은가를 설명할 만한 것이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법칙에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자연에 유기체가 있고 난 다음에야 이러한 법칙들로 사물이 발달하는 방식이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순전히 물질이었던 존재에서 유기적 존재가 되어 스스로에게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자연 자체에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법칙들은 이렇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자연에 대해 알게 된 존재자들 자체가 자연의 일부다. 여기서 선택은 '주관적' 측면을 제거하려 하거나, 아니면 근대 과학에 관한 정당한 설명과 잘 들어맞을 수 있는 주관성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것이 독일 관념론의 목표 중 하나다."(110-1)


"피히테는 순전히 객관적인 측면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절대적 나'가 세계의 궁극적 토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어떤 유사-신학적 의미에서 '정신'이 물질세계를 창조한다고 봤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즉,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세계가 조금이라고 객관적인(대상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위해 세계에 앞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Gegen-stand'(대상)라는 독일어를 이루는 두 부분이 내비치듯이, 무언가가 대상이 되려면 그것이 아닌 것, 즉 주체인 '나'와 '맞서'stands against 있어야만 한다. 문제는 나의 개인적인 주관적 사유가 이 본질적인 '주관적' 원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개인이 자리한 특수하고 주관적인 위치와 '주관성'(주체성)이라는 일반 원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상당한 어려움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후 슐라이어마허와 키에르케고어는 개인을 그러한 일반 원리로 환원하는 것을 반대한다."(111-2)


"피히테는 주관적 원리에 절대적인 토대의 우선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적 세계의 독립성을 바랄 수 있고, 그는 그런 식의 독립성을 마법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 세계의 저항을 설명해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피히테가 모든 것이 주체에게 종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물의 저항과 자연법칙의 객관성을 인지하지만, 또한 주관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러한 저항은 전혀 저항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물을 알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매우 영향력 있는 그의 발상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분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나'는 '나'(의식)와 비아(객관적 세계)로 나뉘는데, 이것들은 서로 상대적이다. 그 결과 '나'는 '자신에 관하여 하는 행동'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우리의 사유와 행동을 반성하는 능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절대적 '나'가 '무한'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자기-제한은 제한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요구를 만들어 낸다."(123)


"그렇다면 나의 주관성과 다른 주체들의 주관성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히테는 《지식론 원리에 따른 자연법의 토대》(1796-1797)에서 나 아닌 주체가 나라는 주체에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행동 '요구' 내지 '요청'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다." "'요구'는 '나'로 하여금 행동할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나'는 요구의 원천인 '대상', 즉 다른 주체도 〈이성과 자유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그렇게 한다. 이 과정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각 주체는 자기 자유에 대한 인식의 조건으로서 다른 주체를 의존한다. 여기에 관련되는 구조, 즉 반성 구조는 독일 관념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구조 안에서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자신에게 자신이 비추어지는 반성(반영)을 통해서만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요구를 통해 나의 자유를 이해하며, 이를 통해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모두 깨닫게 된다. 반성은 무언가가 자기 자신과, 자기와 관련된 타자로 나누어짐을 통해 일어난다."(125-6)


"셸링이 피히테에게서 본 문제는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며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에 의해 처음으로 식별되었다. 횔덜린의 생각은 같은 시기의 초기 낭만주의 철학의 여러 측면에서, 특히 노발리스의 피히테 비판에서 다시 반복된다. 무언가가 인식 가능한 의미의 '나'가 되려면 타자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그 타자와의 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떤 것과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절대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관계의 전체적 구조는 이 관계에 있는 것 중 어느 한쪽을 바탕으로 한 관점에서만 특징지을 수 없다. 횔덜린은 결과적으로 주체와 대상의 관계 구조를 〈주체와 대상을 부분으로 하는 전체〉에 근거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를 '존재'라 불렀다." "이러한 발상은, 주체의 사고 구조를 통해 세계가 파악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여 그 위에 철학을 세우려는 독일 관념론의 시도 전체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함의하고 있다."(132-3)


"피히테식 접근은 자연을 주체의 대상으로만 환원할 위험이 있다. 셸링은 자연을 바로 '우리를 위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피히테를 공격하며, 이것이 단지 추상적인 철학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원시생태학적 방식으로 분명히 한 예언자적 모습을 보였다. 그는 《초월적 관념론 체계》에서, '절대적 나'가 '자기의식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소급적으로 알게 된다는 측면으로 자연에서 사유 주체가 생겨난 것을 설명하려 한다. 자신을 인식하는 지점에 도달하면 사유는 이러한 자기 인식 이전의 무의식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은 '나'를 기술하는 피히테의 발생론적 방식에 역사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헤겔의 1807년작 《정신 현상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체계》는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초월적 주체가 그 역사의 결과다." "그래서 셸링은 무의식의 역할을 파악하려면 개념적이고 규칙에 얽매인 측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즉 예술로 철학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35-6)


4 독일 관념론: 헤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역사에서 정신이 나타난 것에 관한 설명이다. 칸트의 용어로 정신은 사물이 주체에게 나타나기 위한 조건이므로 그 자체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헤겔은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칸트가 범주표로 제시한 것과 같은 사고 형식들에 관한 추상적인 설명이 실제로는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생기게 하는 것임을 보임으로써 이 모델을 극복하고자 한다. 칸트는 사고 형식이 그 형식의 대상과─즉, 형식을 통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런 식으로 둘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가정은 우리가 현상을 인식하는 형식과 항상 분리되어 있는 '사물 자체'의 문제를 야기한다. 헤겔의 주장은 사고의 형식들이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식에서부터 정교한 과학 연구 및 철학에서 사용하는 발전된 개념이 이르기까지, 주체와 세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역사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와 사고의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할 이유가 없다."(143-4)


"그렇다면 헤겔은 어떻게 토대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체계 제시를 피해 가는가? 그 답은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에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흔히 정립, 반정립, 종합이라는 삼일체의 측면에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이는 그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다. 변증법의 핵심은 헤겔이 〈부정의 부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감각 자료는 우연적이며 또 다른 감각 자료와 결코 동일하지 않고 모두 제각기 다르므로 우리에게 어떤 진리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감각 자료는 '부정적'이며, 감각 자료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요구된다. '이것', '여기', '지금'과 같은 문맥 의존적 개념도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다. 이련 개념들이 보편자가 아닌 것, 즉 세계 안의 개별적인 것에 적용될 때만 진리를 산출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개념의 내용은 그것의 부정적 상태에 의존하여 규정된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여기'는 '저기'가 아니고, '지금'은 '그때'가 아니며 등등. 이런 것들은 더 넓은 맥락 안에서만 진리로 기능한다."(148-50)


"우리는, 사실로 여겨지는 것은 그 사실성이 다른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에 부정에 열려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주장은 모두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다른 주장에 의존하고, 모든 주장은 결국 새로운 주장과 관련되므로 수정에 열려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식을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부정된 것은 그 자체가 지식으로 생각되었던 구체적인 것이며, 새로운 설명을 통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설명으로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헤겔은 '규정적 부정determinate neg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를 헤겔은 〈아우프헤붕〉Aufhebung(지양)이라 불렀다. '아우프헤붕'에는 '부정하다', '보존하다', '고양하다'라는 딱 보기에 모순되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한 초기 지식은 새로운 설명으로 부정되는 동시에, 새로운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존되고, 새로운 설명이 이전 설명보다 우수하므로 고양되는 것이다."(150-1)


"헤겔의 《논리학》은 존재 관념에 대한 검토로 시작한다. 어떻게 우리는 다른 개념과 연관시키지 않은 채, 즉 매개함 없이, 어떤 관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매개함이 없다면, 그 개념은 완전히 텅 비어 있고 규정되지 않아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헤겔의 논증은 어떤 개념이든 규정되기 위해서는 모두 다른 개념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것이며, 존재 개념조차도 예컨대 무 개념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모순은 생성 개념으로 이어진다. 무언가가 처음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후 다른 어떤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즉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때문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성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면, 그것의 본질을 바꿔서 한계를 보완할 다른 개념이 등장하고, 사고 구조의 한계에서 나올 수 있는 또 다른 사고 구조가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이 계속된다. 철학에서 모순이 소진되는 지점은 헤겔이 말한 《절대 관념》이다."(159-60)


5 관념론 비판1: 초기 낭만주의에서 포이어바흐까지


"슐레겔은 〈당신이 요구하는 대로 전 세계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완전히 파악될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라고 말한다." "예술 작품이 우리 존재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술 작품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예술 작품을 모든 면에서 다 파악한다면, 더 이상 예술 작품에 관계할 이유가 없다. 위대한 예술은 우리가 그 작품의 위대함을 전부 알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작품을 계속 다시 찾게 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자들은 현대의 실용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몇몇 발상과 가깝다. 낭만주의자들의 사유 방식에서 또 주목할 만한 측면은 그들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닌 글 쓰기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의 몇몇 작품은 짧은 단편과 아포리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감각을 표출한다."(175-6)


"(계몽주의적 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이 개념적으로는 접근 불가한 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는 더 포괄적인 이성 개념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접근 방식은 '범汎논리주의'로 불리는 것, 곧 존재 자체가 본유적으로 이성적이라는 가정 때문에 위험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 이성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전적으로 이성을 초월하거나 이성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한 신비주의적 접근에 의존하거나 무책임하고 아이러니하게 사회와 단절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한계를 고려하는 또 다른─관련된─방식은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거 등에게 나타나는 측면인데, 이는 훨씬 더 큰 문제들을 불러온다. 이는 철학적 합리성에 한계가 있음을 제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어떤 비이성적인 방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이해 방식이 있다는 주장으로 가는 단계다."(181-2)


"쇼펜하우어의 초기 가정은 칸트적이다. 즉, 우리는 세계가 우리에게 '표상'으로 나타난 형태로 세계를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모든 것에 이유/원인/근거가 있다〉라는 충족이유율의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칸트와의 차이점은 쇼펜하우어의 경우 우리가 세계 자체에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과학에 있는 종류의 지식 형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은 '의지'다. 의지는 고통, 배고픔, 성욕처럼 최종적 통제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에 주목해 보라. 배고픔이라는 개념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배고픔의 본질, 즉 극복이 요구되는 고통스러운 결핍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서 배고픔과 같은 측면들은 우리 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근거가 비현상적으로 현시된 것이다. 따라서 '의지'가 우선적인 실재다."(188)


"쇼펜하우어는 왜 세계가 움직이지 않는,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사물이 아닌지에 대한 문제를 풀려고 했다. 존재가 본유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맞서 분열되어 있다면, 왜 계속 변하고 있는지가 이해하기 쉬워진다. 의지가 바로 존재의 한 상태를 다른 상태로 바꾸려는 동기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동기가 더 높은 상태의 실현을 향한다고 제안하려는 모든 시도가 망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의지가 공동의 목표에 종속되는 더 높은 상태, 관념론자들이 꿈꾸듯이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더 높은 상태가 망상이라는 것이다. 헤겔에게 욕망에 관한 진리는 자아와 타자 사이의 상호 인정을 통해 직접성이 극복되어 정신이 더 높은 형태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욕망은 폐지되는 게 아니라 더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의 상호 작용으로 통합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그가 볼때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욕망을 구원하지 못한다."(189)


"우리가 헤겔에게서 보았던 진리의 위계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념으로 이어진다. 즉 헤겔의 구상은 국가를 '주어'로, 개인과 가족을 주어의 '술어'로 보는 측면에서 정형화된다. 청년 헤겔주의가 관념론을 비판하는 기본 발상은 관념론으로 인해 주어와 술어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론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문제 전체와 관련하여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한 가지 형태는 국가가 진정한 실재이며 그 주체들이 진정한 실재의 술어들이라기보다, 실제 살아 있는 개별 주체 없이는 국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관념론에서 인식된 반전을 바로잡고자 하는 이러한 사상가 중 마르크스와 같은 몇몇 사상가는 개인이 주로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헤겔 사상의 측면들도 취한다. 이 점에서 헤겔에 대한 반대는 왜곡된 사회적 맥락이 어떻게 개인을 왜곡시키는지를 헤겔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195-6)


6 관념론 비판2: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니체는 19세기의 기존 철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이 점점 더 조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을 공유했다. 이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근본적 차이가 있지만, 학계 철학에 관한 그들의 신념에서 비롯된 공통된 결과도 있다. 학계 철학은 철학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판하더라도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 세계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새로운 문제라면, 빈틈없는 형이상학적 논증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상정하는 종류의 철학 활동은 세계에 무엇을 이루어 내느냐가 결정적이라는 생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철학 체계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사람들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거나 사람들이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가? 오히려 애초부터 사태가 정해진 세계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사람들이 직시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209)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우리가 기본적으로 고향에 있지 않다는 느낌인 '낭만주의적인' 소외감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청년 헤겔주의 입장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소외 개념을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이어바흐의 입장이 추상적인 방식으로 철학과 종교에 너무 관여하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마치 주어와 술어의 뒤바뀜에 관한 널리 퍼진 철학적 통찰이 그가 유럽 자본주의에서 본 불의를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즉 인간의 권력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무언가로 전이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는 감각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관심을, 인간의 자연적 능력이 사회에서 전용되는 방식 때문에 인간에게서 소외된다는 생각으로 확장한다. 루소는 사회적 형태에 따른 인간 본성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계몽주의에 도입했는데, 어떤 면에서 마르크스는 루소가 확립에 이바지한 전통에 속해 있다."(213-4)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지,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 생산과 교환이라는 사회적 형태가 이른바 순수 과학적 또는 철학적 탐구의 결과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이는 철학에 대한 청년 헤겔주의적 비판이 철학의 독자적인 존재를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는 보다 철저한 주장으로 확장된다는 의미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당대의 지배적 사유 형태에 내포된 기만들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적·경제적 교환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그러한 기만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이론이 환상 뒤편에 있는 궁극적 실재를 드러낸다는 식의 더 실재론적인 접근 방식을 상정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는 결국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이 시도해 온 일이다." "이 시대와 이후 시대에 많은 사람이 과학은 단순히 실재의 본성을 추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테스트 가능한 실재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결국 철학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221-2)


