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
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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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소와 매실주 H


수소 원자는 ⊕전기를 띠기 쉽다. 그런데 수소 원자는 그냥 깔끔하게 ⊕전기를 띠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짝 ⊕전기를 띠는 듯 마는 듯한 느낌으로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약간만 끌어당기는 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상태로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슬쩍 잡아당기는 현상을 수소결합hydrogen bond이라고 한다. 수소결합은 그다지 힘이 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소결합으로 연결된 부분은 어떨 때는 살짝 붙어 있다가, 어떨 때는 다른 힘을 못 이겨 떨어지기도 한다. 즉,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가 생긴다. 이 같은 성질 덕분에 수소는 갖가지 복잡하고 이상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온갖 물질이 별별 복잡한 형태로 다채로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생명체의 몸속에서 수소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생명체가 복잡한 이유의 근원은 수소결합의 힘이 애매한 정도라서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갖고 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0-1)


수소결합, 즉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물질을 적당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이 이상한 특징은 생명체가 유전 받은 대로 자기 몸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들어 있는 DNA는 자기와 똑같은 DNA를 복사해서 한 벌 더 만들어 내거나, 짝이 맞는 RNA를 만들어 내는 등의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 화학반응에서 DNA가 서로 끌어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소결합이다. 이런 화학반응은 생명체가 선대로부터 유전된 그대로 자신의 몸을 만드는 현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에서 수소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수소가 흔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직 수소 원자만 모여서 생긴 수소 기체는 그리 흔치 않다. 수소 기체는 지구에 드물지만 다른 원자 옆에 붙어 있는 수소 원자는 흔한 편이다. 물에는 산소 원자와 함께 수소 원자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바다는 수소 원자를 가득 품은 거대한 저장고다. 11-2)


2. 헬륨과 놀이공원 He


사실 태양은 전체 무게의 70% 이상을 수소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거대한 수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 원자들은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몇 단계에 걸쳐 서로 합쳐져 헬륨 원자로 변하는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을 원자의 핵끼리 서로 붙는다고 해서 핵융합nuclear fusion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태양이 강한 빛과 열을 사방으로 내뿜는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환하고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 헬륨이 쓸모가 많은 까닭은 특이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헬륨은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서 유용하다. 헬륨은 불을 댕겨도 타오르지 않고, 금속을 헬륨 속에 놓아두어도 녹슬지 않는다. 한마디로 헬륨은 아무 성질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질인 물질이다. 주기율표에서 헬륨과 같은 열에 있는 네온, 아르곤 같은 물질들은 다들 이렇게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물질들을 묶어서 비활성기체noble gas라고 부른다. 20-2)


매우 정밀한 가공작업을 하거나 높은 열을 가해야 하는 작업장을 생각해 보자. 세밀하게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화학반응을 잘하는 물질이 주변에 나돌고 있으면 불필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나 재료가 손상될 수 있다. 바로 이럴 때, 제조 시설에 헬륨을 불어 넣어 주면 주위가 헬륨으로 가득 차 불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대상이 아예 없는 깨끗한 환경이 마련된다. 당연히 불이 붙지도 않는다. 헬륨은 워낙에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띤 까닭에 자기들끼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체로 만들기가 어렵다. 평범한 1기압에서 날아다니던 헬륨 원자들이 서로 들러붙어 액체가 되게 하려면 온도를 영하 269℃까지 낮추어야만 한다. 액체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온도를 낮춰야 하는 물질이다 보니, 일단 액체로 만든 헬륨을 뿌리면 주변 온도 역시 아주 낮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헬륨은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재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고 냉각 작업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23-5)


3. 리튬과 옛날 노래 Li


리튬 원자는 전자를 잃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하는 성질이 있다. 리튬 배터리는 간단히 말해 리튬 원자가 ⊕전기를 잘 띤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 전기를 뽑아 쓰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리튬은 세상 모든 원자 중에 수소, 헬륨 다음으로 평균 무게가 적게 나가는 원자다. 가볍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수소, 헬륨, 리튬은 모두 성질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원자들의 차이는 원자핵에 양성자가 몇 개 있느냐 하는 것밖에 없다. 양성자가 한 개만 있으면 수소 원자가 되어 불에 잘 타는 물질이 되기 쉽지만, 똑같은 양성자인데도 두 개가 꼭 붙어 있으면 헬륨 원자가 되어 아무런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소 원자를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양성자가 한 개가 아니라 세 개가 달라붙어 있으면 리튬 원자가 되는데, 이번에는 금속 덩어리가 되기 쉽다.  100종이 넘는 세상 모든 원소 간의 차이는 원자의 핵에 양성자가 몇 개 들어 있는지 그 개수의 차이밖에 없다. 29-31)


주기율표에서 리튬은 소듐의 바로 위 칸에, 포타슘은 소듐의 바로 아래 칸에 써넣는 원소다. 즉, 세 가지 원소는 주기율표의 같은 열에 주르륵 적혀 있다. 이는 현대의 화학자들이 리튬, 소듐, 포타슘을 성질이 비슷해 하나로 묶을 만하다고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원소들은 다들 원자가 ⊕전기를 잘 띠고, 화학반응을 잘하며, 한데 뭉쳐 있을 때는 쇳덩어리 비슷한 모양을 이룬다. 주기율표에서는 이들 모두 맨 첫 번째 열에 나열돼 있어서 1족 원소group 1 family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튬을 주원료로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물질들의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돕느라 리튬을 쓰는 일도 있다. 가만히 두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들에 적당한 촉매catalyst를 섞어 주면 그때부터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가 있다. 이 과정에서 촉매 자신은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은 계속 빠르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도록 도와준다. 이 때문에 많은 화학 회사에서는 적합한 촉매를 개발하는 일을 핵심 기술로 여긴다. 34-6)


4. 베릴륨과 보물찾기 Be


우라늄은 중성자neutron와 충돌하면 원자핵이 둘로 나뉘어 다른 원자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을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고 하며, 핵분열 현상이 일어날 때는 강한 열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을 유지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성자들이 원자로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계속 우라늄 사이를 돌아다니도록 무엇인가로 막아 주어야 한다.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 상태의 입자다. 그래서 딱히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도 않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도 거의 없다. 유령 같은 중성자를 원자로 안에 가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중성자는 다른 원자의 중심부인 핵 근처에서 그 핵을 이루는 양성자 또는 중성자에 이끌릴 수 있다. 그러니까 중성자는 대체로 다른 물질들을 그냥 통과하는 편이지만, 가끔 다른 원자의 정중앙 근처를 지나게 될 때는 그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에 이끌려 붙잡히거나 진행 방향이 바뀔 수 있다. 42-3)


베릴륨은 세상의 모든 원자 중에 평균 무게가 네 번째로 가볍고, 그만큼 원자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베릴륨의 원자핵은 대개 양성자 네 개와 중성자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율표에서 수소, 헬륨, 리튬에 이어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이 바로 양성자가 네 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성자가 베릴륨의 원자핵 근처를 지나갈 때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오묘한 수준의 힘에 이끌린다. 그리고 이 힘 때문에 중성자의 진행 방향이 꺾여서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런 현상이 연달아서 일어나면 마치 중성자가 베릴륨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즉, 베릴륨이 중성자를 튕겨내는 반사재reflector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안에 베릴륨을 넣어 그릇처럼 만들고, 그 안에 중성자와 우라늄을 넣어 반응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유령 같은 중성자라도 베릴륨에 가로막혀 계속해서 튕겨 나가고, 원자로 안에서는 연쇄반응이 꾸준히 일어난다. 43)


5. 붕소와 애플파이 B


유리는 규소와 산소 원자들이 서로 붙어 있는 물질을 주재료로 만든다.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여기에 소듐과 칼슘 원자도 약간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유리는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약하다. 특히 유리를 뜨겁게 하면 유리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떨린다. 사실 어떤 물체가 ‘뜨겁다’거나 ‘온도가 높다’는 말 자체가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원자가 빠르게 떨리다 보면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끼어든 소듐 원자 근처에 틈이 생길 수 있다. 원자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 유리의 강도가 약해진다. 다행히 요즘 주방에서 사용하는 유리 제품들은 제법 높은 열에도 잘 견디는 것들이 있다. 유리를 만들 때 붕소 성분을 약간 넣기 때문이다.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섞여 있는 소듐 원자 때문에 틈이 생길 만한 자리마다 붕소 원자가 끼어들게 해서 그 틈을 메워 버리는 것이다. 붕소 원자의 크기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 꼭 맞다. 49-50)


붕산boric acid은 황산이나 염산, 질산처럼 다른 물질을 무시무시하게 녹이지는 않는다. 그런 대표적인 산성 물질에 비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도 훨씬 덜하다. 붕산은 이처럼 어중간한 산성을 띠는 덕분에 살충제로 요긴하게 쓰인다. 붕소는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재료다. 반도체의 주재료는 규소인데, 순수한 규소에는 전기가 잘 흐르지 않는다. 여기에 규소와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붕소를 불순물처럼 아주 조금 넣어 주면 훌륭한 반도체가 된다. 규소에 붕소를 살짝 뿌려 주는 이 작업을 도핑dopping이라고 한다. 도핑 작업을 거치면 규소와 붕소의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미묘한 성질 차이 때문에 어떤 때는 전기가 흐르고 어떤 때는 흐르지 않는 반도체의 특징이 생겨난다. 베릴륨이 중성자를 잘 튕겨 내서 핵분열을 부채질하는 것과 반대로 붕소는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핵분열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원자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 같으면 붕소를 넣어 핵분열을 줄인다. 52-3)


6. 탄소와 스포츠 C


탄소를 이용하면 다양한 물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내기가 무척 편리하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별 희한한 성질을 띠는 복잡한 물질까지, 탄소 원자를 이리저리 조합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탄소가 이렇게나 다양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까닭은 탄소 원자 한 개가 다른 원자 네 개와 결합하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탄소 원자 하나에 다른 원자를 붙잡을 수 있는 갈고리가 네 개 달렸다고 상상하면 적당하겠다. 갈고리가 네 개나 있는 탄소를 이리저리 붙여 가면서 뭔가를 만든다면 다른 원소를 재료로 삼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탄소 원자가 다른 원자와 달라붙는 힘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느냐에 따라 아주 튼튼하게 달라붙을 수도 있고, 조건이 바뀌면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쉽게 떨어지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도 원자끼리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56)


지구에 사는 모든 유기체, 즉 생명체의 몸에는 탄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탄소는 모두 어디서 왔을까?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몸이 되었다가, 다시 그 식물을 먹은 동물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지구의 공기 중에는 이산화탄소가 별로 없다. 지구의 공기는 질소가 78%, 산소가 21%를 차지하고, 생명체를 이루는 재료인 이산화탄소는 고작 0.0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금방 바닥나는 일은 없다. 생명체가 죽으면 곰팡이와 세균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를 썩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몸은 다시 이산화탄소로 변해서 공기 중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지상의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요약하면 공기 중에 0.04%밖에 없는 이산화탄소 중 일부가 화학반응을 거치며 탄수화물이 되고, 단백질과 지방의 재료로도 활용되어, 마침내 생물의 몸이 되었다가, 생명 활동을 마친 뒤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58-60)


7. 질소와 목욕 N


사람 몸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단백질은 아미노산amino acid이라는 물질이 수없이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런데 여기서 아미노amino라는 말은 질소가 들어 있는 대표적인 물질 암모니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공기를 들이마셔도 그 속에 있는 질소를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재료로 활용할 수가 없다.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몸속에서 단백질 재료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질소 원자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질소 원자 자체는 화약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다른 원자들에 달라붙으며 화학반응을 잘한다. 그런데 같은 질소 원자 둘이 달라붙을 때는 갈고리 역할을 하는 세 전자가 모두 한꺼번에 서로서로를 이끌어 붙이는 갈고리 역할을 해서 질소 원자 둘이 아주 야무지게 붙어 있게 한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질소가 삼중결합을 했다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아무리 들이마셔 봤자 어지간해서는 질소 원자 두 개를 서로 떼어 낼 수가 없고, 당연히 질소 원자를 재료 삼아 다른 물질을 만들 수도 없다. 66-8)


그렇다면 동식물이 몸속에서 질소 원자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소 기체가 아닌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질소 원자를 흡수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동식물이 그 물질 속에 있는 질소 원자로 몸에 꼭 필요한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행히도 지구에는 오랜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해 온 특별한 생물이 있다. 다름 아닌 세균들이다. 수많은 세균 중 몇몇 종류가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흡수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형태의 물질로 바꾼다. 식물은 땅속 세균들이 바꿔 놓은 물질을 뿌리로 빨아들여 그 속에 든 질소 원자를 이용해 단백질 등 여러 가지 필요한 물질을 만든다. 그리고 동물들은 바로 그 식물을 먹는다.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 생명체가 활용하기 좋은 질소 원자로 바꿔 주는 이 세균들이 없다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동물도 살아갈 수 없다. 68)


8. 산소와 일광욕 O


지구 상공에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보호막이 있다. 바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ozone layer이다. 오존층은 오존ozone이 많이 모여 있는 공기층을 일컫는 말로, 지상에서 대략 20~25km 높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지상의 생명체들을 위해 오존층을 선물로 준 것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다. 바로 세균, 그중에서도 남세균 종류다. 수십억 년 전에 전 세계 바다에 나타난 남세균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oxygen 원자가 두 개씩 붙은 산소 기체를 공기 중에 내뿜었다. 이 세균들이 수억 년 동안 줄기차게 산소 기체를 내뿜자, 지구는 산소 기체가 풍부한 행성으로 변했다. 지구 대기에 산소 기체가 풍부하다 보니, 자외선이 쏟아지는 저기 하늘 높은 곳에서는 산소 기체가 자외선을 맞고 오존으로 변한다. 산소 원자가 두 개씩 서로 짝지어 있는 것이 보통 산소 기체의 모습인데, 그러다 자외선을 맞으면 원자들이 떨어지고, 이내 세 개씩 다시 들러붙어 새로운 물질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오존이다. 75-6)


남세균이 지구에 산소 기체를 이만큼이나 공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산소는 화학반응을 무척 잘하는 원소다. 어쩌다 산소 원자 두 개가 달라붙어 산소 기체가 되더라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즉, 산소 기체가 자꾸 다른 물질로 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공기 중 산소 기체의 양을 넉넉하게 유지하려면 다른 물질로 변해서 없어지는 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남세균들이 계속해서 산소 기체를 내뿜어야 한다. 그러니 남세균은 그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고, 대단히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광합성을 했을 것이다. 산소를 이용하는 다른 생물들은 남세균이 만든 산소 기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는 수많은 동물 역시 산소 기체가 화학반응을 잘한다는 점을 활용해 살아간다. 사람 역시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고 있으니, 산소 기체의 화학반응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76)


9. 플루오린과 아이스크림 F


물 같은 액체 상태의 물질이 마르면서 기체 상태로 변할 때, 주변의 열을 가져가면서 시원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액체가 기체로 변하면서 가져가는 열을 기화열heat of vapor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냉장고 정도의 냉각 효과를 내려면 아주 쉽게 기체로 변하는 물질이 유리하고, 기왕이면 재활용하기 위해 기체로 변한 뒤에 액체로 되돌리기 편리한 것이 좋다. 이런 용도로 이용하는 물질을 냉매refrigerant라고 한다. 염소chlorine, 플루오린fluorine, 탄소carbon 원자를 조합해 만든 냉매 물질을 각 원소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CFC라고 부르는데, 이 물질의 상품명인 프레온Freon이 유명해져서 흔히 프레온가스라고 한다. 그런데 CFC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면 하늘 높이 올라가서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CFC 대신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HFC라는 물질을 쓰기도 한다. HFC는 수소, 플루오린, 탄소 원자 등을 성분으로 만드는 물질이므로, 여기에도 플루오린은 들어간다. 82-4)


플루오린은 예전에 플루오르fluor 또는 불소라고도 불렀던 물질이다. 플루오린은 화학반응을 극히 잘 일으키는 물질이어서 도저히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물질을 건드려 끝내 화학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수소와 플루오린이 연결된 물질을 플루오린산fluoric acid, 혹은 불산불화수소산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불산은 산성을 띤다. 아주 강한 산성은 아니지만, 다른 물질과 쉽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자꾸 스며들고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 피부나 다른 생물에 닿으면 위험하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작은 칩 위에 수없이 많은 부품이 연결된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부품은 크기가 1만 분의 1mm, 10만 분의 1mm 정도로 매우 작다. 이렇게 작은 부품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려면 재료를 세밀하게 깎아야 한다. 그 작은 부품을 조각칼 같은 도구로 깎을 수는 없으므로, 적절한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불필요한 부분이 삭게 한다. 바로 이 공정에 불산을 쓴다. 85, 88-9)


10. 네온과 밤거리 Ne


가이슬러관에 기체를 넣고 강한 전기를 걸면, 기체 원자 속에 있던 전자가 전기의 힘 때문에 튀어나온다. 전자는 ⊖전기를 띠므로 전자를 잃은 기체 원자는 ⊕전기를 띠게 된다. 이렇게 전기를 띤 상태로 돌아다니는 기체 원자를 요즘에는 플라스마plasma라고 부른다. 플라스마, 그러니까 ⊕전기를 띤 기체 원자는 자연히 ⊖전기 쪽으로 이끌려 날아간다. 플라스마가 유리관 안에서 다른 기체 원자들과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전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다 보면 다른 원자 안에 들어 있는 전자들과 부딪히거나 서로 이끌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자들은 힘을 받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전자가 갑자기 속도를 잃을 때는 전자파를 내뿜는다.  따라서 가이슬러관에 넣은 기체의 종류와 양, 압력을 잘 조절하면 전자파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전자파의 주파수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플라스마가 내뿜는 전자파의 주파수를 4억~8억 MHz 정도로 유지할 수 있으면, 그 전자파는 사람 눈에 감지되어 빛으로 보인다. 94-5)


주기율표에서 네온은 헬륨 바로 아래 칸에 적혀 있다. 같은 열에 배치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네온은 헬륨과 성질이 비슷하다.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는 비활성기체이며, 헬륨처럼 우주 전체로 보면 비교적 흔하지만, 지구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질이다. 1871년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y Mendeleev가 대체로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서로 원소 이름을 써넣으면서, 성질이 비슷한 것들은 세로로 같은 줄에 오도록 배치한 것이 주기율표다. 그런데 이 원칙대로 정리했더니 어떤 칸에는 써넣을 것이 없었다. 빈칸이 생겼으니 주기율표를 만드는 원리가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주기율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빈칸에 들어갈 원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어 그 자리를 채울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1898년에 네온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공기 중에 0.002% 정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물질이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우게 됐다. 99)


11. 소듐과 냉면 Na


소듐은 ⊕전기를 띠려는 성질이 강하다. 소듐의 전기적인 특성을 이용하면 독특한 노란색 빛을 내는 전등을 만들 수도 있다. 나트륨등은 유리관에 소듐을 넣고 전기를 걸어 아주 높은 온도에서 녹아내리고 끓어오르게 해서 기체 상태로 유리관 안을 떠다니며 빛을 내뿜게 만든 것이다. 순수한 소듐 덩어리를 물에 던지면 빠르게 폭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듐이 그만큼 격렬하게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증거다.  가성소다는 가혹한 성질을 지닌 소듐 물질이라는 뜻으로, 가성소다가 동물의 살갗에 닿으면 피부에 해를 입는다. 하지만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성질을 적당히 이용하면 가성소다로 세탁물의 찌든 때를 녹여 없앨 수 있다.  양잿물이 바로 가성소다, 즉 수산화소듐을 말한다. 가성소다가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까닭은 이 물질이 대표적인 염기base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소듐과 염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래서 염화소듐sodium chloride 또는 염화나트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03-5)


우리 몸에서 소듐이 꼭 필요한 곳은 신경이다. 사람과 동물은 온몸에 신경이 퍼져 있다. 거대한 신경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는 뇌에서 몸을 어떻게 움직이라고 보내는 신호가 신경을 통해 해당 부위에 전달돼야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고 여러 가지 감각도 느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신호는 전기신호다. 그리고 신경을 통해 전달할 전기신호를 만들기 위해 인체가 사용하는 물질이 바로 ⊕전기를 잘 띠는 소듐과 포타슘이다. 사람의 신경에는 가까이 있는 물질 중에서 ⊕전기를 띤 소듐만 골라서 한쪽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위가 있다. 소듐통로sodium channel와 소듐-포타슘 펌프Na+ K+ pump라고 부르는 부위인데, 소듐통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기를 띤 소듐이 한곳으로 모이는 바람에 상당한 전기가 걸린다. 그러니 몸속에 소듐이 전혀 없다면 신경에서 전기를 일으킬 수가 없고, 신경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지 않으면 온몸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소듐이 없으면 몸은 뇌와 연결되지 못한다. 106)


12. 마그네슘과 숲 Mg


식물에서 초록색을 내는 화학물질을 엽록소chlorophyll라고 한다. 엽록소를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면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금속으로 분류되는 마그네슘 원자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엽록소라는 물질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마그네슘계 유기화학물질을 이용한 광화학반응 목적의 색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싱그러운 숲의 초록빛을 정확하게 일컫는 말이다. 곡식이나 과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 관점에서 보면, 광합성은 식물이 햇빛 속의 힘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엽록소의 중심에 있는 마그네슘 관점에서 보면, 마그네슘 원자와 다른 원자들이 이어진 아주 작은 회로가 햇빛의 힘을 받아 작동하면서 전자로 만든 광선 검 같은 장치가 가동되어 물 분자를 조각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각난 물 분자의 파편인 수소가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다른 동물들이 원하는 당분 같은 물질이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111-3)