7 관념론 비판3: 니체


"19세기 후반에는 이성적 사유가 세계의 진정한 본성을 은폐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된다." "그 중 하나는 사유가 우리의 의식적 의지와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유를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냥 우리에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초기 셸링은 물질적 자연의 생산성과 정신의 생산성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사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종류의 사유로도 자연적 생산성 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자연적 생산성은 광기를 포함하여 모든 양상의 '생각'을 발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유가, 이성의 통제가 그칠 때에만 진정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황홀경이나 광기의 상태에서 사물이 진정한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는 개념적 사유로 인해 억압된 사물의 본질을 접하게 해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231-2)


"칸트의 '정언 명령'은 모든 이성적 존재의 도덕적 평등을 그러한 근거로 상정한다. 물론 문제는 이 근거가 실제로 어디까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살펴보는 유일한 방법은 도덕 언어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도덕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중요한 논증은 무엇인가? 니체는 도덕 개념이 초기에는 자기주장의 한 형태라고 결정짓는다. 도덕 개념은 이를테면 권력자가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곧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칭하는 형태다. 그는 도덕 개념을 이렇게 〈이름을 수여할 수 있는 주인의 권리〉이자 〈지배자의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언어 자체와 연결하여 말한다." "따라서 반성 없는 자기주장이 가치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궁극의 가치 같은 것이며, 이러한 가치는 이를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입장이 지금까지 살펴본 독일 근대 윤리 사상의 전통적 측면과 어긋난다는 것은 분명하다."(255-7)


"니체는 근대의 도덕적 삶이 〈도덕에서 노예 반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 반란은 약자가 강자에게 분노한 데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가치를 창시한 귀족들이 '능동적'으로 가치를 명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반응적'일 뿐이다. 이 주장은 유대-그리스도교 세계관이 그리스-로마 세계관에게 승리했다는 해석이다. 강자는 자기 상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끔 약자에게 설득당한다. 니체의 수사는 '포식동물 인간' 길들이기인 문화라는 관념에 그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낸다. 그가 반대하는 까닭은 문화가 인간의 본질적 상태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 문화가 이러한 억압으로 오염되어 사람들이 삶에 진저리치게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을 억압으로 보는 발상은 이 시기부터 독일의 문화 비평에서 흔해졌다. 이 발상에 열광하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많은 젊은이가 (종종 니체를 읽고 나서) 전쟁이 숨 막히는 문화에서 벗어날 방법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이다."(258)


"니체에게는 (1) 힘으로서의 해석에 관한 형이상학적 주장을 강력히 옹호하는 것(그는 철학 전통을 떠나고자 했지만, 이러한 주장을 펼침으로써 떠나려 했던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2) 그가 '관점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 사이에서 분열이 있다. 관점주의는 객관성을 이해하기 위한 중심 위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 데서 비롯한다." "《즐거운 학문》을 읽다 보면 쟁점에 관한 관점이 끊임없이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새로운 생산적인 통찰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심지어 받아들일 수 없는 지배적 관점이 등장하거나, 관점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말이다. 이렇게 수행적으로 철학 하는 방식은 철학적 발견은 물론 일상생활에 중요한 실용적 통찰에도 원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행적 방식은 또한, 힘의 부과가 아닌 다른 것에서 타당성이 나올 가능성을 무시하고 수행할 때 수행적 방식이 반대하는 것만큼이나 독단적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264-5)


# 수행적遂行的, performative : 청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 형태로 생각되는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은 언어의 수행적 성격과 관련된다.


8 언어적 전환


"슐리크가 환상이 이닌 실제적 물음에는 오로지 과학적인 해결책만 있다고 가정하고 동시에 언어에 집중한 점은 일반적으로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소위 '언어적 전환'은 앵글로·색슨 세계 분석 철학의 특징이다. 하지만 언어적 전환에는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생각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매우 특수한 특징이 있다. 18세기 독일 전통에서 주요 사상가들은 이미 언어를 핵심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철학 전통은 지금까지 살펴본 이야기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예컨대 《비극의 탄생》과 슐리크의 주장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견해 차이는 가장 큰 대조를 이룬다. 18세기에 언어 중심적 철학은 하만과 헤르더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계몽주의가 감각적 인간 존재 및 역사와 언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분석 철학은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사변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과학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계몽주의의 한 측면을 이어가고 있다."(271-2)


"이 문제─분석 전통이 언어를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왔다는─가 복잡해지는 지점은 언어가 무엇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만, 헤르더, 슐라이어마허, 훔볼트는 언어를 주로 세계 안의 사물을 표상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언어를 세계와 우리 안에서 사물이 드러나거나 나타나게 만드는 사회적 행동의 형태로 보았다. 하지만 과학 용례에서는 용어들을 과학 법칙이 예측하는 사물을 애매함 없이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여기서는 언어의 주된 기능이 이미 거기 있는 것을 '재-현전시킨다'는 의미에서 표상적 기능으로 보일 것이다. 분석 전통은 특정 영역에서 언어의 표상적 차원이 결정적이라는 확신이 커지면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 과학이 신뢰할 만한 과학 법칙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것을 고려해 볼 때, 분석 철학의 선구자들에게 철학의 과제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언어에 대한 설명를 통해서 기술하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274)


"빈학단의 철학은 종종 '논리 실증주의'로 불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명칭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논리 경험주의'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일부 좌파들은 여전히 실증주의를 경멸적인 용어로 여기는데, 이 용어는 너무 자주 매우 모호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1830년대에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콩트에게 과학은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라는 세 단계를 거친다. 마지막 단계는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하고 감각 증거에 기반한 지식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콩트의 개념은 빈학단의 개념과 차이가 있지만, 빈학단 구성원들도 경험 자료를 지식의 주요 원천으로 삼아 과학에서 형이상학을 배제한다는 콩트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반감은 처음부터 실증주의가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하고자 한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배제에 반대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와 여러 마르크스주의자가 실증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연결된다."(289)


"마흐는 19세기 말부터 여러 과학 지향적 철학의 특징이 되는 급진적 움직임에 착수한다. 그는 자신이 실재로 여기는 것을 논리적 추론을 통해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데 사용되는, 감각 자료에 있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제한한다. 감각을 유발할 수 있는 주체나 실재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흐는 이러한 구성을 사유하는 주체의 일로 보지 않는다. 예측은 논리 법칙을 따라 조직된 반복적 자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이는 이론이 현실을 '반영'한다거나 현실에 '대응'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도 과학 이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주체와 대상이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보일 필요가 없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지금 우리 자신에 관해 느끼는 많은 것을 철학적 고찰에서 배제한다. 마흐식으로 보면 '자아'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허구가 된다." "이는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칸트의 선험적 종합 지식 사상이 거부되었음을 의미한다."(290)


"현재 분석 전통에서 무의미를 바라보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두 방식 모두 형이상학이 전적으로 논리적이거나 전적으로 경험적이지 않은 진리 주장을 포함하므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무의미를 바라보는 첫 번째 방식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판단은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경멸적일 수 있다. 빈학단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지므로 과학적 또는 철학적 해답을 명확하게 얻을 수 없다는 암시도 될 수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이 무의미하다는 주장 자체도 논리적 진리가 경험적 진리가 아니다. 그러한 주장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조건이 허용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래서 초기 낭만주의는 예술에 집중하는 쪽으로 갔다. 예술 작품이 빠짐없이 완전히 해석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철학이 말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나는 장소로서의 예술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296-8)


9 현상학


"현상학에서 출발점은 세계 자체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상학은 분명 '궁극적 실재'의 문제를 여전히 포함할 것이며, 일부 비평가들은 현상학이 현상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사물, 소음, 냄새 등의 세계에 대한, 즉 직접적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후설을 비롯한 사람들은 우리가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이러한 일상적 경험을 가린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이미지로만 경험한다는 것은 경험이 '사물 자체'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와 사물 사이의 매개에 대한 경험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후설은 우리가 나무를 볼 때, 나무 이미지나, 우리가 나무를 구성해 내는 재료인 한 다발의 감각 자료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 자체를 본다고 주장한다." "후설은 주관성에 대한 강한 관심을 과학적 객관성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결합한다. 이렇게 그는 근대 철학의 낭만주의적 측면과 실증주의적 측면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한다."(319-20)


"후설이 '본래적 주어짐'이라는 측면에서 본 '거기 있는 것'에 대한 직관은 내 앞에 있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경험의 형태를 띨 수도 있지만, '본질 직관'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경험론자는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은 직접적인 경험 자료로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후설도 이에 동의한다. 새로운 과학이 그저 이미 알려진 것에서 도출되는 게 아니라면, 직접 경험한 것이자 '본래적으로 주어졌다고' 여겨지는 증거에서 출발하지 않고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이 원리 자체가 경험의 측면에서 확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원리 자체를 지식의 유일한 근거로 확정할 수 있는 경험 자료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상학이 극복하고자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론의 실패다. 이 실패를 극복할 원리는 그 자체로 절대적 지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원리는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 즉, 과학에 토대를 제공하려 하지만 과학이 직면한 우연성에 종속될 것이다."(324-5)


"후설은 〈과학적 사고 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실제 생활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전前과학적이고 초과학적인 생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세계가 담고 있는 것에 관하여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세계이자 물리칠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데서 철학이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의 더 발전된 버전이다." "후설이 제안하는 것은 초월적 철학의 또 다른 버전이다. 생활 세계는 과학의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회 안의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들 간의 본질적인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활 세계 구조는 모든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동일한가? 다른 문화와 과거의 문화 유물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고려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해가 실제로는 타자에게 우리의 관점을 부과한 것에 불과할 위험이 항상 있다. 하지만 근간이 되는 배경적 합의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언어를 배우고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소통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338-40)


10 하이데거: 존재와 해석학


"하이데거에게 '존재론'의 과제는 존재Sein와, 개별적인 존재적 과학의 탐구 대상을 구성하는 '존재자'Seiendes를 구별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근대 철학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에게서, 존재는 〈지속적 현전〉으로 이해된다. 데카르트의 세계는 탐구되기 전에 이미 그렇게 있는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사유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대상들을 '재-현전시키는(표상하는)' 것이다.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열어밝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존재론 개념은 근대 과학이 세계를 수학화하기 위한 기초이다. 이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무시간적이고 법칙 지배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존재 물음의 '망각'이라는 개념이 더 발전된 의미를 갖는다. 하이데거는 자연 과학의 물질적 대상들을 그 기반으로 상정하는 존재론은, 이것이 '현전'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이해지, 존재 물음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356, 359-60)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식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 즉 진리가 무시간적으로 현전하는 세계로 보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 대신 진리는 우리가 세계에 존재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출현한다. 어떤 진리가 거기 있든 간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 그리고 세계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측면─진리가 이해에 의존한다면, 진리가 있음을 이해하는 존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문제는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시간의 측면에서 적절하게 특징지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현존재는 진리의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초월적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이데거의 입장이 작동하려면, 그러한 가능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그 자체가 분석 가능성의 조건이기 때문에 더 분석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진리가 모든 분석에 전제되어야 하므로 분석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도널드 데이비슨 같은 의미 이론가들에게 가깝다고 볼 수 있다."(367-8, 371)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진리의 궁극적 기반이라는 생각에서 이미 벗어나기 시작했던 측면들에 집중한다. 그는 존재 자체가 시간에 의해 이미 열어밝혀져 있지 않았다면 현존재가 진리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관점의 변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항상 개별 존재보다 앞서 있으며 세계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언어의 의미에 현존재가 의존한다는 사실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도 언어나 의미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후기 하이데거는 언어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부터 온 일종의 '선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그가 언어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토록 반대하게 된 이유다. 과학의 가능성 자체가 존재의 선행적 계시인 언어에 의존하며, 과학적 주장은 세계에서 진리가 '일어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진리는 또한 과학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문학'이나 '시', 즉 '디히퉁'Dichtung의 형태로도 일어난다."(372-3)


"하이데거의 후기 저술은 평가하기도 어렵다. 나치즘과 관련하여 자신의 역할에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쓴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결정에 직면한 개인적 상황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 기획인 현존재에서 벗어나서, 존재의 진리로 이행하는 것은 편리하게도 세계사적인 변화를 개별 주체를 아주 넘어서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버마스는 말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그 정당성에 대해 공적으로 논할 수 없는 더 높은 진리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편에 있었던 것을 암묵적으로 변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그 자체로 결정적 주장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 실패는 차치하더라도, 하이데거 사상의 문제 중 하나는 그의 사상에서 윤리학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어나는 일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사태를 그렇게 만든 것은 현존재의 의도가 아니며, 다만 존재가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면, 그는 누구를, 아니면 무엇을 비판해야 하는가?"(377-80)


11 비판 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양차 대전의 어마어마한 파괴와 끔찍한 인명 손실을 불러왔다고 본다(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삶을 훨씬 더 좋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 혁신의 능력은 도덕적, 사회적 진보와는 점점 더 분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한 가지 반응은 칸트와 실러의 사상에서 비롯된 도덕 교육 개선을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근원이, 신학이 더 이상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개인의 윤리적 실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기술의 응용 자체도 야만성이 늘어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기술 수단의 사용자들은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결과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건들의 뿌리를 근대 과학의 응용과 사회 조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서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탐색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이러한 검토의 주된 모델은 마르크스, 베버, 프로이트였다."(386-7)


"루카치는 전통적인 인식론의 문제─주체와 대상의 분열─를 극복하여 혁명적 행동이 합리적으로 성취 가능해지기를 바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발상은 '전체성'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전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고립된 경험 자료들을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맥락에 통합시킨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연결 원리는 자본주의가 모든 사물을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헤겔은 모든 것의 상호 연결성에서 근대성의 본질적 측면을 파악하는 철학의 능력을 보았다. 이는 절대정신에 관한 그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루카치는 이러한 상호 연결성을 근대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 형태에 기반한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으로 간주한다. 세계화의 영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구상의 힘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져온 변화의 핵심 특징은 개인이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변화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루카치는 이것이 근대 철학에서 이론과 실천이 분리된 근원이라고 주장한다."(388-9)


"발터 벤야민의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열심과 유대교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결합해 있다. 그는 특히 신이 이해 가능한 세계를 창조한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신비주의적 언어 개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초기 작품부터 벤야민은 자연 과학의 도구적 언어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까닭에 가려질 수 있는 언어의 차원들에 관심을 가졌다." "근대 시기의 언어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도구적 사용과 심미적 사용 사이의 차이에 있다. 전자는 빈학단의 논리적으로 걸러진 언어라는 발상이 제안한 것처럼, 단어 사용을 훨씬 더 정밀하게 상술하는 데 의존한다. 후자는 다른 진리로는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진리를 갖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억압된 언어 자원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식의 진리는 언어를 새로 독특한 조합으로 구성하는 데 의존한다. 시와 같은 텍스트는 이런 식으로, 그 텍스트를 구성하는 언어적 재료의 역사적 자의성을 초월할 수 있다."(395-9)


"벤야민은 참된 언어가 무엇인지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인류와 근대 세계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정치적 기획과 결합하고자 한다." "벤야민의 후기 성찰은 대체로 문화 개념 자체가 역사에서 지금까지 승리한 자들의 야만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됨으로써 훼손되었다는 확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의 완전한 변혁을 통해 과거 전체가 구속redemption될 필요가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그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필요는 나치즘이 부상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이해할 만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서 추동하는 힘은 의문스러운 신학이다. 문화에 대한 기록이 어떤 면에서는 항상 역사의 불의에서 비롯된 억압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은 비판 이론의 주요 통찰 중 하나다. 하지만 벤야민이 역사의 구속이 무엇을 수반할지를 구체적인 정치 전략의 측면에서 제시하려 한 진지한 시도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생각은 역사가 실제로 진보의 측면을 포함하는 방식을 너무 쉽게 간과할 수 있다."(400-2)


"헤겔의 변증법이 규정적 부정에서 철학의 완성인 긍정적 '절대 관념'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철학적 결론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는 많은 사람의 삶을 훨씬 안락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가장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에도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깊은 상처와 폐해를 가져온다. 아도르노에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은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의 한 가지 요인은 모든 근대 관료제에 특징적인 조직 구조를 이용해 야만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자신이 전체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외면하고 자신의 개별적 역할을 변호할 수 있다." "아도르노는 그의 철학적 주저인 《부정 변증법》(1966)에서 히틀러로 인해 우리에게 생긴 새로운 '정언 명령', 즉 아우슈비츠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도르노는 리처드 로티와 같은 현대 실용주의자에 가깝다."(412-5)


결론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에서 하이데거와 빈학단에 이르는 다양한 버전의 철학의 종말 개념은 모두 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 달려 있다. '실증주의'에 대한 아도르노의 적대감은 자연 과학을 우선시하는 철학이 사회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 문제들을 배제하려 한다는 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반대자들이 경험적 사회 탐구로 인해 비판적 관점이 배제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도르노는 설명적 과학 이론이 삶을 더 견딜 만하게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실제적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정당한 주장─이는 수많은 철학적 입장이 공유할 수 있는 주장이다─과 과학주의의 구분을 너무 자주 흐리게 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주체가 타자를 지배하는 것이 근대성 병폐의 뿌리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주장은 후기 하이데거를 비롯하여 하이데거에게 영향받은 이들과 아도르노를 가장 가깝게 만드는 지점이다."(426-8)


"하이데거는 근대성이, 모든 존재와 모든 진리에 대한 확실성이 단일한 자아라는 자기의식, 즉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에 기초한다고 본 데카르트에게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리오타르는 자연이 가하는 위협과 자기가 부과한 제약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한다는 명목하에 타자를 통제하거나 배제하려는 주체의 시도를 근대성의 일반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주체의 자기 해방의 '거대 서사'는 실패하였고, 그 결과 인종, 젠더 등 여러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억압으로 되돌아왔다. 리오타르는 이성이 자신의 틀에 맞지 않는 것을 항상 배제하기 때문에 본유적으로 테러적 요소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쟁적 방식들은 더 이상 일반적인 '정당화 담론'에 대한 '근대적' 탐구에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남겨 놓았다. 물론 그가 정확히 이성의 어떤 점을 옹호하는지는 간혹 불분명하다."(429)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가다머도 근대가 진리를 자연 과학의 전유물로 여기며 전념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해를 과학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형태의 설명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진리와 방법》이라는 제목은 자연 과학이 세계가 어떻게 나탈 수 있을지를 미리 결정하는 규칙 지배적인 방법들에 의존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반면 에술은 개별 주체의 우연적인 반응을 초월하는 전통의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진리는, 다양한 맥락에서 전달되고 수용자와 예술 작품 사이에 '지평 융합'을 수반하는 새로운 종류의 이해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드러난다." "예술에 대한 이해는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음으로써 일어난다기보다, 작품에 영향을 받아 자기 지평이 변하는 데서 일어난다. 이는 필연적인 종착지가 없는 계속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이해는 예술작품의 '현재적' 본질로, 즉 대상이 아니라 실제 문화에서 시대마다 '발생'하는 무언가로 간주된다."(433-5)


"하버마스는 그가 〈주체 철학의 패러다임〉 또는 〈의식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함으로써 그의 구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구상에 도달한다. 이 패러다임은 철학의 임무가 주체 쪽에 속하는 것과 대상 쪽에 속하는 것을 규명한 다음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현상 안의 선행적 통일성〉을 보장하는 칸트의 초월적 주체는 하버마스가 거부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다." "하버마스가 볼 때, 주체성의 근간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결국 주체의 본성을 신비화해 버릴 가능성이 큰 정초 원리(예컨대 의지)를 찾는 헛된 탐색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그는 〈주체성이라 이름할 만한 모든 것〉은 실제로 한 사회의 상호주관적인 언어와 관습으로 사회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칸트가 〈예지〉라고 부른 영역에 이성이 초시간적으로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합리성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442-3)


"하버마스는 다른 사람의 의사소통 행위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이미 합리성의 근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증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합의라는 텔로스'를 수반한다." "칸트가 인식, 윤리, 미학의 세 가지 비판으로 나눈 것과 베버의 근대 합리성에 대한 견해를 따라, 하버마스는 〈각각의 고유한 논리를 따르는〉 〈과학, 도덕, 예술〉이라는 세 가지 가치 영역의 분화라는 측면에서 근대성을 본다. 이들 영역은 각각의 〈타당성에 관한 비판 가능한 주장〉, 즉 〈명제적 진리, 규범적 올바름, 주관적 진실성〉을 포함한다. 하버마스는 논리 실증주의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에서 토대를 찾는 식으로 이러한 각 영역의 타당성의 토대를 찾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 활동의 다양한 영역에서 타당성 주장이 어떻게 '유효화'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의식 철학'이 추구하는 식으로 인간의 관심 영역에 직접적으로, 언어 외적으로 접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장의 유효화는 오직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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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2026-01-2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책 내용이어서 잘 참고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저작권료 내야지 않나요?
 
독일 관념론 철학
니콜라이 하르트만 지음, 이강조 옮김 / 서광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제1부 피히테, 셸링, 낭만주의


서론


"독일관념론 사상가들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의 목표는 최후의 명백한 토대 위에 기초하고 있는 포괄적이며 엄밀하게 통일적인 철학 체계의 창출이다. 모든 사상가들 앞에 저 〈미래의 형이상학〉의 이상이 떠올랐고, 칸트의 강력한 사유의 노력이 처음으로 그 서설을 제공했다. 그들은 칸트가 그의 후기의 두 비판에서 이 형이상학을 이미 개설적으로 구상했다는 사실을 전연 간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설은 그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체계는 완전하고 확실하게 철학의 이념을 충족시키면서 성립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체계가 가능하고 또 인간 이성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은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일체의 운동은 젊은이처럼 강력하고, 창조를 기뻐하는 철학적 낙천주의의 특징을 띠고 있다. 일체의 회의는 단지 통과해야 하는 단계의 의미, 검사 및 숙고의 법정이라는 의미, 그리고 여러 문제들을 보다 깊이 내면화하고 철저하게 처리하는 데 이르는 과정을 의미를 가질 뿐이다."(24)


"이러한 철학적 전개에서 슐레겔과 노발리스는 무엇보다도 철학적 영역에서 시도했고, 무한자와 비합리적인 것으로 향하는 그들의 동경의 정신을 관념론적 사변 속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이다. 유사한 내용이 횔더린에게도 일정 부분 적용된다." "비판적-체계적 사유의 구조 속에서는 낭만주의적, 범신론적 그리고 신비적인 요소가 우선은 여전히 이물(異物)처럼 작용하지만, 이것이 저 사유를 처음에는 천천히 안으로부터 밖으로 완성시켜서 그 직선적 궤도로부터 밀어제친다." "칸트로부터 합리주의적이라는 기분이 드는 관념론이 여기서부터 겪게 되는 만곡(彎曲)은 가장 실증적으로는 윤리학, 미학, 그리고 종교철학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합리주의는 느지막하게 쇼펜하우어 및 셸링의 후기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만연한다. 반면에 사상적 동기의 풍부함에 있어서 낭만주의적 창작 및 생활의 덕을 입고 있는 헤겔은 최후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전능에 대한 믿음에 충실하고 있다."(27-8)


1장 칸트학도와 반칸트학도


"라인홀트는 〈비판〉을 체계로 변형하려는 요구를 가진 최초의 인물로서 등장한다. 비판은 이론적 부분에서는 경험으로부터, 실천적 부분에서는 도덕법칙, 즉 어떤 원칙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비판에서는 통일적인 전제, 즉 일체의 것이 도출될 수 있는 하나의 포괄적 원리가 결여해 있다." "동시대인들은 칸트의 철학을 라인홀트의 철학에 비추어서 보았다. 그리하여 두 이론 간의 구별이 우선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라인홀트가 전체적으로 보아 칸트철학의 의도를 긴밀하게 고수하면 할수록, 그만큼 바로 요소 철학의 일련의 특유한 특징들이 매우 성과 있는 방식으로 지속해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정말로 진실로 남아 있다. 이 특징들은 다음의 것이다. ①형식과 질료 이론의 관철, ②물자체의 필연성과 인식 불가능성의 정립, ③체계의 출발점으로서의 원칙의 통일성, ④조건들의 연속적인 제시로서의 도출 방법, ⑤실천적 능력에 의한 이론적 능력의 피제약성."(34, 41)


"마이몬에게도 물자체가 우선 장애가 되는 주요점이다. 그는 이 개념의 해명을 애초부터 회의적으로, 즉 바로 비판 자체의 그 정의들로부터 얻으려고 한다." "마이몬은 최초로 관념론적 관점을 진지하게 다룬다. 라인홀트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실제적인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유할 수도 없다. 우리가 물자체에게 덧붙이는 모든 징표─단지 촉발 원인의 징표일지라도─는 의식 속에 정립되어 있고, 따라서 사실상 물자체가 아니라, 의식의 어떤 구조물에 귀속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의식의 바깥에 있는 물자체는 징표를 갖지 않은 대상일 것이고, 어떠한 사유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유는 징표에 의한 규정 작용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물이 아닌 것〉일 것이다. 마이몬은 그것을 수학의 허수에 비유한다. 이에 반해서 비판적으로 이해된 물자체는 유리수와 똑같이 실재하는 무리수─이 무리수가 근사치의 무한 계열의 한계치를 형성하기 때문에─에 비유된다."(49)


"그러나 마이몬은 자기의 고유한 입장을 가장 엄격하게 순수 이성 비판의 입장으로부터 구별할 줄 안다. 이 구별은 출발점 안에, 즉 사실의 문제 안에 놓여 있다. 칸트와 함께 그는 경험의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것의 학문적 판단의 보편성과 필연성에 이론(異論)을 제기한다. 이 점에서 그는 흄과 일치한다. 수학만이 선천적 종합판단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의 입장을 〈경험적 회의주의〉라 부른다. 경험적 회의주의는 슐체의 회의주의처럼 비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을 전제하고 있고, 비판에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비판의 절차만이 모든 경험은 불완전한 인식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이몬의 〈경험적 회의주의〉는 결코 경험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경험적 사실 인식은 결코 〈온전한 의식〉이 아니다. 그러한 어떤 온전한 의식에게는 사실을 산출해 낸 선천적 형식들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속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이몬의 회의론은 근본적으로 순수한 선천주의이다."(54-5)


"야코비에게 칸트의 체계는 순수한 주관주의를 의미한다. 칸트가 경험론적-관념론적 이해를 거부하게 되는 객관주의적 전환은 야코비에게는 관점상의 탈선으로 간주된다." "야코비가 보기에 우리가 칸트와 함께 물자체를 존립시킨다면, 비판은 자기 모순에 빠진다. 비판의 전체의 구상은 자발성과 수용성의 이원성에 기초해 있고, 수용성은 주관 바깥의 현존재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물자체 없이는 비판의 관점은 획득될 수 없고, 그러나 물자체와 더불어서는 비판의 관점은 주장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야코비에게는 비판적 관점의 유지 불가능이 증명된다. 그러므로 그는 비판의 결과로부터 역(逆)의 귀결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관념론과 물자체는 통일될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중에서 하나는 포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관념론은 많은 가능한 관점 중의 하나일 뿐이고, 물자체는 모든 인식의 필연적 상관자이다. 따라서 물자체는 고수되어야 하고 관념론은 포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실재론적 관점이 일어난다."(62-3)