⊕전기를 잘 띠는 마그네슘의 특징을 이용하면 다른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금속의 전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 즉 녹스는 현상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가 금속에서 전자를 떼어 내 가져가려고 하니까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금속의 전자를 가져가려고 하는 물질이 나타날 때마다 금속보다 먼저 나서서 전자를 던져 주는 장치가 있다면 보호하고자 하는 금속 안에 있는 전자는 뜯겨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면 마그네슘으로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장치는 간단하다. 보호하고 싶은 금속과 마그네슘 덩어리를 전선으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호하려는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마그네슘이 재빨리 자기 전자를 떼어서 전선을 통해 전달해 준다. 이렇게 해서 마그네슘은 하나둘 전자를 잃어 ⊕전기를 띠는 상태로 변한 뒤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삭아 가고, 반대로 보호하고자 했던 금속은 마그네슘 덕분에 전자를 잃지 않아서 녹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116-7)


13. 알루미늄과 콜라 Al


지표면의 돌과 모래를 이루는 원자를 분석하면 산소와 규소 원자가 매우 많은 편이고, 바로 그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알루미늄이다. 사람들은 흔히 쇳덩어리라고 하면 철을 떠올리는데, 이는 철이 지구에 흔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루미늄은 철보다 더욱 흔하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의 8% 정도가 알루미늄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렇지만 돌이나 흙에서 알루미늄 원자만을 골라내서 금속 덩어리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초로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은 (베릴륨을 발견하고 요소를 합성한) 독일의 위대한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였다. 뵐러는 화학반응을 아주 잘 일으키는 물질인 포타슘을 염화알루미늄aluminium chloride과 반응시키는 과정을 이용해서 상당히 순수한 알루미늄 가루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알루미늄을 뽑아내는 방법이 점점 더 발전해서, 힘들긴 해도 알루미늄 원자가 들어 있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 조금씩 덩어리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24-5)


그래도 초창기에는 알루미늄 덩어리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연-알루미늄-술에 결국 성공한 인물로는 보통 프랑스의 폴 에루Paul Héroult와 미국의 찰스 마틴 홀Charles Martin Hall이 손꼽힌다. 1880년대 후반, 두 사람이 각자 발견한 기술은 알루미늄을 뽑아낼 수 있는 재료에 전기를 걸어 주는 독특한 화학반응을 통해 알루미늄을 녹여낸 뒤에 다시 훑어 내는 방법이었다. 요즘에는 주로 보크사이트bauxite라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며,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여전히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는 전기가 많이 든다. 다행히 요즘은 돌에서 뽑아내지 않아도 알루미늄을 얻을 방법이 있다. 바로 재활용이다. 게다가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면 돌에서 직접 알루미늄을 뽑아낼 때보다 전기를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재생 작업에 소모하는 전기는 돌에서 직접 뽑아낼 때 소모하는 전기의 2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알루미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126, 128, 130)


14. 규소와 선글라스 Si


유리와 수정의 재료가 되는 물질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규소silicon 원자에 산소 원자가 둘씩 달라붙은 이산화규소silicon dioxide에서 출발하는 물질이다. 이산화규소를 이루는 산소와 규소는 둘 다 지구에 흔한 원소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 중에 산소와 규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75% 가까이나 된다. 한반도에서는 또 다른 물질이 유리를 능가하는 인기를 끌었다. 이산화규소 덩어리였던 유리와 달리 그 새로운 물질은 규소를 중심으로 알루미늄이나 철 등 여러 원자가 다양하게 섞인 것이었다. 그 물질은 다름 아닌 도자기다. 여기에 현대의 기술을 더해 규소 원자가 이루는 모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더 튼튼하고 더욱 쓰기 좋은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원리로 만들어 낸 도자기 계통의 재료를 흔히 세라믹ceramic이라고 한다. 고대의 유리구슬부터 중세의 도자기에 이어 현대의 세라믹까지, 이 모든 것에는 규소가 있고, 규소를 어떻게 녹이고 굳히느냐에 따라 제품의 품질이 달라진다. 134, 137-8)


1950년대의 학자들은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와 그렇지 않은 부도체의 중간 성격을 띠는 어중간한 물질을 잘만 이용하면 원하는 경우에만 전기가 흐르게 조절할 수 있는 전자부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물질을 반도체semiconductor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강대원과 아탈라는 규소를 주재료로 삼고 다른 화학물질들을 조금씩 이용해 정말로 이렇게 동작하는 전자부품을 만들어 냈다. 이 부품을 금속산화물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etal 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라고 한다. 보통은 줄여서 MOSFET로 쓰고, ‘모스펫’이라고 읽는다. 1979년에 나온 모스펫 2만 9,000개짜리 장치가 바로 최초의 IBM PC 핵심 부품이었던 8088 CPU였다.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뿜도록 반도체를 만들면 LED가 된다. 반대로 빛을 받으면 전기를 내뿜는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만든 장치는 태양광발전소가 된다. 태양광발전 장치를 만들 때도 역시 규소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140-1)


15. 인과 기차 여행 P


화재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가루가 바로 난연제flame retardant라는 물질이다. 그리고 그 난연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phosphorus 원자가 들어 있는 성분이다. 난연제는 플라스틱 같은 재료에 섞어 넣어 불이 잘 붙지 않게 하는 약품을 말한다. 보통은 불이 잠깐 붙었다가도 번져 나가지 않고 그냥 사그라들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들이 많다. 만약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푹신한 가죽 소파 같은 느낌이 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가죽과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에 난연제를 섞어 소파를 만들면 되고, 불에 안 타는 벽지가 필요하다면 종이와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을 벽지 모양으로 가공한 다음 난연제를 섞어 두면 된다. 난연제는 화재 위험을 낮추고 싶은 그 어디에나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제품이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날까 봐 걱정된다면, 난연제를 첨가한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면 된다. 난연제 덕택에 플라스틱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값도 싼 환상적인 재료가 되었다. 146-7)


꼭 난연제가 아니어도 인 원자를 이용한 화학물질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과 수소, 산소가 붙어 있는 물질인 인산phosphoric acid이다. 인이 들어 있는 물질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이 물질이 비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비료를 뿌려 줘야만 농작물이 잘 자란다. 인이 있어야 잘 자라는 것은 농작물이나 식물만이 아니다. 사실은 세상 모든 생물이 자라는 데 인이 꼭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데도 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물질인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이 모든 생물의 몸이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핵심 연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데노신삼인산이 아데노신이인산adenosine diphosphate으로 바뀌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몸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활용한다. 몸속에서는 워낙에 별별 곳에 다 사용되는 물질이라 아데노신삼인산이라는 긴 이름 대신 ATP라고 줄여서 표기하는 일이 많다. 147-8) 


16. 황과 긴 산책 S


생명체에서 뽑아낸 다른 많은 물질처럼 고무나무에서 뽑아낸 고무에도 탄소 원자가 주로 많이 들어 있다. 고무 속의 이 많은 탄소 원자는 대개 서로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기다란 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황 원자는 다른 원자 두 개와 잘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다. 갈고리가 두 개 달린 원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래서 고무에 황을 넣어 주면 이쪽과 저쪽 탄소 가닥 사이에 황이 끼어들어 양쪽으로 갈고리를 걸고 붙어 버린다. 탄소가 많이 들어 있는 실 가닥 같은 물질들 사이사이에 황 원자가 들어가서는 접착제처럼 탄소 실 가닥 곳곳을 붙여 버린다고 상상해도 비슷하겠다.  바로 이 때문에 고무에 황을 적당히 넣어 주면 탄소 가닥들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고무가 더 탱탱해진다. 생물의 몸속에 있는 단백질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황은 수소결합보다 더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황 덕택에 단백질의 모양이 더 다양해질 수 있고, 생명체는 더욱 다양한 단백질을 이용하며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158)


술파제sulfa drug는 세균의 몸 속에 들어가면 엽산folacin을 만들 때 쓰이는 원료처럼 반응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DNA와 단백질로 몸을 만들어 가는데, 몸속에서 각종 영양분을 활용해 DNA와 단백질을 만들 때 조금이지만 엽산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균은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스스로 엽산을 만든다. 그런데 세균 몸에 술파제가 들어가면 세균은 술파제를 이용해 엽산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오류가 발생해 엉뚱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아마도 술파제에 붙어 있는 황과 다른 원자들의 모양과 성질이 원래 세균에게 필요했던 물질과 묘하게도 비슷해서 혼동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엽산이 없으면 DNA와 단백질도 제대로 만들 수 없으므로 결국 세균은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죽는다. 이와 달리 사람 몸에는 애초에 엽산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 보니 술파제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다. 술파제가 등장한 뒤로 인류는 드디어 몸속에 감염된 세균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164)


17. 염소와 수영장 Cl


염소는 바닷물 속에 ⊖전기를 띤 상태로 넉넉히 녹아 있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이 바로 소듐 원자와 염소 원자가 한 개씩 쌍쌍이 붙어 있는 물질이다. 수영장 냄새는 염소chlorine로 물을 소독해서 나는 냄새다. 염소 원자 둘이 붙어 있는 물질인 염소 기체를 직접 물에 섞어 소독하는 방법도 있고, 염소 원자를 다른 원자들과 함께 이용해 만든 소독약을 쓰는 방법도 있다. 염소는 주기율표에서 플루오린 바로 아래에 적혀 있는 만큼 플루오린과 성질이 비슷하다. 염소도 플루오린처럼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편이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한다. 염소 기체를 이용해 소독할 수 있는 까닭도 염소 원자가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염소 기체는 아주 조금만 물에 넣어도 세균을 비롯해 물속에 사는 여러 미생물의 세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생물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꿔 버려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미생물은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167-9)


염소 원자가 들어 있는 위험한 물질을 꼽자면 염산hydrochloric acid을 빼놓을 수 없다. 쇳덩이를 녹일 만큼 강한 산성 물질로 잘 알려진 염산은 염소 기체를 물에 뿌리기만 해도 물과 화학반응을 해서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독가스로 퍼트린 염소 기체를 병사들이 들이마셨을 때 해를 입는 이유 중 하나도 염소 기체가 몸속의 수분과 반응해서 염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강한 산성을 자랑하는 염산은 알고 보면 우리 몸속에도 있다. 위에서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분비하는 위액의 중요한 성분이 다름 아닌 염산이다. 특히 위액 중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펩신pepsin이라는 물질은 산성 환경에서 화학반응을 가장 잘 일으키는데, 산성 물질인 염산은 펩신이 활발하게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뿐 아니라 염산은 위 속에서 산성에 버티지 못하는 세균들을 녹여서 없애는 역할도 맡고 있다. 사람 위액 속에 염산이 없었다면 입으로 세균이 조금만 들어와도 그것에 감염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171)


18. 아르곤과 제주도 Ar


아르곤은 헬륨과 마찬가지로 다른 원자와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물질이다. 어찌나 반응을 안 일으키는지 그저 낱낱이 흩어져 기체 상태로 날아다니기만 한다. 헬륨은 지구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물질이지만, 아르곤은 공기 중에 1% 가까이 들어 있다. 공기 성분 중 질소 기체, 산소 기체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르곤이다. 그렇다면 아르곤은 어떤 일에 쓰일까? 헬륨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재료를 보호하거나 작업장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때 아르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아르곤 용접을 들 수 있다. 쇠를 녹여 붙이는 용접 작업을 할 때는 높은 온도로 쇠붙이 주위를 녹이는데, 주변의 잡다한 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끼어들어 용접 부위를 더럽힐 수 있다. 공기 중의 산소만 해도 화학반응을 일으켜 쇠를 녹슬게 할 수 있고, 먼지가 타서 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아르곤을 넣어 주면 불필요한 반응을 일으킬 만한 것을 모두 날려 버리고 깨끗하게 용접할 수 있다. 179-81)


그렇다면 결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는 아르곤과 무엇이든 화학반응을 일으키려고 하는 염소나 플루오린을 서로 섞어 두면 어떻게 될까? 아르곤과 플루오린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태 중에 전기적으로 특수한 상황이 되는 것을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또는 Ar-F 엑시머라고 한다. 세상에는 에너지를 가하면 빛을 내는 물질이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은 전기를 걸면 빛을 내고, 어떤 물질은 높은 열을 가하면 빛을 낸다. 그런데 만약 빛을 쐬어 주면 그 결과로 똑같은 빛을 내는 물질이 세상에 있다면 어떨까? 이런 물질은 쐬어 준 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데, 자기가 내뿜는 그 빛 때문에 다시 더 빛을 내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생겨난 특이하고 강한 빛을 레이저laser라고 한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역시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중 하나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로 만든 레이저는 일상적인 물질을 깔끔하고 정교하게 깎아 내기에 유리해서 그런 작업에 많이 쓰인다. 182-3)


19. 포타슘과 바나나 K


아랍어로 알칼리al qalīy는 원래 식물 따위를 태운 재를 뜻하는 말인데, 실제로 식물을 태운 재를 잘 골라 물에 녹이면 염기성, 즉 알칼리성 용액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 조상들도 식물의 재를 녹인 물을 잿물이라 부르고 세탁에 이용했다. 염기성을 띠는 잿물에는 단백질 등의 얼룩이나 때를 이루는 성분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어서 이를 빨래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식물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원자 중에 탄소, 산소, 수소 같은 원자들은 태우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낱낱이 떨어져 나왔다가 다시 서로 적당히 붙어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물질들은 기체여서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따라서 식물이 타고 남은 재에는 기체가 되어 날아가지 않는 원자들만 남게 된다. 마침 칼륨 원자는 재로 남는 쪽에 속한다. 지금처럼 정밀한 화학반응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식물을 태워서 얻은 재로 알칼리성 물질을 만들었던 옛사람들의 기술은 상당히 실용적이었던 셈이다. 187-8)


사람의 신경은 전기신호를 전달하면서 제 역할을 한다. 몸의 특정 부위에서 감지한 것을 뇌에 전달하고, 정보를 받은 뇌가 다시 신체 각 부위로 명령을 전달함으로써 몸이 움직이는데, 이때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신경이다. 그러므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사람 몸에서도 충전과 비슷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사람의 몸은 생명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연료로 활용하는 ATP라는 물질을 반응시켜서 충전한다. 이때, 충전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물질이 세포의 겉면에 있는데, 이름하여 소듐-포타슘(칼륨) 펌프Na+ K+ pump다. 우리가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나 무엇인가를 느끼고 행동해야 할 때, 우리 몸은 평소에 소듐-포타슘 펌프를 가동해 모아 둔 전기를 이용해서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결국 우리가 삶을 사는 수고의 10분의 1쯤은 소듐과 포타슘을 몸속 세포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보내는 데 소모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1-2)


20. 칼슘과 전망대 Ca


요즘 사용하는 콘크리트란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그리고 물을 섞어 사용하는 건설 재료를 말한다. 시공할 때는 묽은 반죽 같은 상태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아주 튼튼해진다. 콘크리트의 재료 중 모래와 자갈은 흙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보다 핵심 재료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시멘트다. 시멘트는 접착제 역할을 해서 다른 재료들을 돌처럼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현대 시멘트의 성분을 살펴보면 칼슘, 탄소, 산소, 알루미늄 같은 다양한 원소들이 보인다. 알루미늄이야 흙 속에 워낙 많이 있는 물질이니 이 중에 눈에 띄는 주성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칼슘과 탄소다. 특히 시멘트의 재료라고 하면 칼슘 원자 하나에 탄소 원자 하나, 산소 원자 세 개씩의 비율로 붙어 있는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같은 것을 꼽을 만하다. 칼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몸속에 있는 뼈의 성분을 떠올릴 텐데, 우리 몸속에 있는 칼슘을 제외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칼슘이 아마 시멘트 속에 있는 칼슘이 아닐까 싶다. 197-8)


사람은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몸속에서 칼슘 성분을 다양한 화학반응에 활용하곤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사람의 뼈를 이루는 물질의 상당량은 칼슘이다. 우리가 멸치나 우유 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 속에 있던 칼슘이 물에 녹아서 흘러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서 단단하게 굳어 뼈를 이룬다. 사람의 뼈는 화학의 황제인 탄소와 인 등의 물질이 칼슘과 튼튼하게 붙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서 가벼우면서도 아주 튼튼하다. 몸속에서 칼슘이 수시로 사용되는 현상은 뼈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동물은 칼슘이 필요하면 뼈에 잔뜩 들어 있는 칼슘을 녹여서 사용한다. 사실 몸의 활동에 꼭 필요한 인 성분도 뼈에 저장되어 있던 것을 녹여서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뼈가 몸 여러 기관에 필요한 칼슘과 인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외에도 사람이 살다 보면 뼈가 낡고 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뼈는 항상 조금씩 없어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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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모든 것이 양자 이론
곽재식 지음 / 지식의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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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 electron│물체의 성질 대부분을 정해 주는 물질


우리가 흔히 전자 제품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기계는 전자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조절하여 복잡한 동작을 하는 기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역시 전자를 조작해서 특수한 기능을 하게 만든 부품이다. 나아가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계도 따지고 보면 전자 덕택에 움직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전기를 사용한다고 할 때 그 전기는 다들 전선을 따라서 수많은 전자가 움직이도록 하면서 그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전기의 힘을 이용하는 장치다. 나는 어릴 때 전기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선 속을 흘러 다니는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기가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전기 기구 속의 전자는 의외로 느리게 움직인다. 단지 그 전자가 내뿜는 (-)전기의 힘, 음의 전기의 힘 곧 음전기의 힘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속도가 빛의 속도일 뿐이다. 11)


왜 어떤 물질에는 공기 중의 산소 기체가 그렇게 빠르게 달라붙으며 빠른 변질(산화(oxidation) 반응)을 일으킬까? 답은 전자 때문이다. 공기 속의 산소 기체는 전자를 약간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소 기체는 물체에 닿으면 전자를 끌어당긴다. 산소 기체가 물체에 달라붙어 그 속의 전자를 아예 뜯어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물체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 물질의 모습도 바뀌고 성질도 바뀐다. 이런 현상이 물체가 불타면서 재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불탄다는 것은 산소 기체가 땔감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빠르게 뜯어 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전자가 잘 떨어져 나가는 물질은 쉽게 불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전자가 쉽게 뜯겨 나가지 않는 물질은 불에 잘 타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런 구조를 가진 물질이 바로 물이다. 산소와 관련된 것 말고도 세상의 온갖 화학 반응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대부분은 전자에 달려 있다. 14)


이렇게 전자만큼 작은 크기의 알갱이들을 흔히 과학에서는 입자(particle)라고 부른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 온갖 일을 다 일으키는 전자같이 아주 작은 입자의 움직임을 입자 하나하나에 대해 각기 정밀하게 따져 보기 위해서는 양자 이론(quantum theory)이라고 하는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계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 두뇌 속의 전자 움직임을 누군가 조종하여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두뇌 속의 전자를 어떻게 하면 얼마나 바뀌게 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 양자 이론이라는 계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전자라는 입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음전기를 활용할 때는 대부분 전자 때문에 그 음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하는 사람의 뇌세포 속에 있는 미세한 전기든, 발전기에서 고압선으로 보내는 막강한 전기든 음전기라면 어느 것이든 그 속의 전자가 내뿜고 있는 전기다. 18-9)


• 위 쿼크 upquark│우리 주변 물체 속에 양전기를 만들어 주는 물질


우리가 흔히 산성 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물에 섞어 놓았을 때 양전기를 띤 수소가 많이 생긴다. 이렇게 양전기를 띠고 있는 수소를 수소 이온 또는 수소 양이온(anion)이라고 부른다. 흔히 산성 물질이란 곧 수소 이온이 많이 들어 있는 물질, 수소 이온 농도가 높은 물질을 말한다. 그 양전기는 음전기를 끌어당길 수 있고 음전기를 띤 전자를 끌어당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양전기를 띤 수소는 다른 물질 속으로 파고들어서 전자를 끌어당겨서 원래 있던 위치에서 어긋나게 할 수 있다. 혹은 아예 전자를 자기 쪽으로 당기다가 원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아주 많이 빨리 일어나면 전자를 빼앗긴 물질도 급박하게 성질이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산성 물질을 만난 여러 가지 물질은 견디지 못하고 망가지고 결국 녹아내린다. 이렇게 보면 산성 물질이 갖고 있는 녹이는 힘은 결국 양전기를 띤 수소가 갖고 있는 전기의 힘이다. 양전기를 띤 수소를 다른 말로 양성자(proton)라고 부른다. 21-2)


# pH : 수소 이온이 물속에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표시하는 기호. 수치가 낮을수록 수소 이온이 더 많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얼핏 생각하면 전자가 많이 붙어 있는 원자는 전자가 넘쳐나니까 전자가 잘 떨어지는 물질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원자일수록 그 전자를 끌어당기는 양성자도 많다.  많은 양성자와 많은 전자 사이에 생기는 양전기와 음전기의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오히려 전자가 훨씬 안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힘도 있다. 전자 개수가 많은 원자는 그 원자 속의 같은 전자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힘이 크다. 전자들은 모두 음전기를 띠고 있으므로 음전기와 음전기 사이의 밀어내는 힘 때문에 서로를 튕겨 내려고 한다. 이런 서로 다른 밀고 당기는 힘의 묘한 균형 때문에 원자들의 종류마다 어떨 때 전자가 잘 떨어져 나오고 어떨 때 전자가 잘 붙는가 하는 성질이 특별하게 달라진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받으면 전자가 얼마나 움직이게 되는 지는 역시 양자 이론을 이용해 계산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힘과 움직임의 정도 차이 덕분에 물질의 성질 차이가 나타난다. 26)