"야코비는 자기의 신앙 이론을 매우 엄밀하게 칸트의 이론으로부터 구별할 줄 안다. 칸트 역시 물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서 승인하고 있고, 신앙에게 지식을 초월하는 우월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칸트의 이 신앙은 다만 실천적 확신을 갖고 있을 뿐이고, 따라서 이 신앙은 그 대상의 실재적 본성 속에서가 아니라, 단적으로 신앙하는 주관의 본성 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신앙은 역시 인식 조건의 전체 계열과 똑같이 정확하게 주관적이다. 표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은 신앙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에 반하여 야코비에 의하면 신앙은 실재적 대상의 본성 속에 근거를 두고 있고, 따라서 비주관적인 것의 계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천적 확신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 확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대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이 신앙을 통해서 제약되어 있다." "야코비에게 〈이성〉(Vernunft)은 곧 초감성적인 것의 〈지각〉(Vernehmen)을 의미한다. 이성은 칸트가 부인했던 능력, 즉 지적 지관을 소유하고 있다."(64-5)


"바르딜리는 칸트가 일관성 있게 주관의 자체 존재 이외에 어떠한 다른 자체 존재도 승인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확정된 것이라고 본다. 이때 칸트의 철학은 주관으로부터의 객관의 연역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객관을 이와 같이 〈숙고하여 이끌어 내는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피히테의 시도는 바르딜리의 마음에는 길 잃은 형이상학을 위협하는 본보기로서 떠오른다. 이 시도를 거스르는 것은 야코비가 의지했던 상식의 자연스런 요구라기보다 바로 논리학의 엄격한 학문적 요구이다." "바르딜리는 야코비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에서 비판철학에 일격을 가한다. 지각의 본성이 아니라, 순수 사유의 본성이 객관의 실재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응하여 바르딜리의 실재론 역시 야코비의 실재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바르딜리의 실재론은 〈순수한〉(즉 선천적인) 또는 〈합리적〉 실재론이다. 그는 논리적인 것의 실재성을 모든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공동의 존재 토대라고 주장한다."(68-9)


2장 피히테


# 구상력(構想力) : 칸트 철학에서는 감성과 오성(悟性)을 매개로 하여 인식을 성립시키는 능력을 이른다.


"피히테의 철학적 근본 관심은 라인홀트와 매우 유사하다. 그 역시 철저히 윤리적-종교적 측면으로부터 칸트철학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피히테는 처음부터 칸트철학의 전체에, 그리고 기술되지 않은 보다 더 내면적인 이 철학의 핵심에 관계한다." "피히테는 라인홀트가 이미 그랬던 것처럼 결정론을, 비록 이 결정론이 아무리 이론적으로는 필연적인 것으로 증명된다 할지라도, 적대적인 어떤 것,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게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라인홀트보다 본성상 더 힘 있고 무리하게 그의 사상을 전환시켜 다음과 같은 대담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즉 바로 이 이론적 필연성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고, 이론적 필연성이 최종적인 단안이라는 것은 정당한 일일 수 없으며, 오히려 역으로 도덕적 존재의 자유가 최초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주어지는 과제는 자연적인 것과 결정된 것의 세계가 어떻게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이해되는가를 지적하는 일이다."(80-1)


"이론적 자아는 비자립적이다. 이론적 자아에게는 비아(이론적 자아의 대상)가 영원히 대립한다. 이론적 자아는, 순수한 관념론이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비아를 자신으로부터 산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비아의 독립성 때문에 자기 자신도 지양하게 될 것이다." "의식의 고유한 이론적 본질은 결코 의식을 이 이원성 너머로 올려놓을 수는 없다. 이 본질은 이원성, 즉 비아에 결부되어 있다. 단순히 이론적이기만 한 관점이 물자체를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자아는 동시에 행위 하고 있다. 행위는 대상에 대한 역의 관계를 의미한다. 자아는 행위 속에서 창조하면서 또 형태를 만들면서 비아에 간섭하게 되고, 자기의 상(像), 즉 자기의 정신의 목적에 따라서 비아를 변형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비아에 대한 자기의 우월을 표명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자아는 사실상 산출적이다. 비아의 자아와의 동등한 권리는 여기서 중지되고, 이것과 더불어 이원성이 종말을 고한다."(89)


"행위 함이 무엇인가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는 없고, 직관될 뿐이다. 행위의 본질은 존재에 대한 그것의 대립으로부터 비로소 뒤늦게 파악된다. 또는 같은 말이 되겠지만 자아의 본질은 비아의 본질 속에서 비로소 인식된다. 직관은 아직도 인식이 아니다. 철학자에게 요구되는 철학자 자신의 직관을 피히테는 이제 〈지적 직관〉이라고 부른다. 지적 직관은 행위에 대한 직접적 의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직관은 분명히 모든 경험 속에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피히테에게 있어서 물자체는, 엄밀히 생각하면 사유할 수도 없는 〈순전히 비이성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물자체들은 여기서는 그 어떤 인식의 대상으로서도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지식학은 이것들에 대한 어떠한 장소도 갖고 있지 않다. 지식학에서의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감성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지식학에서의 지적 직관의 오용(誤用)에 관한 우려 역시 쓸데없는 일로 되어 버린다."(94)


# 직관(直觀) :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자아는 행위가 관계하는 대상이 없다면, 자신을 행위 하는 것으로서 발견할 수 없다. 자아의 존재는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존재가 그에게 동시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기 바깥에 있는 그러한 존재자의 정립은 그러나 분명히 자아의 정립에 대한 하나의 반정립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반정립적 조치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반정립은 자아의 정립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며, 그 자체에 의해서 요구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모순이 극복되어야 한다면, 정립과 반정립을 종합으로 결합시키는 보다 높은 통일의 관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립된 것들의 통일의 점〉은 임의적으로 구성될 수 없다. 오히려 다만 이 통일의 점을 현존하는 것으로서 제시하는 일, 즉 통일의 점이 〈대립된 것들의 의식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변증법적〉 절차는, 피히테에게는 아직 발생 중에 있고, 불안정하며, 자기의 본래적 위기를 때때로 위반하기도 한다."(97-8)


"자아의 본질은 모든 자아가 대자적─비아를 규정하는 자로서 자신을 정립하는─이라는 점에 있다. 절대적 자아의 본질인 근원적 활동성은 따라서 자아로부터 원심적으로 무한 속으로 진행하여 자신을 의미도 계획도 없이 상실해 버리는 곳에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이 근원적 활동성은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기 자신 속으로 반성될 때만 자아에 대해서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장애와 저지의 근거는 반성의 측면에서 보면 자아 자체의 본질로부터 요구되는 반성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지는 활동성을 절멸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아의 활동성은 무제한적인 것이고, 또 모든 방해를 다시 넘어서고 일체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천적 태도에 대해서는 특징이 된다. 그러나 방해를 넘어서는 이러한 무제한적인 이행은 오로지 노력해야 하는 일일 뿐이고, 창조, 실현 또는 달성되는 일은 아니다. 무한자는 활동자의 속성이 아니고 활동성의 목표이자 이념이다."(116)


"역사철학은 피히테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윤리적 관점 아래에 서 있다. 역사철학은 역사학처럼 사실의 탐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그것이 가장 작고 덧없는 사회이건 또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사회이건 다같이─의 생동적인 작용 및 노력에 대한 불가결의 윤리적 방향 설정을 형성하고 있다." "모든 현존재는 자유를 실현하려는 생각을 갖는다. 인류의 발전에 어떻게 어떤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역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상승, 보다 높은 발전, 진보이어야 하고, 둘째로는 역사 속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되는 가치 실질은 가장 내면적인 인간 본질의 가치 실질, 즉 이성의 가치 실질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전체의 발전은 무죄의 상태와 더불어 시작하여 죄지은 상태에 이르고, 이 죄의 상태를 결국에는 극복하여 자각적 이성의 나라에서 끝나는 그러한 과정이다. 따라서 진보의 계기는 바로 도덕법칙의 척도와의 연관에서 결코 직선적인 것이 아니고, 반립적인 것이다."(164-5)


"피히테가 자기의 모든 본질과 극단적으로 대립한다고 느끼는 시대는 〈계몽〉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개별 정신을 담지하는, 그리고 기초에 깔려 있는 위대한 이념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 시대는 전일(全一)의 이성의 생명을 인간의 생활 속에서 보지 못했다." "개별자는 눈앞에 있는 것, 즉 개별자를 감금하는 가장 협소한 범위의 관계 속에 있는 자기 자신만을 본다. 그의 최고의 것은 자기 보존이고, 자기 행복이며, 사리(私利)이다." "피히테는 계몽주의에서 그가 생명과 노력을 다 바친 윤리적 이념의 위엄이 위태롭게 됨을 보았다. 그는 여기서 그 특유한 가치가 모든 윤리적 노력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전체의 내용을 의미한 바로 그러한 자유의 의미가 오래되어 있음을 보았다.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위대한 것과 원대한 것을 옹호한 그는 계몽주의에서는 원칙적으로 편협하고 소규모의 것이 사물의 척도로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세계를 축소시키는 사상과의 화해는 그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167-8)


3장 셸링


"피히테의 체계는 자유의 이념을 위한 투쟁의 결과로서 생겨났다. 이 투쟁은 가차 없고 난폭한 투쟁이었다. 자유에 대립된 것은 폐기되어야 한다. 필연성은 자유에 대립한다. 필연성은 모든 자연적인 것의 내적인 속박이다. 그러므로 피히테는 자연적인 것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그것을 자유의 창조적 작용 속에서 지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된 존재는 자연 속이 아니라, 어떤 다른 곳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이러한 평가 절하는 비자연적이다." "그렇기에 피히테를 넘어서는 셸링의 제일보는 자연철학에로 이르게 된다. 셸링이 자연철학을 완성하고자 할 때, 그는 자연과 정신의 평행적인 구조에 대해서 여지를 갖고 있는 보다 넓은 새로운 기초에 의해서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이 기초를 동일철학의 사상에서 발견한다." "셸링은 이 사상을 거대한 규모로 완성함으로써 헤겔이 그 후의 모든 역사적 체계 가운데서 가장 정연하고 가장 포괄적인 체계를 구축하게 된 토대를 창조하였다."(183-4)


"그러나 헤겔이 지칠 줄 모르는 작업으로 자기의 대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동안에, 셸링은 다시 뿌리로 되돌아가서 파악한다. 셸링은 독일관념론의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낭만주의에 가장 근접하는 사람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문제들의 세계가 그에게 밀어닥치고, 또 해결을 요구한다. 그에게는 예술철학만이 이러한 자극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비합리적인 것, 종교적인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비로운 것에로의 경향도 이 자극으로부터 나온다. 셸링은 이러한 경향의 뿌리를 일체의 철학적 사유의 제1근본 원리 속에서 발견한다. 자연철학은 그에게서 종교철학으로 변한다.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은 그에게는 신성(神性)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동일성의 체계를 선언했던 이성의 저 전체의 합리적 철학은 참된 원근거(源根據)에 이르지 못하였고, 계시 철학만이 긍정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신앙과 지식의 모든 외견상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계시철학으로써 그는 헤겔의 이성 체계에 대립한다."(184-5)


"셸링의 자연철학은 통일성 철학의 순수한 전형이다. 이 철학의 형이상학적 근본 사상은 동일성의 사상이다. 즉 자연과 정신의 동일성, 우리 속의 정신과 우리 바깥의 자연과의 본질의 동일성이다. 자연은 외부에 의하여 경계 지어진 것도 아니고, 정신은 내부에 의하여 한계 지어진 것도 아니다. 우리의 외부에도 동일한 정신이 지배하고 있고, 우리의 내부에도 동일한 자연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자연의 영역 내부에서도 역시 존재하는 통일성의 철학이다. 그리하여 유기적 자연과 무기적 자연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원리를 갖고 있는 분리된 두 자연이 아니다. 셸링은 무기적 구조물의 기계론적 이론도, 유기체의 기계론적 이론도 배척한다. 그는 전체 자연을 구별 없이 유기적으로 조직된 것으로 간주한다." "셸링은 당시의 과학적 성과들에서 취한 이념의 다양성을 자기의 목적론적 근본 사상의 통일성 속에서 포괄하고, 자연 현상의 상이한 유형들을 하나의 근원적 원리의 전상(展相)으로 파악하고자 한다."(195-6)


"이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동질적 통일성에서 차별의 다양성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다양성은 동일성 자체로부터는 유래할 수 없고, 이 동일성에 대립하여 동시에 이 동일성과 함께 현존하지 않을 수 없는 분열의 계기로부터만 유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계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자연 현상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이 요구될 뿐이다. 이 공통적인 것은 명백히 분리하는 원리이고, 관통하는 이원성이며, 대립의 법칙이다. 셸링은 이것을 (자석과도 같은) 양극성의 원리라 부른다. 이 점에서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대립의 쌍들의 항쟁이, 마치 진실로 〈전쟁〉이 만물의 〈아버지요, 왕〉으로 표현되듯이, 운동을 일으키는 자, 차이 나게 하는 자, 그리고 형성자이다─에 접근한다. 이렇게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 대립이 이미 존재자 일반의 전 영역을 통하여 그 모든 단계들을 결합하고 있다. 이 대립의 일치는 초월적인 것이요, 그것의 본질상 모든 인간적 사유를 벗어나 있다."(197)


"피히테의 의식에 관한 이론은 두 개의 구분지(區分肢)로 구성된다. 그것은 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셸링은 제3의 구분지인 심미적 의식을 끼워 넣음으로써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식의 철학 및 행위의 철학과 함께 예술의 철학이 등장한다. 이렇게 의식의 세계를 풍부하게 한 것은 셸링의 예술가적 천성 속에 뿌리박고 있기도 하고, 또 낭만주의 사회 속에서 획득한 이념과 자극에 근거를 두고 있기도 하다." "자연의 산출력과 주관의 산출력은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창조적 정신이다. 자연은 대상의 실재적 세계를, 예술은 관념적 세계를 창조한다. 양자는 순수하게 생산적이다. 우주는 살아 있는 유기체일 뿐만 아니라, 통일적으로 일관된 예술품이요, 정신의 근원적인 무의식적 시(詩)이다. 그러나 예술품은 바로 소규모의 그와 같은 우주이고, 동일한 정신의 똑같은 계시이며, 단지 의식적으로 창조된 계시일 뿐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의식 속에서만 포괄적 동일성이 직접적으로 파악된다."(205-6)


"셸링의 역사철학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세계 진행 속의 여타의 생기 현상과 같은 그런 이론적 대상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법칙성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법칙성으로 동화되지는 않는다. 역사는 자신 속에 인간적 결단의 자유를 포함하고 이 자유를 자연의 생기 현상으로부터 구별한다. 그러나 자연철학이 우주의 생기 현상 속에서 통일적 방향 또는 전개를 이끌어내어야 하는 것처럼, 역사철학은 인류의 생에서 진보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그런데 인류 역사 속에서 실행되는 진보의 보편적 조건은 조건은 인간의 자유 속에서는 탐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는 자의로서 항상 동시에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자유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의식의 관점에서는 필연성과 자유가 대립되지만, 절대자 속에서는 양자가 모순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단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통일성은 의식적 정신이 어떠한 지(知)로써도 도달할 수 없고 신앙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는 영원히 무의식적인 것이다."(214-5)


"예술은 플라톤이 생각한 것처럼 모방, 즉 모상들의 모사가 아니라, 신적 이념 그 자체의 상대물이며, 무기력하게 감탄하는 상태에서 자연의 배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넘어서서 자연을 고양시키는 것이며, 자연의 완성이요, 본질 그 자체─이것은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도 혼합되지 않은 채로 현상하는 것이 아니다─의 순수 직관이다. 예술의 자연과의 편차는 예술의 무력이 아니라 예술의 우월이다. 자연의 산물이 단지 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그것을 예술은 영원한 것으로서─예술이 이 산물을 시간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고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은 이 자연의 산물을 그 순수한 존재 속에서, 즉 〈그것의 생명의 영원성 속에서〉 현상하게 한다. 예술은 자연이 결코 그러한 것일 수 없는 것, 즉 이념의 참된 현시(現示)이다." "셸링은 낭만주의와 철학적 관념론의 성공적인 종합에서 태어난 새로운 미학의 창조자가 되었고, 헤겔과 쇼펜하우어 및 이후의 많은 사상가들에 대한 모범이 된다."(219-20)


4장 낭만주의 철학


"낭만주의는 본래 어떠한 신조도 원리도 아니고, 어떠한 목표도 과제도 아니며, 윤곽이 뚜렷한 사상이나 개념으로 구성된 어떤 체계 속에 자리잡을 그러한 것도 아니다. 순수한 낭만주의 그 자체는 결코 철학이 아니다. 창작이 거기에 보다 더 가깝다. 작가가 낭만주의의 가장 순수한 대변자이다. 셸링이나 슐라이어마허처럼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철학자들은 저들이 생각하는 것의 단지 한 단편만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단편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이 전체일 수 없는 것은 사상의 구조가 생활의 어떤 태도 및 세계 이해─이것은 근본적으로 세계 감정이고 또 전체의 감정 세계를 포함하는 것이다─의 전체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사상은 반성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의 세계에서 의도되는 것은 반성되지 않은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의 사상 진행이 아무리 반성되어 우리에게 자주 나타난다 할지라도, 이 반성은 그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표현의 불완전한 수단일 뿐이다."(265-6)


"낭만주의는 특유한 방식의 생활 기분이다. 여기에 낭만주의의 본질을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능성이 놓여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정서적 기분으로 동화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낭만주의는 개념적으로 파악불가능한 것에 대한 의식 속의 황홀경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개인의 유약함의 현상인 것이고, 자기의 눈앞에 떠도는 사실(事實)의 크기에 직면한 의식의 무력함일 뿐이다. 모든 기분의 가치 배후에는, 낭만적 문학이 우리에게 주선해 주는 것처럼, 내용적인 그 어떤 것, 생의 새로운 의미 및 실질, 아니 생 자체가 새로운 의미로 드러난다. 세계의 영원한 수수께끼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낭만주의자의 본질의 깊은 곳에 은폐되어 있고, 또 이 본질 속에서 직접적으로 간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이 이 낭만주의자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예술가의 행위는 무한자를 유한자 속에서 분명하게 현상하도록 하는 일이다. 존재는 숨겨져 있는 정신을 일깨우는 마법의 지팡이이다."(266-7)


"낭만주의는 가장 깊은 본질에 있어서 신비와 유사하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에 대한 자연스런 대립자이다. 천박한 합리주의의 무이념성, 〈상식〉을 통한 세계의 탈정신화에 대립해서 낭만주의는 영감을 받은 상태로, 영감을 부여하면서 등장한다. 낭만주의의 생은 전적으로 이념의 생이다. 여기에 낭만주의가 독일관념론의 철학적 운동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 맺는 지점이 있다. 이 철학적 운동이 사변과 사상적 체계 속에서 추구하는 것을 낭만주의는 직접적으로 생활에서 찾는다. 오성적인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유용한 것, 실천적인 것은 낭만주의에서는 비현실적인 것,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다." "낭만주의의 그 고유한 본질이 보다 깊이 이해되면 될수록 이 본질은 더욱더 탁월한 것으로 생각되고, 더욱더 확정적으로 낭만주의 그 자체는 종교로서 파악된다. 낭만적 정신의 이와 같은 측면은 피히테의 지식학이 내면적으로 개조되던 시기에 그의 사상에서 생동하고 있던 그것이다."(268)


"형이상학에의 경향은 예술가적 창작의 충동과 어떤 방식으로든지 매우 유사하고, 양자는 어딘지 창작자의 영혼 안에서는 하나이다. 창작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일이고, 현실적인 것 너머에서 신성하게 부동(浮動)하는 상태이지만, 철학은 현실적인 것에 대한 사상적 포착이고, 파악이며, 간취(看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는 동일한 세계에 관계하고 있고, 동일한 존재를 반영하고 있다. 이 양자 속에는 이 양자가 하나로 있는 그러한 지점이 있음이 틀림없다. 이 양자가 하나로 있는 그러한 인간이 존재한다. 이 통일을 자기 자신 속에 실현하는 일은 이 양자가 뿌리박고 있는 그 깊이의 문제일 뿐이다.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슐레겔이 동경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성취하는 것은 다만 〈개념적으로는 파악되지 않은 진리의 형상(形象)〉일 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 동경을 자신 속에 있는 일종의 종교, 즉 무한성에의 경향으로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무한자는 예술과 철학의 공동 대상이기 때문이다."(283)


"슐레겔에 따르면, 철학의 본질은 직선적인 진보에 모순되는 것이다. 그것은 순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철학 속의 모든 것은 최초의 것이면서 동시에 최후의 것이다. 〈중간으로부터의 시작〉이라는 것은 형상(形象)이 아니고, 방법이다. 철학자의 대상은 언제나 전체적인 것이고, 공존하는 것이다. 분리시키는 모든 작업은 여기서는 기술적인 것이다. 대상 속으로 파고들어 가서 파악하는 모든 작업은 대상을 중간에서 파악하는 일이거나─또는 전혀 파악하지 않는 것이다. 연관은 내적 연관이고, 모든 것은 자신 속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순환 철학의 이 개념 속에는 두 가지가 놓여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모든 연관 역시 다만 전체로서 직관된 것이고, 모든 해명이란 것은 전체 속에서 직관된 것의 어설픈 노출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상[형이상학적 실재론] 속에 헤겔을 회상시키는 그 어떤 것, 적어도 후기의 헤겔적 체계의 의미에 있어서 가장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285-6)


"노발리스를 횔더린─모든 것에 시작(詩作) 형식을 취한─과 구별하게 하는 것은 극히 명백한 철학적 귀결과 그때그때 나타나는 고도의 개념적 명확성이고, 슐레겔과 구별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변의 관념적 높이와 자연철학적 신비가 매우 우세한 점이다." "노발리스가 보기에,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것은 하나의 비밀스런 작용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내면적 공동성에 의존하는 것이고, 자기 대화이며 내면적인 교신(交信)이다. 이 작용은 영혼의 비밀과 내면적 다원성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자아에 〈관념적 자아〉, 즉 〈진정한 내면적인 너〉가 대립힌다. 그리고 〈최고의 정신적 및 감각적 교제가 발생하고, 최고의 정열이 가능하다. 천재는 어쩌면 그와 같은 내면적인 다원의 결과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철학이란 것이 이제 일종의 자기 계시, 자기 비평, 자기 접촉, 자기 입법적 운동으로 계속해서 특징지어진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의 품위와 의미는 상승한다."(312-5)


"노발리스는 결코 예술가와 예술가 아닌 사람 사이를 그렇게 날카롭게 구별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정신의 지배를 열망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시와 철학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슐레겔한테서보다도 노발리스한테서 더 강하게 표현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활동성이란 계기, 즉 창조적인 것이 이 두 사람한테는 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서 파악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을 또한 〈학문의 학문〉이라고 특징짓는다. 그러나 노발리스는 예를 들어 슐레겔이 순환철학의 이념 안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완결된 학문적 체계를 변호하지는 않는다. 〈본래적인 철학체계는 자유와 무한성, 또는 분명하게 표현한다면 어떤 체계 속으로 들어온 무체계성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철학에서는 인간 본성 및 도덕성에서와 마찬가지로, 규정성과 무규정성 사이에서 부동(浮動)하고 있는 동일한 관계임이 틀림없다. 철학의 본질은 따라서 가장 본래적인,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 시(詩), 즉 절대적 창조이다."(327-9)


"철학적 동시대인 중에서 슐라이어마허는 특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다만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낭만주의자 사회에 속해 있다. 그는 우정으로 슐레겔과 결합한다. 그는 그의 윤리관에 있어서 슐레겔로부터 자속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매우 다른 철학체계들의 특징을 서로 통일─이 통일은 틀림없이 피상적으로 절충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철저히 유기적인 것도 아니다─시킬 줄 안다. 이 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근원적인 시야의 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면성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고, 또 낭만적-보편주의적 도야의 이상이다. . 슐라이어마허는 의식적으로 체계를 추구하였고, 그것을 세목에 있어서 놀랄 만큼 정교하게 수행할 줄 안다." "저 낭만주의자들은 본원적인 이념을 갖고 있다. 다만 체계적인 맥락이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을 뿐이다. 슐라이어마허는 반대로 그도 역시 기획하는 것, 즉 체계를 언제나 똑같이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이념들은 수합된 상태에 있다."(330-1)


"슐라이어마허에게 종교적 의식은 언제나 심미적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다. 그러나 신앙을 담지하는 감정이 다르고, 예술적 창조 활동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 다르다. 이 다름을 규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감정의 대상에 대한 태도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감정은 자신으로부터 직관해 내지 않고, 형태를 산출하지 않으며, 생산적-대상적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며 헌신적인 것이다. 종교는 또한 계시의 일이 아니다. 계시 신앙은 이미 신의 계시하는 활동성을 안다. 우리는 사실 그와 같은 활동성에 관해서는 신의 그 밖의 본질에 관해서와 마찬가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신성화된 전통도, 창조된 세계의 현존재도, 세계 속의 인간의 윤리적 과제라는 사실도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신을 가르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은 인식할 수 없고, 또 신에 관한 모든 지식은 그것이 직접적인 것이건 간접적인 것이건 간에 가상(假象)이기 때문이다. 종교철학은 결코 신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종교적 감정에 관한 이론인 것이다."(333-4)


제2부 헤겔


1장 헤겔의 철학 개념


"〈논쟁적(또는 〈형식적〉) 사유〉에서는 판단의 주어는 고정된 지반의 역할, 즉 〈토대〉의 역할을 하고, 이 토대에 내용이 술어의 형식으로 결합된다. 따라서 이러한 술어 속에서는 주어 그 자체는 결코 개념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주어는 개념의 바깥에 머물러 있게 된다. 주어가 개념 속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면─그런데 주어는 개념 속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니 주어는 본래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개념 그 자체의 의미가 변경되어야 하고, 술어의 외면성은 사라져야 하며, 술어의 다양성은 대상 자체(주어)의 전개되어 가는 본질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상의 이 본질─따라서 모든 비사변적 사유에게는 개념에 대해 영원히 외면적인 것 및 초월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바로 그것─은 개념 자체로서, 개념의 가장 내면적인 것, 즉 개념의 진리로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유만이 〈개념 파악적 사유〉이며, 따라서 사태의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논쟁적 사유〉의 운명이다."(409)


"〈개념 파악적 사유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개념은 대상의 고유한 자기─이 자기는 개념의 생성으로서 나타난다─이기 때문에, 이 자기는 부동의 상태에서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정지적인 주어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며 자기의 규정을 자신 속에 회수하는 개념이다.〉 여기에 사태의 본질이 나타난다. 개념의 다른 모습, 즉 개념의 변증법적 모습이란 대상에 대한 개념의 관계이고, 모든 형식적인 것에 대한 피안의, 그리고 반대의 관계인데, 이 관계는 판단이나 명제와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는 개념으로 하여금 맨 처음으로 개념의 규정에 좇아서 존재하게 되는 그것으로, 즉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개념〉으로 만든다. 요컨대 개념이 파악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형식의 구조물이 아니라, 차이성과 대립을 두루 관통하는 형식의 다양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상태를 개념이 전개되어 가는 관통 자체로서, 〈운동〉으로서, 즉 생동성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409-10)