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양성자 역시 하나의 작은 알갱이가 아니라 다른 더 작은 물질이 모여서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현대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양성자가 위 쿼크라는 알갱이 두 개와 아래 쿼크라는 알갱이 하나가 합쳐진 물질이라고 보고 있다. 위 쿼크와 아래 쿼크 중에 양전기를 띠고 있는 것은 위 쿼크다. 사실 양성자가 지닌 가장 선명한 특징인 그 양전기의 힘은 본래 위 쿼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자나 쿼크처럼 더 작은 물질로 분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작고 가장 기본이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알갱이를 기본 입자(elementary particle)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기본 입자라는 말 대신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소립자(素粒子)라는 말도 많이 썼다. 그런데 소립자라고 하니 사람들이 작을 소(小)자를 써서 크기가 작은 입자라는 뜻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혼란이 없도록 소립자 대신 기본 입자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추세다. 27-8)


• 아래 쿼크 downquark│우리 주변 물체 속에 중성을 만들어 주는 물질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탄소 중 아주 일부가 좀 이상해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상한 새로 발견한 탄소 역시 탄소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이기는 하다. 그 말은 둘 다 똑같이 각기 6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새로 발견한 이 이상한 탄소는 보통 탄소보다 살짝 무거웠다. 보통 탄소 원자 하나의 무게가 12 정도라면, 새로 발견한 특이한 탄소 원자 하나의 무게는 14 정도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무게만 무거운 탄소가 있다면 탄소의 원자핵 속에 양성자 말고 또 다른 물질이 뭔가 더 붙어 있어서 무게를 더해 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가로 더 붙어 있는 물질은 전기를 띠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추가로 더 붙어 있으면서 무게만 더 늘려 줄 뿐, 전기는 띠지 않는 물질을 중성의 작은 알갱이라고 해서 중성자(neutron)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성자는 가끔 그중 일부가 방사선을 내뿜고 양성자로 변화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31-2)


탄소 원자는 여섯 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 전자들이 원자 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과 다르게 양성자 여섯 개는 대단히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모여 있다. 그런데 양성자들은 다들 양전기를 갖고 있으니 양전기끼리 밀어내려는 힘으로 강하게 서로를 밀쳐 낸다. 그러므로 이렇게 여섯 개나 되는 양성자가 한 군데 모여 있기가 쉽지 않다. 금방 밀려나 흩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양성자들이 서로 붙어 있을까? 과학자들은 거기에 같이 붙어 있는 중성자라는 물질이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중성자와 양성자, 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과학자들은 핵력(nuclear force)이라고 이름 붙였다. 핵력은 양성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여 주는 접착력이다. 만약 양전기로 밀어내며 튕겨 나가려고 하는 전기의 힘보다도 접착력인 핵력이 충분히 더 강력하다면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은 좁은 공간에 붙어 있을 수 있다. 36)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그 중성자조차도 더 확대해서 보면 그 내부는 위 쿼크와 아래 쿼크라는 더 작은 물질이 모여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 쿼크는 양전기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중성자가 전기를 띠지 않기 위해서는 음전기를 띤 쿼크도 같이 모여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음전기를 띤 아래 쿼크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기 세 개의 쿼크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 아래 쿼크 하나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그에 비해 중성자는 아래 쿼크 두 개, 위 쿼크 하나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양성자는 위 쿼크가 많이 있는 물질이고 중성자는 아래 쿼크가 많이 있는 물질이다. 마침 위 쿼크의 양전기 세기는 아래 쿼크의 음전기 세기의 딱 두 배다. 그렇기 때문에, 중성자는 양전기와 음전기가 정확히 같아져서 전기를 띠지 않는다. 그리고 양성자는 양전기가 남아돌아 전체적으로도 양전기를 띤다. 38)


• 기묘 쿼크 strangequark│특이한 우주 방사선의 재료


우리가 방사선이라고 부르는 현상 중 다수는 물질과 반응하면 그 물질이 전기를 띄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물질 속의 전자는 작고 가볍기에 방사선을 맞으면 종종 그 힘에 뜯겨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그 전자가 물질 속에서 하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전자가 부족해진 물질이 엉뚱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방사선을 너무 많이 맞으면 몸에 해롭다는 것도 이런 일일 때가 많다. 그런 만큼 우주 방사선이 잘못해서 컴퓨터에 사용하는 반도체에 우연히도 교묘하게 명중하게 되면, 반도체를 흘러 다니던 전자를 날려 보낼 수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전자가 반도체를 이용해 어떤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그 반도체를 사용하는 컴퓨터의 결과에도 오류가 생길 것이다. 보통 이렇게 생긴 오류는 기계를 한번 껐다가 켜면 다시 새로운 전자가 새로 흘러가면서 저절로 문제가 회복되곤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부드러운 오류라는 뜻으로 소프트 에러(soft error)라고 부른다. 43)


우주 방사선의 성분인 작은 알갱이들을 살펴보면, 그중에는 무게가 전자와 양성자 사이의 어중간한 중간쯤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입자는 양성자 무게보다 작으므로 양성자나 중성자가 여러 개 모여서 생길 수는 없는 물질이었다. 그러나 전자보다는 무거우므로 분명 전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전자 여러 개가 뭉쳐 있다고 보기에는 음전기를 띤 전자 여러 개를 뭉쳐줄 만한 방법이 따로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런 관찰 결과는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전자도 양성자도 중성자도 아닌 무엇인가 다른 물질이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음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양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영도 아닌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그나마 그런 입자가 한두 가지였으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 말고, 무엇인가가 하나쯤 더 있다고 치고 적당히 넘어갔을 텐데,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입자들이 너무 많았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세 가지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우아한 꿈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46)


그러던 중에 1960년대 중반 무렵이 되자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나가면서 명성을 얻은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미국의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었다. 겔만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양성자, 중성자, 파이온, 델타 입자, 시그마 입자, 오메가 입자 등등의 다양한 입자들은 사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쿼크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와 아래 쿼크 하나를 합쳐서 만든 것이고, 중성자는 위 쿼크 하나와 아래 쿼크 하나를 합쳐서 만든 것이다. 파이온은 위 쿼크 또는 아래 쿼크와 함께 거기에 더해 그 둘이 아닌 또 다른 세 번째 쿼크를 합치면 만들 수 있다. 그 세 번째 쿼크의 이름은 기묘 쿼크(strange quark)로 정해졌다. 이런 식으로 겔만의 입자 분류 기준 속에서 진정한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기본 재료가 되는 물질로 쿼크가 있다는 생각이 탄생했다. 지금까지도 전자나 쿼크보다 더 단순하고 작은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47)


• 광자 photon│빛의 재료이자 전자기력의 운반자


제임스 맥스웰(James Maxwell)에 따르면, 빛이란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엮여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물결치듯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맥스웰의 이론을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해 보자면 빛은 전기장(electric field)과 자기장(magnetic field)이 서로 엮여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허공을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빛을 다른 말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라고도 하고, 줄여서 전자파라고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전자기파만을 빛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그런데 빛 중에는 자외선이나 적외선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도 많으며 그렇게 보면 전자기파나 전자파나 빛은 다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리고 빛을 이루고 있는 전기와 자기의 힘이 세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정도가 얼마인지를 따지는 말이 바로 주파수다. 만일 어떤 빛이 80헤르츠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고 하면, 그 빛은 1초에 80번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세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빛이라는 뜻이다. 50-1)


흑체 복사(black body radiation) 문제란 성질이 아주 단순하다고 가정한 물체를 대상으로 온도와 빛의 관계를 풀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흑체 복사에서 온도에 따라 빛이 나오는 정도를 계산해 보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높은 주파수를 띤 빛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결론이 나왔다.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의 빛인 자외선이 막대한 양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 시대 과학자들의 계산 결과였다. 만약 현실이 그대로 벌어졌다면, 사람이 높은 온도로 철을 달굴 때마다 거기서 강력한 자외선이나 X선이 마구 쏟아져서 그 빛을 맞고 모두 피부가 상하고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구식 전등 역시 온도를 높여 가며 빛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었으므로 옛 과학자들의 계산대로라면 전등불의 전등만 켜도 거기서 엄청난 양의 자외선과 X선이 쏟아져 주변을 파괴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오류를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고들 불렀다. 52)


하지만 1900년, 플랑크는 놀라운 방법으로 자외선 파탄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빛이 세지고 약해지는 정도에 일정한 단계가 있다는 아주 이상한 생각을 계산 방법에 끼워 넣었다. 그 말은 빛의 양을 따질 때 어떤 최소의 단위가 있어서 빛 한 개, 빛 두 개라고 빛을 셀 수가 있다고 치고 계산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치고 계산해야만 뜨거운 물체가 빛을 내뿜을 때 어떤 색깔의 빛이 나오는지를 더 정확히 예상할 수 있었다. 플랑크는 이 이론의 특징이 어떤 양(quantity)을 작은 단위의 조각으로 단계별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 양의 작은 단위를 퀀텀(quantum) 곧 양자라고 불렀다. 그 덕택에 이 이론의 이름은 양자 이론(quantum theory)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양자 이론에 등장한 빛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빛 한 조각을 광자(photon)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빛과 빛을 이루고 있는 작은 조각인 광자가 과학자들이 생각한 첫 번째 양자 물질이고 퍼스트 퀀텀이다. 52-3)


플랑크는 정작 자신이 양자 이론을 개발해 놓고도 정말로 빛이 광자라는 작은 조각으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빛이 정말로 광자로 되어 있다는 듯한 증거는 계속해서 등장했다. 결국, 1920년대 중반이 되자 과학자들은 빛의 움직임과 빛이 지닌 힘을 계산하기 위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계산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작은 알갱이의 움직임을 나타내면서도 그 알갱이의 속력이나 위치를 계산할 때는 부드러운 물결의 움직임이나 소리의 높낮이 또는 물체의 떨림을 계산할 때 쓰던 방식을 가져 와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아주 특이한 계산 방법이었다. 이런 계산 방법을 파동 함수(wave function)를 다루는 파동 방정식(wave equation)이라고 한다. 파동 함수로 양자 이론을 풀이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에어빈 슈뢰딩거(Erwin Shrodinger)를 자주 꼽는다. 53-4)


• 글루온 gluon│원자력의 뿌리가 되는 강력의 운반자


우라늄이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원인을 살펴보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강력(strong force)이라는 힘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력의 간접 영향 때문이다. 가장 흔한 우라늄 원자 하나 속에는 그 중심의 핵 부분에 92개의 양성자와 146개의 중성자가 엉겨 붙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핵력이 세다고 해도, 238개 중에 총 92개나 되는 양성자들이 계속 같은 양전기끼리 서로 밀어내려는 전기의 힘을 내뿜는다면, 가끔은 그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쪼개져 떨어져 나올 수 있다. 이런 일이 정말로 생기면, 238개의 덩어리 중에서 일부가 떨어져 튕겨 나간다. 보통은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가 붙은 조그마한 조각이 튕겨 나온다. 그런 식으로 튀어나온 조각을 알파선(alpha ray)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방사선의 일종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렇게 알파선이 튀어나오는 현상을 알파 붕괴(alpha decay)라고 부른다. 이런 방사선은 C-14 같은 물질 속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내뿜는 방사선과는 성질이 매우 다르다. 61)


전기의 힘과 강력을 비교해 보면 그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전기에는 양전기와 음전기 두 가지가 있다. 그래서 양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끌어당긴다. 반대로 같은 양전기끼리 또는 음전기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이런 전기의 힘 덕택에 수많은 전기 현상이 일어나고 전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러 물질의 서로 다른 성질을 만들어 낸다. 한무영은 전기처럼 무엇인가 두 가지 다른 것이 힘을 만드는 현상뿐 아니라 무엇인가 세 가지 특성이 어울려 힘을 만들 수가 있다면 그런 힘은 강력과 같이 아주 복잡하고 특이한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냈다. 쿼크를 개발한 머리 겔만은 이 생각을 받아들여 그 세 가지 특성에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실제로 쿼크가 어떤 색깔로 보이느냐 하는 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색깔 이름을 딴 이런 쿼크의 성질을 그냥 색깔이라고 부르면 눈에 보이는 색깔과 헷갈릴 수도 있으므로 보통은 색전하(color charge)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65)


강력은 세 물체가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전하를 각기 한 가지씩 갖고 있을 때 그 세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붙이는 힘이라는 것이 한무영의 이론이었다. 이런 독특한 성질이 있다고 치고 계산 방법을 만들면 강력이 일으키는 여러 특이한 현상을 훨씬 잘 풀이할 수 있었다. 강력이 쿼크를 잡아당기는 힘은 해괴하게도 가까울 때는 힘이 약해지고 멀리 떨어질수록 힘이 더 세질 때가 있다. 이런 성질을 점근적 자유도(asymptotic freedom)라고 부른다. 또 쿼크는 항상 둘씩, 셋씩,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덩어리로만 발견될 뿐, 그 덩어리에서 쿼크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서 관찰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을 쿼크 속박(quark confinement)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전자나 광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는 상태가 기본이다. 광자 역시 광자 하나만 떨어져서 돌아다니는 일이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강력의 영향 때문에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서로 당기는 힘인 핵력도 탄생한다. 66)


머리 겔만은 한무영의 연구를 받아들여 쿼크와 강력을 계산하는 방법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그 계산 방법에 직접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강력 계산법은 색전하를 따지는 연구라고 해서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 QCD)이라고 불렀다. 양자색역학이라는 계산 방법의 전체적인 방식을 살펴보면 그 전체적인 흐름은 전기의 힘을 계산할 때 쓰는 양자전기역학과 비슷하다. 즉 두 물체 사이에 힘이 있을 때 힘의 운반자가 그 두 물체 사이를 오고 간다고 치고 그 때문에 힘이 나타난다고 보면서 그 힘에 대한 계산을 해보는 방식이다. 전기의 힘을 따질 때 물체 사이를 오고 가면서 전기의 힘의 운반자가 된 것은 광자였다. 마찬가지로 양자색역학에서는 쿼크끼리 서로 글루온(gluon)이라는 운반자를 주고받는다고 치고 계산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강력이라는 힘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아낸다. 이때에도 물결치는 듯한 현상을 따지는 방법인 양자 이론을 적용한 방법을 사용한다. 67)


• 맵시 쿼크 charmquark│지금의 과학을 완성해 준 물질


양자장 이론은 모든 물체에 대해 그 물체를 나타내는 양자장이라고 하는 어떤 장(field)이 온 세상에 퍼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의 움직임이 곧 물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나타낸다고 보고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양자장 이론에 따라 물결의 움직임을 막상 계산해 보려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 제대로 숫자를 계산할 수 없는 무한대가 자꾸 계산 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양자장 이론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무한대 문제가 나올 때는, 대충 안 풀리는 부분은 적당히 제쳐 놓고 넘어간 뒤에 나중에 몇 가지 숫자들을 끼워 맞춰서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을 숫자 몇 개로 바꿔치기하는 요령까지 개발해야 했다. 일종의 편법이다. 이 편법 계산 요령을 재규격화(renormalization)라고 부른다. 전자와 광자의 움직임과 힘에 대해 계산을 할 때 재규격화 방법을 개발해서 어쨌든, 무엇인가 답이 나올 수 있게 한 것은 리처드 파인먼 최대의 공적이었다. 72-4)


약력(weak force)은 물질의 근본을 바꿔 주는 역할을 하는 아주 기이한 힘이다. 그래서 약력은 강력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방사능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1970년대의 과학자들은 케이온이라는 물질이 약력 때문에 방사선을 내뿜는 현상을 연구하다가 무엇인가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렇게 연구한 결과를 흔히 김(GIM) 기작(mechanism)이라고 부른다. 김 기작을 연구하던 셸던 글래쇼(Sheldon Lee Glashow)는 김 기작을 좀 더 쉽고 간편하고 깨끗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머리 겔만과 한무영 등의 과학자들이 만든 쿼크에 대한 이론이 맞다고 해야 설명이 쉬워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그때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쿼크가 하나 더 있으면 말이 정말 더 잘 맞아 들 거라고 보았다. 이때 글래쇼는 그 새로운 쿼크를 맵시(charm) 쿼크라고 불렀다. 글래쇼는 그때까지 아무도 정말로 그런 게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 새로운 쿼크인 맵시 쿼크가 발견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75)


게일러드, 이휘소, 그리고 연구에 도움을 준 또 다른 과학자 조너선 로스너(Jonathan Rosner)가 함께 쓴 논문이 바로 제목도 기가 막힌 <Search for Charm>이다. 1974년 상반기에 이 논문의 원고가 나오고 불과 몇 달이 지난 1974년 11월에 정말로 맵시 쿼크를 품고 있는 물질이 발견되어 버렸다. 팅(Ting)과 릭터(Richter)라는 과학자가 각기 따로 발견했는데, 팅은 그 물질에 제이(J)라는 이름을 붙였고, 릭터는 그 물질에 사이(ps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과학계에서 말하는 11월 혁명이다. 혁명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인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큰 사건이기는 하다. 단지 맵시 쿼크라는 새로운 물질이 나타났다는 그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쿼크라는 것들로 세상의 보통 물체들 대부분이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 전체가 맞다는 아주 기막힌 증거를 발견한 사건이었다. 덕택에 지금까지도 양자장 이론은 모든 물질과 힘을 설명하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초 이론 역할을 하고 있다. 77-8)


• 뮤온 muon│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사선의 대표인 전자의 무거운 친척


뮤온은 1936년에 발견되었다. 그때는 과학자들이 온 세상은 모두 음전기를 띤 전자, 양전기를 띤 양성자, 전기가 없는 중성자라는 세 가지의 작디작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음, 양, 중성의 조화가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전자도 아니고 양성자도 아니고 중성자도 아닌 뮤온이 난데없이 발견되어 그 순박한 믿음을 깨뜨려 주었다. 뮤온의 무게는 대략 180론토그램 정도인데, 전자의 무게는 약 0.9론토그램이고, 양성자나 중성자의 무게는 1700론토그램 정도다. 그러니 뮤온의 무게는 전자와 양성자 둘 사이의 애매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전자가 뭉쳐서 뮤온이 된다는 식으로 상상을 해 보자니 너무나 이상하게도 뮤온이 갖고 있는 음전기의 세기는 전자가 갖고 있는 음전기의 세기와 정확히 같았다. 전자와 음전기의 정도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딱 맞춰 놓은 것처럼 전자의 음전기 세기보다 뮤온의 음전기 세기는 1%라도 더 세지도 더 약하지도 않게 똑같은 정도의 세기였다. 83-4)


뮤온은 보통 지구 하늘 높은 곳 즈음에서 생겨난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뮤온은 우주 방사선 중에서도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온 우주 방사선의 영향을 받아 지구의 하늘에서 새로 생겨난 2차 우주 방사선 또는 3차 우주 방사선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늘에서 생겨나 떨어지는 뮤온의 속력은 무척 빠르다.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날아가는 물체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뮤온은 빠르게 바닥으로 내려꽂힌다. 빠른 것은 시속 수천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속력으로 지상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나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뮤온은 다른 물체를 쉽게 꿰뚫고 통과한다. 뮤온은 같은 속력의 전자보다도 훨씬 더 물체를 잘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뮤온은 꼭 전자처럼 음전기를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물체 속에 들어갔다가 그 물질 속에 있는 전기를 띤 성분 때문에 이끌리거나 밀리다 보면 날아가는 방향이 휘거나 속력이 늦춰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85)


어떻게 보면 뮤온은 방사능을 띤 전자 같은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뮤온은 항상 뮤온 상태로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뮤온은 방사선을 내뿜고 흔한 전자로 변해 버린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전자와 뮤온을 한 묶음으로 묶고, 그 둘이 양성자와 중성자보다 가벼운 물질이라는 뜻으로 가볍다는 뜻의 그리스어를 변형한 말인 렙톤(lepton)이라는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한자어로 번역해 경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전자와 뮤온은 경입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다. 그에 비해 양성자, 중성자 같은 물질은 무겁다는 뜻의 그리스어를 변형하여 바리온(baryon)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역시 한자어로 반영해 중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중에 중입자로 분류했던 양성자, 중성자가 진정한 기본 입자가 아니고 쿼크 세 개의 조합으로 된 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요즘에는 쿼크 세 개가 조합된 물질을 중입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88)


• 타우온 tauon│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전자의 더욱 무거운 친척


1975년 연말 무렵 마틴 펄(Marin Perl) 연구팀이 찾아낸 물질은 대단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바로 방사선을 내뿜고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마틴 펄이 찾아낸 물질의 수명은 300펨토초가 되지 않았다. 1펨토초는 1000조 분의 1초를 말한다. 그러니까 그가 찾아낸 물질은 태어난 뒤 30조 분의 1초가 지나면 그 사이에 삶을 다 살고 썩어서(decay) 사라져 버리며 다른 물질로 변하는 그런 물질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물질에 대한 무엇인가 연구하고 살펴보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상대성 이론을 활용하면 한 가지 묘수가 생긴다. 만약 펄이 찾아낸 물질을 시간이 지연되는 세상에서 만들고 바깥 세상에서 이 물질을 관찰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이 물질 입장에서는 여전히 30조 분의 1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흘러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시간이 훨씬 빨리 흐른다. 반대로 말해 보면 그 물질의 세상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94)


다시 말해 관찰하려는 물질을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처럼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움직여서 시간 지연을 많이 일으키면 그 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난다. 그리고 기본 입자들에 대해 실험하는 곳에서도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굉장히 빠르게 물질이 움직이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조금 더 오래 세심히 살필 수 있다. 자주 벌어지는 현상 중에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뮤온을 맞게 되는 이유도 사실은 상대성 이론과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이다. 뮤온의 수명도 길지는 않다. 고작 2마이크로초, 그러니까 50만 분의 1초 정도다. 이 정도면 하늘 높은 곳에서 생긴 뮤온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 수명은 끝나버린다. 그런데 뮤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실제로는 상대성 이론에 따라 뮤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뮤온은 땅에 떨어질 때까지도 수명이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우리 머리 위로 뮤온이 떨어져 닿게 된다. 95)


상세한 분석을 거쳐 펄이 발견한 것은 결국 새로운 기본 입자로 판명되었다. 그 이름은 타우온(tauon)이다. 뮤온, 그리고 전자를 뜻하는 일렉트론(electron)과 같은 운율이 되도록 타우(tau)라는 말을 변형해 만든 말이다. 그래서 타우온 대신 그냥 짧게 타우(tau)라고만 부를 때도 있다. 타우 경입자 또는 타우 렙톤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질을 조사해 보니 타우온은 뮤온보다 무게는 훨씬 더 무거웠지만, 나머지 성질은 뮤온과 매우 비슷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뮤온과 성질이 비슷한 전자와 타우온의 성질도 비슷하다는 뜻이다. 뮤온이 그랬던 것처럼 타우온도 음전기를 띠고 있고, 그 음전기의 세기는 전자의 음전기 세기, 뮤온의 음전기 세기와 정확히 같다. 즉 전자, 뮤온, 타우온이 하나의 가문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마침 방사능을 따질 때에서는 어머니(mother)와 딸(daughter)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타우온이 방사선을 내뿜고 뮤온으로 변했다면, 흔히 타우온을 어머니 입자, 뮤온을 딸 입자라고 부른다. 95)


• W 보손 wboson│베타 붕괴 방사능 물질의 원인인 약력의 운반자


돌 속의 K-40, 유물 속의 C-14가 뿜어내는 방사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방사선의 성분이 전부 빠르게 튀어나오는 전자라는 것이다. 보통 방사능을 따질 때는 이렇게 나온 방사선을 베타선(β-Ray)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물질이 베타선 즉 전자를 내뿜으며 변화하는 현상을 베타 붕괴(beta decay)라고 부른다. 원자핵 속에 있는 중성자는 위 쿼크 하나와 아래 쿼크 두 개로 되어 있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와 아래 쿼크 하나로 되어 있다. 그러니 만약 중성자 속의 아래 쿼크 하나가 위 쿼크 하나로 바뀐다면 중성자는 양성자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길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 베타 붕괴다. 즉 무엇인가가 아래 쿼크 하나를 건드려서 위 쿼크로 바꿔 주는 현상이 일어나면 그 물질은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을 내뿜는다. 그렇게 아래 쿼크를 건드려 주는 힘이 무엇일까? 바로 그 힘을 우리는 약력(weak force)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약력이 원자 속을 건드리면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이 튀어나온다. 105-6)


보통 과학에서 말하는 가장 근원에 있는 힘들은 뭔가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힘이 많다. 그러나 약력은 다르다. 약력은 뭘 밀거나 당기는 힘으로 우리 눈에 그 위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약력은 그 대신 물질을 바꾸어 주는 일을 하면서 여러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도 물질을 이루는 가장 밑바탕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작디작은 그 알갱이를 바꾼다. 이렇게 보면 약력은 기본 입자를 다른 기본 입자로 변신시키는 힘이다. 핵융합 자체는 강력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그 전에 우선 양성자들이 아주 가깝게 달라붙어야 한다. 그때 약력이 필요하다. 약력이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꾸어 준다면 전기가 없는 중성자는 그저 강력만 받아서 철썩 달라붙을 것이다. 중성자의 접착제 같은 역할을 잘 해내게 될 것이다. 약력의 활약 덕택에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어서 접착제 같은 중성자가 많이 생기면 훨씬 쉽게 원자들이 달라붙고 핵융합을 잘 일으킬 수 있다. 106-7)


양자장 이론에서는 힘이 있으면 항상 그 힘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운반자가 있다. 약력도 마찬가지다. 특이하게도 약력의 운반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베타 붕괴 등의 현상을 일으키는 운반자를 W 보손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약력 때문에 베타 붕괴나 다른 방사능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계산할 때에는 물질 사이에 W 보손이 오고 가며 힘을 전달한다고 치고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계산하면 된다. 기본 입자 중에 보스 통계 방법으로 따져야 하는 물질을 보손(Boson)이라고 하고, 페르미 통계 방법으로 따져야 하는 물질을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기본 입자 중에 우리가 물체를 이루는 재료로 보고 있는 기본 입자들은 다들 페르미온이고, 물체 사이의 힘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운반자들은 보손이다. 그러므로 전자, 뮤온, 타우온, 각종 쿼크들이 페르미온이고 전기의 힘을 전달해 주는 광자, 강력의 힘을 전달해 주는 글루온 등이 보손이다. 107-8)


• Z 보손 zboson│전기를 띠지 않는 덜 눈에 뜨이는 약력의 운반자


원자는 크기가 작고 전자는 그 원자보다 더욱 작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원자나 전자도 마치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듯한 성질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원자, 전자 따위의 작은 물체가 뱅뱅 돌아가는 듯한 현상을 스핀(spin)이라고 부른다. 전자 말고도 뮤온, 쿼크, 타우온, 글루온, 광자 모두 이런 현상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관찰 결과 우젠슝의 연구팀은 Co-60이라는 코발트 원자에서 방사능 때문에 나오는 전자는 하나 같이 전부 왼쪽으로 도는 듯이 튀어 나온다는 기가 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전기 장치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면 보통 전자들은 힘을 어디서 어떻게 받았느냐에 따라서 오른손잡이(right handed) 입자가 되기도 하고 왼손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하게도 약력이 방사능 물질 속에서 베타 붕괴를 일으키며 전자를 튕겨 내서 날려 보낼 때는 마치 누가 일부러 왼쪽으로 전자를 돌리기라도 하는 듯이 왼손잡이 전자만 나온다. 113)


약력이 이 정도로 상식을 초월하는 괴이한 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그 힘이 언제, 어느 정도로 생기는지, 그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해 내려고 노력했다. 연구 결과로 얻은 결론은 힘을 전달하는 운반자가 실제로 혼자서 나타나게 된다면 무척 무거운 무게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약력을 전달하는 운반자를 발견한다면 그 무게는 매우 무거울 것이다. 결코 풀리지 않을 복잡한 문제의 마지막 고비를 넘도록 해 준 것은 한참 나중에 다시 한번 큰 화제가 되었던 물질인 힉스(Higgs) 입자(particle)였다. 그러니까 일단 약력 이론도 원래는 전자기력이나 강력처럼 무게가 없는 운반자가 힘을 전달해 주는 그런대로 평범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힉스 입자라는 또 다른 새로운 물질이 한번 추가로 더 관여하는 덕택에 약력을 나타내는 양자장이 그 영향을 받는다. 그 힉스 입자가 미치는 영향 덕분에 약력을 전달하는 운반자는 무거워진다. 이런 복합적인 이론이 마지막 결과물이었다. 114-5)


이렇게 개발된 약력 이론에는 또 다른 놀라운 특징도 있었다. 이들이 만든 이 복잡한 이론이 약력과 전자기력은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돌아볼수록 더욱 놀라운 결과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많이 다루어 보았고 가장 자주 일상생활 문제와 연관되는 힘인 전자기력이 반대로 힘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특이해 보이는 약력과 알고 보면 같은 힘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통합된 전약력 이론에 따르면, 전약력과 관련이 있는 힘을 전달하는 입자는 결국 총 네 가지로 나타나게 된다. 그 네 가지는 양전기를 띤 W 보손, 음전기를 띤 W 보손, Z 보손, 광자다. 이 중에서 친숙한 광자는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운반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남은 W 보손 두 가지와 Z 보손이 우리가 보통 약력이라고 부르는 힘의 운반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W 보손들은 베타 붕괴 등과 같이 그 전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약력을 전달하는 입자다. 117)


1970년대 유럽 과학자들이 만든 가가멜(Gargamelle)은 자동차쯤 되는 크기의 쇠로 된 단단한 통처럼 생겼다. 거기에 기체를 가득 채워 놓는데 아주 높은 압력으로 꾹꾹 눌러 담아 그 기체가 액체로 변할 정도로 꽉 채워 두되 아주 살짝만 건드리면 바로 다시 끓어 올라 기체가 될 정도로 눌러 담아 둔다. 만약 가가멜 속에 아주 작은 알갱이로 된 물질이 하나라도 날아들어 온다면 그것이 그 속의 액체를 살짝 건드릴 것이다. 그러면 그 충격으로 그 주변이 조금 끓어 오른다. 그러면 그 끓어 오른 자국이 아주 미세한 거품 비슷하게 변할 것이다. 그 거품은 사진으로 촬영하면 찍혀 나올 정도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거품 상자(bubble chamber)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가가멜은 거대한 거품 상자였다. 1970년대 초가 되어 가가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후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약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W 보손이 일으키는 현상과는 다른 특이한 반응을 찾아내려고 했다. 118-9)


그 당시에는 Z 보손이 전기를 띠고 있지 않은 중성이라고 하여 중성류(neutral current) 현상이라고 불렀다. 결국, 1973년 가가멜에서 세계 최초로 중성류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 말은 Z 보손이 정말로 세상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만화 속 가가멜은 작은 스머프를 못 잡았지만 가가멜 실험 장치는 그 작은 Z 보손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그것은 Z 보손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 많은 과학자들이 겹겹이 이론을 쌓아 만든 그 복합적인 약력 계산 방법 역시 정말로 사실과 부합한다는 뜻이었다. 1983년에는 아예 Z 보손이라는 운반자가 그 자체로 따로 튀어나와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명확히 찾아내기까지 했다. 역시 W 보손을 발견한 유럽 과학자들이 해낸 일이었다. 중성류 현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유령 같은 물질이라고 부르던 흐느끼듯이 우리 주위를 스쳐 지나다니는 물질의 움직임을  추적해서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유령 입자(ghost particle)를 사냥해야 했다. 119)


• 중성미자 neutrino│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느끼기 힘든 아주 흐릿한 물질


반물질(antimatter)은 단순히 희귀할 뿐만 아니라 쓸모도 많고 찾는 사람도 많은 물질이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 보면, 단 0.1그램의 반물질만 있어도 거기서 나오는 빛을 전기로 다 바꾸면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 가게, 공장 등등에서 온종일 사용하는 양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우주 전체에서 같은 무게의 재료를 사용해 그보다 더 강한 빛을 내뿜을 방법은 이론상 없다. 어떤 원료를 쓰든 간에 가장 강한 빛을 만들 방법은 반물질을 쓰는 것이다. 반물질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물질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빛은 더욱더 많아진다. 그렇게 빛을 뿜어내고 나면 반물질은 완전하고도 깨끗하게 사라진다. 그래서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불타고 나서 잿더미가 남는 것 같은 현상조차 없다. 연기나 냄새가 남는 일도 없다. 그저 빛 이외에 모든 것이 완벽히 없어져 버린다. 이렇게 반물질이 그 짝이 되는 보통 물질과 닿으면 빛을 내뿜으면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고 부른다. 121)


1930년대 과학자들은 베타 붕괴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인 전자가 튀어나올 때 과연 어느 정도로 맹렬히 튀어나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베타 붕괴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속력은 이상하게도 그때그때 달랐다. 아무 이유 없이 전자의 속력이 달라진다는 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law of energy conservation) 위반이다. 결국 파울리는 이 정체불명의 물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베타 붕괴 때 같이 튀어나오고 그 물질이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이상한 설명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물질이 뭔지 모르는 이유는 그 물질이 전기를 전혀 띠고 있지 않아 전자 장비로 발견하기가 어렵고 무게도 너무나 가볍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엔리코 페르미는 그런 특징을 강조해서 그 물질에 이름을 붙이려고 했고, 그래서 중성을 띤 입자를 뜻하는 말 뉴트론(neutron)을 이탈리아식으로 변형해 뉴트리노(neutrino)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것을 한자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말이 중성미자다. 123-4)


중성미자는 너무나 가볍고 전기도 전혀 띠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도 걸릴 것 없이 아무 물질이나 휙휙 통과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 튀어나온 중성미자는 벽을 통과해 그냥 바깥으로 쭉쭉 날아가고 그러다 산에 부딪히면 산도 그냥 통과해 날아간다. 벽이나 사람을 스르륵 통과하는 영화 속의 유령보다도 중성미자는 훨씬 더 물체를 잘 통과하는 유령 입자다. 중성미자가 어찌나 물체를 잘 통과하는지, 중성미자가 바닥 방향으로 날아가면 땅을 통과해 지구를 통째로 지나친 뒤 지구 반대편 땅 밖으로 튀어나와 다시 하늘로, 더 나아가 우주로 날아가는 일도 너무나 흔하다. 중성미자는 전기의 힘과도 상관이 없고 강력과도 상관없다. 그나마 중성미자는 약력과 반응한다. 그런데 약력은 오른쪽과 왼쪽을 따지는 이상한 성질이 있어서 왼손잡이 물질에만 힘을 준다. 그렇다면 보통 베타 붕괴에서 생겨 나는 중성미자는 그냥 중성미자가 아니라 중성미자의 반대인, 반물질 중성미자, 곧 반중성미자(antineutrino)일 것이다. 125)


• 뮤온 중성미자 muonneutrino│블랙홀 쪽에서 날아온 중성미자


중성미자는 아무 물질이나 잘 통과하면서 무게도 너무나 가벼워 굉장한 속력으로 우주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다. 그렇기에 중성미자는 별들 사이의 광막한 공간조차 건너다닐 수 있다. 중성미자 외에 이런 물질은 드물다. 별에서 나온 중성미자는 심지어 별빛보다도 더 쉽게 우주를 건너올 수 있다. 빛은 물체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반사되거나 휘어지며 방향이 바뀌는 일도 흔히 겪는다. 그러나 중성미자는 그런 일을 거의 겪지 않고 그냥 어지간한 물체면 다 통과해서 계속 날아간다.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측정한 과학자들은 측정이 거듭될수록 생각보다 적은 숫자의 중성미자가 감지된다는 결과를 얻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면밀한 검토 끝에 그저 기술 부족으로 단순히 중성미자를 놓친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 중성미자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있었다. 그 답은 중성미자가 한 가지가 아니며 여러 가지이고 서로 간에 변화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134-5)


그래서 전자와 비슷하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질로 뮤온, 타우온이 있듯이, 중성미자도 비슷하게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었다. 중성미자가 날아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자꾸 바뀌는 모습은 언뜻 진자가 왔다 갔다 변화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 현상을 학계에서는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중성미자 진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이 많고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꺼림칙한 대목이 많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중성미자가 자꾸 변신하느냐에 대해서도 모두가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산뜻한 설명은 지금도 없다. 예를 들어, 중성미자가 세 가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 그때마다 그 무게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쉽게 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아직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 각각의 무게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136-7) 


• 타우온 중성미자 tauonneutrino│예전 한때 암흑물질의 후보


루빈과 루빈의 동료인 켄트 포드(Kent Ford)가 정리한 결과에 따르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은하의 가장자리 부분이 돌아가는 속력이 이상하게 너무 빨라 보였다. 꼭 무슨 알 수 없는 무게가 더 실려 있는 듯한 모습으로 은하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은 세상에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암흑물질은 단지 색깔이 없는 물질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외선, 전파, 레이더를 이용한 관찰 등등 모든 빛, 전기, 자기의 힘과 관련된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은 암흑물질은 만질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암흑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란 더욱 어렵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암흑물질의 양을 추산해 보니 그 양이 오히려 보통 물질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주의 물질 중 85%는 정체불명의 암흑물질이다. 그게 무엇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141-2)


중성미자는 모든 물체를 아주 잘 통과해 지나간다. 그리고 빛, 전기와는 반응하지 않고 약력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중성미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으며 감지하기가 어렵다. 그 말은 중성미자의 양이 굉장히 많고 무게도 무거워서 우주 곳곳에 가득 차 있어도 잘 감지는 안 될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 중성미자의 양이 많으면 암흑물질의 묵직한 무게를 충분히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타우온은 전자에 비해 3,500배나 무거운 물질이다. 그렇다면 타우온 중성미자가 의외로 좀 무게가 많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는 타우온 중성미자 역시 무게가 별로 무겁지는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에서 나온 결론이다. 지금도 중성미자를 연구해서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있다. 예를 들어 (심지어 약력에도 반응하지 않는) 비활성 중성미자(sterile neutrino)라고 하는 새로운 중성미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144-5)


• 꼭대기 쿼크 topquark│가장 무겁고 불안해서 관찰해볼 만한 물질


양자 이론에서는 결과가 처음부터 과거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확인하는 순간 결정된다고 봐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리고 그 문제가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바로 ‘양자 얽힘’이라는 상황이다. 두 개의 경우의 수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과학에서는 얽힘(entanglement) 상태라고 한다. 1론토그램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패를 나눠 가진 두 명의 도박꾼이 그 패를 들춰보지도 않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도 않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온다고 생각해보자. 양자 이론에서는 이런 경우, 그 패를 어느 한 사람이 들춰보기 전까지는 누가 승리인지 패배인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결정된 일은 없다는 것이 양자 이론의 계산 방식이다. 이것을 양자 이론에서는 중첩(superposition)이 있었다가 중첩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즉 승리 패와 패배 패, 한쪽이라고 말할 수 없는 중첩된 상태에 있다가 확인해 보는 순간 중첩이 사라지고 승리 패로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150-1)


그런데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기묘함은 따로 있다. 만약 패를 들춰 보는 순간에 승리와 패배가 결정된다면 내가 승리 패를 뽑은 순간, 상대방 패는 패배 패가 되도록 무엇인가가 상대방 패를 동시에 같이 결정해 주어야 한다. 내가 승리 패인 것을 확인했는데, 상대방도 패를 들춰 봤더니 역시 승리 패라고 나와서는 안 된다. 내가 승리 패인 것을 확인한 순간, 상대방 패는 패배 패가 나와야만 한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나는 승리 패, 상대방은 패배 패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승리와 패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양자 이론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런 것은 중첩 상태가 아니다. 내 패가 승리냐 패배냐 하는 문제는 내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관측할 때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 양자 이론의 중첩이다. 이 문제를 논문으로 써서 지적한 과학자들의 이름 약자를 따서 이것을 흔히 EPR 역설(EPR Paradox)라고 부른다. 151-2)


EPR 역설에서는 빛보다 빠른 무엇인가가 있을 수 없다는 상대성 이론의 위반부터가 당장 큰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상대방의 패를 정해 준단 말인가? 그것도 빛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가 아니라 무한히 빠른 속도로 즉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예로부터 수많은 과학자가 뼈저린 껄끄러움을 느꼈다는 양자 얽힘 문제다. 명확히 관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양자 얽힘은 여러 물질이 다양한 반응을 일으킬 때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승리 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패를 나누어 가지는 때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현상이라고 볼 만도 하다. 이런 일은 시간 여행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일이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바꾸는 것 같기도 하다. 152)


꼭대기 쿼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본 입자 중에서 가장 무겁고 덩치가 큰 물질이다. 꼭대기 쿼크의 무게는 하나에 30만 론토그램 정도다. 전자 하나 무게와 비교해 보면 꼭대기 쿼크는 35만 배나 무겁다. 쿼크들 대부분은 1970년대에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꼭대기 쿼크는 너무나 무겁고 찾기 어려워서 1995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발견된 거대한 꼭대기 쿼크에서도 양자 얽힘 현상은 어김없이 잘 관찰되었다. 꼭대기 쿼크가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나타나자마자 대단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바로 방사선을 내뿜으며 다른 물질로 변화해버리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꼭대기 쿼크의 수명은 대략 1조 분의 1초를 다시 2조 등분한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꼭대기 쿼크는 다른 물질들과 잡다하게 들러붙거나 반응하는 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 덕택에 꼭대기 쿼크를 잘 관찰하면, 쿼크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도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156-7)


• 바닥 쿼크 bottomquark│대형 입자 가속기를 만들어 자주 살펴보던 물질


LHC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약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장치가 하는 일은 지상에서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아주 작은 물질을 이런 우주 방사선 같이 빠르게 날아가도록 쏘는 것이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는 말에서 강입자는 하드론(hadron)을 번역한 단어로, 쿼크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물질을 말한다. 우주 방사선 중에 흔히 잘 감지되는 것도 양성자이고 양성자는 쿼크 세 개가 붙어 있는 것이므로 역시 강입자라고 할 수 있다. 보통 LHC 같은 장비를 입자 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입자 가속기는 전기를 띤 아주 작은 물질 알갱이를 전기의 힘과 자력을 이용해 빠르게 날려 주는 장치다. 사상 최대의 입자 가속기인 CERN의 LHC 역시 바로 이런 원리로 동작한다. 그래서 LHC에서는 양전기를 띠고 있는 양성자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고 그 양성자가 날아가도록 가능한 한 강한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 160, 162) 