"헤겔에서 우리는 인식 불가능한 것을 은폐하거나 논박하는 일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되는 것, 즉 인식되지 않은 것 그 자체를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서 추구하는 방법, 또 이렇게 추구하는 가운데서 직접 문제를 전개하는 모범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방법은 출현하는 어떠한 모순되 회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순 자체를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어떠한 형식에서이건, 무조건 타당하게 하는 그러한 방법이다. 변증법은 바로 이 일을, 즉 모순을 발견하고 또 이 모순을 그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시인하는 이 일을 변증법의 일반적 형식으로 취하고 있다. 변증법이 모순성을 또한 다시 극복한다는 것은─적어도 변증법의 경향에 따라서─변증법이 모순성을 파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한한 이성의 개념들을 파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념이 〈유동적인〉 구성물, 즉 사변적 개념이 되면, 오히려 비합리성을 자신 속에 받아들이게 된다."(424-5)


"우리가 (헤겔) 논리학의 〈객관적〉 부분에서 처음으로 대자 존재라는 개념을 만나면, 그것의 의미는 외부에 대한 폐쇄성, 즉 단절되어 있음, 자립성 속에서 다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옛날 사람들이 부른 합창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자 존재의 외적 측면일 뿐이다. 이 외적 측면 배후에는 〈대하여〉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또 다른 의미가 꽂혀 있다. 그렇게 되면, 〈대-자-존재〉는 자기 자신을 포착하는 존재, 따라서 자기 자신 속으로의 반성을 이미 거친, 그리하여 이제 이 반성을 자신 속에 보존하는 존재를 의미하게 된다. 대자 존재는 그것이 완성되면 자기의식이 된다. 이것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자 존재라는 것은 어떤 존재자가 그것이 존재하는 대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이 자기를 알면서 자신에 관여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안다고 하는 이 대자 존재라는 낱말의 그 의미심장한 뜻에 있어서 자기의식인 것이다."(434-5)


"그런데 우리가 어떤 존재자의 참된 존재론적 성질─따라서 존재자에 있어서 누군가에 대한 그것의 현상 방식만이 아니 그러한 것─을 그것의 〈즉자 존재〉라고 부른다면, 동일한 존재자의 대자 존재 속에는 실은 보다 높은 존재의 단계─이때 이 존재자가 〈즉자적〉이면서, 또한 〈대자적〉인 바로 그러한 것인 한에서─가 놓여 있다. 즉자 존재와 대자 존재의 이 종합을 헤겔은, 〈즉자-대자-존재〉라고 부른다. 헤겔에게 종합은 어떤 존재자 자신의 본질을 관통하는 자각적 통찰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존재자는 이러한 완전한 의미로는 하나의 자각한 본질 속에서만, 그리고 그것의 최고도의 정신적 형식에 있어서만 발견된다." "즉 모든 존재자는 정신적인 것의 이 최고의 형식에로 나아가는 경향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고, 또 모든 존재자는 자기 자신의 의식에로 밀고 나아가며, 그 때문에 세계의 전체 단계 영역에 있어서 보다 낮은 단계가 보다 높은 단계 영역에로 이행하는 경향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435)


"셸링의 동일철학에서 절대자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무차별〉이다. 절대자는 또한 〈절대적 이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무차별자가 어떻게 차별지워지며, 또 어떻게 자연의 다양한 형식으로 분화되는지를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다. 사실 절대적으로 구별 없는 통일성에서 다양성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객관적으로도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셸링의 사변이 직면한 한계는 또한 플로티노스의 사유도 부딪혔던 한계이고, 모든 형이상학적 절대적 일원론의 약한 측면이기도 한 동일한 한계이다. 즉 일자 자체는 다수를 낳을 수 없는 것이고, 만알 다수를 낳을 수 있다면 일자는 이미 다수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엄밀한 일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일자로부터 다양성이 유래하는 것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지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셸링은 절대자에 관한 지(知)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사유로부터 빼앗아, 그것을 〈지적 직관〉에 마련함으로써 이러한 귀결에 대처하였다."(449)


"여기서 헤겔의 논리학이 시작된다. 모든 세계 이해의 가장 중요한 점이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다시 말해 〈개념 파악적 사유〉가 지적 직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적 직관이 설정하는 절대자라는 꾸밈없는 개념은 하나의 추상이고, 규정성을 갖지 않은 무정형(無定型)의 실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절대자한테서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자기 내 반성〉은 직접적인 것의 자기 투시(透視)이다. 이제 여기서 절대자의 내적 다양성을 볼 수 있게 되거니와, 사상(思想)은 비로소 이 다양성을 차례에 따라 방법적 운동에 있어서 편력(遍歷)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절대자의 본래적 개념은 결국 이러한 편력의 종말에 가서 비로소 설명되고 깊이 사유된 개념으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 개념은 본래 이 개념이 〈정립〉되었던 단초에는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로서 파악되는 종말에 가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449-52)


"절대자의 술어들의 총체성은 내용상으로 이해하면 세계, 따라서 자연, 그리고 정신의 총체성─〈사태 그 자체〉(이 사태를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해서)─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태〉는 오히려 사유하는, 그리고 철학하는 이성으로서 우리들 속에서 자기의 〈논리〉를 갖고 있는 그 이성이고, 또 모든 자연 및 정신의 형식을 통해서 현실화되는 그 이념이며, 변증법적으로 노력하면서 세계를 인식하는 그 사상이기 때문에, 이 학문에 있어서도 역시 〈의식의 대립으로부터의 해방〉이 성취되어야 한다. 또한 이 학문에 있어서는 객관과 주관은 하나일 수밖에 없고, 세계와 세계의식은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학문은 모든 즉자 존재자들을 해명한 대자 존재인 것이다." "논리학의 대상은 모든 사물의 단초이고, 대상에 관한 지(知)로서의 논리학 자체는 모든 사물의 종말이다. 그러므로 논리학은 논리학 고유의 대상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상은 논리학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결합하며 현실화된다."(455-6)


"칸트는 형이상학에 이르는 통로를 우선 실천 이성에서 발견하였고, 피히테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당위에 기초를 둔 체계를 만들었으며, 셸링은 이 체계를 우주에 확장시켰고, 그리고 헤겔은 그것을 보편적으로 완성하였다. 헤겔이 이 체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장 철저한 귀결들을 칸트 자신의 명제(정립)로부터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비판의 명제들은 형식상으로는 부정적 명제들이다. 그러나 부정의 의미는 폐기가 아니고, 어떤 긍정적인 것으로의 전진이다. 부정이 긍정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의 힘〉이 은폐되어 있다는 말이다. 칸트가 부정을 시인했지만, 그러나 그는 그 속에 내재해 있는 부정적인 것의 힘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 헤겔은 이 힘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충분히 이용한다. 그리고 이때 그의 수중에서 발생하는 것은 바로 칸트가 갈망했던 〈순수 이성의 체계〉, 즉 낡은 형이상학과 그것의 비판을 종합한 새로운 형이상학이다."(467-8)


2장 정신 현상학


"(헤겔에서) 주관은 자기의 객관이 변화하는 가운데서 자기 자신도 변화한다는 〈경험을 한다.〉 변화를 추적하는 철학자는 주관의 이 〈경험〉에서 이 경험에 관한 지(知)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다." "피히테 역시 자아는 자기 자신과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표상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주시한다〉라고 되풀이한 그 표현은 이를 증언해 준다." "그런데 헤겔에 있어서는 이 사정이 역전되어 있다. 그는 결코 연역하지 않는다. 결과라는 거은 선취된 것이 아니고, 자기의식은 전제된 것이 아니다. 그는 주관이 〈경험하는〉 것, 주관에게 주어진 것에 철저히 의존하고, 그것이 이 소여성에 있어서 어떻게 현시(現示)되는가에 의존한다. 이렇게 그는 사실상으로 주관으로부터서도 객관으로부터서도 그 어떠한 것도 도출하지 않는다. 그는 현상을 단계적으로 발견하는 대로 단순히 이 현상들을 기술할 뿐이다. 그는 의식의 아래로부터 위로의 현실적인 〈현상론〉(현상학)을 부여할 뿐이다."(515-7)


"헤겔은 결코 시간적인 것이 아닌 순수한 내면적 단계를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말은 그것의 다른 의미로, 즉 시간적인 의미로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바로 〈학문에 이르는 의식의 교양〉이 매우 확실하게 정신의 역사의 단계들에서 재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상학의 서문에서 헤겔이 이 관계에 관하여 보다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문구를 알고 있다. 그는 여기서 〈특수한 개인들〉과 〈보편적 개인〉 간의 관계─여기서 그는 후자의 이름 아래에서 개인들의 공통점을 이해하고 있다─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성 일반은 바로 모든 주관에게 공통적인 것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상 어떤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보편적 개인〉이 현상학의 본래적 대상이다. 이 보편적 개인은 역사의 기체(基體)─역사 속에서 보편적 개인의 경험을 만드는 그러한 것─이고, 동시에 우리들의 의식의 보편자이다."(535-6)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는 〈의식의 두 대립된 형태들〉이 서로 상관적인 관계에 놓인다. 〈하나의 형태는 독립적인 의식이며, 이것에는 대자 존재가, 그리고 다른 형태는 비독립적인 의식이며, 이것에는 타자를 위한 생명 또는 존재가 그 본질이다.〉" "주인이나 노예는 양자 모두 서로에 대한 관계뿐만 아니라, 물적, 자연적 존재에 대한 관계도 갖고 있다. 주인은 자기의 자연적 존재, 즉 그의 생명을 걸었다. 그것이 그를 주인으로 만들었다. 노예는 자연적 존재를 위하여 자기의식을 포기하였다. 그는 물적인 것을 〈자립적인 존재〉로 만들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속에서 비자립적으로 되어 버렸다. 그는 그의 자기 속에 사로잡혀 있다. 〈주인은 자립적인 존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노예에 관계한다.〉" "주인은 이 물적 존재(物的 存在)를 지배하는 위력이다. 동시에 이 (물적) 존재는 타자를 지배하는 위력이므로, 주인은 이러한 추론에서 이 타자를 자기 아래에 예속시킨다. 물적 존재는 노예의 사슬이다."(553-4)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관계가 바뀌게 되는, 그리하여 예속 상태로부터 노예가 고양되기 시작하는 그 지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주인은 자신과 물적 존재 사이에 있는 노예에 명령하고, 자신을 위해서 노예를 노동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에게 이 물적 존재의 〈가공(加工)〉을 맡기고, 이 존재의 〈향유〉만은 자기의 것으로 한다. 〈욕망에서 성취하지 못했던 것이 달성되고, 동시에 완성되며, 항유함으로써 만족을 얻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완성되는 일은 쌍날의 것임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사물의 자립성〉에 대한 주인의 태도는 그와 동시에 순전히 수동적인 태도, 따라서 사실은 〈예속〉의 관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노예의 태도는 능동적인 태도, 따라서 자립성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물과 자신 사이에 노예를 끼워넣는 주인은 그렇게 함으로써 다만 사물의 비자립성과 결합하고, 사물을 순전히 향유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립성의 측면을 사물을 가공하는 노예에게 맡긴다.〉"(554)


"자기의식은 이렇게 주인의 인격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노예에게는 주인의 대자 존재가 그 본질이다. 노예 자신은 수단이다. 〈노예가 행하는 것은 본래 주인의 행위이다.〉 그러나 노예는 인정하는 의식이고, 주인은 인정받은 의식일 뿐이다. 따라서 주인의 대자 존재는 자기의 본질적인 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노예의 〈비본질적 의식〉 속에, 이에 못지않게 자기의 〈비본질적 행위〉 속에 존립한다. 〈따라서 자립적인 의식의 진리는 노예의 의식이다.〉 이것은 전체적인 관계의 내적 모순이고,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이 전체적 관계 속의 불안정한 요소 및 해체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주인의 지배가 이 지배의 본질이고자 한 그것의 전도된 것〉(즉 예속성)임을 나타낸 것처럼, 〈노예의 신분 역시 이 신분을 완성시킴에 있어서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존재했던 그 내용의 역(逆)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 속으로 도로 밀려든 의식으로서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진정한 자립성으로 역전된다.〉"(554-5)


"자기 자신과의 모순 속에서 자기의식은 〈이중화〉되어 있다. 자기의식은 자기 자신 속의 이중적인 것이다. 이전에는 두 개별자(주인과 노예)에 할당되었던 것이 지금은 하나 속에 존재한다. 이 이중화는 실은 〈정신의 개념 속에서는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양 측면의 통일성이 결여해 있는 곳에서는 의식은 지리멸렬하고 〈불행한 의식〉이 된다. 이중화의 특징이 되는 것은 가변적 의식과 불변적 의식으로의 양분이다. 전자는 인간이 대자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이 피안의 존재인 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주어진 것, 현존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차안에 속하는 것으로서, 가변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가치 없고, 비본질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덧없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간주된다. 피안의 것에는 인간의 희망과 동경이 해당된다." "의식은 그 자신이 본질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본질을 발견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자기의식은 하나의 확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부서진 자기 확신〉인 것이다."(558-9)