바닥 쿼크의 발견은 1970년대 중반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센터(SLAC, 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에서 타우온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얻은 성과였다. 그러니까 전자와 거의 같은 물질로 전자보다 좀 더 무거운 뮤온이 있고 그보다 더 무거운 타우온이 있어서 전자-뮤온-타우온 세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쿼크들 중에서도 아래 쿼크가 있고 그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무거운 기묘 쿼크가 있고 그보다 더 무거운 바닥 쿼크가 발견되어, 아래 쿼크-기묘 쿼크-바닥 쿼크 세 가지가 있다는 결과였다. 딱딱 짝이 맞았다. 박자가 들어맞는 것 같은 3단계 구성이 두 벌  관찰 되었다. 타우온에 이어 바닥 쿼크가 발견된 것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이 대체로 세 벌씩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아주 좋은 정황 증거였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3개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중에 추가로 관찰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귀가 딱 들어맞게 되었다. 166)


• 힉스 입자 higgs│기본 입자들이 무게를 갖게 해 주는 것


# 현재까지 밝혀낸 우주의 재료

1. 4가지 물질 재료 : 음전기 쿼크, 양전기 쿼크, 음전기 경입자, 전기를 띠지 않는 경입자

2. 4가지 물질재료를 구성하는 3가지 기본입자 : 음전기 쿼크(아래 쿼크, 기묘 쿼크, 바닥 쿼크), 양전기 쿼크(위 쿼크, 맵시 쿼크, 꼭대기 쿼크), 음전기 경입자(전자, 뮤온, 타우온), 전기를 띠지 않는 경입자(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

3. 힘의 운반자 역할을 하는 4가지 기본입자 : 광자, 글루온, W 보손, Z 보손


바로 이 12가지 물질 재료 기본 입자들과 4가지 힘 운반자 기본 입자들이 어떻게 서로 반응하는지를 따져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현대 과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이라고 부른다. 과학에서는 우주의 모든 일을 일으키는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네 가지 힘밖에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력은 지금의 표준 모형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대상이다. 이래서야 표준 모형이 우주 모든 물질을 다루는 표준 이론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중력을 계산할 때 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방법에 양자 이론을 적용해서 풀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자기력, 강력, 약력, 나머지 세 가지 힘은 모두 양자 이론에 바탕을 두고 계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양자 이론으로 풀이해 보려는 시도는 도전이 시작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깨끗한 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171-2)


전자기력의 운반자가 광자이고 강력의 운반자가 글루온이듯이 중력을 전달하는 운반자 역할을 하는 기본 입자에 중력자 혹은 그래비톤(graviton)라는 이름을 붙여 놓기는 했다. 중력자가 중력의 운반자라고 보고 양자장 이론을 개발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중력자를 발견한 사람도 없고 중력자에 대해 명확히 확인된 사실도 없다. 그렇기에 다른 힘과는 달리 중력이 얼마나 센지, 약한지를 계산해 보고 싶을 때에는 양자 이론으로 만든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식을 쓸 수가 없다. 중력의 운반자가 오고 가는 모습을 물결과 떨림, 소리를 나타내는 기술을 이용하여 계산하는 그 우아하고도 절묘한 방식을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상대성 이론의 내용 중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만 하더라도 양자 이론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자재로 결합되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중력을 계산할 때 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은 양자 이론으로 풀이가 되지 않는다. 172)


힉스 입자는 표준 모형에 나오는 다른 물질들이 무게를 갖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힉스 입자가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질의 재료들이 무게를 갖지 못하여 빛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힉스 입자를 나타낼 수 있는 힉스장(Higgs field)이라고 하는 억겁의 바다를 채운 바닷물 비슷한 것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다. 양자장 이론에서 말하는 다른 기본 입자들의 양자장과도 비슷하다. 만약 힉스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물질이 있다면 그럴수록 그 물질은 무거운 무게를 갖게 된다. 반대로 힉스장의 영향을 약하게 받는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은 가벼워진다. 즉 질량이 작게 나타난다. 만약 힉스장이 저 혼자 소용돌이치고 휘몰아치면서 어느 위치에 특히 강한 모습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물질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 그 물질이 관찰되면 그것이 바로 힉스 입자다. 175) 


2012년 7월 4일 드디어 CERN에서 공식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CERN의 과학자들은 125기가 일렉트론볼트 정도의 에너지를 갖는 새로운 입자가 있다는 증거를 찾았다면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새로 나타난 낯선 입자의 무게가 22만 5천 론토그램 정도 된다는 뜻이었다. 유럽 CERN의 LEP 실험에서 힉스 입자를 못 찾고 미국 페르미 연구소에서 힉스 입자를 못 찾았던 딱 그 사이의 무게였다. 여길 봐도 없고 저길 봐도 없었던 힉스 입자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후 수년간 이어진 후속 연구를 통해 세상 모든 물질의 재료인 열두 가지 기본 입자들은 그 움직임을 억겁의 바다에 일어나는 물결이나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법으로 계산할 수 있고 그 물질들을 움직이는 힘은 4가지 운반자를 주고받는다고 치고 계산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은 적어도 아직은 틀린 점이 없고 잘 들어맞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대체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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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급진의 20대 - K-포퓰리즘, 가장 위태로운 세대의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김내훈 지음 / 서해문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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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대 현상, 렌즈를 바꾸자


이 책은 ‘20대 현상’이란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 그 해답을 찾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한다. 기존의 담론은 공론장에 새롭게 등장한 의제들 — 페미니즘 및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 에 20대 남성들이 보이는 일련의 반동을 ‘이대남 현상’으로 규정한다. 미디어와 정치권은 20대 남성의 돌출된 경향을 뚜렷한 근거 없이 20대 전반의 것으로 일반화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젠더갈등에 편승하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인다. 특별히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페미니즘을 제외한 정부·여당발 의제에서, 20대 여성들의 입장과 태도가 남성들과 크게 다르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20대 현상’에서 젠더갈등-차이를 사고하려 할 때 발생하는 혼란은 ‘이대남 현상’의 렌즈로 20대의 보편적 여론을 검토하는 한 피할 수 없다. ‘20대 현상’을 먼저 경유해 ‘이대남 현상’을 사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20대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렌즈는 무엇일까?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12)


1. 만들어진 세대 ? 20년간의 롤러코스터


뇌는 인간이 보는 것을 능동적 추론으로 다시 구성해낸다. 요컨대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난다. 촉각, 청각, 후각도 마찬가지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광경, 소리, 냄새)은 직접 경험이 아니라 캄캄한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전기화학적 연극이다. (…) 다양한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비교하고 패턴을 감지함으로써 뇌는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최선의 추측을 한다.” 여기서 ‘최선의 추측’ 메커니즘이 바로 가추법적abduction 추론이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지각하는 간단한 행위에도 다분히 능동적인 주관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결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사물을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텅 빈 공간이지만 우리는 눈에 비치는 사물이 딱딱하고 고정된 물체라고 믿는다. 요컨대 우리가 사물을 사물로 보는 것은 착시나 환각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이러한 환각 속에 산다. 17)


공정을 지선至善으로 삼는 것도 아닌데 90년대생들이 그토록 공정을 문제 삼는 까닭은 무엇일까? 임명묵은 90년대생들이 말하는 공정을 정서적인 것, 느낌의 문제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90년대생들이 말하는 공정이란 ‘공정하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은 일종의 해열제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불안감을 경감해주는 것이다. 현재는 노력하면 보상이 따라오고, 잘살 수 있다는 신화가 깨진 상태다. 남은 것은 덜 노력한 이에 대한 응징이다.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응분의 푸대접이 가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는 게 90년대생 사이의 암묵적 합의다. 이들이 보기에 고용에서의 각종 할당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화는 주관적 개입으로 시스템을 교란하는 것이며, 합의와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다. 90년대생들이 탈-가치화함으로써, 정작 90년대생들의 지향점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결집은 반反, 안티anti의 네트워크로만 이루어진다. 24-5)


〈KBS 세대인식 집중조사〉(2021)에서 중요하게 검토할 지점은 청년층은 상위 계층을 자임할수록 보수성이 뚜렷해진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계층으로 인식한 청년 남성에서 다른 집단들보다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경향이 가장 높다는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들이 특별히 ‘착해서’ 그렇다기보다 서로 도울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위 계층일수록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돕는 행위, 혹은 그러한 의향을 밝히는 것을 위선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생각에,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노력을 덜한 사람들이다. 그에 합당한 응징을 받는 것이며, 이에 온정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시스템의 교란이자 위선이다. 조사에 응한 청년 남성들은 일말의 공동체적 가치도 부정한다는 눈총을 받을지언정 위선에만큼은 명확하게 거부 표시를 한 것이다. ‘안티의 네트워크’로 결집한 청년 남성 집단이 반-위선의 네트워크도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7)


2. 혐오 ? 우울과 불안의 그릇된 방어기제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뇌의 해석이자 추론 결과다. 코나투스conatus(자기보존 능력)가 계속해서 감소하는 상태를, 뇌는 으레 우울감이라고 추론한다(질병으로서 우울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불안감은 자신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코나투스를 감소시키는)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채로 그 상태가 지속될 때 생성된다. 이런 우울과 불안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 경멸이다. 자신보다 형편이 나쁜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위안하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발현된 경멸은 깎아내릴 대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는 나의 코나투스를 감소시키는 외부 존재를 자의적으로 점찍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혐오다. 그런데 (방어기제로써의) 경멸은 대개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겨냥한다. 문제를 의인화하는 대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내부 모델에 견고히 자리 잡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 뒤부터는 깨지기 힘든 고정관념과 편견이 타인을 대하는 판단 근거가 된다. 33)


혐오의 견고한 내부 모델을 구축한 사람은 편견을 반증하는 새로운 지각정보가 입력되어도 좀처럼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다. 반례를 한 트럭으로 접해도 예외적 경우로 치부하지, 편견을 반성하는 이는 드물다.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다양성 교육을 진행하는 데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혐오에 빠진 사람에게 그 불합리함을 증명하는 온갖 데이터는 부질없는 처방이다. 난민이나 이주민을 혐오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범죄 통계가 거짓이라고 설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떻게든 혐오할 이유를 다시 찾고 만들게 되어 있다. 교육의 가치와 효용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훈계와 계몽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혐오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신경증 환자에게 곧이곧대로 ‘당신의 행동은 그릇된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언행을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 증세가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34)


3. 포퓰리즘 ? ‘그들’과 ‘우리’의 항시적 투쟁


포퓰리즘은 어떤 사상 체계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정치운동이나 정치체제가 아니다. “보통 이들을 포괄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단순히 합쳐놓은 것도 아니다.” 정치학자 폴 태가트Paul Taggart는 포퓰리즘의 근본적 특징으로 유동성을 꼽는다. 실체라고 부를 내용이 결여되어 있기에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등에 붙어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인민주의, 대중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풀이하면 인민을 중심으로, 인민을 위하고 인민에게 소구하는 사상·체제·어젠다·메시지를 망라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스트는 단 하나의 가치를 정해두고 그에 걸맞지 않은 이는 인민이 아닌 존재로 밀어낸다. 인민이 아닌 존재는 부패한 엘리트 집단일 수도, 하층민일 수도, 이주민일 수도 있다. 단 하나의 공동선이 존재하고 그걸 표방하는 자신들만이 인민의 유일한 대표라고 주장하는 포퓰리스트들은 자연히 다른 세력을 악마화한다. 자신의 당내에서조차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40-1)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혹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적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포퓰리즘’이라는 명제는 포퓰리즘이 항상 민주주의와 함께 있다는 논의에서 출발한다. 정치학자 벤저민 아르디티Benjamin Arditi는 프로이트의 증상symptom 개념을 빌려와 포퓰리즘-민주주의 관계를 증상-자아 관계와 같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완전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결여하고,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는 한, 증상은 자아에 내속해 있으면서 이따금 불안과 소요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포퓰리즘도 민주주의에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내재하면서 이따금 증상으로 나타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는 정치인과 관료 등에 위임되어 있다. 그런데 인민은 대표를 직접 뽑는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이에 개입한다. 이렇듯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는 비전문가·대중의 개입이 일으키는 소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항상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42-3)


4.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 포퓰리즘의 정치경제적 계기


자본주의가 발전한 20세기 이후 프티 부르주아는 신·구-중간계급(각각 경영관리직·전문기술직 등과 자영농)으로 나뉜다. 노동자라 할지라도 관리직이나 전문기술직에 종사할 경우 신-중간계급으로 분류된다. 정치철학자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 비생산적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모두 중간계급으로 묶은 바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구-중간계급이 크게 감소하고 노동계급이 증가했다. 문제는 노동계급의 숫자보다는 신-중간계급의 가파른 증가에 있다. 풀란차스의 계급 범주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계급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노동자들은 실은 신-중간계급일 수 있다. 계급정치에서 이들의 위상은 논쟁의 대상이다. 이념적으로 이들은 모순되는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단일 대오로의 결집이 쉽지 않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정체성을 사회적 적대의 기본 단위로 상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오늘날 한국의 계급구조는 이런 입장의 현실적 근거가 된다. 55-7)


5. 기만과 위선의 정치 ? 포퓰리즘의 문화정치적 계기


서구 선진국의 기득권 엘리트와 리버럴 세력은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 PC와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이를 ‘깨어 있는 자본주의’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휘두르며 희화화한다.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환멸이 뿌려진다.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국의 청년들이 PC와 정체성 정치에 강한 반감을 갖게 된 것은 서구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리버럴의 위선과 자가당착이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주요 창구 중 하나는 도를 넘는 ‘관종’ 행각을 벌이고 있는 ‘사이버 렉카’다. 이들의 목적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알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과거에 내놓은 자유주의적 메시지와 그에 어긋나는 행실을 가져다 놓고 ‘내로남불’이라며 조롱하는 것이다. 사이버 렉카 콘텐츠의 소비자들은 PC와 정체성 정치 등 자유주의적 의제와 메시지에 막연한 반감을 가지며, 점차 ‘진보=위선’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각인하게 된다. 66-7)


6. 20대의 탈-정치적 정치 ? 응징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오늘날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10여 년 전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이른바 ‘적극적 무관심’인데, 바꿔 말하면 정치에 대한 강한 환멸과 불신이다. 과거 20대의 정치 무관심이 시큰둥하고 별생각 없는, 말 그대로의 무관심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한층 공격적인 정치혐오에 가깝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제도권 정치(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의 태도가 합리적이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참여자 중 한 사람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후로 정치에 관심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경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느냐에만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히 정치 문제와 개인의 경제적 이해를 분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체의 의사결정체로서 정치에 대한 환멸의 적극적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함께 잘사는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정치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는 공공성의 붕괴와 각자도생의 문제로 이어진다. 73)


7. 정치 불균형과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 ? 자유주의에서 극우까지의 세계


한국의 청년들 대다수는 한국의 양대 정당을 크게 다를 바 없는 집단이라고 본다. 동시에 현재 정부·여당이 극단적 좌편향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가 ‘거기서 거기’라면서도 한쪽은 지나친 좌편향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러한 비일관성은 협소해진 사회·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진보정치의 우경화가 가져온 착시다. 말하자면 청년세대에게는 보수가 중도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보통 한국인’의 정치적 상상력은 자유주의-권위적 보수주의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익 포퓰리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목격된다. 특히 현재 20대, 청년세대는 신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정치적 상상력을 넓힐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 북한 문제와 레드 콤플렉스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이 겹치며 자유주의에서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나아가는 발상은 극단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79-80)


뚜렷한 지지 정당이 없는, 즉 당장이라면 어느 당에 투표하겠지만 인물과 공약을 보고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이들의 선택은 결국 싫어하는 정당의 후보를 떨어뜨리는 투표로 귀결된다. 이렇듯 특정 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부정적 투표’ 혹은 ‘응징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부동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중도층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추정컨대 여론조사에서 특정 정당지지자임을 밝힌 20대의 상당수는 ‘응징 투표’의 일환으로 지지 정당을 그때그때 바꿀 가능성이 크다. 증가하는 부동층은 정치 무관심의 산물이며,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 혐오의 적극적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 현안을 인터넷으로만 접하는 부동층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극적 기사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헤드라인이 말해주지 않는 맥락과 사정을 능동적으로 살피는 경우는 드물며, 그러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정치 무관심은 손쉽게 응징 투표로 이어지고, 그렇게 교체된 정권에서 또다시 실망과 응징이 반복된다. 82-3)


8. 진짜 분노를 가리는 학습된 분노 ? 사유의 외주화


디지털 큐레이션이란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이슈들을 흥미로운 것 위주로 선별하고 단숨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혹은 이해했다는 인상을 남겨주는 콘텐츠의 모음을 일컫는다. 청년들이 시사·정치 뉴스 창구로 이용하는 소셜미디어는 디지털 큐레이션 콘텐츠의 유통에 더없이 적합한 플랫폼이다. 디지털 큐레이션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와 중요하지 않은 문제, 본인에게 흥미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판단을 디지털 큐레이션 제작자에게 위탁하고 외주화한다. 이들은 (특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치 일반에 대한 피상적 인상을 쌓는다. 이 지점에서 그 어떤 ‘어그로’를 끌어서라도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와 그 제작자가 바로 사이버 렉카다.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그거라도 보면서 ‘소셜미디어로 시사를 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 큐레이션과 사이버 렉카의 손에서 연성화·단순화·예능화한 (더 나쁘게는) 왜곡·날조된 이슈의 편린을 접한다고 함이 더 정확할 것이다. 89-90)


분노와 경멸, 혐오는 정치와 무관하고 사이버 렉카 콘텐츠도 아닌 평범한 게시물을 통해서도 전이된다. 경로는 이렇다. 예컨대 유튜브에서 비디오 게임 콘텐츠를 찾아본 사람에게 해당 영상의 시청자들이 많이 본 또 다른 영상이 추천된다. 그런데 20대 남성 게이머들은 대개 정치적 올바름PC에 적대적이다. PC와 페미니즘의 영향에 따른 게임 캐릭터 재현과 서사 구조 변화를 자신들만의 문화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차례 접한 이는 의도치 않게 반-PC, 반-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로 유인되기 쉽다. 인터넷 여론이 청년세대의 보편적 생각이 아님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단 생산된 비하·혐오 콘텐츠는 특정 커뮤니티에만 고여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렉카 계정들이 퍼뜨리는 이러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분노 어린 댓글을 마주할수록, 천천히 그 분노를 자신의 것으로 학습하게 된다. 94)


9. 외부인의 생성 ? 공정한 차별주의자들


연구참여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전반을 공정성의 문제와 결부한다. 즉 대북 지원에 대한 이들의 반감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및 정규직화에 대해 갖는 반감과 같은 논리를 공유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체제에서 더 가혹해진 공안정치와 수탈은 한국사회의 공공성을 붕괴시켰다. 이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 문제가 되었다. 공공성이 실종된 사회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깜깜한 미래를 대비해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은 물론 연애와 결혼, 출산까지 미루거나 포기하며 노력했다. 그렇게 확보한 한줌의 상대적 우위는 어떤 식으로라도 보상받아 마땅하다. 이들에겐 그것이 ‘공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구참여자들은 여건이 못 되어 그런 노력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임금과 처우와 시선에서 응분의 푸대접을 받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까지가 본인들에게 주어진 ‘공정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98-9)


20대에게 ‘공정’은 정체성 정치를 평가할 때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남성 연구참여자 대다수는 양성 할당제 등의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기업이 지금까지 성별을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직원을 뽑아왔다고 믿고 있다. 설사 특정 성별을 선호하고 석연치 않은 가산점을 부여하는 식의 행태가 있더라도 그것은 입맛에 맞는 노동자를 채용하는 기업·고용주의 권한으로,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일 뿐 정치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할당제 때문에 더 자격 있는 남성 대신 여성 지원자가 뽑힌다고 상상하며 탈락한 남성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남성 연구참여자들이 보기에 ‘남성 특권’은 최소한 자신들이 사는 한국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역차별’론으로 나아간다. 자신들을 “선행 차별에 대한 일종의 차별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어떤 과도기에 놓인 피해자 혹은 희생자로 인식한다. “이미 피해자인데 또 피해를 감수하는 (…) 가중차별을 당한다는 정서인 것이다.” 99)


10. 미래는 중단되었다 ? 부모보다 ‘가난할’ 세대로 산다는 것


연구참여자들은 자동화와 경제인구 감소의 상관관계가 자본주의 경제의 순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기본소득 의제에 거부감을 보이던 일부 연구참여자들도, 보수우파 진영의 기본소득 프레임에는 반감이 훨씬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국가 규모를 줄임으로써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 즉 기본소득을 분배하되 국가의 사회복지 재정을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 사회보장을 개인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엄격한 과세로 재원을 마련해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파 프레임을 먼저 소개한 다음 좌파 프레임을 설명하자 연구참여자들은 후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여는 듯했다. 인간 노동력의 투입 없이 가치의 생산이 가능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자본의 정언명령의 유효기간이 임박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107-8)


11. 헤게모니 전쟁 ? 2016 촛불시위와 20대 현상


2016년 촛불시위의 지상목표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거창한 사회변혁이나 혁명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이 시민들에 의해 전복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그림이었고 실현 가능한 약속이었다. 그랬기에 제각기 다른 정치 성향을 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치지도 반목하지도 않고 양보를 거듭하면서 한 공간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반면 사회변혁은 추상적이다. 추상적 의제는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이 빈약한 대중을 결집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며,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프로그램을 내세웠더라면 촛불의 에너지를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보좌파 진영에게는 그것을 가능케 할 헤게모니 전략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이 촛불의 소명을 박근혜 퇴진으로 국한시켰고, 집권 이후 이른바 ‘촛불정신’을 배반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촛불은 처음부터 진보좌파의 것이 아니었다. 115)


20대 안에서 남녀는 물론이고 같은 성별끼리도 서로 다른 요구를 갖고 있지만 특정 국면마다 이들을 거대한 반-정권의 전선에 서게 만드는 헤게모니적 기표가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다.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에서 ‘공정’이란 과연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공정은 속이 빈 기표다. 따라서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도 공허하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김정희원이 날카롭게 지적하듯, 오늘날 공정이라는 말은 일종의 ‘무기가 되어weaponization’ 모든 사안에 관련한 건전한 토론과 숙의를 차단하고 ‘그들’의 배제와 ‘우리’의 투쟁을 성역화하는 데만 쓰인다. 알맹이가 없는 기표로서 공정은 그 자체로 말해주는 바가 없고 해석에 열려 있으며, 따라서 특정 정치 세력에게 전유되기 쉽다. 현재 이 기표는 냉전보수 세력이 전유한 상태로, 그들의 해석에 청년들이 스스로를 동기화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진보좌파 역시 이 기표를 전유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헤게모니 전략의 구상일 테다. 117)


에필로그: 과격화냐 급진화냐


아주 미세한 빗겨남, 이탈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사소하다. 그러나 그로 인한 마주침들은 상호 축적-연결되며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역사의 전 궤적에 걸쳐 변화를 불러온다. 나비효과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개개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최소한의 일탈이 사회를 근간부터 뒤흔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진적 마주침과 대중의 자연발생적 조직화의 조건은 일상의 사소한 데서부터 행하는 일탈, 즉 ‘일상의 변용’이다. 이것은 문화적 표피를 띠지만 사실은 금융화된 오늘날의 일상생활에서 등장할 수 있는 급진적 문화정치의 한 형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가 형성되는 삶의 구조가 바로 이러한 일상의 구조이며, 동시에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여태껏 익숙하게 적용해온 사고방식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의 해결이 불가능한 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어쩌면 유일한 저항의 방법일 수 있다. 120)


지금 이대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20대들은 그러나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한 탓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떠한 변화를 지향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20대들이 지금 정치와 사회를 대하는 멘털리티는 브레히트의 잠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올바르지만 오래된 것보다 나쁘더라도 새로운 것이 낫다. 그들의 상상력으로 그 새로움이란 정권교체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그 이상의 열망은 항상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 ‘과격화’를 긍정적인 ‘급진화’로 전환시킬 수는 없을까? 여러 번 강조했듯이 20대 현상의 표피는 헤게모니적 기표에 근간한 헤게모니적 접합의 산물이다. 헤게모니적 기표는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하고, 언론과 정치의 손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20대를 동원하는 기표는 보수 세력이 완전하게 전유하고 있다. 127)


20대 현상에 대한 헤게모니 전략의 구상은 20대들을 무엇으로 호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르주아지, 기득권 엘리트층을 제외한 나머지 보통 사람으로서 20대들이 공동으로 맞이하고 있고 곧 맞이할 문제, 공동으로 답해야 할 질문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 경제 행위를 압도하는 불가항력의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야 한다. 나는 지속되는 일자리 감소 및 그것을 가속화하는 자동화, 불가피한 계층 하강, 기후 변화, 자원 고갈 등 혼돈 속에서의 실존적 위협에 놓여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에 있는 이들을 호명하는 기표로 ‘위태로운 자들’을 제안한다. 이것을 단지 제도권 정치 차원에서 표심 공략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제도 정치 바깥으로부터 내부를 재구조화할 압력으로 작용케 해야 한다.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을 벗어나 맹점에 위치한 저 몸부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새로운 급진 정치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한, 지금 여기의 시나리오다.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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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 지음, 정기헌 옮김, 장석준 해제 / 원더박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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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신자유주의 내전의 전략들


신자유주의 내전의 특징은 첫째, 이 전쟁은 과두 정치 세력이 앞장서 벌이는 ‘총력전’이다. 이 전쟁은 사회적 권리 축소를 노린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외국인에게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을 박탈하고자 하고 망명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족적이며, 모든 저항과 비판을 억압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법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법적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강성 보수주의가 도덕 질서 수호를 내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공격할 때, 이 전쟁은 문화적이고 도덕적이다. 둘째, 이 전쟁에서 각각의 전략은 서로를 지지하고 상호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각 국가나 지역의 특수한 전략들이 범세계적인 단일 전략으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셋째, 이 전쟁은 패권주의 강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글로벌 질서’와 블록화한 국가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다. 두 정치체제 간, 두 경제 시스템 간의 대립도 아니다. 이 전쟁은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13)


글로벌 자본의 기치 아래 자본의 이익을 방어하고자 나선 각 국가들은 온갖 수단과 정동을 동원하여 평등과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와 기대를 외부 또는 내부의 적, 성가신 소수자들, 지배적인 정체성이나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집단들에 대한 적대로 유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글로벌 질서에 대한 반대는 그 질서의 주요 수혜자들에게 포획된다. 이 주장은 가족, 전통, 종교라는 보수적 가치의 장려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글로벌화한 엘리트에 대한 고발은 문화적 정체성의 해체라는 환상의 거대 서사에 덮여버린다. 이 ‘경제적 국민주의’의 목적은 자유 교역을 피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자국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국제 경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국가 주권에 힘을 실어주는 데 있다. 트럼프 개인을 넘어선 트럼프주의가 너무도 잘 보여주듯이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시장 질서 수호, 반민주주의 체제, 경영과 소비에만 국한된 ‘자유’ 개념, 서구의 문화적 가치 지배에 대한 긍정 등을 공유한다. 14)


신자유주의는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애초부터 정치적 기획자(Entrepreneurs politiques)인 이론가와 저술가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명료한 법과 원칙의 틀 속에서 경쟁에 기초한 자유 사회, 사법(私法)의 사회를 수립하려는 공동의 정치적 의지에서 발현했다. 또한, 이는 도덕, 전통, 종교에 기초하여 사회의 전면적인 개조 전략에 복무하는 주권국가에 의해 보호된다. 달리 말해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와 파시즘과 같은 대체로 ‘집산주의적(collectiviste)’이라고 간주된 정치적 기획들에 대항한 전략적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목표는 사회에 일련의 표준적인 기능을 부과하는 데 있다. 그중 모든 신자유주의자가 첫째로 꼽는 것은 개인-소비자의 주권 보장을 전제로 한 경쟁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전략적, 갈등적 특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출현 조건과 지속성,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17)


1장 칠레, 최초의 신자유주의 반혁명


칠레 헌법은 1818년에 제정된 이래 쿠데타 전까지 1833년과 1925년, 고작 두 차례 개정되었다. 마지막 개정 이후 반세기가 지난 뒤인 1980년 9월 11일(쿠데타가 일어난 지 7년째 되는 날), 국민투표로 1925년 헌법을 대신할 새 헌법이 제정되었고 현재까지 유효하다. 하이메 구스만이 독재 정권에서 임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헌 위원회와 함께 새로운 헌법안을 작성했다. 군사정권의 권력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스만은 카를 슈미트가 고안한 ‘제헌 권력(pouvoir constituant)’ 개념을 동원했다. 슈미트에 따르면, 실존적으로 주어진 의지에 의해 정초되고 국가의 존재 의의가 명시된 헌법만이 유효하다. 이를 1973년 칠레에 적용하면, 법률(loi)에 구속되지 않는 권력(legibus solutus)일 뿐만 아니라 법(droit)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권력(jure solutus)으로서 구성된 군사평의회는 신헌법을 제정할 자격을 얻는다. 시행령 제128호에 의해 인민의 제헌 권력이 군사정권으로 이양됐다. 25)


#  프랑스어의 loi가 공공기관에서 제정한 규칙과 표준, 즉 법률을 의미한다면, droit는 모든 규칙과 규범을 포괄한다. 따라서 맥락에 따라 권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근본 원칙이 있으니, 바로 보충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이다. 이 원칙은 19세기에 고안되고 20세기 코포라티즘(corporatisme)에 의해 전용된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유래되었다. 이 교리는 개인들을 통합하여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자연적 공동체들 사이의 위계를 강조한다. 자연적인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현대 정치에 대항하여, 개인의 의지에서 시작해 사회 내 자연스러운 집단으로 여겨지는 가족, 동업조합, 지역, 교회, 군대, 나아가 국가와 같은 일련의 조직들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칠레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그들은 보충성의 원칙을 사회를 마비시키는 국가주의를 끝장내고 경제적 자유, 사적 소유, 시장을 지탱하는 근본인 개인의 자유를 방어하는 원칙으로 재해석한다. 이런 논리에 의해 기본 서비스가 민영화되고, 기본권(보건, 교육, 주택, 연금 등)이 사적 영역으로 이양되며,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 27)


칠레 신자유주의의 특성 중 신자유주의의 근본 논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구축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국가를 약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장의 규율 권력을 창조하고 보강하는 국가기관들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국가는 결코 ‘약한 국가’가 아니라 ‘행동주의적이고 유능한 국가’이다. 둘째,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시장 법칙에 의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경제의 ‘탈정치화’와 사법(私法)의 헌법화가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결합은 칠레의 신자유주의 실험에 대한 하이에크의 영향을 재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호세 피녜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호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정치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여기에서 “정치를 폐위시키자”라는 하이에크의 슬로건이 곧바로 연상된다. 30)


2장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항상 ‘대중 민주주의’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치적 실천으로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수단들에 대한 테스트와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민주주의 혐오를 이론과 통치의 차원에서 면밀히 들여다보면, 경제 질서 수호를 위해 공공연하게 정당화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독트린은 인민주권 논리가 통제되지 않을 때 ‘총체적 국가’의 위험이 도사린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제도적 제한의 이론을 자처한다.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총체적 국가는 자신이 의존하는 이익집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영역으로 개입의 범위를 확대한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에는 총체적 국가로 나아갈 위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나 인민들의 결집이 시장의 법칙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여겨지면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실질적인 전쟁 이데올로기로서 제시된다. 35)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 개념을 단지 최상의 지도자 선출 과정으로 보며, 인민주권의 도그마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해로운 의회 주권’ 실현을 배제한다. 지금까지 계속 언급한 인민주권은 실제로는 다수파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행사하게 되는데, 이들은 다수파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품행 규칙을 무시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주권은 법의 주권을 희생하고 수립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이에크가 선호한 엄격히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주장되는 가치들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실제적 성과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독단을 막고, 지도자 선택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개인적 자유’의 보호를 가능하게 해준다. 하이에크에게 ‘인민이 자유롭다’는 말은 ‘개인의 자유 개념을 하나의 인간 집단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심각한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36-7)


3장 강한 국가 예찬


강한 국가의 일반적인 목표는 무엇보다 정치가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선 부정(negative)의 임무들이 도출된다. 사회국가를 해체하고, 사회적 이익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 것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시장의 효과적인 기능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 한다. 국가와 경제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긍정(positive)의 임무도 있다. 시장의 올바른 기능을 보장하고 일탈을 제재하는 국가의 기능으로, 뤼스토프가 말한 ‘시장 경찰’의 임무이다. 이러한 개입주의는 특히 시장의 법적 규범화를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효과적인 시장은 오점 없는 작동을 위해 적절한 규범적 틀을 필요로 한다”라고 역설했다. ‘강한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 차이는 카를 슈미트의 표현에 따르면 ‘강도’의 차이다. 강한 국가의 한계는 인위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에 대한 적의 위협에 따라 비례적으로 결정된다. 44)


이렇게 현실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이에크는 ‘디마키(Demarchy)’라는 말로 정치 시스템을 정의하고자 했다. 하이에크는 공적 행동의 제한 원칙에 기초한 이 개념이 ‘지속적인 남용으로 오염된’ 민주주의 개념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마키’는 원칙적으로 오로지 일반 규칙만을 따르며 일시적인 다수파의 독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디마키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거나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모든 조처를 금지한다. 이소노미아(isonomia)는 단순히 ‘법 앞의 평등’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본래 의미는 ‘법에 의한 평등’이다. 즉, 모든 시민의 정치적 권리의 평등, 특히 평의회나 의회에서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런데 이를 ‘법 앞의 평등’으로 재해석하는 건 자발적으로 소득과 재산의 분배를 바로잡으려는 모든 시도를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이에크는 인민의 요구에 굴복한 정부로부터 시장의 자유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48-9)


4장 정치 헌법과 시장의 입헌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종종 주권이라는 개념 자체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주권자를 법 위에 두는 고전 전통과 달리 하이에크는 인민 다수 혹은 그들이 선출한 대표자들에게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시장의 근본법'에 손을 댈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가 사용한 표현은 ‘의회 주권’에 명백하게 맞서는 ‘법 주권’이다. 이 표현은 ‘지배(règne)’의 의미가 ‘절대적 지배권(empire)’ 혹은 ‘주권(souvenraineté)’으로 미끄러지면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동일시되었다. 헌법은 만들어지지만 법(droit)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 법은 상법과 형법을 포함하는 사법(私法)이다. 개인이 타인의 목표와의 비교나 결합 없이도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 법은 집단적 의지보다 우위에 있다. 경제 영역에서의 개인의 권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참조 대상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되며 법의 영역 밖으로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 이 권리들은 실정법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헌법화'되어야 한다. 57)


이 헌법은 실질적인 법률로 기능하기 위해 법률이 갖추어야 할 것을 형식적으로 정의하지만, ‘법의 내용을 고안하는 임무’는 입법자와 사법관 들에게 맡긴다. 핵심은 사법 규범으로서의 법률이 헌법에 선재(先在)한다는 것이다. 이 헌법은 “품행 규칙 체계의 선재를 전제로 하며, 그 체계에 지속적으로 집행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를 제공”할 뿐이다. 또한 헌법은 제헌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법률은 입법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법률은 ‘수용된 정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장기간 사용된’ 규범들로서 입법자에 의해 인정받고 승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권력 분립은 오직 입법자만이 법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입법자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적어도 ‘법률(loi)’이 입법 당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법(droit)을 뜻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모든 이론적 구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헌법적 법률은 헌법에 속하지 않는다. 61)


5장 신자유주의와 그 적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리프먼의 주장을 전용하여 사회주의와 파시즘 두 체제의 유사성을 자유주의 옹호 주장의 핵심으로 삼았다. ‘모든 당파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자유의 반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하이에크는 ‘파시즘과 나치즘의 부상은 이전 시대 사회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바로 그 경향에서 비롯된 결과였다’라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사회 조직 원칙으로서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한 측면이라면, 그 과정에서 국가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게 다른 한 측면이다. 하이에크는 계획과 경쟁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계획’이라는 개념이 ‘더 나은 운명을 가질 수 있었던 훌륭한 개념’이라면서 그것이 사회주의자 적들에게 넘어가버린 것을 한탄한다. 하이에크는 새로운 자유주의를, 사회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경쟁의 계획’으로 정의한다. 71)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사회적 정책의 발전을 무력화하는 제도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노동자 조직의 힘을 약화하고, 사회보험과 관련된 국가의 독점을 최대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자들이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박탈하려는 혁명적 목표를 포기한 후, 그보다는 덜 야심 차지만 자유경제에 여전히 위험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소득의 평등을 목적으로 한 ‘소득 재분배’가 그것이다. 초기 사회보험의 목적은 극빈층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최초의 의도가 점차 변질되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평등 정책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다. 이는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경쟁적 기업들이 제안하는 서비스를 개인이 구입하는 보험 시스템”으로 대체하게 할 주관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76-8)


6장 사회 진화의 신자유주의적 전략


바르바라 스티글러는 1937년 신자유주의 역사상 기념비적인 저서 『좋은 사회』를 집필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을 신자유주의 이념의 모태로 본다. 리프먼의 진화주의는 자유로운 경쟁에서 자발하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법적, 정치적 개입주의를 채택한다. 그가 보기에 ‘문화적 지체’는 정신 구조나 사고방식이 기술과 생산 조직에 비해 훨씬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새로움 앞에서 개인은 과거의 사고방식에 따라 반응한다. 이로 인해 폐쇄적인 공동체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집산주의가 바로 그 결과다. 그렇다면 인구의 상당수가 겪는 이 부적응을 어떻게 할 것이며, 새로운 틀에 어떻게 인류를 재적응시킬 것인가? 리프먼에 따르면 대혁명에 걸맞게 사회질서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재적응을 위한 매우 폭넓은 차원의 개입이 요구되는데, 그것을 정의하고 실현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대중에겐 이를 수행할 지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82-3)


신자유주의는 리프먼이 주장한 사회적, 경제적 현대화에 대한 명령으로 요약될 수 없으며, '복고주의적 유토피아'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빌헬름 뢰프케가 내세운 전통적 가치의 복원은 질서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정신적, 종교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 위기는 사회 재통합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 ‘사회정책’과 병행되지 않는 한 어떤 ‘경제정책’으로도 해소가 불가능하다. 현재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사회학적’이기 때문에 사회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들을 관통하는 고민은 ‘자연적’ 공동체(가족, 이웃, 마을)를 복구하고 개인들에게 안정적인 도덕적 기준을 보장해주는 정치를 통해 사회 해체의 영향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뢰프케에게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현대성과 세계적 경쟁에 대한 적응이라는 리프먼식 신자유주의와 반대로, 집산주의에 대한 효과적 방벽으로서 유기적 공동체에 개인을 재통합시키는 전략적 대안이었다. 83-4)


뢰프케와 달리, 하이에크에게 과거의 작은 공동체들로 회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전통의 기초 위에서’ 규범 체계가 진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전체 질서 형성에 기여할 때, 즉 규범 체계를 강화할 때만 혁신은 허락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에게 전통과 종교를 위해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배신이 아니며, 사회의 조용한 진화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가 보기에 복지국가의 필연적 결과인 사회적 평등주의와 도덕적 방임을 도입하고자 하는 합리주의적, 구성주의적 위협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종교다. 하이에크가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는 그 전쟁에서 이기려면 문명의 진화를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유토피아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영혼에서 사회주의라는 악마를 몰아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만 하다면, 그 유토피아의 본질이 종교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89-91)


7장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가짜 대안


신자유주의자들이 세우고자 한 국제 경제 질서는 특수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 집단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약탈을 자행하는, ‘총체적 국가’에 의한 경제의 정치화를 종식하는 것이었다. 뢰프케는 ‘경제적 국민주의’가 정치적 지배(imperium)와 경제적 경영(dominium)을 혼동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상적인 ‘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이 두 영역, 즉 국경으로 둘러싸인 국가와 국경 없는 경제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카를 슈미트는 1950년 출판한 『대지의 노모스』에서 19세기에 세계가 도미니움(dominium)의 영역과 일치하는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와, 임페리움(imperium)의 영역에 한정된 국민국가의 주권, 둘로 분리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는 여러 지역에서 주권의 ‘실체가 비워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슈미트의 열광적인 독자 뢰프케는 이러한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엄격한 분리야말로 세계 자유주의 경제 질서 실현의 목표라고 설명한다. 96)


신자유주의적 국제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싸움에서 유럽 문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주제를 둘러싸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금세 의견이 갈렸으며, 두 편으로 나뉘었다. (뢰프케 같은) ‘보편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은 유럽 통합에 반대했으며, ‘입헌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은 반대로 유럽 통합을 ‘경제 헌법’을 제정할 기회로 보았다. 1963년 하이에크는 도르트문트 상공회의소에서 한 연설에서 처음으로 일반 입법을 담당하는 의회(télothètes)와 사법의 공동 규칙을 담당하는 의회(nomothètes)로 구성된 양원제 구상을 제안한다. 이 계획에서 영감을 받은 폰 데어 그뢰벤은 유럽 조약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각국 정부의 보호주의적 혹은 분배주의적 정책을 금지하는 초국적 헌법이 될 수 있음을 이해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 정부의 행위와 국가의 공법(公法)을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사법(私法)이라는 일반 규칙에 종속시키기를 꿈꿨던 하이에크의 ‘법치주의’는 ‘유럽의 조약들’ 속에서 실현되었다. 98-9)


대처는 자유무역 보편주의를 유럽의 약탈적 관료주의가 이끄는 ‘인공적인 거대 국가’에 대립시킴으로써 전략적 차원에서 급진적 단절을 시도하였다. 그가 원한 건 대대적인 전환이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민주주의적 논리에 의해 언제라도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더 이상 관세장벽, 경제계획, 조세를 통한 재분배를 이뤄내는 곳이 아니다. 국가는 새로운 규제 위주의 글로벌리즘과 사회주의화하는 관료주의적 유럽에 대항하는 방벽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는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부대로, 다자간 의무나 ‘브뤼셀’이 강요하는 유사 국가적 규칙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처의 표현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국민주의는 수많은 국제기구와 조약들을 따르는 모든 규범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이런 식으로 대처는 새로운 경쟁주의적 국민주의의 길을 열었으며, 오늘날 많은 정부가 이를 계승하여 유럽연합을 '뒤흔들었다.' 102)