"의식은 자기의 대상에 대해서 사유하면서 관계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면서 태도를 취한다. 의식은 〈사유 곁을 지나갈 뿐이고, 기도(祈禱)인 것이다.〉" "〈이 무한한 순수 내면적 느낌도 분명히 그 대상을 가진다. 그러나 이 대상은 개념적으로 파악된 대상으로서가 아니다. 그 때문에 이 대상은 어떤 낯선 것으로서 등장한다.〉 의식이 다만 기도(祈禱)로서 머무는 한, 어쨌든 의식은 자기의 본질과 동류이다. 그러나 의식의 경향은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의식의 고유한 무능력은 그에게는 유죄와 모독으로 간주된다. 이리하여 의식은 자신과 싸우고, 금욕하고, 고행함으로써 자신을 부정한다. 그의 태도는 의심을 품은 채 자기 자신을 망보는 것이 된다. 그 결과는 〈자신과 그 조그마한 행위에 한정된, 그리고 고심하면서 사유하는 초라한 만큼 불행한〉 위축된 〈인격〉이다." "의식이 자기기만을 경험하기 때문에, 의식은 동시에 그 자체에 있어서 이 자기기만의 지양을 경험하게 된다. 의식은 자신에 되돌아와 있음을 발견한다."(559-60)


"모든 실재성과 완전성이 되돌려지는 피안이란 것이 의식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의식 자신 속이 있음을 의식이 발견한다면, 의식은 피안 자체를 지양하게 되고, 피안 속에서 다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자신으로 다시 도달하게 되는 일은 관념론이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이성의 관점을 증명해 준다. 이때까지의 〈타재에 대한 부정적인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로 전환한다. 자기의식은 세계를 희생한 대가로서 자기를 구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중지한 것이다. 자기의식은 세계를 다시 자신 속에 수용한다. 〈자기의식은 자신을 확신하는 이성으로서 세계에 대한 평온을 받아들였고, 세계를 견뎌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의식은 실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있거나, 또는 모든 현실성이 자기의식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님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의 사유는 직접적으로 그 자신 현실성이다. 따라서 자기의식은 관념론이 현실성에 관계하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된다.〉"(560-1)


3장 논리학


"현상학의 서문에서 예고되었던 내용이 이제야 나타났다. 〈학문의 생성〉의 길이 실현된 것이다. 의식이 자기의 대상과 자기 자신에 있어서 겪어야 했던 긴 경험의 계열이 편력된 것이다. 의식은 그 자신이 자기의식임을, 자기의식은 그 자신의 이성임을, 이성은 그 자신의 정신임을, 그리고 정신은 그 자신이 그 자신에 대한 개념적 파악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현상하는 지(知)〉의 현시(現示)는 〈실재적 지〉에로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실재적 지를 이제 완성해야 한다. 이 과제가 나타남으로써 이 연구는 현상학의 종언을 고하게 된다." "그것은 〈논리학〉이 착수할 일이다. 그러나 현상은 필연적으로 현상 속에 계시되는(〈현상하는〉) 어떤 존재자의 현상이기 때문에, 즉 모든 외면적인 것은 어떤 내면적인 것의 외적 표현이기 때문에, 논리학은 그 귀결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다시 현상학의 내용을 이루었던 바로 그 동일한 형태의 계열, 즉 철학의 체계의 구성 요소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603-4)


"논리학의 대상은 절대자이다. 독일관념론의 근본 사상은 절대자가 이성이라는 것이다. 절대자는 의식이 아니다. 의식은 이차적인 것이다. 이성은 의식 이상의 것이다. 이성은 의식 없이 모든 존재자 속에, 또한 가장 시원적인 것 속에도 존재한다고 이미 셸링이 가르친 바 있다. 그러나 셸링은 우리가 어떻게 이성 속으로 개념적으로 파악하면서 파고들 수 있으며, 또 시원적인 것으로서의 이성을 이차적인 것으로서의 의식으로써 밝힐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절대자가 이성이고, 우리의 사고도─적어도 철학적 사고가─이성이라면, 우리가 순수한 사유, 즉 사유의 〈논리〉에로 상승하는 그곳, 곧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절대자가 직접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절대자는 실로 의식은 아니지만, 절대자는 우리의 사유 속에서 의식된다. 그리고 여기서 인식하는 자와 인식된 자는 동시에 실재하는 것으로 된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유는 바로 절대자를 그 자신이 파악하는 것이 된다."(604-5)


"사상과 사실, 개념과 존재자는 동일한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논리학과 〈진리〉로서의 논리학은 동일성의 두 측면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자신이 한 측면이기도 하고,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상은 〈자신을 전개하는 순수한 자기의식〉─어떤 타자가 아닌 〈자신〉을 전개시키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단순히 즉자 존재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자적 존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사실은 동일한 자기의식이요, 동일한 절대자의 동일한 전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관찰이 어느 측면에서 시작하건 그것은 실제로는 상관이 없다. 관찰이 사실로써 시작하건 또는 사상으로써 시작하건, 관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전체에로 귀납된다." "관계의 양 측면은 물론 자신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반대 측면을 갖고 있다. 이것이 왜 사유에 관한 학문이 사상으로서의 사상을 다룰 필요가 없는지 하는 이유이다. 사유에 관한 학문은 순수한 사상〈이다〉라는 사실로서 충분하다."(609)


"범주는 절대자가 자신을 규정하는 술어들이다. 현상학의 서문은 그러한 술어들의 역할을 확실하게 확립하였다. 가능한 판단의 주어로서의 절대자는 술어 없이는, 그리고 술어에 〈앞서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이 어떤 규정들로 윤곽 지어지기 이전에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사유할 수 없다. 모든 사유는 규정성에 구속되어 있고, 그리하여 술어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주어는 술어에 선행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술어에 동화되는 것이다. 이때 주어가 무엇〈인지〉를 술어가 비로소 말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절대자가 그 술어에로 전개되는 곳에 일체의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절대자는 각 단계에서는 정확하게 그것의 술어가 의미하는 바 그대로이다. 〈단초〉는 공허한 것이고, 실체적인 것을 언표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즉 〈절대자에 관해서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결과이며, 절대자는 종말에 가서 비로소 그것이 진리 속에 있는 바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명제는 타당하다."(617-8)


"헤겔의 논리학에서 범주는 실제로 거대한 유기체의 기관으로 간주된다. 고정된 오성 개념의 경직성에 대립하고, 또 이 오성 개념의 논리적인 타성의 힘과 끊임없이 투쟁하여 생명력을 표현하는 많은 비유들─예컨대 운동, 출현, 이행, 귀환, 자기내 반성, 재귀, 원환, 소멸, 등장, 유동, 그리고 수많은 여타의 것들─은 결코 단순히 비유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유동화(流動化)라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고, 정의 내려진 개념들은 실제로는 단지 불충분한 긴급 명령에 불과하다. 거대한 노선의 관통하는 역동성은 다른 개념들을 요구한다." "수많은 방법으로 절대자에 접근해 가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자기의 현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에 대한 사색, 이 발전 과정에 직면하여 헤겔이 수행하는 시원적 행위는 마지막 항(項) 뿐이다. 즉 역사적 사유가 이 발전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일─체계의 형식으로─인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제가 해결되는 형식은 변증법이다."(621, 627)


"〈학문의 단초(端初)는 무엇으로써 시작되어야 하는가?〉 모든 체계적인 사상은 맨 먼저 이러한 물음 앞에 서게 된다." "최초의 사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아직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이 생성되어야 한다. 단초는 순수 무(無)가 아니라, 거기로부터 그 어떤 것이 출발해야 하는 그러한 무이다. 따라서 존재는 역시 이미 단초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단초는 양자, 즉 존재와 무를 포함하고, 그리하여 존재와 무의 통일인 것이다─또는 동시에 존재인 비존재이고, 또 동시에 비존재인 존재이다.〉" "〈대립된 것인 존재와 비존재는 따라서 단초 속에서는 직접적으로 합일된 상태로 있다. 또는 단초는 이 양자의 구별되지 않은 통일이다.〉 거기로부터 단초 속에는 존재와 비존재 그 자체의 모순뿐만 아니라, 이 양자의 구별된 존재와 구별되지 않은 존재의 모순도 놓여 있다는 결과가 생긴다. 단초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다."(680-2)


"그러나 사상(思想)에 요구되는 바는 바로 존재와 무의 동일성을 어떤 적극적인 것으로서 사유하고, 이 동일성의 개념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만약 우리가 이 양자 속에 어떤 공통된 적극적인 것을 지적할 수 있다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분명히 가능한 것으로 증명되지만, 그러나 직접적으로 존재와 무에 있어서가 아니라, 이 양자의 변증법에 있어서이다. 말하자면 변증법적으로는 존재는 무라고 단순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존재는 무로서 증명되었고, 따라서 이 증명 속에서 무로 이행하였다고 말할 수는 있는 것이다. 〈진리인 것은 존재도 무도 아니고, 존재는 무로, 그리고 무는 존재로─이행하는 것이 아니라─이행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으로 양자의 이원성과 대립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의 공통된 것, 즉 이행─물론 초시간적으로 이해된─그리고 연결, 유동, 운동 및 연속체의 한 계기, 따라서 현저히 긍정적인 것이 강조된다."(683-4)


"진리는 양자의 〈무구별성〉(동일성) 속에도, 구별성(비동일성) 속에도 놓여 있는 것이 아니고, 주지하다시피 양자가 합일하여 있는 어떤 제3자, 즉 문자 그대로 실재로 모순되는 것(존재와 무)의 공존일 뿐만 아니라,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인 그러한 어떤 것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와 무의 동일성도, 그 비동일성도 포함되어 있는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존재와 무의 〈진리〉는 〈각자가 직접적으로 그것의 반대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와 같은 어떤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래되고 잘 알려진 〈생성〉이란 개념 속에서 나타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성〉을 〈발생과 소멸〉이라는 이중의 운동─따라서 비존재의 존재로서의 이행과 존재의 비존재에로의 이행─으로 묘사하였다. 최초의 인물로서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이 두 길은 하나이요 동일한 생성은 동시에 발생과 소멸이다. 그것은 두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일자의 소멸은 타자의 발생인 것이다."(684)


"〈정재〉(定在)는 이행동작(移行動作)이 사라지고, 존재의 휴지(休止)가 회복된 새로운 존재 형식이다. 헤겔은 이 걸음걸이를 〈생성의 지양〉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실은 소멸과 보존이라는 이중적인 의미에서이다. 즉 계기들은 모두 보존되지만, 그러나 어떤 새로운 것으로서 변화된 것이고, 여전히 재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떤 다른 규정성에 있어서이다. 이 계기들에서 사라지는 것은 생성 그 자체의 불안정이다. 이러한 사정은 변증법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즉 생성은 자기의 계기들(존재와 무)을 지양하면서 역시 자기 자신도 지양한다고 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계기들의 소멸은 생성의 소멸이다. 그러나 생성은 〈버팀이 없는 불휴(不休)〉이기 때문에, 생성은 자기의 소멸 속에서 〈정지한 결과 속으로〉 붕괴된다. 이 결과 속에서도 역시 존재와 무의 대립이 존속하지만, 그러나 발생과 소멸의 역학에 있어서가 아니다. 〈정재는, 그것의 생성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어떤 비존재를 갖고 있는 존재이다.〉"(691)


"유한성과 무한성이 진행 속에서 교대로 나타나는 것은 순환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순환은 하나이고, 유한성과 무한성은 순환 속의 계기들이며, 양자는 순화 속에서 자기 자신 속으로 되돌아오며, 각자는 타자를 자신 속에 포함하면서 타자를 넘어선다. 이렇게 전체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는 양자의 특성 자체를─우리가 어떠한 출발점에서 매개 자체를 적용하는가에 따라서─갖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이들 양자, 즉 유한자와 무한자는 그 자체 진행의 계기들이기 때문에, 양자는 공동으로 유한자이고, 그리고 양자는 똑같이 공동으로 진행과 결과 속에서 부정되기 때문에, 양자의 저 유한성의 부정으로서의 결과는 진실로 무한자라고 불린다.〉" "대체적으로 윤곽 지어 보면, 절대자는 세계의 피안이 아니라,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는 절대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자는 글자 그대로 〈대자적〉이다. 즉자 존재는 그것의 대자 존재에 도달한 것이다."(710-3)


4장 논리학의 토대 위에 세워진 체계


"헤겔 철학이 세상에 선사한 풍부한 사상재(思想財)에서 〈객관적 정신〉이란 개념은 가장 일찍이, 그리고 가장 지속적으로 풍성한 결과를 생산하게 된 그러한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객관적 정신 개념은 체계의 귀결도, 변증법적 사상 진행의 산물도 아니다. 과연 그것은 도대체 어떠한 사변적 학설 개념도 아니고, 소박한 기술적(記述的)인 개념이며, 관점에서 독립해서 언제나 제시되고, 서술되는 어떤 기본 현상에 대한 철학적 정의이다. 요약하면 그것은 근원적으로 직관된 것이고, 완전히 그것 자체에 의존하는 헤겔의 발견이다." "헤겔은 처음부터 정신철학자이다. 초기의 저술들, 즉 현상학, 논리학이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정신은 그에게는 마찬가지로 명백히 처음부터 객관적 정신─비록 이 술어는 겨우 조금씩 확고해진다 할지라도─을 의미한다. 즉 정신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의식이 아니라, 보편자, 개념, 이념─이 이념이 그 객관적인 실현에 있어서 실재적 세계의 참된 내용인 한에서─이다."(822-4)