8장 가치 전쟁과 ‘인민’의 분열


전 세계 보수주의 우파들은 '60년대'의 유산을 쓸어버리기 위해 반-문화혁명을 전개했다. 이를 가장 명료한 형태로 구현한 ‘대안 우파(alt-right)’들은 차별에 대항하는 담론을 전유하여 뒤집음으로써 무슬림, 흑인, 페미니스트 등 ‘침입자들’이 다수의 사람들과 전통적 정체성에 가하는 ‘억압’을 고발한다. ‘자연에 대한 반항’과 다름없는 평등 이념에 의해 백인 문명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식의 종말론적 서사가 그 배경을 이룬다. 젠더와 인종의 사회적 구성 이론에 대항하여 이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성별 및 인종 간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기초한 ‘성 현실주의’와 ‘인종 현실주의’를 옹호하며 ‘새로운 반문화’를 주장한다. 웬디 브라운이 말했듯이 “이러한 분노는 인종차별 및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 및 이슬람 혐오를 할 ‘자유’, 그것을 금지하려고 하는 좌파의 ‘독재’를 거부할 ‘자유’의 형태를 취한다.” ‘자유’와 ‘권리’로 재정의된 그들의 혐오적 정체성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합법적 폭력 혹은 정당방위에 호소한다. 107-8)


가족을 중시하는 모습은 평등에 대한 요구에 그들이 보인 일반적인 반응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1960년대 시카고학파의 게리 베커가 발전시킨 인적 자본 이론에서는 훨씬 세속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미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이 이론은 아이의 교육에 대한 사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투자를 공공투자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은행 대출이 세금과 공공서비스를 통한 소득 재분배 논리의 대체물로서 나타나게 된다. 1981년 베커가 『가족경제학』에서 전개한 가족에 대한 인적 자본 이론의 적용은 복지국가 해체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반문화 좌파의 고유한 성 해방 요구를 비롯한 여러 요구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제 가족은 소외와 억압의 장소로 묘사되기는커녕 합리적인 부모가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인적 자본 축적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된다. 특히 자본축적의 논리에 따른 여성의 무상 재생산 노동이 이 논리의 핵심을 이룬다. 108-9)


9장 노동 일선에서


신경영(New management)이라 불리는 새로운 관리 방식은 ‘목표와 자기통제에 의한 매니지먼트’를 통해 개인들에게 총체적인 참여를 강요함으로써 경제적 성과를 최대화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다. 이 관리 방식은 하이에크와 미제스뿐 아니라 슘페터에게도 영향을 받은 피터 드러커가 1954년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다. 노동을 과학적으로 조직하여 관리자가 정한 규칙을 노동자에게 최대한 세심히 적용하는 게 테일러 모델이라면, 신경영은 노동자의 지성, 창조성, 자율성, 책임감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기실현’에 대한 약속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방식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의 연장선에서, 이처럼 진화한 관리 방식의 목표는 연대의 시스템(협력, 신뢰 등)을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이 관리 방식은 개인이 서로를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로 간주하도록 하고, 이른바 ‘전사 되기’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여 불안정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제한다. 120-1)


인적 자본 이론은 기업가 정신의 규범적 모델을 떠받치는,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바라본 것이다. 투자하거나 투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이 각 개인에게 있다면, 즉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다면, 그 개인은 자기 스스로 구축한 ‘자본’으로 정의된다. 그에 따라 교육, 건강, 결혼 등도 투자의 일환이며, 개인은 좋은 투자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정립된 시점과 주요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의해 이 이론이 적용된 현재 사이, 표적이 되는 대상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주요 표적은 1960년대와 달리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 기능하던 복지국가 일반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제 임금제도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법적 보호 체제가 표적이 된다. 더 넓게는 노동 자체가 지닌 ‘민주주의적 잠재력’이 위협받는다. 노동이 토론과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발명하는 중심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122)


이러한 노동의 집단적 차원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으로 노동자의 내면적 통일성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오로지 개인적인 실패만이 존재하고 고통의 사회적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구속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가분한 것으로 드러난다. 마치 경제 전쟁의 동기가 개인 내면의 차원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은 그 전쟁에서 전사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적 노릇까지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경영자는 자신을 적으로 삼도록 강제된다. 이 프로세스는 ‘플래너(planneurs)’가 원거리에서 지시하는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임금노동자 각 개인이 스스로 행동하고, 조직의 갈등과 딜레마와 역설(더 적은 수단으로 더 많이 잘할 것, 더 창조적이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것,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적일 것 등)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신경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123)


10장 반민중적 통치


피통치자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물론 새로운 일이 아니다. 국가 폭력은 국가의 역사 그 자체다. 그러나 국가 폭력은 매번 같은 논리를 따르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부 전쟁의 새로운 합리성은 역설적이다. 조직되지 않은 적, 무력 투쟁 등을 통해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는 적, 설사 원한다고 하더라도 임금노동자의 집단적 힘이 약화된 터라 그럴 능력도 없는 적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의 논리와, 반대자를 사회의 적으로 만들기 위한 논리가 점차 법으로 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공동체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의심받는 구성원, 국가의 잠재력을 파괴하려고 하는 이들,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는 이들 등 피통치자의 일부를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내부 전쟁은 다분히 수행적이다. 행위가 적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화된 감시와 지속적인 통제의 대상이 되고, 갈수록 군사화하는 경찰의 표적이 됨으로써 점점 ‘적으로 간주’된다. 128)


대게릴라전 모델은 이제 국내 질서 유지를 위한 정치 형식 자체가 되었다. 사목, 규율, 경쟁을 기초로 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모두 결합해도 이러한 권력 형태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적인 주권주의다. 이 폭력은 국가가 전쟁 상대인 정치적 적에게 부여한 실제적인 혹은 상상적인 폭력성에 비례한다. 그 적의 범위는 질서와 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과 ‘한편’임을 선언하지 않은 모든 이들을 포괄할 정도로 탄력적이다. 활동가, 언론인, 대학교수, 노동조합원 혹은 좌파 정당 들을 적의 공모자로 만들어내는 글과 말이 넘쳐난다.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이민자 출신 인구에 적대적인 사회 전쟁을 조금만 비판하기라도 하면 ‘이슬람 좌파주의’라는 만능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물론 테러리즘은 통째로 꾸며낸 핑곗거리가 아니며, 불행히도 실재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 테러리즘이 전쟁의 합리성을 강요하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133-4)


11장 신자유주의 전쟁 기계로서의 법


역사적으로 법치국가는 국가 행정부가 법을 오로지 도구적으로만 사용하는 경찰국가에 반대하여 성립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법치국가는 행정부를 그보다 상위의 규범(그중에서도 헌법적 법률) 아래 두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법치국가와 경찰국가를 구별 짓는 것은 정치적 체제의 차이라기보다 국가와 법 사이 관계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그것의 권력,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보다 상위의 법에 제한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법치국가의 구성 원칙에 반하여 입법자들이 헌법적 법률과의 양립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정한 현재의 법률들은 ‘위험’이 질서 관리의 첫째 기준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회를 미레유 델마-마르티는 ‘혐의의 사회’라고 부른다. 이제 '형법'은 예방적, 예언적이 되고, 본래 예방적 성격의 행정법은 처벌과 탄압에 이용된다. 그리하여 행정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할 권리보다 우선시되는 권력의 혼동이 야기된다.” 137-8)


“법률의 헌법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법적 시스템과 상고 절차가 도입된 최고재판소의 설치” 등으로 대변되는 사법권의 확대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헌법적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민주화’ 과정의 정수로 소개되었다. 이 모델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채권과 재산권의 보호를 보장하는 반면, 사회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의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실질적인 자리도 마련해 놓지 않는다. 이 새로운 입헌주의는 사실상 대의제도를 무시한 채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가로막는 방벽으로 기능한다. 허실이 지적했듯이 이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올바름의 규칙을 따르기로 한) 정치, 경제 엘리트와 (행동반경, 합법성, 사회적 권력이 현저히 확대될) 법조인 간의 동맹이 이룬 결실이다. 국가기관 공무원을 순수한 기술자로 표상하는 사법 영역의 자율성은 결국 정치의 탈정치화를 초래하고,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더욱 강화된 법조인들의 계급적 편견을 은폐한다. 140-1)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을 기업 형태의 증가와 일반화로 특징지었다. 그는 또한 이 일반화가 사법기관의 역할 증대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기업의 형태가 확산할수록 기업 간 마찰과 분쟁이 잦아질 것이고 법적 중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 사회와 사법(司法) 사회는 ‘동일한 현상의 두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푸코의 지적을 통해 정당 간의 경쟁을 분석하면 이 논리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정당들의 경합은 기업 형태로서의 정당 간 경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이 ‘기업-정당’ 간의 경쟁 논리가 법적 중재의 필요성을 높인다. 사법권의 정치적 도구화는 경쟁적 이해관계나 악의적 의도에 따른 정치적 전략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업 형태가 확대된 사회에서 사법부의 전례 없는 우위가 초래한 결과일 뿐이다. 사법(私法)국가는 사회 전체의 사법화(司法化)를 요구한다. 144)


12장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


현재의 일부 신자유주의적 지배 형태가 네오파시스트적 통치 행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가령 헨리 지루는 파시즘 역사 연구자 로버트 팩스턴의 ‘결집된 열정’ 개념을 ‘신자유주의 파시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도자에 대한 사랑, 하이퍼내셔널리즘, 인종주의적 환상, ‘약한’ 것과 ‘열등한’ 것과 ‘이방의’ 것에 대한 경멸,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 무시, 반대파에 대한 폭력, 과학과 이성에 대한 적대감 등이 그 열정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팩스턴은 ‘트럼프가 파시즘의 몇몇 전형적인 요소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서 보이는 ‘금권 독재’ 요소에 더욱 주목한다. 그는 이어 트럼프주의가 파시즘과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가령 트럼프 체제는 유일 정당 체제가 아니며, 반대파를 철저하게 금지하지도 않고, 대중을 위계 조직에 의무로 가입시키거나 그것을 위해 동원하지도 않는다. 직능별 동업조합도 없고, 세속 종교적 의식도, 총체적 국가에 헌신하는 ‘시민 전사’의 이상도 없다. 146-7)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의미론적 과잉은 현재 요구되는 정치적 투쟁과 관련하여 비판적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복잡하면서 특수한 현상들을 부정확한 일반화 속에 ‘매몰’시켜버림으로써 정치적 무장해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32년 『파시즘의 교리(La Dottrina Del Fascismo)』에서 조반니 젠틸레와 베니토 무솔리니는 국가야말로 파시즘의 진정한 초석을 놓을 터전이라고 선언했다. “파시즘에서 국가는 ‘절대’다. 그 앞에서 개인과 집단 들은 상대적인 자리만을 차지한다.” 이어서 그들은 파시스트 국가를 자유주의에 대립시킨다. “자유주의는 국가를 개인에 복무하게 만드는 반면, 파시스트 국가는 개인적 삶의 진정한 현실이 된다.” 파시스트는 “모든 것은 국가에 있다”라고 생각하며, 정확히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전체주의적”이라고 이야기된다. 따라서 모든 시민사회를 흡수하려고 한 파시즘의 ‘총체적 국가’와, 시장 및 기업 모델이 사회 전반에 일반화된 것을 동일시하는 건 피상적인 유비일 뿐이다. 147-8)


나치즘과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사회진화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공유한다. 이 용어는 자연에서 생물종이 그러하듯이, 사회를 민족과 인종이 죽음을 무릅쓰고 일반적이고 영속적인 경쟁을 벌이는 곳으로 정의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가장 약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 항상 하나의 선택지가 되는 나치즘은 원칙적으로 ‘사회진화론’이다. 이에 따르면 우월한 인종은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심지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거나 제거할 의무가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사회진화론은 군사 전쟁이나 영토 복속을 추구하지도 않고 열등한 종의 제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그것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진화는 시장을 수단으로 한 경제적 영역의 경쟁을 통해 작동한다. 여기서 국가는 경쟁이라는 목적을 위해 모든 제도를 조직하고 인민을 준비시킬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을 하나로 녹여내어 ‘인민 공동체’로 집결시킬 필요는 없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149)


헤르만 헬러는 ‘권위주의적 자유주의’의 특징을 “권위주의적 국가의 사회정책으로부터의 철수(Rückzug aus), 경제의 탈국가화(Entstaatlichung), 정치적-정신적 기능에 대한 독재적 국가화(Staatlichung)” 세 가지로 요약한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헬러가 사용한 표현들(‘철수’, ‘철폐’, ‘탈국가화’ 등)이 정치적-정신적 기능과 관련된 마지막 표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박탈과 부정의 어휘들이 헬러가 선택한 ‘자유주의’라는 말에 모든 의미를 부여해주는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를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국가의 개입주의는 적극적인 개입주의로서 그 대상에 경제적 분야도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의 연구는 적극적인 법적 개입주의라는 개념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경제와 법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이며, 신자유주의 내전이 그렇듯 총체적이다. 경쟁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에 관여한다. 151, 155-6)


여기서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릴 필요가 있다. 정치체제에 국한한 접근법의 문제점은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특정 정치체제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치의 권위주의적 차원의 핵심은, 국가의 구조와 정치를 행하는 인물 및 방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통치자가 사법(私法)의 헌법화를 추진하고 협의의 영역을 제한하기 위해 충분히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를 선택하는 것’(권위주의 체제를 선택한다는 의미에서)이 신자유주의의 여러 전략 중 하나에 불과하며, 여타의 전략 가운데 국가 주권의 탈중앙집중화가 포함된다고 해서 (클린턴과 블레어의) ‘제3의 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경험이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목표 달성을 위해 권위주의적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권위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통일성은 그것의 교리가 아니라 그것이 추동하고 수행하는 ‘내전 전략’에 의해 확립된다. 158-9)


결론 내전에서 혁명으로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내전과의 관계를 스스로 어떻게 문제화하는가? 이는 이중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개별 이해당사자들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권이라는 고전적 담론을 취한다. 미제스는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집단을 희생시키면서 소수자 집단에 부여된 특혜는 장기적으로 분쟁(내전) 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유주의는 내전을 배제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내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전은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 당사자들 간의 경쟁, 특히 계급투쟁을 가리킨다. 사실 신자유주의 국가를 특수한 이해들보다 상위에 놓기 위해 계급투쟁을 ‘내전’으로 재약호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국가가 ‘시장’이라는 유일한 정의의 수호자로 제시되는 사고방식 속에서 계급투쟁은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되어버리며, 국가의 기능은 그 내전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다. 161-2)


신자유주의가 적으로 간주한 것들은 ‘계획경제’, ‘집산주의’, ‘노동조합운동’, ‘인민주권’, ‘민주화’ 등으로 불리며, 모두 사회적 필요에 따른 경제 규제와 민주주의적 표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맞서 현대 신자유주의는 두 분파로 양분된다. 차이를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약속하는 다소 진보적인 ‘글로벌리즘 신자유주의’와, ‘국민 정체성’과 혼동되는 자유를 내세우며 소수자들의 요구 및 법적 성취를 억압하는 반동적인 ‘내셔널리즘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신자유주의 분파의 가치 전쟁 속에서 인민은 자기 자신에 대항하게 된다. 이 전쟁 속에서 매우 다른 두 개념의 자유가 마치 무한한 거울 반사처럼 서로에게 시대적 악의 책임을 돌린다. 현대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공론장 전체를 포화 상태로 만듦으로써 모든 진정한 인민적 대안을 막는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통치하려면 분할하라(divide ut regnes)’라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유명한 격언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162-3)


스스로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전략은 서로 다른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들’의 평등을 실현하면서 ‘대중을 구축’하고자 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가 이론화한 이 전략은 국가의 주권을 박탈한 세계화한 엘리트들에 대항하여 ‘대중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대처가 실현했던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미러링으로서 고안되었다. 우파에서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던 민족공동체와 주권 국가의 상상계를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해 ‘재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매우 다른 맥락 속에서, 특히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를 재현하는 이 ‘좌파 포퓰리즘’은 곧바로 정치와 노조의 구조적 분열, 사회적 운동의 자율적 힘, 결집을 위한 대의의 다양성 등과 충돌했다.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에 맞서기 위해 인민, 국가, 공화국 등의 위대한 레토릭을 전용했지만,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마법이 되지 못했다. 168)


가치 전쟁에 의한 인민 집단 간의 분열을 막기 위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좌파는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위한 투쟁과 여성, 민족, 인종, 성적 소수자, 세대 등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투쟁을 분리하거나 대립시키지 않아야 한다. 또한 평등이라는 일반적 요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경제적·문화적 투쟁을 접합해내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이는 차이와 특수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형태에 대항하기 위해 요구되는 통일성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체성 물신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른바 ‘진보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유권자’로서 확보하려 한 ‘소수자’ 정체성이든, 반동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전통적 가치를 내세우며 이용하는 ‘다수’의 정체성이든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전략이 있을 뿐이다. 한편에 경제적 투쟁이 있고 다른 한편에 문화적 투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 있는 것이다. 1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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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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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2020년 미시간주에서 한 무리의 백인 극우 극단주의자 그룹이 꾸민 납치 시도가 내전이 임박했다는 징후라고 말한다면, 독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내전은 바로 이런 자경단원들에서 시작된다. 무장한 전투원들이 사람들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민병대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규정하는 특징이다. 시리아에서 반정부 반란자들은 반군들과 풀려난 수감자들이 뒤죽박죽된 세력으로,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 국가(IS)와 나란히 싸우고 있다. 시리아 최대의 초기 반란 세력 ─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 도 중앙에서 지휘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느슨하게 연결된 소규모 그룹 수백 개가 뒤섞인 집단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전에서는 산적, 군벌, 민간 군사 기업, 외국 용병, 정규 반군 등이 싸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예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식 군복을 입은 단일한 전투 부대가 전통적인 무기를 들고 싸우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10)


1 아노크라시의 위협


이라크는 종족, 종교에 따라 정치적 경쟁이 극심한 나라였다. 북부에 사는 대규모 소수 종족인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후세인에 맞서 자치권을 얻기 위해 싸웠다. 이라크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인 후세인과 역시 수니파가 주류인 바트당의 통치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수십 년간 후세인은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공직을 맡으려면 바트당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수니파로 정부 직책을 채우고 또한 나머지 국민들은 잔인한 보안군을 앞세워 탄압함으로써, 소수 종파의 권력을 굳힐 수 있었다. 고작 침공 두 달 반 만에 이라크인들은 경쟁하는 몇몇 종파적 파벌로 뭉쳤다. 미국의 이라크 임시 정부 수반 폴 브리머Paul Bremer는 이라크에 신속하게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바트당을 불법화하고 후세인 정부에서 일한 모든 관리 ─ 거의 전부 수니파 ─ 는 영원히 권력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이라크군을 해체함으로써 수니파 수십만 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16-7)


하지만 후세인 치하에서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은 기회를 포착했다. 망명을 끝내고 돌아온 시아파 반정부 인사 누리 알말리키Nouri al-Maliki나 이라크를 이슬람 체제로 변신시키려는 급진 시아파 성직자 무끄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곧바로 정치적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원래 미국은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간의 권력 분점 합의를 중재하고 싶어 했지만, 이내 인구 구성에 따라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정부를 원하는 알말리키의 요구를 묵인했다. 권력 장악에 뒤이은 혼돈 상태였다. 수니파 반군은 처음에는 미군 병력을 추격하지 않았다(미군 또한 무장이 철저했다). 대신에 반군은 손쉬운 표적에 공격을 집중했다. 미국인들을 돕는 개인들과 단체들이었다. 반군의 목표는 미국 점령에 대한 지지를 줄이거나 근절하고 미군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반군은 미군 병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후세인이 생포되는 2003년 12월 무렵이면 이미 게릴라전이 발발한 상태였다. 17-8)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한 나라가 험난한 이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완전한 독재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옮겨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 지도자의 민주화 시도에는 종종 중대한 퇴보나 유사 독재적인 중간 구간의 정체가 포함된다. 그리고 시민들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지망자가 권리와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권력을 집중하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 있다. 헝가리는 1990년에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오르반 빅토르Orbán Viktor 총리가 서서히 체계적으로 민주주의를 독재로 몰아갔다. 대개 바로 이런 중간 구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anocracy〉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20)


민주화를 진행 중인 정부는 앞선 체제에 비해 ─ 정치적, 제도적, 군사적으로 ─ 허약하다. 독재자와 달리, 아노크라시 지도자는 대개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고 충성을 보장할 만큼 충분히 권력이 많거나 무자비하지 못하다. 정부는 또한 종종 지리멸렬하고 내부 분열에 시달리면서 기본적 서비스나 심지어 안전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야당 지도자들이나 심지어 여당 내부 인사들도 개혁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한편, 새로운 지도자들은 신속하게 시민과 동료 정치인, 군 장성 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이행의 혼돈 속에서 이 지도자들은 종종 실패한다. 아노크라시에서 패자들 ─ 예전 엘리트층, 야당 지도자, 한때 이득을 누렸던 시민 ─ 은 정부가 공정할지, 또는 자신들이 보호받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를 기다리느니 아직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힘이 강할 때 싸움을 벌이는 편이 나았다. 23-4)


2 고조되는 파벌 싸움


정치 불안정 연구단은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던 중에 인상적인 양상을 발견했다. 각국의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정치 불안정 및 폭력과 강한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파벌주의〉라고 명명한 극단적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였다. 파벌주의로 분열되는 나라들에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족이나 종교, 인종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당들이 존재하는데, 이 정당들은 타자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면서 통치하려고 한다. 〈파벌화되었다〉고 간주되는 나라들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대개 비타협적이고 유연하지 않다. 정당들 사이의 경계가 엄격해서 치열한 경쟁과 심지어 전투로까지 이어진다. 경쟁하는 집단들은 종종 규모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집단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존재할 때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다. 승리나 패배의 결과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 당들은 또한 성격상 종족적, 종교적 민족주의에 호소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지배적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35-6)


전문가들이 발견한 것처럼, 파벌주의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집단의 엘리트층과 지지자들이 기회를 감지한다. 아마 정권이 약해지는 순간이나 인구 변동 때문에 불만이나 취약성의 느낌이 고조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람들을 정책의 쟁점을 중심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된 단어나 상징 ─ 종교 문구, 역사적 슬로건, 시각적 이미지 ─ 을 활용함으로써 충성을 부추긴다.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서 오스만 전투의 기억을 환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언어 구사는 점차 집단의 독자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사회에서 긴장을 조성하며, 만약 이 파벌이 집권하면 흔히 지위를 이용해서 경쟁 파벌을 탄압한다. 정당한 법 절차를 잠식하고 공공연한 전투성을 부추긴다. 그리하여 경쟁 집단들 사이에 공포와 불신이 커지면서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각 집단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고려하게 된다. 이윽고 이런 분열이 정치의 장에서도 나타난다. 37)


종족적 민족주의, 그리고 파벌을 통한 표출은 한 나라에서 스스로 강화되지 않는다. 한 사회가 정체성 구분선을 따라 분열되려면 대변자가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기꺼이 차별을 호소하고 차별 정책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대개 공직에 오르거나 그런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쟁탈전을 지지할 유권자 집단을 가두려는 방편으로 공포감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가 그것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나 투지만 같은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 후에 그런 현상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이 전쟁 선동가들은 대개 권력을 잃을 위험이 아주 높거나 최근에 잃은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폭력과 혼돈의 씨앗을 뿌리면서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부활을 위한 도박〉 전략을 활용한다. 41-2)


흥미롭게도, 보통 시민들은 대개 종족 사업가들에 대해 분명히 안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의제를 갖고 있고 전부 진실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기 삶에 위협이 고조된다고 느끼면 기꺼이 지지를 보낸다. 시민들은 만약 아무리 희박할지언정 반대파가 자신들을 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되면, 아무리 악랄한 사람이더라도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지도자에게 의지하게 마련이다. 투지만이 크로아티아 문장을 채택하고 크로아티아 정부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숙청하자, 크라이나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 갑작스러운 사태를 밀로셰비치의 경고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지배하는 유고슬라비아군에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을 때, 크로아티아인들은 투지만이 주창한 바와 같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양 파벌 모두 결국 자신들을 구하려면 폭력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43-4)


3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


파벌화된 아노크라시에 불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종족 집단은 어디에나 많으며, 대부분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에는 80개가 넘는 종족 집단이 있고 주요 종교만 최소 5개에 이른다. 하지만 오직 소수만이 조직을 이루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세계에서 종족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로 손꼽힌다. 360개가 넘는 부족과 종족-언어 집단이 있지만, 지금까지 4개 집단 ─ 암본인, 동티모르인, 아체인, 파푸아인 ─ 만이 무기를 들었다.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한 가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실인데, 폭력적으로 바뀐 집단들이 대체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정부 공직에 거의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정치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학자들이 발견한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일단 권력을 잡았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특히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54)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downgrading〉라고 지칭한다. 지위 격하는 정치적, 인구학적 사실인 만큼이나 심리적 현실이기도 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기독교도든 무슬림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지위가 격하된 파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집단의 성원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지위가 상실됨을 느끼고 그 결과 원한을 품는다는 사실이다. 지위 격하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지위가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지배적인 집단이 어느 순간 누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누구의 법을 집행하며, 누구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옮겨 간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의 가난이나 실업, 차별을 참을 수 있다. 조잡한 학교나 열악한 병원, 방치된 기반 시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참지 못한다. 원래 자기 것이라고 믿는 장소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못 참는다.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파벌은 한때 지배적이었으나 쇠퇴에 직면한 집단이다. 54-6)


전문가들은 전쟁을 벌이는, 지위가 격하된 많은 종족 집단이 〈토박이sons of the soil〉 유형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토박이〉는 한 지역의 원주민이거나 그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태어난 땅의 정당한 상속자로서 특별한 혜택과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집단이 지배적인 것은 그들이 다수 지위를 차지하거나 처음에 그 영토에 거주하거나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토착민〉이라고 여기며, 나중에 그 땅에 정착하거나 지역의 주요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외부자〉라고 규정한다. 1800년 이래 벌어진 내전을 다룬 한 연구에 따르면, 〈토박이〉 범주에 해당하는 종족 집단이 반란을 일으키는 비율은 약 60퍼센트로, 다른 범주 ─ 28퍼센트 ─ 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았다. 이런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저항 운동을 조직하는 역량이 강하고 불만을 느끼는 정도가 압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내전을 촉발하는 주체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다. 56-7)


4 희망이 사라질 때


1922년 당시 북부에 살던 아일랜드 가톨릭교인들은 나머지 아일랜드 지역과 더불어 독립을 얻지 못했다. 영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을 만들었지만, 북부의 6개 주는 영국의 통제하에 남겨 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북아일랜드의 경계선을 수정해서 개신교인들 ─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생각한 이들 ─ 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보장했다. 결국 가톨릭교인이 아니라 개신교인이 새로 구성된 반자치 정부를 지배하면서 교육과 법률, 공공사업, 산업, 농업 등을 통제하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개신교인들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한 그들 마음대로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북부의 가톨릭교인들은 아일랜드의 나머지 지역과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기네 땅에서 소수자가 되었다. 세기 중반에 이르러 북아일랜드에는 내전의 밑바탕이 되는 조건이 두루 존재하게 되었다. 부분적 민주주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경쟁하는 파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정치에서 배제된 토착 주민 등이 그것이다. 64-5)


가톨릭교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에서 공정한 정치적 대표권과 평등한 대우를 얻기 위해 수십 년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편지를 쓰고, 시민권 협회를 결성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야외 집회와 연좌시위를 하고, 1968년에는 벨파스트에 있는 북아일랜드 의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1969년 1월에는 미국의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본보기로 삼아 벨파스트에서 데리까지 〈대행진〉을 조직했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내내 타협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국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가톨릭교인들은 민주적인 런던 정부가 북아일랜드 개신교인들의 최악의 경향을 제어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지역 개신교인들이 완강하게 자신들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것은 알았지만, 영국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파벌적이고 유사 민주적인 북아일랜드 지도자들보다는 그래도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군인들이 반란 진압 전술을 구사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가톨릭교인들은 희망을 잃었다. 67)


시위 자체는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실 시위는 기본적으로 희망에서 우러나는 행동이다. 일반 시민이 집을 나와 종이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정부가 자신들에게 총을 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 너무 무서워서 행동에 나서지 못하거나 ─ 결의를 불태우며 나가게 마련이다. 휴대 전화 하나만 달랑 들고서 거리로 나가는 것은 낙관적인 행동이다. 체제가 스스로 교정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위가 실패로 돌아가면 희망이 사라지고 폭력의 구실이 생긴다. 대개 오랫동안 평화 시위가 벌어지고 난 뒤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위자들 스스로가 병사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품은 집단의 호전적인 성원들이 이제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다고 느끼면서 무력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71)


5 촉매


2010년 이래 해마다 세계는 민주주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나라보다 내려가는 나라가 더 많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새롭게 민주화된 나라들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난다. 적어도 한동안 아프리카는 이런 추세에서 두드러진 예외였다. 지난 10년의 대부분 동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축소되지 않고 계속 확대된 유일한 지역이었다.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나라들은 인터넷 사용률이 매우 낮았다. 아프리카에서 인터넷 접속이 늘어난 때는 2014년인데, 당시 소셜 미디어가 주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는 2015년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진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돌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8년 이후 새롭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돌은 계속 고조되었다. 한 분석가에 따르면, 이는 〈페이스북이 지배하는 인터넷 접속이 급증하는 시기〉와 일치했다. 82-3)


문제는 소셜 미디어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구글, 트위터 같은 정보 기술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자사 플랫폼에 잡아 두어야 ─ 또는 그들의 표현대로 〈관여하게engaged〉 만들어야 ─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행동 알고리즘은 스스로 강화하면서 이용자들을 위험한 경로로 인도하는 기이한 정보 창고를 만들어 냈다. 음모론과 반쪽 진실half-truth,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극단주의자들로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무서운 이유는 바론 이런 〈관여〉라는 사업 모델 때문이다. 현재의 모델은 자신이 퍼뜨리는 정보가 많은 관심을 끌기만 하면 진실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날 뉴스와 정보의 새로운 게이트 키퍼 노릇을 담당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누가 자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또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제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보를 최대한 널리 퍼뜨리는 것이 빅테크 주주들에게는 이익이 된다. 84-6)


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퇴보를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독재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정보 캠페인을 활용해서 제도를 공격하면서 대의 정부와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법질서를 강조하는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89)


6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의 저자들에 따르면, 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통제를 하고 싶어 안달인 국내의 집단이었다. 이런 파벌의 지도자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른 시민들의 권리나 공동체의 항구적이고 종합적인 이익을 거스르면서35 권력을 굳히고 공공선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드높일 것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커다란 위협이라고 본 파벌 유형은 계급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들은 재산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고 부의 재분배를 막기 위해 정치권력을 집중시킬 것을 우려했다. 매디슨의 삼권 분립 ─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 모델은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18세기 지도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이 우려한 〈파벌화〉가 계급이 아니라 종족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1789년에는 적어도 연방 차원에서는 미국의 유권자가 전부 백인 ─ 그리고 전부 남성 ─ 이었기 때문이다. 106)


정체성 기반 정치로의 변화가 대거 시작된 때는 1960년대 중반으로, 당시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민권 법안을 지지함으로써 남부 백인들을 배신했다. 1964년 존슨이 민권 법안을 내놓자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존슨과 대결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그는 민권 법안에 반대했다)는 남북 전쟁 재건기 이래 최남부에서 선거인단 표를 싹쓸이한 첫 번째 공화당 후보였다. 이후 수십 년간 다른 정체성의 표지들이 정치화되었다. 종교가 그다음이었다. 공화당 엘리트들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점점 결집하는 신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낙태 반대pro-life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기독교 우파와 관련된 정치 단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지도자인 제리 폴웰 시니어Jerry Falwell Sr. 같은 사람들이 점차 득세하게 되었다. 21세기 초에 이르면, 기독교인이나 복음주의자라면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6-7)


한 나라의 파벌주의 수준은 5점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5점이 가장 파벌주의가 약하고 1점이 가장 강하며, 3점은 확실히 위험 구간이 된다. 2016년 미국은 3점 ─ 파벌화됨 ─ 으로 떨어졌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이라크와 나란히 그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또한 2016년에 3점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파벌주의는 과거에 두 차례뿐이었다. 남부 민주당이 비타협으로 일관하면서 비백인을 법의 동등한 보호에서 배제한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민권 시위와 베트남 전쟁, 반체제 운동을 진압하는 데 몰두한 부패한 정부로 나라 전체가 요동치던 1960년대 중반에 그러했다. 두 시기 모두 미국의 정당들은 나라의 미래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나라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나라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초법적 조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자신의 전망을 폭력적으로 추구한다. 오늘날 공화당은 약탈적 파벌처럼 행동하고 있다. 109-10)


오늘날 미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미국은 아노크라시의 문턱에 선 파벌화된 나라로, 빠른 속도로 공공연한 반란 단계로 접근하는 중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사당 습격 사건을 계기로 이제 정부는 극우파 단체들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공격에 가담한 많은 투사 중 일부는 실전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의사당 습격이 재연되거나 어떤 양상의 일부가 될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인들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혼돈을 틈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얻지 못한 것을 폭력을 통해 획득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공공연한 반란 단계에 정말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지금 당장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이 점점 더 조직화되고 위험해지고 완강해지며,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118)


7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테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그 공격 대상 ─ 시민들 ─ 이 정치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테러 공격을 막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아일랜드 공화군, 하마스, 타밀 호랑이 등은 모두 일반 시민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길수록 정부가 평화를 대가로 테러리스트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극단주의자들이 이득을 얻는다. 국가 지도자로 하여금 극단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정책 ─ 총기 규제 폐지, 엄격한 이민 정책 추진 ─ 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극단적 지도자를 선출하게끔 유권자들을 설득한다. 테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굉장히 쉽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감시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단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것을 가로막는 헌법적 제약이 많기 때문에 외국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123-4)


극단주의자들은 대개 몇 가지 고전적 문서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떠받치는 영감을 발견해 낸다. 미국에는 연방 수사국이 〈인종주의 우파의 바이블〉이라고 지칭한 『터너의 일기The Turner Diaries』가 있다. 아리아인 혁명이 일어나 미국 정부를 전복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1978년에 네오나치 단체 민족 동맹을 이끈 윌리엄 피어스William Pierce가 쓴 이 이야기는 인종적 원한을 인종 전쟁으로 끌어올리는 각본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비주류 활동가 무리가 연방 정부를 무너뜨리고 다른 백인들을 〈각성시켜〉 자신들의 대의로 이끄는지 ─ 테러 공격, 대량 살상 폭탄 ─ 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터너의 일기』는 극우 테러리즘을 직접적으로 고무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연방 수사국 본부 폭탄 공격과 의사당 건물 습격, 그리고 〈인종 배반자들〉 ─ 정치인, 변호사, TV 뉴스 진행자, 판사, 교사, 목사 등 ─ 을 교수대에 목매달아 죽이는 〈밧줄의 날〉 제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124-5)


오늘날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른바 가속주의accelerationism를 신봉한다. 현대 사회는 구제할 길이 없으며 그 종말을 한시바삐 앞당겨야만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묵시록적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미국을 반란 단계에서 위로 끌어올리고 또한 어쩌면 종족 청소로 이끌기 위해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다. 가속주의 신봉자들은 일반적인 수단 ─ 집회, 우파 정치인 선출 ─ 으로는 충분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 변화를 재촉해야 한다고 믿는다. 테러리즘 전문가 맥냅이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충돌을 유발하기 위해 코로나 록다운부터 인종 정의를 위한 시위에 이르기까지 온갖 구실을 찾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런 행동을 계기로 폭력의 연쇄 반응이 시작되어 온건한 시민들 ─ 정부의 억압과 사회적 불의를 눈뜨고 지켜보는 시민들 ─ 도 그들의 대의에 동참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대규모 충돌이 필요하다고 믿는 극우 단체가 수백 개 존재한다. 128-9, 132)


반란자들이 강력한 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수히 많다. 한 가지는 본질적으로 소모전으로, 사람과 공공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꾸준히 이어 가는 방식이다. 또 다른 전략은 협박이다. 중앙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다면, 폭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을 직접 굴종으로 몰아갈 수 있다. 또 다른 테러 전략은 〈더 세게 지르기outbidding〉이다. 한 전투적 집단이 지배권을 공고히 굳히기 위해 다른 집단들과 경쟁할 때 이 전술을 구사한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와 활동 방식은 더 헌신적인 전투 부대와 단호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으며, 대의에 헌신하지 않는 이들을 솎아 내면서 빈약한 성과, 편 바꾸기, 배신 등의 문제를 줄인다. 마지막 테러 전략은 〈망치기spoiling〉다. 온건한 집단들이 새로운 종족 국가를 세우려는 원대한 목표를 위태롭게 만들고 뒤엎으려 할 때, 테러리스트들이 구사하는 전술이다. 온건한 반군 집단과 정부의 관계가 개선되어 평화 협정이 임박한 듯 보일 때 보통 이 전략이 작동한다. 133-5)


# 그레고리 스탠턴Gregory Stanton이 쓴 문서 「제노사이드의 10단계The Ten Stages of Genocide」

1. 분류 : 권력을 쥔 한 정체성 집단이 시민들 사이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2. 상징화 : 그들 자신이나 다른 집단을 가리키는 일정한 표식을 도입한다.

3. 차별 : 법률이나 관습을 동원해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억압한다.

4. 비인간화 : 표적이 된 소수자를 범죄자나 인간 이하로 폄하한다.

5. 조직화 : 군대나 민병대를 모아서 다른 집단을 근절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6. 양극화 : 선전을 확대하면서 표적 집단을 더욱 악마화하고 분리한다.

7. 준비 : 군대를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입한다.

8. 박해 : 본격적이고 집단적으로 표적 집단을 탄압한다.

9. 절멸 : 군대와 법집행 기관의 도움을 받아 표적 집단을 완전히 말살한다.

10. 부정 :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정한다.


흔히들 종족 청소가 증오에 의해 추동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증오는 존재하지만 종족 청소를 부추기는 진짜 요인은 공포다. 자신이 위협받고 취약하다는 공포 말이다. 폭력 사업가들은 이런 불안을 활용하면서 적이 자기를 해치기 전에 먼저 적을 해치라는 신호를 보내는 생존 본능에 편승한다. 이런 실존적 공포가 국내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 집단이 불안을 느끼게 되면 안전을 확보하고자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그러면 경쟁 집단도 불안을 느끼면서 똑같이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또다시 앞의 집단은 훨씬 더 많은 무장을 갖출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 자신들이 방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 결과 한층 더 불안감이 조성되어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지는 나선 운동이 촉발될 수 있다. 사람들이 무장을 갖추면 이런 식의 안전 딜레마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 판매는 2020년에 역대 최고를 기록해서 1월에서 10월 사이에 1천7백만 정이 팔렸다. 137-8)


8 내전을 예방하기


1986년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억압을 확대하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들 ─ 미국, 유럽 공동체, 일본 ─ 이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미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는데, 1989년 비타협적인 P. W. 보타P. W. Botha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F. W. 데클레르크F. W. de Klerk는 중요한 계산을 했다. 국가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집권당인 국민당 소속이긴 했지만 데클레르크는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다. 경제가 붕괴하면 백인이 쌓아 둔 부도 붕괴할 터였다. 공화국 인구의 4분의 3은 흑인이었다. 백인 통치를 계속 고집하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는데, 백인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데클레르크는 내전 대신 아프리카 민족 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를 비롯한 흑인 해방 정당에 대해 29년간 이어진 금지를 철폐하고, 언론 자유를 복원했으며, 아프리카 민족 회의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포함한 정치범을 석방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내전 직전에 멈춰설 수 있었다. 141)


198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오늘날의 미국보다 내전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백인이 흑인을 억누르기 위해 만든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는 1965년까지 미국에 존재한 유사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이 백인과 결혼하거나, 백인 구역에 사업체를 설립하거나, 〈백인 전용〉 표기가 된 해변이나 병원, 공원에 가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노크라시 역사도 현대 미국보다 훨씬 길어서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미국은 중간 구간에 잠깐 머물렀을 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또한 스스로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주요 집단이 두 개 있었다. 흑인과 백인 모두 이 땅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한 집단만이 그런 주장을 한다(주변으로 밀려나고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은 원주민은 예외다). 198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질 위협에 비하면 오늘날 미국의 위험성은 크지 않은데, 그래도 어쨌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쟁을 피했다. 14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지도자 ─ 기업 지도자, 정치 지도자, 반대파 지도자 ─ 의 힘이 떠오른다. 지도자는 위험에 직면해서 타협을 할 수 있고, 또는 싸움을 선택할 수 있다.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은 백인들이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조건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데클레르크는 흑인에게 완전한 시민권과 과반수의 정부 장악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다. 보타는 데클레르크처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무력 저항에 찬성했던 만델라는 종족적 폭력을 옹호할 수 있었다. 또는 종족 사업가가 되어 내전을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흑인 동포들의 분노와 원한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치유와 통합, 평화를 설파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더 많은 충돌과 유혈 사태를 겪지 않게 만든 것은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었다. 1993년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42)


한 나라의 거버넌스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 개선보다 더욱 중요하다. 부유한 나라가 경제 번영에 걸맞는 수준에 비해 정부가 좋지 않으면, 〈이후 시기에 내전이 발발할 위험성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하게 되면 설령 1인당 소득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전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달리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어떤 특징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할까? 피어런은 〈좋은 일은 대개 동반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8 법치(법적 절차의 평등하고 공정한 적용), 발언권과 책임성(시민들이 정부를 선택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유능한 정부(공공 서비스의 질과 행정 조직의 질과 독립성)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도와 정치 제도가 탄탄하고 정당성과 책임성이 있는 정도를 반영한다. 거버넌스가 개선되면 이후에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줄어든다. 144-5)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내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파벌화다. 시민들이 종족이나 종교, 지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약탈적으로 바뀌어 경쟁자를 배제하고 주로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할 때 파벌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만큼 파벌화를 부추기고 가속화하는 것은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본보기이자 자유의 횃불이지만, 우리는 돈과 극단주의가 우리 정치에 침투하게 방치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적 제도와 사회를 강화할 수 있다. 우리는 뉴딜을 통해 이런 일을 해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하고, 많은 미국인을 빈곤에서 구했으며, 경제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면서 희망을 되살렸다. 이제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차별적이고 약탈적인 파벌주의의 경로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대한 희망을 회복시키기 위해 공적 담론을 되찾고 중재해야 한다. 154,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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