"객관적 정신은 우리들 모두가 그 속에 서 있고, 출생, 교육, 그리고 역사적 위기가 우리들을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게 하는 정신적 영역이다." "우리들은 어느 시대의 정신적 방향과 흐름에 관해서, 그 시대의 경향, 이념, 가치에 관해서, 그 도덕, 예술, 또는 학문에 관해서 말한다. 우리는 이 현상들을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그 어떤 것─이것은 그 발생과 소멸, 따라서 그 생명을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시간 속에서 가진다─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상들을 역사적인 개체 그 자체─마치 이 현상들이 단순히 개체의 것들인 것처럼─에 결코 돌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 현상들을 구체적으로는 선명하게 각인된 이러저러한 대표물에서 가장 쉽게 파악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표물이 단지 대표물일 뿐임을 알고 있고, 이 대표물 속에서 뚜렷하게 새겨지는 저 정식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이 대표물의 것도 아니고, 또 내용적으로 대표물로 되는 것도 아님을 안다."(824-5)


"객관적 정신은 또한 현재의 생활 속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들의 시대의 지식〉에 관해서 명백하게 말한다. 개별자는 이 지식에 관여하고, 배우면서 이 지식 속에서 자신을 올바르게 발견한다. 그러나 이 지식은 결코 개별자의 지식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지식에 계속 종사하지만,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온전하게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전체적인 것, 관계를 맺는 것, 통일적으로 계속 전개하는 것, 자기의 질서와 법칙을 가진 어떤 형성물이다." "동시에 그것은 실재성에 속하는 모든 것, 즉 성장, 발전, 전성(全盛), 그리고 쇠퇴 등, 시간적 발생을 가지고 있는 철저히 실재적인 것이다. 객관적 정신의 실재성은 개인들의 실재성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객관적 정신의 생명과 지속이 개인들의 생명 및 질서와는 다른 것인 것과 같다. 객관적 정신은 개인들의 교체 속에서 지속한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실재하는 것, 자기 방식의 존재자, 즉 객관적 정신이다."(825-6)


"그러나 객관적 정신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객관적 정신이 실로 정신적인 보편자이긴 하지만, 그러나 보편적 의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공동체는 의식적인 주관적 정신으로서의 인간의 작품이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법, 도덕, 습속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국가 의식, 법의식, 인륜적 의식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개별적 주관에 있어서일 뿐이다. 객관적 정신은 자기의 의식을 그 자신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들 속에, 즉 주관적 여러 정신 속에 가진다. 그러나 이 의식은 그에게 적합한 의식이 아니다. 객관적 정신은 분명히 보편적, 대우주적 정신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의 의식은 결코 보편적, 대우주적 의식이 아니다. 헤겔은 이 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객관적 정신은 절대적 이념이지만, 그러나 단지 즉자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객관적 정신은 그와 동시에 유한성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그것의 현실적인 합리성은 이 유한성에 외면적으로 현상하는 측면을 지닌다.〉"(827-8)


"비록 인간은 맹목적으로 역사 속으로 몰려 들어간다 할지라도, 역사는 맹목적 생기현상(生起現象)이 아니다. 역사는 이미 역사 안에서 〈실체〉로 전제된 어떤 것이 목적에 따라서 행하는 실현인 것이다. 이렇게 방향을 잡은 존재는 어떤 외적인 숙명처럼 역사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내적 방향이고, 역사의 자기 결정이며, 역사 속의 실체적 본질─이것은 동시에 실재적인 것으로서 현시된다─의 자발적인 창조 활동이다. 이 실재적인 것, 시원적인 것, 실체적인 것,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자가 객관적 정신이다." "정신의 위대한 긍정적인 창조물, 즉 법, 국가, 현존하는 도덕에서 사정은 역사에 있어서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는 동일한 객관적 정신을 다만 다른 측면으로부터, 즉 객관적 정신의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된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들이 역사 속의 본래적 시간성을 도외시한다 하더라도, 역사란 결국 자기의 단계들로 구별 지어진 객관적 정신의 전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833)


"우리는 헤겔의 윤리적인 기본 관점을 현상학으로부터 알고 있다. 이 기본 관점에 의하면 참된 인륜성은 일체의 형식에 있어서 공동 사회 및 공동체의 일이고, 따라서 개인은 인륜성을 다만 공동 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가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인륜성은 마치 법 관계라는 외면성으로 몰리는 듯이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법이 인륜적 정감 작용의 제도이고 창조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창조물은 창조하는 힘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산물이 아니고, 이 창조하는 힘의 고유한 생명이며, 그 정재(定在)의 형식이다. 또는 헤겔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법은 〈자유의 정재〉, 자유의 자기실현, 또는 자유에 있어서의 객관적인 것, 〈제2의 자연〉, 객관적 정신으로서의 자유이다." "시원적으로 법은 오히려 〈자기의 정재 속에 있는〉 자유 그 자체이고, 객관적 정신의 실존 형식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자신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이념인 것이다."(845-6)


"심정의 순수한 내면성으로서의 도덕, 그리고 형식적 법의 객관에 대한 주관성의 반정립으로서의 도덕은 아직도 본래적인 인륜성이 아니다. 인륜성은 최초로 이 형식적 법의 객관과 주관성의 종합이다." "헤겔이 논리학의 변증법적 원리를 그 증거로 끌어 들이는 이 이행(移行)은 인륜성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올바른 심정이 현존한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객관적으로 정당한 것은 심정에 있어서도 현실적이어야 한다. 즉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심정도 역시 객관적으로 정당한 것의 현실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또는 헤겔이 그것을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인륜적인 것은 주관적 심정이지만, 그러나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법의 심정인 것이다.〉 그리고 주관적으로 불안정한 심정을 갖고 있는 인간은, 어떤 보편적인 것의 실체적 현실이 인간 속에 그것의 형식을 창조하는 한에서만, 이 실현을 객관 속에서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인륜성의 외면적 형식은 국가라는 초개인적 형식인 것이다."(872-5)


"〈인륜적 현실성〉은 필연적으로 자유의 공동적, 그리고 계통적으로 조직된 세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인륜적 현실성이 바로 국가이다. 자유는 자의가 아니다. 자유는 실체적으로 필연적인 것을 인지하는 의욕과 행동인 것이다. 개인의 여러가지 자유는 국가의 제 법칙이다. 〈실제로 각각의 참된 법칙은 자유이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객관적 정신의 이성 규정, 따라서 자유의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인륜적 현실성은 개인이 그 위에서 자라나고, 또 개인을 도덕적으로 바르게 실제로 맨 먼저 산출해 내는 실재적 토대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의 자연적 생명이 유(類)의 생명 속에 놓여 있는 상태와 유사하다. 외견상으로는 개인들이 실재적인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개인들 안에서 보다 더 큰 통일적인 유의 생명이 실현된다. 다만 보편적 실체에게는 대자 존재가 결여해 있을 뿐이다. 정신의 영역에서는 이 대자 존재가 주관의 소유로 돌아간다. 그 때문에 여기서는 개인에게 이념이 반영(反映)된다."(880-1)


"절대자는 이성이라는 헤겔의 형이상학적 기본 명제는 어떠한 영역에서도 역사철학의 영역에서처럼 그렇게 결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헤겔의 역사관은 순전히 목적론적 관점이다. 역사는 그 속에서 객관적인 〈세계의 궁극 목적〉이 일체의 생기현상을 지배하는 목적 지향적인 전개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궁극 목적은 객관적 정신의 대자 존재, 자기-자신-에로 도달함, 즉 객관적 정신의 자기 파악이며,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객관적 정신의 자기실현인 것이다. 그 때문에 세계사는 〈이성의 형상(形象)과 업적〉이다." "헤겔의 해석에 따르면 역사 과정이란 부정적인 것의 바로 이 전진하는 소멸이다. 또는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이 역사 과정은 자신을 인지하는 정신의 점차 순수해지는 자기 서술이다. 이 속에 놓여 있는 낙천주의는 분명히 인간적-행복주의적 낙천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역사는 지복(至福)의 실현이 아니라, 이성의 실현이다. 이것은 모든 가치의 가치이다."(896-9)


"헤겔은 총괄적으로 역사 진보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이 진행의 결과는, 정신이 자신을 객체화하고, 이 자기의 존재를 사유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존재의 규정성을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존재의 보편자를 파악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원리에게 어떤 새로운 규정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민족정신의 실체적 규정성은 변경되어 버린다. 즉 민족정신의 원리가 어떤 다른, 그리고 실로 보다 높은 원리로 상승된 것이다.〉 이행과 상승의 이 형식이 헤겔 역사철학의 핵심 사상이고, 헤겔 자신의 규정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의미 이해의 열쇠인 것이다. 역사 전진은 내면적인 〈변화라는 개념의 필연성〉이요, 변증법의 논리적 진행이 나타내는 것과 동일한 구조를 나타내는 전진인 것이다. 정신이 어느 민족한테서 성숙시키는 열매는 이 열매가 태어난 그 민족의 품안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민족은 저 열매를 즐기지 못한다.〉 오히려 〈이 열매는 그 민족에게는 쓴 음료가 된다.〉"(910-1)


"이 열매는 다시 씨앗이 되는데, 그러나 그것은 어떤 다른 민족─이 민족을 성숙시키기 위한─의 씨앗이 된다. 정신이 할 일은 자기의 본질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단계를 밟아서 완성되는 일이다. 세계정신에 비추어서 헤아려 보면, 제 민족정신이 이 단계들인 것이고, 〈세계정신의 실현을 완성하는 자〉인 것이다." "이렇게 전진함에 있어서 세계정신은 자신에 맞게 세계를 만든다. 세계정신의 관점 아래에서는 세계사는, 현실성으로 되는 실재적인 것이 또한 언제나 그때마다 이성적인 것이 되는 참으로 〈신적인 과정〉인 것이다. 정신은 그 자신을 〈일정한 형태로서〉 산출한다." "세계정신은 말하자면 역사적인 민족들한테서─자기의 무의식 상태인 어둠을 벗어나서 대자 존재에로─암중모색하면서 전진한다. 과정 그 자체가 차츰 가시적으로 되고, 의식적으로 목표를 지향하게 되면서, 어떤 민족정신은 다른 민족정신에게 길을 비켜 준다."(911)


"역사는 역사 속의 정당한 것과 더불어 그 자신 대단히 정당하다. 그리하여 개인 또는 심지어 개별 민족의 운명에 있어서의 비극성도 역시 역사 속에서는 여전히 정당화된다. 역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고, 사적(私的)인 행위와는 외견상으로 무관계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것을 이 역사의 자기 초월의 수단으로 만들 줄 알기 때문에, 역사는 동시에 세계사이요, 세계의 법정이다." "역사적 지식은 정신적 존재의 한 형식일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 지식 자신도 다시 자기의 역사를 가진다. 모든 역사적 지식에는 그것의 시대, 그것의 민족, 그것의 정신적 원리 및 지평의 정신적 친자 관계가 뚜렷하게 각인된다. 그것은─마치 객관적 지식이 자기 자신을 찾아서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처럼─객관적 정신이다. 객관적 정신은 이 발자취가 그 속으로 갈라져 들어가는 모든 오류와 사로(邪路)의 기초에 놓여 있다. 객관적 정신은 또한 역사 법칙의 기초가 되어 있기도 하다. 객관적 정신에게도 역시 역사는 세계의 법정이다."(918)


"신과 인간─이것은 가장 내면적인 변증법적 관계이다. 따라서 이 관계─이 관계는 모순이다─는 모순의 역학의 기저에 놓여 있다. 이 모순의 역학은 종합으로, 〈타자〉의 자기 해소에로, 신 속으로의 귀환에로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모든 진정한 변증법에서 그런 것처럼, 출발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신은 자기 자신을 인간 속에서 다시 보존한다. 그것은 신의 그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 이렇게 하여 신은 비로소 대자적으로 된다. 즉 그것은 신이 인간의 인식 속에서 그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의 현실성은 신의 대자 존재 속에 존립하기 때문에, 신은 인간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현실적으로 된다. 이렇게 하여 계기들이 서로 바뀐다. 그리고 계기들의 서로에 대한 자립성은 가상(假象)으로서 가면을 벗는다. 〈신은 또한 유한자와 똑같고, 자아는 무한자와 똑같다.〉 이것은 신은 오로지 종교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한 철학의 엄격한 공식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신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기 때문이다."(944-5)


"정신, 인간, 즉 신의 힘이 자신에로 도달하고 또 〈대자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은 종교 그 자체의 정신이요, 그뿐만 아니라 인간에 있어서의 종교의 현실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독일 신비주의의 핵심 사상에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헤겔은 이 일을 의식적으로 행하고, 그리고 그것의 증거로서 신비주의의 고전적 인물인 마이스터 엑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한다. 〈신이 나를 보는 눈은 내가 신을 보는 눈이다. 나의 눈과 신의 눈은 하나이다. 의로운 일에 있어서 나는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은 나 안에서 그 무게가 헤아려진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쉽사리 오해되는 일이요, 또 단지 개념 속에서만 포착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이를테면 일정한 종교의 정신이 아니라, 종교 일반의 정신이다."(945-6)


"헤겔의 체계는 최고의 대상으로서의 종교에서가 아니라, 체계 그 자체인 것, 즉 철학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헤겔에게 철학의 철학은 철학 곁에서가 아니라, 철학 안에서 그것도 어떤 특수한 분과 속에서가 아니라, 전체의 전개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이 전개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서 원으로 완결된다는 것, 우리가 절대정신의 정점에서 다시 절대자의 저 시원적(始原的)인 범주─이 범주로써 논리학이 시작되었다─에 도달한다는─이 모든 것은, 이제 투시할 수 있고, 자명하다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결과는 지나온 길 그 자체에서 매우 명확하게 발생한 것이다. 다만 이 원리는 그것이 자기의 본질─세계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정신의 본질 속에서 완성된 상태로 재발견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이 원리의 명제는 물론 형이상학적인 명제이고, 또 그런 명제로 지속한다. 체계는 이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명제를 단지 그 귀결에서─대상의 단계들의 긴 계열을 통하여─미리 지시할 뿐이다."(9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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